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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의 문제 ㅣ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어둠의 변호사’시리즈로 주목받았던, 국내에서는 드문 본격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의 신작 두 편이 새 캐릭터와 함께 나왔습니다. 이번의 주인공은 김진구라는 20대 백수 청년으로, 그는 대학도 고등학교도 중퇴했으며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죠. 그리고 탐정 캐릭터로서는 드물게 도덕에 대한 관념이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한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순서의 문제>는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자 첫 번째 단편입니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진구는 묘한 손님을 맞이합니다. 원주에 가서 전화 한통만 해주면 50만 원을 주겠다는 겁니다. 나중에 진구는 그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직접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대모산이 너무 멀다>는,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 해리 케멜먼의 <9마일은 너무 멀다>의 오마주적인 작품입니다. 진구에게 여자친구인 해미가 찾아와 지하철에서 본 수상한 남자 이야기를 하자, 진구는 그 이야기만 듣고도 그가 누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냅니다.
<막간: 마추피추의 꿈>은 추리퀴즈와 같은 형식으로, 제목 그대로 막간의 휴식 같은 작품입니다. 진구는 해미와 페루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진구가 공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해미만 혼자 가게 되죠, 그런데 해미가 페루에 도착하니 진구가 맞이해 줍니다. 과연 진구는 어떻게 해미보다 먼저 도착했을지 알아맞히는 재미도 있습니다.
<티켓다방의 비밀>은 중편입니다. 진구는 해미의 먼 친척이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그 유족이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됩니다. 진구는 법 지식을 총동원하는 동시에 그의 주변에서 있었던 기이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 나갑니다. 중간중간의 반전이 돋보입니다.
<신 노란 방의 비밀>은,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소녀. 하지만 그 소녀는 납치된 장소를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소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노란 방’뿐인데요. 과연 그 소녀의 기억 속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요?
<뮤즈의 게시>는 진구와 해미가 법정에 증인으로 서서 피고인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진구는 그 사건에 이상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건을 직접 조사하기 시작하죠, 특히 저자의 다른 시리즈 주인공인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특별출연하니 고진 팬들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알리바이 트릭과 법정 장면 묘사가 돋보입니다.
<환기통>은 이 단편집 중 극중 시간으로는 가장 오래된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도서물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환기통에 숨어든 도둑이 경비원과 환기통에서 맞닥뜨리며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경비원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지만 도둑은 무죄를 주장하게 되죠. 이 사건과 동시에 진구와 해미의 첫 만남 이야기도 덤으로 그려집니다.
한국 본격 추리문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도진기 작가님의 작품인 만큼, 단편집도 장편도 추리소설적 재미가 충분하며 진구라는 캐릭터도 돈만 아는 것 같지만 의외로 매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가끔 보면 해미를 끔찍이 아끼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고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모산은 너무 멀다>는 어림짐작의 도가 조금 지나치며, <뮤즈의 게시> 등도 트릭에서 조금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구의 활약이 고진 변호사의 활약 못지않게 기대되는군요. 다음번에는 진구의 라이벌 캐릭터, 혹은 진구의 과거 등이 더 자세히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