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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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들렸다가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를 집어들었다. 갖고 있는 만화책이라곤 허영만의 '꼴'이 다인 내게 그의 책은 또 무슨 얘길 던져줄까.

 

삼분의 일쯤 읽었을까. 박재동 화백이 무언가 보면 그리고 싶은 것처럼, 난 이 책에 대해 뭔가 쓰고 싶다는 갈망이 쏟구쳤다. 좋은 걸 나누고픈 마음. 그게 '예술'의 시작은 아닐까.

 

노래는 부르면서 왜 그림은 안 그릴까

만화가 박재동이 묻는다. 12년 동안 미술교육 받고 막상 졸업하면 왜 사람들은 그림은 그리지 않을까? 노래는 노래방에서도 부르면서. 그의 대답은 '크기' 도화지의 표준사이즈가 너무 부담이 돼서. 그리하여 그가 시도하는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시작됐다. 2003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수천 점에서 200작품을 추렸다고 한다. <박재동의 그림일기>쯤 되겠다.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소중해지고 꽃을 그리면 꽃이 소중해지고

 돌멩이를 그리면 돌멩이가 소중해진다.

<박재동 화백이 그림 그리는 이유>

 

예술의 본질은 혼자 보고 느낀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을' 나누는 것

그에게 예술은 대상의 소중함을 나누는 것이라 한다.  나는 예술하는 사람들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표현방법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다른 이와 나누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그들이 '예술가'다. 그래서 누군가는 어느 순간 '글'을 쓰고파 안달이고 누군가는 '사진을' 누군가는 '그림을'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닐까. 당신은 언어 말고 어떤 표현방식을 갖고 있는가. 그대가 대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나누려는 방식은 무엇인가.

 

현실보다 리얼한 '동시대 사람'과 '세상'에 대한 희망과 소망

책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과 사색으로 시작된다.  배고픔, 게으름, 늦은 밤 잠못드는 자신, 전철에서 서서 계속 그릴까. 타협하고 앉아버릴까 하는 등의 갈등 하는... 그리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내 마음'이라는 게 내 것만이 아닌 나로 인해 생긴 모든 사람들의 종합체가 결국 내 마음'이라는. '우주적인 발상'을 하는 만화가다. 5부로 이뤄졌는데 가장 내 마음을 끄는 건 '손바닥 만인화'의 인물들. '전 국민의 캐릭터화'를 외치는 그의 야심찬 계획은  대상을 향한 '마음'이었다. 학교가는 게 재미가 없다는 초등학생, 대형마트가 들어와 문을 닫은 슈퍼집 주인, 결혼한 지 1년된 새색시가 심장마비로 저세상을 뜬 스파게티집 여주인, 어렸을 때 꿈도 희망도 있었을 노숙자, 과일집하며 동생집을 사주고 본인은 아직 싱글인 아저씨...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실사보다 더 리얼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유독 지난 시대를 표현하는데만 애니메이션이 리얼한 것이 아니다. 복잡미묘한 인물의 느낌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과장해서 표현하므로서 무딘 사람도 쉽게 그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한다고나 할까? 찰나의 시간을 멈추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고 충분히 느끼게 해 주니 더할나위 없이 리얼한 것이다.

 

감동적인 '당신도 어렸을 때' / 웃음을 준 '원칙의 승리'

그의 예술은 그리는 데에서만 멈추지 않고 세상을 따뜻하게 할 소망을 담겼다.

 

 '직업에 귀천이 어찌 있으리. 나는 그 일의 목적과 내면의 기쁨이 척도가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감사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이 그의 그림에서 느껴진다.

<박재동 화백의 손바닥 아트>는 '인물'이 아닌 동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한 사람'을 찬찬히 만날 수 있게 했다.

한국 중년 남자의 얼굴은 어떠한지, 세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의 어떠한지 말이다.

 

그가 새롭게 시도한 '찌라시 아트' 그러니까 매출표나, 광고지 등에 그림과 글을 덧입힌 작품들도 색다름을 선사한다.

 

배움과 새로움이 있으면 청춘, 없으면 늙은이

75세에 그림을 시작한 한숙자 할머니가 두번째 개인전을 열었다고 한다.  백발의 할머니가 햇살을 마주하고 그림 그리는 풍경이라 상상만으로도 멋질 것 같다.나도 언젠간 그림을 그릴 터인데(지금처럼 회의시간이 지루하다고 그리는 그런 그림 말구), 아마도 사람들이 노래는 부르면서 그림을 안 그리는 이유는 노래부르는 건 '노는 것'데 '그림'은 '노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노래는 한 곡에 3분이면 되지만, 그림은 시간도 더 들 것 같고 기술도 필요할 것 같구 말이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그림' 볼 시간이나 기회가 적다. 이렇게 그리는 즐거움이 버겁다면 보는 즐거움부터 느껴보는 건 어떠한가. 배움과 새로움의 가까운 창구 '책'이 있다. 그대가 '배움'과 '새로움'이 깃드는 늘 청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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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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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만난 건 1년 전쯤. 

내 손으로 회사 미니 도서관에 데려다 놓곤 잊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았다는 조카네 집에서  

잊고 있었던 '그'를 떠올리며 '그'를 집어 들었다.  

책 제목처럼 때때로 맘 속에 일렁이는 '끌림'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언어는 때때로 '시' 같고, 어느땐 '일기' 같고 

또 어떤 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중얼거림 같았다. 

그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사랑에 시간에 필요한 것처럼'  


 

<끌림>은 시인이자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구성작가였던 이병률이  

1994년부터 2005년 초까지 50여 개국,  

200여 나라를 돌며 남긴 순간순간의 기록이다. 

사람, 삶, 여행, 사랑, 이별 그리고 때때로 죽음. 

그의 기록엔 세상에 없는 것 빼고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의 글은 '투성이'이다. 끌리는 것, 끌리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 투성이.


   

그저 그런 것들 소위 '시시한 것'들 사이의 특별함도 

이끌어 내 '툭' 내던지는 말투 

그의 언어에는 거침없는 바람이 느껴진다.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될 만큼 압축된 짧은 사연들로 이뤄진 것도. 

한장의 사진에도 많은 사연이 읽혀지는 것도 

어떤 사진 속에서도 삶에 대한 따뜻한 색감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그가 가진 장점이다.


 낡은 옷을 싸들고 여행가서 마지막인 듯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해.  

한번만 입고 버려야지 하지만 계속 빨고 있는 나와 그 빨래가 마르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마른 옷을 입을 때 확인되는 구멍과 삭은 천이 스르르 찢어지는 그 소리를 좋아해 

- 이야기. 마흔 하나 



 



 전혀 다른 색감, 구조, 질감을 가진 두 사진이  

한면에 배치되어 가져다 주는 일상의 느낌은 

삶의 드라마틱한 면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별책부록처럼 삽입된 사진에 대한 '카메라 노트'도 빼놓을 수 없는 읽을 거리 



 

 잘 표현하는 사람. 특히,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상처때문에 떠난다는 그가 말한다. 

"이 책은 뭔가 끊임없이 닥치고 그 닥치는 일을 잘 맞고 헤치고 그러다 다시 

처음인 듯 끌리고 하는 게 인생길인 것 같아 인생을 통째로 느끼고 싶어 떠나 이룬 책, 

그 느낌을 전하고 싶었고 내 길에 당신도 함께 가줬으면 한다"
 

'좋아하는 게 뭐에요?' 

사랑하기 시작할 때 묻게 되는 질문에 

답을 하듯이 온통 좋아하는 것 투성이인 그와의 만남 내내 

 '자꾸 무언가 옷깃을 잡아당기는 기분'이 든다. 

이것이 그가 말한 '끌림'인가. 

 

 책을 덮고나니,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발견한 기분이다. 

내 삶을 지금껏 이끌어온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색 여행을 떠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두근거리는 벗 <끌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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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마인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퓨처 마인드
리처드 왓슨 지음, 이진원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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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 밀란 쿤데라


 

서울 출장길에 네비 터치가 고장나 1시간 가량을 헤매고 다녔다. 인터뷰이는 기다리고.. 길은 모르겠고... 3G도 안터지고 폭발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네비가 등장하기 전 시대에는 어떻게든 다녔을텐데..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악몽같았고 뇌의 퇴화를 실감한 순간.  <퓨쳐 마인드>가 생각났다. 기계가 제기능을 못하는 날, 우리는 멍청이가 됐다는 걸 느낄 것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소셜 웹이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문제는 그것의 부정적인 면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거나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이전의 시대에 우리가 가졌던 장점, 특히 인간만의 고유영역 ‘사고’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퓨처 마인드>는 디지털시대에 일어나고 또 일어날 일들을 통해 우리 사고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스크린에이저의 출현, 문화와 사고가 바뀌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매달린 젊은이를 일컫는 ‘스크린에이저’의 출현은 ‘지금 당장 접속’이라는 조바심뿐만 아니라, 혼자 조용히 놀거나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능력을 잃어가게 하고 있다. 그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다. 멀티태스킹과 개인화된 경험을 선호하고 문자보다 이미지에 집중한다. 정보흐름에 극도로 민감하여 사실을 찾아내는데 뛰어나지만, 포괄적 맥락과 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건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적 무기력은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한 가지에 장시간 집중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일회성 세계에 살고 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디지털의 방해, 바빠진 생활에 짧아진 의사결정은 잦은 실수를 낳고 있다. 바쁜 생활은 스스로에게 심도있고 난해한 질문을 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웹서핑은 두뇌를 정체되게 하며, 과도한 정보량으로 정신은 교착상태나 벽을 만들어 낸다. 

한때, 피아노나 건축, 라디오도 TV처럼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한데 모이게 했지만, 지금 이런 것들은 사라졌거나 개인의 경험으로 바꿔주는 개인화기기에 의해 대체 됐다.  

미래세계, ‘깊은 사고’까지 대체 가능한가

기계를 활용한 남의 생각 읽기, 훔치기, 바꾸기까지 가능한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는 ‘경험’과 ‘자아의식’에 의존한다. 인간만이 감정적인 것에 기초한 경험을 연결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어떠한 영역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 과학자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기계와 기술의 발명이 또 무엇을 파괴하는지도 생각해 볼 때다. 

우리가 미래에 습득해야 할 한가지 기술은 지식을 감지하거나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상호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 또한 빠르게 사라지고 마는 전문적 기술 지식이 아닌 창의력과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기 위한 혼합형 사고다. 

 ‘깊은 사고’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멈춤'과 '비움'
깊은 사고는 변화의 원동력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준다. 또한, 개인에게 만족을 주고 스스로를 인간답게 느끼도록 해 준다.  

컴퓨터나 자판을 치거나 TV를 볼 때 ‘깊은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손으로 쓴 편지에 대한 설문 응답률이 74%나 된 이유는 무엇일까.  

종이는 픽셀보다 더 큰 감각적 자극을 준다. 감각적 자극이 부족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기억과 사고도 나쁜 영향을 받는다. 물리적 정보는 눈에 더 편하게 들어오며, 저렴하고 배포하기 쉬워 환경에도 기여한다. 깊은 사고를 위해 '종이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깊은 사고는 '감정적 경험'을 동반한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물리적 경험이 필요하다.

백일몽은 경험을 연결시키는 힘을 지녔고 음악 듣기는 기억을 돕는 힘을 가졌다. 거대한 시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볼 때 시각에 변화가 생기는 조망효과는 깊은 사고에 큰 도움을 준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생각이 대부분 직장 밖에서 나오는 것을 생각할 때  ‘조용한 머무름’과 '비움', ‘낯선 공간’을 통해 새로운 신경회로를 개발해야 한다.  

쉬운 선택, 그로 인해 얻게될 최종 결과는 무엇인가 
인간의 뇌는 고정돼지 않은 가장 유연한 것이다. 모든 것을 기록할 만큼 외부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퓨처 마인드>를 통해 미래세상에 대한 예언들과 이미 변화된 우리의 문화와 사고를 살펴볼 일이다.  

사용의 편리함이 인간의 사고를 퇴보시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미 쉬운 것에 길들여져 있고 바쁘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 필요한 깊은 사고, 인간이게 하는 사고를 위해 쉽고 편한 것을 포기할 용기가 있는가. 

쉽고 편리한 것이 인간의 진보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발명 이후에 우연히 파괴되는 가장 인간적인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 사람이 우선시되는 시간과 공간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발전시킬 깊은 사고를 위해 당신은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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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혁명 -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데이비드 오렐 지음, 김원기 옮김, 우석훈 해제 / 행성B(행성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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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자원은 유한하다. 그래서 합리적 선택이 필요하고 그걸 도울 학문이 경제학이다. 좋은 시절과 편안한 삶을 약속해줄 것 같았던 과학이라 불리는 경제학. 그러나 불행히도 과거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고 있지만 더 신명 나는 건 없다. 자원분배는 오히려 극과 극이고 오히려 점점 불행해 진다.   


그렇다. 불행히도 시장모드 고수는 행복에 도움되지 않았다.   


행복을 최적화하는 경제기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지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조건적인 성장은 우리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점점 고립시킨다.   


무엇이 문제일가?   


<경제학 혁명> 원제 ‘경제학이 범하는 10가지 오류’의 저자 데이비드 오렐은 모든 것을 “주류 경제학”의 탓이라고 말한다. 단 1%만 예측하는 예측불가능한 경제학은 결코 정의로운 다수를 위한 좋은 경제학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학의 근본적인 가정과 전제들 10가지를 지적하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도 절대 다수를 풍요롭게 하지도 못하는 주류경제학을 폐기하고 신 세계관의 경제학을 일으키라 말한다.   


또한, 경제학의 기본가정 뿐만 아니라 객관적 수학적 원리를 사랑하는 과학주의적 성향,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투자자 선호 성향 등 이론의 전반적인 성격도 잘못되었다고 한다. 다양성이 확대되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는데 아직도 균형과 중용을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에 필요한 것은 '균형'이 아니라 '변화가 정상인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잘못된 전제 10가지는 경제 주체는 서로 영향받지 않는 독립적 개인이다. 경제는 위험 통계를 이용 조절할 수 있다. 경제는 안정적, 합리적, 효율적 중립적, 공정하고, 경제적 성장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고, 경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항상 좋은 것 등이다.   


주류 경제학이 말하는 “모든 건 잘 될 테니 시장에 맡겨. 아무 것도 바꾸지 마” 라는 건 한낱 보수주의 정책이라는 것. 150년간 지속되었지만, 권력과 미래 포함시키지 못하는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이 더 지속된다면 재앙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또한 이렇게 존속된 이유도 과학적이 아니라 다른 어떤 목적에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주류 경제학을 대체할 좋은 경제, 정의로운 경제학은 무엇일까.      


그는, 네트웍 같은 수학의 새로운 영역, 생태주의나 여성주의 같은 사회운동, 윤리학 같은 오랜 전통들이 어떻게 경제를 더 낫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형성하는지 관찰하고 설명해 주고 있다.    

한 일례로 시카고 한 헤지펀드 연구소 전체 펀드 여성이 담당하는 금액 총량 3%임에도 신용위기 당시 남성들 실적 비교하면 하락폭이 절반이고 10년간 남성동료보다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2008년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주류경제학에 대한 불신. 미국 국채 신용등급 강등에다 유럽 디폴트 위험까지. 불안한 경제시장이 지속되고 있다.    

복잡계 과학의 통찰을  무기삼아 기존 경제학을 타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1%만 예측하는 예측이 어려운 경제가 아니라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경제와 세계에 그 문제와 이유를 제기할 때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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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Silence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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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나는 영화<도가니> 관람을 망설였다.  

 

‘아동 성폭행’의 소재가 주는 감당하지 못할 좋지 않은 기분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다.

늘 좋은 것만 보고 듣고 하려는 나의 편협함과 마주한 순간,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에마음을 내 보았다.  

 

한줄 뉴스거리에 불과한 이야기들은 ‘영화’라는 극적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시킨다. 다른 어느 것보다 영화<도가니>는 탄탄한 원작과 절제된 연출, 특히 사건 발생보다 사건 해결과정의 모습을 한걸음 물러나 보여주며 현 사회의 진실과 마주하게 했다. (참고는 나는 소설<도가니>를 읽지 않았다.)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신문기사 한 줄이었다고 밝힌 공지영 작가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한 줄의 글이 자신을 ‘점령했다’고 말했다. 믿기 힘든 실제 사건 앞에서 공지영 작가는 그 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접고 ‘도가니’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약점을 가진 자, 표적이 되는 사회

영화 <도가니>에는 다양한 약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적장애, 신체적 장애, 과거 도둑의 전과가 있어 취직을 못하는, 아픈 가족이 있는, 부모가 없는, 돈이 없어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이들은 누군가에게 가해의 대상이 되고 무엇보다 ‘말’이라는 표현도 억압당한다.  

 

고아, 여자,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지적장애를 가진...게다가 8살 어린...  

영화를 보는 내 들끓는 분노를 어찌할 바를 몰라 답답한 가슴에 자주 한숨을 쉬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마지막 보류가 되어야 할 학교, 교육청, 경찰, 법원, 변호사, 판사..그 모두가 그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왜 힘있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방패가 되지 못하는가. 그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인데...  

 

돈과 권력, 종교가 방패가 되는 사회
인상 깊었던 연출과 편집 장면이 있다. 초반 두려움에 떠는 말 못하는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공유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순간. 나는 앞으로 한줄 뉴스에서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 <도가니>는 우리 사회에 매 순간 자행되고 있는 그간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이 어떻게 힘없는 약자들을 짓밟고 있는지 관찰자 강인호를 통해 묵묵히 그려내고 있다. 안타까운 건 약자의 방패는 법도 아닌, 오직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또 한명의 약자였다는 것이다.  

무지랭이 엄마도 느끼는 측은지심

인상 깊었던 연출과 편집 장면이 있다. 초반 두려움에 떠는 말 못하는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공유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순간. 나는 앞으로 한줄 뉴스에서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난의 흙이 굴러 떨어지며 공유가 약자의 방패가 되기로 한 순간도 잊혀지지 않는다. 촬영된 카메라에 찍힌 이와 보는 이 교차 편집은 영화<도가니>를 통해 영화를 접한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나를 뭉클하게 했던 것은 무지랭이 엄마의 변화이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이 오직 자식 걱정만 하던 무지랭이 엄마도 느끼는 측은지심을 나도 관객들도 느끼고 있었다.  

 

언론, 소설, 영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권단체 간사인 유진(정유미)은 ‘우리는 지금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상이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짓밟히지 않기 위한 일, 그들이 삶을 등지지 않기 위한, 생존을 위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리도 내지 못하는, 듣지도 못하는 이들이 전경들에게 찍히고 끌려가고 물폭탄에 쓰러져갈 때, 멀찌감치 구경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 진실을 외면하고 남의 일이라고 구경꾼으로 살아온 우리다.

진실이, 외침이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온다. 진정성 있는 언론을 통해, 작가의 소설, 배우, 감독의 영화를 통해.  

분노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이 바쁘다. 우린 이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글로 시작한다. 영화 한편으로 한번 들끓고 말 <도가니>가 되어선 안된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 행동의몫은 이 영화를 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돈을 벌어들일 제작사가 큰 힘을 보태면 좋겠다. 이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 변호사, 교육관계자.. 보호해야 할 의무, 제대로 일해야 할 의무를 져버린 간접적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용서를 빌고 세상밖으로 진실을 말해주길 바란다.  

 

지금, '안개 속 무진'이 당신들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민수입니다' 또 한명의 공유, 나도 피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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