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인간관계론 (반양장)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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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힘든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한다. 이는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나의 말하는 태도를 지적하며 불만을 제기한다.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불리한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태도를 걸고 넘어진다고 판단했다. 학연과 지연면에서 직장에서 기댈곳이 없는 나에게는 깔끔한 일처리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직장일에 지칠때면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팟캐스트 '인생내공'을 들으며, 인간관계의 기본에 대해서 알게 되어었고, 인생의 많은 꿀팁들을 얻었다. 그런데, '인생내공'의 조우성 변호사가 인간관계의 고전이라며 데일 카네기의'인간관계론'을 자주 인용했다. 나의 인생에 새로운 윤활류를 칠해줄 수 있는 책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핵심을 관통하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6가지 방법',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리더가 되는 9가지 방법'은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이란 무엇일까?

첫째, 비난이나 비평, 불평하지  말라.

둘째,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

셋째, 다른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

  인간관계의 3가지 기본원칙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3가지를 얼마나 유념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너무도 기초적인 인간관계 원칙을 무시하면서 생활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비난이나 비평, 불평하지 말라.'라는 격언부터 살펴보자. 아무리 나쁜 사람도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잔혹한 살인자도 그럴진데, 하물며 보통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재'가 인간에게는 작동한다. 더 나가서 요즘 유행하는 뇌과학적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을 합리화하기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기 위해서 벌통을 걷어차 봤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성난 벌들의 역습이다. 

  '솔직하고 지지하게 칭친하라.'라는 격언을 되새겨보자. 집나간 주부에게 가출의 이유를 물으면, 가장 많은 이유가, '칭찬의 부족'이었다면 믿기는가? 인간은 칭찬받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꾸중은 잘하면서 칭찬할 일은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칭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불행한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인간은 사랑과 인정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끊임없이 인정 받고 싶어한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자. 그러고 보면,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도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하는 의문을 품어본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카네기가 지적한 인간관계의 기초가, 수많은 변주를 일으켜 많은 자기계발서들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다른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는 격언은 타인을 움직이고 싶다면, 반드시 지켜져야할 원칙이다. 소와 사자가 사랑을 하자, 소는 사자에게 맛있는 풀을 선물했고, 사자는 가장 맛있는 사슴고기살을 선물했다. 서로는 서로에게 자신의 성의를 무시한다며 슬퍼했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가 자신을 몰라준다고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의 입장에서 상대에게 요구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파악하는 지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유념해야할 격언이다. 


2. 나 자신을 반성하다. 

  나의 인간관계가 넓지 않다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 자신이 그랬다. 학연과 지연을 따지자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다. 나의 불평에 대해서 카네기는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관심을 귀울일 것을 당부한다. 2년 동안 다른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갖도록 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2달이 더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가? 통렬한 반성을 해본다. 어쩌면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받으려면 주어라'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타인에게 먼저 베풀어야한다. 타인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 항상 이웃과 주변의 무든 것에 감사하자! "너희가 있어 행복하고 너희가 있어 감사하다."이를 되뇌이면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자! 그것이 인간관계를 넓히는 첩경이다. 

  당신은 논쟁을 즐기는가? 논쟁을 회피하는가? 나는 논쟁을 즐긴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에서도 여성과 논쟁해서 이기려하지말 것을 당부한다. 내가 사귈 여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상대가 남자라면, 논쟁을 해도 된다는 말이군!!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이후로도 계속 논쟁을 즐겼다. 그런데, 카네기는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논쟁을 피라라고 당부한다. 나로서는 충격적인 글이었다. 논쟁을 회피하는 문화는 한국 처럼 유교적 권위에 의탁해서 자신보다 낮은 사람의 반발을 억누르려는 사회에서만 있는 현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미국인들도 인간관계를 위해서 논쟁을 피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소모적인 논쟁은 줄여야한다. 특히, 흥분해서 항의하러 오는 자는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고 논쟁하지 말자. 강아지와 싸우기 보다는 길을 비켜주는 편이 났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한편,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잘못된 한국의 권위적 문화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논쟁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다. 바로 '생산적 논쟁'이라면 논쟁을 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생산적 논쟁'이란 무엇일까? 과연 지금의 한국사회를 보다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펼쳐져야하는가?라는 종류의 논쟁은 더욱 활성화 되어야할 것이다. 토론은 없어져서는 안된다. 유대인들이 예쉬바에서 하는 하브루타도 일종의 토론이 아니던가? 생산적인 토론이 자연스러운 한국의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우리에게는 있다. 

  당신은 사람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수천달러를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는, 자신의 이름은 영원히 남기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원래 사람이름을 외우는 것에 소질이 없다며,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했다. 이제 오늘 부터 이름을 외우려 노력하자. 주말에 연수에 가서, 같은 모둠의 선생님들의 이름을 외워 보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어 보였다. 집중해서 한분 한분의 이름을 외우고,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니, 친근감은 확실히 달아올랐다. 당신도 시도해 보지 않으련가?

  상대방이 실수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나는 상대방의 실수에 "체면"을 세워주는 현명함을 발휘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할 때, 이책에 소개된 제이콥 부인은 아들과 집근처의 공사장을 청소를 한 후에, 다음날 공사장 인부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공사장 인부들에게 곧바로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암시했다. 물론 효과는 만점이었다.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팟캐스트에서도 사람은 헤어질 때,뒷정리를 잘해야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보는 사람이라고 무안을 주며 해고를 한다면, 상대는 자신에게 상처가 주어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상처를 준, 회사에 복수한다. 왜일까? 아마도 해고당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소모품 취급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 헤어지면서도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자. 헤어짐의 미학을 지키자.

  당신은 경청을 얼마나하는가? 과거 나는 경청을 하지 않았다. 타인이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으니,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만했다. 카네기는 상대가 스스로 자시의 말을 하도록 경청하라고 당부한다. 만약 내가 나의 생각을 강요한다며, 그는 이에 저항할 것이다.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그 생각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부터 도전 받는 우리 자존심이라는 진리를 잊지 말자. 정치와 종교에 관해서 나의 입장을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절대 수긍하려하지 않는다. 그럼 그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하면서 가르치고, 새로운 사실을 제안할 때는 마치 그 사람이 잊어버렸던 것을 우연히 다시 생각하게 된 것 처럼 제안하라.'라는 격언을 명심하자. 강요한다고 그들이 나의 말에 수긍하지 않는다. 용수철은 누를 수록, 더욱 반발력이 강해진다. 


3. 나의 주변을 되돌아 보다. 

  '인간관계론'을 읽으면서, 달리 인간관계론을 공부하지 않고서도 인간관계를 잘맺는 주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첫인상을 좋게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정답은 '미소'이다. 항상 미소를 짓고, 상대에게 먼저 다가간다면, 상대도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 것이다. 이런 분이 같은 사무실에 있다. 최00이라는분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항상 타인과 이야기할 때, 웃으면서 경청한다.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나, 그녀는 첫인상을 좋게하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나도 웃음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군대에서 웃는 나에게 "쪼개지마!"라는 선임병의 윽박지름을 들으며, 웃음을 잃어갔다. 강압적인 군대문화는 우리사회의 웃음을 도둑질해갔다. 이제 다시 웃음을 되찾아야겠다. 우리 사회에 웃음을 되돌려 주어야겠다. 

  동기를 유발하는 가장 주된 요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일 '그 자체'이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야근을 자처하고, 주인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 집에 들어가서 아들과 놀라며 체근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 일 그자체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 일 그자체가 좋으면, 그 어떤 보상보다도 자신에게 행복을 준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싫어하는 일은 아니다. 80% 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그러나, 99%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자. 언젠가 나도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리라...


4. 고전에서 배우다. 

  데일 카네기는 '공자'와 '부처'를 비롯해서, '도덕경'을 이 책의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방대한 그의 독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동양고전의 일부분을 읽는 듯한 착각을 한다.

  Begin in a friendly way. 우호적이 태도로 말을 시작하라. 라는 격언을 읽으면서, 노자의 '상선약수'가 떠올랐다. 화를 내기 보다는 우호적인 태도로 상대를 설득시키라는 이 격언은, 가장 약한 것처럼 보이는 물이 바위를 둟듯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 가장 다루기 힘든 항의자는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기 보다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조목조목 원칙을 들이대며 반박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부드러움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라! 라는 격언을 읽으면서, '한비자'의 '시우'가 떠올랐다. 나의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한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고마워하리라 생각하지 말자. 농부가 아무때나 오는 비를 달가워하지 않듯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호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장마철의 비는 홍수를 불러 일으키 듯이, 상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호의는 불쾌감을 가중시킨다. 가뭄의 단비가 농부의 갈라진 가슴을 치유하듯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줄 때만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링컨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작전실패를 한, 장군에게 비난의 편지를 섰으나, 보내지 않은 예화를 읽을 때는, 손자병법이 떠올랐다. 군주가 일선 장군의 군사작전에 간섭하지 않아야, 일선 장군은 자유로운 작전을 펼칠 수 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군대에서도 적용시킬 수 있는 책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흥미를 착고 말할라. 라는 격언은 '지피지기'를 하라는 손자병법의 말과 잘 어울렸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도, 나의 관심사와 타인의 관심사를 잘 파악하고,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추어 대화하라는 말이다. 

  고전은 진정으로 상통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고전에서 크게 깨우친다면, 그 진리는 학문과 사회의 벽을 타고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많은 지혜를 전하고 있다. '공감'의 중요성, '결정과정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도록하라.' '작은 긍정을 유도하라' 등의 수많은 꿀팁들은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랑하자! 감사하자! 나의 주변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복을 축복하며, 그들을 칭찬하자!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진리를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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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만나는 세계명언
최용훈 지음 / 종합출판(En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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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논어를 영어로 무어라 번역할까? '대화'라고 번역하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했던 나는 'The Analect of Confucius'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공자의 명언'!! 동양을 대표하는 '논어'는 사실 공자의 명언을 모아 놓은 모음집이었다. 또한 노자의 '도덕경'도 명언을 묶어 놓은 책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명언을 묶어 놓은 책이 있다면, 이 책 또한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어 명언을 읽기로 결심했다. 인터넷 서점을 써핑하면서 가장 좋은 영어 명언집을 찾으려 노력했다. 결국 '영어로 만나는 세계 명언'을 읽기 시작했다.

 

1, 탁월한 구성

  영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영어가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영어라는 그릇에 담기 주옥같은 명언들이 한가득 담겨있다. 단순히 영어명언들을 소개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명언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영어공부와 인문학적 소양을 같이 쌓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나, 부록으로 제시한 '행복한 삶을 위한 명언'은 단순히 명언을 나열하는데 멈추었다. 책값이 좀더 지출되더라도, 책의 부피가 조금 커지더라도 부록으로 제시한 명언에도 그 명언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김할 수 있는 서술이 이어졌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2. 오늘을 되새긴다.

  논어를 읽으며 무릎을 탁치는 경험을 이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경험했다. 셰익스피어가 '헨리4세'에서 'The better part of valour is discretion'이라는 말을 했다. 용기의 대부분은 조심성이라는 말이다. 알렉산더 포프는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라고 말했다. 천사들이 발 들여 놓기를 꺼려하는 곳으로 바보들은 뛰어든다.는 뜻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에 뛰어드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면서 공감하다고 감탄하는가? 셰익스피어와 알렉산더 포프는 이를 진정한 용기로 보지 않고 있다. 만용은 용기가 아니다. 진정한 용기있는 자는 순간의 분노를 억누르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병법 '36계'에도 36번째 계책이 줄행랑이 아니겠는가!

  스페인계 미국 사상가인 조지 산타야나는 'The young man who has not wept is a savage, and the old man who will not laugh is a fool.'이라 말했다. 울어본 일이 없는 젊은이는 야민인이며, 웃으려 하지 않는 노인은 어리석은 자다.라는 말이다. 이 명언을 읽는 순간, 오늘날의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젊어서는 산업화시대를 몸으로 이겨내며 열심히 앞만보고 살아왔다. 그러나 시대는 독재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변했다. 그런데 P집회에 나가는 노인들의 머릿속은 독재시대, 아니 전제군주정의 시대에 머물러있다. 노인이 되었는데도 여유롭지 않고 503호에 목메여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진정 어리석은 자들인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2030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그런데 비트코인 열풍을 문재인 정권이 잠재우자, 비트코인 열풍에서 빠나오기 싫어하는 일부 젊은 세대들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웃지 못할 행태를 보였다. 구약선경 '잠언'에는 'Go to the ant, thou sluggard; consider her ways, and be wise.'라는 말이 있다. '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라는 이 말은 비트코인 열풍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며 아직도 현실로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비트코인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비트코인이라는 거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이 파멸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냐고.... 루신이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침탈이라는 현실을 바라보며, 아직도 잠에 취해있는 중국인들을 위해서 '아큐 정전'을 썼다. 혹시 비트코인 거품에 취해있는 당신이 아큐는 아닌가? 루신은 고민한다. 철로된 방에 자신만이 깨어있다. 산소는 줄어드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잠에 취해있다. 이들을 깨워야할까? 어자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이대로 행복하게(?) 죽도록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좋지 않은가? 당신이라면 어떤 답을 내놓겠는가? 깨워야한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할지라고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치료는 시작된다. 병든 비트코인 세대로 치료하기 위해서 문재인 정권은 강력한 칼을 빼들었다. 환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도 인문계 고등학교의 불빛이 운동장을 비춘다. 교실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을 보면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닭장에서 자라야하는 양계장의 닭들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앨빈토플러가 한국은 미래사회에 유용성이 없는 과거의 지식을 배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어느 랍비의 격언에 'Don't limit a child to your own learning, for he was born in another time.'라는 말이 있다. '아이에게 자신이 배운 것만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귀에 부던히도 맴돌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공포와 기대를 가지고 관련 서적을 뒤적였다. 그러나 우리 교육현장은 아직도 4차산업혁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미래에 대한 대비를 잘해야하는 교육현장이, 가장 완고하게 일제식의 수업을 하며, 야간자율학습을 반강제로 시키고 있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시대에 태어나 미래사회를 살아가야하는 학생에게 우리는 기성세대가 배운 것만을 가르치려한다. 우리 교육의 화두는 과연 우리 교육이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어야함을 알아야할 것이다.

 

3. 아쉬운점.

  명언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은 이책의 강점이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는법! 이책에도 옥에 티가 있다. '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가? 손자병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그러나 '손자병법'에는 '백전백승'이라는 구절은 없다. 단지 '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잘알고 우리에 대해서 잘안다 한들 세계 초강대국 미국가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겠는가? 적을 알고 나를 안다면 위태롭지 않을 뿐이다. 즉, 초강대국 미국을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아,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동야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백전불태'라 적지 않고, '백전백승'이라적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자병법'을 쓴 사람은 '손빈'이 아니다. 손빈은 '손빈병법'을 저술했다. '손자병법'을 저술한 사람은 손빈의 할아버지인 '손무'이다. 영문학에는 조예가 깊은 저자가 동양고전에 대해서는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Seeing is believeing'이다. 한나라 선제가 흉노를 토벌할 계책을 묻자, 조충국은 "백번 듣는 거이 한번 보는 것만 같이 못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적지에 잠입해서 계책을 모색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세운 전략을 반란을 진압시켰다.'라고 적고 있다. 다분이 중국중심의 서술이다. 흉노와 강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조국충이 흉노와 강족의 침임을 물리친 것일 뿐이다. 온 천하가 중국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한다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책을 쓰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중국의 서적을 읽을 때, 조심해야하는 '중국중심의'사고관이라는 덧에 저자가 걸린 것은 못내 씁쓸하다.

  Never too late to mend.(잘못을 고치는 것은 뒤늦은 것이 아니다.) When youhave faults, do not fear to abandon them(잘못을 고치는 데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은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동양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동양고전의 원문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크나큰 아쉬움이다. 이들 명언들이 논어의 어느 구절인지 안내해주고, 한문 원문을 적어주었더라면 나에게는 크나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중국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고시중에서 누구의 시이며, 그 원문이 무엇인지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영어 속담으로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동양의 시라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지만, 저자의 불친절한 설명에 아쉬움이 켜졌다.

 All men know the utility of useful things; but they do not know the utility of futility.(세상 사람들은 모두 유용한 것의 쓰임은 알면서 무용한 것의 쓰임은 알지 못한다.)라는 말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쓸모없는 나무가 살아남아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쓸모있는 나무들은 목재로 쓰기 위해서 베어가기에 쓸모없는 나무만 남게 되고, 그 쓸모 없음이 쓸모가 되어 나무가 살아 남게 되었다. 장자가 친구의 집에 갔더니, 친구가 집에서 기르는 새를 잡아 친구를 대접하려 했다. 하인이 어느 새를 잡을지를 물었다. 친구는 울지 못하는 새를 잡으라했다. 쓸모없음으로 인해서 울지 못하는 새는 일찍 죽었고, 쓸모 있는 새, 즉 울수 있는 새는 살아남있다. 제자가 장자는 쓸모있음과 쓸모 없음 중에서 어디에 있으려하는지 묻자, 자신은 그 가운데에 있겠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장자의 유명한 쓸모없음의 쓸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장자 철학의 깊이있는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무가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을 알고 기름은 연소시키는 것에 쓴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나무와 기름이 유용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 구실도 못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도 많다.'라고 피상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탁월한 영문학 교수이지만, 동양고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4. 이의 있습니다!!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은 마태복음에 있는 말이고, Life is short and Art is long.(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말이다. Art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의미로 처음 쓰였다. 무심코 쓰던 말들의 뿌리를 알아가는 여행은 너무도 즐겁다. 그러나 이러한 명언을 읽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삐딱한 생각을 하곤한다. 마태복음에 'Love your enemies, and bless them that curse you.(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라는 말이 있다. 과연 적을 사랑하면 정의는 지켜질까? 적을 사랑하라고 적폐세력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나의 왼쪽 뺨을 내밀면 이 사회의 정의는 바로세워질 수 있을까? 진정으로 참회하는 적을, 진정으로 참회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저들은 참회할 마음도 없으며, 다시 권력을 잡으면 엄청난 정치보복을 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로마 황제에게 탄압 받던 시기의 초기 기독교가 용서 밖에는 달리 로마군에 대항할 무기가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들이 택한 가장 탁월한 무기가 사랑과 용서가 아니었을까? 그 시대에 유용한 무기를 시간이 지난 지금에 아무런 고려 없이 사용한다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줄 것이다.

  An empty bag cannot stand upright.(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뜻이라한다. 영문학에 대가이신 저자의 말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삐딱한 생각은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밥을 먹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식이나 도덕적 심성이 차있지 않으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If it be true that good wine needs no bush, 'tis true that a good play needs no epilogue.(좋은 술에 간판이 필요 없듯이, 훌륭한 연극에는 에필로그가 필요 없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이 말은, 놀랍게도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사가 나오는 '뜻대로 하세요'라는 연극은 좋은 연극이 아니란 말인가?

 

5. 동서양 명언 비교

  이 책을 읽다보면, 동서양의 명언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너무도 흡사한 말이 동서양에 존재하고, 때로는 서로 상반된 명언이 동서양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란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Do 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반면에 공자는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do not do to others.(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라는 말을 했다. 어느 문장이 마음에 와닿는가?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공자의 말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여러가지 일로 싸웠다. 그중에 하나가 나의 옷차림에 아내가 간섭한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차림을 나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너무도 부당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랑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말에게 주며, 말 너는 왜? 내가 준 음식을 먹지 않냐며 화내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나의 무의식적 폭력을 줄이는 방법은 아닐까?

  There are two kinds of failure: those who thought and never did, and those who did and never thought.(두 종류의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와 실천은 하되 생각하지 않는자.) 피터가 한 이 말은, 논어 위정편에 나와 있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과 너무도 흡사하다. 생각과 실천을 강조한 피터와 생각과 배움을 강조한 공자는 표현 구조는 너무도 유사하다. 피터가 생각과 실천의 조화를 강조한 반면, 공자는 배움과 생각을 강조했다. 피터와 공자의 말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격언이다.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배우지만, 이러한 배움의 과정은 실천으로 이어져야한다. 또한 실천을 통해서 배움이 다시 일어나야한다. 끊임 없는 배움과 실천, 생각과 배움의 순환구조가 계속되어야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성서 명언에 나오는 고어들이다. thy(너의), thou(you), shalt(이리라)라는 고어들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년여 동안 하루에 한문장 혹은, 일주일에 한문장씩 책을 읽고, 썼다. 그러면서 나도 한껏 성숙했다. 저자 최용훈이 '영어로 만나는 세계 명언'의 개정 증보판을 내주길 바란다. 논어가 공자의 어록을 모아 놓은 것이 듯이, 최용훈의 '영어로 만나는 세계 명언'이라는 책은 21세기에 또다른 고전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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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
정애리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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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책과 함께 떠나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챙기지 않는 나만의 친구하나를 챙려들었다. 바로 책이다. 팟캐스트 '빨간약 퍼스트 클래스'의 김경집 교수의 제안데로,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싶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여행과 함께할 수 있는 책을 골랐다. 물론, 여행지가 제주도이니, 제주도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면 더 없이 좋겠지만, 가족과 가벼운 여행이니 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보니, 정애리의 '축복'을 꺼내들었다. 여행의 틈틈이 읽는 책의 맛을 한번 보자.

 

1. 여행 첫날, 책장을 넘기며 출발!!

  정애리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 주말드라마 '사랑과 진실' 속의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그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정애리의 모습이 정지된 동영상처럼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연기자로서, 한아이의 어머니로서, 한남자의 아내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틈틈이 생활속의 여러 장면들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이들 책장을 넘기며 나의 여행의 장면들을 함께 추억의 책속에 기억하자.

  2018년 1월 8일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이런, 비가오는 날씨에 항공기 연결관계로 30분정도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단다. 비행기 출발지연은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니 '단비 내리던 날'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단비가 내리자, 정애리 작가는 환호성을 터트린다. 지금 내리는 겨울비도 단비일까? 지금은 단비가 아니겠지만, 이 비가 올해 농사에 쓰일물이 되겠기에, 멀리보면 단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가 세상의 때를 씼고, 생명의 물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발을 기다리던 사이 책장을 살펴봤다. '닭둘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이제는 전염병을 옮기는 새가되어 우리에게 골치덩이가 되었다. 닭이된 비둘기! 닭처럼 된 비둘기! 별다른 노력 없이 먹이를 얻으려는 비둘기는 피둥피둥 살이 찐다. 서슴없이 더러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애리는 닭둘기 처럼 되지 말자고 되뇌인다. 이 시대에는 많은 달둘기가 있다. 대한민국은 한때, 닭둘기를 많이들 좋아했고, 그들이 세상을 닭둘기의 놀이터를 만드는데 허수아비처럼 방관만 했다. 닭둘기가 싸놓은 똥들을 지금 우리가 치우면서 다시는 닭둘기가 되지도 말고, 닭둘기가 우리에게 굴림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503호는 잘있을까?

  제주공항에 들러, 렌터카를 빌려 숙소로 갔다. 제주도 여행을 유행가 가사처럼 외치고 다녔던 딸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숙소 근처에서 먹은 제주의 음식은 정말 일품이었다. 입이 짧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우리 딸들이 밥한그릇을 뚝딱해치웠다.

 

2. 여행 둘째날, 비바람 뒤에 오는 것

  제주도 2일차! 강풍주의보가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 올해 최고란다. 제주도를 3다도라 했던가! 돌많고 바람 많고, 여자가 많은 곳! 과연 제주도는 바람이 매섭도록 많은 섬이었다. 아침을 먹고, 책장을 폈다. 가족들에 비해서 나의 식사 속도가 빠르다보니, 아침 식사시간은 나의 독서시간이기도 했다. 

  '비바람 뒤에 오는 것'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고요가 밀려오듯, 바람 잦은 뒤에는 반드시 열매 맺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정애리는 말하고 있다. 그래, 이 바람이 지나가면 평온이 올까? 이번 여행의 안전을 기도하며 제주도 여행의 일정을 시작했다.  

  제주도 여행지를 고를 때,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짜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집안의 권력자께서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곳은 역사유적지를 넣자고 타협했다. 오늘 그래서 제주 4.3 평화 기념관을 가게 되었다.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었던가? 4.3의 비극은 아직도 제주인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영화 '지슬'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4.3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4.3을 처음 알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서 사삼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생생하게 4.3을 나의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4.3평화기념관을 관람하며, 우리가족에게 4.3을 되도록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4.3 평화기념관을 관람을 마치고 아내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오늘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도록한다. 

  다음 코스는 아쿠아 플라리넷이다. 서울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아쿠아리움을 관람했던 나에게는 별로 새롭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 딸들은 너무도 즐거운 곳이었다. 물개쑈를 보면서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아빠는 어째서 잠을 잘 수 있느냐는 딸들의 핀잔이 들려왔다. '아빠는 재미있는 것 싫어해요?' 라는 막내의 말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플라리넷에서 점심을 먹고, 김녕미로공원에 갔다. 미로속을 헤매며 길을 찾았고, 종을 울렸다. 미로공원의 가게에 들렀다. 일년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엽서를 보내겠다고 딸들은 부산을 떨었고, 나는 주인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눴다. 제주도의 바람이 평소에도 이런가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 올해 최고로 강한 바람이라고 아주머니는 대답해주었다. 충청도 출신이신 아주머니는, 남편을 따라 제주도에 왔고, 제주도의 생활이 좋다 하신다.

  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제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해서 또 들른 것이다.

 

3. 여행 3일차, 멈추지 않는 것이 없기를 바라며...

  새벽부터 눈빨이 휘날리고 있다. 아침을 먹으며 창밖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창밖의 눈빨은 맹렬한 기세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며 땅에 부딪쳤다. 오랜만에 온 제주 여행인데, 맹렬한 눈빨때문에 여행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책장을 펼치자 '멈추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비바람이 분다고 하여 지금 내 시간이 힘들다고 하여 움츠러들지는 마세요.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비는 그치고 지금의 고단함이 추억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라는 정애리의 글을 읽으며, 무슨 분노가 그리도 많은지 맹렬히 제주도 곳곳으로 내리치는 눈빨도 멈출까? 라는 생각을 했다.                                               

  3일차는 항몽 유적지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20분이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다고 우리집 권력자를 설득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제대로 된 발굴 조사도 하지 않고 복원을 해놓는 바람에 많은 사실들을 땅속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간직한 항몽 유적지!! 고려인의 자주성을 간직한 마지막 대몽항전이었다고 평가할 것인가? 권력쟁탈전에서 패배한 자들의 발악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외세에 맞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역사적 사실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 항몽유적지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들의 의도는 우리가 추측할 수밖에 없으나, 그들의 숭고한 행동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만했다.

  다음 코스인 유리의 성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눈빨이 맹렬히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고가 났는지, 정체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재빨리 근처의 '그리스 신화 박물관'으로 경로를 바꾸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고, 연수도 들으면서 제법 상식을 키웠는데, 신들의 이름은 언제나 했갈렸다. 제법 재미있는 박물과 답사를 마치고 차에 와서 시동을 켜고 가족을 기다렸는데, 앗뿔싸! 사건이 터졌다. 우리 호기심 박사님께서 그리스 신화 박물관 분수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단다. 재빨리 차에 태워, 젖은 바지를 벗도록 했다. 아내의 내복을 입도록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리스 신화 박물관 기념품 매점에 가서 웃옷 한벌을 샀다. 어른 옷을 입으니, 원피스를 입은 것 처럼 보였다. '유리의 성' 박물과 앞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식당주인의 배려로 슬리퍼를 빌려 신고, 신발에 휴지를 넣어 물기를 뺐다. 밥은 맛이었지만, 밥맛을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의 양말을 신기고, 양말안에 휴지를 넣었다. 식당주인에게 비닐봉지 2개를 얻어 비닐봉지를 신고 젖은 털부츠를 신도록 했다. 호기심 박사님은 이제  춥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유리의 성에 가고 싶다고 날리를 부린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서 유리의 성을 향했다. 다들 즐거워했지만, 난 추운 날씨 때문에 관람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4시정도에 관람을 마치고 또한곳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날씨가 심상치 않고, 호기심 박사님의 상태로 봐서 더 이상 무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숙소로 귀환을 결정했다. 그런데,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눈빨이 맹렬히 차창을 때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린 눈빨이 앞차를 놓아주지 않아, 트럭이 비끄러졌다. 자동차 체인도 하지 않고 거북이 걸음으로 운전을 했는데, 커다란 정체가 연속되었다. 중앙선을 넘어온 사고 차량을 경찰이 조사하는 장면도 보였다. 저녁을 먹으며 오늘 사고없이 무사히 귀환한 것을 감사했다.  

  다시 책장을 넘겼다. '빛을 보라고 어둠이 있는 거예요'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빛만 있다면 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빛을 잘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한다. 마치 환한 도시에서는 별빛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가로등 조차 없는 시골에서는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총총히 빛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통 빛은 희망을 상징하고, 어둠은 절망을 상징한다.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 희망이다. 항상 '희망'이라는 북극성을 잃지 않는 것이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눈길을 헤치고 숙소에 도착한 것도 희망이라는 빛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4. 여행 4일차. 소금으로 살 것을 다짐해요.

  텔레비젼이 날리가 났다. 어제부터 중산간 도로가 통제되었으며, 일부 도로에서는 스노우 체인을 한 트럭만 운행을 허용한단다. 어렵게 제주도에 온가족이 왔는데 이 여행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엉금 엉금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잠수함 체험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찌하나?하는 근심도 마음 한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복잡한 마음에 책을 펼쳤다. '욕심 때문에'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비워 두세요. 욕심만 내버려도 당신이 훌씬 아름다워질 거에요.'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욕심을 버리자! 여행이라는 욕심을 비우자. 그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래, 예정된 여행지를 버리고,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제주 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허름한 곳이었다. 그러나, 전국대회 대상을 받은 한지 공예작품을 비롯해서,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었으며, 박물관장님의 가야금 병창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박물관장님은 영화 '지슬'에서 아버지 역을 맡기도 했단다. 나에게 4.3 평화기념관에 갔다 왔느냐고 묻고, 1층의 도서관도 열어 보여주었다. 내부의 인테리어만 잘하면 꾀 알찬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받은 도서관이었다.

  제주에 와서 반드시 먹어야할 것이 있다고 우리집 권력자께서 주장하시어, 맛집을 찾아 헤맸다. 회맛이 육지에서 먹던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는데, 권력자께서는 맛있다고 연신 찬탄을 한다. 딸들은 맛있다고 몇점 먹더니 이내 먹지 않았고, 나는 굴복음밥을 시켜 딸들에게 나눠주었다. 딸들과 나는 회보다는 굴복음밥이 더 맛있었다. 그러나 우리 권력자님께서는 회가 맛있다며, 회를 다드시고는 매운탕도 먹어야하는데 배불러서 못먹는다고 한탄을 하신다. 책장을 펴들었다. '가짜 말고 진짜'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소금으로 살기를 다짐해요. 자기를 다 버리고 녹아내려야 맛을 내는 소금처럼 살다 가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그래, 소금처럼, 자신이 바다물속에 녹아들어가 바다를 썩지 않게 하듯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녹아들어가 가족에게 평화를 주어야겠다. 권력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줘야겠다.

  점심을 먹고나니 눈빨이 너무도 맹렬히 대지를 향해 치닫았다. 숙소로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했으나, 역사유적지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삼성혈이나 관덕정 정도는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덕정을 검색하니, 바로 코앞이었다. 권력자님의 눈치를 보며, 가자고 했다. 겨우 관덕정에 들러 제주도의 통치가 행해지던 그곳에서 과거의 제주를 만났다. 눈보라가 치는 관덕정과 제주목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너무도 추웠다.

  숙소에 와서 뉴스를 들으니, 비행기가 연착되고, 4천여명의 승객들이 발이 묶였단다. 내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을까?

 

5. 5일차, 여행을 마치며,

  아침부터 뉴스를 살폈다. 최대규모의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며, 온통 제주 공항의 모습으로 뉴스가 도배되었다. 빨리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가서 사태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이참에 일주일 더 제주도에 있자며, 권력자님과 딸들은 기뻐하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책을 폈다. '살은 셀프입니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물만 셀프가 아니다. 삶도 셀프이다. 오늘 여행의 이 난관을 헤처나갈 사람도 나다. 셀프다.

 급히 퇴실을 하고, 자동차의 눈을 치웠다. 스노우 체인도 하지 않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더니, 렌터카 직원이 놀란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가 지연되기는 했어도, 오늘 출발한단다. 간신히 이륙해서, 청주공항에 도착하니, 앗뿔싸!! 공항 주차장에 주차시켰던 차가 방전되었다. 보험회사를 불렀으나, 감감무소식!! 옆차는 벌써 보험회사가 왔는데, 싸다고 가입했던 보험사가 서비스도 역시 싼 값을 하나보다. 그래도 옆차의 보험회사 분들이 마음이 좋아서, 나에게 무료로 시동을 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가 보다.

 

  여행은 이렇게 마쳤다. 정애리도 이책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전 세계, 수백 명의 내 자식들다 불러 모아 놓고 꿈결 같은 환갑잔치 할 거예요' 라는 말에는 '아름다운 여인, 정애리'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을 실처하면서 열심히 사는 정애리! 그녀는 누구에게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이렇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것일까? 사랑을 줄 수있기에 그녀는 축복받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 행복한 제주의 여행을 '축복'과 함께한 것도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우리 모두 '축복'을 받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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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13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이 축복으로 시작해서 축복으로 마무리되었군요. 제주도를 무사히 탈출하셔서 다행입니다. ^^

강나루 2018-01-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제주에서 노숙할뻔 했어요^&^
이것도 추억이 되네요^&^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이케가야 유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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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잘한 것이 있다면, 뇌과학에 많은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ADHD알고 있는 부시는 그의 부인과 참모들이 있기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임할 수 있었다. 그도 아마 자신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ADHD가 보이는 충동적이고 과잉행동적인 모습이 아마도 뇌 과학을 발전시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그가 갖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부시행정부 시기 연구가 시작되어, 그로부터 10년후부터 뇌과학의 성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육학과 심리학,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뇌과학적 지식은 첨단을 걷는 세련된 지식이 되었다.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뇌과학을 접하기도 했지만, 이제 책을 통해서 깊이 있는 뇌과학 지식을 얻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뇌과학자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내용이라면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확신을 갖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1. 유발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의 흔적

  유발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고귀할 수 있는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해서 부정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서술을 했다. 현대과학의 발전된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유발 하라리의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회의적인 글은, 과학의 발전이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이 책에도 '호모 데우스'에서 제기했던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전기 자극을 통해서 쥐를 무선으로 마음데로 움직인다. 책찍과 당근으로 쥐를 유인한 것이이다. 단지 전기자극으로 쥐를 움직인다면, 쥐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쥐의 자유의지마져도 전기자극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쾌락을 주는 전기자극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의 뇌는 자유의지에 따라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일까? 실험결과는 충격적이다. 운동전령이 움직이고 난 이후, 1초후에 '움직이자'라는 의식이 나타난다. 자유의지는 잠재의식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에 지배받는다고 말했듯이, 어쩌면 무의식이 '운동전령'을 움직이고, 그에 따라서 의식의 세계의 자아가 스스로의 행동을 주체적이라 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가보자. 상대방의 의지를 데이터화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만약 특정 사람이, 인간의 의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상대방의 기분을 데이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면, 그 시대는 행복한 시기일까? 만약 인공지능이나 사업주가 데이터화된 사람들의 마음을 눈으로 본다면,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까? 디스토피아가 될까?

  유발하라리와 이책의 저자, 이케가야 유지가 말하고 있듯이, 인간의 진화는 이제 멈추었다. 그대신 인류는 '환경'을 진화시킨다. 의족에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발명품들은 환경을 진화시키는 전형적인 예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환경을 진화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신이되겠지. 그럼, 극대화된 환경의 진화, 그리고 호모 데우스가 된 인류, 그들에게 행복이 찾아올까?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질문이 다시 샘솟는다.  

 

2. 뇌과학에서 만나는 동양고전

  심오한 각각의 학문의 결국은 한곳에서 만난다는 말이있다. 어느 학문이나 심오하게 깊이 사유하고 연구하면 그 진리는 한곳에서 만난다는 이말을 뇌과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 당신은 같은 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있을까?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BC 544?--484?) "당신은 같은 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연은 시시각각 생셩 변화한다. 물은 흐르고, 물도 변화하니, 방금 전에 내가 담갔던 물이 바로 그 물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말을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무슨 말일까?

  인간의 기억은 완벽해선 안된다. 인간의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가 아니라, 완벽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하등동물일 수록 오히려 기억이 완벽한데 반해서 인간은 기억이 완벽해서는 안된다니 무슨 말일까? 인간은 기억이 모호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억들 중에서 공통요소를 추출해서 기억한다. 그러하기에 더 많은 사실을 보다 효율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애매한 기억 때문에 글자를 읽고, 어제만난 사람을 오늘 알아 볼 수 있다. 우리가 쓰는 글자도 글자 폰트 및 서체에 따라, 각자의 개성에 따라 수 많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글자를 읽는다. 그것은 우리 기억이 애매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제 만난 사람은 오늘 머리모양이 변화했고, 옷을 갈아입었고, 어제보다 늙었지만, 우리는 어제 만난 사람을 애매하게 기억하고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의 공통요소를 파악해서 오늘의 그를 어제의 그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은 변화한다. 변화하는 만물을 모두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인간의 애매한 기억은 이러한 만물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효율성을 주었다. 도덕경 11장에 "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그 바퀴통 속의 비어 있음으로 인해 쓸모 있는 것이요, 그릇도 비어있음으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집을 질 때에도 빈 공간이 있어 방안의 쓰임새가 생기는 것이니 쓸모 있음은 비어 있음에서 오는 것이다.(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라했다. 우리의 뇌와 눈은 그 비어있음으로 세상을 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 일체 유심조, 만물은 뇌에서 만든 것!

 일체유심조라는  ‘만일 사람들이 삼세일체불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이 모두가 마음의 짓는 바에 달려있음을 보라’는 화엄경에서 나온 말이다.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요. 깃발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나의 마음이 깃발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불교의 이 화두가 뇌과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우리 인간의 신체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눈은 100만 화소정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는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왜?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뇌에서 100만 화소의 세상을 선명한 세상으로 보정처리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맹점이 있다. 어느 거리가 되면 보지 못하는 지점!! 그런데 우리 눈의 이 결점을 우리의 뇌는 수정보완하여 선명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사실은 우리의 뇌에서 수정보완된 세상이다.

  인간은 빨강과 파랑, 초록밖에 볼 수 없다. 시신경이 이것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외선을 본다면 세상은 엄청달라져 보일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엄청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잠자리가 보는 세상과, 박쥐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 무척 달라져보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뇌에 의해서 재창조된 세상이다.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으로 세상의 색을 창조하고, 자외선을 보지 않았기에, 건물뒤의 세상을 보지 않도록 했다. 절대적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뇌가 창조한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각각의 존재들마다 다를 수 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마음은 뇌에서 만든 것이다.

 

다. 정신과 육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종교적으로 심취한 친구가 있다. 육체는 존재했다 사라지지만, 영혼은 불멸한다. 유한한 육체보다 영원한 영혼의 안정을 추구해야한다. 라는 주장을 하며, 종교에 심취한 친구다. 그런데, 과연 정신과 육체 중에서 정신(영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육체는 학대해도 되는 것일까?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는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Orandum est ut sit means sana in corpore sano)"라는 말을 했다. 어찌 정신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겠는가? 뇌과학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유베날리스의 말을 할까?

  마음은 뇌가 만든 것이다. 몸이 없으면 뇌도 없다. 즉, 몸과 마음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뇌과학에서 말하고 있다. 건전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 건전한 뇌와 건전한 마음의 조화는 필 수 이다. 정신과 육체, 마음과 뇌의 관계는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뇌 지도'는 뇌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정하는 것이다. 손가락이 4개인 사람에게는 5번째 손가락에 대응하는 장소가 뇌에는 없다 그런데, 붙어버린 4번째 손가락을 4번째 손가락과 5번째 손가락으로 분리하는 수술을 하면, 5번째 손가락에 대응하는 장소가 뇌에서 생성된다. 몸이 변하면 뇌가 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너무 과잉되게 진화하였고, 이 과잉 진화된 뇌는 환경이 변화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여유분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손발이 열개여도 충분히 콘트롤 가능할 정도로 과잉 진화되었다. 수두증에 걸린 사람이 보통사람의 1/10 정도의 뇌로 보통의 일상을 무리없이 살아간예는 우리 뇌가 얼마나 몸이나 환경에 따라 '자기 조직적'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변화하거나 환경이 변화하면 우리의 몸은 자신의 조직과 능력을 변화하면서 세상에 대응할 것이다. 이것이 정신과 육체, 몸과 뇌의 역동적인 상호의존성을 확인케힌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고, 건전한 정신에 건전한 육체가 담겨야 한다.

 

라. 불립문자! 인간은 언어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불교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이 있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선불교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족쇄, 언어의 한계를 일찍이 깨닫고 이를 뛰어 넘는 수행방법을 모색해 온 것이다.

  이책에서도 인간은 언어의 노예라고 말한다. 인간이 연상하는 단어는, 자유롭게 연상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어에 속박되어 있다. 이시대의 지성 촘스키는 "언어를 알면 그 나라나 사회의 구조와 체계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언어의 노예이며, 이를 벗어나기 힘듬을 언어학자와 뇌과학자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언어의 노예를 탈피하기 위해서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를 수행의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다.

 

마.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서양의 철학은 쪼개고 쪼깨면서 분석한다(환원주의). 그러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에 4원소설 등의 다양한 학설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전개되었으며, 근대 서양과학의 발전에 '환원주의'가 일조했음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복잡계를 예로든다. 인간은 개인일 때와 집단일때 행동이 전혀다르다. 물고기 한마리 한마리를 연구하여 몇백마리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 물고기 무리의 경향성을 파악해야만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전체를 파악하지 않고 쪼개기만하려는 서양철학에 대해서 뇌과학은 전체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

 

 

  뇌와 컴퓨터의 차이를 아는가? 소프트웨어가 변한다고 하드웨어가 변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절대 변하지 않는데, 그러나, 우리의 뇌는 외부세계에 열려있다. 몸이나 정보가 달라지면 뇌의 구조와 기능은 달라진다. 외부에 열려있는 것! 그 유연성이 인간뇌의 생명력을 결정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달리말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유연성을 잃게 되면 그 뇌는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가 공부하며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뇌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지식의 나열만을 하는 수준의 책이아니다.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도록 우리를 안내해주며, 끊임 없이 새로워지라고 책찍질 하고 있다(일일신 우일신 (日日新 又日新) ). 새로워지고 생명력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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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18-01-30 06:00   좋아요 1 | URL
어렵지만 그래도 끌리는 분야가 뇌과학 이에요
감이불취 라는 말이있어요 느끼지만 취하지않는다 책을 읽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머리속에 넣으려 하지 말자구요 저도 읽고나면 많이 잊어버려요^^

2018-01-30 0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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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얼마나 매력적인 이름인가? 특히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래의 세계적 과학 교양서라는 설명도 매력적이다. 국민라디오 '전영관의 30분 책읽기'에서 이윤호 선생의 추천을 듣고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분야에 쉽게 손이가지 않았다. 과학분야에 한번 도전을 해보기로 굳게 마음 먹고 서가에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꺼내들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기존 관념을 깨부수다!!

  우리가 느끼는 단단함은 환상이다.!! 언듯 이해가 되질 않았다 두공의 음전하 때문에 생긴 힘장이 서로 반발하기 때문에 단단함으로 느낄 뿐이란다. 한예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1옹스트롬(1억분의 1센티) 정도 떠있다. 단단함은 단단함이 아니다!! 마치 선문답처럼 들리는 이 말이 사실은 진실이라니... 믿기지 않는 원자의 세계가 신비해보인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아는가?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 중에서 빛의 속도로 가면 시간이 느려진다는 말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책에는 미국 횡단 비행기에서 내리면 수천억분의 1초 젊어진다는 내용이 있다. 빛의 속도로 이동할 때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일반 생활에서도 적용된다면, 열심히 뛰어다니를 사람은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람보다 수천억분의 1초 젊어질 수도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것은 열심히 운동할 수록 우리몸의 생체나이는 젊어진다는 의학상식에 기초해 보아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회를 믿는가? 우리의 영혼이 윤회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원소들은 윤회한다. 즉,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소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원자들이 재분배되기까지 수십년이 걸리기에 역사속 인물로부터 원소를 물려받게된다. 그러문로 우리의 원소들은 윤회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과학이 종교와도 합일점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학의 언어와 종교의 언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단초를 보았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태양계의 행성을 외울때 우리는 이들 행성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연히 암석들로 이뤄져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수성부터 화성까지는 내행성이고, 목성부터 해왕성까지는 외행성이며,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내생성은 암석으로 되어있고, 외행성은 기체로 되어있다. 여기까지는 이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던 상식이다. 그런데, 화성과 지구가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았는가? 달과 화성에는 지구와 같은 액체로된 핵이 없다. 그결과 자기장이 달과 화성에는 없다. 이말은 우주선을 차단할 수 없으며, 달과 화성에는 생명 살 수없다는 말이 된다. 지구는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가진 행운의 행성이다. 그런데 그 자기장이 지금 약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인류는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핵전쟁이 일어나도 바퀴벌래는 살아 남는다는 말이있다. 그런데, 바퀴벌래보다 박테리아의 생명력은 더욱 놀랍다. 미크로콕쿠스 라디어 필루스는 방사성 물질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이다. 방사선에 대한 면역력도 있다. 이 박테리아를 이용해서 핵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만큼 박테리아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쇄상구균은 달표면에 2년 동안 놓아두었던 카메라 렌즈 속에서 회복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 상황속에서도 박테리아는 생존했다. 이 책에 따르면, 지구는 그들의 행성이고, 우리가 이곳에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허락해 주었기 대문이라고 한다. 과연 박테리아의 한계는 있을까? 두려움 마져 든다.

  그런데, 박테리아에 맞먹는 생물이 있다. 피롤로부스 푸마리는 113도에서도 사는 초고온성 미생물이다. 이 책에 따르면 대략 섭씨 120도 정도에서도 미생물은 살아갈 것이라 한다. NASA는 혹독한 환경이라도 액체의 물과 약간의 화학에너지라면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약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어느 것 보다도 강하다는 생각이든다.

 

 

2. 유발하라리의 흔적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유발하라리의 박식함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역사의 영역을 벗어나는 과학의 영역에 대한 서술이 과연 옳은 견해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유발하라리가 단순히 자신의 상상력에만 근거하여 사피엔스를 서술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인간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배웠다. 그런데, 유발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는 오스틀라로 피테쿠스를 비롯한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와 별개의 종으로 설명했다.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혼란이었으며, 과연 유발하리의 주장이 과학자들의 보편적인 생각인지가 의심이 되었다. 이 책에는 인류는 아프리카를 2번 탈출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200만년전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해서, 자바인, 베이징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델르탈렌시스로 진화했고, 10만년전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호모 에렉투스스를 박멸하며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물론 다지역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유발 하라리의 서술은 틀렸다고 볼 수가 없다.

  유발 하라리는 생명체를 유전자를 남기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존재로 보았다. 우리가 밀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밀이 인간을 혹사시키면서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번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좀 억지스럽게도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도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도 불싸하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유발하리라의 견해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를 저술하기 이전에 혹시, 이책을 읽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3. 방사능! 그 위험성과 인간의 무지!!

  한국 탈핵을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이제 대세가 되었다. 10여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탈원전 정책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탈핵정책이 한국의 과제로 다가왔다. 원전마피아라고 비판을 받던 세력들이 이제는 다급한 마음에 갖가지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탈원전 정책은 끔쩍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핵에 관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다.

  퀴리부인의 전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퀴리부인의 죽음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퀴리부인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결국, 백혈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퀴리부인의 실험 노트는 밀폐된 통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호복을 입은 사람만이 볼수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1938년이 되어서야 생활용품에 방사성 물질을 넣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비한 에너지원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치약과 왕하제에 방사성 토륨을 넣고, 글렌 스프링스 호텔은 "상사성 미네랄 온천"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신비한 에너지가 사실은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퀴리부인은 용감하게 라듐을 연구했으며, 인류는 1938년이 되어서야 생활용품에 방사성 물질을 넣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핵발전소를 계속 지어졌고, 핵발전소에 이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핵발전소가 필요하다는 신화를 만들고 있다.

  핵발전소가 사고가 날 확률은 백만분의 1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핵사고는 백만분의 1의 비율로 일어나지 않았다. 쓰리마일 사고,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만 원전 폭발!! 핵발전소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난 샘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한 핵발전소를 두개의 판이 충돌하는 지역에 짓고 있다. 빌 맥콰이어는 도쿄를 '죽음을 기다리는 도시'라고 표현했다. 왜? 그랬을까? 두개의 판이 충돌하면 한쪽이 밀려 날때까지 압력은 높아진다. 지진이 일어나는 간격이 길면 압력은 세지고 지진의 강도도 세진다. 이렇게 쌓인 압력이 한꺼번에 터진다면, 도쿄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후쿠시마 핵사고는 핵발전소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과 두개의 판들이 부딛히는 곳은 지진이 일어날 수 있었음을 알았다면, 일본은 핵발전소를 짓지 말았어야한다. 그런데 그들은 핵발전을 계속했고, 결국 후쿠시마 핵사고라는 무시무시한 재앙을 맞닥들이게 되었다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미국은 1946년부터 1990년까지 55갤런짜리 드럼에 넣은 방사성 폐기물을 샌프란 시스코에서 약 50km 떨어진 파랄론제도에 싣고가서 바다에 던져버렸다.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성을 잘알고 있는 인류가 방사성 폐기물을 생명의 보고인 바다에 무단으로 투척했다. 어쩌면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을 미국이 용인한 것도 과거 자신이 한, 방사성 폐기물의 바다 투척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지 의심이든다. 생명의 바다가 후쿠시마 원전과 과거 인류가 벌인 핵실험과  핵폐기물 투척에 의해서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4. 생명을 위한 축복의 별!!

  지구는 생명탄생을 위한 축복의 별이다. 금성처럼 태양과 너무 가깝지도 않고, 화성처럼 멀지도 않은 훌륭한 위치에 서 공전하고 있으며, 적당한 크기의 태양이 있다. 태양이 더 컸다면, 태양은 더 빨리 타버렸을 것이다. 액체의 외핵이 존재해서 우주선을 차단해주는 자기장이 생겼으며, 지구를 안정화시키는 달이 존재한다. 적절한 시기에 공룡이 멸종되어 인간은 공룡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지구라는 별은 생명이 탄생하기에 너무도 좋은 축복의 별이다.

  이러한 지구도 5차례의 대규모 멸종과 수많은 소구모의 멸종이 있었다.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키아스기, 백악기가 그 5차례의 대멸종이다. 지구를지배했던 공룡도 멸종했다. 다른 종의 번성을 위해서는 멸종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도 대멸종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멸종하지 않고 영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인간은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이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실험이 소개되어 있다. 쥐의 눈을 발달시키는 유전자를 초파리 유충에 삽입했는데, 놀랍게도 초파리의 눈이 생겼다. 또한 바나나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기능의 절반이 근본적으로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기능과 같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인간만이 만물을 지배하는 특권을 가졌다는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을 때, 인간이 스스로 초래할 수 있는 대멸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지않을까?

  지구가 인간을 위한 축복의 별이라고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는다. 즉, 우리가 지구가 제공하는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지구가 인간을 위한 축복의 별처럼 생각되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타행성에 적응한 생명체가 우리 인간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저자는 먹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음식에는 셀레늄, 망가르니즈를 비롯한 많은 원소가 있기에 그들은 우리의 음식을 먹고 죽을 수도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지구인이 다른 행성에 가서도 그 행성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지구별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인간은 지구별의 수많은 생명체들을 멸종시키고 있다. 날개없는 도도새를 서구인들이 마주친지 7년만에 멸종시켰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를 인간은 멸종시키고 있다. One planet, one experiment!! 하나의 지구, 하나의 실험이라는 윌슨의 말처럼 우리에게 지구는 하나의 행성이고 우리는 하나뿐인 실험을 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다른 종들을 멸종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멸종은 인간 자신으로 까지 번질 수 있다. 이에 대한 해결의 열쇠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 이제 그 능력을 지구의 생명체들과 나눌차례가 온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이루어야만할 의무이다.

 

5. 책속의 옥의 티!!

  빌 스라이슨은 어렵과 딱딱한 과학지식들을 쉽게 설명하려 무척이나 애를 썼다. 과학자들의 뒷이야기를 꼼꼼하게 파헤쳐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서술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너무도 힘든 부분이 많았다. '무궁형, 광궁형, 이궁형...' 이러한 개념을 설명할 때는 관련된 사진이나 도표를 삽입했어야했다. 그러나 단한장의 사지도 이 책에는 들어있지 않다. 겉표지에 있는 호모에렉투스와 공령들, 그리고 태양계를 비롯한 몇 장의 사진이 전부이다. 과학을 대중화하려는 빌 브라이슨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초상화나 사진을 첨부하고, 관련 개념을 깔끔하게 도표로 정리하고, 관련 사진을 첨부했더라면 이 책이 덜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옥의 티는 2003년에 발행되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미국인이 발견한 명왕성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다. 그래서 "1999년 2월에 국제천문연합이 명왕성이 행성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것은 좋은 소식이다. 우주는 크고 외로운 곳이다. 가능하면 많은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명왕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런데,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에서 행성의 분류법을 변경함했고, 그에 따라서, 크기가 충분히 크지 않고, 주변의 얼음 부스러기 등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충분한 중력이 없어 명왕성의 행성지위를 박탈하였다. 미국 표현에 '그사람 명왕성 됐어'라는 표현은 '그 사람 끊떨어졌어'라는 뜻이라 한다.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134340'이라는 번호를 부여 받은 명왕성에 대한 지식을 수정하지 않았다. 개정이 시급한 부분이다. 아마도 개정판을 낸다면, 빌 브라이슨은 태양계의 가족이 줄어들었다고 슬퍼할 것이다.

  옥의 티는 단순히 재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전곡리 유적지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세계 구석기 문화를 유럽의 아슐리안 문화와 동아시아의 찍개-찌르개 문화로 나누었던 하버드대학교의 모리스교수의 이론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이다. 지금도 해마다 구석기 축제를 열고, 세계의 구석기 연구자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아슐리안 도구가 극동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적고 있다. 전곡리 유적지는 1978년에 발견되었고, 1979~83년에 6차례, 그리고 1986, 1991년에 발굴되었다. 이 책이 나오기 한참 전에 이미 여러차례 발굴이 완료되었다. 그런데도 이책은 이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백인 우월주의가 가미되어 있는 모리스교수의 이론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 것은 빌 브라이스의 실수일까?

 

6. 도도새로 살 것인가? 신천옹으로 살 것인가?

  신천옹이라는 새를 아는가? 알바트로스라고도 부른다. 한번 하늘을 날면 힘차고 멋있게 자유로이 하늘을 날 수 있다. 한번 날면 6일 동안 착륙하지 않고 하늘을 날며 어느 알바트로스는 10년을 날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착륙하면 날개는 거추장 스러운 존재가 된다. 뱃전에 부딪힌 알바트로스는 날지도 못한다. 충분한 이륙 공간이 없기에 날수도 없다. 여행객이 돌을 던져도 뒷둥거리며 도망갈 뿐이다. 알바트로스의 날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차라리 이 날개를 없애버리는 것이 신천옹에게는 더 낫지 알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면 날개없는 도도새로 살것인가? 도도새는 태평양의 섬들에서 살고 있었던 새들이다. 자신의 천적이 없었기에 도도새는 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힘들여 날기보다는 날씬한 다리로 걸어다니며 평화로이 살았다. 그런데 백인들이 태평양에 도착하자, 그들을 만난지 7년만에 도도새는 멸종되었다. 하나남은 도도새의 박제품도 불속에 던져졌다.

  우리는 도도새로 살 것인가? 신천옹으로 살 것인가? 나의 웅대한 꿈을 쫒으며 살 것인가? 꿈을 포기하고 편안한 삶을 살 것인가? 도도새와 신천옹의 이야기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7. 재미있는 과학 상식들..

 연금술에서 화학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의 브란트는 소변으로 '금'을 만들려다가 '인'을 발견했다. 지하창고에 오줌 50통을 모았다니, 브란트의 인내력은 대단하다.

  진화론을 아는가? 진화론은 다윈이 처음 주장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다윈 이외에 윌리스, 패트릭 매튜도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을 주장했다. 우리 기억속에 다윈이 최종적으로 기억되었을뿐, 다윈만이 진화론을 최초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객관적인 사실과 우리가 기억하는 사실사이에는 많은 간극이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들어보았는가? 그렇다면 허블이라는 과학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가? '허블'은 우주는 우리 은하만이 아니라 수 많은 독립적인 은하로 구성된 '우주섬'이라는 사실을 밝힌 사람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자, 허블 우주 망원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통설로 받아들여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판구조론이 나와 대륙이 이동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대륙이동설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대륙 이동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오스트레일리아가기울면서 가라 앉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앞부분은 180m 아래로 꺼졌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한다면, 대륙이동설도 무너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론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보다.

  스페인 독감을 아는가? 그럼, 스페인 독감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 생체실험이 시도된 것은 아는가? 보스턴항의 디어섬  '군용감옥'에서 62명의 지원자들에게 배설물을 목안에 발라주고, 스페인 독감에 걸린 환자가 죄수의 얼굴 앞에서 기침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62명의 죄수는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단지 의사가 걸려 사망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니이다. 인간을 대상으로한 합법적 생체실험!! 이러한 생체실험을 했던 미국이 과연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읽었던 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빅 히스토리'라는 책이다. 빅뱅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 걸음마 단계에 있는 빅히스트리를 쉽게 설명해 놓은 이 책을 읽고, 우주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이번에 읽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빅히스트리를 심도있게 서술한 책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책도 빅뱅에서 현재까지의 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빅 히스토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아울러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고 싶은 문과생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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