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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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마피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탈핵의 시동을 걸었지만, 제대로 탈핵의 길을 달리기도 전에 정권이 바뀌면서 탈핵도 폐기 되었다. 윤 대통령이 경남 창원의 원전업체를 방문해서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서 안전을 중시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윤 대통령 “안전 중시 버려라…원전업계는 전쟁터” 발언 논란 : 환경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설마 국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했을지 의문이 들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뒷걸음질치는 탈핵! 다시 한번 탈핵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체르노빌 히스토리'를 꺼내들었다. "우리가 이미 일어난 재앙에서 교훈을 얻지 않으면, 새로운 체르노빌식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21쪽)라는 세르히 플로히의 지적은 아쉽게도 현실화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바로 그 재앙의 서막이다. 그런데, 우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착잡한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 


  암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는 부인을 한다고 한다. 자신이 암을 걸릴리가 없다며 오진일 것이라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는다. 이러한 일이 체르노빌에서도 일어낫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원전 냉각수 연못에서 낙시를 즐기는 10여명의 낚시꾼들은 핵발전소 폭발이 있었으메도 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방사능 흑연조각이 길에 널려 있는데도 현지 전문가와 모스크바에서 온 전문가는 4호 원전의 폭발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전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켰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앞의 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작동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 체르노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첫번째 사람들이었지만 마지막 사람은 아니었다."(130쪽)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인간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두번의 전 지구적 재앙을 겪고서도 핵발전소는 안전하다는 신화를 믿고,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서 안전을 중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비상식적인 인간들이 많다는 현실이 절망적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류의 안전을 헌신짝 취급하는 그들과 함께 지구에 살아야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절망적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재앙을 뒷처리하기 위해서 소련 정부는 소방대원과 군대를 동원했다. 그리고 예비군을 동원하여 방사능 피폭을 당하며 커다란 석관을 원전 4호기에 뒤집어 씌웠다. 60여만의 군인들이 피폭되며 원전을 잠재웠지만, 핵발전소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빈국제학술대회에서 레가소프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경위, 원인 분석, 영향, 원자력 사고 예측 방법을 보고 했다. 그 결과 소련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유사한 사고 예방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소련 지도부는 레가소프의 행위를 탐탁치 못하게 여겼다. 그리고 체르노빌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비밀로 분류했다. 체르노빌과 가까운 오염지역 나로디치에 당국은 주민 정착을 위해서 집을 짓고 있었다. 야로신스카야는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 취재를 했다. 당국은 그녀가 진실을 알릴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야로신스카야는 굴복하지 않았다. 소련이 공산국가이기에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다고 착각할 수도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도 소련과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위험성을 언론에서 말할 수 없도록 재갈을 물리고, 후쿠시마 근처에 사람들을 안전하다며 정착시키려하고 있다. 핵마피아에  지배당하는 국가의 모습은 비슷한가 보다. 

  302쪽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1990년대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14세 미만 인구중에서 3000건의 감상선암이 등록되었다. 원전 마피아들에 의해서 벌어진 핵사고에 죄없는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돈과 권력이 없는 주민이 희생되고 있다. 

  체르노빌이라는 재앙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드라치는 "체르노빌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민주화운동에 원동력이 되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이 그 전범이 되었고, 작가협회는 요람이 되었다."라고 말했듯이, 체르노빌의 재앙을 딛고 우크라이나인들이 깨어났다. 더 나아가서 동유럽에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핵사고를 당한 우크라이나는 환경 민족주의로 독립과 반원전 운동을 했다. 우리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원전 마피아들의 입장에서는 가르치기 싫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어 현실의 지혜를 얻고자한다면 체르노빌 핵사고가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영향을 반드시 가르쳐야한다.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딛고 깨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재앙을 딛고 깨어났다면 일본인들은 아직도 잠들어있다. 오히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아베를 필두로한 극우 정권이 탄탄하게 권력을 장악하며 핵사고의 위험을 감추려했다. 도쿄 올림픽에 후쿠시마 식품을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재앙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일본 국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전에 오제르크 폭발 사고가 있었다. 핵폐기물이 폭발하면서 2000만 퀴리의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이때 미국은 이를 이용해서 소련을 공격하려하지 않았다. 거대한 핵마피아의 본능이 작동하여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믿음을 고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제르크 폭발사고의 교훈을 얻지 못한 소련은 체르노빌 핵사고의 고통을 겪었다. 체르노빌 핵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의 고통을 겪는다. 이제 우리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어야한다. 단세포 동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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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29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탈핵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좁은 나라에서 오히려 거꾸로 가려 하니 황당하고 걱정입니다. 저도 윤 대통령 기사보고 놀랄때가 많아 다시 검색해서 크로스체크 하곤해요. 이 책 추천받았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강나루 2022-07-29 18:44   좋아요 2 | URL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mini74 2022-07-29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체르노빌의 아이들 이런 책을 봤는데 정말 무섭고 끔찍했어요. 걱정이네요. 일본 오염수 방류도 그렇고 ㅠㅠ 주변 엄마들은 김 미리 사 놓으라고 그러네요 ㅠㅠ

강나루 2022-07-29 20:09   좋아요 1 | URL
일본에 할말은 하는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낯선 중세 - 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유희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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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친근하기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가까이 있기에 그 사람을 잘안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양 중세는 우리에게 '그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서양 중세하면, 봉건제를 떠올릴뿐, 더 이상의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희수 교수의 '낯선 중세'를 친근하게 다가오게 했다. 

  제1부 쌍두 마차의 사회에서는 게르만의 대이동에서 부터 프랑크왕조의 성립과 해체, 교권과속권의 제휴와 대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보통의 서양 중세사 책이라면 여기에서 서술을 마무리할 것이다. 이 책은 기사에서 부터 농노에 이르는 중세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들의 삶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제화된 기사와 농노가 아닌, 그들의 살결 냄새가 나는 중세의 역사가 펼쳐졌다. 그들이 먹었던 빵과 고기에서 부터, 그들이 입던 옷, 그들이 믿었던 민간 신앙 부터, 전설과 성에 이르기까지 중세인들의 삶을 그들의 채취가 묻어나도록 실감나게 서술했다. 

  유희수의 '낯선 중세'를 덮는 순간, 낯설었던 중세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세계사 교과서 수준의 앞은 지식으로 만난 중세와 그들의 땀냄새가 풍겨나는 중세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왔다. 서양 중세는 '교회를 떠나서는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도, 죽을 수도 없다.'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교회는 시골의 농민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는 민간 신앙을 흡수하며 민간신앙과 융합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중세인들이 필요로할 때는 원시 크리스트교에는 없었던 개념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이 만들어 내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냈다. 그렇게 중세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나갔다. 우리는 박제화된 교과서 속의 중세인과 결별하고, 살결 냄새 가득한 중세인을 만나야한다. 이 책을 통해서....


ps. 관련 사료를 소개한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이 기독교 신도들을 다스리도록 주신 왕의 위엄은 다른 두위엄[동로마 황제와교황]을 능가하며 현명함에서 이들을 압도합니다. 이제 기독교 교회가 의지할 곳은 당신뿐이며, 만인이 구원을 바라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죄인을 처벌하고, 헤매는 자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선한 자들을 받들 이는 당신뿐입니다.-65쪽(잉글랜드 출신 측근인 알쿠이누스가 799년 카롤루스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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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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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럼, 너의 역사관은 무엇이냐?", "너는 너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니?"라는 물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해야했다. 지배층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왕과 양반들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사료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된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관념적 구호에 그쳤던 민중과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라는 역사관에 실질적 결과물을 제시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놓쳐버린 민중의 이야기를 파헤쳐보자.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와트타일러의 난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윌리엄 A. 펠츠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명칭만 소개되어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국 정부는 페스트로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노동자법령'을 통과시켜 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 페스트 이전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봉건적 노동 지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봉건 영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거기에다 백년전쟁 비용을 거두기 위해서 인두세법까지 도입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이러한 억압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배층의 회유와 속임수에 걸려 패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는 헛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임금 인상을 포기했고, 귀족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 농민 반란은 실패했지만, 역사에서 봉건제를 땅에 묻는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 농민들이 뿌린 피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단순히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사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민중의 삶이 달리보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산업혁명을 서술하며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를 소개한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를 뒤바꿔 놓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물론, 아동노동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농촌에서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미약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국가와 20세기 개도국 노동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을 선사했다. 부모가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방치된 아이에게는 마약 성분이 첨가된 '앳킨스 특허 유아 예방약'이 투여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아 사망률이 70%까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임금 속에서 비참한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도 기존 세계사책들은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순화해서 표현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만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역사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원인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과음을 지적한다. 사회 구조적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윌리엄 A. 펠츠는 극단적 노동과 여가시간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농촌에서 노름꾼과 술꾼들이 많았던 이유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산미증식계획과 강제 공출로 생산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노름이었다. 광복이 되었지만,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삶은 여전히 어려워졌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농촌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다.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덧에 빠져 절망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술을 먹었기에 가난해지기 보다는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고, 술꾼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세계사 교과서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독점 자본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더 많은 시장 확보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식민지 확보 경쟁이 발발해서 결국,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전에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독일만 하더라도 188795천명이던 것이 1890년에는 294천명으로 늘어난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서술도 있어야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도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인명살상만을 설명한다. 이 서술에서 놓쳐버린 것이 있다. 이 서술에서는 전선에 끌려간 민중들의 저항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지배층들이 민족의 영광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어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간 것으로 서술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격 명령을 내리며 권총으로 위협하는 상관에게 총을 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전선에서도 이러한 항명을 교전중 전사로 보고한 경우가 많았다. 민중은 온순한 노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위한 충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한 용기 있는 민중이 있다. 그들을 새롭게 조명할 때 역사는 달리보이기 마련이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은 파시즘의 선전장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포츠 운동이 노동계급 문화운동이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37년 제3차 노동자 올림피아드가 아트베르펜에서 열렸다. 27천명의 노동자가 17개국에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항해서 역사를 균형있게 본다는 명분으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소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스탈린이 독일 침략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독일과 폴란드 침공을 선택했다는 변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윌리엄 A. 펠츠는 독일과 소련의 야합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파시스트전선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는 무력화 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스탈린이 히틀러를 도와 침략전정을 일으킨 죄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중용 있는 시각을 갖는 다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역사관의 가운데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해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윌리엄 A. 펠츠는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서술하면서 보통의 역사책들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범죄를 소개하며 그 야만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역사책을 읽는 보통의 사람들은 미군으로 대표되는 연합군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들을 전쟁기간 동안 하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소련군이 독일 여성을 강간했고, 부다페스트에서만 5만명을 강간한 사실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19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굶주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음식으로 유인해서 성을 착취한 경우는 제외되어 있다. 냉전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볼 경우, 미군에 의해서 이뤄진 강간은 조명되지 않는다. 미군의 전쟁 범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게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미워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세계 민중의 편이다.'라는 환상이 깨진지 오래다. 우리는 반공논리 속에서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보통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윌리엄 A. 펠츠는 미국도 정의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도와주기보다는 독재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란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며, (중략) "스페인에 필요한 일이라면 미국이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363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통의 나라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는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칠레의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윌리엄 A. 펠츠는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의 진실을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 윌리엄 A. 펠츠는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역사를 약자의 입장에서,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역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윌리엄 A. 펠츠가 책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당부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평범한 유럽 노동자나 농민이 지구 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이다. 오늘날 많은 이가 누리는 우위는 계몽된 지배계급이 안겨준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개혁,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모든 양보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자주적 행동의 결과다. (중략)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3~394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앞선 세대의 희생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핏땀이 없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 비참한 생활을 할 것이다.

 

 ps. 인상 깊은 사료를 적어 놓는다. 


독일 함대가 적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서 '황제와 조국'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로 결정했다는 요지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함대 수병들이 생각하는 '조국의 영광'은 전혀 달랐다. 수병들끼리 만났을 때 경례 구호는 '리프크네히트 만세'였다.(사회 민주당 소속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은 제국의회에서 가장 먼저 홀로 전쟁 예산에 반대표를 던지고 난 뒤 다수 민중 사이에서 반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독일 대양함대에 복무한 한 수병의 회고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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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 보며 항상 배웁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투표 꼭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꼭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03-08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꾹~~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3-08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대선일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전 투표했어요. bookholic님 투표 안하셨다면, 투표하시고, 행복한 대선일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0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1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투표 결과 나오길 기도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3-10 0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나루님 리뷰 자주 읽고 싶습니다 ^ㅅ^

2022-03-11 0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 실익과 명분의 천 년 역사
기쿠치 요시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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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있다.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은 명실상부하지 않다. 괴테가 말했듯이, 신성하지도 않으며, 로마답지도 않고, 제국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교과서에서 신성로마제국을 배우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와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오토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았다는 언급과 나폴레옹에 의해서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었다는 언급밖에 없으니, 신성로마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어떤이는 환상의 제국이라고 말한다. 환상의 제국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성로마제국이 과연 어떠한 제국이었는지 궁금하다. 신성로마제국은 과연 어떠한 왕국이었을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도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오토1세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을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관을 받은 것은 아니다. 962년 2월 21일 오토 대제는 황제 즉위 때 '황제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편 오토는 황제 대관을 교황이 아닌 오토 주도로 거행했다. 교황은 황제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독일의 왕이며 동시에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고 여러 나라를 지배하는 황제가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제국 교회 정책'과 '이탈리아 지배'는 독일에게는 불행의 씨앗이되었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오히려 이것이 신성로마제국의 독이되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근심꺼리는 너무도 많아진, 늙은 공룡의 모습이 되어갔다. 결국, 로마제국의 위용을 얻기 위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교황과 일전을 벌인다. 이것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으로 표출된다. 

카노사의 굴욕은 성직자 서임권 문제를 계기로 황제가 먼저 싸움을 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황제는 교황에 복종'하라는 서간문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4세에게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하인리히 4세는 독일 주교를 소집하여 교황을 폐위하며 마틸다와 교황 사이의 불륜설을 터뜨린다. 그러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하인리히를 파문한다. 결국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벌어져게된다. 눈덮인 카노사 성문 앞에서 3일 동안 교황에게 빌었고, 그로인해서 교황이 황제에게 승리한 사건으로 알지만, 힘을 키운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살고 있는 로마를 공격한다. 교황은 노르만족을 끌어들여 황제를 쫓아 내지만, 노르만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자, 로마주민의 원성 때문에 교황은 살레르노로 망명해서 죽게 된다. 그렇다고, 하인리히 4세가 승리한 것도 아니다. 하인리히의 두아들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두아들의 반란은 하인리히 4세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는 세상을 뜬다. 그리고 둘째 아들 하인리히5세가 보름스 협약을 맺는다. 과연 누구의 승리일까?

이러한 황제와 교황간의 막장드라마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신성한'이라는 형용사이다. "이는 역대 교황들이 목표로 삼았던 신권정치와의 결별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는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황과 황제간의 피튀기는 대립과 막장드라마 속에서 등장했다. 그렇다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을 바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신성한'이라는 형용사가 등장했을 뿐이다. 

'신성제국'이라는 명칭이 문서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57년 3월 바로바로사가 밀라노 토벌과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제후에게 보낸 소집장에서 였다. 정치의 검을 받은 황제는 종교의 검을 갖진 교황과 동등하다는 양검론을 들고 나온 바로바로사는 명실상부한 황제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손안에 넣기 위해서 노력했고, 무리한 원정은 필연적으로 황제권 약화로 이어졌다. 프리드리히2세 시기에도 황제 개인의 뛰어난 역량으로 황제권은 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황제'라는 위용을 보이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둘러싼 교황과의 대립은 계속된다. 결국, 많은 전비를 얻기 위해서 독일 내의 제후에게 막강한 권한을 하나 둘씩 주었다. 이러한 황제의 무리수는 황제권의 약화를 낳았다. 

저자 기쿠치 요시오는 대공위시대의 초석을 놓은 삼황조 시대(작센왕조, 잘리에르 왕조, 슈타우펜왕조)의 황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평가를 하고 있다. 


  "위대한 로마 제국 황제의 에피고넨으로서 제국을 부흥하겠다는 (중략) 그들은 이념과 행동이 여과없이 결합되어었던 유럽 중세 세계를 마음껏 헤집고 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황제다운 황제였다."-130쪽


참다운 황제라면, 자신의 행위가 미래 세대의 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예상하고 현재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나, 삼황조 시대의 황제들은 로마제국의 부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리한 원정을 단행했고, 독일왕국의 내치에 신경을 쓰지 못하여 대공위시대를 낳았다. 수많은 제후가 다스리는 수많은 국가로 구성된 영방국가로 신성로마제국을 추락시켰다. 이러한 삼왕조 시대의 황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있을까?

아직까지 신성로마제국은 '신성제국'과 '로마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릴뿐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온전한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려면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대공위 시대였다. 독일국왕 빌렘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호를 공식문서에 처음사용하면서 우리가 아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지 못하고, 제국이 영방국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역설적이게도 가장 환상적인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제국이 위기에 처할 수록 그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에 집착하게된다. 형용모순의 명칭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다. 간판과 실질이 어긋나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본다. 내실이 없을 수록 겉치장이 화려한 사례를 보면서, 슬픈 신성로마제국을 우리는 떠올려야할 것이다. 


합수부르크 왕조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카를 5세시기 신성로마제국은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게 된다. 그러나 '신성한 로마 제국'이라는 헛된 환상에 집착이 더욱 심해지면서 신성로마제국은 빈껍데기만 남게된다. 30년 전쟁을 통해서 이제는 관속에 들어가야할 신성로마제국은 땅속에 묻히지 못하고 빈껍데기만 앙상하게 150년 동안 내보이며 서있어야했다. 신성로마제국이 땅속에 묻힐 수 있도록 도와준사람은 새로운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었다. 환상의 제국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허상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실에 충실해야함을 깨닫는다. 빈껍질을 부여잡고 매달리기 보다는 실질을 채운다음, 외모를 가꾸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업적은 빈껍질만 남은 환상의 제국 신성로마제국이 땅속에 묻힐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도 황제라는 껍질에 집착하다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또다른 아이러니일 것이다.


ps. 신성로마제국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금인칙서의 내용을 첨부한다. 


-선제후는 마인츠, 트리어, 쾰른의 성직자 제후와 라인 궁중 백작, 작센, 브란덴부르크, 보헤미아의 세속 제후까지 모두 7제후로 정한다. 

-선거는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거행하며 대관식은 아헨 시에서 거행한다. 

-선거는 단순 과반수로 행한다. 선거 결과에 따르지 않는 선제후는 선제후 지위를 잃게 된다. 

-선거 결과는 교황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제후는 제후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영지 내의 완전한 재판권, 광산 채굴권, 과세 징수권, 화폐 주조권, 유대인 보호권을 갖는다. 

-선제후 영지는 분할을 금하고 장자 단일 상속으로 한다. 

-선제후는 '호출에 응하지 않을 권리와 소환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선제후에 대한 반란은 대역죄로 처벌된다.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될 때 라인 궁중 백작이 슈바벤 지역과 프랑켄 법이 미치는 지역을, 작선 선제후가 작센 법이 미치는 지역을 통치한다. 

-제후 사이의 동맹, 도시의 동맹은 금지한다. 

-페대(제후 사이의 개인적인 다툼)을 금지한다. 

-선제후를 비롯한 제후의 영지 주권을 법적으로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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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사 강의 (리커버 에디션) -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박노자 지음 / 나무연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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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츠키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소작농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본다. 트로츠키는 따스한 아버지가 왜? 소작농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탐구한다. 트로츠키의 결론은 아버지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체제가 아버지를 가혹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아버지를 소작농에게 잔인한자라고 매도하지 않고 러시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찾아내는 트로츠키의 모습이 경이롭다. 러시아 출신 박노자도 트로츠키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대인이며, 러시아 출신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그 구조적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도 트로츠키와 박노자가 닮은 점이다. 박노자가 본 '러시아 혁명사'는 무엇인가 다른점이 있으리라 기대된다. 박노자의 안내로 '러시아 혁명사'를 감상해보자. 


1. 성장은 폭력의 다른 이름인가?

  아직도 박정희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으면서도 개발도상국 시기의 고도성장을 기대하며 박정희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장"은 신의 은총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빠른 경제 성장은 박정희만 이룬 것이 아니다. 스탈린도 강력한 계획경제 정책을 통해서 미국과 세계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 국가로 소련을 만들었다. 스탈린은 빠른 공업화를 위해서 농촌을 희생했다. 농민들의 잉여를 수취하기 위해서 법률로 곡물 가격을 낮추는 적곡가 정책을 펼쳤고, 이를 통해서 농촌의 잉여를 산업에 투자했다. 농촌을 희생해서 공업화를 이루는 모습은 박정희의 개발정책과 너무도 유사하다. 박노자는 스탈린식의 적색 개발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복지에 신경썼었면, 박정희의 백색 개발에서는 노동자의 복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우리가 노동 3권을 보장받으며 노동운동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식민지를 희생시켜가면서 경제 개발을 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식민지가 없었던 주변부 국가들은 내부의 농민을 희생시켜 산업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충직한 박정희의 추종자로 살다가신 아버지가 사실은 박정희의 백색 개발 정책의 희생자였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스탈린 시기는 경제 성장과 함께 대규모의 숙청이 함께 이뤄졌다. 스탈린 시기를 암흑의 시기로 기억하고 혁명을 일으켜야하는 소련인들은 그 시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혁명을 꿈꾸기 보다는 출세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박노자는 지적한다. 이것이 무슨 뚱단지 같은 말인가! 자신의 정적을 비롯해서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총살시키거나 시베리아로 보낸 스탈린 집권기가 출세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시기라니! 박노자는 "스탈린 체제의 대량 총살은 대량 출세의 다른 이름이었"다라고 지적한다. 68만명의 간부가 숙청된다면 다른 68만명이 그 자리를 채우며 고속 승진의 기회를 잡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탈린의 후계자 니키타 후루쇼프가 노동자 출신으로 고속 성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숙청과 고속 출세는 동전의 양면이었었다. 자신이 숙청당하지 않는다면 숙청의 열풍은 기회의 열풍이었다. 박정희 시대도 비슷할 것이다. 유신시절 유신 정우회는 대통령에게 잘보이면 국회의원이라는 떡을 얻어 먹을 수 있는 자리였다. 박정희 정권에게 잘보인다면 달콤한 떡고물들을 얻어 먹을 수 있다. 자신이 저임금 저곡가 정책의 희생작 아니고,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고 박정희 독재에 순응한다면, 아니 더 열심히 추종한다면 박정희 정권의 떡고물들을 핥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암흑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기였다. 

 

  "성장이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고, 폭력의 사회적 명분 또한 성장이었지요"

  "성장을 약속하는 보수적인 리더에게 몰표가 나오는 이유도 짐작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표를 던지는 이들은 양극화의 희생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164쪽


  성장과 출세에는 필연적으로 폭력이 수반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이 있어야했다. 독재정권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일어서야한다. 성장과 출세라는 욕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자신의 몸이 타는줄도 모르고 불길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인간은 성장과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리고 그 시기를 추억한다. 


2. 박노자는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는가?

  박노자의 그들을 읽어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튜브 속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대단한 나라인 것 처럼 찬양하지만, 박노자는 대한민국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런 박노자가 아련하게 추억하는 시절이 있다. 소련 공산당 시절을 추억하는 부분에서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그래도 그때는 추억이 있다며 비교적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 못했지만, 문화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추억한다. 농촌의 공동체가 자신이 살던 도시에 살아 숨쉬고 있었기에 공동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는 추억한다. 

  박노자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간다.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공산혁명'이라는 미련을 박노자는 벗어던지지 못한 듯한 인상을 이 책 곳곳에서 받는다. 프랑스의 공산당이 체제내에 안주하면서 혁명의 시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 편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조정함으로써 혁명의 기회를 없애버렸다고 서술한다. 심지어 "한국을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21세기의 아시아에 또 다시 공산주의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기 까지한다. 

 박노자가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읽으면 한국사회의 아푼 곳을 찔린듯, 움찔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박노자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지금 붕괴되어 없어진 공산사회가 아닌지 의문이들 때가 많다.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테러를 당하고 머리 수술을 받기 직전의 트로츠키가 한말이 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당은 올바르다."!! 트로츠키는 자신을 죽이려하는 스탈린의 당을 부정하지 못했다. 도그마에 갖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그는 눈뜬 장님있었다. 박노자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치유할 대안으로 제시하는 공산주의라는 환상은 트로츠키가 벗어던지지 못했던 공산당에 대한 환상과 같은 것은 아닐까?

  중국 CCTV에서 만든 '대국굴기' 소련편에서 레닌은 이상적인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박노자는 "레닌은 작은 데서 성공했지만 큰데서 실패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았지만, 그가 꿈꾼 이상적인 사회는 만들지 못했습니다."라며 레닌에 대해서 냉철한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박노자는 한세기 동안 이뤄진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박노자가 어린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일까?


  1914년 8월 4일 독일 의회에서 전시 공채 발행안 투표에서 독일 사민당은 단 2명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박노자는 이를 두고 "독일 사민당이 자국의 노동자를 도살장으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이라는 비상시에 "NO"를 외칠 것을 요구하는 박노자! 그러나 "NO"를 외칠 수 없는 나약한 우리들!! 박노자의 글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그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도록한다. '러시아 혁명사 강의'라는 책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한 박노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없다. 우리 사회를 정글 속 야만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 사회가 공산사회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점이 박노자와 내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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