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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 데이트, 쇼핑, 놀이에서 전쟁과 부자 되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것
앨런 S. 밀러.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박완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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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1면년전 석기 시대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최적화된 뇌를 가지고 21세를 살아간다. 우리가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이시기에 만들어진것이다. 이것이 진화심리학의 기본전제이다. 인간행동의 근원을 무의식에서 찾은 프로이드와는 달리, 인간은 백지 서판(Tabula rasa)이 아니며, 인간은 이미 형성된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바나 원칙'을 전제하고난 이후에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다. 인간을 동물과 다른 존재로 보지 않는 진화심리학은 우리를 불편하게한다. 인간행동의 근원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조금의 불편함을 참고 책을 읽어보자.

 

1. 진실에 직면하라.

  "진화 심리학은 성차별을 합리화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자연주의적 오류'와 '도덕주의적 오류'를 집고 넘어간다. 자연스러운 것이 곧 좋은 것이라는 '자연주의적 오류'는 남성은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에서 투쟁을 통해서 사랑을 쟁취했기에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폭력적 행동은 정당하다는 오류를 낳는다. 반면, 바람직한 모습이 바로 사물이 존재하는 모습이라는 '도덕주의적 오류'는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똑같이 대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고, 진보주의자는 '도덕주의적 오류'를 저지른다. 나 자신도 '도덕주의적 오류'와 '자연주의적 오류'를 왔다 갔다하면서 많은 오류를 범했다. 나의 참된 마음을 바로 보아야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도덕주의적 오류'와 '자연주의적 오류'를 끌어와서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킨다. 인간은 백지 서판(Tabula rasa)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아야한다. 그럴때만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이 문명에 위협을 주는 요소를 억제할 수있다. 이것이 우리가 진화심리학을 읽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밖에도 이책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을 무참히도 깨부순다. 1854년 워싱턴 주지사가 두워미시 인디언 부족 대표인 시에틀 추장을 만나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땅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연설은 인디언들이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는 감동적인 연설이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연설은 백인 드라마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연설이었다. 인디언도 생존을 위해서 자연을 이용했다. "환경보호"는 산업화 이후에 자연을 인간이 파괴하면서 생겨난 관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을 다를 수 있다는 근거로 "교사용 지도서"에까지 소개된 마가렛 미드와 사모아제도의 이야기도 사실은 거짓이라 이 책은 주장한다. 1923년 3월 13일 미드는 잘못된 인터뷰자료를 채집했고, 1928년 '사모아의 성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해서 페미니스트의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1988년 5월 2일 여든 여섯살이된 파푸아는 사모아 정부관료에게 '마가렛미드에게한 청소년들의 성적 행동에 관한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였음을 말한다.이들 이야기들의 진실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이 비슷하며, 이 전제를 인정해야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음을 진화심리학은 말한다.  

 

2. 진화심리학에 깃든 프로이드의 모습

  프로이드의 제자들이 프로이드를 떠난 이유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본을 '성적 에너지'로 보았기 때문이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고귀함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시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진화심리학은 프로이드보다 한발자국 더나아간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바나 지역에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만들어진 본성으로 파악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우리를 불편하게 함과 동시에, 달리 이해되지 않았던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든다."라는 말고, "남자는 결혼해야 돈을 모은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내의 주변에서 만이하는 이러한 말들이 사실은 사실이 근거한 말이었다. 범죄자가 결혼하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과학자의 경우 결혼을 하면 연구성과가 떨어진다. 이를 진화 심리학으로 설명하면, 번식에 성공한 남성이 목적달성을 했기에 '범죄'와 '연구'에 흥미를 잃었기 대문이라 설명한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부와 권력을 획득하여 많은 짝짓기를 하려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범죄도 서슴치 않는 설명이 좀 불편한가? 다음 설명은 어떠한가?

  세계 곳곳에서 자녀의 성을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이유를 아는가? Mommy's baby, Daddy's Maybe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아기가 자신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버지는 DNA상 자신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세계 곳곳의 약 10%의 어버지는 유전적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닌 자식을 친자식으로 알고 기르고 있다.(미국 10%~20%, 독일 9%~17%, 멕시코 10%~14%) 오쟁이를 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아내는 아기가 아빠를 닮았다는 확신을 주어야한다. 그리고 아빠의 성을 따름으로서 확신을 배가 시킨다. 그래야만, 아버지는 아기에 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아기의 생존률이 높아진다. 그존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던 일들이 말끔이 설명된다.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진 느낌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보자. 오쟁이를 당할 수 있는 남성은, 자신이 오쟁이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때, 어떻게 변할까? 이 책에서는 '의붓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위험스런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함께사는 부모가 둘다 생물학적 친부모가 아닌 유아와 아동은 생물학적 친부모 모두와 함게 지내는 경우에 비해 가족 내에서 상해를 입거나 살해될 가능성이 무려 40배에서 100배나 높은 현실'을 지적한다. 신문지상에서 흔히보는 의붓아버지의 딸 성폭행과 학대, 그리고 살해가 진화 심리학의 눈으로보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인간은 윤리나 도덕으로 제어가 되지 않는 본능이 살아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3. 진화심리학으로 인생의 지혜를 얻다.

  모로코의 물레이 이스마일 황제는 1042명의 자녀를 두었다. 700명의 사내아이와 324명의 여자아이를 두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너무도 많은 자녀를 두었기에 중간에 자녀를 세다가 말았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권력과 부의 유무에 따라 자녀를 많이 둘수도 있으며, 한명도 가질수 없을 수도 있다. 냉혹한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생존경쟁 속에서 번식의 기회를 잡기 위한 숫컷의 혈투가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 숫컷은 폭력과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숫컷의 본능은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치기도하고, 전쟁터에서 상대편 여성을 성폭행하는 잔인한 모습을 드러내기도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고 현실을 바라보면, 그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남자에게 일부일처제가 유리할까? 일부다처제가 유리할까? 남자들은 자신이 거느릴 수많은 여성을 생각하며 일부다처제가 남성에게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적, 사회적 부와 지위가 높은 매력적인 몇몇의 남성들이 많은 수의 부인을 차지하고, 다수의 남성은 결혼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번식을 할 수없는 숫컷들은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게된다. 저자는 이슬람국가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많은 이유를 일부다처제에서 찾고 있다. 자신의 바램과 현실을 착각하는 다수의 남성들은 일부일처제가 다수의 남성들에게 유리한 고마운 결혼제도임을 모르고 있다. 어쩌면일부일처제는 사회의 폭력을 막기위해서 고안된 가장 소중한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진화심리학은 좋은 상대를 구하는 지혜를 주기도한다. 남성은 가임능력이 우수한 여성을 얻기 위해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 여성을 찾는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단기적 짝짓기를 할경우에는 매력적인 남성을 고르지만, 장기적인 짝짓기를 할 때는 자산과 지위가 높은 사람을 선택한다. 이것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이라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윤리적 잣대로 비난한다. 빌게이츠가 대학 강연에서 대학생들에게 "현실은 공평하지 않다. 우선 이를 인정하라"라고 말했다. 우리의 본능은 도덕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를 인정하자. '도덕주의적 오류'에 빠져 본능을 비난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대안을 얻을 수 없다. 차가운 머리에 따뜻한 가슴으로 현실을 살아가자. 물론, 현명한 남성과 여성은 본능을 뛰어 넘는 안목을 가질 것이다. 장기적 행복을 위해서 그녀(혹은 남성)의 성격과 인성을 볼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따져볼 것이다. 그것이 자신과 자녀의 행복을 결정할 테니까.... 

 '잘생긴 남자는 형편없는 남편'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씨앗을 뿌리며 자손을 번식시키고는 육아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매력적인 여성은 단기적 상대보다는 장기적 상대를 두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여성을 얻기 위해서 남성은 여성에게 어떠한 선물을 해야할까?

 

 "비열한 남자와 좋은 아빠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받는 구혼선물은 호사스러울 뿐아니라 본질적인 가치가 깃들어 있지 않아야한다."-142쪽

 

  놀랍게도 장자에서 말하는 '무용의용(無用之用)'을 여성을 바라고 있다. 여성이 다이몬드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호사스러울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가치가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용적 가치를 중시 여기는 나의 사고가 여성에게는 맞지 않는 생각일수 있었다. 여성의 장기적인 짝짓기를 위한 고차원적인 전략을 아는 미처 몰랐었다.

  진화 심리학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괴롭힘에도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브라운은 여자가 노동력에 합류하기 훨씬 전에 남자가 서로에게 그렇게 학대하고, 위협하고, 체면을 떨어뜨리는 처우를 해왔다고 지적한다. 남자가 여자를 이런식으로 괴롭히는 것은, 여자를 남자와 다르게 대해서가 아니라 바로 정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패미니스트의 주장은 진화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같음을 강조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로운 문명사회를 이룰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사회가 덜 폭력적이고 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4. 동의할 수 없는 것들

  진화심리학이 기존의 사회과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사건들을 새로운 시작각으로 깔끔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모든 인간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진화심리학이 설명하는 몇몇 주장은 도의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살해할까?'라는 의문에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이책의 저자는 라이트가 진화심리학이 설명하지 못한 목록에 이 주제가 올라가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물학적 친부가 아니기에 의붓자식을 죽인다고 저자는 결론 내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족집단자살은 친부가 친자식을 죽이고 자살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자신은 죽더라도 자녀는 살려두는 것이 자신의 DNA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자녀를 죽이는 한국의 가족집단자살은 진화심리학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둘째, '제눈에 안경은 없다.'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처음본 외국 인물을 보고 매력적인 이성을 선택하는 것이 공통된다는 점을 들어, '제눈에 안경'은 없다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더 나가서 대중매체에 의해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퍼뜨린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그러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비만한 양귀비를 떠올린다면, '제눈에 안경은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현대의 미녀들는 너무도 다른 모습의 미녀들이 과거에 존재했다. 동시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동일한 미의 기준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적으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미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인간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지대에서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해왔던 행동을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행하고 있다. 인간은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행하던 폭력적인 모습을 줄이려 도덕과 윤리라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이데올로기로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문명을 했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부정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인간을 움직이는 힘을 무의식과 인간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긍정하게된다. 윤리, 도덕과 인간의 욕망의 조화를 통해서 인류는 문명사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 인류의 과제이다.

  사바나 초원지대에 알맞게 진화한 우리의 두뇌는 인간의 본능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조절하며 1만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빠른 변화라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했다. 빠른 변화에 잘 적응하는 두뇌는 생존할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는 두뇌는 도태될 것이다. 자연에 적응하는 자가 생존해왔듯이, 21세기에 적응하는 자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우리는 과연 그 과제를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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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행동의 심리학 - 말보다 정직한 7가지 몸의 단서
조 내버로 & 마빈 칼린스 지음, 박정길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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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유난히도 눈치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읽고, 재빠르게 대처해야하는데 그러질 못한다고 핀잔을 많이 듣는다. 핀잔을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나의 아내이다. 포카페이스를 못하며, 돌려서 말을 못한다. 상대방이 돌려서 하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상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를 진실하게 대해야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눈치없는 나의 단점을 보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행동 심리학 서적을 뒤지다가, 'FBI 행동의 심리학'을 집어들었다. 전직 'FBI' 대적첩보 특별 수사관 조 내버로가 쓴 책이라는 말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1. 행동의 심리학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전직 FBI 조 내버로의 글은 25년 동안의 경력에 근거하고 있기에 믿음이 갔다. 그러나, 학문적 근거가 있는 말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조 내버로는 나의 의구심을 미리 예상한 듯하다. 그는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지키는 3단계 생존 매커니즘'을 제시한다. 정지(Freeze), 도망(Flight), 투쟁(Fight)은 인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발휘했던 행동들이다. 이 생존의 기술들은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쳐 현생인류에게 내재화되었다. 특히 우리의 변연계는 우리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우리몸을 움직인다. 말과 표정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지라도, 발과 몸짓은 진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생존 전략을 우선적으로 써야할까? 조 내버로는 '가급적 투쟁반응을 자제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공격적인 전략을 쓸 경우 감정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위협적인 상황을 냉철하고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학생보다 먼저 흥분하는 경우이다. 그럴경우, 사건은 제대로 수습되지 않는다. 나00 교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먼저 흥분하거나 화를 내면 지는거야!" 맞는 말이었다. 학생이 어떠한 불손한 말을 할지라도 먼저 화를 내서는 안된다. 항상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해야한다. 항상 상벌점 규정과 징계규정, 학교 교칙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학생 반발시에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대답해야한다. 권위적으로 응박질러서 생활지도가 되는 시기는 먼옛날 옛적일이었다. 흥분한 변연계를 잠재우고, 냉철한 전두엽을 활용해서 냉철하게 일처리를 해야함을 알게된 나에게, 조 내버로의 조언은 행동의 심리학이 상당히 실용적인 책임을 확신케했다.

 

2.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호텔에 묵고 있는 조 내버로에게 호텔 주인이 부탁했다. 자신의 보안대원이 완벽한데 무언가가 빠진것 같으니 이를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 내버로의 해결책은 '손을 뒤로하고 턱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너무도 작은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위엄이 부족했던 보안대원들에게 상당한 위엄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 주변에서 권위가 필요한 공간과 친절함이 필요한 공간이 있다. 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공간에 알맞은 손동작, 제스춰를 한다면 나는 공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교실에서 나의 손동작과 발동작을 어찌해야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힌트를 이 책에서 찾았다. 학부모와 상담할때, 학생과 상담할때, 관리자를 비롯한 동료교사와 대화하면서 그들에게 나는 어떠한 제스춰를 해야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어떠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책을 읽으면서, '넛지'가 생각났다. 강압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계입 '넛지'!! 나의 행동 하나 하나는 하나의 '넛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도를 읽고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3. 행동의 심리학에 오류는 없는가?

  '등뒤에 팔을 두는 태도는 '왕의 자세'로 불리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한다.'라는 설명을 당신은 동의하는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걸음걸이를 교정하기 위해서 '왕의 자세'를 한다. 뒷짐을 지고 걸으면서, 나의 자세를 교정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왕의 자세'를 하고 있다며,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뭐라 변명해야할까? 행동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읽기들은 절대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제한된 정보나 한가지 관찰에 근거해 누군가에게 거짓말 쟁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도록 조심하라"(261쪽)

 

  책을 끝맺으며 조 내버로는 얇팍한 지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오만을 경계하라 당부한다. 우리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비언어적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대처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절대적 경전이 아니다. '왕의 자세'가 나에게는 자세 교정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거드름을 나타내는 표시일 수 있다. 행동 심리학을 절대적 좌표로 이해하기 보다는 삶에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부표로 삼아야할 것이다. 진실을 알기 힘들때, 행동 심리학을 떠올리자, 그리고 힌트를 얻자.

 

  '상대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그는 이러한 심리이다.'라는 법칙화된 절대적 진리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읽었던 '행동의 심리학'은 절대적 진리를 찾기 보다는 '대인관계를 풍부하게 해줄 지식을 얻게 되었다.'는 기쁨을 가지고 참고 자료로 활용하라 한다. 그렇다. 비언어적 행동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비언어적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나의 인간관계를 도와주는 참고자료이며, 갈피를 못잡는 나에게 경계선을 알려주는 부표로 '행동 심리학'을 활용해야겠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를 도와주는 별자리 처럼 '행동 심리학'을 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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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문지현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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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는 '책요정'이 산다고 한다. 고민이 있고, 걱정꺼리가 있는 사람이 책장 사이를 지나가면, '책요정'이 나타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보여준다고 한다.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찾아온 두통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문득 책장 사이를 지나갔다. 나의 두눈에 '자존감 대화법'이라는 책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나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책장을 넘기며, 현직 정신과 의사가 전해주는 대화법의 비밀을 살펴보았다.

 

1. 불만에서 시작하다.

  저자 문지현의 글을 읽으면서, 강한 반감이 일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소위 '공자님 말씀'이었다. '욕하지 말라', '독한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말라'라는 말은 부처님을 비롯한 성인들께서 일찍이 하셨던 말들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의문과 반감이 계속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의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데, 억울해서 울분이 터져나오는데, 혼자서 욕하지도 말라니, 말이되는가? 하다못해 담벼락에라도 욕을 해야하지 않는가? 연신 저자의 처방전에 불만이 쌓여갔다.

  독설을 하지 말라는 말에 이어서, 저자가 제시한 '좋은 부부관계 유지 비결'은 더더욱 답답했다.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술르 인정하지 않는 아내를 어떻게 인정하게 할 것인지, 그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에게 해답을 제시해 주리라 생각하고 읽었던 책에서는 즉효약을 처방해주지 않았다. 초조함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혹시, 책의 후반부에는 그 비결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

 

2. 자존감 대화의 첫걸음 - 긍정적 대화!!

  자존감 대화를 위해서, 독설을 금지하라 했던 저자는  '긍정적 표현'을 사용할 것을 당부한다. '차량파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보다는 '고객의 소중한 차를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안내에 따라 주세요'라는 긍정적 표현이 보다 효과적이란다. TV 뉴스에서 "쓰래기 무단 투기 금지"라는 경고 문구 보다는,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은 쓰래기를 버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화분을 가져다 놓았더니, 쓰래기 투기가 사라졌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데는, 추운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효과적이라는 일화가 현실에서도 드러맞고 있다.

  저자는 화가 나지만 상대에게 공손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조차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게 당신을 잘 대하도록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 공손하게 대해야한다고 문지현은 말한다. 성경에도 '뿌린데로 거두리라',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라는 물이 있지 않은가? 화가 난다고 강한 독설을 퍼붓기 보다는 침착하게 공손하면서도 부드럽게 상대를 대해야한다. 고수는 목소리를 높이는자가 아니라, 공손히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말하는 자였다.

 

3. 자존감이 낮은 자일수록 강해보이려한다.

  학교에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명품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과연 저 아이는 가정이 진실로 어려운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설명이 이책에 있다. 명품족일 명품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보다 경제적인 수준에서 약간 아래 단계에 속한느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밑바닥에 깔리 열등감이 그들을 '명품'으로 자신을 감추려하는 것이다. 명품을 입고다니는 자들은 사실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하는 불쌍한 자들이었다. 문제는 자존감이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당당히 값싼 옷을 입고 다니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려 저축하며 살 것이다. 나는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명품 그이상이기 때문이기다.

  TV에서 부모를 때리고 도망치는 패륜 아들의 뉴스가 나왔다. 그 부모는 피묻은 옷을 입고 나가는 아들에게 '아들아, 옷 갈아입고 가라'라고 말했다한다. 죽어가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의 사랑에 가슴이 미어졌다. 부모를 때리는 패륜아들의 대부분은 '성격장애'일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성격장애자'에 대한 설명이 있다.

 

  '가족을 무시하고 마구 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게 다른 가족들을 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에게 하는 막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막말과 같습니다.'

 

  겉으로 강해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너무도 허약한 사람들이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강하게 막말을 하는 사람들일 수록, 가족에게 막말을 하는 사람일 수록, 그들은 자존감이 낮은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아, 이를 숨기려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할까?

 

4. 사막을 건너는 방법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와 만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함부로하는 '폭군'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할 때, 나는 어떻게 나를 보호해야할까? 이 책에는 놀랍게도 그 대처법을 알려주고 있다.

 

  "방금 뭐라고 하신거죠"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가 맞으세요?"

  "제가 잘못들은건 아니겠죠? 다시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상대와 대면을 회피하기 보다는 당당히 그와 맞서도록 주문한다. 그렇다. 내가 그를 두려워한다면, 그는 나에게 '폭군'으로 군림할 것이다. 내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나에게 폭군으로 군림할 수 없다. 그럼, 그와 피틔기면서 싸워야할까? 문지연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기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니체

 

  니체의 통찰은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도 타당했다. 내가 '폭군'과 싸우면서 '폭군'이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폭군'과 싸우면서도 내가 '폭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니체의 탁월한 해안은 심리학에서도 빛을 발산한다.

 

5. 신이 아이들을 보낸 이유

  저자는 아이들에게 좋은 말로 강화를 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영국 작가 메리 보탐 호위트의 시를 소개한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시합에서 일등을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 열게 하고

   우리를 덜 이기적이게 하고

   더 많은 친절과 사랑으로

   우리 존재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중략)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울렸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시합에서 일등을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귀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성적에 따라서 일희 일비한다. 마치 자녀가 자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성적을 높이 받으려 태어나기라도 하는 듯이,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여기고 있다. 아이들은 "더 많은 친절과 사랑으로 우리 존재를 채우기 위해서"이 땅에 왔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족쇄로 자녀들을 자신의 아바타로 만들고 있다.

  그 다음 시귀는 더더욱 충격적이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면 안된다는 말인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사회는 암울하다. 신이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는 말은, 신이 우리를 우리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민심은 천심이기에 우리 자신이 우리를 포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하다.

 

  이 책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뜻한 말, 진실된 말로 대화하라고 외친다.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의 해결책도 '진실된 말'과 '따뜻한 말'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이다.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넘어졌을 때,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듯이, 부부싸움을 않하는 것보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어떻게 화해할 것이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은 그 힌트를 제시한다. 솔직히 직면하고, 먼저 말하기 보다는 먼저 들어주고, 진실된 마음과 따뜻한 말로 함께하라고... 이제 실천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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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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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혜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지혜에 대한 최인철의 정의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지혜란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는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이 말은, 논어 위정편에 나와있는 "아는 것을 안다고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는 공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모든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가지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한다. 자신이 보는 진리는 자신만의 채로 모래사장의 모래를 치는 것과 같다. 채 사이로 빠져나가는 보다 많은 모래들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채에 남아있는 모래들이 세상의 진리라 말한다. 최인철은 '자신만의 채'를 '프레임'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한언어를 알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알아보자.

 

1. '프레임'! 역사를 생각하다.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역사학의 용어로 환언한다면, '역사관'으로 말할 수있다. 대학을 다니며, '너의 역사관'을 갖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타인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역사관을 갖으려 노력했다. 수많은 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나만의 역사관을 확립해나갔다. 나 자신만의 역사관을 정립하면서,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나의 역사관'으로 논리적으로 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또한 수많은 사실들이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사관이라는 단어가 역사에 국한된 용어라면,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우리 생활과 보다 밀접한 단어이다. 우리의 생활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생활태도, 세상에 대한 태도가 바뀔 수 있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등의 각종 이념도 이러한 프레임 전쟁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즉, '나는 남들을 잘 알고 있는데 남들은 나를 잘 모른다.'라는 착각은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잘 드러내는 지적이다. 프레임을 이 책에서는 개인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지만, 이를 민족이나 국가의 관점으로 확대한다면, 기나기 인류의 역사속에서 벌어진, 각종 이념대립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어느 민족이나 스스로를 최고의 민족이며, 선택받은 민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타민족을 잘아는데, 타민족은 우리를 모른다라는 생각을 많이한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에 갖힌 민족들의 일반적 모습이다. 자민족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그 함정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나면 자신은 처음부터 작은 나비였다고 생각한다.' 즉 회상해낸 자신의 과거 모습은 과거의 실제 모습을 닮았다기보다 현재의 자기 모습을 더 닮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만들어진 전통',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역사학의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전통이 기껏해야 2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며, 심지어는 근대화 과정에서 창조해낸 것들이라는 사실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우리의 고유 무예라고 생각했던 태권도가 사실은 일본의 가라데와 공수도가 결합되어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글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전통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들이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말을했다. 모든 역사는 과거 그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정권들이 들어서면, 과거의 역사를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다시 쓰려한다.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국정화 계획을 예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과거를 호출하고, 때로는 과거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들이 역사에서는 흔하다. 우리가 절대적 역사 진리라고 믿는 것들도 때로는 우리가 만들어낸 프레임으로 보는 세계일 뿐이다.

 

2. 프레임 - 우리를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날카로운 이빨을 지닐 수 없게 된 존재들은 과거 자신의 이빨이 얼마나 강했는지 떠올리며 현재를 보호하려 한다.'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본다. 왕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느냐는 말은,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아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초라한 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우리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박정희 시대가 더 행복했다고 말하며, 박정희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P집회에 나가는 불쌍한 루져들! 그들이 바로 이빨빠진 늙은 호랑이들이다.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향수에 취해서 과거를 강제 인출하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과거를 강제 인출당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객관화하고, 현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들도 한때는 잘나가는 호랑이였으니까....

  '프레임은 주변의 사소한 물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의 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행동을 좌우한다.' 자신을 변화시키려면 주변의 물건을 바꾸라는 저자의 충고를 교육에도 적용시킬 수있다. 어떠한 자녀로 키우고 싶은가? 어떠한 학급을 만들고 싶은가? 자연스럽게 접촉빈도를 높이도록해보자. 예전에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물건에서도 기가 나온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기'라는 동양적 프레임으로 세상을 설명한 점이 다를 뿐, 세상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단순히 타인을 변화시키려하는 것이에서 나아가서,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내가 닮고 싶은 모습! 하고 싶은 일! 그것으로 나의 주변을 다르게 꾸며보자.!!

 

3. 프레임 -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프레임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얇지만 가장 두꺼운 지혜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지혜를 소개해보자.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가? 행복한 사람은 의미 중심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항상 의미, 이유, 목표를 생각하며 상위 수준 프레임을 추구한다. Why를 물으며, 보다 높은 시야에서 생각한다. 반면, 불행한자는 하위수준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쉬운지, 성공가능한지 등을 먼저 생각하며, How를 묻는다. 또한 행복한 사람이 '존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불행한 사람들은 '소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인생을 성취해야할 목표로 생각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현재를 희생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하고서는 허탈해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그랬다. 결국 인생이 도달하는 지점은 '죽음'이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도달점이다. 인생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 행복할 수 없다. 항상 상위 수준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은 소유하려는 목표를 갖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 과정을 중시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To have or To be! 당신은 소유를 선택할 것인가? 존재를 선택할 것인가?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유난히도 타인의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과는 많은 대화를 하기 싫다. 그가 쏟아놓는 험담들은 유쾌하기 보다는 또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평가 내용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보를 알 수 있다고 이 책은 조언한다. 정당하지 않은 비난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정당한 비판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 험담 프레임에 갖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험담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바로 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똥개의 눈에는 똥만 보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더 잔돈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예전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험사에서 비상시 도로에서 기름이 떨어졌을때, 도움을 요청하라면서 주유 써비스를 해준다.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뜰하게 다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도 황당했다. 돈도 많은 사람들이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프레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러하기에 그들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정 지혜로운 부자는 돈의 절대 액수를 중시하기 때문에 상대적 비교에 따른 푼돈이란 이름을 거부한다. 부자는 푼돈 프레임, 상대적 가치 프레임에 빠져, 100원짜리를 버리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 가치 프레임에 빠진자들은 콩나물 값을 깎을 때는 100원도 귀하게 여기지만, 10만원 짜리 물건을 살때는 100원을 깍아 주면 오히려 기분나빠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이러한 프레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부자일 수록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하라!라는 말의 뜻을 아는가? 현상유지를 하려는 우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할 때, 우리는 보다 지혜로워질 수 있다. 사용하는 물건, 서비스, 직업까지 처음 접하는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하자! 한번 사용한 써비스를 계속 불평하지 않고 이용하면, 호갱취급을 당한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 변하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의 뇌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뇌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항상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하자!

  20대에 이제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연의 아픔이 싫어서 계속 연인관계를 지속했던 어리석은 기억이 있는가? 고통이 두려워! 실패가 두려워서 주저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과감히 결정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나의 '마음의 면역체계'를 과소평가했다. 생각보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강하다. 시련, 고백거절에 대해서도 우리의 마음은 잘 견뎌낸다. 시간이 지나면 웬만한 것들은 다 사소해 보인다. 도전하자! 도전하지 않아서 후회하기 보다는 도전하고 시련의 아픔을 견뎌내자!!

 

  이 책의 마지막장은 지혜로운 사람의 10가지 프레임이 제시되어있다. 나의 삶에 많은 지침이 되어줄 것이며, 이 글을 읽는 고마운 사람들에게도 많은 지혜를 줄 것이기에 이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한다.

첫째, 의미중심 프레임을 갖아라,

둘째, 접근 프레임을 갖아라, 도전하고 실패와 처벌보다는 보상에 관심을 갖자.

셋째, '지금 여기'의 프레임을 갖자,

넷째, 비교 프레임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다섯째,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자.

여섯째,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일곱째, 주변 물건을 바꾸어라.

여덜째, 체험 프레임을 소비하라.

아홉째, 누구와의 프레임을 갖아라.

열번째,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당신도 위대한 프레임을 갖고 현명해지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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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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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에 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학생을 상담하면서부터였다. 자신의 꿈이 상담가이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고, 의미치료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상담을 하려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배워야하다고만 생각했다. 제3의 학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 관심이 높아져갔다. 과연 어떠한 책일까? 듣고 있던 팟캐스트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의 한부분이 소개될 때, 그 책을 직접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프래모 래비의 책을 읽을까? 빅터프랭클의 책을 읽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프래모 래비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했고, 증언자 문학을 남기기까지 했으나,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했던 반면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의 학문을 더욱 빛나게 갈고 닦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해주었다. 결국, 아우슈비츠에 패배하지 않은 빅터 프랭클의 책을 펼쳤다.

 

 

1. 수용소와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비슷하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나의 머릿속에는 그 수용소와 너무도 유사한 수용소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군대였다. 물론, 강약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군대에서의 생활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군대 선임과 보초를 서면서, 갑자기 선임병이 나에게 물었다. "너는 군대에 온 것 같냐?" "....." "난, 커다란 감옥에 온 것 같다. 난 내가 군인 같지가 않다." 선임병이 말했던 그 말은 내가 느끼고 있었던 감정과 유사했다. 군대는 거대한 감옥과 같았고, 나의 모든 생활은 통제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모습도 너무도 많이 변했다. 하나같이 먹는 것에 집착하고, 이 군대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다며, 날짜를 셌다. 처음에는 달로 세고, 그 다음에는 날짜로 셌다. 고참병이 신참이 오면 몇일 남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신참은 "아주 많이 남았습니다."라고 외친다. 선임병이 웃으며 말한다. "야! 그 날이 오냐? 나라면 자살한다.!!" 까마득히 남은 군대생활을 조롱하는 것이 선임병들의 낙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빅터 프랭클이 말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보이는 수용소 사람들의 모습과도 유사했다. 먹는 것에 집착하고, 이 기약 없는 생활이 언제 끝날지를 궁금해한다. 단지 다르다면, 군생활은 언제 끝날지를 알 수 있다면, 수용소 생활은 그 날짜를 모른다는 점이다. 훈련병이었을 때는 더욱 수용소 생활과 유사했다. 훈련병 시기에는 성욕도 없었으며, 훈련소 입소 후, 1주일 동안은 대변을 보지 못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훈련소 생활에서 관심은 생존과 훈련소 생활을 마치는 것 뿐이었다.

 

그 고통 속에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저녁 날짜를 세는 것 외에도, 누군가에 대한 정신적 의지였다. 애인이 있는 사람은 애인이 보내주는 편지에 집착하고, 나처럼 애인이 없는 사람은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의지처였다. 그 의지처가 배신을 하며 탈영으로 이어진다. 특히 애인이 배신을 하면, 혹시나 탈영하지 않을까? 간부들의 상담이 이어진다. 밖에서는 이해가지 않는 일들이 군대에서는 현실로 다가온다.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희망으로 삼은 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것과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다시 세상에 내놓겠다는 열정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의미가! 그를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를 지지해주었다.

 

군대의 생활이 고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소소한 희망과 재미가 있었다. 그 안에서 신참이 보이는 엉뚱한 행동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으며, 주말에 종교행사에 가서 먹는 초코파이의 맛은 달콤했다. 크리스마스날 보았던 연극은 너무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용소에서도 유머가 있었다. 유머와 예술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도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남겼듯이, 예술과 유머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게하는 윤활류였다. 반대로 '유머와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수용소에서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 조차도 그속에서 사소한 행복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나도 사회에서는 이름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던 봉아지염에 걸려 의무반에서 누워지냈다. 그러면서도 그 사소한 휴식에 행복감을 느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행복함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적응력과 생존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닫게 된다.

 

 

2. 강신주, 신영복 그리고 유발 하라리를 생각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강신주와 신영복 그리고 유발 하라리가 생각났다. 그들의 말과 빅터 프랭클의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들이라면 빅터 프랭클의 말에 어떠한 해설을 남겼을까?

 

강신주는 어느 강좌에서 사랑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자는 자살하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이 보살펴야할 금붕어라도 있는자는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반면 빅터 프랭클은 미래로 부터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면, 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강신주와 빅터 프랭클의 말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강신주는 자살을 방지하는 열쇠를 '사랑'으로 보았고, 빅터 프랭클은 '기대' 혹은 '희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자신의 사랑하는 것!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일과 동물, 그리고 그 무엇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희망은 삶에 대한 의미를 갖게 할 것이다. 강신주의 말과 빅터 프랭클의 말은 표현이 달랐지만, 하나의 이데아였다. 단지 이데아를 다른 말로 표현했을 뿐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고 신영복 교수가 생각났다. 베트남 전쟁 포로로 끔찍한 경험을 당한 사람이 포로생활을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며, '이로은 점이 있다.'라고 선언하는 모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쓰고, 감옥에서 읽은 고전을 바탕으로 '강의'라는 책을 쓴 신영복 교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같은 감옥생활 혹은, 포로생활을 하지만, 어느 사람은 현실에 굴복하고, 어떤 사람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감옥! 그것도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 세월을 갖쳐 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 사람들!! 신영복 뿐만이 아니었다. 고인이 된, 김대중 전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 또한 감옥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의미와 희망을 잃지 않으려했다. 그리고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감옥에서 만들었다.

 

빅터 프랭클은 지금의 정신의학이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고, 정신질환 치료를 하나의 테크닉으로만 간주'한다고 개탄한다. 정신의학은 '환자를 병 너머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라'고 절규한다. 빅터 프랭클의 말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위대한 정신의학자의 진리이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빅터 프랭클의 말에 동의할까? 유발 하라리는 그이 저서'호모 데우스'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가 신성시하는 인본주의도 미래사회에서는 도전을 받을 것이라 주장한다. 최신 뇌과학을 근거로 인간의 정신도 뇌활동의 일부분이며, 인간이 결정하기 이전에 이미 뇌에서 결정이 내려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절대시하는 인본주의는 설곳이 사라진다. 빅터 프랭클의 절규를 최신 뇌과학은 뇌 신경세포의 상호작용에 불과한 것이라며 인간의 마음을 하나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빅터 프랭클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과거 종교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진리를 볼 수 없도록 했듯이, 과학이라는 또하나의 거대한 종교가 인간의 참된 가치를 없앨 수 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인간의 참된 의미를 찾아야한다.

 

3. 현실을 생각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들은 곧바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다.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버티도록 했던 정신적 지주가 사라졌다. 사랑하는 아이들도, 사랑하는 아내도 더 이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은 파탄을 맞이한다.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 친구는 귀리를 짖밟으면서 '자신은 엄청난 고통을 받았는데, 이까짓 귀리를 밟는 것 정도를 가지고 왜 그래?'라고 항변한다. 빅터 프랭클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나의 폐부를 찔렀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 더 지독한 시집살이를 시키거나, 선임병에게 많이 맞은 자가, 선임병이 되어서는 더욱 가혹한 폭력을 후임병에게 시킨다. 폭력의 대물림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병든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고, 심리학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 치유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집단에게도 나타나고 대물림된다. 팔래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유대인들의 가혹한 행동은,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음으로써, 폭력적 행동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고통이, 역사적 트라우마가 되어 대물림되고 있다. 그들의 피의 보복을 치위하기 위해서라도, 빅터 프랭클의 책을 그들이 읽어야한다.

 

빅터 프랭클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우울증, 공격성, 약물중독'이 널리 퍼져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실존적 공허함에서 나온 것들이라 진단한다.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면, 많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빅터 프랭클의 지적은 비단,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도 '우울증, 공격성, 약물중독'이 노출되어 있다. 단지 심각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실존적 공험감을 없애줄 방법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생의 목표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목표를 이뤄가 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도록해야한다. 이러한 점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알 수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네글자로 줄이면 '진로지도'이다.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진학해야할 학과를 선택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고등학교에서 진로와 관련된 책을 읽고, 관련된 동아리활동 및 교과활동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학생을 평가하여 선발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대입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학생부종합전형이 있는 집 자식들을 합격시키는 불공정한 제도라고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기사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많이 든다. 보수 매체들은 왜? 학생부 종합전형을 비난하는 것일까? 분명, 수능과 논술을 비롯한 여타 대입제도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사교육비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느라, 학교현장은 예전에 비해서 분명 내실이 있어졌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책을 한권이라도 읽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렇다면 왜? 보수매체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난하는 것일까? 혹시 사교육비을 더 쓸 수 있는 자들을 위한 교육제도를 그들은 원하는 것은 아닐까? 수능처럼 단순히 성적순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 누구에게 이로울까? 사교육비를 많이 쓸 수 있는 자들이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수능성적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이러한 인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시대변화의 요청 속에서 학교현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현명한 대중들이 무엇이 21세기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는데 더 훌륭한 제도인지를 판단해야할 것이다.

 

'스타인 호프의 도살자' J박사를 아는가? 그는 많은 정신병자를 가스실로 향하게 했다. 그런데 그는 모스크바의 루비앙카 감옥에서 죽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은 그가 죽을 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차원에 도달해서 생을 마쳤다고 증언한다. 지옥 같은 감옥이 그를 성자로 만든 것일까? 지옥 같은 감옥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스타인 호프의 도살자'는 성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한국의 현실에도 '스타인호프의 도살자'에 비견될 수 있는 고문기술자가 성직자가 된 경우가 있다. 감옥살이를 하고, 성직자가 되어서는, 자신이 다시 태어나도 그일을 할 것이며, 그일은 범인과 두뇌싸움을 하는 예술이었다고 증언한다. 왜? 한국의 '스타인 호프의 도살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차원에 도달'하지 못했을까? 한국의 감옥이 루비앙카 감옥에 비해서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J박사보다 한국의 '스타인 호프의 도살자'가 인간성이 더 떨어지기 때문일까?

 

'역설의도기법'을 아는가? 글씨를 흘려쓰는 사람에게 자신이 글씨를 얼마나 엉망으로 쓰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마음 먹고 글씨를 쓰라 처방했더니, 그사람의 증상이 사라졌다. 역설의도기법은 '도덕경'의 한구절을 떠올리게했다. 그릇은 비움으로써 그 쓰임이 있다. 받으려면 주고, 집으려면 펴라! '도덕경'의 역설적인 이 구절이 빅터 프랭클의 '역설의도기법'과 너무도 유사했다. 집착을 버리자. 멈추면 보이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니까.....

 

4.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 - 창조, 사랑, 시련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에는 '창조', '사랑', '시련'의 방법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의 범위를 사람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일, 동물 등 보다 넓힌다면, 삶의 의미를 찾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사랑'일 것이다. 다양한 시련을 이기는 힘도 사랑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책에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에 관한 글들이 적혀있다.

 

"왜 살아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니체

 

니체의 이 말은 의미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잘 말해준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환경에 굴복하기도 하지만,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하게 저항하고 맞서 싸울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현실에 굴복할 수 있으나, 강한 정신력과 삶의 의미는 가혹한 환경을 이겨 내게 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 결국, 가혹한 현실속에서 절망을 택할 것인가?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현실에 당당히 맞설 것인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현실을 탓하며 절망을 선택한자들은 어떻게 될까?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결국 절망 속에서 스스로의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급격히 저항력이 떨어져, 병으로 죽거나, 현실적인 쾌락을 택하며 죽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선택해야할까? 한비야의 책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서술되어 있다. 어느 부족에게 씨앗을 주고, 다른 부족에게는 씨앗을 주지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아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지만 씨앗을 받은 부족은 씨앗이라는 희망덕택에 아사자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가혹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기대' 혹은 '희망'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훌륭한 비젼을 제시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나는 어떻한 비젼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해본다.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탈출을 결심했다가 자신이 보살펴줄 사람이 생기자 이를 포기한다. 친절한 독일군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며 사람들을 수용소 밖으로 실어 날랐을 때, 자신의 명단이 없어 항의했다. 그러나 수용소 밖으로 이송된 사람들은 대부분 불에 탄 채로 발견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천운으로 살아 남아 감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라는 제3의 학파를 만들어 우리의 인생에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만약 그가 이송차량에 탑승했다면 그의 의미치료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의미 치료'라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우리에게 내리 쬐고 있다. 나의 마음에도 그 빛이 비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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