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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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마지막 날, 남은 200여 페이지를 한번에 쭉 읽었다.

여자에게는 신용이 없으므로 대출이 안되던 시대를 지나, 여자에게 신용이 갖춰지자 이 신용을 통해서 얼마나 꼼꼼하게 성매매산업에 얽어매는지 소상히 다룬 과정을 보고 끔찍해서 숨이 막힌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매춘사회화, 성상품화, 대상화, 재여성화...
더 끔찍한 것은, 이러한 성매매산업이 남성 개인의 비용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선물하며 그들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데, 여기서 공고해지는 것은 유대만이 아니라 그들만의 사회에 대한 진입장벽이기도 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도 마음이 무거우리라고 예상했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사회의 단면이고 여성주의가 마땅히 바라봐야할 지점이다. 다락방 님께서 함께읽기 책으로 정하셨을 때, 혼자서라면 읽기 어렵지만 함께라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읽어낼 수 있었다.

성매매산업을 금융과 자본주의의 측면에서 읽어낸 이 책을 읽다보면, 근본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삶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게 노동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책 초반부에 저자가 썼던 문장을 기억해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성매매' 외의 건전한 경제수단을 익혀 복귀하는 사회는 매춘과 무관한 '평등한 경제적 장', 탈매춘화 장', 혹은 탈성애화된 장'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회는 여성들을 도구화함으로써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p. 58

'세계화는 여성의 몸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여 여성이 남성과 국가,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로 여성적 가치를 판단하는 초남성적 시스템이다.' p.60


페미니즘의 투쟁,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101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마리아 미즈.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42241
(페미니즘의 투쟁을 아직도 다 읽지 못했는데, 다음달에 이어서 읽어야겠다. 저자가 인용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도 읽어봐야겠다.)

성매매처벌이나 단속 이야기가 나오면 꼭 따라붙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에서부터 존속해온 아주 뿌리깊은 직종이라는 이야기.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남성적 시스템이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뜻이겠다.

책의 연구집단 중 하나인 '박팀장'은 마음껏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하다가 나중에 '이동네는 슬픈 동네에요, 진짜 죽어나가는 애들이 어마어마해요' 라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그 '박팀장'은 그렇게 자살도 많이 하고, 귀신 나오는 집이 그렇게 많은 동네에서 슬픔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성형을 알선해주고 아가씨들을 돌려서 자신의 강남 탑 글래스 평판을 유지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게 가능한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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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5-01 0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등롱 님.
저도 박팀장의 나중 발언을 보면서 여성들이 고생하고 또 죽어가는 걸 보는게 슬프다며 여전히 그렇게 돈을 버는구나, 했어요. 그는 그런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박팀장 뿐만이 아니라 성매수남들도 모두 모르지 않을겁니다. 그러면서도 착취에 가담하는 거겠지요. 휴..

등롱 2022-05-01 08:2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모르지 않고 다 알면서도 하는 거라고요. 그래서… 사회 시스템을 고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비난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서도, 가끔은 진절머리가 쳐지네요 ㅠㅠ 그래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활동가들을 지지해야겠죠. 이번달에도 다락방 님 덕분에 힘겨운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 영화,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개정판 여이연문화 3
바바라 크리드 지음, 손희정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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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포물을 볼 때, 무엇이 공포의 대상이며, 공포의 대상이 공포를 자아내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공포의 대상에게 인물들이 왜, 어떻게 당하는지가 사회문화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장화홍련 설화에서 장화의 계모가 장화를 가리켜 죽어마땅하다며 드는 명분은 장화가 사통하여 임신하고 숨기기 위해 낙태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이 나오는 것은, 다시 말해 연애와 성관계와 낙태는 징치해 마땅할 짓이라는 사회적인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아직도 작동하는 통념.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은 읽기 전에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정말정말 어려웠다.

그게 단순하게 공포영화를 풀어낸 수준이 아니라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와 아브젝션에 기대어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인데, 프로이트도 잘 모르고 라캉도 모르고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현대철학은 더더욱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 책은 이론만 쓰여진 게 아니라 공포영화를 분석한 책이다.

나는 공포영화를 보지 못해서 이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은 정말이지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책에서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은 워낙 유명하기에 줄거리와 미장센을 토막이나마 알고 있고, 그게 그나마 독서에 도움이 되었다.

에일리언, 캐리, 엑소시스트, 사이코 같은 유명한 영화들이 분석될 때야말로 이 책이 기댄 이론의 실례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성혐오적인 시각이 도드라지는 영화이지만 영화 안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렸는지 그려내는 것 자체가 여성혐오를 증명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결론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론을 향해 전개해나가는 문장 하나 챕터 하나가 중요하다. 최근 읽은 인지과학 책에서 한 번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읽어나가며 이해해나가는 게 새로운 세계와 뇌의 시냅스 연결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었다. 너무 어려운 책이라 엄두가 나지 않지만, 재독에 도전해야지. 재독 전에 프로이트의 꼬마 한스를 읽고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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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3-31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어려운데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등롱 님! 무엇보다 이 책에서 많은 걸 얻어내신 것 같아 진짜 너무 좋네요. 저는 이번이 재독이긴 했는데 재독이어도 어렵더라고요. 특히 꼬마 한스는 도대체 뭔말인지… 하하핫. 등롱님, 4월에도 함께합시다!!

등롱 2022-04-01 08:29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았어요!! 결코 쉽지 않았구 진짜진짜 어려웠지만… 라캉과 크리스테바를 읽고 재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다져봅니다 ㅎㅎ 책이 너무 커서 제대로 읽지 못하는 독자에게조차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4월은 제가 혼자서는 두려워 도전 엄두를 못 냈던 분야인데 함께니까 용기가 나요!! 항상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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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속박하고 얽어매는 방법은 어쩌면 이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인가. 주로 서양 사례가 많았으나… 우리는 동양의 사례도 그만큼 들 수 있다.
유대와 연대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마지막 챕터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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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28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등롱 님!!
더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3월 책으로 또 만나요! 🙋‍♀️

등롱 2022-02-28 21:59   좋아요 0 | URL
이번달도 너무너무 좋은 책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덕분에 매월매월 독서가 정말 충실한 느낌이 들어요!! 3월 책도 설렙니다~사두고 기다렸어요^^
 


 2022년을 여는 1월의 여성주의 함께 읽기 대상 도서는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과 정치'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를 읽지 않고 웬디 브라운을 먼저 읽는 것은 깊은 독서가 되기 어려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디 브라운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 다 쓴 페이퍼가 날아갔어... 

아니 왜 자동 저장이 안돼 욕나온다 ㅠㅠㅠㅠㅠ 

서재 쓰면 쓸수록 진짜 너무 별로네, 무슨 PC 통신 시절 블로그도 아니고 자동 저장이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안된다는 게 말이 되냐? 빡친다... ㅠㅠ 



멘탈 추스리고 다시 써보자. 



이 책은 어렵지만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까지 힘든 여정을 거쳐오면서 결국 서구사회가 정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이며, 그 정치에 남성됨이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이러한 남성됨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베버가 그토록 맹신했던 과학이 이제 정신과 육체는 별개가 아니며, 머리뼈 안쪽 어딘가에 자아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고, 우리의 정신과 자아는 회색 뇌세포와 신경전달물질과 통증 없는 컨디션의 육체 그 자체에 있으며, 육체와 정신은 말 그대로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육체와 육체를 돌보는 일상적 삶의 영역은 배격되고 지배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정치는 베버, 마키아벨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는 달리 이제 복지국가를 표명하며 일상과 가정, 육체를 돌보면서 합법화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웬디 브라운은 말한다. "남성됨과 정치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국가는 시민들의 삶, 시민의 목숨을 '국가 안보', '국위 선양'에 대한 대가로 지불할 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얻은 소득 중 하나는 마르크스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의 맥락을 깨달은 것이다. 피임과 임신중지, 임신에 대한 선택이 여성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브라운은 그 시각이 남성주의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자연(=육체)를 배격해야만 비로소 시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시각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연이 아니다. 


우리는 "남성이 배제하고 거부하고 탄압하고 부정한 것을 다시 가져와 그들을 통합해야 한다." (p.345) 


그렇다고 해서 여성적 가치를 남성적 가치와 등치되는 자리에 놓고,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려는 태도 역시 위험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러한 노선을 택했으나, 남성됨이 남성을 전부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의 속박이 될 수 있듯이 여성됨 역시 여성을 전부 표현하지 못한다. 


이분법적인 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브라운은 


"대립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상과 행동의 길을 잃곤 한다. 남녀에게 생리적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 둘이 이분법적 관계라는 뜻은 아니다. [...] 이분법은 차이를 제시하고 조직하는 데 가장 단순하고 환원적이며 흥미가 떨어지는 방식이다. [...] 우리는 단순한 역전이나 통합을 추구하기보다 잘못 깔린 판에 놓인 반대 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피해 떠나야 한다." 


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서문으로 돌아갔다. 한국어판 서문 15페이지에, "내가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던 1979년 당시 정치학과에는 나를 포함해 여자 동기가 셋 뿐이었다." 라고 쓰여 있다. 이 다음에 나오는 구절은 아, 여자라면 대충 알지. 브라운은 아주 우아하게 "그 때까지 나는 나한테 그렇게나 까칠하게 구는 곳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라고 쓴다. 

그리고, 단체생활을 하는 여자라면 여자에게 배타적인 집단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치졸하고 모욕적이며 인성을 변기에 내린 것처럼 굴 수 있는지 알 것이다.

그 전장에서... (권력 구조에 있어 남성됨을 지적하는 책에 대해 쓰면서 이런 비유를 쓰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다른 표현을 찾기가 좀 어렵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거두면서 자신이 겪은 차별이 있는 자리를 "잘못 깔린 판"이라고 정의하는 냉철한 식견이 너무 존경스럽다. 


마지막 9장과 10장이 특히 백미였고...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깊이 추궁해 본 적 없는 우리의 공포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요구가 우리를 배고프고 잔인하게 만든다. 또한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는 대상과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P.365


"우리에게는 우리를 완전히 주눅들게 하는 것 앞에서 경계를 지워버리고 견해 관계 노력을 밀어붙일 용기가 필요하다." P.379 


너무 좋은 책이어서, 거의 책 전권에 걸쳐 언급되다시피 하는 아렌트가 몹시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인용과 언급이 아렌트에 대한 반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인용된다는 것 자체가 아렌트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대체 아렌트의 사상이 어떻기에 이렇게 반론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네. 

일단 집에 있는 아렌트 책을 읽어보자. 



이 책을 왜 샀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있으니까 먼저 읽고. 













웬디 브라운의 최신작(이라지만 2019년에 나온)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폐허에서"가 너무 궁금한데... 번역이 안되었다. 대신 다른 책 두 권이 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두사의 시선 1권을 담자.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깊이 추궁해본 적 없는 우리의 공포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들고,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요국가 우리를 배고프고 잔인하게 만든다. 또한 따져 물어본 적 없는 우리의 갈망이 우리를 만족시키지 않는 대상과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 P365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삶이라고 부른 ‘좋은 삶‘은 일반적 삶에 비해 그저 더 낫거나 더 걱정이 없거나 고상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삶을 위한 욕구를 정복하고, 노동과 일에서 해방되고,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한 선천적 충동을 넘어서면서 생물학적 삶의 과정에 더는 매여있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것이다. [...] 생물학적 삶의 과정과 모든 생물의 생존을 위한 충동은 무관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진정한‘ 본성 함양에 저주와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 P101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복합체에서 어떤 경우든, 언제나 지배하는 요소와 지배받는 용소를 추적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원칙을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 개별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등 모든 범주로 넓힌다. 영혼은 지배와 피지배로 분류되며,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뉘고 고결한 인간의 육체를 지배한다. - p.102 - P102

간단히 말해 베버는 합리화와 그에 따르는 지배와 소외의 형식을 ‘세계의 각성‘과 도구적 합리성의 출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고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 ‘불가피한‘ 발전이 사실은 서구의 남성됨을 특징으로 하는 권력과 자유의 건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p.289 - P289

비물질적이고 비필연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사회적이지만 희망을 주며 영광스러운 명분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의 경우처럼 베버의 사상은 애초에 오직 소수의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소환되는 이 고상한 영역이 궁극적으로 공허하거나 부자연스럽거나 순전히 미학적 본성만 있다고 암시하지 않는가? 남성됨과 정치는 그저 인간적일 뿐인 모든 것 위에 그리고 너머에 있는 자신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점유되지 않은 공간을 다시 찾고 있는가? p.281 - P281

베버에 따르면, 가정 내 권위와 충성은 두 가지 근본적 특성에서 비롯한다. 자산 소유와 소비의 공산주의에서 발생하는 ‘연대‘, 가정의 가장 강건한 구성원이 존경을 받는 ‘우월성‘이 그 두 가지다. 베버가 가정 공산주의를 언급하는 순간, 순수한 경제적 현상으로서의 가정 공산주의는 대체로 무시된다. 그것이 충성과 권위의 토대가 되긴 하지만, 그 충성과 권위를 구성하진 않는다. 즉 베버는 물리적 우월성에 내재한다고 생각한 권위를 상당히 의미있는 것으로 다룬다.

p. 257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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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러려고 같이읽기를 시작한거긴 하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의 독서후기를 보니 제 독서에 도움이 돼서 너무 좋네요. 언급하신 한나 아렌트 책은 제가 이미 읽은 책인데 전 참 좋았습니다. 등롱 님께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한 비판이 줄곧 나오지만 한나 아렌트다 싫어지기는 커녕 더 궁금해지는 책이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등롱 님!!

등롱 2022-01-31 23:45   좋아요 0 | URL
와 저 진짜 같이 읽기 너무 잘한 것 같아요 ^^ 이번에도 너무 좋은 독서였구, 어렵지만 이게 바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로구나 깨달으며 좁은 식견을 넓혔습니다. 이번달에도 다락방님의 상냥한 리더십에 힘입어 독서를 마칠 수 있었어요!!
너무 아는 게 없어서 사실 독후감 쓸 때마다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데요,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게 있는 거 같아서 걍 뒤죽박죽 짧은 소견이나마 독후감 쓰려고 노력하구 있어요 ㅎㅎ
한나 아렌트 책도 다락방님 말씀에 힘입어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기대가 됩니다^^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백인 중산층 여성들은 특권이 자유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은 생존자가 거의 없는 낯선 나라였다. 여성의 몸은 빈민가나 제3세계만큼이나 식민화 되어 있다. 그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여성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하고 행복한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448


미친 여자들은 정말로 미친 걸까?

정신병을 앓는 여자들은 정말로 정신병에 걸린 걸까?


서양의학이 어떤 질병을 이해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을 때 종종 그 질병을 단순히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하면서 그런 병의 존재를 부인해왔다는 사실이다.  - p.37


필리스 체슬러 자신도 스스로의 대표 저작이라고 꼽는 여성과 광기를 읽으면서 따라가면 왜 구성이 이렇게 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1부 제목은 광기, 2부 제목은 여성인데 1부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를 든 후 신화와 대표적으로 미쳤다고 평가된 여성 영웅에 대해 언급하고, 이후 정신병원과 질환, 치료사들에 대해서 범용적으로 다룬다. 2부에선 정신병원에 입원당했거나 치료받았던 여성들을 분류하고, 그들에 대해 다루며, 개인들과 진행했던 인터뷰 역시 담겨 있다. 


어떻게 사회와 치료사들이 손쉽게 미쳤다고 진단해버리거나 몰아붙여버렸는지, 혹은 실제로 미쳤다면 왜 미치게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내게 어둡던 길이 밝혀진 느낌이었다. 


전통적으로 우울증은 '이상적인' 자아의 상실, 애증의 대상의 상실이나 자기 인생의 '의미'의 상실에 대한 반응(상실에 대한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서, 외부로 향했어야 하거나 외부로 향할 수 있었던 적개심이 자신의 내부로 방향을 돌리게 되어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격성'보다는 우울증이 실망이나 상실에 대한 여성적 반응이다. 그런데 연구조사와 임상적 증거를 놓고 봤을 때 이러한 견해는 전체든 일부든 간에 논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우선 대부분의 여성이 어머니를 '상실했다' - 또는 한번도 진정으로 '가진' 적이 없었다 - 는 점에 주목하자. 여성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남편이나 연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단단한 '이상적' 자아를 발전시키는 여성은 거의 없다. 삶의 '의미'에 관심을 쏟는 일에 격려는 말할 것도 없고 허용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이 대다수다.(물론 많은 남성들도 그렇겠지만 확실히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렇다) 여성은 삶의 의미를 지탱하고 있는 실존적인 기반을 상실한다기보다 '여성'이라는 직업을 잃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그들이 결코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을 '상실할' 수 없다. 


여성은 그들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언제나 애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 대다수 여성들은 이러한 애도를 성적,육체적,지적인 활동을 통해 철학화하거나 무시해버리거나 화를 내 풀어버리지 못한다. p.163


그는 '가족병리학'이 혼란스러운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개인 행동의 이해 불가함을 집단의 이해 불가함으로까지 확장한다. 이제 이것은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다수의 개인들에게 적용된 생물학적인 유추이다. [...] 이것은 '범임상주의'의 한 형태인데 [...] 그런 임상주의에서 모든 사회는 심리적으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범임상주의의 위험은 가공할 낙관성에 있다. 토머스 사즈는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인 제국주의"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실제로 사회가 '치료를 필요로 할 수는 있겠지만, 통찰이 있건 없건 간에 개인의 자유라는 환상에 기초한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적 방법은 그와 같은 '치료'를 할 수 없다. 특히 주요한 사회제도가 전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더더욱 치료될 수 없다. 


위 구절은 이북으로 읽어서 페이지 수가 없다. (이북은 종이책과 비교했을 때 몇 페이지인지도 같이 병기를 해주면 좋겠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여성) 개인의 행동은 그 개인만의 행동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발견되는 것이며 결국 사회는 심리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임상주의를 가리켜서 '그 가공할 낙관성' 이라고 잘라 말하는 부분이 너무나 멋진 것이다. 

사회제도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는데 어떻게 치료하녜... 

저 절묘한 비꼼... 


하지만 이 책은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읽은 두 권의 책... 정확히는 대략 80%만 읽은 페미니즘의 투쟁과 어찌저찌 완독해낸 하나이지 않은 성에서 이해가 안되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관통하는 지점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나는 이전 두 권에서 몸에 대한 투쟁과 이론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당황스러웠고, 어딘가에서 몸을 다루는 게 필수적인 것 같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쭉 따라가다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이다. 


소규모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여성들의 성적 오르가슴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됐다. [...] 여성이 자기 몸을 인정하고 즐기는 것은 자기발전에 필수적이다. 미국의 기계적인 '성매매'나 남성 중심적인 그룹섹스나 프리섹스와 같은 환상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여성들이 완전한 섹슈얼리티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어머니들이 생산수단과 재생산수단을 통제해왔을 때라는 것이다.  [...]  여성의 성적인 오르가슴도 빈민가의 아침 식단도 그 자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첫걸음임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서야 몸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의 일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의 육체를 죄악시하고, 육체에서 나오는 욕망을 죄악시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음, 사실 신화 파트도... 뒤에서 계속해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소환하여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았다면 신화 파트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 2의 성을 읽을 때도 그랬다. 긴긴 신화들을 읽어가면서 뭔가 알 듯 말 듯한 걸 보니 나는 정말로 이해한 게 아니었고... 그러나 일단 읽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일단 읽어가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사업하는 여성으로서 나는 남자 동료나 고객과 스포츠클럽이나 동업자 모임이나 사창가나 남자들만 모이는 파티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와 유사하게 관여할 수 있는 여자 동료도 거의 없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제도를 즐길 만큼 사회화되어 있지 않다. - p. 495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공적인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며, 가치 있는 역할 모델도 거의 없다. '권력'과 '공적 행동'은 사실상 남성의 것이기에, 여성에게는 낯설다. - p.505


이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신화를 찾는 것은 가치 있는 역할 모델을 찾아내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동료를 찾고 경험을 찾기 위한 사회화의 일환이라는 걸 비로소 이렇게 구체적인 언급을 듣고서야 이해한 것.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깊이 몰입했다가 마지막 열 세 가지 질문을 읽었다. 출간된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 여전히 살아 숨쉬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루비 이든은 열일곱살 때 임신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이모는 그녀를 "헤픈 년"이라고 부르면서 그녀가 몰고 온 ‘소동‘과 ‘치욕‘을 비난하고 임신중절을 권유함으로써 괴로운 시련을 안겨주었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모성은 이런 방식으로 실체화되었다. 여기서 진지하게 묻고 있다. 육체가 그처럼 야만적으로 부정당할 때 여성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P233

일각에서는 남성 동성애를 서구 문화의 파수꾼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는 우리 문화가 반여성적이고 독선적이며 호전적임을 의미한다. - P362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흑인이자 여성은 폭력과 자기파괴와 편집증 사이를 끝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위치에 있다. 나는 흑인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증세를 연구했다. 흑인 여성은 흑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좋아하지 않고 백인 여성을 선호하며 돈이라고는 벌어오지 않고 아내나 흠씬 두들겨팬다는 점을 전 생애에 걸쳐 분명히 깨달았다. 흑인 남성은 딴 여자들과 놀아나지만 흑인 여성은 백인 남성으로부터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또한 분명히 알고 있었다. 흑인여성들의 눈에 백인 여성들은 굴러먹은 여자들이고 유치하며 부유하며 인종차별 적이다. [...] 흑인 여성은 강하지만 그들 역시 굴러먹었고 가난하고 인종차별적이고 백인 남성이나 ‘좋은‘ 흑인 남성을 얻는 데 목을 맨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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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31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저는 저 비꼼을 그냥 넘겨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데 등롱 님은 바로 딱 지적해주시니 같이 읽는 맛은 바로 이런데 있는가 봅니다. 저 혼자 읽기에도 좋은 책이지만 이렇게 다른 분들의 후기 읽다 보면 제가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게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책의 가치가 더 뛰는 것 같아요. 읽느라 고생하셨고 후기 쓰느라 애쓰셨어요. 책도 등롱 님의 후기도 읽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등롱 2021-12-31 22:19   좋아요 0 | URL
다른 분들의 인용을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시 읽는 묘미가 있습니다! 저도 다른분들 후기 찾아 읽으며 이리가레보다 후기가 많아서 즐거워요 ㅎㅎㅎ 여성과 광기 정말 너무 좋은 책이었어요…!! 잠시 쉬고, 이제 또 다음 책을 기대하면서 출발하겠습니다, 다음 책 남성됨과 정치도 너무 설레어요~~

- 2022-01-04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습니다! 굳이 다 찾아내서 읽는 중입니다 ^^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은 여성주의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입니다. 먼저는 육체와 이성의 이분법이 여남의 이분법 그대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겠지만, 저 스스로는 제 몸에 대한 통제권을 높여가는게 (그것이 운동이나 안전의 문제, 혹은 섹슈얼리티까지) 여성이자 인간으로서의 저를 좀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종종 또 같고 다른 책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

등롱 2022-01-04 11:49   좋아요 1 | URL
앗 공쟝쟝님 리뷰 저도 잘 읽었습니다~. 수줍어서 댓글을 안 달았는데,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몸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가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몇권째 읽으니까 비로소 몸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느낌이에요. 보봐르가 말했던 여성의 몸은 여성에게도 타자화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 읽기 너무 즐겁습니다, 또 책 후기 나눠보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