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키우는 도덕경 : 노자도덕경하상공장구 옛글의 향기 4
노자 지음, 최상용 옮김 / 일상과이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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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은 쓸쓸히 밤하늘을 거닐지만, 온 천지의 강에  떠오른다. 고전은 달과 같다. 한권의 고전이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전중에서 '도덕경'은 읽는 사람의 마음밭에 따라서 달리 읽힌다. 읽는 사람이 어떠한 목적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읽는가에 따라서 너무도 달리 읽힌다. 주역을 토대로 유학자의 마음으로 왕필이 '도덕경'을 주석했다. 그 반대편에 제왕의 관점에서 하상공이 '도덕경'을 주석했다. 같은 책이지만, 왕필과 하상공의 마음에 비친 '도덕경'이라는 달은 너무도 달랐다. 필요하다면, 원문의 뜻을 반대로 주석하는 것도 불사할 정도로 너무도 다른 해석을 적어 놓았다. '노자도덕경주'에 이어서, 하상공주를 토대로 엮은 '내안의 나를 키우는 도덕경'을 읽기 시작했다. 왕필이 주석한 '도덕경'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1. 우리 주변을 비추다.

  배운다와 가르친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노자의 대답을 들어보자.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학문의 길은 날마다 쌓아가는 것이고, 도의 길은 날마다 덜어내는 겁니다. "

 

  교사가 되기 전에 날마다 나의 지식을 쌓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얇팍한 지식들을 쌓아갔다 생각하지만, 그 때는 내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다는 자신감(?)에 휩싸여있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 나서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듯하지만, 학생과 생활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나를 비워가는 생활을 했다. 초임 교사 시기에는 나를 비워가는 일이 어려웠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기 위해서 나를 더 채우려했다. 학생 상담에 필요한 얇팍한  지식으로 복잡한 그들만의 세상과 만난는 일은 너무도 무모했다. 교육학 서적 몇권과 심리학 서적 몇권으로 학생들의 복잡한 세계를 모두 알수 없다. 나를 비워야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내려 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새롭게 학생들의 이야기에 채워야 그들의 세계가 나의 눈에 들온다. 교사가 되기 위한 길이 지식을 쌓아가는 일이라면, 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을 내려 놓아야한다. 노자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교장과 교사는 같은 존재일까? 관리자들 중에는 자신을 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꾀 있다. 특히 장학사를 거쳐서 교장으로 발령받은 경우, 자신을 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교장이 많다. 교사를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학부모에게 어떻게 잘 보일 것인지만을 생각한다. "교사가 힘들면, 학생이 행복하다."라는 말도 스스럼 없이 하는 관리자들도 있다. 불행한 교사가 학생들을 기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까? 불행한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밝게 웃기 힘든 것 처럼, 행복하지 않은 교사와 대면하는 학생들은 기쁨이 넘쳐날 수 없다. 노자의 말을 들어보자.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 기세야부(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오직 위대하기 때문에 모자란 듯 보이는 겁니다. 만약 똑똑하였다면 세세하게 살피는 정치를 행한 지 오래되었을 겁니다. 그러한 사람은 소인배와 같은겁니다."

 

  탁월한 관리자일수록 자신을 내려 놓고 교사와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똑똑한 관리자일 수록 자신의 교육관을 교사와 학생에 강요한다. 그리고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며 교사를 가르치려한다. 이00교장과 나00교감의 경우가 그러했다. 똑똑한 장학사 출신의 교장과 교감이었기에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려 교사의 의견을 들었으나, 결론은 자신의 주장으로 끝을 맺었다. 무늬만 '민주적인 의사결정'이었을 뿐이다. 세세한 그의 '가르침'은 학생을 지도하는 일부터, 교사가 사용하는 학습지까지 세세하게 지적했다. 똑똑한 관리자에 대한 불만은 높아 갔다. 연구학교 지정을 받기 위해서 교사 투표를 했으나, 많은 교사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똑똑한 관리자에 대한 교사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독일 군대의 속담에 "유능하며 부지런한 자는 참모로 적당하다. 유능하고 게으른 자는 탁월한 지위관이 될 것이다. 무능하고 게으른자는 조직에 쓸모없는 사람이다. 무능하고 부지런한자는 조직에 해가되는 사람이니, 반드시 제거해야한다."라는 말이 있다. 유능하고 부지런한 장학사 출신의 관리자들은 교장, 교감에 부적당하다. 그들은 교장과 교감의 참모로 적당할 뿐이다. 교장이 되기 위해서 승진점수를 얻고, 승진점수를 얻기 위해서 장학사 시험을 본는 지금의 인사시스템은 교사와 학생을 행복하게 학교를 만들어가는 관리자를 만들 수 없다. 학부모의 눈치만 보면서, 타학교 보다 더 많이 학생을 압박하여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시키고 교사를 감시와 처벌의 눈으로 보게만든다. 똑똑한 관리자가 아닌 탁월한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 마치 모자란듯 보여야한다. 그래야 교사와 학생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다.

  학교에서 우리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자. 유명회사의 양00회장이 부인에게 마약류를 권하고, 직원들에게 구타를하고 이를 촬영했다. 우월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힘없는 여성과 직원들에게 갑질을 한 것이다. 연일 터져나오는 갑질 뉴스에 몸서리를 친다. 노자라면 갑질을 해대는 사회지도층분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었을까?

 

  "故貴以賤爲本 高必以下爲基 是以侯王 自爲孤寡不穀(고귀이천위본 고필이하위기 시이후뫙 자위고과불곡)-그러므로 귀한 것은 반드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반드시 낮은 것을 기초로 합니다. 이 때문에 제후나 왕은 스스로를 '고아 같은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춧돌이 없이 어찌 기둥이 홀로 설수 있을까? 꼴찌가 없이 어찌 일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앞서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 있어야한다는 평범한 이치를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모르고 있다.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반드시 낮은 것을 기초로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왕이 자신을 '과인' 즉, 부족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갑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노자의 말에 귀기울여야한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2. 정치를 비추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수는 없다”면서 “모든 부담을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장벽을 쌓아서 불법이민을 막겠다며, 이를 반대하는 민주당과 각을 세웠다. 결국 셨다운 상태에 돌입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라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다. 초강대국은 어떠한 모습이어야할까? 노자에게서 힌트를 얻어보자.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대국자하류 천하지교)-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어서, 천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대국은 큰 강처럼 자신을 낮춰 세상의 모든 물을 줄기를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야한다. 천하의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다. 이제 트럼프는 미국이 큰강도, 큰바다도 아니라며 폐쇄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자, 대국의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길이다. 중국 당나라를 보라, 유럽의 로마제국을 보라, 서아시아의 오스만제국을 보라!! 제국은 천하의 '하류'였다. 자신을 낮추어 모든 문화와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들 중에서 능력이 탁월한자를 관직에 임명하며 제국의 힘을 키웠다. 문화의 용광로이며 인종의 전시장이었다. 대국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노자는 2천년 전에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은 노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

  어느 정치인이나 꿈꾸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올랐다면, 역사에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때로는 그 업적을 마김과 동시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도 도구로도 활용된다. 과거 이명박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했다. 20조가 넘는 예산이 들어갔고, 4대강은 큰빗이끼벌래가 활개를 치고, 녹조라떼의 녹색물결로 뒤덮혔다. 노자라면 우리에게 어떤말을 해줄까?

 

  "將欲取天下而爲之 , 吾見其不得已 (장욕취천하 이위지 , 오견기부득이)-장차 온 세상을 휘어 잡고자 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꾸미는데, 내가 보건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시이성인거심 거치 거태)-이 때문에 성인은 지나치게 극심한 것을 버리고, 사치스러움도 버리며, 과분한 것 역시 버립니다.)"

 

  무언가를 함으로써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자신 주변 사람들에게 떡고물을 줄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부질없는 일이며, 심하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극심한 사치도 버리고, 과분한 것 역시 버린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나랏살림을 망치는 정치인들과 그러한 정치인을 선출하고 지지하는 국민에게 노자는 따끔한 말을 하고 있다. 정치인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마음이다.

 

3. 니체와 공자를 비추다.

  고수들은 서로 통한다. 비슷한 주제를 달리 말하기도하고, 같은 의미의 말을 놀랍도록 일치하기도한다. 노자의 말은 니체와 공자의 말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음미해보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3단계 변신을 이야기했다. 낙타가 사자로, 사자가 아이로 변화해 가면서, 정신의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낙타가 중세의 짐을 지고, 굴종적인 노예의 삶을 사는 존재라면, 사자는 자신을 짓누르는 짐을 벗어던지고 당당히 자신의지를 밝히는 존재이다. 그에 반해서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다. 힘이 약하면서도 힘이 강한 부모를 마음대로 다루는 존재가 바로 아이이다. 놀랍게도 노자도 아이의 이러한 힘을 알고 있었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곡 상덕불리 복귀어영아)-남성스러움을 알면서 여성스러움을 지킬 수 있다면 천하의 계곡이 될 수 있습니다.천하의 계곡이 되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습니다. 다시 갓난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갑니다."

 

  남성스러움을 알면서도 여성의 부드러움을 지킬 수 있다면, 계곡처럼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마치 갓난아기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웃음으로 부모를 기쁘게하고, 아기가 아플때는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한다. 니체보다 앞서 노자는 2천여년전, 아기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고수끼리는 통하나 보다.

  공자의 말과 노자의 말을 비교해보자. 우선, 공자와 노자 모두 말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信言 不美 美言 不信 善者 不辯, 辯者 不善,(신언 불미 미언 불신 선자 불변 변자 불선)-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선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선하지 못합니다."-노자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자왈 교언영색 선의인)-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잘하고 표정을 잘꾸미는 사람치고 어진사람이 드물다.-공자

 

  중국철학을 대표하는 공자와 노자 모두 말잘하는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 서럽지 못하며, 말잘하는 사람은 선하지 못하다고 한 노자! 말잘하고 얼굴표정을 잘 꾸미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 드물다는 공자! 말보다는 진실된 행동을 중시하는 선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말을 잘 표현하는 것을 중시한다. 아고라 광장에서 토론을 통해서 발전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양의 역사를 본다면,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반면 동양인들이 말잘하는 사람을 싫어하다보니, 활기찬 토론과 의견교환이 동양에서는 이뤄지기 힘들지 않았을까? 물론 활기찬 토론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같은 계층안에서는 토론이 이뤄졌겠지만, 윗사람과 아랫사람, 어른과 아이 사싱의 토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굴곡진 현대사에서는 "말잘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유행했지 않는가! 이제는 말잘하는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폭력보다는 말로서 상대를 설득하는 그러한 사회를 꿈꿔본다.

  공자와 노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찌 대답했을까? 놀랍게도 공자와 노자의 입장은 일치한다.

 

  "知不知上 不知知病(지부지상 부지지병)-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는 게 최상의 덕이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하는 게 병폐입니다."-노자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알이다."-공자

 

  공자와 노자 모두, 모르는 것을 아는체하는 것을 커다란 병폐로 여겼다. 또한 자신의 무지를 아는것을 참다운 앎이라 여겼다. 노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알면서도 모르는 것 처럼하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 이러한 공자와 노자의 말은 소크라테스에게서도 발견된다. 델포이 신전에 적혀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너의 무지를 알라는 말이다. 동양을 넘어서 서양의 현자도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참다운 앎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라리는 과학혁명을 설명하면서, 중세 시기에는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신의 뜻'으로 설명했다. 그들은 자신의 무지를 몰랐다. 반면에 근대에 들어서서 자신의 무지를 깨달은 유럽인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서 실험과 관찰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났다. 그 과학혁명의 힘으로 서양이 동양을 침략해온다. 동서양의 현자, 현대의 현자들은 모두 말한다. 너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 그것이 참다운 앎의 시작이라고.....

  충신과 참다운 친구는 언제 나타날까? 공자와 노자가 비슷한 말을 했다.

 

  "六親不和,有孝慈;國家昏亂,有忠臣(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가족 관계가 조화롭지 못하자, 효도와 자애로움이 있게 되었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충성스러운 신하가 생겨났습니다."-노자.

  " 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 후조)-추운 겨울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공자

 

  임진왜란이 닥쳐야 이순신과 같은 충신 영웅이 등장한다. 눈내린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 불행이 닥쳐야 옥석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노자와 공자는 말하고 있다. 내가 행복하고 돈과 권력이 있다면, 나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그들이 얼마나 함께할까?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들의 문상이 줄을 잇지만, 정승이 죽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것이 세상사이다. 진정 사람을 바라보는 참돈눈이 있다면, 불행이 닥쳤을때, 나의 곁에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볼 것이다. 그러한 눈을 갖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할 것이다.

 

4. 왕필과 하상공을 비추다.

  왕필과 하상공은 '도덕경'에 주석을 달았다. 같은 책에 주석을 달았으나, 서로의 원문이 다른 경우도 있으며, 같은 문장을 달리해석한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글자의 뜻을 정반대로 설명한 경우도 있다. 그것을 모두 여기에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중 몇가지만 소개해 본다.

 

  "不自見故明(불자현(견) 고명)"

 

  이 문장의 '見'을 현으로 읽어야할까? 견으로 읽어야할까? '현'으로 읽느냐 '견'으로 읽느냐에 따라서 해석에 차이가 생긴다. 왕필은 '현'으로 본 반면에 하상공은 '견'으로 보았다. '현'으로 읽을 경우,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지혜가 밝게 드러나고'라고 해석된다. 반면에 '견'으로 읽을 경우, '성인은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기에 밝게 알고'로 해석된다. '드러낸다'와 '본다'의 해석상의 뉘앙스는 약간다른다. '현'으로 읽을 경우, 성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신하들로 하여금 악역을 맡도록하는 고난도의 통치술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견'으로 읽을 경우, 자신이 직접 세세하게 살피지 않더라도 각종 첩보기관을 이용해서 세상의 정보를 얻고 통치한다는 의미로해석된다. '도덕경'을 제왕들에게 통치의 방법을 알려준 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노자 통치술의 무서움이 서려있는 문장이다.

  같은 문장의 해석을 달리한 경우를 살펴보자.

 

  "民不畏威, 則大威至.(민불외위 즉대위지)"

 

  위의 문장을 하상공은 '백성들이 해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해로운 것이 이르게'된다고 해석했다. 반면 왕실은 '백성이 위엄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큰 위엄이 이르니'로 해석했다. 왕필의 경우 '위'를 해롭다로 해석했다. 백성들이 작은 해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보다 큰 해로움 즉, 죽음에 이른다는 문장으로 해석한 반면에, 왕필은 군주가 겸손한 자세로 물러나는 것을 버리고서 자신의 위엄과 권력에 의탁하면 만물이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이 감시와 법망을 피하려하기에 위엄으로 백성을 통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위'를 해로움으로 볼 것인가? 위엄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문장의 해석이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왕필과 하상공을 비롯해서 수많은 주석서들의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찌해야할까? 나는 '고전은 자신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나의 명제로 되돌아 간다. 고전이라는 거울은 자신을 비추고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수많은 주석서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주석가들의 고민을 토대로 고전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그들의 모습이 한결같이 않다고 그들을 탓할 수 없다. '도덕경'은 질문에 따라서, 질문자에 따라서, 사회에 따라서 대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도덕경'의 참다운 가치이다.

  하상공은  한자의 의미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큰 환란이 내 몸에 이르러도 귀하게 여기며 두려워해야합니다"의 '貴(귀)'를 '귀하다'라는 본뜻과 반대로 '畏(외)' 즉, 두렵다로 주석을 달아 놓았다. 큰 환란을 두려워해야한다는 하상공의 해석과 큰 환란을 내몸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왕필의 해석을 비교하면서, 하상공과 왕필이 스스로 구하고자 했었던 시대의 질문이 달랐음을 짐작해본다. 그들의 논쟁 숲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시대의 질문과 나의 고민으로 '도덕경'을 비춰봐야할 것이다.

 

  도덕경을 읽겠다는 1년여의 대장정을 마칠 시간이 왔다. 왕필본 '도덕경'과 하상공본 '도덕경'을 비교하면서 하루에 한구절씩 혹은 일주일에 한구절씩 읽어 내려갔다. 도덕경 81장 6천여자를 읽으며, 고전의 숲을 거닐 때 길을 잃지 않아야함을 깨달았다. '도덕경'이라는 달은 우리가 밤길을 갈때, 나의 앞길을 밝혀주는 존재일뿐, 나의 길을 대신가주는 존재는 아니다. '도덕경'은 도구일 뿐, '도덕경'이 목적일 수 없다. '도덕경'이라는 좋은 안내서의 도움을 받아서, 나의 인생의 고개하나를 넘었다. 인생이라는 머나먼 길을 고민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독자에게 하사공본 '도덕경'을 추천해본다. 물론, 왕필본 '도덕경'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그 미묘한 차이에서 느끼는 재미는 더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 또하나의 길을 찾아 떠난다. 어느 고전을 안내서로 새길을 떠날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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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2-28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이 공자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공자 사상을 세계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중국의 국제적인 행보를 보면 군자답지 않습니다.. ^^;;

강나루 2018-12-28 17:43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유교에는 사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도 있는데 강대국의 미덕을 그들은 보이지않는군요

짜라투스트라 2018-12-2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요새 제가 관심 있는 영역의 책을 읽고 글을 쓰셔서 댓글을 안 쓸 수가 없네요. ^^;;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공자나 노자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긴 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글 잘 읽었습니다.^^

강나루 2018-12-28 20:3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새해 맞이하세요

서니데이 2018-12-31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제 서재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이 시작됩니다.
새해에는 항상 좋은 일들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나루 2018-12-31 23:04   좋아요 1 | URL
항상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는 서니데이님도
2019년 행복하고 즐거운 한해 되시길 빌어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문지현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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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는 '책요정'이 산다고 한다. 고민이 있고, 걱정꺼리가 있는 사람이 책장 사이를 지나가면, '책요정'이 나타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보여준다고 한다.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찾아온 두통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문득 책장 사이를 지나갔다. 나의 두눈에 '자존감 대화법'이라는 책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나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책장을 넘기며, 현직 정신과 의사가 전해주는 대화법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1. 불만에서 시작하다.

  저자 문지현의 글을 읽으면서, 강한 반감이 일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소위 '공자님 말씀'이었다. '욕하지 말라', '독한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말라'라는 말은 부처님을 비롯한 성인들께서 일찍이 하셨던 말들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의문과 반감이 계속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의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데, 억울해서 울분이 터져나오는데, 혼자서 욕하지도 말라니, 말이되는가? 하다못해 담벼락에라도 욕을 해야하지 않는가? 연신 저자의 처방전에 불만이 쌓여갔다.

  독설을 하지 말라는 말에 이어서, 저자가 제시한 '좋은 부부관계 유지 비결'은 더더욱 답답했다.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술르 인정하지 않는 아내를 어떻게 인정하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에게 해답을 제시해 주리라 생각하고 읽었던 책에서는 즉효약을 처방해주지 않았다. 초조함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혹시, 책의 후반부에는 그 비결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

 

2. 자존감 대화의 첫걸음 - 긍정적 대화!!

  자존감 대화를 위해서, 독설을 금지하라 했던 저자는  '긍정적 표현'을 사용할 것을 당부한다. '차량파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보다는 '고객의 소중한 차를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안내에 따라 주세요'라는 긍정적 표현이 보다 효과적이란다. TV 뉴스에서 "쓰래기 무단 투기 금지"라는 경고 문구 보다는,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은 쓰래기를 버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화분을 가져다 놓았더니, 쓰래기 투기가 사라졌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데는, 추운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효과적이라는 일화가 현실에서도 드러맞고 있다.

  저자는 화가 나지만 상대에게 공손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조차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게 당신을 잘 대하도록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 공손하게 대해야한다고 문지현은 말한다. 성경에도 '뿌린데로 거두리라',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라는 물이 있지 않은가? 화가 난다고 강한 독설을 퍼붓기 보다는 침착하게 공손하면서도 부드럽게 상대를 대해야한다. 고수는 목소리를 높이는자가 아니라, 공손히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말하는 자였다.

 

3. 자존감이 낮은 자일수록 강해보이려한다.

  학교에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명품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과연 저 아이는 가정이 진실로 어려운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설명이 이책에 있다. 명품족일 명품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보다 경제적인 수준에서 약간 아래 단계에 속한느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밑바닥에 깔리 열등감이 그들을 '명품'으로 자신을 감추려하는 것이다. 명품을 입고다니는 자들은 사실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하는 불쌍한 자들이었다. 문제는 자존감이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당당히 값싼 옷을 입고 다니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려 저축하며 살 것이다. 나는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명품 그이상이기 때문이기다.

  TV에서 부모를 때리고 도망치는 패륜 아들의 뉴스가 나왔다. 그 부모는 피묻은 옷을 입고 나가는 아들에게 '아들아, 옷 갈아입고 가라'라고 말했다한다. 죽어가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의 사랑에 가슴이 미어졌다. 부모를 때리는 패륜아들의 대부분은 '성격장애'일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성격장애자'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가족을 무시하고 마구 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게 다른 가족들을 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에게 하는 막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막말과 같습니다.'

 

  겉으로 강해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너무도 허약한 사람들이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강하게 막말을 하는 사람들일 수록, 가족에게 막말을 하는 사람일 수록, 그들은 자존감이 낮은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아, 이를 숨기려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할까?

 

4. 사막을 건너는 방법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와 만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함부로하는 '폭군'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할 때, 나는 어떻게 나를 보호해야할까? 이 책에는 놀랍게도 그 대처법을 알려주고 있다.

 

  "방금 뭐라고 하신거죠"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가 맞으세요?"

  "제가 잘못들은건 아니겠죠? 다시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상대와 대면을 회피하기 보다는 당당히 그와 맞서도록 주문한다. 그렇다. 내가 그를 두려워한다면, 그는 나에게 '폭군'으로 군림할 것이다. 내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나에게 폭군으로 군림할 수 없다. 그럼, 그와 피틔기면서 싸워야할까? 문지연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기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니체

 

  니체의 통찰은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도 타당했다. 내가 '폭군'과 싸우면서 '폭군'이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폭군'과 싸우면서도 내가 '폭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니체의 탁월한 해안은 심리학에서도 빛을 발산한다.

 

5. 신이 아이들을 보낸 이유

  저자는 아이들에게 좋은 말로 강화를 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영국 작가 메리 보탐 호위트의 시를 소개한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시합에서 일등을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 열게 하고

   우리를 덜 이기적이게 하고

   더 많은 친절과 사랑으로

   우리 존재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중략)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울렸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시합에서 일등을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귀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성적에 따라서 일희 일비한다. 마치 자녀가 자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성적을 높이 받으려 태어나기라도 하는 듯이,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여기고 있다. 아이들은 "더 많은 친절과 사랑으로 우리 존재를 채우기 위해서"이 땅에 왔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족쇄로 자녀들을 자신의 아바타로 만들고 있다.

  그 다음 시귀는 더더욱 충격적이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면 안된다는 말인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사회는 암울하다. 신이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는 말은, 신이 우리를 우리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민심은 천심이기에 우리 자신이 우리를 포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하다.

 

  이 책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뜻한 말, 진실된 말로 대화하라고 외친다.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의 해결책도 '진실된 말'과 '따뜻한 말'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이다.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듯이, 부부싸움을 않하는 것보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어떻게 화해할 것이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은 그 힌트를 제시한다. 솔직히 직면하고, 먼저 말하기 보다는 먼저 들어주고, 진실된 마음과 따뜻한 말로 함께하라고... 이제 실천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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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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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능가하는 책을 만들겠다.!' 이덕일의 포부가 담겨져있는 말이다. 그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한 수많은 역사책을 저술했다. 그리고 그 책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역사책은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대하드라마였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이덕일의 글재주는 인정한다. 탁월한 필력을 자랑하는 이덕일의 야심작 '조선왕조실록1' 태조편을 펼쳤다. 그만의 박진감 넘치면서도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글재주를 다시한번 느껴보자.

 

1.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조선왕조 실록

  이덕일의 역사책들은 한편의 영화와 같은 서술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독자들을 책속으로 빨아들인다. '조선왕조실록1'도 처음부터가 극적이다. 하날에서 불길한 징조가 조정에 보고된다.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죽으리라, 천하가 임금을 바꾸리라'라는 점사가 보고된다. 바로 이때, 변방의 한 장수가 토지개혁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가 바로 태조 이성계였다. 이 얼마나 이성계의 등장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인가! 007 스리즈를 비롯한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서 영화 초반부에 대규모 액션씬을 보여주어, 관객을 영화에 빨려들어오게한 다음,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사구조와 너무도 흡사하다.

  이덕일은 고려말 조선초의 사건들을 시기순대로 서술하다가 갑자기 시기를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는 '플래쉬 백'을 사용하고 있다. 자칫 민밋한 서술로 따분함을 줄 수 있는 역사서술을 '플래쉬 백'을 사용하여 독자가 손에 땀을 쥐며 책에 몰입하도록 구성한다. 타 역사책들과는 달리 이덕일은 독자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들이 따분해할 즈음에, 강력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들을 배치했다. 이것은 이덕일 이기에 가능한 역사 서술이다.

 

2.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역사책

  이덕일을 '단재 신채호를 계승한 역사학자'라고 평가한다. 이덕일 스스로가 자신을 '단재에게 사사받았다.'라고 말한다.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단재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학맥을 잇고 있다는 생각이 물신 배어난다. 한예로, 고려의 강역에 대한 주장 자체가 기존 교과서와는 달랐다. 중국'명사'를 근거로 명나라 철령위의 위치를 요동에 비정한다. 주원장이 화주에 철령위를 설치한다고 했는데, 난데 없이 요동을 정벌한다는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던차에, 이덕일의 설명은 나의 의문점을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이덕일은 요동정벌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으로 보았다. 특히, 정도전에 의해서 준비되었던 요동정벌의 경우, 중국 명나라의 정세를 본다면 충부히 승산이 있다고 평가한다. 정도전의 북벌이 이덕일 처럼 비중있게 서술한 역사서는 드물다. 타인이 관심 없어하고,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며 버려버린 역사를 이덕일은 보듬어 안았다. 그리고 이덕일의 시선으로 새롭게 서술했다. 이덕일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피가 끓고 결정적인 순간에 북벌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 땅을 치고 통곡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덕일의 힘이다.

 

3. 입체적으로 역사를 복원하는 이덕일

  기본의 역사책들이 널리 알려진 정사류의 책들을 이용해서 서술되었다면, 이덕일은 '화동인물총기' 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발굴하여, 그 동안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던, 역사의 패배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한다.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씌여진 고려 말의 역사가 아닌, 고려왕조를 대변할 수 있는 사서를 준비하는 그의 노력에 절로 감탄이 난다.

  이덕일은 사료를 발굴해서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에서 더 나아가서, 이덕일만의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서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낸다. 앞에서는 손을 잡고 뒤에서는 공격하는 이성계 특유의 전략을 잘 분석해낸 것도 이덕일의 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압록강 건너 원세력을 몰아낸 인당장군의 목을 베서 원나라에 보낸 공민왕의 모습을 그릴 때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민왕의 마키아벨리스트적 모습을 그려내기도 했다. 날카로운 이덕일의 분석력으로 정도전과 이성계를 분석하고 그들의 장점과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역시 이덕일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이덕일의 글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잉된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키는 면도 있고, 이색의 죽음을 적으면서, 그가 이성계 일파가 보낸 술을 마시고 독살되었다는 내용의 기록은 싣지 않고 있다는 점은 그의 책의 한계이기도하다. 특히, 이덕일의 민족주의는 그를 돋보이게하면서도 그의 한계를 도드라지게하는 양날의 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덕일이 동북항일 연군을 전공하고서는 왜? 고대사와 조선시대를 기웃거리냐고 비웃을 수록, 이덕일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박사학위를 받은 분야만 전문가이고, 그외의 곳은 아무리 연구를 할지라도 비 전문가라는 그들의 우수운 논리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덕일이 시작한 조선왕조실록 편찬 프로잭트가 부디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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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강나루 2018-12-19 2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서재달인이시죠
항상 많이 배우고 있어요
새해에도 즐거운 이웃 되자구요^^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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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서 였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친구가 두권의 책을 빌려주었다. 하나같이 재미있고 많은 진실을 알려준 책이었다. 그 중한권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역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유시민은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그 책을 유시민이 지명수배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쓴 책이란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의 책을 '국가란 무엇인가'를 거쳐, '역사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도 성장했지만, 유시민의 글쓰기도 많이 변화했다. 그의 역사 글쓰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1. 유시민님, 맞는 표현인가요?

  전문역사가가 아닌, 유시민의 책을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쉽게 읽을 수 만은 없다. 하나하나 과연 유시민의 말이 옳은지를 눈독들이며 읽었다. 직업병이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만리장성 바로 너머 요동지역'이라는 표현이 과연 옳을까? 문제의 문장을 살펴보자.

 

  "신채호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고대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 압록강이나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만리장성 바로 너머 요동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유시민은 주어를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로 본다면, '만리장성 바로 너머'는 요동 지역이 아니라, 북경이어야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만이, '만리장성 바로 너머'는 '요동지역', 혹은 요서지역이 될 수 있다. 유시민의 실수었을까? 아니면, 공간개념이 확실하지 않아서 생긴 오류일까?

  둘째, 백남운은 '민족주의 사학자'일까? 사회경제사학자일까? 유시민은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백남운은 사회경제사학자이다.  이들 사회경제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실증성이 약하다며 비판한 자들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이들을 한데 묶었다.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백남운이 사회경제사학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회경제사학자 백남운을 민족주의 사학자로 묶은 이유를 서술했어야했다. 그것이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특히, 이 책을 읽을 중고등학생은 유시민의 책을 그대로 믿고 시험에 오답을 고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셋째, '선사시대'를 '선사시대'로 부르는 것은 합당한 표현일까? 유시민의 주장을 살펴보자.

 

  "인지혁명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경우 선사시대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농업혁명 전에도 역사가 있었다. 유적과 문헌 사료가 없고 그 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몰라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 유시민은 '선사시대'를 역사가 없는 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선사시대'란 역사 이전의 시대란 뜻이다. 즉, 역사시대는 문헌기록이 남아있는 시대를 뜻한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문헌기록을 토대로 과거를 연구한다. 고고학적 자료는 부차적인 자료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선사시대는 역사 이전의 시대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분야는 고고학이다. 따라서 '선사시대'라는 표현은 '역사 없는 시대'라는 뜻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라는 뜻이다. 유시민이 선사시대를 '역사 아닌 시대'로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자의 실수일까?

 

2. 유시민님,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시민의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시사분석에 감탄하며 동의했던 시절이 있다. 그를 지지했고, 그가 정계를 떠난다고 발표했을 때, 그를 알아주지 않는 국민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그가 쓴 역사책들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정치와 시사를 바라보는 그의 해안에는 감탄하지만, 역사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한숨이 나온다.

  첫째, '무함마드가 문맹이어서 신의 말씀을 적지 못하고 암송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유시민의 글을 다시 살펴보자.

 

  "요즘 말로 하면 오랫동안 '무역회사'에 근무한 '젊고 똑똑한 사장님의 남편'이 글을 몰랐을 리 있겠는가."

 

  위인 중에서는 문맹인 자들이 꾀 있다. 칭기즈칸도 문맹이었다. 그러나 글을 몰랐음에도 현명한자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지혜를 얻었다. 이를 통해서 제국을 경영했다. 잉카문명의 경우 귀푸라는 채색 매듭을 사용하여 정보를 기록했지만, 문자는 없었다. 문자가 없이도 제국이 경영된 사례는 역사에서 흔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인도의 경우, 문자 기록이 많지 않다. 인도인들은 암송을 통해서 지혜와 지식을 전수했다. 불교 경전이 정리된 것도 중국과 인도를 오고간 승려들에 의해서 중국땅에서 한자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무하마드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오히려 글을 알아야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유시민의 생각이 '암송의 위력'을 이해못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 할머니들은 글을 알지 못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기억하고 처리했다.

  둘째, '(14세기 까지)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 맞는 말일까? 일찍이 한나라 무제 시기에 장건에 의해서 비단길이 열렸다. 이 때부터 로마와 중국은 교류를했다. 이러한 교류에 사막의 대상들이 활약했다. 동서가 교류하는데 서아시아 지역의 상인들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622년 이슬람 공동체가 탄생한 이후, 이슬람 세력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력을 팽창해나갔다. 618년 건국된 당나라에도 이슬람 상인들이 들어와 활약했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롬에도 이슬람인들이 드나들었다. 14세기 까지 이슬람 문명과 중국문명이 만나지 않았다는 헌팅턴의 주장을 유시민은 어이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말려들었다. 역사적 사실을 과역 그러한지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이론에 사실을 왜곡해서 끼워 맞추는 비역사 전공자들의 한계를 유시민은 답습했다.

  셋째, 문명은 충돌하는 것인가? 교류하는 것인가? 유시민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높이 평가한다. 그의 책을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인용하면서 그를 세계적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역사학자도 아닌자를 세계적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 놓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인물일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토인비는) 자신이 만든 가설 또는 이론을 어떤 국제정치학자가 냉전 붕괴 이후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을 해석하고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쓰게 되리라고 예상했을가?"

 

  문명은 충돌할 것이라는 헌팅턴의 주장을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판했다. 정수일 교수는 '실크로드학', '동서문화교류사'를 연구하면서, 문명은 교류하는 것이며,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것이 자신이 역사를 연구하는 소명이라 말했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 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이질 문화를 배척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문화를 포용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문명은 교류해야하며, 교류의 역사이다. 충돌은 갈헐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일 뿐이다. 그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문명이 교류한 역사를 밝히고, 그 문명의 교류를 확대해야한다. 유시민이 이점을 통찰하길 바란다.

 

 

  오랜만에 유시민의 책을 읽었다. 유시민의 책은 쉽게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을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바쳤던 그가, 우리에게 많은 책들을 선물하고 있다. 그 선물이 계속되길 바란다. 물론, 역사분야의 책들이 나온다면, 나는 유시민의 책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이점을 유시민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ps. 유시민이 10번 읽었다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쉽게 풀어 쓰는 것도 좋으이라 본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을 위해서 풀어쓰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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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5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8-12-15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다닐 때, 역사를 가장 못했고 여전히 난해한 분야입니다. 전공하신 분께는 디테일한 오류들이 눈에 띄는가 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daram 2018-12-15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유시민은 원래 제목처럼 삐딱한 인간이죠. 세치혀로 세상을 외곡하고 어찌해 보려 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시민은 선동가의 냄새가 짙습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가벼워 졌고 사회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어져 버린 어찌보면 문맹사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강나루 2018-12-15 10:56   좋아요 3 | URL
제 글을 오독하셨습니다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으로 지식을 쉽게 일반인에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외곡하고 선동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평가입니다
그의 삶을 토대로 볼때 그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했던 가슴 띄거운 사람이었습니다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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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기억하는가? '영초언니'라는 책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암흑과 같은 유신시대를 살아간 불꽃 같은 청춘들의 드라마이다. 처음 팟캐스트 '북티셰'에서 낭독해준 '영초 언니'의 서문은 나의 가슴을 아리게했다. 최순실이 '여기는 더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자, 서명숙은 여성학생운동의 신화라 할 수 있는 천영초를 떠올린다. 지금은 교통사고로 지능이 1~3살 정도로 낮아진 자신의 멘토를 떠올리며, 이 책을 집필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갖았다고 한다. 한동안 '영초언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았기에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읽지 못하고 있었다.  2018년 겨울이 다가온다. 이 겨울이 가기전에 불꽃 같은 삶을 살아온 그들의 기억을 읽기로 결심했다.

 

1. 가장 극단적 좌파는 극단적 우파가 될 수 있다.

  저자 서명숙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라고 제주도에서 올래길을 만들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독재정권의 헌신적인 지지자라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주도는 4.3 사건이 발생한 섬이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압승하고, 3선 개헌 유신헌법국민투표에서 100%에 가까운 압도적 찬성을 했다. 서명숙은 이를 무척이나 가슴 아프게 통탄한다. 제주도가 보수적 섬인 이유를 서명숙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변방에 있기 때문이라는 1차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정적 요인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4.3사건의 후폭풍 때문이었다. 서명숙이 인정했듯이, 4.3사건으로 제주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학상당했다.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4.3의 아픔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 있다. 여당을 찍지 않으면 언제 공산당으로 몰려 일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제주도를 보수의 섬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례는 대구, 경북지역에서도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제주도는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렸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수도없이 배출했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도 공산주의자였고, 박정희도 남로당원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대구폭동 혹은 대구항쟁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대구, 경북지역은 탄압을 받게된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고 나서, 대구, 경북지역에 수많은 공안사건이 만들어진다. 일가족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보수를 찍어야 산다는 믿음을 갖게된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도 보수의 아성을 스스로 붕괴시키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수가 되어야한다는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듯했다. 이들이 스스로의 알을 깨고 진실의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나온다면 그 때가 언제인지 .......

 

2. 지옥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당신이 지옥에 있다면, 천국에 있는 가족에게 지옥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지옥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에 지옥도 살만한 곳이라 말할 것이다.

   '영초 언니'를 읽으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담론'이 떠올랐다.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소개된 감옥소는 인간을 새롭게 태어나게하는 '대학교'였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인간관계와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감옥에도 애잔한 인간미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영초언니'에서 묘사한 감옥은 모순과 불합리가 쌓인 지옥의 모습이었다. 가장 그녀를 분노케하는 것은 감옥안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돈많은 '범털'들은 간수에게 뒷돈을 주며, 따뜻한 물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돈없는 '개털'들은 그 안에서도 차별을 받아야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살이의 고단함은 여름보다 겨울이 낫다했다. 겨울에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려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여름은 서로의 열기를 피하려 서로를 증오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이란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 생활의 비극을 보면서 인간 관계와 삶의 철학을 깨우쳤다. 그러나 '영초언니'에서는 신영복 선생의 심오한 삶의 통찰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사회적 모순의 희장자로 돈없고 빽없어서 감옥에 온 불쌍한 소년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과 그 안에서 알게된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그릇에 따라서 바라보고 깨닫는 깊이가 다른다.

 

3. 우리안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를 나는 좋아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탁월한 안목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녀의 대표작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을 감동 깊게 읽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서명숙은 한국의 아이히만을 만나게 된다. 영초언니를 만나며 담배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용기를 얻었다. 결국 영초언니와 함께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히만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서명숙을 전기고문한다며 협박했던 형사가 사실은 소문난 효자에 장기간 투병중인 부인을 정성껏 돌보는 아들이자 남편이었다. 아이히만은 독일에만 있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자! 위에서 선생님이, 자신의 상관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만 하는자는 악마가 될 수있는 자질을 갖고 있는자들이다. 우리주변의 모범생들이 사실은 악마가 될수있는 자들임을 서명숙의 책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한다.
  생각하자!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자! 학교의 교칙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의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과감하게 'NO'를 외치자! 'NO'를 할 수 없는자들은 불의에 맞서 '안된다'라고 외칠 수 없다.

 

4. 아! 영초언니!!

  감옥에 갔다와서도 '더욱 가열차게 끝까지 싸우겠다.'던 영초언니는 서서히 무너져 내려간다. 결혼을 했으나, 남편은 가정경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생활전선에서 그녀는 다단계회사에 발을 담그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친구들 까지 끌어들인다. 공부는 잘하지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자녀를 위해서 캐나다행을 선택하고, 남편과 이혼한다.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살던 그녀가 교통사고로 1~3살의 지능을 가진 영초가 되어버렸다.

  서명숙의 멘토는 무너져 버렸다. 그녀와 함께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했던, 이해찬, 유시민 등은 사회의 촉망받는 인사가 되었지만, 천영초 그녀는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독재자의 잔당들이 떵떵 거리며 잘살고 있는 오늘! 왜? 불의에 맞서 자신의 청춘을 불태운 그녀가 이리도 불행한 삶을 살아야할까? 기독교 신자인 천영초 그녀에게 신은 존재할까? 아니, 신을 원망할 수없다. 신은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없기에.... 이땅의 천영초가 흘린 피와 땀의 댓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들에게 진빚을 갚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원망해야할 것이다.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의 청춘을 불꽃 같이 살다가, 연탄재가 되어 뒹구는 수많은 천영초들이 있다. 그녀들을, 그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자! 너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적이 있더냐? 불타는 뜨거운 가슴이 없다면, 이땅의 천영초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녀에게 진 빚을 이책을 주변인들에게 권하면서 갚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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