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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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삼국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수십만의 군대가 서로 어우러져 진을 펼치고 용맹무쌍한 장수들이 지략을 펼치는 광활함에 매료되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역사는 좁은 영토에 유약한 문신들이 왕권을 견제하며 알콩달콩 싸우는 인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삼국사기를 읽으며 매료된 이유도 고구려의 용맹함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구나!! 성인이 되어 중국의 역사를 심도있게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강정만 교수의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당, 송, 명, 청 역대 황제 평전을 읽고 이제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펼쳤다. 중국을 대표하는 한나라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첫장을 장식한 것은 한고조 유방이다. 초한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도 받은 유방에 대한 인상은 공부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껄렁대는 형님 같다는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노는 스타일의 인간이다. 게다가 허풍도 쎄다. 여공을 만나기 위해서 돈도 없는자가 "축의금 일만냥을 내겠소"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한 그가, 귀족 출신의 탁월한 지략을 갖춘 항우와 싸워 승리했다. 중국 문화의 원형을 탄생시킨 한나라를 건국했다. 

  우리 학부모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원한다. 허풍도 쎄고, 친구와 어울리며 공부에 관심없는 유방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혀 퇴학을 당했을 것이다. 태평세에는 공부잘하고 부모의 말씀을 잘듣는 모범생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의 법칙이 무너진 난세에는 모범생 보다는 자신의 법칙을 만드는 유방과 같은 인물이 난세를 평정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일까? 아님, 태평세일까? 인공지능의 급성장, 기후위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의 붕괴!! 이것은 유방과 같은 인물을 필요로하는 난세의 증거가 아닐까?

  중국의 3대 악녀라하면 무측천, 여태후와 그리고 서태우를 말한다. 이중에서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실질적으로 한나라를 통치한 여황제라할 수 있다. 정사에는 그녀를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유방의 사랑을 받은 척부인을 팔다리를 자르고 두눈을 파내고 귀를 멀게하여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돼지 우리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척부인을 보여주며 사람돼지라 말했다. 충격을 받은 혜제는 정치에 뜻을 잃고 술독에 빠져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이것이 여태후를 악녀로 기억하는 우리의 근거이다. 그런데, 여태후 집권시기에 백성의 삶은 좋았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화로웠다. 남성중심의 역사관이 무측천과 여태후를 악녀로 만들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능한 남성 황제보다는 평화로운 여태후의 시기가 더 좋았을 것이다.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으며 '왜 이리도 중국에는 못난 황제가 많은가?'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을 때, 너무도 많은 영산군과 철종을 합쳐 놓은 황제들을 보면서 명나라가 200년을 존속했던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중국 왕조들은 건국 후, 빠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그 전성기가 오래가지 않고 빠른 쇄퇴기에 접어든다. 한왕조의 수명이 보통 2백년 정도이다. 한나라가 400년 동안 존속했다고는 하나, 이는 중간에 신나라의 등장을 빼고 전한과 후한을 합쳐서 만들어진 존속기간이다. 우리 나라의 왕조가 보통 500년 동안은 존속했다는 점을 본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는 단명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의 못난 황제는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외척을 끌어들여 환관을 제거하면 외척이 발호하고, 외척이 환관을 제거하려 선비들을 끌어들였다가 환관에게 제거당하는 '당고의화'가 벌어지기도 했다. 황제 곁에서 황제의가 주색잡기에 빠져들도록하거나, 방술사에 현혹되어 정사를 그릇치게 만들었다. 

  여기 황당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한 영제 시기에 화재로 소실된 남궁을 중건하기 위해서 낙안태수 육강은 토지세를 징수하자고 상소를 올렸다. 그런데 환관들은 그가 망국의 군주를 예로 들어 영명한 황제를 비판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육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간신히 육강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글귀 몇자를 꼬투리삼아 반대파를 죽이려하는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대한민국의 오늘에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들이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한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보다는 목에 칼이 찔린 야당 대표를 헬기로 이송한 것을 트집잡아 특혜시비로 비화시켰다.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우리의 언론을 보면 그들이 한나라의 환관들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든다.

  그렇다고 한나라에 충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환제 시기 양기 일족을 멸족시킨 5후는 국정농단을 한다. 서선이 자신의 첩이 되길 거부하는 이승의 딸을 묶어 놓고 과녁으로 삼고 술을 마시며 화살을 쏘았다. 이에 황부가 서선을 주살했다. 결국 그는 문초를 받고 삭발을 당했으며 중노동을 해야했다. 제북국 승상 등연은 후람과 단규의 하인과 식객이 행인의 재물을 약탈하자 이들을 처단했다가 파직당했다. 황부와 등연과 같은 사람은 한나라를 떠받치는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퍼센트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가 전한과 후한 각각 200년씩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1:1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개 성보다 작다. 중국은 23개의 성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중국을 한명의 황제가 다스렸다. 그는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 현명한 황제가 등극했던 시기에 중국은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나라였다. 그러나 용렬한 황제가 집권하면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중원의 권력을 농단하려는 자들로 들끓었다. 중국 역사에는 현군보다는 암군이 많았다. 그 속에서 중국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했다. 강력한 황제권을 가진 중국의 땅에 사는 백성의 삶보다는 군약신강의 우리 땅에 살았던 백성의 삶이 보다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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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뇌 - 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
대니얼 샥터 지음, 홍보람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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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기억 앞에 겸손해야합니다." 어느 서울시장 후보의 토론 발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발뺌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행동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많은 사람은 믿었다. 그런데, 이런 믿음에 반기를든 책이 있다. 부재가 '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이다. '도둑맞은 뇌'라는 제목도 매력적이었다. 뇌과학은 우리에게 기억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얼마나 전해줄까?


  우리가 뇌를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 fMRI와 Pet를 활용해서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다양한 뇌연구가 가능해졌다. 아직은 갈길이 멀지만 법정에서 증인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거짓을 이야기하는 뇌영상장비를 활용해서 판단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누구인가가 나의 뇌를 스캔해서 나의 생각을 읽는다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그러나, 그것보다 더 소름끼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된 기억에 관한 7가지 오류 중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잘못된 기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유도질문으로 용의자의 신원을 잘못 확인할 수 있고 암시적인 심리치료도 오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다. 경찰관의 '좋아요'라는 말 한마디가 증인의 오기억을 강화시키기도한다. 실제로 법정에서 증인의 오기억에 의존한 재판이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 진실이며, 선명한 기억은 거짓일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한 존재였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기억할 수도 있으며, 진실이 기억 속에서 왜곡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 앞에 겸손해야합니다.'라는 어느 서울시장 후보의 변명은 뇌과학에 근거해 볼 때 탁월한 지적이었다. 

  기억의 왜곡은 개인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가짜뉴스가 판을 쳤다. 쌍방 후보의 난타전 속에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표현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299쪽, 오류적 진실 효과)


  오류적 진실 효과는 한국 대선에서 극에 달했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악마화와 유튜브에서 가짜뉴스의 반복재생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최근 벌어진 이재명 암살 미수사건은 오류적 진실 효과가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까?

  그렇다면, 기억의 오류는 불행한 것일까? 저자 대니얼 샥터는 기억의 오류는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단언한다. 망각은 우리의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진화의 부산물이며, 오재인은 일반화를 얻은 이익에 대한 대가이며, 고정관념과 편견은 과거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불해야할 대가였다. 우리가 옛기록에서 보았던 '신선', '용' 등의 이야기도 오귀인, 오재인, 피암시성 등의 기억의 오류가 만들어낸 부산물인지도 모른다. 기억의 오류가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을 증대시켜 문학이 발전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이책을 통해서 가장 큰 수확은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하는지 뇌과학적 근거를 얻었다는 점이다. 신경영상연구에서 과거 경험을 회상하는 것과 관련된 뇌영역이 미래 경험을 상상하게했을 때 유사하게 활동성이 높아졌다. 즉, 미래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때, 과거의 경험에 대한 일화기억을 사용해 미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한다는 격언이 뇌과학적으로도 옳았다. 백지상태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우리가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았던 단순한 진리를 신경영상연구가 증명해주었다. 


  대니얼 샥터의 '도둑맞은 뇌'는 재미있는 책이지만 쉬운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억에 관한 우리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책이다. 특히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당 기억을 자주 떠올리거나 말하면 구체적인 형태로 기억된다는 팁(tip)도 제시해준다. 또한, 기억장치에 의존하는 것이 항상 기억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정보를 전해준다. 기억장치의 노예가 되지 말고 능동적이면서도 주체적으로 기억장치를 사용하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억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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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동남아 -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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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라는 지역에 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우리보다 뒤떨어진 지역, 열대지역이라는 조건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지역으로 생각한다. 나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책을 읽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동남아는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은 지역이라는 시실을....


  그렇다면 우리는 동남아로부터 무엇을 배워야할까? 그것은 외교에 있다. 동남아는 서세동점의 시기에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풍족한 자원과 향신료는 동남아에게 축복이기보다는 재앙이었다. 신이 동남아인에게 준 선물은, 그것을 지킬 힘이 없는 자에게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수완나부미(황금의 땅)'을 찾아서 인도인 이슬람인들이 동남아로 왔고, 그 뒤를 이어서 유럽인도 왔다. 그들은 동남아를 식민지로 삼으며 수탈했다. 식민의 아픔을 겪었기에 그들은 깨달았다. 약자가 강자에게 짖밟히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현명한 외교술을 터득했다. 

  약자의 힘은 단결이라고했다. 미국과 소련의 강자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동남아 국가들이 제3세계 외교에 참여한 것도, ASEAN을 결성해서 미국을 초대한 것도 약자로서 살아 남기 위한 현명한 외교술이었다. 강대국의 외교 논리에 휩쓸려가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판을 만들어 강대국을 자신의 판으로 초청하는 탁월한 외교술이다. 

  싱가포르의 라자라트남장관은 "태양이 여러개일 때야 말로 작은 행성들은 항해의 자유를 더 확보할 수 있다."(323쪽)고 말다. 혼자만의 힘으로 강대국을 상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ASEAN을 구성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마치 가얇픈 개미가 무리를 이루어 강하게 생존하는 모습을 떠올리게한다. 

  특히, 싱가포르는 작지만 강한 나라이다. 경제력만이 강한 나라가 아니다. 외교에서도 강소국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ASEAN을 주도하며, 필요하면 새로운 협력체를 만들고 이슈를 이끌어간다.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미국과 일본에 끌려다니며 의탁하는 외교 행태를 보여주는 우리 현실과 너무도 대비된다. 

  싱가포르가 강소국 외교의 모범을 보여준다면, 인도네시아는 한나라의 외교가 어떠해야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독립적 행동 외교"(Bebas dan Aktif), 즉 외부 강대국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국제 사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인도네시아의 외교는 자주 독립 국가의 외교는 어떠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일본과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는 사이, 문재인 정권시기 드높았던 외교적 위상은 추락했다. 우리는 더 이상 변수가 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며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며 경제적으로 추락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동남아의 싱가포르와 인도네이사가 보여주는 외교력은 우리의 외교가 어떠한 길을 가야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의 3분의 2의 국가가 식민지가 되었지만, 타이는 독립을 지켰다. 타이의 피분이 친일노선을 걸었기에 패전국의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으나, 타이는 패전국의 대우를 받지 않았다. 쁘리디를 주축으로한 '자유타이(세리티아)'는 OSS를 통해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전투없이 종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분단을 맞이했다. 부러움에 타이를 바라보았다. 라마4세와 라마5세의 개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유능한 국왕들 덕택에 지금도 왕실은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선입견이 진실일까? 자혜로운 국왕의 통치 밑에서 외세의 침략없이 타이인들은 행복하게 오늘날에 이르렀을까? 아니었다. 1976년 10월 탐마삿대학에 왕실 근위대와 경찰,군대, 우익청년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며 대학생들일 학살했다. 피흘리는 학생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의자로 내리치는 장면을 AP 통신 기자 닐 율레비치는 사진에 담았다. 자혜롭고 유능한 국왕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었다. 민주 공화국을 바라는 학생들에게 국왕은 자혜롭지 않았다. 

  태국 정치사를 전공한 저자 현시내는 타이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푸미폰 왕에 대해서 다른 평가를 내린다. 


  "결국 이는 30년에 가까운 군부 독재에 대항해 시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운동의 승리를 가로체는 일이었다. 푸미폰 왕이 스스로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나선 것이다."(287쪽)


  1973년 10월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군경은 탱크와 헬리콥터를 투입해서 해산하던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77명 사망 800여명 부상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날 푸미폰 왕이 "군부가 사퇴할 것이며, 새로운 총리를 임명해 의회를 재구성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를 통해서 그는 민주주의의 영웅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납치되었다. 이것이 타이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근원적 이유였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렇게 자란 자유는 때로는 납치당하기도한다. 타이처럼.....

  그런데, 어찌하여 푸미폰 왕을 타이인들은 존경하고 사랑하는가? 이는 푸미폰 왕의 어머니 상완의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어머니(매팔루앙)'라고 불리는 상완은 산간 벽지의 가난한 소수민족을 헬리콥터로 돌아다니며 보살핀다. 소수민족에게 상완은 하늘에거 내려온 어머니로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그녀의 아들 푸미폰 왕에게 이어져 자혜롭고 서민적인 국왕으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 

  아이는 태어나서 부모를 사랑한다. 생존을 위해서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고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푸미폰 왕은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국왕을 모독하면 최고 15년 동안 감옥에 갖혀 살아야하는 상황 속에서 국왕을 자혜로운 분으로 존경하며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마치 박정희 독재 정권 시기를 살면서 박정희를 자혜로운 어버이로 생각하는 우리의 7080세대처럼 말이다. 


  동남아는 고통을 통해서 생존의 방법을 찾았다. 강대국에 맹종하기 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고 강대국을 자신이 유리한 판으로 초청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식민의 아픔을 겪고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우리가 동남아에게 배워야할 교훈이다. 또한, 피의 댓가 없이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며, 피로 키운 자유는 언제나 납치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지만은 않는다. 현명한 시민이 깨어있을 때만이 정의는 승리할 수 있다.




ps.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기분 나쁜 순간은 학자라는 사람들이 '대동아 전쟁'이라는 명칭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책의 6쪽과 278쪽에는 '대동아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동아 전쟁'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백인 제국주의 국가에 대항해서 대동아시아 공영권을 만드는 전쟁이라고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용어이다. 적어도 학자라면, 대한민국의 학자라면, 황국사관에 젖어있는 어용학자가 아니라면 '대동아 전쟁'이라는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된다.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필자들에게 간곡히 건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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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리커버) -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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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 그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그녀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에 그녀는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조그마한 단서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다. 문제 아이도, 문제 부모도, 문제가 있는 연예인도 그녀와 대화하면 해결책을 발견한다. 물론, 방송하기 전에 사전 조사가 있었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의뢰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다는 전제를 염두해 보더라도 그녀는 탁월한 상담가이며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의 내공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과 상처받은 나의 내면을 치유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의 책을 집어들게 만들었다. 


  오은영은 처음부터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서 묻는다. 나약한 존재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모라는 명목으로,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나약한 존재는 폭력과 학대가 가해진다. 사회는 가족에 가족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덮어버리려한다. 오은영은 가장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가장 먼저 말한다. 소중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가 공개 상담을 하다가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던 적이 있다. 병든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벌어 바쳐야했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심각한 회의를 갖았다. 강신주는 가족을 먼저 떠나라말했다. 자신을 먼저 추스리고 나서 이후에 가족을 챙이라는 조언이었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강신주의 조언을 용납할 수 없다. 폭풍우가 치는 바다 한가운데 조각배를 탄 가족은 서로를 살리기 위해서 죽는 그 순간까지도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던질 수 있어야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완성된다. 

 그런데, 오은영도 강신주와 비슷한 처방을 내린다. 


  "여자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빨리 멀어져야 합니다. (중략) 어머니와 신체적 물리적으로 멀어져야합니다."(49쪽)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요, 소유물로 여기는 어머니에게 탈출하라는 그녀의 해결책은 유교의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이다. 유학자에게 이러한 고민을 말한다면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했을까? 아마도 더욱 진심으로 부모를 섬겨야한다고 말할 것이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사이의 관계를 끊어서는 안된다.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해야하며, 부모가 잘못된 길로 간다면 자녀는 부모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바른길로 가기를 권해야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가족 이데올로기 밑에서 자란 우리는 가부장적 가족질서의 폭력에 휘둘려야했다. 유교의 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족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국가로 확장되었다. 어른의 논리적 헛점과 잘못을 지적하면 '어디 어른 앞에서 목소리를 내!'라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랬다. 유교적 가족 이데올로기는 건전한 가족을 만드는데 매우 부적합하다. 약자가 일방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수 많은 화병 환자들을 양산할 뿐이다. 유교식 수직적 가족관계는 민주사회에서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과 성숙에 방해가 되는 존재라면 부모를 떠날 수도 있다. 가족을 떠날 수도 있다. 

  부모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겪어야했던 아픔을 간직한 존재가 이제 부모가 되었다.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삶 속에서 부모의 흔적을 발견하는 슬픔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부모가되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녀를 위해서 했던 말과 행동이 자녀에게 상처로 남는다. 이러한 부모에게 오은영은 따끔하게 말한다.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려면 적어도 마흔은 넘어야 합니다. (중략) 지금 마흔 넘은 자식을 키우는게 아니라면 알아듣도록 좋게 말하라는 겁니다."(37쪽)


  인생을 먼저 살아보았으니 자녀를 위해서 한 조언들이 사실은 자녀에게 상처로 남는다. 따끔하게 혼을 내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자녀가 알려면 마흔을 넘겨야한단다. 그러나, 마흔을 넘겨도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보장이 없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입에 피를 머금고 타인에게 뿜으면 내입은 이미 더럽혀져 있다.' 그렇다. 좋은 의도에서 행한 말과 행동이라도 그 방법이 좋지 않다면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 

  한녀석이 교무실에 찾아왔다. 야영 장기자랑 시간에 무대에 올라 친구들의 배꼽을 빼놓았던 녀석이다. 공부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사교성은 대단히 좋은 학생이다. 녀석이 나에게 한풀이를 했다. 암에 걸리신 어머니가 자기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말했단다. 상처받은 녀석은 괴로워했다. 나는 녀석을 위로했다. 어머니는 너를 사랑하니까 그런말을 했다. 어머니 말의 진심은 네가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진짜 쓸모없는 사람인가 보다며 푸념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토끼와 거북이가 육지에서 뛰면 투끼가 이기지만, 바다에서는 누가 이길까? 넌 공부라는 부분에서는 뒤쳐지지만 타인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은 그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이러한 응원에 녀석은 힘을 내고 돌아갔다. 녀석의 어머니와 통화해서 당부를 해려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장만할뿐 담임교사의 말은 들으려하지 않았다. 녀석이 받고 있는 고통이 피부로 느꼈졌다. 

  오은영은 '마음의 충족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맹심'을 가진 녀석의 부모는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 변명한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 사이에만 이러한 아픔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사이에도, 고부간에도,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이러한 아픔이 존재한다. 

  오은영 박사의 글 중에서 가장 나의 가슴에 아프게 다가온 단어가 '허구의 독립성(pseudo-independence)'이다. 실은 의존적인데 겉으로는 독립적인 존재 처럼 보이는 아이이다. 

  첫째는 너무도 빨리 언니가 되어야했다. 그래서 언니로서의 책임감을 은연주에 강요받았다. 스스로 자기 것을 챙기고 동생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해주었다. 어른스러운 첫째가 있었기에 둘째와 셋째도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첫째에게 늘 고마워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첫째에 비해서 너무도 아기같은 둘째와 셋째가 걱정스럽기도한다. 그런데, 잘 키웠다고 생각한 첫째가 사실은 허구의 고독립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이다. 아이에게 너무도 일찍 독립성을 요구한 것이 애처롭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로서, 사회인으로서 주의해야할 한마디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생각으로 받지 마세요."(231쪽) 그렇다. 단순한 푸념을 생각으로 받아들여 아이를 나무랄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인간관계에도 나타난다. 특히, 여성의 감정표현을 T형 남자는 생각으로 받아들인다. 부부관계가 힘든 것도, 직장에서 여성 동료와 관계가 힘든 것도 감정을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사료비판을 하면서 훈련받은 것이있다. 글뒤의 글을 읽어라! 사료의 표면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보라는 이 교훈이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말 속에서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말 속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지혜를 계발한다면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보다 부드러워질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매일 잠들기 전, 나를 용서하세요."(313쪽)라는 글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도 나무랐다. 매번 이불킥을 하면서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스스로를 나무란다. 그런데,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나만을 사랑한다면 문제이지만 나조차도 사랑할 수 없다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으랴! 나를 용서하며 많은 실수를 했지만 열심히 하루를 살아온 나에게 격려의 말을한다. 수고했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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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 어디다 대놓고 묻기 애매한
장웅연 지음, 니나킴 그림 / 담앤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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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은 디테일에 강하다고 한다. 불교관련 책을 좀 읽었지만, 불교에 관해서 잘안다고 자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못하는 자신을 보며, 불교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체감할 뿐이다.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는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모아 놓았다. 정말 사소하지만 불교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다면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모아 놓았다. 불교에 관한 책을 좀 읽었기에 목에 힘주던 내가 사소한 질문에 대답못하며 무너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장 한장 재미있게 읽었다.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 중에서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것은 4가지 이다. 

  첫째, "불교에서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라는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종교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와 내세관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잣대로 한국의 무속 신앙과 불교를 살펴본다면 종교라 할 수 없다. 절대자와 내세관이라는 기준은 서구의 기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의 잣대이다. 절대자가 없이도, 내세관이 없이도 종교는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종교가 될 수 있다. 무속과 불교가 바로 그 예이다. 특히, 불교는 철저히 신을 부정한다. 


  "불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찰로 완성되는 종교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이란 인간의 나약과 미망을 먹고 자라는 헛것에 불과하다. 미안하지만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13쪽)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슨이 이말을 듣는다면 너무도 기뻐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우주적 종교로 불교를 지목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불안을 먹고 사는 타종교와는 달리, 당당히 스스로 성철하며 주인이 되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도 감동적인 가르침이다. 

  개인적으로 사찰에 가면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물론 심오한 불교의 이론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불교의 가르침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기에 불교를 만나면 마음이 편안했던 것이다. 

  반면, 성당이나 교회에 가면 불편했던 이유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성탄절에 교회에 가서 방백을 하는 신도들을 보면서 몹시 불편했다. 사이비 종교인을 만난듯이 너무도 불편해서 자리를 떴다. 신의 종이되라는 말도 몹시 불편했다. 인생을 주인으로 살고 싶은 나에게 신의 종으로 살라니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신도를 노예로 만드는 종교보다는 모두가 주인으로 살기를 바라는 불교가 우리를 더 가치있게 만든다. 

  둘째, "절은 왜 산속에 많은가?"라는 질문이다. 선생님들과 절에 갔던 기억이 난다. 한분이 "이곳은 예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인가봐, 조선의 숭유억불책으로 절이 산속에 갔다잔아"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한분이 "글세요. 불교가 원래 속세를 떠나서 스님들이 수도하는 산속에 있지 않나요?"라고 맞받아쳤다. 역사를 전공했다고 자부하던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열심히 불교 서적을 읽었지만, 절은 왜 산속에 많은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책속의 불교 지식을 흡수할 궁리만 했지,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며 그 이유를 탐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의문이 해소되었다. 절이 산속에 많은 이유는 탈속주의와 풍수지리 때문이란다. 속세를 벗어나 수도를 하는 불교의 원래 모습을 떠올린다면 절이 산속에 많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여기에 풍수지리설이 더해져 마치 인체에 뜸을 놓듯이, 기운을 북돋기 위해서 절과 탑을 세웠다. 여기까지 읽고 조선의 숭유억불책 때문에 절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장웅연은 절이 산속에 많은 마지막 이유를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라 말한다. 그랬구나! 불교의 탈속주의와 풍수지리, 여기에 조선의 숭유억불책이 더해져서 절이 산속에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으로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을 꼽고 있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숭유억불책은 부차적 원이으로 보인다. 지금 남아 있는 사찰들이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된 것들임을 떠올린다면 사대부들은 숭유억불을 했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삶속에 불교는 녹아들어 있었다. 

  셋째, "천도제인가, 천도재인가?"라는 주제는 제와 재의 심오한 차이를 깨닫게해주었다. 


  "불교에는 '재'만 있지 '제'는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제'는 조상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일종의 투자에 가깝다. 이와 반대로 재는 철저하게 나를 버리고 비우겠다는 다짐이 먼저다. 아울러 제사상은 여인들의 명절 증후군을 발판 삼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리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잿밥은 맨밥이어도 괜찮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눈물을 닦아 줄 수만 있다면."(233쪽)


  유교의 '제'가 조상의 음덕을 바라며 지내는 것이라면, 불교의 '재'는 죽은자와 산자 뿐만 아니라, 짐승을 포함한 만물을 위해서 지낸다. 불교의 하해와 같은 만물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러한 심오한 차이를 알기나 했을까?

  넷째, "무아를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저자 장웅연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단지 '밀린다왕문경'의 메난드로스 왕과 학승 나가세나의 문답에 제시한 논리를 제시해주었다. 


  "촛불은 금방이라도 꺼뜨릴 수 있지만, 한 촛불이 다른 촛불로 옮겨 붙을 수도 있다. 촛불이라는 '존재'는실체가 없으나, 촛불이란 '현상'은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174쪽)


  '밀린다왕문경'을 소개하면서도 저자 장웅연은 '딱히 결론이 없는 주제'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나, 나는 이를 설명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윤회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별이 폭발하면서 많은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원소들은 우리몸을 이루는 일부분이 되었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면, 사람의 육신을 이루던 원소들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음식물을 통해서 다시 사람에게 흡수된다. 우리의 원소는 과거 수많은 위인들의 몸을 이루었다.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원소는 미래 새로운 세대의 몸을 이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윤회한다. 불교의 윤회는 과학적으로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책의 49가지 질문에 완벽히 대답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사람이 몇펴센트있을까? 교사인 나에게 불교의 심오한 이론을 묻는 학생은 거의 없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해야하는 역사교사에게 많은 도움을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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