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기회인가 위기인가 - GPT-4로 급변하는 미래 산업 트렌드 전망
서민준 외 지음 / 동아엠앤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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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를 출간했을 때, 나는 책을 읽지도 않고 미래는 인류 모두가 기계와 결합하여 신의 반열에 오를 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호모 데우스'에서 그러한 미래를 예언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일부는 '호모 데우스' , 일부는 '신이된 인간'이 되고, 일부는 신이되지 못할 것이라 예언했다. GPT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호모 데우스'라는 책을 떠올렸다. 인류의 미래에는 천년 왕국이 예약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과제가 인류에게 던져졌다. GPT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새로운 구분선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GPT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GPT가 출현하고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파는 과히 대단하다. 미술분야로 진로를 결정했던 한 학생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자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면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소설, 시 등의 인간만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창작의 영역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서점가에는 챗GPT가 창작에 참여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현실은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의 능력은 '발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고 특정을 알아가는 느낌'(79)이라고 저자가 말할 정도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어떨 때는 무섭기도하다."는데 있다.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6개월 동안만이라고 인공지능 개발을 멈추고 진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챗GPT 이후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광풍속을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인류가 막을 수 없다. 그 폭풍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챗GPT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고 이어령 교수가 '말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라!'라고 말했듯이, GPT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GPT에 올라타서 챗GPT가 나의 말이 되게 해야한다.

그렇다면, GPT에 올라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어떤 일을 하건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결정과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량을 갖도록 성장하는것"(136)을 주문한다. GPT가 사람이 아니기에 어떠한 결정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다. GPT가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으나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결정은 인간이 해야만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의 신뢰도와 정확성을 판단하고 인공지능이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챗GPT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잘 질문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GPT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코파일럿 활용'능력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서 우리 교육도 잘 질문하는 능력과 코파일럿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

장병택 교수는 인공지능 수준을 6단계로 나누었다. 그중 레벨5는 강인공지능이다. 인간처럼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레벨6은 초인공지능이다. 전세계 인류 지능의 총합을 뛰어 넘고, 스스로 자아를 갖고 발전한다. 이러한 특이점을 2045년으로 보았다.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며 인류는 기술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초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사육당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떤이는 인간은 제3의 두뇌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논리의 좌뇌와 감성의 우뇌에 이어서 정보제공과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두뇌 즉, 인공지능이 세번째 두뇌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지능을 대폭 향상시키기 위해서 트랜스휴먼화가 진행 될 수도 있다. 트랜스 휴먼이 초인공지능에 대항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초인공지능을 탑재한 호모 데우스가 된 인류와 그렇지 못한 인류의 새로운 계급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초인공지능을 탑재한 호모 데우스와 그렇지 않은 인류의 대립을 논하기보다는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에 인류가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이 인공지능에 도달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을 튜링 테스트라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역으로 인간을 테스트한다. 이른바 역튜링 테스트(Reverse Turing Test)가 이뤄진다.

 

"챗봇은 역튜링 테스트를 통해 면접관의 지능 수준에 따라 페르소나를 구성할 수 있고, 또한 판단 과정의 일부로 면접관의 의견을 페르소나에 통합하며 답변을 통해 면접관의 편견을 강화한다."-(30)

 

이 부분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인간이 챗봇을 테스트하고 이용하지만, 챗봇도 인간을 테스트하며 그들의 편견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인간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의 편견을 고착화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챗봇 엘리자를 만들었지만 인공지능 분야에 회의를 느끼고 떠난 바이첸바움의 책 '컴퓨터의 힘과 인간의 이성'이라는 책의 일부분을 이용한다.

 

"기계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인간이 기계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193

 

고된 창작의 작업을 겪지 않고 챗GPT를 활용해서 쉽게 쓰여진 소설들이 넘쳐난다면 자기 복제한 수많은 표절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창작의 영역에 챗GPT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챗GPT는 보조적 수단이어야 한다. GPT에게 모든 창작의 권한을 넘겨주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한 사람이 인간이 기계라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노예가 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지금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인으로 인공지능을 부릴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낼 방법을 우리 사회는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최종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며, 책임의 주체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모든 창작의 최종 주체도 인간이 되어야함을 깨닫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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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오마이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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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목에 칼을 찬 채로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습니다."(9) 조국은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조국이 검찰 개혁을 이루려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 가시밭길에 조국의 가족의 핏자국도 선명히 뿌려졌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병보석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가혹하리만치 여러번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조국은 묵묵히 그 채찍을 견뎌냈다. 소위 강남좌파 조국은 안락한 주류 사회에 일원으로 쾌락을 즐기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에밀'이라는 위대한 교육책을 썼으나 다섯 자녀를 보육원에 보낸 '분열된 영혼' 루소에 자신을 비유한다. 진보적 지식인으로 살아가려했으나 토마토가 되지 못했다며 자신을 책직질한다. 어찌하여 도덕적 잣대는 진보 인사에게 더욱 혹독하단말인가! 가족과 친척이 부동산 투기에 주가조작 등등의 혐의가 있어도 제대로 수사를 받지 않고 권력을 누리는 이들도 있지만, 진보인사는 조그만 잘못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가 가시밭길을 가면서 이 사회의 무엇을 밝히려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어 내려갔다.

 

1. 어떻게 권력을 제지할 것인가?

조국은 15권의 법고전 중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맨 앞장에 배치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로베스피에르와 장들 마라가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루소와 볼테르의 책을 읽은 루이 16세는 '이 두 사람 때문에 내 왕국이 무너졌구나!'라고 한탄했을 정도이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이러한 때에 사용하나보다!

루소의 사상은 참으로 혁명적이다. 루소는 인민의 자기계약을 통해서 국가 권력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자들이 있다."(24)며 어리석은 인간을 꾸짖는다.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은 우리 주변에도 흔하게 보인다. 독재에 뿌리가 있는 정당을 지지하면서 그들에게 개, 돼지 취급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스스로 노예의 길을 걸으면서도 주인이라 착각한다. 고집을 신념이라 착각하며 젊은이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이들을 어찌하랴!

모든 인간이 현명하지는 않다. 모든 인간이 어리석지는 않듯이 말이다. 그리고 한인간이 항상 어리석지 않듯이, 한인간이 항상 현명하지도 않다. 몽테스키외는 인간의 선함에 의존해서 독재를 막기보다는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도록해야한다."(75~76)고 주장한다. 아프리카의 여러국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독립 후에 독재자로 군림한 예를 우리는 자주 보았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인간이 권력을 쥐는 순간 독재의 유혹에 빠진다. 그래서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6월 민주항쟁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갖추어졌다. 루소는 "힘이 권리를 만드는게 아니며, 오직 합법적인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26)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정권에서는 국정농단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농단에 사법부가 호응하여 일명 '사법농단 의혹 사건'이 벌어져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는 검찰이 새로운 권력 기구로 떠오르고 있다. '법비'들이 기승을 부린다며 한탄하는 사람도 자주본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국정농단을 벌이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구조적으로 농간을 부리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합법적인 권력'에 복종해야할까? 이러한 농간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까? 몽테스키외가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으나, 우리사회는 권력들끼리 단합하며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아닌지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2. 악법에 복종해야할까?

조국은 8장에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서술한다. 이미 널리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우리를 놀라게 한다. 독재정권에서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이 만든 악법에 복종할 것을 강요했다. 그렇다면, 악법에 복종해야할까?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서 백범의 족적은 너무도 크다. 백범을 암살한 인물이 친일파 안두희이다. 역사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정의봉으로 안두희를 처단한 버스기사 박기서씨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어느 학생이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씨를 사적처벌을 했다며 비판했다. 친일파가 권력을 쥐고 역사를 굴절시킨 것이 우리의 현대사이다. 백범을 암살한 친일파 안두희를 처단할 수 없는 현실에서 희생을 각오하며 정의봉으로 친일파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씨의 행동은 정의로운 것일까?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에게 현명한 조언을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 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403

 

법의 이념에는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정의가 있다. 정의롭지 않은 법은 법일 수 없다. 루소의 말을 빌어 소로의 말을 다시 표현하자면, '법이 법자체로 정당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오직 정의로운 법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독재자가, 법비들이 악법으로, 그들만의 법논리로 정의로운 사람을 압제한다면,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으로 있을 곳은 감옥뿐이다."(405) 일제 강점기에도, 독재 정권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은 감옥이 아니었을까? 시대의 모순이 정의로운자를 감옥에 보낸다.

이 책에 한국 검찰의 '마녀사냥'에 대해서 언급하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정의로운 조국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줄 그는 알았을까?

정의를 용감하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악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악법은 어겨야 악법이 고쳐진다. 이를 루돌프 폰 예링은 이렇게 표현했다.

 

"현행법이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경우에 새로운 법이 자신의 진입을 강행하기 위하여 치러야 할 투쟁이 존재하는데, 이 투쟁은 종종 몇 세기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투쟁은 이러한 투쟁은 이익들이 기득권의 형태를 취할 때 그 강도가 최고조에 달한다."-314

 

한홍구 교수가 대중강연에서 '악법은 어겨야 바뀐다.'라고 말했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민중을 옥죄는 법의 탈을 쓴 족쇄이다. 악법을 어겼기에 미국은 노예해방을 이룰 수 있었으며, 식민지 조선 민중은 독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법 위에 정의가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그래야 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

 

3. 조국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무엇인가?

조국은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조국의 눈을 거친 법고전들이다. 조국의 프리즘을 거친 고전들에서 조국은 자신이 원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위와 재산은 상당히 평등해야한다. 안그러면 권리와 권위의 평등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루소, 43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헌법과 국가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의 빈민은 행복하고, 그들에게 무지와 불행이 없으며, 감옥에는 죄수가 없고, 거리에는 거지가 없으며, 노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고, 세금이 과중하지 않으며, 우리는 세계의 행복과 친구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세계가 우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렇다."-페인, 225~227

 

루소와 페인의 이 말은 사실 조국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이다. 자유와 평등, 지위와 재산의 평등이 있어야 권리와 권위의 평등이 오래지속될 수 있다. 한사회에서 부가 편중되면 그들은 권력도 쥐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빈민이 행복하고 죄수와 거지가 없는 세상, 노인빈곤이 없으며 세금이 과중하지 않은 대동 세상을 조국은 꿈꾸고 있다.

이러한 이상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두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가 소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관용이 필요하다.

 

"인민의 51퍼센트가 다른 49퍼센트의 권리를 빼앗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는 폭도의 규칙에 불과하다."-토머스 제퍼슨, 242

 

'다수의 전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관용이 필요하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왕정 혹은 1인 독재의 시대에서 다수 독재의 시대로 이행 될뿐, 진정한 진보를 이룰 수 없다. 소수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그 사회의 진보의 척도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둘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이다. 이것은 권리이자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 이것은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명령이며 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 왜냐하면 권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불법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도덕적 생존의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권리 주장이다."-예링, 321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이기적'이라는 인식과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루돌프 폰 예링은 이러한 우리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딸의 학예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외출을 신청하자 교장이 "애 엄마는 뭐하고 자네가가 가나?"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부모로서 자녀의 학예회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해야한다. 그 변화가 너무도 늦더라도 말이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192)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형벌의 잔혹성보다는 일관성을 중요시했다. 지강원이 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명언이 한국사회의 대다수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법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법질서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진보에게 들이대는 도덕성의 잣대를 보수세력에게도 똑같이 들이대야할 것이다. 법적 책임을 물을 때도 빈부차이, 권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똑같이 들이대야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진리가 행해지지 않기에 조국은 가시밭길을 걸어야한다.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가시밭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길이 값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국은 대중들에게 '울프피쉬 호리'라는 물고기를 소개한다. 작은 어항에서는 1cm 정도 자라고, 연못에서는 5cm 정도 자란다. 그러나 울프피쉬 호리가 강에서 자라면 15cm까지 자란다. 더 넓은 바다에 나간 울프피쉬 호리는 50~60m까지 자란다. 환경이 울프피쉬 호리의 성장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사람과 어울리고 어떠한 책을 읽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과 외연이 얼마나 성장할지를 결정한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우리의 정신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혼자 읽는다면 너무도 힘든 고전 15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지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싶은자에게 이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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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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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몽환적 그림을 보며 과학 서적에 왜? 인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의문 투성이의 책에 쏟아진 찬사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되지 않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친근하지 않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낯선 과학자에 대한 소개와 룰루 밀러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벽을 넘어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자 충격이 밀려왔다.

 

별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별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출세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였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스트리크닌을 사용해서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계획한 사람을 제거했다는 암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리고 룰루 밀러는 자신이 롤 모델로 삼으려했던 과학자의 민낯을 보고서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우리도 그러한 경험을 했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으로 황우석 박사를 많은 한국인이 사랑했다. 그러나 TV 고발프로그램에 의해서 폭로된 그의 연구는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많은 대한 민국 사람이 허탈함을 느꼈다.

또한,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를 성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간디는 성도착증이 있었다. 간디의 독립 투쟁방식은 영국이 상대하기 편한 비폭력 투쟁이었다. 수많은 인도 독립 투쟁가들 중에서 영국이 대하기 편한 상대이기에 그는 성웅으로 추앙받았고, 성웅이 되었다. 간디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간디는 이 책에 나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황우석과 간디, 그리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개인을 신격화하지 말자! 그도 성웅이기 이전에 나약한 인간이다. 우리가 영웅으로 만들어 놓은 인물들을 신의 반열에 올려 놓고 숭배하는 순간, 그들의 추락은 시작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같은 존재가 어디 인간에게만 해당될까? 어린 시절, 미국은 자유와 평화의 사도였다. 미국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세계적 모범국가였다. 이상화된 세계 초강대국에게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충격적인 신념을 당당히 표명한다. ,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181)이라고 강연을 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접촉하여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실현하도록 만들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우생학을 신봉했다.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열등한 존재로 찍힌자들은 수용소에 수용되어 강제 불임 수술을 당해야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인류의 쇠퇴를 예방'하기 위해서 '백치들을 몰살'해야한다고 했던 주장을 실행하는 장소에 방문했다. 린치버그(센트럴 버지니아 훈련세터)에서 룰루 밀러는 말한다.

 

"이 황량하고 외딴 언덕이 우생학적 몰살의 진원이라 생각하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라 간주하는 그 사고방식, 우리가 초등학생에게 나치, 다른 사람들, 나쁜 놈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바로 그 악행, 그것을 세계 최초로 국가 정책으로 삼은 나라가 바로 우리였다."-213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아니,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나치와 히틀러를 악마화해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에 면죄부를 얻으려는 존재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독일에도 있으며 미국에도 있다. 우생학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광범위하게 유행했다. 골턴이 쓴 '캔트세이워어 우생학 칼리지'라는 SF 소설 속 사회를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만들고 만들고 싶어했다. 한예로 미국에서는 흑인에게 매독을 간염시키고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았다. 미국 앨리배마 주 터스키기(Tuskegee)에서 흑인에게 치료를 해준다고 속여 매독에 감염된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연구했다. 정부주도의 생체실험을 미국 정부가 인정하여 빌 클린턴이 사과하기도 했다. 악마는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다.

룰루 밀러가 만난 에나라는 여성은 인형을 가지고 다닌다. 인형에게 우유를 주고 살아있는 아이를 대하듯이 인형을 대한다. 버스 안에서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형아기를 살아있는 자녀로 대한다.

에나라는 여성을 보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책에 실려 있는 어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인형을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며 생활한다. 아이에게 우유를 주고 재워주고 함께 잠이 든다.

아이를 갖길 원하는 여인의 꿈이 국가 폭력에 의해서 산산히 짖밟혔다. 애나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그 고통속에서 누가 해방시켜줄 수 있는가? 최신 과학이라는 포장에 많은 정치인들이 동의했다.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열등한' 존재는 바로 유색인종, 사회적 약자, 사회적 주류 세력의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없어진다면 사회는 인류의 쇠퇴를 막고 번영을 누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다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골턴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우생학의 영감을 얻었다. 그런데, 정작 다윈은 우생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말했다.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그 자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번성하는데 무한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룰루 밀러는 말한다. '계층의 사다리는 없다.' 자연에도 인간 세상에도 그러한 사다리는 없다!!

그런데, ? 책의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일까?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조사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이 바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연어, 폐어 중에서 나머지 둘과 다른 하나는 소가 아니라 연어이다. 폐어와 소는 둘 다 후두개가 있으며 폐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물고기의 비늘을 한꺼풀 벗겨내면 물고기를 같은 어류로 분류할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한다. 그렇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언어적 거세'를 행한다. 인간이 정상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단어를 발명한다. 그리고 동물들의 중요성을 박탈한다. 인간이 발명한 언어는 인간 세상을 새롭게 범주화하고 편을 가른다. 흑인, 백인, 황인종으로 인간을 구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을 나누고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으로 편을 가른다. 그리고 거세된 언어를 통해서 인간의 가져야할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래서였을까?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했다. 말이 가지고 있는 형식과 틀에 얽매여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매한 중생을 위해서 '불립문자'를 외쳤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언어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유를 지배하고 삶을 지배한다. 세상을 자연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언어의 틀에 얽매여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왜곡한다. 결국은 언어가 존재를 위협한다. 룰루 밀러는 우리의 삶을 옥좨는 언어로부터 해방되어 선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책장을 덮었다. 사랑스런 딸에게 다가가 물었다. , 연어, 폐어 중에서 나머지 둘과 다른 하나가 무엇인지 아니? 그러자 딸은 용감하게 '연어!'라고 외쳤다. 놀란 나는 다시 물었다. '물고기는 존재하니?' 딸은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없어!' ! 뿔싸!! 딸은 지난 겨울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딸이 대견해보였다. 그리고 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언어라는 격자를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해서 이제는 언어로부터 해방되어야한다는 말을 딸에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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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6-18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콜드케이스라는 미드에서 처음으로 미국의 저런 정책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지능이 낮은 여자들에게 강제 불임을 시켰던 에피소드인데.. 그때 그 거 보고 너무 충격 먹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이 책 읽으면서 그 콜드케이스의 그 장면들과 오버랩 되면서 이 책 마지막 읽으면서 울게 만들더라고요. 미국의 비인권적이고 차별적인 그리고권위적인 행정부나 사회 전반의 승자독식의 역사를 찾아낸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강나루 2023-06-18 13:21   좋아요 0 | URL
아우슈비츠와 731부대에서 생체 실험이 있었죠. 우생학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83과 4분의 1세 헨드릭 흐룬의 비밀일기
헨드릭 흐룬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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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일상의 일을 잔잔하게 서술했기에 책을 읽는 동안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기에도 정보가 적었으며, 재미를 느끼기에는 문화적 거리감이 켰다. 그럼에도 이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모래사장에서 옥구슬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이 책은 우울할 수 있는 요양원생활을 특유의 과정법과 풍자로 웃음을 선사하려 노력했다. 한예로 시설원장 스텔바바헌 부인은 온도 조절장치를 27도에 놓고 열대식물을 키운다. 그러나 노인은 23도로 온도조절 장치를 고정시켜 놓고 추위를 타는 사람은 옷을 입도록 한다. 또한 주인공은 먹기 싫은 케익을 물고기에게 주었다가 물고기가 죽는 사태가 벌어졌고, 요양원측은 경찰을 불러 이를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유치하고 별다른 사건이라고 보기에 부족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는 유머도 있다. 당뇨병이 있는 에베르트는 잘려진 자신의 발가락을 유리병에 담아가겠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간호사가 이미 처분했다고 말하자, 에베르트는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말했다. 섬뜻한 농담이다.

다소 황당하기까지한 과장된 표현과 농담들을 읽으며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헨드릭 흐룬은 왜? 이러한 당혹스러운 농담을 하는 것일까? 사실 지옥에서도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유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빅터 프랭크는 그곳에서도 웃음이 있다고 적고 있다. 지옥과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그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을 버티게 했다. 삶의 의미만으로는 그 기나긴 죽음의 터널을 벗어나기 힘들다. 유머가 있기에 그들은 순간이지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헨드릭 흐룬이 사는 곳은 지옥에 가깝다. 매일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살아있더라도 제정신을 잃고 치매 병동으로 사람들이 옮겨간다. 몸은 늙고 병들었다. 요실금으로 기저기를 착용해야하는 삶이다.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 뿐이다. 헨드릭 흐룬은 이책 곳곳에 안락사를 되뇌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출발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요양원에 있는 사람은 그 종착역에 보다 가까이간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 종착역에 더 빨리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 깊고도 어두운 길을 헨드릭 흐룬은 좌절보다는 유쾌하게 가려한다. 그리고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보려 노력한다. 때로는 과정되게 때로는 유머로 웃음으로 건너가려한다. 그래서 헨드릭 흐룬의 유머는 호쾌하게 웃을 수 없다. 그들이 가는 길이 밝지 않기 때문에....

헨드릭 흐룬이 이책에서 2번씩이나 강조해서 제시한 문장이 있다. "한나라의 문명 수준은 노인과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307) 노인인 그에게 주된 관심사는 노인 정책과 요양원에서의 삶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노인을 공경할 것을 강조하는 유교는 지상 최고의 사상일 것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의 노인 공경문화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양의 문화 유입과 자본주의 사회가 자리잡은 동양사회에서 예전만큼의 노인공경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된 이유는 노인에게도 있다.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조용히 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존재에서, 아집에 휩싸여 화를 잘 내는 존재로 노인은 이미지가 변화했다. 노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이다. 시대는 민주주의 시대로 변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독재정권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계속 배우며 지혜를 쌓기 보다는 젊은 시절 배웠고 세뇌당했던 논리를 젊은 세대에 강요하려하고 있다. 시대가 변한다. 그렇다면 노인도 변해야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노쇠하고, 먹어야하는 약이 늘어나고, 거동이 불편한 것은 소설 속 요양원 노인과 비슷했다. '논어'에 부모님의 나이를 알아야한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장수하심에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나이듦에 두려워해야한다.(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라고 했다. 헨드릭 흐룬이 가는 길은 어머니가 가는 길이며 우리가 갈 길이다. 그러하기에 헨드릭 흐룬의 이야기를 마냥 가볍게만 읽을 수 없다.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긴 한숨을 쉬며 읽었다.

헨드릭 흐룬은 독일 자녀들이 부모를 우크라이나 혹은 슬로바키아, 심지어 태국의 싸구려 요양원에 버린다는 보도를 보고는 분개한다. 나는 헨드릭 흐룬에게 묻고 싶다. 좋은 요양원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싶다. 초고령화 사회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결혼 했어도 자녀 없는 가정이 많다. 자녀가 있다할지라도 상당수는 말년을 요양원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저소득 노령 인구의 증가로 요양원에 가지도 못하고 쓸쓸히 고독사하는 사람도 증가할 것이다. 그들에게 좋은 요양원은 무엇인가? 좋은 요양원은 존재하는가?

 

나이듦이 우리의 숙명임을 생각한다면, 부모를 편히 보내드리고 우리도 편히 그 길을 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리고 헨드릭 흐룬이 고민하듯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존엄사를 고려해야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헨드릭 흐룬의 부인은 정신병원에 있다. 사랑하는 에이피어는 1229일에 저하늘로 갔다. 그리고 그의 친구 에베르트는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잘라야했다. 흐리티어는 알츠하이머를 알고 있다. 그녀는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헨드릭 흐룬의 친구가 하나둘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서서히 쓰러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늙었지만 죽지 않아' 모임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다시 출발한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이 가까워질지라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고 웃으며 그 곳에 갈 수 있음을 헨드릭 흐룬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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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k 2023-11-03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터 프랭클...죄송 합니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오마이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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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루소 - P22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어떻게 해서 이처럼 뒤바뀐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루소 - P24

국가가 튼튼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두 극단을 최대한 좁혀라
지위와 재산은 상당히 평등해야 한다. 안그러면 권리와 권위의 평등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루소 - P43

영국 국민들은 자기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상당히잘못된 생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원들을 선출할 때뿐이다. 의원들이 일단 선출되면 국민들은 노예가 - P49

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루소 - P50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쓰기 마련이다. 이점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알려주는 바이다. (…)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에 따라
- P75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몽테스키외 - P76

민주 정체에서 인민은 어떤 면에서는 군주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신민(臣民)이기도 하다. 인민은 자신의 의지의 - P96

표현인 투표에 의해서만 군주가 될 수 있다."-몽테스키외 - P97

압제자가 내 주장을 접한다면 그건 내게 두려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압제자는 독서의 취향을 갖고 있지않기에 내가 걱정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베카리아 - P164

"페인의 펜이 없었다면, 워싱턴의 검은 헛되이 휘둘러졌을 것이다."-미국2대 대통령 존 애덤스 - P211

국민은 제임스와 윌리엄이라는 두 악마 중에서 덜 나쁘다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했다. (…) 여기서 권리장전이라는법령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의 여러 부문이 권력, 이익, 특권을 나누어 갖기 위한 홍정에 불과했다.-페인, 상식 - P214

현행법이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경우에 새로운 법이 자신의 진입을 강행하기 위하여 치러야 할 투쟁이 존재하는데, 이 투쟁은 종종 몇 세기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투쟁은 이익들이 기득권의 형태를 취할 때 그 강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 법의 역사가 보여주는 모든 위대한 업적, 즉 노예제나 농노제의 폐지, 토지소유권의 자유나 영업혹은 신앙의 자유와 같은 이러한 모든 것들은 치열하게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서 계속된 투쟁을 통해 쟁취되었다.- 루돌프 폰 예링 - P314

인격 그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이것은 권리자자신에 대한 의무다―이것은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명령이며 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왜냐하면 권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불법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생존의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권리 주장이다.-루돌프 폰 예링 - P321

우리는 먼저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히려 착했던 사람들도 법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날이 불의의 하수인들로 변해가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불복종 - P403

여기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이 성공할 때까지 준수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 법을 어겨버릴 것인가?"-소로 - P404

사람은 누구나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그것은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극에 달해 견딜 수 없을 때 거기에 충성하길거부하고 저항하는 권리다.-소로 - P416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다.
국가가 무법적이거나 부패해졌을 때 시민불복종은 신성한 의무가 된다.-간디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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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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