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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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브라이슨의 책에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글을 재미있고 위트있게 쓰는 책을 읽는 것은 나름의 흥미가 있다. 사실 '발칙한 영어'를 일기 보다는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부재에 끌려서 이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라는 그릇에 영어라는 음식을 빌 브라이슨이라는 소스를 뿌려 만든 작품이다. '미국 이라는 그릇'을 기대했던 나는 '영어라는 음식'을 즐기지 못했다. '영어라는 음식'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맛 보았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이라는 소스'를 뿌렸다 한들 영어의 생소함과 어려움은 음식맛을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꾸역꾸역 600페이지를 읽고 나만의 방식으로 음식 후기를 남긴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의 역사를 즐겁게 해체한다. 정통 미국 역사책은 필그램파더에서 시작하는 자유를 찾아 미국인들이 서부 개척을 통해서 자유를 아메리카대륙에 확대시켰으며 세계 1,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유의 파수꾼으로서 세계 경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이른바 '자유의 확대'가 미국 주류 역사학의 거대한 서사이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이러한 신화와 네러티브를 해체한다. 그만의 유쾌한 필체로 근엄한 주류 역사 서술을 무장해제시킨다. 

  청교도들인 필그램파더가 자유를 찾아서 플리머스 바위해안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신화를 살펴보자. 빌 브라이슨은 필그램 파더들이 암초의 위험을 무릎스고 플리머스 바위해안에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필그램 파더 이전에도 먼저 온 미국인들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수많은 이주자 중에서 필그램파더를 미국사의 시작으로 꼽는 미국인들의 의도에 시원한 유머를 날려준다. 

  그렇다면,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미지의 땅, 아메리카로 왔을까? 아니다. 빌 브라이슨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게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로 온 이유를 설명한다. 


  '고향땅에서 오랫 동안 박해를 받은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원한 것은 오로지 그와 똑같이 편협한 제도를 독자적으로 확립할 기회였다.'-462쪽


  '종교의 자유'라함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자유로이 믿을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그러나, 청교도인들은 '청교도만 믿을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이러한 자유는 자유라기 보다는 속박이다. 정확히 그들이 원했던 것을 찝어내어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 점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초기 청교도들과 함께 사는 삶이 유쾌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사실상 또다른 속박이기 때문이다. 자위행위도 중대 범죄로 처벌 받았으며, 코네티컷 뉴헤이븐이라는 사람은 마을에 외눈 박이 돼지가 태어나자, 수간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지기까지했다. 어느 것이든지 극단에 치우치면 그것이 새로운 속박의 굴래가된다.  "청렴하면서도 포용력이 있고, 어질면서도 결단을 잘 내리고, 사리에 밝으면서도 지나치게 파헤치지 않고, 곧으면서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리켜 꿀범벅이 달지 않고 해산물이 짜지 않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덕이다.(淸能有容,仁能善斷明不傷察,直不過矯 是謂 "蜜餞不甛,海味不함",是懿德)"라는 채근담의 당부를 청교도인들은 귀담이 들어야할 것이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 독립 혁명의 민낯을 파헤친다. 미국인 대영제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용기있게 독립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류 역사학자들은 서술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 시민 모두가 투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닌 당시에 유독 아메리카에 있는 영국령 식민지만 압제했다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만 듣는다면 영국이 엄청난 세금을 미국인들에게 부여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영국령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낮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 '이것이 반역이라면 최대한 이용하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고 알려진 페트릭 헨리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영국에 강력한 저항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자유의 획득을 위해서 압제에 저항했다는 미국 독립혁명의 신화를 빌 브라이슨은 유쾌하게 깨부스고 있다. 

  나라를 만든자는 그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신화를 만든다. 소위 '정사'로 알려진 역사는 그들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한다. 빌 브라이슨 책의 유쾌함을 그러한 '정사'에게 시원한 일침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그램파더들이 미국에 온 이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밀려왔다. 이민자들이 미국 대륙에 발을 내딛자, 친절한 미국인이 다가와서 일자리를 소개해주고겠다며 이민자의 가방을 들어준다. 그리고 이민자는 모든 재산을 사기당하며 미국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3분의 1정도의 유럽 이민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유렵인들이 쉽게 미국에 정착했다는 생각은 나의 선입견이었다. 

  미국에 정착한 수많은 이민자들은 미국 영어에 새로운 단어를 선물했다. 미국 영어는 다양한 유럽언어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언어에서 단어를 들여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의 템스강을 위해서 만들어진 언어로 미시시피의 웅장함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어를 새롭게 창조하고 재해석해야했다. 문화와 자연환경이 바뀌면 이를 표현하는 언어도 변화해야한다. 이것은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영어, 호주식 영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민자들은 미국에 새로운 창조력을 불어 넣었다. 미국은 세계 초 강대국으로 군림한다. 미국인들도 풍요의 시대를 맞이한다.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전자제품이 미국가정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해졌을까? 빌 브라이슨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비성 품목이 더 증가했을뿐, 여가 시간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주택의 규모가 커졌으며, 생활양식이 다양화졌고, 집안의 청결 기준이 철저해지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여유로운 여가 생활과 휴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현실과 비슷한다. 각종 전자 제품이 가사일을 줄여주었지만,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보다 많은 소비를 해야한다. 집안일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가 시간은 그리 크게 늘지 않는 역설적 상황은 한국에서도 진행중이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오레오'가 1912년 3월 6일 부터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자라는 소소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모른는 영어 단어에 집착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재미 있는 미국의 생활사를 유쾌하게 탐험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소소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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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12-31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배배꼬인 말을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낼 정도로 꾸역꾸역 내뱉는 사람은 빌브라이슨 뿐일거에요, 쿠쿠

강나루 2023-01-03 20:49   좋아요 1 | URL
빌 브라이슨만의 특징이지요.

레삭매냐 2023-01-03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생활사를 유쾌하고
가치 파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
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미국 건국 신화를 통렬하
게 저격하는 시니컬한 빌
브라이슨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드네요.

강나루 2023-01-03 20:47   좋아요 1 | URL
영단어에도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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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렬한 시에서 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철저히 짖밟히고, 동물적 식욕과 생존 욕구만이 남아 있는 인간! 프리모 레비는 질문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냐고....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려면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이 보장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인권과 생존권은 보장되어야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 필요한 인권과 생존권이 철저히 무시된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그 속에서는 동물적 욕구만이 존재한다.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생존을 위해서 나치에 협력하는 카포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의 시체를 처리하며 그들의 입속에 있는 금니를 뽑아낸다.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대인 포로들은 카포에게 잘 보여야만 했다.

이탈리아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작가는 이송도중 독일군 호위병에게 이유없이 구타를 당한다.

 

"그들이 우리를 버스에 태워 카르피 역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기차와 호위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17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그들을 보면서 프리모 레비는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섬세한 프리모 레비의 감수성에 감탄이 절로나온다.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져있다. 나의 어린시절, 학교에서도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위에 삼국지를 올려 놓았다고 담임 선생은 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산수문제를 못푸는 학생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칠판에 강하게 부딪쳤다. 폭력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교사가 휘두르는 폭력을 학생들도 그대로 배웠다. 학교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폭력은 종종 벌어졌다. 단지 담임 교사가 무관심해서 몰랐을 뿐이다. 학교의 폭력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훈련을 앞두고 군기잡는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일명 '차기'인 상병이 이등병과 일병을 구타했다. 상병이 제대로 구타하지 못하면 병장이 상병을 몰레 구타하며 '군기 제대로 잡아라'며 훈계했다. 우리 사회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우리는 폭력에 무감각해졌다.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보았다. 재미로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사람을 나는 많이 보았다. 프리모 레비에게는 우리가 익숙한 폭력의 일상화가 무척 생소했다. 이러한 감수성이 그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었을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는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의사, 제봉사, 약사, 화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왔다. 그런데, 때로는 강제로 끌려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 순간 나의 눈을 의심했다. 죽음의 수용소에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프리모 레비는 '터무니없게도'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나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의 숨통을 옥죄는 악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예'가 현실에는 존재한다. 법이 존재하는 정당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악법도 법이라고 믿는 그들은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한나 아랜트의 '악의 평범성'의 사례는 가해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는 '노예'들은 악법으로 인간을 괴롭히고 사법살인을 하는 '법비(法匪)'의 좋은 먹이감일 뿐이다. 이런 노예들은 우리 주변에 많지 않은가? 나라를 도둑질할 놈을 그가 특정 지역 후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찍어주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리주변에 흔하게 있지않은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떠올랐다. 빅터 프랭클의 글에 묘사된 죽음의 수용소에는 음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에 반해서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음울함이 짙게 묻어난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배고픔이 떠나지 않았으며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본능을 레비는 탁월하게 묘사했다.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장기적인 목표를 갖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음울함이 그가 1987년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그도 삶의 의미를 말하기도 했다. 독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엇을 것이다."-307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은 진실을 증언해야한다는 그의 삶의 의무, 혹은 의미는 그가 1987년까지 살아 남는데 기여했다. 수용소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공통으로 꾸는 꿈이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가족에게 자신이 겪었던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진실을 알리려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고통속에서 꿈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증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자 의미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일본어판 제목이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이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1987년 자살한 이유도 전후 세대들이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해서 관심이 사그러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그의 삶의 의미를 사라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팔래스타인 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우슈비츠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것에 대해서

 

"아무리 전쟁중이라하더라도 베긴과 그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잔인한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319

 

라고 일갈했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더욱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어리석음을 프리모 레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우슈비츠가 그에게 또다른 대학이었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나의 과거는 나를 더욱 풍요롭고 자신감 넘치게 해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라벤스 부르크 여자 수용소에 끌려갔던 내 친구는 수용소가 자신의 대학이었다고 말한다."-307

 

감옥, 수용소를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대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 신영복 선생부터,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 어느 곳에선들 배우고 알려한다면 인간은 성장한다. 똑같은 고난 속에서도 그가 무엇을 배우려하는가에 따라서 고통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이 피듯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잊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이 진정 인간적인 인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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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3-01-10 03: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요즘 바빠서 댓글을 지금 다네요.
새해에 웃음짓는 일 많이 생기길 거에요^^
 
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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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마피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탈핵의 시동을 걸었지만, 제대로 탈핵의 길을 달리기도 전에 정권이 바뀌면서 탈핵도 폐기 되었다. 윤 대통령이 경남 창원의 원전업체를 방문해서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서 안전을 중시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윤 대통령 “안전 중시 버려라…원전업계는 전쟁터” 발언 논란 : 환경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설마 국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했을지 의문이 들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뒷걸음질치는 탈핵! 다시 한번 탈핵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체르노빌 히스토리'를 꺼내들었다. "우리가 이미 일어난 재앙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새로운 체르노빌식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21쪽)라는 세르히 플로히의 지적은 아쉽게도 현실화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바로 그 재앙의 서막이다. 그런데, 우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착잡한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 


  암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는 부인을 한다고 한다. 자신이 암을 걸릴리가 없다며 오진일 것이라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는다. 이러한 일이 체르노빌에서도 일어낫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원전 냉각수 연못에서 낙시를 즐기는 10여명의 낚시꾼들은 핵발전소 폭발이 있었으메도 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방사능 흑연조각이 길에 널려 있는데도 현지 전문가와 모스크바에서 온 전문가는 4호 원전의 폭발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전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켰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앞의 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작동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 체르노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첫번째 사람들이었지만 마지막 사람은 아니었다."(130쪽)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인간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두번의 전 지구적 재앙을 겪고서도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신화를 믿고,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서 안전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비상식적인 인간들이 많다는 현실이 절망적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류의 안전을 헌신짝 취급하는 그들과 함께 지구에 살아야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절망적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재앙을 뒷처리하기 위해서 소련 정부는 소방대원과 군대를 동원했다. 그리고 예비군을 동원하여 방사능 피폭을 당하며 커다란 석관을 원전 4호기에 뒤집어 씌웠다. 60여만의 군인들이 피폭되며 원전을 잠재웠지만, 핵발전소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빈국제학술대회에서 레가소프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경위, 원인 분석, 영향, 원자력 사고 예측 방법을 보고 했다. 그 결과 소련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유사한 사고 예방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소련 지도부는 레가소프의 행위를 탐탁치 못하게 여겼다. 그리고 체르노빌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비밀로 분류했다. 체르노빌과 가까운 오염지역 나로디치에 당국은 주민 정착을 위해서 집을 짓고 있었다. 야로신스카야는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 취재를 했다. 당국은 그녀가 진실을 알릴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야로신스카야는 굴복하지 않았다. 소련이 공산국가이기에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도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도 소련과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위험성을 언론에서 말할 수 없도록 재갈을 물리고, 후쿠시마 근처에 사람들을 안전하다며 정착시키려하고 있다. 핵마피아에  지배당하는 국가의 모습은 비슷한가 보다. 

  302쪽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1990년대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14세 미만 인구중에서 3000건의 감상선암이 등록되었다.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서 벌어진 핵사고에 죄없는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돈과 권력이 없는 주민이 희생되고 있다. 

  체르노빌이라는 재앙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드라치는 "체르노빌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민주화운동에 원동력이 되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이 그 전범이 되었고, 작가협회는 요람이 되었다."라고 말했듯이, 체르노빌의 재앙을 딛고 우크라이나인들이 깨어났다. 더 나아가서 동유럽에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핵사고를 당한 우크라이나는 환경 민족주의로 독립과 반원전 운동을 했다. 우리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원전 마피아들의 입장에서는 가르치기 싫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현실의 지혜를 얻고자한다면 체르노빌 핵사고가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영향을 반드시 가르쳐야한다.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딛고 깨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재앙을 딛고 깨어났다면 일본인들은 아직도 잠들어있다. 오히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아베를 필두로한 극우 정권이 탄탄하게 권력을 장악하며 핵사고의 위험을 감추려했다. 도쿄 올림픽에 후쿠시마 식품을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재앙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일본 국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전에 오제르크 폭발 사고가 있었다. 핵폐기물이 폭발하면서 2000만 퀴리의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이때 미국은 이를 이용해서 소련을 공격하려하지 않았다. 거대한 핵마피아의 본능이 작동하여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믿음을 고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제르크 폭발사고의 교훈을 얻지 못한 소련은 체르노빌 핵사고의 고통을 겪었다. 체르노빌 핵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의 고통을 겪는다. 이제 우리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어야한다. 단세포 동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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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7-29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탈핵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좁은 나라에서 오히려 거꾸로 가려 하니 황당하고 걱정입니다. 저도 윤 대통령 기사보고 놀랄때가 많아 다시 검색해서 크로스체크 하곤해요. 이 책 추천받았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강나루 2022-07-29 18:44   좋아요 2 | URL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mini74 2022-07-29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체르노빌의 아이들 이런 책을 봤는데 정말 무섭고 끔찍했어요. 걱정이네요. 일본 오염수 방류도 그렇고 ㅠㅠ 주변 엄마들은 김 미리 사 놓으라고 그러네요 ㅠㅠ

강나루 2022-07-29 20:09   좋아요 1 | URL
일본에 할말은 하는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낯선 중세 - 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유희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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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친근하기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가까이 있기에 그 사람을 잘안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양 중세는 우리에게 '그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서양 중세하면, 봉건제를 떠올릴뿐, 더 이상의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희수 교수의 '낯선 중세'를 친근하게 다가오게 했다. 

  제1부 쌍두 마차의 사회에서는 게르만의 대이동에서 부터 프랑크왕조의 성립과 해체, 교권과속권의 제휴와 대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보통의 서양 중세사 책이라면 여기에서 서술을 마무리할 것이다. 이 책은 기사에서 부터 농노에 이르는 중세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들의 삶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제화된 기사와 농노가 아닌, 그들의 살결 냄새가 나는 중세의 역사가 펼쳐졌다. 그들이 먹었던 빵과 고기에서 부터, 그들이 입던 옷, 그들이 믿었던 민간 신앙 부터, 전설과 성에 이르기까지 중세인들의 삶을 그들의 채취가 묻어나도록 실감나게 서술했다. 

  유희수의 '낯선 중세'를 덮는 순간, 낯설었던 중세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세계사 교과서 수준의 앞은 지식으로 만난 중세와 그들의 땀냄새가 풍겨나는 중세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왔다. 서양 중세는 '교회를 떠나서는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도, 죽을 수도 없다.'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교회는 시골의 농민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는 민간 신앙을 흡수하며 민간신앙과 융합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중세인들이 필요로할 때는 원시 크리스트교에는 없었던 개념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이 만들어 내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냈다. 그렇게 중세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나갔다. 우리는 박제화된 교과서 속의 중세인과 결별하고, 살결 냄새 가득한 중세인을 만나야한다. 이 책을 통해서....


ps. 관련 사료를 소개한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이 기독교 신도들을 다스리도록 주신 왕의 위엄은 다른 두위엄[동로마 황제와교황]을 능가하며 현명함에서 이들을 압도합니다. 이제 기독교 교회가 의지할 곳은 당신뿐이며, 만인이 구원을 바라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죄인을 처벌하고, 헤매는 자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선한 자들을 받들 이는 당신뿐입니다.-65쪽(잉글랜드 출신 측근인 알쿠이누스가 799년 카롤루스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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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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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럼, 너의 역사관은 무엇이냐?", "너는 너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니?"라는 물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해야했다. 지배층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왕과 양반들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사료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된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관념적 구호에 그쳤던 민중과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라는 역사관에 실질적 결과물을 제시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놓쳐버린 민중의 이야기를 파헤쳐보자.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와트타일러의 난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윌리엄 A. 펠츠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명칭만 소개되어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국 정부는 페스트로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노동자법령'을 통과시켜 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 페스트 이전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봉건적 노동 지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봉건 영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거기에다 백년전쟁 비용을 거두기 위해서 인두세법까지 도입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이러한 억압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배층의 회유와 속임수에 걸려 패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는 헛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임금 인상을 포기했고, 귀족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 농민 반란은 실패했지만, 역사에서 봉건제를 땅에 묻는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 농민들이 뿌린 피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단순히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사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민중의 삶이 달리보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산업혁명을 서술하며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를 소개한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를 뒤바꿔 놓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물론, 아동노동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농촌에서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미약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국가와 20세기 개도국 노동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을 선사했다. 부모가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방치된 아이에게는 마약 성분이 첨가된 '앳킨스 특허 유아 예방약'이 투여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아 사망률이 70%까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임금 속에서 비참한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도 기존 세계사책들은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순화해서 표현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만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역사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원인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과음을 지적한다. 사회 구조적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윌리엄 A. 펠츠는 극단적 노동과 여가시간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농촌에서 노름꾼과 술꾼들이 많았던 이유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산미증식계획과 강제 공출로 생산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노름이었다. 광복이 되었지만,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삶은 여전히 어려워졌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농촌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다.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덧에 빠져 절망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술을 먹었기에 가난해지기 보다는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고, 술꾼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세계사 교과서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독점 자본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더 많은 시장 확보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식민지 확보 경쟁이 발발해서 결국,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전에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독일만 하더라도 188795천명이던 것이 1890년에는 294천명으로 늘어난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서술도 있어야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도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인명살상만을 설명한다. 이 서술에서 놓쳐버린 것이 있다. 이 서술에서는 전선에 끌려간 민중들의 저항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지배층들이 민족의 영광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어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간 것으로 서술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격 명령을 내리며 권총으로 위협하는 상관에게 총을 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전선에서도 이러한 항명을 교전중 전사로 보고한 경우가 많았다. 민중은 온순한 노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위한 충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한 용기 있는 민중이 있다. 그들을 새롭게 조명할 때 역사는 달리보이기 마련이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은 파시즘의 선전장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포츠 운동이 노동계급 문화운동이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37년 제3차 노동자 올림피아드가 아트베르펜에서 열렸다. 27천명의 노동자가 17개국에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항해서 역사를 균형있게 본다는 명분으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소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스탈린이 독일 침략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독일과 폴란드 침공을 선택했다는 변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윌리엄 A. 펠츠는 독일과 소련의 야합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파시스트전선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는 무력화 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스탈린이 히틀러를 도와 침략전정을 일으킨 죄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중용 있는 시각을 갖는 다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역사관의 가운데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해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윌리엄 A. 펠츠는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서술하면서 보통의 역사책들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범죄를 소개하며 그 야만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역사책을 읽는 보통의 사람들은 미군으로 대표되는 연합군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들을 전쟁기간 동안 하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소련군이 독일 여성을 강간했고, 부다페스트에서만 5만명을 강간한 사실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19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굶주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음식으로 유인해서 성을 착취한 경우는 제외되어 있다. 냉전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볼 경우, 미군에 의해서 이뤄진 강간은 조명되지 않는다. 미군의 전쟁 범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게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미워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세계 민중의 편이다.'라는 환상이 깨진지 오래다. 우리는 반공논리 속에서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보통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윌리엄 A. 펠츠는 미국도 정의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도와주기보다는 독재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란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며, (중략) "스페인에 필요한 일이라면 미국이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363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통의 나라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는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칠레의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윌리엄 A. 펠츠는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의 진실을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 윌리엄 A. 펠츠는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역사를 약자의 입장에서,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역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윌리엄 A. 펠츠가 책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당부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평범한 유럽 노동자나 농민이 지구 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이다. 오늘날 많은 이가 누리는 우위는 계몽된 지배계급이 안겨준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개혁,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모든 양보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자주적 행동의 결과다. (중략)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3~394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앞선 세대의 희생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핏땀이 없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 비참한 생활을 할 것이다.

 

 ps. 인상 깊은 사료를 적어 놓는다. 


독일 함대가 적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서 '황제와 조국'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로 결정했다는 요지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함대 수병들이 생각하는 '조국의 영광'은 전혀 달랐다. 수병들끼리 만났을 때 경례 구호는 '리프크네히트 만세'였다.(사회 민주당 소속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은 제국의회에서 가장 먼저 홀로 전쟁 예산에 반대표를 던지고 난 뒤 다수 민중 사이에서 반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독일 대양함대에 복무한 한 수병의 회고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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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 보며 항상 배웁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투표 꼭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꼭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03-08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꾹~~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3-08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대선일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전 투표했어요. bookholic님 투표 안하셨다면, 투표하시고, 행복한 대선일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0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1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투표 결과 나오길 기도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3-10 0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나루님 리뷰 자주 읽고 싶습니다 ^ㅅ^

2022-03-11 0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