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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인문학 - 슈퍼리치의 서재에서 찾아낸 부자의 길
브라운스톤 지음 / 오픈마인드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케인즈와 하이에크라는 경제학의 거장이 있다. 케인즈의 이론은 대공황에서 세계 자본주의를 구해냈다. 적극적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그의 이론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그러나, 케인즈의 이론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한계를 겪게 된다. 그러면서 하이에크의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한다. 케인즈와 하이에크 학파의 대결은 100여년 동안 펼쳐지고 있다. 브라운스톤의 '부의 인문학'은 하이에크 학파의 입장에서 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저명한 경제 석학들의 책들 속에서 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아 놓은 책이 '부의 인문학'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연발하게 하면서도, 못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도록 만드는 책이 '부의 인문학'이다. 이 책의 어떠한 점이 감탄 스럽고, 때로는 불편하게 만드는지 살펴보자.
1. 도끼같은 책
사람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보이는데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나 또한 내가 보고 싶은 데로 경제를 보았다. 냉철하게 현실을 보지 않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경제는 이러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우리현실을 보았다. 이 책의 저자 브라운스톤은 냉철하게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도 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보려 노력했다. 결국, 평범한 사실에서도 부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브라운 스톤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으며 "불쾌하고 불명예스러운 직업일수록 수입이 많다."라는 구절을 접한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사실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시대 백정이나, 사형집행인, 서양 중세의 고리대금업자는 사회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직업이다. 그러나, 남들이 싫어하는 직업일수록 많은 수입을 얻을 수있다. 이 원리를 부동산에도 적용할수도 있으며 직업을 선택할 때 활용할수도 있다. 예를들어 여관주인과 술집주인, 고리대금업자는 사람들이 꺼리는 직업이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기도하다. 돈을 벌수만 있다면 말책찍이라도 들겠다 그러나 추구해서 얻을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공자는 말했다.(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공자가 돈을 추구해서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공자가 부자되는 일보다는 학문에 대한 애정이 더 컷기 때문이다. 브라운 스톤은 부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국부론' 속에 있는 부자되는 방법을 알아냈다.
브라운 스톤은 토마 피케티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21세기 자본'을 읽고서도 우리와 다른 교훈을 얻는다. 토마 피케티가 우리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실증적으로 직면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브라운 스톤은 달리 생각했다.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하라.'라고 외친다. 토마 피케티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되고, 가난한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 현실을 인정하고 부자가 되는 길을 찾으라고 말한다. 혁명가의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본주의에 적응해서 부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외친다. "살아 남으려면 자본주의의 게임의 법칙을 익혀라"
브라운 스톤은 '시장 경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대지 말라'고 말한다.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 강남의 복부인보다 많은 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검절약이 부유함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근검절약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 노동자에게 강요된 미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도 대학 강연에서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불평할 시간에 노력하라."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원래 불공평하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부를 쌓는 방법을 아는 자는 쉽게 부자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자는 열심히 일하지만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 빌 게이츠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노자 '도덕경'에 '천지는 어질지 못해 만물이 풀로 엮은 강아지를 대하듯 하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고 했다. 악한자 중에는 호위호식하면서 천수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갑작스런 사고로 죽는 일이 뉴스에 간혹 등장한다. 이를 보면서 왜?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한지를 스스로에게 묻곤했다. 나는 세상이 정의로워야한다는 나의 바램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어질지 못한 세상에 분노했다. 정의롭지 못한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개탄하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준 정치인을 찾곤했다. 그러나, 브라운 스톤은 도덕적 잣대로 세상을 외곡해서 바라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차가운 머리로 우리 경제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을 곱씹어봐야한다.
2. 불편한 책
브라운스톤은 신자유주의자의 시각에서 우리현실을 바라보았기에 내가 보지 못한 현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색안경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브라운스톤은 신자유주의자 답게 작은 정부를 좋아한다.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을 무척 싫어한다. 소위 보수적인 조중동에서 스는 '귀족노조'라는 단어를 스스럼 없이 쓰며, '경제 민주화'가 되면 경제가 폭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한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발생하는 '인플래이션'을 일어나서는 안될 부정적인 현상으로 본다. 그리고 브라운스톤이 주는 불편함은 비오는 날 욕실에서 올라오는 시궁창 냄새처럼 이책 곳곳에서 풍겨나온다.
브라운스톤은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한개장을 할애할 만큼 부동산 투자가 부를 축적하는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대해서 실날하게 비판한다. 진보정권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정지출이 인플래이션을 일으켜서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부동산의 폭등은 서민의 삶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역대 진보정권이 집권했을 때, 부동산이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브라운스톤은 단언하다. 그는 공짜 점심은 없다고 지적한다.
브라운스톤은 분양가 상한제라는 규제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1가구 다주택자를 옹호한다. 1가구 다주택자는 전체적으로 수요를 높여주고, 이는 주택 공급을 늘려서 전체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집주인이 마음대로 전월세 가격을 올리는게 아니고 전월세 수요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집값은 투기꾼이 올리는게 아니다. 경제 상황이 집값이 오를만하게 되었기에 집값이 오르는 것이다."라고 항변한다. 마치 투기꾼을 욕하는 서민들은 경제적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브라운스톤은 집주인과 투기꾼들을 위한 변명을하고 있다.
그렇다면, 브라운스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가 온 세상을 지배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한 이후, 경제는 성장하였으나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승자 독식의 시대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근해 정권에서 '승자 독식의 시대'의 폐해를 많이 보았다. 그 시절, '헬조선'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브라운 스톤이 공짜 점심은 없다며 진보정권의 재정지출이 인플래에션을 일으킨다고 개탄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정지출이 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브라운스톤은 그러한 사회를 원하는 것인가! 보수적인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했다. 그러면서 토건족을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환경을 파괴했다. 브라운스톤의 지적대로라면 이명박 정권 시기에 대규모 재정지출이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어야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 불황으로 집값 폭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실을 단순화시켜 현실을 편협하게 바라보는 브라운스톤이 딱하게 보인다.
브라운스톤은 1가구 다주택자가 전체적으로 집값을 안정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주택자가 없더라도 주택을 소유하려는 한국인들은 차고 넘친다. 또한, 1가구 다주택자 중에서 친인척들의 이름을 빌려서 다수의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집값을 올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예로들 수있는 것이다. 투기꾼가 집주인이 전월세 가격과 집값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동의할 수 없다. 아파트 부녀회가 담합을 하는예도 있으며, 소위 서울의 큰손들이 지방을 돌면서 아파트를 사들이고, 여기에 가수요가 붙어서 지방 중소도시의 집값이 폭등했다. 이러한 현실을 브라운 스톤은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브라운스톤은 슈퍼스타도시 서울의 집값이 앞으로도 오를 것이라 예측한다. 투자하려면 서울에 부자들이 사는 동네 근처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만약 브라운스톤의 말처럼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서울의 집을 사들인다면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될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빚을 내서라도 서울에 집을 살려들것이다. 집은 거품을 품으며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다. 그러다가 거품이 일순간에 꺼진다. 일본의 부동산 버불이 꺼지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브라운스톤의 '부의 인문학'을 아내의 권유로 읽었다. 처음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현실을 신자유주의 시각에서,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새롭게 해석해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중반부에 들어서자,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논리에 불편함이 밀려왔다. 감탄과 불편함이 동전의 양면처럼 밀려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렇다면, 모든 정부 정책을 중단한다면 경제는 저절로 좋아지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했다. 집값이 떨어져야한다는 나의 당위론을 경제학 용어로 논리인 설명을 해주는 선대인 소장의 말을 믿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하지만, 부동산투기 광풍이 한국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20년의 나락으로 떨어 뜨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시절들었던 '경제학 원론' 강의에서 '구조의 모순'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개인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이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우리 개인이 서울의 주택을 구입해서 부자가 되려는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과열시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유념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