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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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이 일을 왜하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할까? 지금 당장 돈벌이가 되지도 않으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일을 당신은 하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면서 '이 일을 누군가는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 '뭉우리돌의 바다'는 바로 김동우 라는 우직한 사진작가가 값진 땀방울로 찍은 주옥같은 사진들의 모움이다. 단순히 사진만 모으지 않았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사진에 글을 더했다. 김동우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 속에서 애절하게 불타오르는 뜨거움을 느낀다. 


  책은 인도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독립 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땅이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한국광복군의 흔적을 발견한다. 델리 레드 포트, 그곳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지이다. 낯선 곳에서 발견한 광복군의 흔적을 발견한 김동우 작가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와 독립운동 후손을 찾아다니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은 웅장한 사진과 심금을 울리는 글로 기록되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전에는 문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한 역사 기록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상과 소리,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김동우 작가는 글과 사진으로 잊혀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는 마음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녹아있다. 


  "이렇듯 사는 타인을 울려 슬픔을 퍼트렸고 생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쓰면서 다른 얼굴을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52쪽)


  1905년 4월 제물포를 출발한 영국 상선 '샌 일포드'호는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멕시코로 향했다. 바로 그 배위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김동우 작가는 그 장면을 아이가 '자신을 울려 기쁨을 나누게 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김동우 작가의 웅장한 사진들 감상하며, 그 사진속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심금을 울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인이라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예 같은 처우를 받으며 임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독립운동에 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독립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3.1혁명에 만세시위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대한사람이면 당연해 해야할 일이지. 그것이 독립운동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중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보훈혜택을 받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 이렇듯, 우리 한인에게 독립운동은 당연한 것이다. 물고기가 물에 대해서 말할 수 없듯이,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이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몰랐다. 

  멕시코에 이민 온 1000여명 중에 200여명의 대한 제국 군인 출신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한다. 1909년 숭무학교를 세워 군사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18명의 생도를 배출한다. 그들을 장차 연해주로 보내 무장 독립 전쟁에 나서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면서 숭무학교는 문을 닫는다. 

  숭무학교가 문을 닫는 것 보다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한 사건이 발생했다. 1916년 숭무학교 교장 이근영은 황민주, 이정구 등과 메리다에 나타난다. 그들은 과테말라 혁명에 참전할 용병을 모집했다. 고용금은 미화 5원이지만 승전 시 미화 300만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황민주, 이정구가 혁명군에게 받은 고용금을 가로채 도망가고, 이근영도 종적을 감춘다. 동포 청년을 혁명군에 팔아넘기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때 영웅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한 마음을 일평생 간직하기는 힘들다. 돈 때문에 30여명의 한인 청년을 총알이 빗발치는 밀림 속으로 팔어버린 그들의 파렴치함에 손이 떨려온다. 

  한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멕시코에서 쿠바로 떠난다. 그러나, 쿠바에서의 삶도 녹녹치 않았다. 쿠바 한인이 겪은 고통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이어진다.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된 한인들은 유치장에 갖힌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을 되찾길 바라는 한인들을 이용한다면 태평양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한인을 일본인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했다. 그랬다. 조국이 바로서야 재외 동포들도 바로 설 수 있었다. 조국이 식민지가 되어 재외 한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기에 타국을 떠도는 한인들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굳게 뻗은 뿌리가 되지 못한다면 줄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동우 작가는 미국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편이다. 많은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이민을 갔다.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 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 그런데, 뉴욕한인 교회에서 김명래 라는 장철우 목사의 사모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다!! 

  무슨 우여곡절이 있기에 이 먼 미국 땅에 살고 계신걸까? 팔순의 이춘덕 여사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청산리 전투 마지막 생존자 이우석이다. 북로군정서 분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이우석은 해방 직후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엿장수, 장난감장수, 지게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아내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들은 코미디언 이주일이 그를 양아버지로 모시기도했단다. 김동우 작가를 만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까지와 자식한테 얹혀사는 삶이 너무 초라해요.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가족에게 남긴 게 도대체 뭐냐고요.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이란 자부심 하나로 살았어요.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닌가 봐요."-424쪽


  독립 유공자 혜택은 배다른 남동생이 받아갔다. 자신은 '자식한테 얹혀사는 삶'이라 너무도 세상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사진작가 김동우에게 한풀이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뒤틀린 우리 현대사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친일파들이 자신의 친일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친일을 미화한다. 더 나아가서 토착왜구들은 독립운동가를 우롱하며 노골적인 친일을 한다. 이렇게 뒤틀린 우리 현대사 속에서 그녀의 한풀이는 이땅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모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한풀이가 아니었을까?


  '뭉우리돌'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을 뜻한다. 백범일지에 일본순사가 '지주가 밭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라는 말에 백범은 뭉우리돌의 정신을 품고 살겠다고 다짐하셨다. 저자 김동우도 백범의 뭉우리돌 정신을 품으며 독립운동 현장을 누볐다. 잊혀져서는 안될, 반드시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뭉우리돌들을 찾아서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책의 사진을 통해서, 이 책의 글을 통해서 우리도 백범이 품었던 뭉우리돌 정신을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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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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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는 타인을 울려 슬픔을 퍼트렸고생은 자신을 울려기쁨을 나누게 했다. 삶과 죽음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쓰면서 다른 얼굴을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 - P52

영국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며 악전고투하게 된다.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3월 13일 전원 철수 명령이 하달된다. 일단 임팔로 퇴각해 전열을 정비하란 명령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후퇴를 해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퇴로가 차단된 것으로 본 것이다.
자칫 부대를 잘못 움직였다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영국군 17사단은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돼버린다.
이때 인면전구공작대 문용국 부대장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노획한 일본군 작전 문서 등을 세밀히 판독하고, 포로 심문 등을 통해 일본군 병력 배치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문 부대장의 분석대로라면 일본군 포위 병력은 예상보다 적어야 맞았다. 정보 분석결과가 사단장에게 즉각 보고된다. 곧바로 철수방향이 하달된다.
17사단은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뚫고 티딤에서 임팔까지 180킬로미터를 퇴각해 4월 2일 전원 무사 귀환한다. 이 직후 영국군 사단장이 직접 문 부대장을 찾아 노고를 치하한다.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적 선무 방송을 펼치는 과정에서일본군 장교 등 30여 명이 귀순했단 내용도 있다.  - P34

내가 그 사람을 쓴 것은 다름 아니라 금일에 한국이 일본과의 늑약으로 일본은 나의 강토를 다 빼앗았으며, 나의 종족을 다 학살하였는바, 내 이를 통분히 여기는 때문에 스티븐즈를 쓴 것이다. 스 - P362

티븐즈라는 사람은 한국에서 고문관으로 있으면서 이등박문과 같이 우리나라를 일본에 보호받게 했고, 그의 불법행위한 것을 숨기려고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한국정부가 일본정부로부터 지배를 받고 보호를 받는 것이 유익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에게 국토를 다 빼앗기고, 남김없이 학살되는 것이 잘 되는 일이냐? 스티븐즈는 한국을 배신, 일본을 도와 한국에서 못된 짓을 자행했으니, 우리나라는 망하고, 나의 종족은 다 학살되니, 내 이자를 거져 두랴. 그런고로 내 이 자를 죽이고자 하니.
다른 말할 것 없노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San Franciso Chronicle), 1908년 3월 25일 자 보도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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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
정상규 지음 / 아틀리에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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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사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군 홍범도 부대와 최진동 부대의 예하 1개소대가 각각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삼둔자(三屯子)를 출발, 월신강을 넘어 간도를 거쳐 두만강을건너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주둔하고 있던1개 소대 규모의 일본군 헌병 국경 초소 지대를 기습 공격해 몰살시켰다. - P101

일본군은 다량의 장비를 자동차와 우마차에 화물을 싣고 대전자령을 향해 출발했다. 행렬의 선두는 화물자동차부대, 가운데는 우마차대, 후미에는 자동차 여러 대가 뒤를 따르며 출발했다.
간도파견군은 이케다 대좌가 인솔하는 회령주둔 보병, 함흥주둔 보병부대 등으로 이루어졌다. - P171

일본군에게 거둔 승리로 군복 3000벌, 군수품200여 마차, 대포 3문, 박격포 10문, 소총 1500정,
담요 300장 등 막대한 전리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물었던 땅에 단비가 내린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기분 좋게 전리품을 자랑하며 들고 다니던지,
병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대전자령전투는 한중연합군의 합작으로 이뤄낸쾌거였다. 청산리, 봉오동에 버금가는 빛나는 대첩이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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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
정상규 지음 / 아틀리에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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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0번대 역사 서가에서 '대전자령 전투, 어느 독립군의 일기'를 집어들었다. 독립군의 생생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대전자령전투는 독립전쟁 3대 전투중에 하나이며, 제2의 청산리 대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전자령전투의 생생한 현장을 눈앞에 펼쳐보게 된다는 설레임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사실 2가지를 알았다. 첫번째는 서문을 읽으며 발견한 사실이다. 지하철 광고로  익숙하게 듣던 '자생한방병원'이 우리 독립군의 군의 신홍균 한의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현표 선생(훗날 신광열로 개명)이 바로 자생의료재단의 신준식 명예이사장(경희대 한의대 졸업)과 신민식 원장(경희대 한의대 졸업)의 아버님이셨다는 것이다."(12쪽)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 비수술 척추치료의 대표격으로 잘 알려진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박사, 신민식 박사 숙조부의 일대기라는 점이다."(16쪽)


  이책에는 신홍균 군의와 독립 운동가 신현표 두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전자령 전투에 군의로 참전하신분이 신홍균 군의이고, 신홍균 군의의 조카가 독립운동가 신현표이시다. 특히 신홍균 군의는 한의사로 독립군을 치료하고 이끄는 역할을 하셨고, 독립운동가 신현표는 광주학생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양의의 한의학을 모두 공부한 명의였다. 

  '수술없이 척추치료를 하는 자생한방병원'이라는 광고 소리가 더 이상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생한방병원'이 흥하기를 기원한다. 내가 다니는 한방병원을 '자생한방병원'으로 옳겨야 겠다. 


2.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은 두번째 이야기는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 현장에서 작전 계획을 무시하고 자신이 거느린 2개 중대에게 퇴각명령을 지시했으며, 이로인해서 신민단이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총사령관 최진동은 현장지휘관 중 한 명인 연대장 홍범도가 전투 중에 모두가 함께 준비한 작전대로 응전하지 않고 퇴각 명령을 내려 신민단 대원 수십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문책하겠다고 이를 갈던 최진동 장군은 홍범도가 한 행동은 항명죄에 해당하며, 이는 전시에 즉결처분에 해당하는 중죄라고 말했다." (110쪽)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최진동 장군이며, 홍범도 장군은 연대장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최진동 장군이 아닌가! 다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편재일뿐 실질적으로는 홍범도가 주인공이라 서술했다. 


" 언제나 겸손하고 공명보다는 실제를 중시하는 홍범도는 대한북로독군부의 행정과 군무를 총괄하는 독군부장(총사령관)의 지위는 최진동에게 돌리고, 자신은 군사지휘권(북로사령부장)만을 맡았다. 이 연합의 결과로 홍범도는 약 1천 명의 독립군을 지휘하게 되었다."(홍범도 - Daum 백과)


  어느 서술이 맞는 이야기일까? 누구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할까? 한사람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또다른 영웅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혼란이 밀려왔다. 

  그런데, 단순히 주인공을 바꾸는 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홍범도를 '항명죄'로 다스려야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홍범도가 퇴각명령을 했고, 우박이 내려 독립군이 일본군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서술은 맞는 말인것같다. 그런데, 이것이 전체 전투를 무시한 홍범도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벌어진 독립군의 위기 속에서 펼쳐진 이야기란 말인가? 혼란이 밀려왔다. 정상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럽다. 


  이 책은 장상규 작가가 새롭게 발굴해낸 두명의 독립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기형식의 서술로 실감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홍범도 장군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는 작가의 심도있는 설명과 관련자료를 제시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소중한 두명의 독립영웅을 만난 것에 기쁨을 느끼며 펜을 내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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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9-27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서술은 개인 역사서에 차고도 넘치죠. 서간이나 일기 등이 그렇습니다. 본 책에 실린 일화들은 새로운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할 듯합니다. 어쨌든 이런 책도 나왔으니 당시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나 자료를 찾아 교차 검증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감은빛 2023-09-27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야무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과거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제일 답답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죠.
남겨진 사료들 중 어떤 것이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과연 역사적 사실이 있기는 한 것인가?
특히 저 일제시대에는 워낙 사료가 부족하여 더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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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계기는 유시민 작가 덕분이다. 유작가는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를 집필하고 나서 각종 언론과 유튜브에 나와서 자신이 과학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에 나와서 유시민은 '과학적으로 삶은 의미 없다.'라고 단언했다.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그도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보았기에 유시민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도 우리의 존재가 아무 의미없다는 말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유시민의 말처럼 이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인간이 숭고하게 여기는 모성애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정신도 모두가 유전자가 프로그램화한 유전자 운반 기계의 행동일뿐일까? 


1. 생물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다.

  인간을 동물과 다른 별개의 존재로 볼 수 없다. 동물도 인간 처럼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불완전하지만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도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역으로 동물을 통해서 인간을 설명할 수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소개한 기생 일개미를 보며 인간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생 일개미 중에서 일부(Bothriomyrmex regicidus와 B. decapitans)는 기생 일개미 여왕이 다른 개미종의 집에 침입하여 영왕개미를 죽이고 개미 사회를 장악한다. 그리고 기생 개미 영왕은 자신의 알을 낳고, 노예 개미의 시중을 받으며 서서히 원래의 종을 대체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계도 있다. 

  기생 개미 중에서 Monomorium santschii의 여왕개미는 노예 일개미에게 자기 자신의 여왕 개미를 살해하도록한다. 그리고는 노예 개미의 시중을 받으며 왕국을 빼앗아 자신의 왕국을 구축한다. 정말 충격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소위 축출 이혼이 그러한 사례이다. 범죄 관련 팟캐스트에서 알게된 사연이다. 술집 여자와 하룻밤을 잤고, 그결과 아이를 갖게 되어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부모를 모욕하고 두자녀는 그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린다. 이성을 잃은 남자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줄렀고, 결국 그 남자는 법원에서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다. 모든 재산을 그녀에게 빼앗기고 이혼까지 당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자녀를 고아원에 보내고 남자에게는 양육비라는 명목으로 돈까지 계속 뜯어내려한다고한다. Bothriomyrmex regicidus와 B. decapitans는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Monomorium santschii도 존재한다. 일본의 신친일파 육성 프로그램에 따라서 일본 정부나 사사카와 재단의 돈을 받으며 신친일파로 육성되는 사람이 많다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권을 잡고 친일적인 정책과 행보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더욱이 좌우의 이념 갈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우파라는 신념(?) 혹은 망상 속에서 친일 정권의 매국행위를 동조하는 이웃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Monomorium santschii는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역시 인형을 직접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113쪽)고 말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프로그램 명령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자기 종의 구성원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친절해라."(182쪽)

  "거주자면 공격하고, 침입자면 물러나라!"(153쪽)


  이주민에게 배타적인 모습을 띄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적어도 리처드 도킨스의 말이 맞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는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수,당 전쟁을 끈질기게 수행한 것도 유전자에 의해서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앞도적으로 불리한 군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국토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도 '거주자면 공격하고, 침입자면 물러나라'라는 명령어 덕분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의 구성원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친절해라'라는 명령어가 필요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전쟁은 줄어들었으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방인을 만나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방인에게 환대를 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전자의 프로그램을 인간이라는 생존기계가 거역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거역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희망과 존재 가치가 발견된다. 


2. 이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는 회의주의에 빠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유전자의 조작에 의해서 유전자가 시켜 결혼하고 짝짓기를하며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회의주의에 빠진 사람이 많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과학적으로 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유전자 운반 기계에 불과한 인간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교에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 끝을 달이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개체의 몸이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을 위한 임시 운반체에 불과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것은 도킨스도 말했듯이 은유적 표현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당신은 노저어오오.'라고 말하는 연인에게 '당신의 마음이 호수라며 왜? 노 저어 갈 수 없지? 호수는 어디있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겠는가?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은 사람들이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빠져든다. 더 나아가 '인생은 의미 없다.'라고 결론 짓는다. 과학의 한계를 생각하지 못하며, 과학이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진실이 밝혀낸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우주에 있는 84.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단지 알고 있는 것은 절반도 안되는 15.5%만을 알면서 우주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더욱이 과학에 문외한이 과학책 몇권을 읽고서는 '과학적으로 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단언한다면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 고개를 숙여야한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백사장의 수많은 모래알 중에서 모래 몇알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인정해야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나는 어머니를 하나의 기계로 취급한다."(218쪽)고 말했다. 인간을 "생존기계"로 표현하는 도킨스의 극단적 비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리처드 도킨스를 유전자 결론론자로 이해하는데 일말의 빌미를 도킨스가 제공한셈이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분명히 말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재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335쪽) 또한,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123쪽)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 결정론자가 아니다. 유전자는 프로그램화를 시켰을 뿐이다. 유전자가 우리의 뇌를 직접 지배할 수는 없다. 바로 그 틈, 그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창조하고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유전자의 운반체인 인간이 문화와 문명! 혹은 밈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다시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 아마존으로 가자. 최재천 교수는 그의 유튜브에서 유시민의 '과학적으로 삶은 의미 없다.'는 표현을 언잖아 했다. 심장의 일부분을 떼어서 모아 놓으면 심장 박동을 만들어 낸다고한다. 이를 전문용어로 페이스메이킹이라한다. 부분은 전체의 합 그 이상이다. 챗GPT가 일정한 용양이상을 학습하고 파라미터의 수를 증대시키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 처럼, 세포와 유전자로 이뤄진 우리의 몸도 그것이 모여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운반 기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운반 기계가 모여 문명을 만든다. 그들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철학이라는 형이상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과학자 최재천 교수는 '철학'에서 과학이 하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칭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자는 과학을 영접하면서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면, 과학을 공부한 석학은 인문학을 통해서 의미를 찾고 창조하려한다. 나는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고 창조하는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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