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눈물 한 방울 -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2019~2022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죽음을 대면할 때 숙연해진다. 아무리 커다른 권력을 가진자라도, 아무리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시대의 지성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왔던 이어령도 죽음을 대면하며 한들자 한글자 메모를 남겼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던가!(Life is C between B and D) 즉, 인생이란 '삶,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선택(Choice)'이라는 뜻이다. 삶과 죽음의 선택 속에서 이어령은 메모지와 펜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적는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며 죽음을 묵묵히 대면하는 길을 선택했다. 암과 싸우기 보다는 암을 친구로 대하기로 선택한 그의 마지막을 드려다보자.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 제목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어령은 제목을 '눈물 한 방울'이라 정한 이유를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바로 눈물, 즉 박애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을 위한 눈물이 아닌, 이웃을 위해서 흘릴 수 있는 사랑의 눈물이 필요한 시기임을 이어령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함에 동의하지만, 이어령이 '눈물 한 방울'이라는 제목을 자신의 마지막 노트의 제목으로 정한 것은 지난날의 회한과 대면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닐까? 

 이어령은 다양한 사물을 통해서 사유를 하고 이를 기록했다. 이책의 초반부에는 '늙다와 낡다'라는 글이 있다. "늙은이여! 쫄지마.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도 손톱 발톱이 부서져도 두 손만 있으면 만세를 부를 수 있으면 천세 만세 살 수 있다."라며 늙은 자신에게 '천세 만세 살 수 있다.'며 희망의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글은 늙고 병들었기에 천천히 죽음에 다가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위로의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밤길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뒤쫓아 온다."-33쪽


  이어령은 '밤'과 '검은 그림자'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승 사자가 찾아올 듯한 '밤길'과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의 '검은 그림자'가 두려웠던 것 같다. 심지어는 불을 켜 놓고 잠을 자기까지 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의연히 맞서려 몸부림치는 이어령의 내면이 읽혀진다. 


  "죽음은 무지개인가 보다.  ..... 하늘로 들어가는 문 찬란한 오색 무지개"-39쪽


  무지개를 보며 어떤이는 희망을 본다. 또 어떤이는 현실에 뿌리 두지 못한 허황된 생각을 본다. 그런데, 이어령은 '하늘로 들어가는 찬란한 문'을 본다. 누구나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이라는 길을 보면서 어떠한 길에 들어설지 두려움이 밀려온다. 죽음에 들어가는 문이 찬란한 오색 무지개라 말한 이어령은 죽음에 임해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이 책의 곳곳에 죽음에 관한 말들이 흩어져 있다. 바람 한점 없는 날에도 저자의 마음은 흔들린다. 살고 싶어서..... 그러면서 신에게 일말의 시간을 달라며 애원한다. 


  "하나님 제가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은 저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169쪽


  책을 꺼낼 힘도 없어 전자 책으로 글을 읽는 이어령! 조금 늦게 신의 곁에 가더라도 용서해 달라는 그의 글에서 책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향기가 난다.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새책을 주문한다. 그리고 다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새롭게 읽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도 사랑하는 책과 이별해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책들과도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 되어서 최고 사령관이 부대의 사열을 하듯 서가의 구석구석을 돌았다."-195쪽


  즉음을 맞이하는 2022년! 그는 "여기에 남은 여백 만큼만 살게하소서"라며 절대자에게 부탁했다. 이제는 여백이 남지 않았는지 절대자의 허락을 받지 못했는지. 책을 사열하며 이별을 고한다. 그에게는 읽어야할 책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기 위해서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절대자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몸무게는 쭉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23일 밤에 마지막 글을 남긴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라는 글을 남기고 펜을 내려 놓는다. 죽음에 앞서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었던 이어령은 그렇게 쓰러져갔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2022년 2월 26일 절대자의 곁으로 간다.


 깊은 사유의 내공을 가진 그의 지혜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서글프지만, 죽음을 담담하게 직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마지막까지 책을 사랑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일평생 독서를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어령 선생 처럼 길을 떠나야한다. 그 길을 담담하면서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을 통해서 확인했다. 이어령 선생이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김제동과 전문가 7인이 전하는 다정한 안부와 제안
김제동 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어의 마술사 김제동이 7인의 석학과 만났다. 물리학자 김상욱, 건축가 유현준, 천문학자 심채경, 경제 전문가 이원재, 뇌과학자 정재승,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대중문화전문가 김창남!!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현명함을 김제동이 쉬운말로 끄집어 냈다. 7인의 석학중에서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대중강연과 책으로 익히 잘알고 있었던 분이다. 또한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이정모 박사는 팟캐스트를 통해서 잘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던 분들의 인터뷰들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 전혀 알지 못했던 분들로 부터 받은 감동과 깨달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 건축가 유현준에 대한 선입견을 제거하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TV를 통해서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후보와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현준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났다. 그도 별수 없이 토건족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구나!! 독서 목록에 있었던 유현준 교수의 책을 목록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된 유현준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그러한 인물이 아니었다. 

  유현준 교수는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만 골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시 생태, 인간관계, 사회 생태 등 우리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인문학자였다. 유현준 교수는 '공유'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나의 것' 즉 '내것'이 생겨야 사람들은 애착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집이 생겨야 애착을 갖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1950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프루이트아이고 아파트 33개동을 만들어 임대해주었다. 그런데 2년만에 슬럼화되어 폭파시켜버렸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다. 

 이에 대비되는 사례도 있다.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에 80m2 큰집절반을 지어 분양했다. 자신의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집을 가꾸기 시작했다. 애착이 생긴 그들은 주변에 관심을 갖으면서 공동체를 형성했다. 내것에 더 애책을 가지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철저히 이상주의에 기초한 정책들이 실패한 사례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후보는 임대주택을 지어 주택난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보수 후보는 연예 프로에 나와서 자기집을 갖는 것이 더 났다며 우회적으로 진보후보의 공약을 비판했다. 그때는 이성적으로 지금의 주택난을 해결하고,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많은 임대주택을 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그만 땅이라도 자신의 것을 갖길 원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무지했다. 보수 후보가 당선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진보후보가 주거공약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을 것이다. 

  유현준교수는 지방정부에 보다 많은 권한을 주어 다양성을 키워야한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를 분양하더라도 보다 다양한 모습의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자기만의 독특한 가치가 없어요. 내집의 가치는 결국 집값밖에 않남는 세상이되는 거죠"라는 유현준 교수의 말에 지금의 주택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다. 개별화와 다양성을 중시되는 쪽으로 교육의 논의가 옮겨진지 오래다. 성적에 따라서 한줄세우기를 하기 보다는 각자의 개성과 창의성을 고려해서 여러줄 세우기를 하자!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것이 학생부 종합전형이다. 각학교와 학과에 맞는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하여, 성적으로 한줄세우기하는 병폐를 없애겠다! 물론 이상과 현실을 다를지라도, 그 의도만큼은 진정성을 알아주어야한다. 유현준 교수는 아파트에도 다양성을 도입하여 집값으로 한줄세우기 보다는 개성으로 여러줄을 세우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바로 우리의 주택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그가 제시했다. 

  탁월한 건축가이자, 인문학자이 그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날을 그대한다. 진보 후보들도 유현준 교수의 말에 귀기울이기를 기대한다. 


2. 물리학자에게서 인문학의 향기를 맡다!!

  소위 이과생들에게서 인문학의 향기를 맡기 힘들다는 편견이있다. 더욱이 물리학자가 인문학을 말한다면 어쩐지 어색해보인다. 그러나,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인문학의 향기를 보여주었다. 

  김상우 교수와의 대화는 찬물로 라면 끓이기로부터 시작했다. 물이 끓을 때 면과 스프를 넣어야할까? 찬물을 넣고 바로 면과 스프를 넣어야할까? 실생활과 밀접하면서도 재미있는 이 실험의 결과는 찬물에 면과 스프를 넣고 끓여도 라면의 맛에는 별 영향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상욱 교수의 매력은 그 다음부터 이어졌다. 

  김상욱 교수는 데릭 시버스 동영상을 소개하며 첫번째 움직임이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첫번째 팔로우가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어야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라를 건국하더라도 2대, 3대가 잘 나라를 다스려야 그 나라가 잘 유지될 수 있다. 견훤의 후백제, 유비가 세운 촉나라도 2대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지 않았던가! 첫번째 팔로우가 생겨나고 둘이 셋이 되면 하나의 커다란 파동이 된다. 사회 변화의 움직임도 이와 같다. 금모으기 운동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첫번째 팔로우가 없었다면, 그 운동이 커다란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팔로우십이 있어야한다.!! 김상욱교수의 강의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김상욱 교수는 갈렐레오의 지동설을 설명하면서, 지동설이 옳다면 우리는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지구 위해서 살면서 운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질문한다. 그 해답이 F=ma라는 뉴턴의 공식으로 이어지고,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는 "절대 움직임이란 무엇인가", "움직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으로 이어진다. 단숨에 물리학의 역사를 쉽게 설명하는 김상욱교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세계사를 설명할 때도 참조해야겠다. 

  김상욱 교수는 인공지능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법을 허에서 찾는다. 빌허!! "우리의 의미나 가치 자체가 상상에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지켜낼 수 있다."라는 김상욱 교수의 말은, 인공지능과 경쟁하려 하지말고 인공지능이라는 말에 올라타라는 이어령 교수의 말과 상통한다. 인공지능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가 길러낸다면 인공지능 시대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일 수 있다. 

  고수는 궁극의 지점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김상욱 교수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인문학자의 혜안이 느껴진다. 물리학이라는 창으로 인문학을 바라본 느낌이다. 


3. 기본소득에 대한 편견을 없애다.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아이디어 쯤으로 알고 이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 이원재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이라는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했다. 사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여하는 나의 몫을 찾는 시스템이 기본소득이었다.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낸다할지라도 인생의 소득 그래프에서 마이너스구간에 해당되는 생애초기와 노년기에는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기본소득은 이익이다. 

  기본소득이 마련된다면 삶에 안정감이 갖춰진다. 여유를 갖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창조적인 일에 자신의 정열을 쏟을 수 있다.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풍부한 창조적 콘텐츠를 마련하게 해줄 것이다. 기본소득은 인간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인간 존엄성확보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가 줄어가는 사회에서 허(창의성)를 발휘할 수 있는 밑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향해야할 길이라 할 수 있다. 



  김제동은 대화 중간중간에 법륜 스님의 말씀을 자주 인용한다. 대중강연에서도 법륜스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인양하기도했다. 대중문화전문가 김창남 교수의 대담에서는 신영복 선생에 관한 추억을 더듬으며 신영복 선생의 사상에 대해서 말했다. 김제동이 어떻게해서 언어의 마술사가 되었을까? 그 의문이 이책을 읽으며 풀렸다. 그는 '인간책'을 옆에 두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그분의 사상을 자신의 삶에 내면화시키려했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꽃의 향기를 몸에 베게 하려면 꽃과 함께해야하듯이, 자신의 인격을 고양시키려한다면 존경할만한 스승을 친구로 두어야한다. 김제동은 그러한분들을 스승이자 친구로 모시고 있었다.

  유현준 교수는 "좋은 가치관을 가져야 좋은 도시를 가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좋은 도시에 살기 위해서 나도 좋은 사람이어야한다. 좋은 국가, 좋은 사회에 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린 국가탓, 사회탓을 많이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이 그러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우리가 좋은 도시, 좋은 사회, 좋은 국가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추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제동 처럼 존경할만한 사람을 스승이자 친구로 두어야한다. 나도 그러한분을 찾아봐야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8-12 1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현준씨는 저도 책도 읽고 방송도 듣고 했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저는 제 주변에서 스승을 찾기는 좀 어려울듯 하니 강나루님 소개해주신 이 책으로 만나볼 생각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2-08-12 19:39   좋아요 2 | URL
네,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바라돌이님, 즐거운 독서시간 보내세요^^

기억의집 2022-09-16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윤이 미우니깐.. 유교수도 곱게는 안 보여요… ㅠㅠ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이에게는 혹평을 받으며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한다. 또 어떤이에게는 최대의 찬사를 받기도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서평을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는다. 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나도 혹평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바라보기로 했다.

 

1. 색골(色骨)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어들었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의 조르바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인이기 보다는 색골이다. 여성의 육체에 탐닉하는 전형적이 색골이다. 이 책을 넘기며 2~3페이지 마다 조르바은 여성에 육체, 그중에서도 엉덩이와 가슴에 탐닉한다.

 

"조르바가 저 과부는 누구인가요?"라고 묻자, 콘도마늘리오는 "씨받이 암말이지요." -114

"두목, 저것 좀 보쇼 저 잡년이 궁둥이 흔드는 것 좀 봐요. 삐뚤빼뚤! 꼬랑지에 기름 잔뜩 오른 암양같군"-38

"애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은 남겨 놓고 죽어간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92

 

이러한 말들은 조르바가 직접하거나 조르바가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내뱉은 말들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 철저히 마초적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머리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르바와 같은 마초가 자유인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자유인은 너무도 많다. 특히 군대에서 그러한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며 노골적인 표현을 섞어 여자를 후리고 다닌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새로운 여자와 잠자리를 갖게 되면 새로운 훈장을 받은 것마냥 자랑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각하는 자유인이 바로 색골들이란 말인가!

조르바는 여성 중에서도 과부에게 유난히 집착한다. 과부는 언제나 정복 가능하며, 그녀들을 혼자 밤을 지내도록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조르바의 주장은 황당하기까지하다. 여성에 대한 존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조르바의 표현은 듣기에 거슬린다. 그런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러한 조르바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조르바, 내 몽당 당신에게 주고 말고요. 당신이 한것 ... 여자 꿰어 차고, 머리를 물들이고, 돈을 쓰고 한거. 당신이 다가져요. 노래나 부릅시다.!"-207

 

돈많은 갑부의 허세가 녹아 있는 문장이다. 계집질하며 자신의 돈을 허락도 없이 낭비한 조르바를 좋아하는 작가는 과연 정상적인 인간인지 의문이든다.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 그리고 주인이 없기에 쉽게 성적 대상으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과부를 탐닉하는 조르바! 돈많은 갑부의 환심을 사서 그의 돈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조르바! 그를 자유인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인생을 무계획적으로 사는 망나니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2. 이드(조르바)와 슈퍼에고(화자) 사이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존 인물 조르바를 모델로 쓰여졌다. 화자가 갈탄을 채굴하러 크래타에 간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화자(작가)의 관계는 너무도 친밀했다. 조르바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그는 사랑스러운 관점에서 묘사하고 긍정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돈을 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화내지 않고 조르바와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현듯, ‘그리스인 조르바와 화자가 같은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르바와 화자는 두명이 아니라 한몸에 있는 두가지 존재라고 보면 이 책의 서술이 쉽게 이해된다. 조르바는 화자의 가슴 속에 꿈틀되고 있는 욕망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드라고 한다. 그리고 화자는 자아(에고)나 슈퍼에고(도덕 등)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화자는 티베트 승려의 수행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본능을 억누르려한다. 그러나 자신의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물결은 잠재울 수 없다. 즉 조르바는 세상의 윤리를 비웃으며 자유롭게 여성들을 탐닉한다. 윤리에 갖힌 자아와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 사이에서 갈등이 펼쳐진다.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이러한 싸움은 욕망(조르바)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결국, 화자는 과부를 안아주라는 조르바의 충고를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화자의 몸에서 풍기는 과부의 비누냄새를 맡은 조르바는 기뻐한다. 욕망의 승리인 것이다.

모든 만남은 영원할 수 없다. 조르바와 화자는 헤어진다. 욕망이 충족되었으니 욕망에 대한 갈망은 전처럼 강할 수는 없다. 조르바와 헤어진 화자는 조르바가 독일에 올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르바를 찾아가지 않는다. 결국 조르바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화자는 욕망에서 해방된다. 계율을 어겼다고 모두가 파계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계율을 어기고 더 위대한 스님이 된 원효처럼 화자는 과부와 잠자리를 가지고 나서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3.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조르바

그리스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존재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그리스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적인 신부를 죽였다. 그런데, 거리에서 그 신부의 자녀를 마주치자 조르바는 자신이 가진 돈과 바구니까지 그 아이들에게 준다. 조르바는 그리스 민족주의 열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지만, 민족주의라는 열풍이 때로는 불쌍한 아이들의 아버지를 살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르바는 적들에게 쫓기다가 어느 과부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과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육체도 탐닉한다. 과부가 다음에 또 오라고 말했다. 조르바는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그때 그 과부도 죽었을 것이라고 조르바는 추측한다.

아마도 조르바는 이때 과부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유난히도 과부에 탐닉하는지도 모른다. 성적으로만 과부를 탐닉한 것이 아니다. 맨손으로 칼을 쥔 놈을 상대로 결투를 했다. 과부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성당에 들어가려하는 과부를 크래타의 남자들이 돌을 던지며 죽이려했다. 그녀가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그녀를 내쫓으면 될 것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광기에 사로잡힌 크래타 남성들은 과부를 죽이려했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위해서 싸운 것은 조르바였다. 그는 승리했으나 그녀를 살리지 못했다. 조르바는 다시 한번 과부를 살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결정적 기회를 잃어버렸다.

조르바가 사랑했고, 미래까지 약속한 부블리나 부인이 죽어갔다. 물론 그녀도 과부이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친다. 그런데, 크래타 사람들은 냉혹했다. 그녀 앞에서 ", 어서 서둘러, 어서 죽어야지. 이여편네야"라고 말하고, "그래야 우리도 뭐하나 가져갈 것 아닌가"라는 말을 죽어가는 부블리나 부인 앞에서 말한다. 그녀가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래타 사람들은 그녀의 물건과 가축들을 하나둘 가져갔다. 크래타인들에게 과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그녀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라며 기뻐했다.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가 크래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스 독립 전쟁 과정에서 과부를 살리지 못한 그는 목숨을 걸고 한명의 과부를 살리려했다. 그러나 그는 살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과 미래를 약속한 과부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조르바에게 과부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 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랑해야만하는 존재였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갖혀있는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그이기에 고상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했고, 그래서 노골적인 뒷거리의 용어로 그녀들을 묘사했을 뿐이다.

 

 

조르바는 성당을 싫어했다. 조르바와 화자가 하룻밤 묵었던 수도원에서는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조르바는 수도사를 저주했고, 수도사의 소굴인 수도원을 격멸했다.

 

"그래요 두목, 내 수중에만 들어오면 수도원은 기적의 공간이 될 겁니다."-319

 

위선적인 수도승을 바라보며 타락할대로 타락한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심지어 조르바는 자하리아에게 수도원에 불을 지라고 부추긴다. 자하리아는 수도원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조르바는 아마도 과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크래타인의 저변에는 크리스트교의 왜곡된 윤리의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수도승과 수도원은 저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화자는 곳곳에 불교적 언어를 사용해서 크리스트교를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겉으로는 고상한척, 사랑으로 세상을 이끄는 존재인척하지만, 실제로는 불쌍한 중생을 착취하는 크리스트교의 윤리에서 맞서서 조르바는 싸웠다. 그는 자유인이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7-29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도 명작이라고 해서
결국 읽기는 했었는데...

요즘에는 맞지 않는 캐릭이라
그런지 소화해 내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강나루 2022-07-29 18:13   좋아요 1 | URL
저도 읽는 중간중간에 여러번 포기하기 싶었어요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을 얻는 지혜'는 무엇일까?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지혜를 얻고 싶은 마음에 책을 꺼내들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란다. 1601년 태어난 그의 저서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읽히고 있다고하니, 한번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럼, 한번 책을 살펴보자.

 

 

1. 유가보다는 도가에 가까운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를 읽다보면 유가와 도가를 비롯해서 동양의 사상가들이 전했던 인생의 지혜와 흡사한 것들이 많았다. 동양과 서양의 지혜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동양의 어느 사상에 가장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당신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라!'(17)고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것인가? 동양의 철학자 공자와 노자가 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노자의 말을 살펴보자. 도덕경63恩始章(은시장)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라고 하였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는 보원이덕(報怨以德)이라는 말이 놀랍도록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과 일치한다.

반면, 공자는 논어헌문편에서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 원수에 보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렇게 한다면 무엇으로 은덕에 보답하겠느냐? 정직함(곧음)으로 원수에 보답하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라고 말하였다. 나는 공자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게 호의를 베품면, 그들은 오히려 그 사람을 이용한다. '어금니 아빠' 사건과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경우 타인의 동정과 호의를 범죄에 이용한 대표적 사건이다.

이밖에도 도덕경에서 보았던 글귀와 유사한 문장이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양보는 뜻을 이루는 최고의 위장술이다.(22)""먼저 베풀고 보상은 나중에 받아라."(27)의 표현도 도덕경의 표현과 유사하다. 도덕경74장에 "남들로부터 존경 받으려거든 먼저 그들을 존중하라"는 문장이 있다. 물건을 움켜쥐려면 먼저 손을 펴야한다.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먼저 상대를 일으켜세워야한다. 상대에게 얻으려면 먼저 상대에게 베풀어야한다. 노자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생각은 놀랍도록 맞닿아있다. "나중에 베풀면 대가가 되지만 먼저 베풀면 호의가 된다."라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는 약한듯 보이지만, 강함을 숨기고 있는 노자 철학을 보는듯하다.

오랫 동안 예수회 신부로 활동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이기에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본 지혜가 노자의 철학과 통한 비결이 아닐까?

 

2. 한비자의 지혜를 품은 발타자르 그라시안

도덕경에 대해서 최초로 주석을 달았던 사람이 바로 한비자이다. 그래서인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은 한비자의 말과 유사한 점이 있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마라."(20)는 표현도 한비자가 군주가 신하를 대할 때 지켜야할 유의사항 중 하나로 제시했다.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한다. 신하가 군주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를 이용하여 아첨하며 군주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말고, 신하의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지혜를 이용해야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용기를 절대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51)고 말했다.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할 때, 타인은 우리를 더욱 존경하게 한다. 한비자가 군주에게 했던 당부를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우리에게 하고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러한 말도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의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128) 타인에게 직언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한비자는 '세난편'에서 진실로 군주에게 간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한비자도 진시황제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군주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나누는 모험이다. 그러하기에 한비자에는 군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서술되어 있고, 지혜롭게 자신의 의견을 군주에게 제시한 사례가 적혀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하라는 대화의 기술을 한비자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원칙을 아는 것과 이를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인가보다. 자동차의 운행원리를 아는 것과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맞닿아있으면서도 같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는 상대를 설득시킬때,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공감을 한 후에 자신의 말을 하라한다. 이것이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지혜가 아닐까?

 

3. 발타자르 그라시안! 동의할 수 없어요.

'신독'이라는 표현이 있다. 중학교 도덕시간에 혼자 방안에 있으면서도 사거리에 있는 것 처럼 조심히 행동하라는 교과서 내용을 배웠다. 마치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가라는 '신독'을 당연시 배웠는데, 국어선생님은 그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린다고 말씀하셨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비슷한 말을 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조심하라."(65) 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표현대로 이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된다.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의 주장을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라"(152),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려라(192)"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지,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비결은 무엇인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누구인들 본질를 파악하고 싶지 않을까? 누구인들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누구나 원하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중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표현도 있다. "운의 흐름을 읽어라"(161)는 표현은 요행수를 추구하는 듯한 표현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표현은 거부감이 덜했다. 그러나, "지는 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마라"라는 명제를 제시한 다음, "미인은 늙어서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적절한 시기에 거울을 깨뜨린다."라는 설명을 한 것은 너무도 황당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나이듦이 곧 추해지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거울을 깨뜨리면 더 이상 '추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대중강연에서 '나이듦은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이듦을 거부하고 주름살을 추함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생의 지혜가 익어감으로 파악한 강신주와 나이듦을 추함으로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려 거울을 깨뜨리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어리석음이 너무도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곱게 나이드는 지혜를 얻어야한다. 인생의 무상함을 거부하며 영생을 누리려하다가 오히려 일찍 죽음을 맞이한 시황제를 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얻어야할 것이다.

이밖에도 "백번 성공하는 것보다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138), " 실패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능력이다."(230)는 표현도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실패가 없이 어찌 성공하길 바라겠는가!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가!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비열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탁월한 철학자의 말이라도 버려야할 것과 취해야할 것이 있다.

 

4.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 중에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담긴말도 많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신을 신성한 존재로 만드는 사람은 신상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다."(15)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 옳다면, 인간에 대한 권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에게 권위가 있는 것을 그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에게 풍자를 던진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권위를 가질 수없다.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존중하며 그의 권위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둘째,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려라"(110) 한국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가장 부패한 후보가 당선되는 초유의 사태도 종종 일어 난다. 우리 사회의 탐욕이 얼마나 흘러넘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한다.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인격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야한다. 근묵자흑이라했던가! 세상이 혼탁할 수록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자!

셋째, "사악한 고집쟁이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130) 사악한자가 더 권세를 누리고, 세상이 사악한자에 빌붙어 탐욕을 채우려하고 있다. 겉으로는 고고한척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투표하며 자신의 탐욕을 대리충족시키고 있다. 사악한 고집쟁이에게 진실을 말하려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며 당당히 외치기까지 했다. 이제는 사악한 고집쟁이를 피하고 싶다.

넷째, "부당한 상황에서도 화를 낼줄 모르면 무능한 사람이되고 만다."(208)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조금만 참으면 편한데 왜? 오지랖 넓게 나서냐고 말한다. 정의로운 사람이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는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이 나온다. 우리가 부당함을 당하면서도 이를 참고 편히 살아갈 수록, 그들은 우리를 개, 돼지로 취급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때로는 진정한 분노가 덕()이다.

 

 

책은 거울이다.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책을 읽으며, 책속에 고민이 떠오르고 해답도 떠오른다.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가 또 있을까? "자기 혼자만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미치는 것이 낫다."(112)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되게하려 노력하는 공자처럼 오늘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의 벽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끌어 안고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우리 소시민이기에 한권의 책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책속에서 우리의 답답함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책속에서는 우리의 답답함에 한줄기 위안은 발견할 수 있다. 긴한숨을 쉬며 오늘도 새로운 한페이지를 넘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5-07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07 21: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7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5-07 21: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5-07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강나루 2022-05-07 21: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러블리땡 2022-05-08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5-08 18: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8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의 리뷰를 읽으며, 발타자르 그라시안에게서 마키아벨리적인 성향도 느끼게 됩니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여러모로 비교되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수회 신부출신인 그라시안에게서 바티칸의 금서로까지 여겨지는 마키아벨리의 면모가 느껴지는 것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5-10 05:00   좋아요 2 | URL
그렇네요
동양철학자와 비교하려 했는데 마키아벨리와 비교하니 비슷한점이 많네요

scott 2022-05-09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오월 행복한 일만 가득 ^ㅅ^

강나루 2022-05-10 04: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5-10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10 10: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비롯해서, 신영복 선생이 쓰신 강의와 담론을 읽었다. 깊은 사색과 철학적 사유가 그리워 다시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펼쳐 들었다. 얇고 그림도 많아서 부담 없이 펼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전공이 역사고, 하는 일이 역사를 기르치는 일이라서 신영복 선생의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거나, 소품이 시대와 맞지 않으면 그것이 거슬려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 역사가가 아닌 신영복 선생의 글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설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라는 당신의 글귀"라는 문장이다. 많은 치적을 쌓기 위해서 무수한 인명을 해치고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피라미드를 신영복 선생은 노예가 건설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농민들이 농한기를 이용해서 건설했다. 건설의 댓가로 빵과 맥주를 받았다. 농민들로서는 농한기에 일자리와 먹을 것을 얻은 셈이다. 일종의 뉴딜정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건설은 정치일 수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정치라면, 농민들에게 일자리와 먹을 것을 주는 피라미드 건설은 좋은 정치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정치이기에 이집트 문명이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둘째, "'동의보감'의 찬술 자체가 허준의 기획이었고, 허준의 집필"이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에 거슬렀다. 홀로 서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룰 때 나무는 나무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허준이라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동의보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속에서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의서가 필요했다는 시대적 필요성에 동의한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허준과 같은 수 많은 나무들이 '동의보감' 저술에 참여했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을 괴롭혔던 양혜수도 그중 한사람이다. 내의원 의원들이 참여하다가 허준이 이를 유배지에서 완성한다. '동의보감' 저술을 허락한 선조와 완성된 '동의보감'을 출판할 수 있도록 명한 광해군도 그러한 나무 중에 하나이다.

신영복 선생은 허준을 가르쳐준 스승이 유의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설명이다. 물론, 허준이라는 나무가 홀로 태어날 수 없기에 유의태와 같은 스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는 아니다. 유의태는 허준이 태어난지 200년 이후의 인물이다. 시신을 해부했다는 설화도 허준 덕분에 의술의 혜택을 받게 된 민중들이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잡과라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소설일뿐 역사일 수 없다.

셋째, "하곡이 정작 자르고 왔던 것은 당시 만연했던 이기론에 관한 공소한 논쟁"이라는 표현이다. 하곡 정재두가 강화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기론 논쟁이 싫어서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곡 정재두가 겉으로는 성리학자인 것 처럼 살았지만, 병이 들어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자,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다. 일종에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부담을 벗었기 때문일까? 하곡 정재두는 죽지 않고 병석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으니, 주위의 성리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할 수 밖에....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양명학자임을 스스로 밝힌 그는 옥사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강화도로 찾아들었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이 진실일 수도 있으나, 나의 얇팍한 지식이 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다.

넷째, "황소가 당나라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여 궐기한 농민장수인 한"이라는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 황소는 학정에 견디지 못해서 궐기한 농민 장수가 아니다. 그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낙방하고는 반정부세력이된다. 이후, 소금 밀매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황소는 소금 밀매업자는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당나라의 형벌에 불만을 갖게 된다. 소금밀매업자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그도 난을 일으킨다. 민란이 일어나면 무조건 농민이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상상으로 학습하는 자의 어리석음이다. 민란의 참여자 대다수가 농민일지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은 일자무식의 농민이 민란의 주도자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을 이끌려면 이론과 실제 두가지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황소는 과거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로 머리에 학식이 있었으며, 소금밀매업을 통해서 조직을 움직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했기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할 수 있었다. 실사구시라는 말을 자주한다. 실제 역사가 그러한지 찾아본 이후에, 올바름을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좌석을 구하려 분주히 버스를 헤매던 40대 여성이 드디어 자리를 차지했으나, 자리를 차지한 그때야 비로소 목적지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화를 읽으며, ‘우리 삶도 이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말았음을 뒤늦게 깨닫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내일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