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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두가 잠든 밤, ,
한 여자가 카페에서 날을 샐 작정으로 책을 읽으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카하시라는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어둠의 시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1시 56분...
간만에 한번도 놓지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명성높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난 그의 작품을 단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었다.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다들 극찬을 하는가 궁금했는데,
심플하면서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상황전개가 나는 너무 맘에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글.. 그럼에도 주인공과 주변인의 치밀한 인과관계,
각기 다른 상황설정들이 오직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는,,
그러면서도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어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들...신선한 충격이다.
누구나 잠이 오지않는 밤에 창가에서 저멀리 비취는 반짝이는 네온싸인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잠이 들면 잠깐이라고 생각되는, 그렇지만 잠에 들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아주 길고 긴 밤시간들을 나 아닌 다른 누군가는 무얼하며 보낼까?
그냥 한번쯤의 생각으로 지나쳤을 수도 있는 하룻밤동안
주인공 마리는 여러사람을 만나게되고 여러사건을 접하게 된다.
자신과 나이가 같은(19세) 여자가 매춘을 하다 폭행당한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하고,
또다른 밤의 세계에서 쫓기듯 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인간적인 아픔을 느끼게 되며,
자신의 언니 에리를 비롯한 가족과의 추억을 돌아보게 되고,
우연한 만남으로 이루어진 디카하시와 친구든 연인이든
발전가능성을 찾는 의미있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평범한 마리와는 달리, 언니인 에리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모델이면서
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삶을 살고 있다.
책의 처음부터 끝날때까지 말 한마디없이 잠을 자고 있지만
벌써 2개월째 죽은 듯이 자고있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한편의 몰래카메라로 그녀의 자는 모습을 엿볼수 있다.
겉으로는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그녀도
사실은 남의 눈 때문에 자아를 실현할 수 없는,
현대사회가 주는 또하나의 말없는 폭력의 피해자로 그려진다.
중국 매춘부를 폭행한 바바리맨도 그놈이 무조건 나쁜놈이다라는 것 대신
컴퓨터 기술문명의 노예가 되어 무의식중에 폭력을 휘두르는 불쌍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알파빌 러브호텔, 침침한 형광등과 컴퓨터로 둘러싸인 사무실,
2개월째 잠만자는 에리의 방을 훔쳐보는듯한 시선에 같이 동참하면서
마리의 희망적인 대사에 공감을 얻을수 있게 된다.
밤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아침을 맞는 마리는
서로다른 삶 때문에 멀어졌던 언니 에리의 방에 들어가 에리를 꼭 껴안고 흘리는 눈물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다.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뿐이야
신문의 광고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화보나
만엔짜리 지폐다발이나 불에 태우면 모두 똑같은 종이조각일 뿐이지
만약 그런 연료가 내게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득한 옛날에
뚝 하고 두 동강이 나버렸을거야. -고로오기와 마리의 대화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