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 - 천의 얼굴을 가진 이베리아 반도의 뜨거운 심장
이강혁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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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를 거닐다가 스페인에 관한 책을 골랐다. 프랑스와 영국에 관한 책에 비해서 스페인에 관한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스페인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적은 나로서는 산책하듯이 스페인을 거닐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을 선택했다. 스페인은 어떤 나라일까?


  스페인은 모순이 가득한 나라이다. 첫째, 하나의 나라이 면서 4개의 언어가 공식언어가 존재한다. 카탈루냐, 바슼, 갈리시아, 카스티야라는 4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나라라니... 그럼 우리가 스페인어라고 부르는 언어는 도대체 어떤 언어라는 말인가! 보통 스페인어도 카스티아어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1국가 1민족 1언얼르 당연시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생소하고 놀라운 일이다. 우리의 당연함이 타인에게는 생소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더올린다. 

  둘째, 다양함 속에서 획일성을 추구하는 나라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로마인, 게르만족, 무슬림이 쳐들어왔다. 레콩키스타를 통해서 로마 카톨릭 세력이 재정복을 완성하고 나서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이벨리아 반도가 로마 카톨릭으로 획일화 되기 시작했다. 신항로를 개척하며 밖으로 나아가는 스페인이 내부에서는 획일성을 추구하는 모순된 일이 벌어졌다. 종교와 민족이 다른 스페인 사람들을 로마 가톨릭으로 묶으려했으나, 결국, 로마 가톨릭을 선택하고 부유함을 포기하는 꼴이 되었다. 하느님은 사랑을 이야기했으나, 스페인은 성인 '산티아고'의 이름을 외치며 신대륙에서 인디오를 학살하는 군대의 사기를 높였다. 

  셋째, 승리하는 시대와 패배하는 시대의 교차점 펠리페 2세! 스페인 절대왕정을 이끌었던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쇠락의 주점이라는 사실이 모순적이지 않은가?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배하면서 그 이전을 칼롤로스 1세, 펠리페2세의 '승리하는 스페인'이라하고, 그 이후 합스브르크 왕가 시대를 패배하는 스페인이라고 한다. 무리한 영국 침공과 무리한 로마 가톨릭 정책으로 해가지지 않는 제국 스페인은 쇠락하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을 비롯한 이슬람인들을 추방하고 종교 재판으로 화형에 처하면서 금융과 상업 및 제국 통치에 필수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외화내빈의 스페인! 내실을 다지지 않고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그들은 결국 패배하는 시대를 맞이한다. 그것도 너무도 빨리.....

  넷째, 유럽이라는 선진지역에 위치하지만, 1975년까지 프랑코라는 독재자에 의해서 통치된 나라이다. 독재자 프랑코는 마드리드가 위치한 카스티야지방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했지만, 바로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은 탄압을 했다. 이것은 카탈루냐 지방이 분리 독립을 외치는 씨앗이되었다.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모습은 박정희와 신군부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영남을 발전시키면서도 호남을 소외시킨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에 특혜를 주었던 독재자 프랑코! 그는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천국에 갔을까?


  스페인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 무척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스페인이 친밀해졌다. 코로나 19 펜데믹이 끝나면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그런데, 이 책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현재 남부의 도시 카디스는 페니키아인이, 동부의 도시 카르타헤는 카르타고인이 건설했다."(89쪽)라고 적어 놓았는데,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도시국가가 카르타고이다. 그렇기에 페니키아와 카르타고를 분리해서 서술할 필요가 없다.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저자가 대전에 스페인어 교사로 있다니, 기회가 된다면 만나서 스페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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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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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라고 해서, S대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노예의 눈으로 강대국을 위한 변명을 하는 학자들을 우리는 많이 본다.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부족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을 마음껏 충전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서양 근대사'를 수강했다. 영국에서 학위를 한 교수님이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교재로 서양 근대사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자유무역과 서구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을 무던히도 사랑했다. 동양에서는 자본주의의 싹이 보이지 않을 때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세계를 선도했다는 내용의 강의가 무척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양에서도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고 항변하자, 그 교수는 쌩뚱맞은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상투틀고 살아야지." 정말,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서양사 교수와 너무도 닮은 견해를 가진 학자의 책을 만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던 그 교수가 생각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길레 나의 불편함이 그리도 켰을까?


1. 영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 벌인 비도덕적인 일에 눈감다.

  대학시절, 같이 '서양근대사' 수업을 같이 들었던 타과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왜? 서양에서는 도덕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나요?"라는 타과생의 질문에, 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편전쟁을 비롯해서 영국이 저지른 비도덕적인 전쟁을 열거하면서 비도덕적인 서양 제국주의의 모습을 직면하도록 했다. 그 교수는 귀찮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답변을하지 않았다.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있지 않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섬나라 영국은 자본이 많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영국의 가장 큰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해적질을 들 수 있다. 1579년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해서 26톤의 은괴를 약탈했으며, 보물선의 선장이 은괴를 빼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기 위해서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는 보물선 선장에게 약탈품 목록을 써주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를 '영국 신사다운 해적'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가 어울릴 것이다. 타국의 보물을 훔쳐 부를 쌓고, 해적질을 잘한 드레이크에게 기사작위를 주었고, 심지어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쳐들어오자, 드레이크가 영국해군을 이끌고 무적함대에 맞서싸운다. 해적과 한몸이되거 도적질로 성장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적질을 저자는 비판했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페인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해서 부를 쌓았기에 떳떳하지는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도둑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도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면직물 산업에서 시작되었다. 실을 뽑고, 이 실로 면직물을 만드는 과정에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산업은 혁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술혁신을 이룬 영국인들의 놀라운 힘을 칭찬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국의 기술혁신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약소국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영국산 면직물보다 더 좋은 면직물이 있었다. 바로 인도산 면직물이다. 무굴제국의 황제가 공주에게 살결이 다 비치는 옷을 입었다고 나무라자, 공주는 옷감을 세겹이나 둘렀다고 변명했다. 그정도로 영국산 면직물은 품질이 좋았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질좋은 면직물을 짜내는 영국 직공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직공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은 붕괴했다. 간디가 붕괴해버린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 스스로 물레를 돌려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인도를 침략하는 영국에 타격을 주면서 인도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도인이 필요한 옷감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서술해야만 한쪽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의 기술혁신을 찬양하는 내용은 있었도,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붕괴시켜 영국의 소비시장으로 만들려 잔인한 짓을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진실을 적지 않는 것도 진실을 왜곡하는 일임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이기 보다는 깡패의 나라였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에 아편을 판매하고, 이를 단속하는 청나라에게 우수한 무기로 위협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킨 영국 신사의 행위는 절대 신사적이지 않다. 물론, 도덕적이지도 않다. 만약, 약소민족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역사를 몸으로 알고 있는 학자라면, 대영제국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영국과 중국이 맺은 통상조약은 영국에게만 독점적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로 향한 개방 경제 체제의 일환이었다."-132쪽


  아편을 단속하는 청나라의 정당한 행위를 트집잡아 일으킨 전쟁에 대한 비판은 없고, 오히려 영국이 중국을 개방 경제 체제로 이끌어냈다는 찬양은 나의 눈을 의심케했다. 철저히 제국주의 영국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철저히 제국주의 일본의 시각에서도 역사를 바라보지는 않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2.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는 정당한가?

  우리의 관점에서 인도를 이해하면 인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도는 그들을 200년간 식민지배한 영국과도 웃으며 헤어진 나라이다. 일찍이 완벽히 통일된 인도가 성립된 것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민족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인도인이라는 관념이 생성되었다. 한반도에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고 오랫 동안 중앙집권적 국가 속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인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397명이 죽고 1200명이 다친 암리차르 학살 사건 (Amritsar massacre) 을 저지른 영국에게서 독립하고서도 영연방에 남아있는 인도가 우리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대영제국 하의 자치를 주장하는 인도의 민족주의자과 일제 강점기 일제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자치를 주장한 이광수와 같은 친일파를 비교하면 인도와 한국의 역사인식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다르다하여도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행복할리 없다. 이것은 세계 모든 약소민족의 공통된 역사일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일제 36년이라는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인도의 역사를 서술한다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는 인도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하지않을까? 

  '제국의 품격'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을 철저히 부서버린다. 우리가 세계사교과서에서 배운 세포이 항쟁(1857년 ~ 1858년)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반란"으로도 불릴 수 있고, "항쟁" 혹은 '제1차 독립전쟁"으로도 불릴 수 있다. 한국인 교수가 쓴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했을까? 놀랍게도 "반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저지른 잔혹한 일들에 대해서는 일체 서술하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도가 근대화되었다는 내용의 서술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인도인들의 말을 인용하며 인도인들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고마워하고 있다는 서술을 강조해서한다. 그렇게 영국이 인도에 잔인한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왜? 세포이항쟁이 일어났는지 묻고 싶다. 피식민지인들에게는 그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선한 존재일 수 없다. 

  저자 박지향은 인도인이 왜? 세포이 항쟁을 일으켰는지를 먼저 서술하기 보다는 영국 군인과 가족이 죽임을 당한 칸푸르 사건을 먼저 서술하며 여자와 아이를 학살한 세포이들의 잔인함을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은 암리차르 학살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세포이들이 잔인하고 야만적이기에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알맞은 서술방식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박지향은 친절하게 영국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술을 한다. 


  "영국인들이 느꼈던 공포심의 상당 부분은 그들이 사적으로 잘 알고 지냈을 뿐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원주민들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돌변하여 몇 시간 전만해도 자신들이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던 아이들의 부모들을 난도질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228쪽


  박지향의 서술을 따라간다면 인도인들은 영국인들 앞에서는 상냥하지만 가슴에 칼을 숨기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 글을 뒤집어 읽어보면, 종교에 심취하고 온순한 성격의 인도인이 영국인들 앞에서 굴종하며 가슴속에 비수를 품을 수 밖에 없는 영국의 간악한 식민지배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서술이기도하다.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여 자신들의 부를 빼앗고, 그들의 힘에 굴종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도인들의 분노가 세포이 항쟁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를 박지향은 알지도, 서술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세포이 항쟁에 대한 평가도 박하게 한다. 


  "이 사건을 인도민족운동의 효시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20세기에 몇몇 인도인이 그렇게 믿고자했지만 세포이 반란은 결코 독립을 위한 국민적 투쟁이 아니었다."-227쪽


  전국적으로 일어난 세포이 항쟁은 무굴제국의 황제를 구심점으로 본격적인 반영운동을 하려하였다. 그러나 무굴제국 황제는 인도인의 구심점이 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영국의 최신식 무기에 세포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향은 인도의 토호국이 영국편에서 세포이를 진압한 사실을 근거로 세포이 항쟁은 '인도 민족 운동의 효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직 완벽한 '인도 민족'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박지향의 주장이 일면 타당해 보기이기도하지만, 세포이 항쟁이 '효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은 운동은 아니다. 영국의 용병이 영국이 지급한 총을 들고 영국과 맞서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지향은 철저히 영국인들의 시각에서 인도를 바라보느라, 인도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박노자가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한탄한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제국주의 국가를 찬양하는 책이 출판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박지향은 인도 독립운동의 상징인 간디도 비판한다. 간디가 근대적 산업과 근대 국민국가와 서양 문명을 거부하고, 근대적 기술을 비판했다는 것이 박지향의 간디 비판 근거이다. 특히 간디가 근대적 기술을 비판하면서도 '사진을 가장 많이 찍힌 당대정치가'라고 간디를 비판한 부분은 코미디로 느껴졌다. 마치 영국이 저지른 부도덕한 전쟁을 비판하자, "그럼, 상투틀고 다녀야지"라고 말한 K교수가 떠올랐다. 간디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힌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박지향의 간디비판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박지향은 한발자국 더 나가서 인도가 힌두-이슬람으로 분리 독립한 것도 간디의 책임인듯 서술했다. 특히 간디가 힌두-이슬람 무력 충돌을 막지 못했다면 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한다. 분리독립을 막기 위해서 단식하다가 힌두 극단주의자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그를 비판하는 장면은, 분단을 막기 위해서 38선을 넘으며 통일 조국을 만들려 노력하다가, 친일파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를 비판하는 뉴라이트 세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지향, 그녀에게 일제 식민지배는 어떻게 평가될까?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한 것과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을 오버랩시키며 식민지배를 축복으로 여길까?


3.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다!!

  '덜나쁜 제국주의'는 있을까? 이 질문은 '덜 나쁜 강간범'은 있을까?라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다. 국토를 유린하고 식민지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그들을 '더 나쁜 제국주의자'와 '덜 나쁜 제국주의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영국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 박지향은 "영국은 확실히 '가장 덜 나쁜 제국'이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박지향은 영국인들은 두개의 사명이 있다고 설명하다. 첫째는 인간이 사용하도록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복한 과실을 '영구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은 탁월한 과학 기술로 무장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또한 의회 민주주의, 자유 선거, 기독교 윤리, 법치, 자유주의 경제체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탁월한 시스템과 가치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뿌리 내렸다고 단언한다. 박지향이 '제국의 유산,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박지향은 21세기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영비어천가'를 쓰고 있다. 강자의 폭력을 미화시키며 약자의 신음소리에 철저히 귀를 닫는 박지향의 무책임한 역사 서술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노스차일드와 아랍의 하심가문에게 팔았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의 편을 들어준다면 유대인에게도 아랍인에게도 자신의 국가를 팔레스타인에서 건국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영국이 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했다. 그결과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났으며, 오늘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의 집에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인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독립한 것도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종교 분리 정책 때문이다. 인도에서 힌두인과 이슬람인을 등록하게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쳐 영국에 대항한 세포이 항쟁처럼, 영국은 제2의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분할하여 통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인도는 힌두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했다. 그과정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무력 대결을 하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이밖에도 영국의 식민지배 유산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 약소국들이 많다. 그들이 박지향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영국이 흘린 떡고물을 보면서 영국이 빼앗아간 떡은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어야만 한다면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가장 났다."(323쪽)라는 글을 책에 쓰기보다는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자"고 말하자.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면,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는 노예근성을 가진자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한심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낀다. 이 땅의 역사학자는 다음 세대에게 식민지 노예 근성을 학습시기기 보다는 자립과 자주 정신,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어야하지 않을까? 박지향에게 묻고 싶다. 



  대학시절, 서양근대사를 수강하며, K교수와 잦은 마찰을 겪었다. 나중에는 K교수가 나를 교수실로 불렀다. 서양사 교수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성공한 혁명으로 설명하기에 '문화대혁명은 실패한 운동으로 결론이 났는데 무슨 근거로 성공했다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한 나를 교수실로 부른 것이다. K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논리적으로 대기 보다는, 자신을 타교수와 같이 대해달라고 했다. 타교수님은 전공에 대한 열정과 심오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지는 분들이다. 그러나 K교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영국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에 반대하는 주장에 철저히 귀를 닫고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했다. 토론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공부한 K교수가 학부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교수실로 학부생을 불러 자신을 타교수와 같은 급으로 대해달라는 어리석은 주장에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박지향은 대학에서 만난 K교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제국의 품격'에서 영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서술한 이유를 서문에 "이 책은 굳이 영국의 단점을 들추려하지 않았다. '''' 이 태도는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다."(7쪽)라고 서술했다. 나이가 들어 심각한 보수화가 진행되었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강자의 장점만을 보고, 약자의 고통은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K교수에게 느꼈던 측은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외눈박이 물고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서문에 "정년 후 한동안은 쉬고 .... 다시 책을 쓰고 싶어지면, 그땐 영국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한번 써볼까?(7쪽)" 라고 쓴 것 처럼 대영제국의 어두운면을 서술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외눈박이 물고기는 두개의 눈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s.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영국은 16세기 왕과 신민들 사이에 일종의 '정치 계약'에 의한 관계라는 의식이 생겨났으며, 이는 홉스의 사회계약설로 이어진다. 중세 봉건제도가 "쌍무적 계약관계'이며, 홉스와 로크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계약"이라는 관념은 서구 문화의 핵심이며, 동양의 관념과는 많이 다른 그들의 문화라는 생각이든다. 

   대헌장은 1215년 만들어진 후, 16세기 까지 30차례에 걸쳐 재확인되었고 보완 발전되었다. "대헌장의 인생에는 공백기가 없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처음은 초라했지만, 끝은 창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른 대헌장의 인생에 공백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재산권","계약"이라는 개념이 영국을 발달시켰다. 자유무역과 안정된 의회제도, 우수한 해군력이 더해져 대영제국이 성립했다. 이점이 영국이 돋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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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정훈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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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았는가? 피터 자이한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포기하고 고립주의로 돌아간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미국없는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미국과 친해지라 말한다. 미국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오만한 주장이라 생각되지만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이라면 브레튼우즈체제 성립 이전의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는듯하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오만한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하며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을 펼쳤다. 내 생에는 일어나리라 상상하지 않았던 코로나19 펜데믹이 발생하고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들의 민낯을 보며 그 어떤 가능성도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1. 지금의 세계질서는 기이한 현상인가?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결국 그 탐욕의 끝은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초강대국 미국을 탄생 시켰다. 미국도 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할 수있었겠지만 미국은 다른길을 선택한다.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항해의 안전을 제공한다. 기존 패권국이 해오던 수탈 방식과는 너무도 다른 방식이었다.
세계는 미국이 만든 브레튼우즈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과 같은 나라는 번창하였다. 미국이 깡패국가로 지목한 나라는 경제적 파국으로 내몰렸다.
그런데 미국이 변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미국이 당연히 해오던 일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이 타국에서 피를 흘리며 돈을 쓸 필요가 있가? 한국과 같은 부자나라에 미국이 군사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가? 피터 자이한은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에 이책을 통해서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기할 미래를 제시했다. 미국이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항해의 안전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없는 세계는 무질서한 아비규환 지옥이다. 유일한 초강대국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 남아있지 않는다. 이때 미국의 무력으로 보호받으며 발전했던 한국은 이제 일장춘몽에서 깨어나야만할까?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 받는 천혜의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미국이 셰일혁명으로 날개를 달았다. 더이상 석유를 구하기 위해서 중동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자원과 인구학을 이용해서 미국의 미래를 살펴봐도 세계에서 미국의 미래는 밝다.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저출산과 고령화의 덧에 빠져있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불안하며 자원도 안전적으로 조달하기 힘들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그 피해를 톡톡히 보는 나라도 많다.
피터 자이한은 미국없는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미국과 친해지라 말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없는 미래를 예측한 피터 자이한의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

2. 피터 자이한의 주장이 가진 함정
세계적 석학들은 미래를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모두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피터 자이한은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피터 자이한은 2040년 구미당기는 술 한 병을 사들고 찾아오라는 여유를 부린다.
피터 자이한의 예측이 들어 맞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 되어야한다.
첫째, 트럼프세력이 군산세력을 이겨야한다.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는 트럼프와 분쟁을 유발해서라도 세계 각지에 미군을 보내려는 군산세력의 대결에서 트럼프를 중심으로한 세력이 승리해야한다. 트럼프가 노련하게 군산세력과 맞서고 있지만 군산세력의 반격도 만만치않다.
둘째, 탁월한 리더쉽이 필요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에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타국에 반감을 얻어서는 안된다. 왕은 여우의 머리와 사자의 심장을 가져야한다. 트럼프식 일방주의는 수많은 적을 만들어 미국을 고립시킨다.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도 지키는자가 어리석다면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셋째, 미국의 지정적 잇점을 위협하는 요인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ICBM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있다. 발전은 미국의 지정학적 잇점을 무력화 시킬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보듯이 예측할수 없는 신종전염병은 미국을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 기후변화도 미국을 위협할 수있다. 피터 자이한은 미국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미미하게 받을 것이라 예측했으나 기후변화의 피해는 지정학자인 피터 자이한의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밖에도 내가 예측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들이 미래에 펼쳐질 수있다. 우리는 오만해지기 보다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피터 자이한은 ˝간단히 말해서 세계는 그야말로 지옥을 향해가는데 미국은 여기서 쏙 빠지게 된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지옥에서 벗어 나고 싶다면 미국의 친구가 되라! 그의 확신에찬 몇몇 주장은 빗나가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에 위협이되지 않기에 미국은 중국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예측은 미중무역전쟁을 보면 빗나간예측이었다. 또한 미국은 베네수엘라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통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역시 빗나간예측이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패권을 포기한다는 예측도 빗나갈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쥔자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 놓지는 않는다. 하물며 세계 패권인들 말해서 무엇하랴!
미국 우월주의에 빠진 피터 자이한의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지정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정학을 이용하는 인간의 리더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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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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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우리에게 전쟁은 어떠한 이미지인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에서 전쟁은 대부분 남성 영웅이 남성성을 과시하는 장이다. 여성들의 역할은 남성들보다 빛나지 않는다. 전쟁은 남성의 것이며, 여성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새기고 전쟁을 바라본다. 이러한 편견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도전한다. 직접 전쟁을 겪은 여성들을 찾아가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남성들의 영웅 서사에 가려져, 침묵을 강요받았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되살려냈다. 전쟁은 남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영웅들만을 등장시키는 서사시가 아님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증명한다. 남성들의 영웅서사에 의해서 지워지고 가리워졌던 여성들의 전쟁이야기를 들어보자.

 

 

1. 무엇이 소녀들을 최전방으로 이끌었는가?

당신은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선에 자원할 수 있는가? 행정병으로 안전한 후방에 있으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최전선으로 보내달라며 최고 지위관 동지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가? 남성들도 쉽지 않은 행동을 여성이, 그것도 17, 18살 소녀들이 했다. 그리고 당당히 최전선에 배치되어 저격병으로, 전투기 조종사로, 빨치산 대원으로 활약했다.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공산당에 의해서 전쟁에 강제로 떠밀려 갔을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은 산산조각났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던 가장 큰 의문점은 "무엇이 소녀들을 최전방으로 이끌었는가?"이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최전선으로 전투병으로 자원해서 나갔다. 무엇이, 무엇이 그녀들을 이끈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녀들이 중앙위원회와 모병사무소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최전선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어느 모녀 일가족이 단체로 자원입대하기도 했으며, 남편과 아내가 같이 자원입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군에 입대하지 말것을 간곡히 요구하거나 심지어 묶어 놓는 경우에도 집을 탈출하여 전쟁터로 나갔다. 어느 어머니는 '너의 아버지도 전쟁터에 갔으니, 이제 너도 전쟁터에 나가야하지 않겠니?'라며 자신의 딸을 전쟁터로 보냈다. 공산당의 강요에 의해서 그렇게도 많은 소녀들이 전쟁터에 갔다고 볼 수 없다. 그녀들이 전쟁터에 스스로 달려간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우선, 교육의 힘을 떠올릴 수 있다. 소녀들은 나라를 사랑해야한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조국이 파시스트들에게 짖밟히는 현실을 피끓는 소녀들이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당시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학교 교육만으로 조국을 사랑할 수 있을까?

두번째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대 개혁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공산정권은 차르체제를 전복시켰으며, 자본가와 귀족, 지주들을 없애버렸다. 농노로 노예처럼 살아야했던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공산정권이 고마웠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여성의 아버지는 공산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주 밑에서 노예처럼 일을 해야했을 텐데,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노예에서 해방되어 교육을 받고 다리 건설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공산 혁명 초기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러시아의 농민들은 공산정권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러했기에 스탈린에 의해서 아버지와 오빠가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상태인데도, 스탈린을 미워하는 것은 나중에 하고 조국을 먼저 구하자며 전쟁터에 자원입대한 것이다.

그렇다. 애국심은 강제로 주입한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 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며, 조국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만이 애국심이 생겨날 수 있다. 외부의 충격에 한 나라가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치가들은 어떠한 정치를 해야하는지를 독·소 전쟁시기 소녀병사들의 자원입대를 바라보며 깊이 있게 고민해야할 것이다.

 

2. 여성들이 기억하는 전쟁은 남성의 전쟁과 무엇이 다른가?

여성들의 전쟁 이야기를 남성들은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에 대해서 "유치한 사실주의"라는 비판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성영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난과 "이런 책을 쓰면 누가 싸우러 나가겠소?"라는 비판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짖밟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여성의 기억은 남성과 다르다. 남성은 적을 얼마나 죽이고, 전공을 얼마나 세웠는지에 촛점이 맞춰진다. 남성이라면 군대간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자신이 제대하면 대한민국 군대가 쓰러질 듯이 말하는 경험을 하거나, 그러한 군대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남성중심의 전쟁 서사는 새로운 영웅을 만든다. 그러한 영웅 서사는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을 전선으로 이끌 수 있는 마력을 제공해준다. 영웅주의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첩경이다. 인간이 영웅이 되는 순간, 일상은 없어진다. 인간은 국가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래서 출판 검열관이 "이런 책을 쓰면 누가 싸우러 나가겠소?"라며 여성의 목소리를 비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목소리는 전쟁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소녀병사들은 전쟁영웅이기 앞서, 생명을 사랑하고 예뻐지고 싶어하는 소녀였다. 최전선으로 보내달라던 소녀들이 전쟁터에서 소녀의 감성을 버리지 못했다. 몇일을 제대로 먹지 못한 소녀가 송아지를 쏘아야만 하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오랜만에 송아지 고기가 식탁에 올라왔지만, 소녀는 먹지를 못하고 울어버린다. 다른 소녀병사들은 우는 소녀를 다독인다. 독일군을 괴롭힌 저격병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독일군을 쓰러뜨린 저격병은 대다수가 소녀 저격병이었다. 독일병사 10명을 정확히 같은 곳을 맞추어 죽인 소녀 저격병을 포로가된 독일군 장교가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만나게해줄 수 없었다. 붉은 목도리를 좋아했기에 전쟁터에 나가서 붉은 목도리를 하고 있다가 표적이 되어 죽었다. 목욕하다가 목욕탕 옆에 미용실을 보자, 눈썹을 물들이며 예뻐지고 싶어한 소녀들이다. 남자들과 모닥불에서 이를 잡을 수 없어서 그 추운 겨울에 스웨터를 버린 수줍은 소녀들이다. 전쟁이 그녀들에게 군인이 될 것을 강요했지만, 그녀들은 소녀의 감성을 숨길 수 없었다. 누가 이 소녀들을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익숙하도록 만들었는가?

독일군에게 가족이 죽고, 전우가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당신이라면 적국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겠는가? 이 책에 소개된 증언에는 믿을 수 없는 일화가 많다. 먹을 것을 달라는 독일군 포로에게 자신이 가진 빵을 나눠주는 소련군 위생사관, 기관단총을 들고 달려드는 독일군 소년을 제압하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여성병사, 독일군 포로를 간호하는 간호병의 일화를 읽으며 이 이야기를 믿어도 될까?하는 생각을 했다. 독일군은 소련인을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학살을 저지른 독일군에게 소련군도 만만치 않은 보복을 했다. 그런데, 소련의 여성군인들의 증언에는 사랑과 용서가 녹아있다. 믿기지 않는 일화를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혼란스러우면서도 이것이 여성의 목소리로 전해진 전쟁 이야기 이기에 들을 수 있는 일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이 냉혹한 전쟁시기이지만, 그녀들은 병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하는 고뇌를 잃지 않았다. 살인병기가 아닌, 인간으로서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성을 잃지 않을 때만이, 전쟁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3. 전쟁터의 여성들은 어떠했을까?

전쟁터에서 그것도 최전방에서 여성병사들은 어떠했을까? 동료 병사들로부터 차별과 괄시를 당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모두다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증언은 남성병사들이 여성병사들을 동료로 대했다. 생리작용으로 바지가 피로 물들때는 여성병사의 다리를 보지 않으려 노력했고, 위험하다며 남성병사가 여성병사를 몸으로 보호했다. 물론, 남성병사는 부상을 당했다.

여성병사들이 남성들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전쟁터에서 생활한 것은 아니다. 소녀 간호병들은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부상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부상자와 그의 총을 끌어 참호속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간호병들이 죽었다.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여성병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병사들을 위해서 빨래를 하는 부대, 취사부대, 통신부대에서 여성들은 남성 못지 않은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훈장을 주지 않기도 했다. 조국을 지키는데 남성과 여성이 따로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남성위주의 전쟁관은 여성에게 인색하게 대했다.

피끓는 남성병사와 여성병사가 전우로 만났다면, 둘 사이에 사랑은 없었을까? 어떤 남성병사는 여성병사를 형제자매로 보았기 때문에 남성병사와 여성병사들이 사랑했을리가 없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어느 여성병사는 남성병사에게 '그 수많은 여성병사들을 당신들은 어떻게 했나요? 그녀들은 홀로 쓸쓸히 살아가요'라며 오열했다. 동료로, 형제자매로 보았다면, 남성병사들이 여성병사들이 홀로사는 것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녀는 왜? 오열한 것일까?

피끓는 청춘 남녀는 자석이 서로를 끌어 당기듯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어느 커플의 경우, 전쟁터에서 전쟁이 끝나면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전쟁이 끝나자, 둘은 결혼했고, 남편의 고향에 갔다. 그런데, 큰시누이가 '당신은 그 어떠한 권리도 없다', 여성병사가 가져온 음반을 부수고, 전선에서 가져온 사진을 찢었다. 남편의 어머니는 '네가 이러면 너의 두 동생은 어떻게 시집가니?'라며 아들을 나무랐다.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다. 파시스트들로부터 조국을 구한 그녀에게 남편의 가족이 차마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다.

이 이야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둘은 결혼했으니까.... 많은 경우, 전쟁이 끝나자 남성병사는 여성병사를 외면했다. 혹은 결혼 했으나, '당신에게서는 군화냄새가 나지만, 다른 여성에게서는 향수 향기가 난다', 이혼을 하고 다른 여성에게 가버린 사례도 많다. 남성병사가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오면 전쟁영웅이 되지만, 여성병사가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오면, 자신의 훈장을 숨기고, 조국을 위해서 목숨바쳐 히틀러의 병사들과 싸웠다는 사실을 입밖에 내서는 안되었다. ? 여성병사들이 이러한 모욕을 겪어야하는가? 남성병사와 여성병사가 무엇이 다르기에???

그러나, 이들 여성보다 더 가여운 여성이 있다. 페페제라는 불리는 여성들이다. 번역하면 '전장의 아내'라는 뜻이다. 남성들로 둘러싸인 전선에서 안전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한남자를 선택하는 편이 났다고 판단한 여성들이 지휘관의 여성이 된다. 전쟁터에서는 사랑을 나누지만, 전쟁이 끝나면 남성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버린다. 이책의 페페제는 전쟁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도했다. 자신을 버리고 가족에게로 가버린 남성을 생각하며, 그의 딸을 키운다. 자신을 버린 남성이 죽자, 눈물을 흘리기도한다. 딸로부터 핀잔을 들으면서...... 전쟁이 누구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되기도한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들 속에서 수많은 여성 병사들은 슬픔을 겪어야했다.

 

4. 참혹한 전쟁을 겪은 그들은 전쟁을 다시는 일으키지 않을까?

옥사나라는 소녀가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말똥을 먹으며 살아남았다. 그 혹독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옥사나가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죽었다.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인간이 살아 남기 힘든 곳이다. 이러한 전쟁의 비극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해할까! (중략) 서로 사랑할꺼야. 달라질거야. (중략)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미워해. 다시 서로를 죽이고, 나는 그게 제일 이해가 안돼 (중략)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552

 

움냐기나 위생사관의 말은 전쟁의 참속함으로 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현명한자는 고난을 통해서 교훈을 배우지만, 우둔한 사람은 고난을 겪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 전쟁을 통해서 그들은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했다. 어느 여성병사는 자녀들에게 총과 대포 장난감을 갖고 놀게해주는 부모를 이해못한다고 말한다. 어느 여성 병사는 정육점을 갈 수 없어 남편을 보낸다. 어느 여성병사는 붉은 핏방울이 생각나서 붉은 색을 집안에 두지 못한다. 붉은 색을 보면 몸에 이상반응이 발생한다.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예민한 감성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전쟁의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고대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다예바 고사포 지휘관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사랑과 기쁨이라는 걸 깨달았고 전쟁이 끝나면 그렇게 살고 싶었으니까. 하느님은 총을 쏘라고 사람을 창조하신게 아니야. 서로 사랑하라고 만드셨지."-224

 

추다예바 고사포 지휘관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해서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를 깨달았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발견하고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도 추다예바 고사포 지휘관이 발견한 삶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야할 것이다. 삶이 전쟁인 우리 사회에서 절망에 빠지기 보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자. 그것이,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증언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 같이 가슴 아프면서도 삶을 생각하게하는 내용이다. 한 쳅터를 읽고서 바로 다음 쳅터를 읽을 수 없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며 사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소련의 장교는 결코 포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포로는 없다. 반역자만 있을뿐"이라는 스탈린의 말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이다. 전투중에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하여 우크라이나 빨치산에 들어가 전공을 세웠고, 포상도 받았지만, 포로였다는 이유로 수용소 생활을 하고, 가족은 비난과 차별을 받아야했다. 도조히데키의 '전진훈'을 떠올리게하는 스탈린의 말은 전쟁영웅도 반역자로 만들었다. 수많은 유능한 지휘관을 처형하고 독일군이 침략한다는 첩보를 보고한 병사를 처단한 스탈린의 잘못은 묻어버린채, 조국을 위해서 전쟁터로 나가 싸우라 말하는 스탈린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수많은 소녀병사들이 자원에 전쟁터로 갔지만, 소련군 총사령과 주코프는 소련군 병사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에게는 전쟁 승리만이 중요했다. 국가가 위기에 닥치면 이를 극복하는 것이 힘없는 국민들일 뿐이라는 현실은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2천만의 소련 병사의 목숨을 댓가로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은 미국의 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을 꺾었다고 믿고 있다. 미국주도의 세계질서 속에서 남성중심의 역사관은 2차세계대전 중에(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으로 불리는 전쟁중에) 죽어간 수많은 소련의 젊은이들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는 더더욱 기억하는자가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은 너무도 소중한 책이다. 다시는 소녀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전선으로 가겠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책장을 덮는다.

 

PS. 인상 깊은 증언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전쟁 전까지 나는 음악인 집안에서 자랐어. 특히 독일 음악을 좋아했지. 바흐, 베토벤, 아, 위대한 바흐!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이 이름들을 내 세상에서 지워버렸어. 나중에 화장터를 보여주는데 .... 아우슈비츠 수용소 말이야 ... 아, 산더미처럼 쌓인 여자 옷가지며 아이들 장화...... 회색 잿더미.... 그 재들을 들판으로 내가서 양배추에 부리고 .... 상추에 뿌렸다는 거야 .... 정말이지 더이상 독일 음악을 들을 수가 없더라고 ... 내가 다시 바흐에게 돌아가기까지, 모차르트를 다시 연주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럴렸어."-519쪽, 아글라야 보리소브나 네스테루크, 중사, 연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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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아이들 - 전범의 자식들, 역사와 대면하다
타냐 크라스냔스키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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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혹은 조상의 잘못을 그 후손들이 책임지어야할까? 당신이 연좌제에 반대한다면 나치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서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우린 어떻게 답해야할까? 부모와 자녀는 별개의 생명체이다. 부모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자녀가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조상이 친일한 댓가로 최고의 교육을 받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후손들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조상들의 잘못을 내가 왜? 책임지어야하느냐'는 반박에 적당한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치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서가에서 펼쳐들었다. 독일은 제3제국 전범의 자녀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리고 전범의 자녀들은 부모의 유산을 어떻게 떠안았을까?

 

1. 부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치의 아이들.

  나치의 핵심 전범중에서 딸바보들이 많다. 헤르만 괴링과 하인니히 힘러가 대표적인 딸바보들이다. 유대인과 집시들에게는 악마의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의 딸에게는 너무도 사랑스런 아버지이다. 사랑처럼 강력한 쇠사슬은 없다. 보통의 쇠사슬은 얽매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기에 쇠사슬을 끊으려 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쇠사슬을 받은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쇠사슬을 그리워하며 안주하게 만든다. 

  나치 전범의 자녀들 중에서 부모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부모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의 힘을 어쩌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의 아들 볼프 뤼디거 헤스와 홀로코스트 설계자 하인리히 힘러의 딸 구드룬 힘러,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의 딸 에다 괴링이다. 

  구드룬 힘러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인리히 힘러는 자신의 딸 구드룬 힘러에게 너무도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녀는 '히틀러 유겐트'를 모델로 '비킹 청년대'를 창설한다. '침묵의 원조'를 통해서 나치 전범들을 도와 준다. 그 중에는 '리옹의 백정' 클라우스 바르비도도 있다.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사죄하기 보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이식받아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려한다. 

  헤르만 괴링의 딸 에다 괴링의 경우,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당시에 재미 있는 일화가 있다. 


  "라이히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는 걸 들었나?", "아니. 무슨 일이 있나?", "에다가 거기서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네."-75쪽


  헤르만 괴링이 딸 에다 괴링을 얼마나 끔찍히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화이다. 에다 괴링에게 아버지에게는 죄가 없다. 단지 히틀러만이 모든 죄의 책임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그 분의 눈을 들여다보면 평화를 읽을 수 있지."라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아버지의 사랑의 쇠사슬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짐작케한다.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의 아들 볼프 뤼디거 헤스도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한다. 루돌프 헤스는 영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단독으로 비행기를 조정해서 영국에 갔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볼프 뤼디거 헤스에게 아버지는 평화를 추구한 사람이다. 그는 나치의 침략을 합리화했으며, 많은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도 아버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에 짖눌려 사랑의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대를 지나면서 사랑의 쇠사슬은 약해지기 시작한다. 헤르만 괴링의 증손녀 증손자는 죄악의 유전자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불임을 결정했으며, 종손 마리아스는 유대교를 받아들인다. 구드룬 힘러의 종손녀 카트린은 바르샤바 게토에 살았던 유대인 가문 후손과 결혼했고, 조상이 한 만행에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의 유산을 넘겨 받을 수밖에 없는 나치의 자녀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유산을 극복할 것인가? 그 유산에 짖눌려 살 것인가? 는 자녀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부모의 사랑이 클수록 그들은 부모의 유산에 짖눌려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쇠사슬은 세대를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2. 부모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자녀들.

  모든 나치의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의 아들 마르틴 아돌프 보어만,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가 대표적인 예이다.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은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해야했기에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림자 총통' 보어만은 아들을 나치의 기숙학교에 보낸다. 나치가 패망을 하고 나서야 마르틴 아돌프 보어만은 아버지의 죄를 알게 된다. 그리고 가톨릭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열정적 선교활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별다른 사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의 쇠사슬이 약했기 때문일까? 그랫기에 아버지의 죄를 씨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사제의 길을 갔던 것일까?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니클라스는 가족들에게 '이방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미클라스 프랑크는 아버지 한스 프랑크가 자신을 안아주기를 기대했지만, 니클라스의 아버지는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 다행이라해야할까? 아버지의 사랑의 쇠사슬은 니클라스를 올가메지 못했다. 나치가 패망하자, 아버지 한스 프랑크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노르미가 아버지의 전범행위에 고통을 받으며, 죄악의 유전자가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40세에 자살했던 것에 비해서, 니클라스 프랑크는 아버지의 전범행위와 정면으로 대결한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여러권의 책을 쓴다. 또한 평생 동안 아버지의 시신을 담은 사진을 곁에 두고 보관했다. 왜일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이 사진에 담긴 장면이 마음에 들어요. 그가 죽었으니까요." -173쪽


  아버지의 죽음을 직시하고, 아버지의 죄를 직시한 니클라스 프랑크에게 사랑의 쇠사슬이 너무도 약하다는 사실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3. 새로운 화두의 등장.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나치의 아이들'이라는 책은 무거은 화두를 던져 주었다.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라는 화두는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자녀의 삶에 무조건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나치전범의 자녀들 중에서 한쪽은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부모의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삶을 살아간다. 부모의 죄를 합리화하거나, 부모에게 죄가 없다는 논리를 만들고 근거를 찾는다. 사랑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옥죄어 오는 쇠사슬에 행복해한다. 

  반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나치의 자녀들은 사랑의 쇠사슬이 너무도 약하기에 쇠사슬을 끊고 현실을 직시한다. 부모와 마주하며 부모의 죄를 직시한다. 사제가 되거나 책을 쓰면서 부모의 잘못을 씻으려 노력한다. 

  그렇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에게 쇠사슬이 될 수있다. 자녀의 삶을 화창한 봄날 장엄하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활짝 피울 수있기 위해서, 부모는 한가지 더 노력해야할 것이 있었다. 자녀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한다. 현실의 부조리함과 타협하면서 삶을 살아간다면, 부모의 사랑은 가혹한 쇠사슬이 되어 자녀의 삶을 갈가 먹을 것이다. 현실의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걷는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나눠준다면, 자녀도 올바른 삶을 살아가며 행복해할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독이될 수 있다. 자녀가 자신의 두발로 대지를 딛고 우뚝 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부모는 먼저 올바른 삶을 살아야한다. 그리고 나서 행복한 사랑을 주어야한다. 

  나치전범들은 자상한 아버지 일지는 모르지만, 삶을 올바로 살아가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나치 전범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 루돌프 회스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루돌프 회스는 아버지로부터 군대식 규율을 강조받으며 성장했다. 모든 어른은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기 때문에 그는 생각할 필요 없이 복종을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복종을 즐겼다. 감옥에서 모범수였던 것도, 생각하기 보다는 복종에 익숙한 독일식 교육의 효과(?)였다.생각하지 않고 윗사람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라는 독일의 규율은 나치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심리학자 G.M 길버트가 유대인들이 그러한 운명을 겪을 만한 사람이었냐고 질문하자, 루돌프 회스는 놀라운 대답을 한다. 


  "생각을 하는 건 우리의 일이 아닙었습니다"-245쪽


  루돌프 회스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한 존재였다. 이것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제게는 제 의식이 없습니다. 제 의식은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루돌프 헤스 113쪽


  일찍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했다. 나치 전범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존재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부두교의 좀비들 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그들은 히틀러의 말에 맹목적으로 복종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삶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생각도 옥좨어 버렸다. 

  사랑하는 자녀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 생각하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며 정도를 걷자. 그리고 자녀를 사랑하자. 그럴 때만이 나의 사랑이 자녀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8월의 어느날, 광화문 거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좀비들을 보았다. 부두교 사제 호운간이 부두교 신자들을 황홀경에 빠뜨리며 신비한 약으로 그들의 몸과 영혼을 지배하듯이, 신자들을 광화문으로 끌고 나와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며 대한민국을 코로나19 공포에 빠뜨렸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치의 아이들'의 한구절을 읽었다. 


  "우리는 죄를 물려받지는 않지만 우리 조상의 죄로 생겨난 결과는 물려 받는다."-289쪽


  그들의 맹목적인 삶이 그들의 자녀에게는 쇠사슬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코로나19 공포로 몰아 넣은 그들의 죄는 물려받지 않겠지만, 그 죄로 인해서 생겨나는 결과물은 그들의 자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물려받게 될 것이다. 마치, 친일파의 죄를 그 자녀가 물려받지 않지만, 친일 부모의 죄로 생겨난 결과물의 영향은 자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다. 무엇으로 광화문의 좀비들과 그들의 죄로 생겨난 결과물을 물리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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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20-08-27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상의 잘못을 책임지라는 게 아니라, 반면교사가 있으니 그들이 더 옳은 삶을 살길 바라는 거죠. 그런데 그걸 책임전가라고 발끈해버리니 어이가 없어지는 겁니다. 흑흑흑

강나루 2020-08-28 21:19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