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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 디플롯 / 2023년 4월
평점 :

부제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얘기하고 싶은 책이 나왔다.
<수치>는 스스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조애나 버크가 나라, 인종, 젠더 등 여러 맥락으로 성폭력의 역사를 쓰고
성폭력이 없는 세계는 가능한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소개만으로도 겁이 나지만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건, 몇 년 간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난 알아야 할게 많고
또 그걸 직면해야 나와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제목 수치를 사전에서 정의를 찾았다.
수치 -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작가는 말한다. 수치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느껴야 한다고.
생존자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수치스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에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볼 필요가 있다. 수치는 피해를 경험한 쪽이 아니라 가한 쪽의 것이다.
P.86
각오했지만 책을 읽는 건, 눈을 뜨고 역사를 마주하는 건 힘들었다.
다시 입에 올리기 힘들만큼, 세계 곳곳에서 십년 전, 이십년 전, 몇 십년 전에도 끔찍한 성폭력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었다.
이 책은 주석만 100장이 넘어갈 정도로 작가가 이보다 더 꼼꼼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정리했다.
여성이 가해자가 되고, 전쟁터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경단이 일어나고.
부부간 강간 등. 많은 사례를 들고 분석한다. 읽으며 괴로울 때는 이렇게 해야만 하나 생각도 들었다.
그 답은 마지막 챕터에서 찾았다.
작가가 성폭력의 역사를 집요하게 써내려 간 이유.
그건 앞의 수많은 사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작가는 주장한다. 지역성, 다양성, 쾌락, 몸을 인정하고 횡단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전형적인 피해자란 없으며, 문화와 나라마다 성폭력의 정의도 다르다.
무엇도 규정지을 수 없으므로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어디에 있던 간에 우리는 우리의 지역적 맥락에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P.421
이 문장을 읽으며 책 앞으로 돌아갔다. 난 피해자, 사실에 집중했구나. 그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더 봤어야 했구나.
우리는 살아남은 희생자, 연대자를 통해 교차성과 횡단의 정치를 할 수 있다.
작가도 본인이 낙관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요원해 보이더라도. 넌 내편 아니니 안돼 라고 선을 긋는게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내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존중하길.
그건 이 책을 읽고 얘기 나누는 것 부터 시작할 거라고 믿는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부분적일 뿐이며, 절대로 끝나거나, 완전하거나, 원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구성되고 불완전하게 덕지덕지 꿰매어 이어진다. 그러므로 다른 자아와 함께 손잡고, 다른 것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고 함께 볼 수 있다. (도나 헤러웨이) p.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