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지음, 이현주 옮김, 최형익 감수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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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의 귀재 헨리 키신저!! 닉슨 정부에서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서 파키스탄을 통해서 중국으로 건너간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냉전의 시대를 건너 데탕트 시대로 이행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의 외교 천재 헨리 키신저의 세계관을 접하고 싶어 그의 책을 펼쳤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외교자문을 했던 그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1. 베스트팔렌 체제 신봉

  독일 땅에서 시작한 30년 전쟁은 유럽의 많은 국가가 참여하면서 국력을 소진했다.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국가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한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제 더 이상 로마 가톨릭과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단일한 세계 질서는 유지될 수 없었다. 헨리 키신저는 베스트팔렌 체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서 수립된 구조물은 합의된 규칙과 제한을 기초로 국제 질서를 제도화하고 지배적인 한 국가가 아니라 다수의 강대국들을 기초로 해서 국제 질서를 세우려던 최초의 시도였음을 보여주었다." -42쪽


  지배적인 한 국가가 패권을 장악하기 보다는 '다수의 강대국'들이 세력균형을 이루며 평화적 국제 질서를 세우는 것이 헨리 키신저가 생각하는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외교의 이상이다. 다수의 강대국이 현실적인 외교를 펼치다보니 가톨릭 국가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은 신교편에서 30년 전쟁에 참전했다. 가톨릭 추기경인 그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합리화한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 인간은 사후에 구원된다. 국가에게는 불멸성이 없다. 국가의 구원은 지금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34쪽


 리슐리외가 신교편에 서서 종교 전쟁에 참전한 결과 전쟁은 30년을 끌게 되었다. 독일은 비참한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리슐리외가 뿌린 악의 씨앗은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프랑스 고립화 정책으로 돌아왔다. 비스마르크는 베스사유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황제 대관식을 거행한다. 

  다원성, 실리주의, 세력균형으로 요약할 수 있는 베스트팔렌 체제를 헨리 키신저는 매우 이상적인 외교 정책으로 파악했다. 그랫기에 헨리 키신저는 빈체제를 긍정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빈체제를 보수반동 체제로 규정했다. 나폴레옹 전쟁에 의해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전파되어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열기가 치솟았다. 이를 억압하려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중심이 되어 빈체제를 수립했다. 각국의 자유주의 운동의 빈체제에 의해서 억압당했다. 

  그런데, 헨리 키신저는 빈체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4국 동맹, 신성동맹, 강대국의 협조체제 성립으로 빈체제 이후 1차 세계 대전까지 평화가 계속되었다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강대국의 협조체제는 1820년 나폴리 혁명, 1820년~1823년 스페인 혁명, 1820년 ~ 1823년 그리스 독립 혁명에서 빛을 보았다고 서술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헨리 키신저에게 강한 역겨움이 일었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을 짓밟고 있는 구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빈체제 이후 1차 세계 대전 시기까지 큰 전쟁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제 밑에서 신음하며 자유를 갈망하던 수많은 민중들의 아우성에 헨리 키신저는 귀를 닫고 있었다. 힘없는 민중들이 강대국의 힘의 논리앞에 자유를 억압받아도 된다는 그의 생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소국 국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무서운 논리로 다가온다. 


2. 헨리 키신저의 미국 대통령 평가

 헨리 키신저는 현대 외교가 나아가야할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세계 질서는 홀로 행동하는 한 국가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 (중략) 이 질서 개념은 어떤 지역이나 국가의 관점과 이상을 초월한다. 역사의 순간에서 그것은 당대의 현실에 영향을 받은 베스트팔렌 체제의 현대화일 것이다." -416쪽


  '베스트팔렌 체제의 현대화'를 현대 외교가 나아갈 길로 제시한 헨리 키신저는 기존의 고립주의 외교 정책에서 탈피해서 국제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러일 전쟁을 중재한 시어도어 루스밸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고 국제 연맹을 제안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 윌슨 대통령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윌슨은 학자 출신 답게 세계평화가 항구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고립주의로 회귀했고, 미국은 국제연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평화 정착을 위한 그의 노력도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아내지 못했다. 현실 정치에서 윌슨의 이상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을 그후의 대통령들이 계승했다. 특히 닉슨은 백악관 각의실에 윌슨의 초상화를 걸어 놓았다. 현대에 실시되는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꾸준히 꼽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윌슨은 살아 있다. 현실에서 패배했음에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 영원히 살아있는 자가 윌슨이었다. 

  헨리 키신저의 닉슨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후하다. 어떤이는 닉슨을 거짓말을 잘하는 저열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그렇지만 헨리 키신저의 생각은 다르다. 


  "정상적인 시기였다면 닉슨의 다양한 정책들은 미국의 새로운 장기 전략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다. 닉슨은 희망과 현실이 결합된 약속된 땅을 어렴풋하게 보았다. 그 땅에서는 냉전을 끝내고 대서양 동맹을 다시 정의하며, 중국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중동 평화가 다가가는 중대한 진전을 이루며, 러시아를 국제 질서로 다시 통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지정학적 비전과 그 기회를 하나로 합칠 시간이없었다." -344쪽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는 외교 부분에서 가장 훌륭하게 준비된 되통령이었다고 키신저는 평가한다. 닉슨의 밑에서 중국과 외교를 성공적으로 시작했기에 키신저의 가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고 데탕트시대의 문을 열었으니 헨리 키신저로서는 그의 생에 가장 화려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는 영광을 누렸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어떤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로 평가하고, 어떤이는 FBI 국장과 닉슨의 파워게임에서 닉슨이 패배한 사건이라 말한다. 어느 관점에서 닉슨을 평가하더라도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탁월한 외교적 업적을 남겼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대단히 후하다. 


  "나는 불안한 시대에 용기와 위엄과 확신으로 미국을 이끌어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여전히 존경하고 개인적으로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그의 목적과 헌신이 때로는 미국의 정치적 주기 내에서 달성할 수없는 것으로 드러났더라도 그것은 그의 조국에 영예를 안겨 주었다. 부시가 대통령직어세 물러난 지금도 그 결정을 추구하고 있고 댈러스에 있는 대통령 도서관의 핵심 주제로 그 결정을 삼았다는 점은 자유의 일정에 그가 얼마나 헌신했느지를 보여준다." -363쪽


  조지 W. 부시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사람이다. 9.11 사건이라는 초유의 테러 사건에 대해서 초강경 자세를 취했다. 북한도 9.11 테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낼 정도로 세계의 어러 나라들은 미국을 두려워했다.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다.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를 지니고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제대로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이라크를 침공했음에도 사담 후세인이 생화학 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명백한 침공이다. 그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악의 축 발언'은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했다. 사담 후세인 밑에 있었던 수니 과벽파의 일부는 IS가 되어 테러를 하며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이러한 조지 W. 부시를 헨리 키신저는 '존경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밝혔다.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헨리 키신저의 이해할 수 없는 조지 W. 부시에 대한 사랑이 나의 머리를 휘감았다. 그때 영국의 파머스턴이 했던 격언이 생각났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19쪽


  그렇다. 헨리 키신저에게는 미국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 30년 전쟁에 신교편에 가담했듯이,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이다. 이것이 베스타팔렌 체제의 속성중에 하나였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외교정책의 임무는 미국만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공동의 원칙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략) 미국의 비전은 유럽식의 세력균형체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원칙의 확산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는데 달려있기 때문이다." -14쪽


  그러나, 키신저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수행하고 조언하면서 '공동의 원칙들을 추구'하였는가? '민주원칙의 확산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미명아래 약소국의 내정에 간섭한 것은아닌가? 특히,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유럽과 중국, 아시아, 미국으로 나누어 세계 외교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세계 질서'라는 제목에 어울지 않게 아메리카 대륙, 그중에서도 남아메리카에 대한 서술은 없다. 남아메리카를 독자적인 세력을 보기 보다는 자신의 뒷마당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을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외교 일선에 있으면서 남아메리카 정부의 군사 쿠데타를 지원한 정책이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싫어서 남아메리카에 대한 서술을 하지 않은 것일까?


3. 헨리 키신저, 그가 남긴 오류

  헨리 키신져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렇다보니,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많다. 퀴즈식으로 '헨리 키신져의 세계질서' 속 오류를 찾아 보자. 


  "프리드리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프리드리히를 숭배해온 새로운 러시아 황제는 전쟁에서 철수했다." -49쪽


  위의 문장에서 어떤 오류가 있을까? 윗글에서 '새로운 러시아 황제'는 표트르 3세를 뜻한다. 표트르 3세의 부인이 예카테리나 2세이다.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3세에게 시집왔으나, 표트르 3세는 예카테리나 2세에게 관심이 없었다. 결국, 귀족과 결탁한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을 없애고 러시아의 황제가 된다. 그렇다면, 윗글에 '프리드리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라는 표현은 잘못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즉, '예카테리나 2세'를 예카테리나 2세의 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로 수정해야한다. 

  한국인이다 보니, 헨리 키신져가 한국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으로 유심히 읽었다. 그런데, 연거푸 오류가 발발했다. 


  "소련이 한반도 북쪽을, 미국이 한반도 남쪽을 점령했다. 양측은 점령 지역 철수를 앞두고 각각 1948년과 1949년에 자기들 식의 정부를 세웠다."-323쪽

  "5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몇 달 뒤인 1951년 6월부터 전쟁이 시작된 38선 근처에서 전선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중국은 협상을 제안했고, 미국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328쪽


  당신도 어이없지 않은가? 남한이 1948년 8월 15일에 정부수립을 했고, 같은 해 9월 9일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런데, 연도도 틀릴뿐만 아니라, 남북한 어느 정권이 먼저 수립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두번째 글은 더욱 황당하다. 헨리 키신저가 몸담고 있는 미국과 관련된 역사 아닌가! 그런데, 6.25 전쟁의 휴전 협상은 중국이 제안한 것이 아니라, 소련이 UN을 통해서 제의했다. 미국 외교 실무를 담당한분이 이런 실수를 하면 안되지 않을까?

  대한민국과 관련한 오류는 그래도 애교수준이다. 그런데, 미국과 총뿌리를 서로 겨누었던 베트남에 대해서는 경멸적인 인상이 짙은 오류가 있다. 


  "1세기에 걸쳐 식민지로 지낸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특히 남베트남의 경우에는 역사상 한 번도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334쪽


  베트남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북베트남 지역에서 시작한 베트남의 역사는 남진을 하면서 베트남 남부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물론, 남베트남 지역에는 '참파'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무시하고 '남베트남의 경우에는 역사상 한 번도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라고 단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베트남인들에게는 대단힌 모욕적인 표현이다. 헨리 키신저가 적국의 역사를, 지금은 친구가된 베트남의 역사를 관심을 갖고 찬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제는 고인이 되어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는 역사 학자가 아니라서 오류 발생할 수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음의 오류는 역사와는 거리가 먼 상식이다. 


  "뉴턴의 거대한 시계 장치로 간주되던 18세기 유럽 질서는 다윈의 적자생존의 세계로 대체되었다." -91쪽


  어느 부분이 오류인지 알지요?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오류이다. 다윈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말하지 않았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말했을 뿐이다. 강한자만이 생존하고 약한자가 강한자에게 잡아 먹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지구는 공룡이 지배하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공룡은 자연에 적응하지 못해서 처절하게 멸종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제국주의를 합리화한 사람은 사회 진화론을 만든 스펜서이다. 유대인들은 상식이 풍부하다고 하던데, 헨리 키신저의 책에는 오류도 풍부하다.




  헨리 키신저가 탁월한 외교관이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냉혈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냉혈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국익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는 탁월한 외교관이다. 그건 그가 이 책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조언을 남겨 놓았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자제력, 힘, 정당성이 늘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어야한다. 아시아의 질서는 세력균형과 동반자 개념을 결합시켜야한다. (중략) 지혜로운 정치가라면 그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한다. 그 균형을 벗어나면 재앙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265쪽


  요즘 한반도가 불안하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력, 힘, 정당성'이 균형을 이루어야한다고 키신저는 조언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수장은 자제력과 힘, 정당성이 과연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묻고 싶다. 외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국가의 생존이다. 친미, 친일 일변도의 종미, 종일 외교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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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한용운 지음, 이성원.이민섭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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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이라니!! 만해 한용운을 김관호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한용운은 '정선강의 채근담'을 내어주며 이 책을 읽고 다시 오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그가 김관호에게 불교서적도 아니며 시집도 아닌 '정선강의 채근담'을 왜 내주었을까? 아마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걸어가며 흔들리지 않고 조국 독립의 길을 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채근담을 통해서 얻길 바라지 않았을까? 수많은 채근담 번역서가 있다. 그 중에서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국 독립이라는 뜻을 꺽지 않고 당당히 나아간 한용운의 마음을 채근담을 통해서 만나고 싶다. 


1. 무엇이 그를 채근담으로 이끌었을까?

  고전은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민이 있을 때 접한 한줄기 글귀가 나를 덮고 있는 고민덩어리에서 해탈케한다. 식민의 고통을 겪었던 만해 한용운에게 어떤 채근담의 글귀가 힘과 용기를 주었을까? 

  친일파들이 난동을 벌이고 있다. 매국노들이 나를 일제에 팔아 넘겼다. 을사오적과 일진회 세력이 활개를 치는 그 시대에 만해는 고민했을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승려로서 구도자의 삶을 살 것인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으로 살 것인가? 그 때 한용운은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걷어차버린다. 그리고 당당하게 승려이면서 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소명을 다한다. 아마도 그는 채근담의 다음 구절에서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隨時之內善救時 若和風之消酷暑, 混俗之中能脫俗 似淡月之映輕雲.

(시대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시대를 잘 구제하는 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다. 세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세속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희미한 달빛이 가벼운 구름을 환히 비추는 것과 같다.) 84쪽


  칠흑같이 어두운 식민의 터널을 걷고 걸어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시대를 잘 구제'하여 독립의 꿈을 이룬다면 이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을 살면서도 조국 독립을 이루는 것은 '희미한 달빛이 가벼운 구름을 환히 비추는 것'과 같지 않은가? 

  누구는 절망했고, 누구는 변절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은 현실과 굴복하지 않았다. 풀뿌리를 씹어 먹으면서도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꺽지 않았다. 친일을 선택한 민족반역자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때 한용운은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집이름을 심우장이라했다. 아이가 소를 찾아 깨달음을 얻듯이 그도 자신이 추구하는 참된 진리를 찾아 긴 여생을 보내며 자신의 집을 심우장이라 지었다. 


貧家淨掃地, 貧女淨梳頭, 景色雖不艶麗, 氣度自是風雅. 士君子一當窮愁寥落, 奈何輒自廢弛哉.

(가난한 집의 마당을 깨끗이 쓸고 가난한 여인의 머리를 곱게 빗으면 외관과 외모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기품이 우아할 것이다. 사군자가 가난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어찌 스스로 피폐해지고 해이해질 것인가) 290쪽

肝腸煦若春風 雖囊乏一文 還憐煢獨 氣骨淸如秋水 縱家徒四壁 終傲王公.

(마음이 봄바람처럼 따뜻하면 주머니 속에 먼지만 가득해도 오히려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동정하며, 기개가 가을 강물처럼 맑으면 사는 집이 사방 벽으로 간신히 바람만 막는 정도라도 왕후장상을 우습게 여긴다.) 118쪽


  비록 가난했지만 한용운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창녀의 화려함을 절개 있는 처녀가 부러워할리 없듯이, 친일파의 부귀를 한용운이 부러워할리 없다. '사군자가 가난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어찌 스스로 피폐해지고 해이해질 것인가'라는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오히려 변절한 친일파들을 '동정'하였을 것이다. 부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신념임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삶은 순탄할리 없다. 수없이 감옥에 갖히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다. 순탄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어떤이는 그만 타협하고 편안한 삶을 살라고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때 한용운은 채금담의 이 귀절을 되새겼을 것이다. 


一念錯 便覺百行皆非 防之當如渡海浮囊 勿容一針之罅漏.

(한 생각이 잘못되면 백 가지 행동이 잘못된다. 이것을 예방할 때는 바다를 건널 때 쓰는 부낭에 바늘구멍만한 틈도 없게 하듯이 해야한다.) 18쪽

欲做精金美玉的人品 定從烈火中鍛來 思立欣天揭地的事功 須向簿氷上履過.

(순금이나 좋은 옥과 같은 인품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뜨거운 불 속에 단련되어야한다. 천지를 들었다 놓을 만한 업적을 이루기를 생각한다면 살얼음 위를 걷듯 해야 한다.) 16쪽


 조금의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 식민의 바다를 건너는데 '부낭'에 '바늘구멍만한 틈'이 생긴다면 이는 곧 친일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순금을 '뜨거운 불 속에 단련'하듯이 자신의 이 고통도 자신을 단련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해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남긴다. 


  역사상 위대한 충국의 열사와 절개 있는 사람은 칼날을 밟고 뜨거운 피를 뿌리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환경에서 나오고, 세상에 드문 영웅과 호걸은 구사일생의 어려움 속에서 생깁니다." 17쪽


  한용운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예견하듯이 해설을 달아 놓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칼날을 밟고 떠거운 피를 뿌리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환경'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결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若果一念淸明, 淡然無欲, 天地也不能轉動我, 鬼神也不能役使我, 況一切區區事物乎! 

(생각이 청명하여 담당하고 욕심이 없으면 천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모든 사소한 사물이야 오죽하겠는가.) 160쪽


  그렇다. 조국 독립에 대한 '생각이 청명하여 담당하고 욕심이' 없기에 '천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한다. 그 누가 나의 곧은 지조를 꺽겠는가? 한용운의 피맷힌 포효가 느껴진다. 


2. 우리는 채근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채근담이 만해 한용운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데 일조했다면, 우리의 마음도 단단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채근담에는 우리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주옥같은 글귀가 많다. 그 중에서 몇가지를 꼽아보자.


紅顏失志 空貽皓首之悲傷.

(젊어서 뜻을 잃으면 늙어서 슬픔만 남는다.) 44쪽


  청소년기에 수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기도한다. 힘들어하는 이땅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이다. '젊어서 뜻을 잃으면 늙어서 슬픔만 남는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라. 정면대결이 힘들다면 우회로를 생각해 보라. 

  패기가 있고 도전정신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경험이 적어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가 있다. 


欺人者非福, 而受人欺者遇一番橫逆便長一番器宇, 可以轉禍而爲福.

(남을 속이는 것은 복 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속임을 당한 사람은 한 번 속을 때마다 한 번 더 자신의 도량을 키워 화를 바꾸어 복으로 만든다.) 136쪽


  현명한 자는 실수로 부터 배우고, 멍청한 자는 실수를 반복한다. 타인에게 속임을 당했다면 그것으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래야 다시는 같은 이유로 속임을 당하지 않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잡상인에게 영어 교재를 강제 구매 당한적이 있다.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서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어리석은 일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러한 배움이 쌓이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굳건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에 나아가서 여러사람을 만나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士君子之涉世, 於人不可輕爲喜怒 喜怒輕 則心腹肝膽 皆爲人所窺, 於物不可重爲愛憎 愛憎重 則意氣精神 悉爲物所制.

(사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지 말아야 한다.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으면 남이 속마음을 샅샅이 엿보게 된다. 외부 사물에 지나친 애증을 품지 말아야 한다. 애증이 지나치면 의기와 정신이 모두 외부 사물의 지배를 받게 된다.) 64쪽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나의 감정을 얼굴에 쉽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얼굴에 분명히 드러내어 대인관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채근담에서는 나의 기쁨과 노여움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지 말아야'하며, '외부 사물에 지나친 애증을 품지 말아야'한다. 이것은 인생을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 가짐이다. 

  때로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하늘이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있다. 


 天薄我以福, 吾厚吾德, 以迓之  天勞我以形, 吾逸吾心, 以補之  天阨我以遇,吾亨吾道, 以通之  天且我奈何哉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주면 나는 나의 덕을 두텁게 하여 박한 복을 맞아들이고, 하늘이 내 몸을 힘들게하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힘든 육체를 돕고, 하늘이 나에게 액운을 내리면 나는 나의 도를 형통하게 해서 앞길을 열리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296쪽


  운명론적 삶을 거부하라! 채근담은 말한다. 사회의 일부 지도층 사이에서 역술인에 의존하는 자가 있다. 부적을 차고 다니고, 무속인이 쓴 글자를 손에 적고 다닌다. 자신의 삶이 떳떳하지 않거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단단하지 않을 수록 역술에 의존하게 된다. 하늘이 나아게 나에게 복을 박하게 주면 나는 덕을 두텁게하고, 하늘이 몸을 힘들게하면 나는 마음을 편하게 할 것이며, 하늘이 액운을 주면 나는 도를 형통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말인가! 운명에 나의 모든 것을 내 맡기기 보다는 나의 운명을 내가 만들어가자.

  내가 사회적 리더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 마음 가짐을 가져야할까? 채근담은 이렇게 말한다. 


我果爲洪爐大冶 何患頑金鈍鐵之不可陶鎔 我果爲巨海長江 何患橫流汚瀆之不能容納
(내가 큰 화로와 거대한 대장간이 되면 단단한 쇠를 녹이지 못할까를 어찌 걱정하며, 내가 큰 바다와 긴 강이 되면 내가 제멋대로 흐르거나 더러워진 강물을 용납하지 못할까를 어찌 걱정하리오.)


  리더가 될 사람은 그릇을 키워야한다. 그릇이 크지 않은자가 큰척한다면 마음에 큰 상처를 얻을 것이다. 나의 마음을 거대한 대장간으로 만들고, 커다란 바다와 긴 강으로 만든다면 때로는 치기 어린 아랫사람도 품어 안을 수 있다. 우리 자존감의 그릇을 키우자.

  나에게는 세상을 사는 젊은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더라도 절대 현실정치에 무관심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를 채근담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居軒冕之中,  不可無山林的氣味. 處林泉之下,  須要懷廊廟的經綸

(관직에 있어도 산림 속에 사는 듯한 기질과 취미를 버리지 말아야 하고, 산속 샘가에 살더라도 반드시 조정에 있는 듯이 경륜을 품어야 한다.) 224쪽


  자연인으로 산다 할지라도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를 바라는 자는 바로 독재자들이다. 로마의 황제들이 빵과 써커스 정책을 펼치면서 로마 시민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 않도록했다. 너의 눈과 귀, 그리고 배를 채워줄테니 황제의 독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이어졌다. 성과 영화, 스포츠을 보면서 즐기면서 전두환 독재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기를 그들은 바랬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산림 속에 사는 기질을 버리지 말아야하듯이, 산속에 살더라도 반드시 나랏일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이것은 홍자성이 살았던 명나라 시기만의 교훈은 아닐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단순한 독립운독가가 아니다. 만해는 '고려대장경'을 낱낱히 열람하여 1000권을 선정하고 그 중 중요한 구절을 정선하여 번역했다.(1914)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정선 강의 채근담'을 집필했다. 그는 보통의 승려 이상의 능력과 실천력을 가진 분이시다. 중학교 시절, '님의 침묵'을 읽고 30여년이 지나서 그가 강의한 채근담을 읽었다. 채근담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었을 만해의 뜨거운 열정이 나의 가슴속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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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이)는 자신이 한 국가의 장관을 그의 가족과 함께 맨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극심한 불만감에 귀족을 짓밟을 수는 있어도 귀족이나 귀족의 혈통을 완전히 말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가 자신의 장관들에게 같은 혈통의 왕자들보다도 높은, 국가에서 가장 높은 권한을 부여하려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생시몽 회고록

술탄들 중의 술탄이자 국왕들 중의 국왕이고, 지구상의 군주들에게 왕관을 나눠 주는 사람이며, 이 세상의 신의 그림자이고, 백해와 흑해의 술탄이자 최고 통치자이며, 루멜리아, 아나톨리아, 카라마니아의 최고 통치자인 내가 (중략) 프랑스 왕인 그대 프랑수아에게 전한다.
그대는 나의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중략) 그대는 그대를 구해 달라며 원군을 요청했다. (중략) 용기를 내고 낙담하지 말라. 우리의 영예로운 전임자들과 걸출한 조상들(신께서 그들의 무덤에 빛을 밝혀 주기를!)은 적을 물리치고그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중단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들의 발자국을 따랐고 아주 강력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성채와 지역도 늘 정복해 왔다. 우리의 말에는 밤낮없이 안장이 얹혀 있고 허리에는 우리의 칼이 걸쳐있다.
-술레이만 - P128

만약 폐하께서 외국 무역을 금지하는 그 오래된 법을 폐지해도 안전하다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면, 실험을 해 보기 위해 그 오래된 법을 5년에서10년 정도 유예할 수도 있습니다. 바라던 만큼 이롭지 않은 것으로 판명나면, 그 법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은 종종 해외 국가와의 조약을몇 년 정도로 제한한 다음, 희망에 따라 그 조약의 갱신 여부를 정합니다.
-페리가 가져온 필모어 대통령의 서한 - P211

1. 이 서약으로 "우리는 광범위하게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 헌법과 법률의틀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다.
2. 심의회가 널리 설립되고 모든 문제가 열린 토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3. 모든 계층은 국가의 문제를 힘차게 관리해 나가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4. 불만이 존재하지 않도록 문관과 무관은 물론 일반인들도 각자의 소명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5. 과거의 악습은 중단되어야 하고 모든 것이 공정한 자연법에 근거해야한다.
6. 황제 통치의 기초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서 지식을 추구해야한다.
-메시지 유신 대관식에 서명한 5개조 서문 - P213

우리는 열강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나 어떤 진영에도 연루되지 않을 계획이다. 36그래야만 우리가 인도의 대의명분뿐 아니라 세계 평화의 대의명분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 정책으로 한 집단의 열렬한지지자들은 우리가 다른 집단을 지지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모든국가는 외교 정책을 수립할 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다행히도 인도의이익은 평화로운 외교 정책과 일치하며, 모든 혁신적인 국가들과의 협력과도 일치한다. 필연적으로 인도는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국가들과가까워질 것이다.
-네루, 뉴 리퍼블릭, 1947 - P231

인도 대표단이 미국을 자극할까 두려워 소련 진영을 피했다면 터무니없고 현명치 못한 행동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계속해서 비우호적인태도를 보이면 불가피하게 다른 곳에서 친구를 찾을 거라고 그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네루 - P232

우리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친공산주의나 반공산주의가 되는 것 외에는 확실한 입장을 취할 수 없습니까? 세계에 종교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것을 안겨 준 사상계의 대표자들이 이런저런 종류의 집단에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들의 소망을 실행에 옮기면서 가끔은 아이디어를 주는 이런저런 집단 주위를 어슬렁거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까? 이는 자존심이 있는 민족이나 국가에게는 가장 모멸적이고 굴욕적인 것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훌륭한 국가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된 뒤 결국 이런식으로 굴욕을 당하고 비하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네루, 1955, 반둥회의 - P232

독일 국민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이렇다. 만약 그들이 전쟁이끝난 뒤에도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는 데 관심이 있는 야심과 음모를 꾸미는지배자들, 다시 말하면 세계의 다른 민족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밑에서계속 살아야 한다면, 차후에 세계 평화를 보장해야 할 국가들의 동반자로 그들을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윌슨 - P293

따라서 그리스와 터키를 포함한 서유럽 지역에서의 활기차고 독립적인정치 활동의 보존을 요구하는 대서양 해양 세력의 이해관계와 늘 불안한 유라시아 대륙 세력의 이해관계 간에 근본적 충돌이 유럽에서 발생할 것인데, 유라시아대륙 세력은 늘 서쪽으로 세력 확장을 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대륙 세력의입장에서 보았을 때, 대서양 외에는 안전하게 팽창을 멈출 수 있는 장소를발견하지 못한다..
-1945,케넌, 소련이 적으로 돌아설것 예상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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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에서 배우는 禪의 지혜 - 벽암록 종용록 무문관이 전하는 선사들의 가르침, 개정판
윤홍식 지음 / 봉황동래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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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상사' 강의를 들으며 화두를 처음 접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화두를 접하며 '불교는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편견을 더욱 견고화 시켰다. 그러던중, 강신주의 '메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책을 읽으며 화두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강신주가 화두에 관한 책을 더 집필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강신주는 화두에 관한 책을 더 이상 펴내지 않았다. 화두에 관한 갈증이 높아갈 때 윤홍신의 책을 집어들었다. 과연 윤홍신은 나의 갈증을 풀어주었을까?


 '선문답에서 배우는 선의 지혜'를 읽으며 가장 인상에 남는 간어는 '반조선'이다. 조선에 반역한다는 뜻일까? 아니다. 화두를 통해서 수행하는 방법에는 화두선과 반조선이 있다. 화두선이 선문답을 제3차의 입장에서 묻고 의심하며 화두를 풀어 깨달음을 얻는다면, 반조선은 스님의 대답을 듣고 곧장 자신을 돌이켜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윤홍신은 간화선이라고도하는 화두선 또한 반조선의 방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화두선만을 알던 나로서는 반조선은 더 어렵다는 선입견이 몰려왔다. 그러나, 윤홍신의 반조선은 화두를 어렵게 풀지 않는다. 강신주가 서양 철학의 개념을 이용해서 화두를 풀었기에 읽으면서 묵직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윤홍신의 반조선은 너무도 쉽게 설명하여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홍신이 풀이한 화두 중에서 '세존, 침묵의 설법'이 가장 인상적이다. 세존께서 법좌에 올랐다. 세존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나무방망이를 쳐서 설법이 끝났음을 알렸다. 이 화두를 읽으며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생각났다. 음악에 조회가 있는 사람들은 존 케이지가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음을 '4분 33초'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비움이 있어야 새로움을 채울 수 있다. 음악이 연주되는 홀에서 음악을 비움으로써 새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소음이라는 이름을 붙이 소리들이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세존도 자신의 설법으로 가득 채워야할 장소를 비우셨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침묵을 듣도록하였다. 침묵의 설법으로 우리의 내면을 직시하고, 세존의 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릇은 비워 있어야 쓰임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눈을, 우리의 귀를, 우리의 생각을 비울 때 진리로 세상을 담을 수 있다. 

  '오조, 어느 것이 진짜 몸인가'에 대한 풀이도 인상적이다. 윤홍신은 이 화두를 풀이하기 위해서 '유설이혼기'라는 글을 소개한다. 장감이라는 청년이 천녀라는 여인과 도망가서 아이를 낳는다. 천녀가 마음의 병을 앓자, 장감은 장인집에가서 그간의 일을 설명한다. 그런데, 장감의 아내 천녀는 장인 집을 떠난적이 없단다!! 천녀는 모든 힘을 잃고 5년 동안 방에서 앓고 있었다. 장감이 아내를 데로오자 두 천녀는 하나로 합쳐졌다. 혼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죽으면 땅으로 사라진다. 천녀의 혼백은 장감을 따라 갔지만, 육신은 집에 남겨져 있었다. 마치 뇌사에 빠진 것처럼.... 

  그렇다면 혼백과 육신 중에서 누가 천녀일까? 이러한 이분법적 질문이 잘못이다. 혼백과 육신도 천녀이다. 나의 손과 발이 나이듯이 말이다. 온전한 천녀는 육신과 혼백이 분리되지 않은 천녀이다. 

  그런데, 윤홍신은 의외의 설명을 한다. 


  "살아 생전에 '혼과 백'을 자유로이 다스려서 육신을 여관방 출입하듯이 드나들 수 있는 자라야, 죽은 뒤에도 자유자재로 의생신을 나투며 온 천지의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이것에 대한 대답은 자신이 진정 혼백의 주재권을 장악하고 지수화풍을 자유자재로 모이고 흩어지게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398~399쪽


  지수화풍을 자유자제로 모이고 흩어지게 한다니? 살아 생전에 '혼과 백'을 자유로이 다스려서 육신을 여관방 출입하듯이 드나들다니? 정말 쌩뚱 맞다는 생각이든다. 도교의 도사들이 도술을 부릴 수 있다며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는 혹세무민을 저지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21세기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도사 혹은 사이비 종교인들이나 할 것 같은 표현을 불교 서적에서 읽으니 못내 불편하다. 



  화두에 대한 갈증에서 읽기 시작한 책을 내려 놓았다. 강신주의 '메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책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쉽게 풀어쓴 윤홍식의 반조선이 묵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강신주의 책을 읽기 전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강신주의 화두 풀이를 듣기 전에 화두에 관한 기초체력을 키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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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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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삼국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수십만의 군대가 서로 어우러져 진을 펼치고 용맹무쌍한 장수들이 지략을 펼치는 광활함에 매료되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역사는 좁은 영토에 유약한 문신들이 왕권을 견제하며 알콩달콩 싸우는 인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삼국사기를 읽으며 매료된 이유도 고구려의 용맹함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구나!! 성인이 되어 중국의 역사를 심도있게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강정만 교수의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당, 송, 명, 청 역대 황제 평전을 읽고 이제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펼쳤다. 중국을 대표하는 한나라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첫장을 장식한 것은 한고조 유방이다. 초한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도 받은 유방에 대한 인상은 공부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껄렁대는 형님 같다는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노는 스타일의 인간이다. 게다가 허풍도 쎄다. 여공을 만나기 위해서 돈도 없는자가 "축의금 일만냥을 내겠소"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한 그가, 귀족 출신의 탁월한 지략을 갖춘 항우와 싸워 승리했다. 중국 문화의 원형을 탄생시킨 한나라를 건국했다. 

  우리 학부모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원한다. 허풍도 쎄고, 친구와 어울리며 공부에 관심없는 유방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혀 퇴학을 당했을 것이다. 태평세에는 공부잘하고 부모의 말씀을 잘듣는 모범생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의 법칙이 무너진 난세에는 모범생 보다는 자신의 법칙을 만드는 유방과 같은 인물이 난세를 평정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일까? 아님, 태평세일까? 인공지능의 급성장, 기후위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의 붕괴!! 이것은 유방과 같은 인물을 필요로하는 난세의 증거가 아닐까?

  중국의 3대 악녀라하면 무측천, 여태후와 그리고 서태우를 말한다. 이중에서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실질적으로 한나라를 통치한 여황제라할 수 있다. 정사에는 그녀를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유방의 사랑을 받은 척부인을 팔다리를 자르고 두눈을 파내고 귀를 멀게하여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돼지 우리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척부인을 보여주며 사람돼지라 말했다. 충격을 받은 혜제는 정치에 뜻을 잃고 술독에 빠져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이것이 여태후를 악녀로 기억하는 우리의 근거이다. 그런데, 여태후 집권시기에 백성의 삶은 좋았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화로웠다. 남성중심의 역사관이 무측천과 여태후를 악녀로 만들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능한 남성 황제보다는 평화로운 여태후의 시기가 더 좋았을 것이다.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으며 '왜 이리도 중국에는 못난 황제가 많은가?'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을 때, 너무도 많은 영산군과 철종을 합쳐 놓은 황제들을 보면서 명나라가 200년을 존속했던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중국 왕조들은 건국 후, 빠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그 전성기가 오래가지 않고 빠른 쇄퇴기에 접어든다. 한왕조의 수명이 보통 2백년 정도이다. 한나라가 400년 동안 존속했다고는 하나, 이는 중간에 신나라의 등장을 빼고 전한과 후한을 합쳐서 만들어진 존속기간이다. 우리 나라의 왕조가 보통 500년 동안은 존속했다는 점을 본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는 단명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의 못난 황제는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외척을 끌어들여 환관을 제거하면 외척이 발호하고, 외척이 환관을 제거하려 선비들을 끌어들였다가 환관에게 제거당하는 '당고의화'가 벌어지기도 했다. 황제 곁에서 황제의가 주색잡기에 빠져들도록하거나, 방술사에 현혹되어 정사를 그릇치게 만들었다. 

  여기 황당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한 영제 시기에 화재로 소실된 남궁을 중건하기 위해서 낙안태수 육강은 토지세를 징수하자고 상소를 올렸다. 그런데 환관들은 그가 망국의 군주를 예로 들어 영명한 황제를 비판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육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간신히 육강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글귀 몇자를 꼬투리삼아 반대파를 죽이려하는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대한민국의 오늘에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들이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한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보다는 목에 칼이 찔린 야당 대표를 헬기로 이송한 것을 트집잡아 특혜시비로 비화시켰다.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우리의 언론을 보면 그들이 한나라의 환관들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든다.

  그렇다고 한나라에 충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환제 시기 양기 일족을 멸족시킨 5후는 국정농단을 한다. 서선이 자신의 첩이 되길 거부하는 이승의 딸을 묶어 놓고 과녁으로 삼고 술을 마시며 화살을 쏘았다. 이에 황부가 서선을 주살했다. 결국 그는 문초를 받고 삭발을 당했으며 중노동을 해야했다. 제북국 승상 등연은 후람과 단규의 하인과 식객이 행인의 재물을 약탈하자 이들을 처단했다가 파직당했다. 황부와 등연과 같은 사람은 한나라를 떠받치는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퍼센트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가 전한과 후한 각각 200년씩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1:1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개 성보다 작다. 중국은 23개의 성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중국을 한명의 황제가 다스렸다. 그는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 현명한 황제가 등극했던 시기에 중국은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나라였다. 그러나 용렬한 황제가 집권하면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중원의 권력을 농단하려는 자들로 들끓었다. 중국 역사에는 현군보다는 암군이 많았다. 그 속에서 중국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했다. 강력한 황제권을 가진 중국의 땅에 사는 백성의 삶보다는 군약신강의 우리 땅에 살았던 백성의 삶이 보다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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