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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품격 (합본) - 3대가 풀어 쓴 한.일 역사이야기 역사의 품격
배준호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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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품격'이라는 말 자체가 품위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담고 있는 한국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의 어둠속에 파묻혔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한국은 왜? 패망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실패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으며,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했는가?라는 성공요인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책은 역사의 품격을 품위있게 논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독자성을 서술했을까? 아니면 일본은 성공할 수 밖에 없었으며, 한국은 패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결과론에 근거한 역사적 결말의 필연성을 강조할까?

 

1. 밖으로 향하는 일본, 움츠려드는 조선

  에도막부 이후의 일본사를 살펴보면, 안으려 역동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으며, 끊임없이 일본밖의 세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했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게된다. 일찍이 가도라 불리는 길을 닦았으며, 표류해온 외국인들을 쇼군의 고문으로 삼았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받으려 노력했다. 중앙의 막부에서만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방의 번에서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서양세력에 대항하려했던 지방의 번들은 서양세력의 무력에 무릎 꿇고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일본은 끊임 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서양에게서 받아들이려했다.

  반면, 조선은 표류해온 서양인들을 중국에 인도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벨테브레이를 등용한 정도가 전부이다. 프랑스와 미국이 포함외교를 통해서 문호를 개방하라했으나,  조선은 그들의 엄청난 근대식 무기를 보고서도 저항을한다. 동학농민운동때는 기관총과 대포 앞에서도 용감하게 죽창을 들고 일본군에게 저항하기까지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밖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일본에 비해서, 조선은 이상을 중요시했으며, 밖의 세계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자신의 올곧은 정신세계를 지키려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이었다.

  일본과 조선의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본다. 9시 뉴스에서 외신의 비중은 너무도 작다. 우리는 세계 여러나라 소식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세계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지리라는 과목은 비인끼 과목이다. 이들 과목은 문과 학생들 중에서 일부 학생들이 선택할 뿐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문제는 한국만의 힘으로는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아는 우리이지만, 우리는 세계 정세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 우리의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고, 세계 질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민족의 비극을 빗겨가지 못할 수도 있다.

 

2.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이토가 말했다. "조선의 낙후한 정치가 문제다." 대한제국을 강탈한 원흉 이토!! 그가 조선의 정치가 낙후한 것이 조선 패망의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이면서 합리적인 대책을 세워 민중을 이끄는 리더십이 없었다. 성리학이라는 과거의 사유방식을 고수하며 새로운 근대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개화냐 척화냐라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다가 망국의 길을 걸었다. 이 책에서는 리더십이 부재한 조선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백성을 이끌 정치 분야의 선구자가 없었던 거예요. 결단력과 행동력이 결여된 현실 타협주의자만 많았죠."

 

  개화기의 우리역사를 비하하고, 패배주의에 휩싸인 말이다. 우리도 김옥균과 같은 선구자가 있었지 않았는가? 물론 그가 이루려는 근대화를 우리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급진적이고 미숙한 혁명의 길은 잔혹한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민족의 패망을 막지 못한다. 문제는 정치였다. 그러나 그러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민중들의 팔로우쉽이 뒤따라주어야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맹목적으로 리더를 추종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깨어있는 민중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리더를 앞세워 사회를 앞으로 추동해가는 열린사회를 열망한다. 개화기! 민중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분야의 대다수 리더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수의 김옥균과 같은 리더들이 근대사회로 조선을 이끌려했지만, 준비안된 우리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달라졌을까?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민중이 깨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촛불혁명이 발발했을 때에는 민중의, 시민의 위대성에 감탄했다. 그러나 지금! 국정농단을 일으킨 세력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불안함이 밀려온다. 더 이상  우리는 퇴보해서는 안된다. 사회를 진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정치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3. 냉혹한 반성인가! 식민사관의 패배주의에 물든 정신병자인가!

  균형있게 한국과 일본은 비교 설명하는 책을 기대했다. 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국은 패배의 역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일본은 승리할 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를 냉철하게 바라보아야해! 그래야 다시는 패방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 라는 절규를 하기도했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가도와 지리전문가'편을 읽다보면, 일본의 내치가 생각보다 섬세하게 잘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섬나라이고 잦은 전쟁이 일어는데도 일본은 체계적으로 도로를 관리했다. 상대편의 군대가 도로를 이용해서 쉽게 쳐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 도로를 잘 닦았다.

  반면, 조선은 도로보다는 수로에 치중했다. 조선에 수레가 없었던 이유를 산악지형이 많으며, 우마가 중국보다 건장하지 못했고, 외적이 침입하는 길로 이용된다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선이 수레를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조선초에 명나라에게 조공품으로 수많은 말을 요구했으며, 수만마리의 말들이 명나라로 가면서 말의 씨가 말랐다한다. 그래서 말이 끄는 수레 대신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가마가 발달했다. 고구려와 고려시대 까지만하더라도 말을 흔하게 사용했던 우리였다. 그것이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수레의 사용만 놓고 본다면, 이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이 공세적으로 길을 닦았다면, 조선은 수세적으로 도로의 발달에 소극적이었다. 일본과의 '가도' 비교는 우리의 비루함을 발견하는 뼈아픈 시간이었다.

  일본의 외척정치의 절정기는 고대 헤이안시대였다. 아스카, 나라 헤이안 시대를 거쳐 가마쿠라막부 시대까지 외척정치가 행해진다. 보통 외척정치라하면 나라를 병들게하는 정치형태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외척정치를 한국보다 먼저 겪었다. 더 혹독하게...

  반면, 우리는 조선시대 말기에 외척정치를 혹독하게 겪었다. 일명 세도정치가 조선을 병들게 했다. 세도정치 이후에 서양세력의 충격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외부의 충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조선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나의 눈을 의심케하는 글이 이 책에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척정치를 타파하고 조선 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 넣은 세력은 일본제국주의 등 주변 강대국이다."

 

  나의 눈을 의심했다. 한국의 진보적인 대학 교수라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니!! 일본 제국주의가!! 배준호 교수는 친일적이고, 타율적인 식민사관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는 말인가? 물론, 책의 끝 부분에 자신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그러나, 외척정치를 타파하고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킨 세력이 일본 제국주의라면, 조선의 패망이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된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리모델링해야하는데, 일본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빼앗아갔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일본이 새롭게 한 것인가? 배준호 교수의 글이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과거 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역사는 과거세력과 타협하면서 새역사를 만들어 갔다면, 일본은 과거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갔다.

  "새시대의 지배 질서 확립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에 의해서 이전 정권 사람들을 다 죽인 것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면서, 무신정권이 문인들을 등용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정권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지 않았다. 물론, 일부를 적이기는 했다. 조선왕조에서 고려왕조의 왕손을 죽이거나, 무신정권에서 문신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하면 커다란 숙청이 이뤄졌다 할 수 없다. 앞 정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해야하는 역사가 아닐까? 배준호 교수는 철저한 보복을한 일본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철저한 보복이 이뤄지지 않은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물론,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한다. 그러나 상대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피의 복수를 했던 말폐적 붕당정치를 비판한다면, 나라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세력을 포용했다는 역사는 부끄러워해야할 역사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배준호 교수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다. 부끄러워해야할 역사와 자랑스러워해야할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하는 그의 책을, 그의 강의를 대학생들이 읽고 들어야할 가치가 있을까?

 

  4. 옥의 티를 찾아라.

  배준호교수는 역사를 전공한 교수가 아니다. 경제학자이다. 그러다 보니 책에 오류가 많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일본 외척정치의 절정기는 언제일까? 126쪽에는 중세시대로 적고 있고, 132쪽에는 고대 헤이안 시대에 절정기를 이뤘다고 서술하고 있다. 같은 책에서 서술이 모순을 보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둘째, 조선이 프랑스로부터 개국 압력을 언제 받았을까? 병인양요 시기이다. 병인양요는 1866년 발발했다. 그런데, 210쪽에는 1846년이라 서술되어 있다. 1846년이면 세도정치 시기이다. 병인양요는 세도정치를 척결한 흥선대원군 시기에 발발했다.

  셋째, 유물론은 누가 말했는가? 마르크스이다. 성리학은 관념론이다. 그런데, 263족에는 "이 과정에서 유물론(율곡)이다 유심론(퇴계)이다 하면서 오랫동안 대립하죠."라고 서술했다. 율곡이 유물론자라니! 마르크스가 관속에서 뛰쳐나오겠다.

  넷째, 3.1운동에 대해서 일제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총칼로 폭압적 진압을 했다. 그런데 234쪽에는 "우리의 3.1 독립운동에 일제가 유화정책으로 대응한 것도"라고 서술하고 있다. 3.1운동의 결과 무단 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뀐 사실은 있으나, 일제가 3.1 운동의 대응으로 유화책을 펼치지는 않았다. 애국지사들이 저승에서 통곡하시지 않으실지 걱정된다.

  다섯째, 조선시대 양반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는가? 물론, 첩을 두는등 여성보다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자신이 보는 춘화를 드러내놓고 보지는 못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양반들이 속으로는 성을 자유롭게 생각했을 지라도, 드러내놓고 성을 개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142쪽에는 양반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사에 대한 체계적 학습을 하셔야할 듯하다.

  여섯째, 조선후기 양민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이나 공연장이 없었는가? 애매한 말이다. 신대놀이, 판소리 등 조선후기 서민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없었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역사학자의 한계가 보이는 부분들이 책 곳곳에서 엿보였다. 이러한 오류는 수정해주길 기대한다.

 

  김정호를 재발견한 것이 일제이며, 대동여지도를 일제는 청일전쟁시기에 유용하게 사용했고, '조선어독본'에 전기를 실은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읽으며, 우리의 보배를 우리가 몰랐다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적극적이며 진취적이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배도 바로 보지 못하는 한국사에 대한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세력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일본을 '새시대의 지배질서 확립 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이라고 미화하고, '조선정치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세력은 일본제국주의'라는 말을 읽었을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소토쿠 태자와 다이카 개신이 조작된 사실이라는 최신의 주장을 받아들인 배준호 교수가, 낡아빠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 실망감이 커져갔다. 일본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는 패망의 길을 걷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조선은 승리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은 패망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는 역사 인식을 갖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역사관은 패망의 역사를 되풀이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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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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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수는 모두 자신의 전공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교수가 얼마나될까? 그래 보통 사람들 보다는 많은 식견을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대학교수라는 간판을 가진자가 너무도 수준 이하의 모습을 드러낸 경우를 많이 보았다. K대학의 L교수의 경우, 한국사 국정화에 앞장서며, '국제화시대에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심정을 이해해보라는 탐구활동을 만들었다.'라는 괴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까지했다. 이렇게 추악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의 교수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때로는 이 사람이 어떻게 교수자리에 앉았는지, 의심이 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능력도 성품도 함량미달인자가 교수가 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한 나는, 도쿄 대학교수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를 엮은 이책에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도쿄대 교수 가토 요코의 내공에 많은 감탄을 했다. 그렇다면 그 내공을 함께 나눠보자.

 

1. 일본인이 바라본 일본사라는 한계

  가토 요코가 도쿄대학교의 탁월한 교수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이기에 일본의 역사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예를 들어보자. '미우라는 흥선 대원군을 다시 옹립하기 위해 병력을 경복궁에 침투시켜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라는 표현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일제가 일으킨 을미사변은 친러파가 득세하는 상황속에서 친러파의 핵심인 명성황후를 제거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세력의 확대를 꾀하려는 일본의 극단적 선택이었다. 이를 마치 일제가 흥선 대원군을 재옹립하고자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발생한 일로 폄하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교적 양심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가토 요코 교수가 을미사변의 목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총명함을 잃어 버렸다.

  가토 요코 교수가 강의한 학생들은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가토 요코 교수가 "민권파와 후쿠자와가 쌍수를 들어 청일전쟁에 찬성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학생들은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가토 요코 교수는 "아, 예상 밖의 대답이네요. 이거 곤란한데요."라며 멋적어했다. 나는 놀라웠다. '민권파'라는 이름에서 유추하자면, '민'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무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민'을 위해서라도 전쟁에 반대해야하지 않을까? 당연히 의문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대해서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특히 전쟁 처럼 국론을 한군데로 모아야하는 시기라면 국가에 반대되는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학생들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공산당 조차도 천황제를 부정하지 못했다. 천황제를 부정하느니, 공산주의를 내팽겨쳤다. 국가의 명령에 개인을 자연스럽게 소거해버리는 일본인의 무서운 모습을 일본 학생들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포가 밀려왔다.

  그럼, 일본의 대중들은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만주사변에 대한 정당성 여론조사에서, 전쟁전에는 정당하다는 응답이 88%였고, 전쟁이 발발하자 정당하다는 주장이 90%로 치솟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설문조사가 지성인이라고하는 도쿄 대학생을 대상으로한 조사였다는 것이다. 지성인이라도 비판정신이 없다면, 일제의 집단광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는 달라졌을까? 똑같은 여론 조사자료를 얻을 수는 없지만, 종전 60년 후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요미우리신문에서 2005년에 시행했다. '중국과의 전쟁, 미국과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둘다 침략전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 무려 10.1%였다. 또한 '대답없음'이 21.85였다. 이 수치는 '침략전쟁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없기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중국과 전쟁은 침략전쟁이었지만, 미국과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라는 주장은 33.9%였다. '둘다 침략전쟁이었다.'라는 주장은 34.2%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인의 과반수 이상은 미국과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제대로된 전범처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대중들은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정권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상기시켜본다.

 

2. 장차 약하게 하고 싶다면, 반드시 강하게 만들어라!

 노자 '도덕경' 36장에 '장차 움츠리려면 반드시 펴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며, 장차 피폐하게 하려면 반드시 흥하게하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 이를 미명이라한다.(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약하게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고, 적의 것을 배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 정말 역설적이고 비현실적인 말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노자의 이 말이 탁월한 전략임을 입증하는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번째는 케인즈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케인즈가 파리강화회의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케인즈하면 우리는 '유효수요이론'을 떠올린다. 영국 대표단의 재무부 수석대표였던 케인즈는 베르사유강화조약 조인을 하지 않고 직책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그리고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책으로 내놓았다. 그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독일에 대한 가혹한 징벌적 배상금이 대공항을 일으킬 수 있음을 미리 예견했다. 돈이 한쪽에 쏠리게 된다면 세계 경제는 막힐 수 있다. 그러하기에 독일의 산업복구를 도와주고 제품 수출로 배상금을 지불하게 해야함을 케인즈는 주장했다.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아라.'라는 도덕경의 역설적 말을 케인즈는 주장했다. 케인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강대국은 몇년 지나지 않아서 세계 대공항을 맞이해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전쟁의 전조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야했다.

  두번째는 후스의 탁견이다. 1935년 후스는 장제스, 왕자오밍 앞에서 "미국과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정면으로 버티면서 2~3년간 계속 패배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일제가 중국 연안의 항만과 창장강 하류 지역을 점령하고, 중국의 여러 성들이 함락된다면,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절박한 위협을 느끼며 참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의 살을 내주어 적의 뼈를 취하겠다는 후스의 전략은 무모해보이기도하다. 그러나 그의 전략은 정확했다. 격렬히 저항하는 중국에게 일본은 연전연승을 거두지만, 일본은 중일전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된 확전의 길을 걷게 된다. '장차 약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강하게 하라'라는 도덕경의 말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이다.

  '도덕경'을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무위자연과 같은 현실도피적 삶을 노래한 책으로 많이들 알고 있으나, 잘뜯어보면 '도덕경'의 탁월한 식견과 마주하게 된다.

 

3. 우리를 되돌아보다. 

  이 책은 일본 근대사를 강의한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의 역사를 아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실미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아는가? 정의당이 거대 정당들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소선거구제'를 비판하고 '중대선거구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기 위해서 선거구제를 개편해야한다는 의견 정도로만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이해했다. 그런데, 일본도 '소선거구제'가 실시되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 소선거구제로 인해서 투표의 열의가 높은 60대 이상의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고 있다. 이로인해서 국회의원은 고령층의 이익대변자로 전락했으며, 아이를 기르는 젊은 이들의 이익은 현실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가토 요코 교수가 지적한 일본 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현실에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고향의 시골 노인정에는 난방비와 쌀등이 잘 나온다고 한다. 물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정말 좋은 제도이다. 그런데, 저출산으로 한국사회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현실 개선을 위한 대책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하다. 특히 지난 보수정권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젊은이가 투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 노인세대에 유리한 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선거구제는 개혁되어야한다.

  "역사는 교훈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흔히들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배울 수 있으며, 그런점에서 역사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토 요코 교수는 그 교훈이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예로 정치가로서의 압도적인 힘과 군사적 리더십을 겸비했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세인난 전쟁을 일으킨 것에 교훈을 얻은 일본정부는 다시는 국민에게 인기있고 지도력을 갖춘 사이고 같은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정부 통수권 독립을 추진한다. 통수권 독립의 결과 일본군부는 정치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게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전쟁 기간 동안 정치 외교 분야와 군사 분야가 서로 소통하지 못했다. 이 사례는 적폐청산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무사 해편을 비롯해서 과거의 적폐를 철저히 개혁을 할때, 과거의 교훈을 토대로 개혁을 함에,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유념하며 신중히 개혁을 추진해야할 것이다.

   미즈노 히로노리라는 현역군인은 "일본은 전쟁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 믿어지는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에서, 그것도 현역군인이 일본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다니.... '지구전을 수행할 수 없다면 전쟁할 수 없는 나라'라라는 지적을 일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기습전에 의존해서, 수치를 왜곡해서 그들의 희망사항을 부풀려서 전쟁계획을 수립했고, 많은 동아시아인들을 불행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도 지구전을 수행할 수 없다.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지구전이 가능한 나라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평화를 외쳐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탁월한 외교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분촌 이민을 권유하는 현 공무원'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는가? 일본 정부에서 만주로 이주를 독려하기 위해서 제시한 달콤한 돈에 유혹되어 많은 일본인들이 만주로 갔으며, 전쟁에서 패전하고 나서 돌아오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어찌보며, 정부의 침략전쟁에 협조한 그들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00고등학교에서 재직했을 때, 돈을 얻어낼 목적으로 교과교실제에 응모해서, 돈만 얻어낸 경우가 있다. 이에 항의했더니, 당시 교장과 교감이라는 자와 소위 부장이라는 작자는 우리 현실에 부적합한 교과교실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시찰나온다고 하니까 강제로 교과교실제를 하라고 했다. 그때, 소위 관리자라고 불리는 작자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보신주의에 철두철미한 그들은 약자에게는 강하지만, 자신보다 강한자에게는 너무도 비굴해진다.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주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 공무원들 처럼....

 

  이책은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강의! 학생들에게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 '이 압권인 책이다. 아울러 일본 침략전쟁의 확전과정과 의도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탁월한 식견을 제공해준다. 조선 중립화론을 유길준과 부들러만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슈타인도 주장했다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지식을 얻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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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06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놓고 뚜껑도 안 열어보고 있네요! ㅎ

강나루 2018-08-06 22:53   좋아요 1 | URL
일단 읽기 시작하면 술술 읽혀요^^

카알벨루치 2018-08-06 22:54   좋아요 1 | URL
조만간 완독소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ㅎ

카알벨루치 2018-08-06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진명의 황태자비납치사건에서 가토 교수 이야기가 나온것 아닌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NamGiKim 2018-08-1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서점에서 사려다다 만 책입니다. 좋은 리뷰입니다.^-^

pedrailmin 2018-09-22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성하신 서평들만 모아서 책으로 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강나루 2018-09-23 18:14   좋아요 0 | URL
과찬이세요
암튼 책을 쓰고 싶은 것은 사실이에요^^

pedrailmin 2018-09-23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올려주신 서평들 주욱 읽어봤는데 이렇게 다방면의 주제에 깊은 식견을 갖추신 분을 알게 되어서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Redman 2022-03-0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우라는 흥선 대원군을 다시 옹립하기 위해 병력을 경복궁에 침투시켜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본의 만행이자 쿠데타였습니다. 일본은 친러파의 중심인물인 명성황후를 죽인 다음, 일본과 친한 인사를 정권에 복귀시켰습니다.˝ 언급한 문단 전체를 보면, 친러파를 제거하고 일본의 세력 확대를 꾀한 사건으로서의 을미사변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요? 역시 역사학자답네요. 한 문장을 가지고, 일본인으로서의 한계라든가, 총명함을 잃었다 같은 평가는 지나친 평가 같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일본 군사사 - 한 군인의 4박 5일 일본군사유적 답사기
이재우 지음 / 북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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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를 알아야한다. 그 중에서 일본의 군사사를 아는 것은 필수이다. 청나라와 싸워서 이기고, 러시아와도 싸워서 이긴 일본! 그 일본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덕일은 일본군이 생각보다 잘싸우지 못해다고 대중강연에서 말을 했다. 세계를 보는 시야가 좁고 판을 읽는 눈을 가진자가 없다고 말한다.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현역 군인이 직접 일본의 군사유적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풍부한 군사지식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에쎄이!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전문가의 시각이 담긴책!

  이 책을 읽으면서 첫날 오사카를 중심으로 답사를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알고 있었던 군사지식을 뛰어넘는 설명이 많지 않았다.가볍게 읽어 내갈 수 있는 수준의 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이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저자의 전문가로서의 글들이 속속 나의 눈에 들어와 박혔다. 저자는 일본의 군사만을 다루지 않았다. 일본의 군사와 유사한 한국의 군사를 비교하거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손무의 '손자병법'등의 유명한 전략가의 책에서부터, 현대의 신군사사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군사지식으로 일본의 군사사를 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설명은 군사를 이해하는 길을 나에게 알려주는 소중한 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전문가가본 기존의 전쟁 재평가

  현역 육군대위는 기존의 전쟁사에 대해서 과감하게 재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신립에 대한 평가는 기존의 평가와 너무도 상반되었다. 이어송이 조령을 버리고 배수진을 친 신립을 비판한 것을 예로들면서 신립을 비판하는 기존의 시각을 사대주의라고 당당히 비판한다. 한 곳만을 막는다고 우회기동을 통해서 뒤를 칠 수 있는 곳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탄금대 전설의 허구를 비판하고, 전투가 일어난 곳은 탄금대가 아니라, 달천평야 일대라고  주장한다. 수적 열세에서 측면과 후방을 지형지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달천평야를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일본군은 산을 우회기동하여 포위당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도고제독의 T자 전술이 이순신의 학익진을 연구해서 만든 전법이라는 주장도 실날하게 비판한다. 학익진은 여러 전술중에 하나일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순신은 학익진으로 숭리한 것이 아니라, 적 상황과 지형에 맞는, METT-TC(상황판단을 위한 임무, 적, 지형, 기상, 가용부대, 가용시간, 민간요소)를 고려하여 아군의 훈련된 여러 방책중 하나인 학익진을 택한 것일뿐이다. 반면 T자 전법은 일본해군의 독창적인 전법이라기보다는 화포의 등장 이후 모든 함대전투에서 추구하는 전투대형으로 적을 삼면으로 둘러싸는 학익진과는 다른 모습이라 주장한다. T자 전법은 학익진을 모방했다기 보다는 적에게 최대한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 고심한 끝에 위험을 무릅쓰고 적 앞에서 과감한 방향전환을 성공시켰던 고급 기동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시 역사가의 눈으로 보는 것과 군사 전문가가보는 눈은 달랐다.진형의 유사성을 가지고 학익진과 T자 전법을 비슷한 것으로 본 것은 너무도 피상적인 이해였다.

 

  3. 죽기 위해서 싸우는 일본군과 승리하기 위해서 싸우는 이순신의 군대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에서 일본군은 상식을 뛰어 넘을 정도로 용감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죽으러 전쟁터로 나가는 일본군을 보면서 두려움까지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비롯해서 일본군은 일본천황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다. 그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진정한 군인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일본은 죽기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전력의 열세를 정신력의 강조로 극복한 한두번의 전쟁을 토대로 그들이 만들어낸 황군은 일황을 위해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묘사했고, 이에 일본국민이 호응했다. 그리고 2차대전 말기에는 광적으로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내 자살하게 만들었다. 이덕일이 판을 보는 눈이 없다고 한 것이 이해가 갔다.  "무사도란 죽는 것이다."라는 하카쿠레이 구절! "모든 쪽바리들은 그들의 의무가 덴노를 위해 죽는 것이라 한다. 그 의무를 다하는 것을 보는 것이 미 해병대원의 의무이다."라는 미 해병대의 말은 일본의 생사관을 잘 말해준다.

  반면에 이순신은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다. 죽으려하는 자는 살것이요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다. 이겨놓고 싸우는 이순신! 그는 치밀한 전력을 짜놓고 이를 수행하려 죽기를 각오한다면 반드시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하기에 부산을 공격하라는 선조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군이라면 돌격하라면 죽는 골짜기라도 그들은 돌격했을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현명한 군인인가? 군은의 목숨은 소중하다. 군이 무너지면 국가의 안위도 위태롭다. 무모하게 선조의 진격명령에 따랐다가 조선수군을 친천량에서 수장시킨 원균보다 선조의 명령을 거부한 이순신이 위대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한다. 여기서 더 생각해보면, 무모하리 만치 죽음을 가벼이 여긴 일본군의 모습이 왜? 멍청한 짓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4. 현역군인의 한계

  우리군의 비극은 한국광복군계 뿐만 아니라, 일본군계와 만주군계가 대한민국 국군을 만드는데 참여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뿌리를 한국광복군에서 찾아야하지만, 일본군계와 만주군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혈통적으로 게르만의 피가 많이 흐르는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골족'에서 찾아 서술하듯이, 우리의 국군도 우리의 뿌리를 '한국광복군'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군계와 만주군계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나의 생각과 달랐다. 일본군계도 끌어안아야한다는 뉘앙스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군에 몸담고 있는 현역군인의 한계가 아닐까/

 

  이 책은 전문 군사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쉽게 이를 풀이해주고, 생생하게 일본의 군사유적을 답사 모습을 그려내어, 마치 독자가 저자를 따라서 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읽어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만드는 이 책을 전쟁 덕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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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일본사 - 야마토 시대부터 전후 일본까지 이야기 역사 4
김희영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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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본을 가깝지만 먼나라라고 말한다. 일본사 또한 가깝지만 이해하기 힘든 역사이다.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우리의 역사흐름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붓의 문화라면, 그들은 칼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선비사(士)를 보고 우리는 '선비'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일본은 '사무리이'를 떠올린다. 같은 한자를 보고도 너무도 다른 의미를 담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잘 대별해 준다.

 

대학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백제의 대왜관계를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백제와 일본과의 교섭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려면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 일각연을 가지고 있어야했기에 일본의 역사책들을 읽었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와 같은 일차사료부터 시작해서, 연구논문들을 읽고 관련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나의 능력한계 때문일까? 일본의 역사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너무도 다른 역사! 너무도 다른 학설! 너무도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들의 마음을 보는 듯한 인상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회에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본사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되었다.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라는 책을 통해서 일본의 역사를 나름 재미있게 재구서성할 수는 있었지만, 토픽중심으로 구성된 책이라 일본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반면 '새롭게 쓴 일본사'의 경우에는 딱딱한 서술에, 너무나도 낫설은 내용에 일본사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너무도 힘든 책이었다.

 

일본사에 대한 제대로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싶었던 나는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다시 일본사에 대한 공부를 하자! 일본사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던 중에 '이야기 일본사'가 보였다. 역사를 전공한 내가 '이야기 일본사'를 읽는 것이 좀 자존심이 상했지만,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다운 앎의 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야기 일본사'를 빼어 들었다.

 

'이야기 일본사'라는 제목을 보고 몇가지 오해했던 것들이 이책을 읽으면서 말끔이 해소되었다. 단순히 재미위주의 책으로 야사를 위주로 서술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책은 지은이가 밝혀 놓았듯이 일본의 연구성과를 재미있게 이야기 식으로 구성하여 펼쳐 놓았다. 재미위주의 책이라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오해는 책을 읽으면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나름 심도있는 내용과 쉬운 해설은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깊이있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기억하는 것도 사극을 비롯한 다양한 볼 거리와 다양한 읽을 꺼리를 통해서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구고, 이어서 심도있는 역사책을 읽음으로써 그 뿌리를 단단히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이야기 일본사'는 일본사에 대한 이해와 일본사에 대한 흥미를 높여주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사무라이 정신이 만들어진 과거 즉, 창조된 과거라는 사실을 알고 반신반의했다. '이야기 일본사'를 통해서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이 빨라 보았자, 에도 시대에 사무라이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창조된 역사'라는 사실을 새삼 확신하게 되었다.

 

일본사의 흥미를 이끌어 내려는 사람, 일본사의 뿌리를 단단히 하고자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특히 토픽중심의 일본사 책들에 실망하고, 너무도 생소한 일본사에 고전한 나와 같은 독자라면 더욱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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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군주 -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이산의 책 26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한석정 옮김 / 이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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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여성사를 공부했을 때, 상당히 이체로웠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200~300년밖에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는 조선 전기까지는 남성과 거의 대등했으며, 삼종지도를 강조하는 여성관은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책에서 소개된 일본의 천황제 국가 '미장센', '페전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들이 모범으로 삼는 서구의 제국주의국가를 면밀히 연구하면서 서구국가들이 과거를 마들었듯이, 일본도 그들이 만든 과거를 모델로 일본의 전통을 만들었다. 전혀 유구하지 않는 천황의 은혼식과 결혼식을 유구한 것처럼 만든 그들의 행동은, 우수우면서도 섬득하기도 하다. 철저히 서구를 모델로, 자신의 과거를 창조하는 그들은, 이제 다시 새로운 과거를 만들려한다. '정상국가'라는 미명으로 시작되는 그들의 움직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하는 이유를 일본의 근대사를 보면서 느낀다.

 

2. 프로그램화된 일본인들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은, 섬나라라는데 있다. 그것도 지진과 해일 그리고 화산활동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나라이다. 그렇기에 도망갈 곳이 없어서, 그 섬에서 모든 문제의 해결을 해야한다. 강자에게 맞서다가 할복하던가, 아니면 강자 밑에 들어가 충성을하는가를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기에 외부의 충격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우리와는 달리 강한 서구 제국의 침략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만들었다. 심지어는 천황의 이미지까지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만들어진 전통을 일반 민중들은 진실이라 믿고있다. 마치 아베가 후쿠시마 원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진실로 일본국민이 믿고 있듯이말이다. 비판 능력을 상실한, 아니 거세한 그들을 보며, 또다른 거짓된 전통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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