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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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강력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은 진지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였다. 첫문장에서부터 작가의 남다른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아버지 초상을 치루는 삼일 동안의 일을 담담하게, 때로는 냉철하면서도 가슴 뜨겁게 그린다. 저자 정지아는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그러하기에 그녀가 소설에서 그리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과 용서는 우리 이야기이기도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픈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보통 웃음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에서 나온다. 이 책 속의 아버지는 자본주의가 승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젠가는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이상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다. 부인과 싸울 때에도 사회주의 논리를 들이댔다. 방물장수 여인을 좁디 좁은 자신의 집에 재우려하자 어머니가 성화를 냈다. 그러자, 아버지로 어머니를 제압했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는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했던 민중이여, 민중!"

 

이글을 읽을 때 웃음이 튀어나왔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느껴졌다. 현실에 이상의 공간을 옮겨 놓으니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는 말이 있다. 방안에서 책만 읽어 얼굴이 하얀 선비가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경우에 쓰는 말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전형적인 백면서생이었다. '공산당 선언'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이상을 굳게 믿었다. 농사도 '새농민'을 탐독하며 '새농민'이 하라는데로 했다.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리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고 책의 뜻을 취했다면 책은 버려야한다. 책의 본질을 나의 가슴속에 담아 두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현실의 길을 모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현실과 괴리된 책 속의 이상에 얽매여 살아간다. 세상을 잘못 만난 자신의 불운을 탓하면 한세상을 한탄한다. 책속의 아버지는 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책의 노예가 된 전형적인 백면서생이다.

그래도 소설속의 아버지는 인텔리이다. 나는 그런 인텔리 아버지를 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학교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도 동생들은 교육시키겠다며 도시에서 노동을 해서 두 동생을 공부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배우지 못한 형에 대한 무시였다. 자신이 동생을 어떻게 교육시켰는데 자신을 무시하냐며 술을 마시며 명절 분위기를 공포분위기로 만드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주경야독하며 배우려하지 않고, 동생을 가르쳐 덕을 보며 살겠다는 얄팍한 아버지의 생각에 몸서리가쳐졌다. 소설 속 고아리는 어쩌면 그래도 부러운 인텔리를 아버지로 두었다.

아버지 고상욱은 동네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처럼한다. 아니, 자신의 일을 제처두고 동네 머슴이 되어 일을 한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고 혁명을 꿈꾸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버지 고상욱이 내뱉은 말은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나의 생각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민심만 안잃으면 난세에도 목숨은 부지허는 거이여"

 

그렇다.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빨치산 출신의 빨갱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머슴이 되어야했다. 동네 머슴이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그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내기를 해야하는데도 이를 내 던지고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그의 투쟁이 보엿보였다.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겠다는 그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자라는 생물학적 특징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속의 주인공 고아리는 하동댁 궁둥이를 뚜딜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아버지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보통 남자였다. 아니,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남녀가 이성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대중강연에서 공지영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영화화하면서 배우 강동원을 직접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들뻘되는 강동원을 보면서 자꾸 눈길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인데 인간의 본성을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소유욕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없애려했던 사회주의가 역사에서 퇴출되지 않았던가?

책을 읽는 내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버지 장례식에 군수, 국회의원, 총장, 학장, 학과장의 화안이 답지했다. 심지어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가 빨치산 아버지를 고기 몇근 들고 찾아 오기도 했다. ? 그들은 빨치산을 존경하는 것일까?

대학시절, 어느 단과대 학우가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그 당시 치열하게 투쟁했던 빨치산의 모습을 보고 각성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나는 빨치산들은 '민족'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보지 못하고 이념의 노예가 되어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들이댄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내말에 할말을 잃은 학우는 그후로 나와 관계를 끊었다. '이념'이라는 허상에 홀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아귀다툼을 하는 자들을 과연 긍정할 수 있을까?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정지아는 말한다. 그와 비슷한 말을 나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외숙모께서 하셨다. '죽은자는 저 세상으로 떠나면서 자신에 대한 나쁜 감정까지 가져간다.' 아버지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면서 무던히도 그를 원망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 보내자, 그가 좀 더 살아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꿈틀거렸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산업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정부는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다. 농사를 지어도 항상 적자일 수밖에 없는 산업정책과 산업 구조 속에서 힘든 노동을 잠시 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은 한잔의 술이었다. 농촌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알콜 중독이 되어갔다. 간경화로 이 세상을 뜬 사람이 우리 마을에는 많다. 그 한사람이 나의 아버지이다. 지긋지긋한 술을 좋아한 나의 아버지는 술을 핑게로 가족에게 상처를 안겼다. 담석증으로 쓸개를 떼어냈는데도 아버지는 꿋꿋하게 술을 드셨다. 어머니의 성화를 피해서 몰래 소주를 사다가 숨겨 놓고 먹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저자 정지아도 아버지가 남긴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그녀를 옥죄었다.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소설로 작품활동을 한 그녀가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쓴 소설 같다. 정지아는 조문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떠올린다. 그 과정을 통해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화해한다. 나도 그랬다. 애증이 교차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나보내며, 못난 당신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절규하면서도 그가 그리운 것은 당신에 대한 용서를 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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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 -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수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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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라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아름다운 표지 때문이다. 동화같은 몽환적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답게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저자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듯했다. 

  저자는 치유로서 글쓰기를 한 사람이다. 대인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고통의 긴 터널을 뚫고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는 자신이 어떻게 그 긴 터널을 뚫고 글을 썼는지를 고백한 고백서이자, 글쓰기 안내서이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이수아 작가의 성격이 나와 닮았다. 물론, 이수아 작가가 그 증상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 고통이 심했기에 고통에서 벗어나려 책을 붙잡고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두권의 책을 낳았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프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치열하게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수아 작가가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 말을 이수아 작가는 여러번 강조한다. 그녀는 매일 빠듯한 시간을 쪼개며 글쓰기에 매진하며 천여편이 넘는 에세이를 창작했다. 그녀는 한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수많은 글을 쓰면서 근력을 기르고 있었다. 많은 글쓰기 책들이 강조하는 글쓰기 비법이있다. 


일단 쓰라! 

쓰고 나서 고쳐라! 


  이수아 작가는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나답게 살기 위한 길을 걷게 되었다. 공지영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서 사형수들의 수기를 여러편 읽었다. 그러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범죄에 반성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기가 중반을 넘기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론부에서는 반성과 후회를 적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 감정의 분출이 끝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글쓴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병이 치유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수아 작가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대인공포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고쳤다. 글쓰기 근력을 길러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일기와 글쓰기는 그녀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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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4-05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좋아하면 결국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ㅎㅎㅎ

강나루 2023-04-05 21: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데, 책읽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4-05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간혹 감정이 상하는 경우에 간단한 일기 같은 것을 쓰면서 안좋았던 감정들이 어느정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3-04-07 13:02   좋아요 2 | URL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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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엘의 '1984'와 대비되는 미래사회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가족도 고통도 없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하는 사람도 없으며, 가족 때문에 상처받을 사람도 없다. 물론, 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행복감과 푸근함도 없다. 대신 '소마'라는 해롭지 않은 마약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조건 반사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일을 즐겁게해낸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책은 콘베어밸트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자본주의의 극단적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와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에 대한 민낯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도 보였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수호자 중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통치자와 전사 계급에 해당하는 수호자, 평민 계급인 생산자가 그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지도층인 '알파', 증산층 '베타', 하류층 '감마', 단순 노동을 담당하는 '델타''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보다 계급이 보다 세분화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가족을 이루지 않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 플라톤이 우수한 남성과 우수한 여성이 성교하도록 유도하고, 열등집단이나 장애아는 유기되어 죽도록 방치했다면, '멋진 신세계'는 태아 때부터 영양 공급을 조절하여 우수한 계급과 열등한 계급을 조절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람들은 고통이 스며들 때마다 소마를 마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따른다. 플라톤이 상상한 이상 국가를 '멋진 신세계'는 첨단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보다 구체화하고 보다 안정된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대공황이 불어닥친 1929년을 지나 아직도 대공황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대공황을 겪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1932년에 출간된 '멋진 신세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 '버나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마르크스'에서 가져온 듯하며, 그와 잠시 교제했던 '레니나''레닌'의 여성화 표현으로 보인다. 주인공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며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사회에 가서 ''이라는 야만인을 데려온다. 포디즘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이라는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야만인 ''이 본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촉감 영화를 보며 쾌락의 절정에 이르며, 파트너를 건너뛰며 새로운 쾌락을 즐긴다. 무료함을 느낀다면 소마를 마신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탄신일을 기념하며 공동체 찬가를 부른다. 콘베어밸트에서 필요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듯, '런던 중앙 인공 부화 조건 반사 양육소'에서 쌍둥이들을 대량생산한다. 아기들에게는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시 교육법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그들은 늙음과 죽음도 모른다. 호르몬제와 소마 덕분에 60세까지 젊음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이 없으니 애도해줄 사람도 없다. 야만인 ''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울분을 터트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D 사이의 C이다.'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멋진 신세계는 B (Birth, 탄생)D (Death, 죽음)를 빼앗아 갔다. 그로인해서 C (Choice, 선택)도 할 수 없게 했다. 죽음을 직면하지 못한 신세계인들은 각성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직면한 야만인 ''은 각성했다. 그리고 소마 배급을 받는 그들에게 달려가 각성하라고 울부짖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소마 배급을 받으려 늘어선 인간들을 보면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인간들이 생각났다. 교주가 예수라고 세뇌 시키고 가스라이팅을 통해서 복종을 주입시킨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교주를 위해서 나체로 교주를 영접한다. 교주가 원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교주의 방에 밀어 넣는 신도들의 모습에서 멋진 신세계가 보였다. 수면시 교육법과 조건 반사 훈련으로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멋진 신세계와 사이비 교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행복해하는 불쌍한 신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야만인 ''은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만난다. 재미있는 것은 총통의 이름이 '무스타파'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 갈리폴리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을 구한 전쟁 영웅이자,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며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이 총통의 이름이라니! 총통 무스타파는 논리적으로 야만인 ''과 대화한다.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일라이트이다. 완벽한 쾌락이 주어진 사회에서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가? 성공만이 행복을 약속하며, 돈이 곧 성공을 뜻한다고 주입시키는 우리사회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바라보며,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길이 사실은 모두 불행해지는 집단체면의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혹은 그것을 알지만, 선듯 야만인 ''처럼, 자연을 선택한 '자연인'처럼 선택지에 없는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한다. 닭장에 갖힌 닭은 닭장에 불만을 품지 않고 맛있는 사료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혹시, 우리는 집단 체면에 걸려 현대 물질 문명의 닭장에 갖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닭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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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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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다. 그리고 그 전성기가 지나고 나서는 긴 노쇠기가 다가온다. 이 소설의 주인공 노인은 그러한 긴 노쇠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를 따르는 꼬마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노인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다. 엄청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물고기를 잡았다. 그러나 그 물고기를 노리는 다른 무리가 있었다. 바로 상어떼이다.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며 지쳐 스러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의 몸은 늙었으나 물고기 잡이에 대한 열정은 아직 늙지 않았음을 몸으로 증명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헐리우드 액션영화처럼 화려한 볼거리와 극적인 이야기 구성은 없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에는 인간의 냄새가 난다.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우고 싶은 한 남자의 바램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사투!! 그리고 다음 세대를 뜻하는 소년의 응원!! 

  이 소설을 20대에 읽었다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에 극적 이야기 구성이 없기에 재미없는 소설로 치부했을 것이다. '에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네!'아마, 이렇게 중럴거렸을 것이다. 아직,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맛을 음미할 정도로 인생을 많이 살지는 않았다. 중년의 나이에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시기가 되어서야 어렴풋하게 소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전에는 화학조미료가 없기에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없다면 맛을 음미할 수 없다. '노인과 바다'를 너무 빨리 읽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다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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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7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이거 10대때 읽었는데 좋았는데요. 근데 왜 좋았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ㅎㅎ 아마 지금 다시 읽는다면 강나루님처럼 좀 더 깊은 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겠죠. 나이에 따라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지는 것도 역시 독서의 묘미인거 같습니다. ^^

강나루 2023-02-18 09:24   좋아요 1 | URL
그럴수도있겠네요.
근데 저는 청소년시절 읽었던 명작중에서 그 깊은 의미를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이 있어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리커버 에디션)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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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브라이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부분의 지식을 풍부하면서도 쉽게서술해서이다.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 등의 다양한 주제를 유럽 그 현장에서 서술해주길 기대했으나, 책에는 과장법들이 난무했다. 때로는 이러한 과장법이 해당 지역에 대한 불쾌한 선입견을 갖게할 위험성도 존재했다. 때로는 이스탄불을 비롯해서 유럽 곳곳에서 겪었던 다양한 불쾌한 경험들의 나열을 읽으면서 여러번 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여행은 원래 고생을 동반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과 낯선 사람을 만나서 고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그 고생을 줄일 뿐이다. 곳곳에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서 서술된 과장된 표현은 오히려 불쾌감을 강하게 풍긴다.

  빌브라이슨의 과장된 미국식 유머 중에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표현도 있다. 


  "신이 터비를 세상에 내놓은 유일한 이유는 다른 아이들에게 때릴 상대를 주기 위해서였다. 여자애들도 터비를 때렸다. 터비보다 네 살 어린 아이들도 터비를 때렸다. 잔인하게 들리고 또 실제로도 잔인하지만, 터비는 그래도 싸다."-121쪽


 '신이 터비를 세상에 내놓은 유일한 이유는 다른 아이에게 때릴 상대를 주기 위해서였다.'라는 표현은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선동적 표현이다. 불쾌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빌브라이슨의 글은 지금의 기준으로 살펴보면 몹시 불쾌하고 비윤리적인 표현이다.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으며 한가지 소득이 있다면, 선진국 유럽의 허상을 깼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굶주린 아이들이 떠오른다. 유럽이라는 단어는 선진국의 고풍스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실상을 일반적인 이미지와 너무도 다르다. 

 빌브라이슨이 스톡홀름에서 목격한 유럽의 현실은 너무도 추했다. 술에 취해서 노상 방뇨하는 남성과 아무데나 버려진 쓰레기들, 다음날 기계가 와서 청소를 했으나 제대로 쓰레기를 수거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바로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청소한 의미가 사라졌다. 빌브라이슨은 돈이 없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다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헌신'하는 유럽에 와서 현실을 보았다. 빌브라이슨은 유럽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일지 모르지만 공중도덕은 선진국이 아니었다. 

  충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마 보르게제 주변 공원을 거린다가 빌브라이슨은 노상 배변을 하고 있는 남성과 눈이 마주친다. 빌브라이슨에 의하면 프랑스와 벨기에서는 고속도로 옆에서 오줌을 누는자를 발견할 수 있으며, 18세기 프랑스 귀족 남녀는 남녀가 화장실에 같이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남녀가 다 같이 노상 변소에 가기도한단다. 화장실에 자신이 쓴 휴지를 보는 것도 역겨워하는 그들이 노상배변을 하고 남녀가 같이 화장실을 쓴다. 페이스북에서는 소변을 보고 있는 백인 남녀가 영어로 대화하는 짤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그들의 화장실 문화는 전혀 선진적이지도 고상하지도 않다.

  로마는 문화재로 유명하지만, 소메치기가 많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조상이 남긴 문화재 덕에 먹고사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문화재 관리는 잘하고 있을까? 신혼여행을 로마로 갔을 때, 포로로마에 수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역사 인식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문화재를 복원해서 본래 모습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더 선진적인 문화재 관리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문화재 보존 수준은 비참하다. 문화재 보수와 유지에 제대로 돈을 쓰지 않아 유럽 미술품 도난의 80%가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다. 못난 후손들이 조상의 문화재를 망치고 있다. 조상의 문화재 덕에 먹고사는 그들이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문화재를 망가뜨리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벽화는 초기 수도사들이 예수의 발부분을 망가뜨리면서 그 곳에 문을 냈다. 어쪄면 이탈리아인들은 제2의 '최후의 만찬'을 훼손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모른다.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은 유럽 선진국의 고풍스러운 이미지 속에 숨겨진 빈민가의 고통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탈리아 나폴리 도심에는 7만 가구가 욕조도 상수도도 창문도 없는 집에 대가족 15명이 단칸방에 살고 있다. 범죄율이 상당히 높으며 그중에서도 차량 절도는 매년 29,000건이 일어날 정도로 많다. 명품의 나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현실은 전혀 명품적이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명품의 이미지는 사실은 만들어진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빌브라이슨에 대한 기대가 컸던 나는, 그의 유쾌한 필법으로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에 대해서 풍성한 정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빌브라이슨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주력하지 않았다. 유럽을 스치고 지나가며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의 과장법을 유감없이 사용하며 때로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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