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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쓱이와 싹싹이
오세나 지음 / 달그림 / 2025년 5월
평점 :

이 책은 아주 크지도 아주 작지도 않은 판형을 가지고 있어요. 요즘 어린이들의 교과서보다 조금 작달까요? 그리고 겉표지의 질감이 독특합니다. 만지면 오돌토돌 질감이 느껴져요. 사실 때가 탈까봐 걱정이 되는 소재이기도 한데요, 왜 이런 표지의 질감을 선택하셨을까 궁금증을 가지며 첫 장을 넘겨 봅니다.

쓱쓱이 필통 속 보라색 싸인펜이 잔뜩 화가 났습니다. 싹싹이가 쓱쓱이 콧구멍이 크다고 놀렸대요. 화가 날 만한 상황인데, 조금 더 살펴보니 쓱쓱이도 좀 놀리긴 놀렸나 봅니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은 일방적인 경우는 잘 없지요. 처음에는 장난이었다가, 점점 강도가 세어지다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아무튼 보라색 싸인펜과 지구개는 불을 뿜을 정도로 화가 났고, 파란 연필은 진정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잽싸게 연필로 무언가를 지웠어요.
화가 풀리지 않은 지우개는 연필에게 지우지 말라며, 까맣게 칠해진 종이 위를 달립니다.
그러다가.... 엇?!
쓱쓱이의 지우개 끝이 떨어져나가 싹싹이가 됩니다. 저는 이런 연출이 참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자신의 속상한 감정에 매몰되어 종이에 화풀이를 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상대편 친구의 마음도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거죠. (이래서 열받는 순간 바로 화를 폭발하면 안되나 봅니다.. ^^;;) 
그리고 이 둘의 지우개가 지나가는 길에 남은 지우개 가루들이 만드는 표정들도 흥미롭습니다. 종알종알 따지고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 처음 마음 속에 생겼던 표정들이 떠오르거든요.
이렇게 쓱쓱이 지우개와 싹싹이 지우개는 연필이 새까맣게 칠한 종이 위를 함께 달리며, 새까맣게 탄 마음도 조금씩 지워 갑니다.
"니가 먼저 내 콧구멍이 크다고 놀렸잖아. 내 콧구멍이 어디가 어때서?"
"놀린 거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뭐가 작다고 그래? 너랑 별 차이도 없구만."
"넌 사실 아주 쬐끔 작긴 하지."
"뭐라고? 그래서 진짜 계속 놀릴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아이들 싸움은 부부싸움보다 더한 '칼로 물베기'입니다. <쓱쓱이와 싹싹이>는 작은 일에 싸움이 생기고 또 정말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이 풀리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그림책이었어요. 이 책 어디에도 '좋은 방법'이나 '옳은 방법'을 알려주는 어른은 없습니다. 이런 일에 어른까지 등장할 필요가 없는거죠.
최근 초등학교에서 발생하는 학교 폭력의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고 치유해나갈 수 있는 갈등에 어른이 개입하면서 갈등의 골이 심각하게 깊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는 타인과 살아가면서 평생동안 수많은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 모든 갈등 상황을 안전하게 겪고 해결하고, 때론 좌절도 해볼 수 있는 때가 바로 어린 시절, 학교 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다져갈 수 있는 힘을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못 믿으시겠다구요? 그럼 아이와 함께 <쓱쓱이와 싹싹이> 읽어 보시길 강력 추천 드립니다!
* 제이포럼을 통해 당첨된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