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 대사가 바라본 튀르키예의 과거와 현재
조윤수 지음 / 대부등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튀르키예의 역사에 관한 책을 몇권 읽어 보았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지나치게 학술적인면에 치우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너무도 학술적인 깊이가 없는 책도 있었다. 대사가 바라본 튀르키예의 모습은 어떠할까? 너무 학술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재미와 깊이를 안겨줄 수 있을까?


  이 책은 두장으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장은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이라는 제목으로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600년 오스만 제국의 빛나는 영광과 유럽의 병자로 쇠락해가는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11개 주제로 구성했다.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정복자 메흐메트 2세와 셀림 1세의 잔혹성이다. 유교의 왕도정치를 강조하는 우리의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들은 너무도 잔혹하다. 술탄이 된자는 형제를 죽였다. 심지어는 조카까지 죽인자들도 있다. 세조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되었고, 사육신 사건 이후에 단종을 죽인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유교적 왕도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있어서는 있어서는 안될 폐륜적 행태가 계유정난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역사 속의 비극은 오스만 제국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폐륜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다.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는 아버지 베아지드 2세를 내쫓고 아버지 베아지드 2세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낙향하는 길에 죽었다. 아마도 셀림 1세의 명령으로 독살된 것으로 추청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내쫓고, 독살로 생을 마감하게한다는 것은 유교적 관점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폐륜중에서도 아주 극악한 폐륜이다. 

  유교가 망해야 조선이 산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한때 그러한 생각을 했다. 완고한 노인들이 자신의 보수성을 유교로 합리화했다. 그런데, 세계의 역사를 살피면서 우리의 역사가 타국에 비해서 잔혹하지 않은 이유는 유교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폭군이 등극했다할지라도 신하들은 백성을 하늘로 여겨야한다며 군주에게 간언했다. 연산군에게 목숨을 걸고 간언한 내시 김처선은 연산군에 의해서 액사했다. 예전에는 문약한 붓의 문화를 가진 조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바라보며, 강한 칼 문화의 잔혹성을 보면서 부드러운 붓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두번째 장은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에르도안이라는 두명의 정치인을 통해서 튀르키예 공화국를 바라보고 있다. 저자 조윤수가 대사 출신이다보니, 튀르키예의 과거 역사보다는 현재의 역사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오스만 제국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질뻔한 오스만 제국을 그가 살려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설했다. 이슬람교와 현실 정치를 분리시키고 서구화 개혁을 추진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서아시아 지역에서 그래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 튀르키예를 건설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그를 가슴 깊이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역사에 비유한다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쳐 놓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건설해 놓은 튀르키예 공화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에르도안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 권력에 오른 것은 이명박과 비슷하다. 이명박은 서울시를 하느님에게 봉헌한다는 말을 하여 빈축을 산적이 있다.(이명박 시장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그리고 그의 대통령 재임 시기에 다스 실소유주 논란을 시작으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자원외교 비리 등등 수많은 구설수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는 정권에서 물러나고 몇년 후에 감옥에 갔다. 

  에르도안은 이명박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장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총리가 되어 튀르키예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정체체제를 바꾸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다. 20여년이라는 장기간 권력을 장악한 그를 보며 이명박 보다는 성공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에르도안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만들어 놓은 튀르키예 공화국를 뒤집어 엎기 시작했다. 우선, 아타튀르크가 중요시한 정교분리에 손을 데기 시작했다. 이슬람교의 영향력을 다시 강화시키고, 박물관으로 쓰이던 성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어 이슬람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아타튀르크의 서구중심 외교에서 탈피해서 이란과 러시아에 무게 중심을 둔 외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행보를 보면 그는 술탄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한다. 이승만, 박정희와 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에르도안이 현명한 처신을 하길 바란다. 


  과거의 화려한 역사에 매몰된다면 역사를 발전할 수없다. 오스만 제국의 화려한 역사를 부활하려는 에르도안! 그러나 그는 정교일치의 오스만 제국의로 돌아간다면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튀르키예 공화국은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 오늘의 튀르키예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오스만 제국이 600년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핵심적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야한다. 능력 있는 자가 술탄이 되었으며, 종교적 관용정책을 실시하여 탁월한 인재를 선발했다는 오스만 제국의 장점을 오늘날 튀르키예 공화국에 적용할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튀르키예 사회를 옥죄로한다면 영광의 오스만 역사를 재현하기 보다는 유럽의 병자를 부활시킬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10-01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튀르키예의 미래 발전 열쇠를 에르도안에게 맡긴 국민들은 과연 만족하고 있을까요?

강나루 2023-10-08 10:32   좋아요 0 | URL
윤통에게 미래를 맡긴 우리와 비슷하겠죠.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0-01 0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말씀 해주신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보면서 모든게 일장일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예약주문


  당신에게 이 일을 왜하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할까? 지금 당장 돈벌이가 되지도 않으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일을 당신은 하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면서 '이 일을 누군가는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뭉우리돌의 바다'는 바로 김동우 라는 우직한 사진작가가 값진 땀방울로 찍은 주옥같은 사진들의 모움이다. 단순히 사진만 모으지 않았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사진에 글을 더했다. 김동우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 속에서 애절하게 불타오르는 뜨거움을 느낀다. 


  책은 인도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독립 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땅이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한국광복군의 흔적을 발견한다. 델리 레드 포트, 그곳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지이다. 낯선 곳에서 발견한 광복군의 흔적을 발견한 김동우 작가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와 독립운동 후손을 찾아다니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은 웅장한 사진과 심금을 울리는 글로 기록되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전에는 문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역사 기록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상과 소리,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김동우 작가는 글과 사진으로 잊혀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는 마음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녹아있다. 


  "이렇듯 사는 타인을 울려 슬픔을 퍼트렸고 생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쓰면서 다른 얼굴을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52쪽)


  1905년 4월 제물포를 출발한 영국 상선 '샌 일포드'호는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멕시코로 향했다. 바로 그 배위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김동우 작가는 그 장면을 아이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김동우 작가의 웅장한 사진들 감상하며, 그 사진속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심금을 울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인이라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예 같은 처우를 받으며 임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독립운동에 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독립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3.1혁명에 만세시위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대한사람이면 당연해 해야할 일이지. 그것이 독립운동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중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보훈혜택을 받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 이렇듯, 우리 한인에게 독립운동은 당연한 것이다. 물고기가 물에 대해서 말할 수 없듯이,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이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몰랐다. 

  멕시코에 이민 온 1000여명 중에 200여명의 대한 제국 군인 출신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한다. 1909년 숭무학교를 세워 군사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18명의 생도를 배출한다. 그들을 장차 연해주로 보내 무장 독립 전쟁에 나서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면서 숭무학교는 문을 닫는다. 

  숭무학교가 문을 닫는 것 보다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한 사건이 발생했다. 1916년 숭무학교 교장 이근영은 황민주, 이정구 등과 메리다에 나타난다. 그들은 과테말라 혁명에 참전할 용병을 모집했다. 고용금은 미화 5원이지만 승전 시 미화 300만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황민주, 이정구가 혁명군에게 받은 고용금을 가로채 도망가고, 이근영도 종적을 감춘다. 동포 청년을 혁명군에 팔아넘기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때 영웅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한 마음을 일평생 간직하기는 힘들다. 돈 때문에 30여명의 한인 청년을 총알이 빗발치는 밀림 속으로 팔어버린 그들의 파렴치함에 손이 떨려온다. 

  한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멕시코에서 쿠바로 떠난다. 그러나, 쿠바에서의 삶도 녹녹치 않았다. 쿠바 한인이 겪은 고통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이어진다.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된 한인들은 유치장에 갖힌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을 되찾길 바라는 한인들을 이용한다면 태평양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한인을 일본인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했다. 그랬다. 조국이 바로서야 재외 동포들도 바로 설 수 있었다. 조국이 식민지가 되어 재외 한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기에 타국을 떠도는 한인들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굳게 뻗은 뿌리가 되지 못한다면 줄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동우 작가는 미국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편이다. 많은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민을 갔다.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 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 그런데, 뉴욕한인 교회에서 김명래 라는 장철우 목사의 사모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다!! 

  무슨 우여곡절이 있기에 이 먼 미국 땅에 살고 계신걸까? 팔순의 이춘덕 여사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청산리 전투 마지막 생존자 이우석이다. 북로군정서 분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이우석은 해방 직후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엿장수, 장난감장수, 지게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아내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들은 코미디언 이주일이 그를 양아버지로 모시기도했단다. 김동우 작가를 만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까지와 자식한테 얹혀사는 삶이 너무 초라해요.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가족에게 남긴 게 도대체 뭐냐고요.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어요.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닌가 봐요."-424쪽


  독립 유공자 혜택은 배다른 남동생이 받아갔다. 자신은 '자식한테 얹혀사는 삶'이라 너무도 세상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사진작가 김동우에게 한풀이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뒤틀린 우리 현대사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친일파들이 자신의 친일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친일을 미화한다. 더 나아가서 토착왜구들은 독립운동가를 우롱하며 노골적인 친일을 한다. 이렇게 뒤틀린 우리 현대사 속에서 그녀의 한풀이는 이땅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모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한풀이가 아니었을까?


  '뭉우리돌'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을 뜻한다. 백범일지에 일본순사가 '지주가 밭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라는 말에 백범은 뭉우리돌의 정신을 품고 살겠다고 다짐하셨다. 저자 김동우도 백범의 뭉우리돌 정신을 품으며 독립운동 현장을 누볐다. 잊혀져서는 안될, 반드시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뭉우리돌들을 찾아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책의 사진을 통해서, 이 책의 글을 통해서 우리도 백범이 품었던 뭉우리돌 정신을 품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예약주문


이렇듯 사는 타인을 울려 슬픔을 퍼트렸고생은 자신을 울려기쁨을 나누게 했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쓰면서 다른 얼굴을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 - P52

영국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며 악전고투하게 된다.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3월 13일 전원 철수 명령이 하달된다. 일단 임팔로 퇴각해 전열을 정비하란 명령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후퇴를 해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퇴로가 차단된 것으로 본 것이다.
자칫 부대를 잘못 움직였다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영국군 17사단은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돼버린다.
이때 인면전구공작대 문용국 부대장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노획한 일본군 작전 문서 등을 세밀히 판독하고, 포로 심문 등을 통해 일본군 병력 배치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문 부대장의 분석대로라면 일본군 포위 병력은 예상보다 적어야 맞았다. 정보 분석결과가 사단장에게 즉각 보고된다. 곧바로 철수방향이 하달된다.
17사단은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뚫고 티딤에서 임팔까지 180킬로미터를 퇴각해 4월 2일 전원 무사 귀환한다. 이 직후 영국군 사단장이 직접 문 부대장을 찾아 노고를 치하한다.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적 선무 방송을 펼치는 과정에서일본군 장교 등 30여 명이 귀순했단 내용도 있다.  - P34

내가 그 사람을 쓴 것은 다름 아니라 금일에 한국이 일본과의 늑약으로 일본은 나의 강토를 다 빼앗았으며, 나의 종족을 다 학살하였는바, 내 이를 통분히 여기는 때문에 스티븐즈를 쓴 것이다. 스 - P362

티븐즈라는 사람은 한국에서 고문관으로 있으면서 이등박문과 같이 우리나라를 일본에 보호받게 했고, 그의 불법행위한 것을 숨기려고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한국정부가 일본정부로부터 지배를 받고 보호를 받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에게 국토를 다 빼앗기고, 남김없이 학살되는 것이 잘 되는 일이냐? 스티븐즈는 한국을 배신, 일본을 도와 한국에서 못된 짓을 자행했으니, 우리나라는 망하고, 나의 종족은 다 학살되니, 내 이자를 거져 두랴. 그런고로 내 이 자를 죽이고자 하니.
다른 말할 것 없노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o Chronicle), 1908년 3월 25일 자 보도 - P3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
정상규 지음 / 아틀리에BOOKS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사건의 발단은 사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군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 부대의 예하 1개소대가 각각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삼둔자(三屯子)를 출발, 월신강을 넘어 간도를 거쳐 두만강을건너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주둔하고 있던1개 소대 규모의 일본군 헌병 국경 초소 지대를 기습 공격해 몰살시켰다. - P101

일본군은 다량의 장비를 자동차와 우마차에 화물을 싣고 대전자령을 향해 출발했다. 행렬의 선두는 화물자동차부대, 가운데는 우마차대, 후미에는 자동차 여러 대가 뒤를 따르며 출발했다.
간도파견군은 이케다 대좌가 인솔하는 회령주둔 보병, 함흥주둔 보병부대 등으로 이루어졌다. - P171

일본군에게 거둔 승리로 군복 3000벌, 군수품200여 마차, 대포 3문, 박격포 10문, 소총 1500정,
담요 300장 등 막대한 전리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물었던 땅에 단비가 내린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기분 좋게 전리품을 자랑하며 들고 다니던지,
병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대전자령전투는 한중연합군의 합작으로 이뤄낸쾌거였다. 청산리, 봉오동에 버금가는 빛나는 대첩이었다.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
정상규 지음 / 아틀리에BOOKS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900번대 역사 서가에서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를 집어들었다. 독립군의 생생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대전자령전투는 독립전쟁 3대 전투중에 하나이며, 제2의 청산리 대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전자령전투의 생생한 현장을 눈앞에 펼쳐보게 된다는 설레임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사실 2가지를 알았다. 첫번째는 서문을 읽으며 발견한 사실이다. 지하철 광고로  익숙하게 듣던 '자생한방병원'이 우리 독립군의 군의 신홍균 한의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현표 선생(훗날 신광열로 개명)이 바로 자생의료재단의 신준식 명예이사장(경희대 한의대 졸업)과 신민식 원장(경희대 한의대 졸업)의 아버님이셨다는 것이다."(12쪽)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 비수술 척추치료의 대표격으로 잘 알려진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박사, 신민식 박사 숙조부의 일대기라는 점이다."(16쪽)


  이책에는 신홍균 군의와 독립 운동가 신현표 두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전자령 전투에 군의로 참전하신분이 신홍균 군의이고, 신홍균 군의의 조카가 독립운동가 신현표이시다. 특히 신홍균 군의는 한의사로 독립군을 치료하고 이끄는 역할을 하셨고, 독립운동가 신현표는 광주학생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양의의 한의학을 모두 공부한 명의였다. 

  '수술없이 척추치료를 하는 자생한방병원'이라는 광고 소리가 더 이상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생한방병원'이 흥하기를 기원한다. 내가 다니는 한방병원을 '자생한방병원'으로 옳겨야 겠다. 


2.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은 두번째 이야기는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 현장에서 작전 계획을 무시하고 자신이 거느린 2개 중대에게 퇴각명령을 지시했으며, 이로인해서 신민단이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총사령관 최진동은 현장지휘관 중 한 명인 연대장 홍범도가 전투 중에 모두가 함께 준비한 작전대로 응전하지 않고 퇴각 명령을 내려 신민단 대원 수십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문책하겠다고 이를 갈던 최진동 장군은 홍범도가 한 행동은 항명죄에 해당하며, 이는 전시에 즉결처분에 해당하는 중죄라고 말했다." (110쪽)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최진동 장군이며, 홍범도 장군은 연대장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최진동 장군이 아닌가! 다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편재일뿐 실질적으로는 홍범도가 주인공이라 서술했다. 


" 언제나 겸손하고 공명보다는 실제를 중시하는 홍범도는 대한북로독군부의 행정과 군무를 총괄하는 독군부장(총사령관)의 지위는 최진동에게 돌리고, 자신은 군사지휘권(북로사령부장)만을 맡았다. 이 연합의 결과로 홍범도는 약 1천 명의 독립군을 지휘하게 되었다."(홍범도 - Daum 백과)


  어느 서술이 맞는 이야기일까? 누구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할까? 한사람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또다른 영웅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혼란이 밀려왔다. 

  그런데, 단순히 주인공을 바꾸는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홍범도를 '항명죄'로 다스려야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홍범도가 퇴각명령을 했고, 우박이 내려 독립군이 일본군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서술은 맞는 말인것같다. 그런데, 이것이 전체 전투를 무시한 홍범도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벌어진 독립군의 위기 속에서 펼쳐진 이야기란 말인가? 혼란이 밀려왔다. 정상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럽다. 


  이 책은 장상규 작가가 새롭게 발굴해낸 두명의 독립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기형식의 서술로 실감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홍범도 장군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는 작가의 심도있는 설명과 관련자료를 제시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소중한 두명의 독립영웅을 만난 것에 기쁨을 느끼며 펜을 내려 놓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3-09-27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서술은 개인 역사서에 차고도 넘치죠. 서간이나 일기 등이 그렇습니다. 본 책에 실린 일화들은 새로운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할 듯합니다. 어쨌든 이런 책도 나왔으니 당시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나 자료를 찾아 교차 검증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감은빛 2023-09-27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야무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과거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제일 답답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죠.
남겨진 사료들 중 어떤 것이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과연 역사적 사실이 있기는 한 것인가?
특히 저 일제시대에는 워낙 사료가 부족하여 더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