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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평점 :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어느 가장이 폐허가된 건물 잔해 속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2024.06.06.) 힘없이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와 물끄러미 아버지를 응시하는 딸과 천진난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아들의 모습이 애절해보인다.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죽었다. 그 중에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하기에 가장은 폐허속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잔인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우리가 반드시 바로 알아야할 역사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 라시트 할리디의 책을 꺼내들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을 '정착민 식민주의'라고 정의한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무엇이며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1948년 5월 15일 나크바(대재앙)가 시작되었다. '대재앙'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건국에서 시작되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서 약속의 땅에 도착은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정주민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 약속한 땅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의 주인을 그 땅에서 몰아냈다. 사실 구약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하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에는 블렛셋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선주민이 있었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의 첫주인이 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인을, 그 땅의 주인을 자신의 땅에서 몰아냈다.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의 피해자가 로마가 일으킨 디아스포라의 가해자가 되었다. 다비드 벤구리온은 "늙은이들은 죽고 젊은이들은 잊어버릴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낙관했다. 자신들이 2천년 동안 유랑민으로 살았음에도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을 팔레스타인인들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가 종식되는 날, 팔레스타인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에게 트라우마의 시작이며 멀고 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다시 땅을 되찾는데는 2천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착민 식민주의 기획이 낳은 결과"!! 그렇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저자 라시드 할리디가 말한 '정착민 식민주의 기획이 낳은 결과'이다. 그렇다면 '정착민 식민주의'란 무엇일까? 저자는 정착민 식민주의의 사례로 미국과 호주를 든다. 총과 천연두균을 앞세운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의 주인인 내이티브 어메리칸들을 '인디언 보호구역'에 몰아 넣고 아메리카의 주인이 되었다. 호주로 간 유럽인들도 호주의 주인인 어보리진들의 땅을 빼앗고 학살을 자행했다. 심지어는 어보리진들의 아이들을 납치해서 백인 가정에서 기르게했다. 뿌리 뽑힌 어보리진과 내이티브 어메리칸들은 땅의 주인임에도 이방인이 되어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창살없는 감옥에 갖혀 독립국가 건설의 꿈을 꾸며, 혹은 그 꿈도 없이 죽은 가족의 복수를 꿈꾸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일제 강점기 땅의 주인이면서도 일제에게 땅을 빼앗기고 만주로, 연해주로 유랑을 떠나야했던 우리의 역사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팔레스타인인은 죽거나 사라진 팔레스타인인이지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1869년 미국의 필립 셰리든 장군이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The only good Indian is a dead Indian.)'라고 한 말과 유사한 말이다. 유럽인이 내이티브 어메리칸인을 학살하며 땅을 빼앗앗듯이 유대인도 팔레스타인인을 죽이며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1948년 4월 9일 데이르 야신 마을에 이르군과 하가나의 공격 대원들이 들이 닥쳐서 주민 100명을 도살했다. 이중 67명이 여자와 어린이, 노인이었다. 유럽인들은 여자와 어린이를 학살하는 것을 야만인들이나하는 것으로 여기며 맹비난을 한다. 인도의 세포이 항쟁 시기 세포이들이 백인 여성과 아이들 학살한 것을 들먹이며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학살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인가보다.
저자 라시드 할리디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폭격할 때 그곳에 있었다.라시드 할리디는 임신한 아내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딸을 폭격과 폭력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탈출 시키려 발버둥을 쳤다.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반쯤 완공된 8층짜리 아파트에 최소 1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라파트가 이곳을 다녀간 직후 폭격이 있었고 아파트는 주저 앉았다. 더 끔찍한 일은 잠시 후, 그곳에서 차량폭탄이 터졌다. 모사드가 "잔해더미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찾으려 애쓰는 가족을 도와주는 구조대원을 죽이려 설치해둔 폭탄"(217쪽)이 터진 것이다. 모사드 장교는 이를 "살인 자체를 위해 살인하는 무기"라 불렀다. 여성과 어린이가 있는 아파트를 폭격한 것에서 더해서 사랑하는 가족의 유해라도 찾으려 다가간 사람과 그들을 구조하려는 구조대원을 죽이려는 모사드의 잔혹한 만행은 분명히 테러이며 인종청소이다. 그럼에도 세계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 다 1982년 8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베이루트에서 철수한다. 그들은 미국을 통해서 베이루트에 남아있는 팔레스타인 가족의 안전을 보장 받았다.
"베이루트에 남아 있는 법을 준수하는 팔레스타인의 비전투원들과 철수한 사람들의 가족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거주하도록 승인을 받을 것이다." -227쪽
레바논 외무장관이 전달한 미국 문서를 받아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대원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양심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이 쪼가리는 그들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9월 14일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서쪽을 장악한다. 이스라엘은 조명탄까지 쏘면서 '레바논 부대' 민병대가 민간인을 도살하도록 도와준다. 1,300명이 이들에 의해서 도살된다. 이러한 만행을 아우슈비츠의 만행을 겪은 피해자들이 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베긴은 그들의 인종청소를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용감한 군대가 무고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히틀러와 그 심복들이 지하 깊숙한 벙커 속에 은신해 있는 베를린을 상대하고 있는 느낌"-216쪽
묻고 싶다. 베긴이 히틀러와 닮았는가? 아니면 아라파트가 히틀러와 닮았는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그들을 보며 몸서리가 쳐진다. 이스라엘이 우리의 이웃이 아닌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팔라스타인인에 대한 공격을 계속된다. 2014년 7월 가자 시티 슈지이야 폭격에 대해서 "미국의 한 퇴역 장군은 이스라엘의 포격을 <균형이 전혀 맞지 않은 보복>"이라 규정했다."(320쪽) 불행히도 균형이 맞지 않은 보복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과 평화로이 살기보다는 그들을 박멸하길 원한다. 유럽인들이 내이티브 어메리칸인들에게 했듯이 말이다.
어떤이는 말한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부정과 부패, 무능이 문제이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들은 부정 부패를 저지르고 무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요인을 암살했다. 이라크 바트당의 아랍해방전선, 아부 알아바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전선 이들에 의해서도 팔레스타인해방전선의 핵심 인재들이 암살 당했다. 지도부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는 원인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독재국가 지도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요인을 암살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팔레스타인이여! 그대들에게 신은 너무도 멀리있고, 이스라엘은 너무도 가까이 있구나!
1972년 7월 카나피니는 17살짜리 조카 라미스나즘과 함께 모사드의 차량 폭탄 공격으로 암살당했다. '하이파로 돌아가다'의 저자이자 산문 작가인 그를 모사드가 암살했지만, 17살짜리 소년과 함께 암살했지만 이스라엘은 테러국가로 지목받지 않는다. 강자의 폭력은 전쟁이고, 약자의 폭력은 테러라고 말한다. 그러나, 강자인 이스라엘은 강자의 폭력과 약자의 폭력을 가장 약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사용한다. 그들이 소년일지라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는 국제법 전문가도 없었으며, 탁월한 지도자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랑생활을 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요인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오슬로 협정에 서명한다. 우리는 오슬로 협정을 탁월한 평화 협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탁월한 협정이지만,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최악의 협정이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상태는 무한정 유지되었고, 군사통치가 종식되지도 않았으며, 불법적인 유대인 불접 정착이 동결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군사 정권 아래 사는 불만에찬 팔레스타인인들을 단속하는데 팔레스타인인 자치국이 이스라엘을 돕는 <안보협력>"(289쪽)이 체결된 것이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 낙관했으나 그도 이스라엘에 의해서 창살없는 감옥에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갔다.
책을 덮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100년 동안의 전쟁에 가슴이 아파왔다.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새며느리에게 더 가혹하게 시집살이를 하듯이, 히틀러의 박해를 받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 이상의 박해를 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의 양심있는 시민에게 호소해야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한 이유가 전쟁무기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의 양심있는 시민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우리 모두가 바란다면, 양심있는 친구에게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