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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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는 죽은 생물의 사체나 썩은 나뭇잎과 수초 등을 먹으며 물속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그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한 소녀가 살았다. 카야라 불리는 소녀는 가재와 같은 삶을 살아야했다.

 

그녀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오빠와 누나도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상의군인인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 폭력을 이기지 못해서 카야의 오빠와 누나가 떠났고 마침내는 사랑하는 엄마도 그녀의 곁을 떠났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버지는 잠시 그녀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였으나 집나간 아내의 편지를 받고서는 다시 술에 빠져 행방불명되었다. 카야의 곁에 있어야할 가족은 그녀 곁에 있지 않았다.

가족이 떠나자 그녀를 보살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를 마쉬걸이라며 마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학교 아이들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자신을 보호해야했다. 카야는 두꺼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조디 오빠의 친구인 테이트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러나, 테이트는 대학에 진학하자 그녀를 떠났다. 그 빈자리를 체이스에게 내어주었지만, 현실이 싫어 도망친 곳은 천국이 아니었다. 체이스는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힘으로 여성을 정복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카야에게 결혼하자고 거짓말을 했다. 지역신문을 통해서 체이스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야 카야는 자신이 갑옷을 벗어던진 댓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았다. 가재는 값옷을 벗어던지는 순간 생명을 내놓아야했다.

그녀가 사는 습지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그곳에 가재는 썩은 나뭇잎이나 죽은 생물의 사체를 먹으며 물속을 청소한다. 가재는 물을 살리는 신성한 일을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가재의 존재는 다른 물고기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한다. 그녀가 사는 습지도 다양한 생명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물을 정화하여 생명을 살리는 곳이다. 그곳에 사는 그녀도 자연을 관찰하며 자연의 친구가 된다. 자신이 사는 습지가 할아버지 소유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밀린 세금을 내고 자신의 소유로 만든다. 그 누도 함부로 습지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녀가 습지의 파수꾼이 된 것이다.

카야는 단순히 습지를 보호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습지에 살면서 나비, 조개, 갈매기들과 교감하며 습지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습지 생명을 사랑했다. 습지에 대한 사랑의 결과를 기록해서 책으로 출판했다. 습지에 대한 사랑은 그녀를 자연생태 학자이자 훌륭한 작가로 성장시켰다.

그렇다면, 카야는 가재처럼 두꺼운 갑옷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할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갑옷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카야는 더 큰 사랑을 누릴 수 없다.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 생명 탄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듯이 갑옷을 벗어 던지면 받게 되는 상처를 이겨내야 더 큰 사랑을 누릴 수 있다.

카야는 체이스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카야의 삶에 불어닥친 최대 위기였다. 나는 체이스 살해 범인을 테이트로 보았다. 체이스가 카야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진정으로 카야를 사랑한 사람이 테이트이니 당연히 체이스를 죽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더욱이 암컷 반딧불이 수컷을 유인해서 잡아 먹는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이는 테이트라는 수컷 반딧불이 카야라는 암컷 반딧불의 유혹에 빠져서 체이스를 죽이고 교수형을 당한다는 암시로 읽혔다. 습지소녀의 성장소설이자, 생태소설인 '자재가 노래하는 곳'은 갑자기 법정 스릴러로 변했다. 나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리고 그 빗나간 예상이 소설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가재는 갑옷속에 자신을 숨겨야하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자신을 공격하는 자에게는 강력한 집게로 공격하여 자신의 먹이로 삼는다.

 

책장을 덮었다. 표지 사진을 다시 보았다. 아름다운 코와 매력적인 입술을 가진 카야의 모습이 영롱하게 다가왔다. 사회적 약자에게 덧씌운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 그녀가 매혹적이다. 주어진 삶을 원망하며 사회적 쓰레기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을 당당한 인격체로 인식하고 자신이 태어난 습지를 사랑하며 당당한 생태학자이자 작가로 성장한 그녀가 아름다웠다. 임제 스님이 말씀하신 '서있는 곳에 주인이 된다면 네가 서있는 바로 그곳이 진리의 세계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라는 법문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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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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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들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84쪽

  

  누군가는 그들의 편에 서 있어야한다. 따뜻한 마음과 예리한 논리를 가진 학자와 변호사가 약자의 편에서서 그들을 변호해야한다. 따뜻한 감성만으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그들이 필요하다. 냉혹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한다. 그 한사람이 바로 김승섭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학자 김승섭은 의학공부만으로 시간이 부족한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2003년, 시험을 앞둔 친구들에게 함께 반전 집회에 나가자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을 받아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짜자고 햇살은 저렇게나 맑고 하늘은 끝없이 푸른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생명에 더 가슴 아파하는 그의 인류애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김승섭은 보통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보적 인사들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다. 산업재해로 자살한 노동자 추모집회에서 노동자와 대치하고 있는 전경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기회만가 주어진다면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만큼이나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 명령에 따라 그들을 진압해야 했던 젊은이들이 겪었을 상처에 대해서도 꼭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좌와 우라는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래로 고통받는 노동자의 고통에만 공감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강제로 군대에 끌려와서 악역을 수행해야만하는 20대 젊은이의 고통에도 그는 관심을 갖는다. 고통받는 자라면 그가 어느 진영에 가까운지를 따지기 보다는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고통을 학문적으로 밝혀내어 제도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학자가 김승섭이다.

  그런데, 김승섭, 그가 보호할 수 없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는 무엇을 할까?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한다."-219쪽


  2017년 5월 24일 육군 보통 군사 법원이 사적 공간에서 동성과 합의된 성관계를 맺은  A 대위에게 유죄를 선고하자 뭐라도 해야될 것 같아서 성소수자를 위한 집회에 참석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부당한 처벌을 막을 수 없다면, 성소수자의 편에서서 같이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게다고 그는 외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 고통에 없애줄 수 없음에 가슴 아파하며 같이 고통을 느끼는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김승섭이다.

  저자 김승섭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김승섭이 이 책에서 가장 먼저한 말은 말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한 상처를 몸은 기억한다는 말한다.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없다고 말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보다 우울증상 위험비가 더 높았다. 학교 폭력을 겪은 후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했던 다문화 가정 남학생들이 가장 아팠다는 연구 결과를 보며 나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도 학교 폭력 설문조사에서는 '해당사항 없음'을 클릭하는 우리 사회의 숨은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고통을 말하지도 못하는 깊은 상처를 가진 이 사회의 숨은 약자를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김승섭은 또하나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식량상태가 넉넉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과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연구한 결과이다. 이 연구서도 우리몸은 고통을 기억한다는 진실을 보여주었다. 사춘기 시절까지는 두 그룹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나, 40세가 넘으면서 생존율이 1.5배가량 차이가 났다. 우리의 의식은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 몸의 정직성을 알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김승섭은 '개인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총기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미국 시카고와 총기 소유에 엄격한 규제를 둔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비교연구한 결과를 비교했다. 잉글랜드/웨일스의 인구규모가 시카고보다 20배가량 큰데도 불구하고 시카고는 2016년 한 해 동안 762명이 죽었고,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571명이 죽었다. 국가가 자신의 안전을 개인에게 떠넘긴 미국은 강력한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안전을 통제한 잉글랜드/웨일스 보다 많은 댓가를 개인이 지고 있다. 어디 총기 규제 문제 뿐이랴! 보건, 복지, 교육분야에도 이러한 논리는 적용된다. 한국 사회는 복지와 교육 분야를 개인에게 너무도 많이 떠 넘기고 있다. 불안한 개인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여러개의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김승섭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일갈한다. 


  "노동자들이 해고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 입안작의 책무이자 역할이다."-102쪽


 우리 사회는 모든 고통을 개인이 감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복지를 늘려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보호하려해도 어리석은 국민은 어리석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사회적 안전망은 약화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수탈의 대상으로 보느냐, 주인으로 섬김의 대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개, 돼지 취급을 당할 수도 있고, 개개인을 숭고한 생명으로 존중받을 수도 있다. 

 당신은 거미를 본적이 있나요. 김승섭은 우리에게 물었다.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위험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 담배를 핀다. 따라서 산업안전 프로그램과 금연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 사업장에서 금연율이 올라간다. 우리는 거미줄 처럼 여러가지 요인이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증상만 보려하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보아야한다. 잘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듯,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인에 의해서 고통받기도하고 슬퍼하기도한다. 그리고 기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국가도, 지구도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관계망과 개인의 건강을 연구한 결과에서는 친구, 부모, 형제, 자매 등 사회적 관계망이 개인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나의 건강도 사회적 관계망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준다.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의 심장병 발생율은 충격적이기까지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공통체인 로세토는 유달리 심장병 사망자가 적었다. 로세토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즐겼고, 비만인도 많았다. 그런데 심장병 사망자는 오히려 적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문화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로세토 사람들은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며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고 살았다. 자신도 곤경에 처하면 이웃이 도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가 나와 가족을 지켜준다는 공동체 문화가 심장병 사망자를 줄였다. 

  그러나, 로세토 마을의 공동체 문화가 붕괴하면서 심장병 사망율이 1940년에 비해서 1970년에 2배나 증가했다. 공동체 문화의 붕괴는 위기에 처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게한다. 이것은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심장병 사망율 증가로 이어졌다.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 마을 공동체 문화가 개인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국가와 지구로 확대시켜보자. 각자도생의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사회적 연대감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이 국민의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약육강식의 국제 사회보다는 약소국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이 더 행복한 지구인을 만들지 않을까? 우리 대한민국은 그러한 사회를 만들고 있을까?

  어느 세월호 생존 학생은 참사 이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서를 남긴다고 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저자 김승섭은 세월호 참사가 참사의 연쇄 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이 정권에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면서 비극의 연쇄고리는 아직도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00초등학교에서도 대낮에 음주를 한 운전자가 인도를 걷던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했다. 같은 학교의 피해학생반 학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전 00 초등학교의 한학생은 어느날 갑자기 우리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보수 정권에서 끊이지 않는 참사의 연쇄고리는 우리 사회를 집단 트라우마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김승섭의 큰 울림이 담긴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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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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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강력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은 진지하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블랙 코미디'였다. 첫문장에서부터 작가의 남다른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아버지 초상을 치루는 삼일 동안의 일을 담담하게, 때로는 냉철하면서도 가슴 뜨겁게 그린다. 저자 정지아는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그러하기에 그녀가 소설에서 그리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과 용서는 우리 이야기이기도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픈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보통 웃음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에서 나온다. 이 책 속의 아버지는 자본주의가 승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젠가는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이상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다. 부인과 싸울 때에도 사회주의 논리를 들이댔다. 방물장수 여인을 좁디 좁은 자신의 집에 재우려하자 어머니가 성화를 냈다. 그러자, 아버지로 어머니를 제압했다.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는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했던 민중이여, 민중!"

 

이글을 읽을 때 웃음이 튀어나왔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느껴졌다. 현실에 이상의 공간을 옮겨 놓으니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는 말이 있다. 방안에서 책만 읽어 얼굴이 하얀 선비가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경우에 쓰는 말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전형적인 백면서생이었다. '공산당 선언'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이상을 굳게 믿었다. 농사도 '새농민'을 탐독하며 '새농민'이 하라는데로 했다.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리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고 책의 뜻을 취했다면 책은 버려야한다. 책의 본질을 나의 가슴속에 담아 두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현실의 길을 모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현실과 괴리된 책 속의 이상에 얽매여 살아간다. 세상을 잘못 만난 자신의 불운을 탓하면 한세상을 한탄한다. 책속의 아버지는 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책의 노예가 된 전형적인 백면서생이다.

그래도 소설속의 아버지는 인텔리이다. 나는 그런 인텔리 아버지를 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학교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도 동생들은 교육시키겠다며 도시에서 노동을 해서 두 동생을 공부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배우지 못한 형에 대한 무시였다. 자신이 동생을 어떻게 교육시켰는데 자신을 무시하냐며 술을 마시며 명절 분위기를 공포분위기로 만드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주경야독하며 배우려하지 않고, 동생을 가르쳐 덕을 보며 살겠다는 얄팍한 아버지의 생각에 몸서리가쳐졌다. 소설 속 고아리는 어쩌면 그래도 부러운 인텔리를 아버지로 두었다.

아버지 고상욱은 동네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처럼한다. 아니, 자신의 일을 제처두고 동네 머슴이 되어 일을 한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고 혁명을 꿈꾸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버지 고상욱이 내뱉은 말은 '사회주의 이상'이라는 나의 생각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민심만 안잃으면 난세에도 목숨은 부지허는 거이여"

 

그렇다.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빨치산 출신의 빨갱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머슴이 되어야했다. 동네 머슴이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그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내기를 해야하는데도 이를 내 던지고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그의 투쟁이 보엿보였다.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겠다는 그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자라는 생물학적 특징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속의 주인공 고아리는 하동댁 궁둥이를 뚜딜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아버지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보통 남자였다. 아니,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남녀가 이성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대중강연에서 공지영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영화화하면서 배우 강동원을 직접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들뻘되는 강동원을 보면서 자꾸 눈길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인데 인간의 본성을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소유욕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없애려했던 사회주의가 역사에서 퇴출되지 않았던가?

책을 읽는 내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버지 장례식에 군수, 국회의원, 총장, 학장, 학과장의 화안이 답지했다. 심지어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가 빨치산 아버지를 고기 몇근 들고 찾아 오기도 했다. ? 그들은 빨치산을 존경하는 것일까?

대학시절, 어느 단과대 학우가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그 당시 치열하게 투쟁했던 빨치산의 모습을 보고 각성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나는 빨치산들은 '민족'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보지 못하고 이념의 노예가 되어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들이댄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내말에 할말을 잃은 학우는 그후로 나와 관계를 끊었다. '이념'이라는 허상에 홀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아귀다툼을 하는 자들을 과연 긍정할 수 있을까?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정지아는 말한다. 그와 비슷한 말을 나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외숙모께서 하셨다. '죽은자는 저 세상으로 떠나면서 자신에 대한 나쁜 감정까지 가져간다.' 아버지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면서 무던히도 그를 원망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 보내자, 그가 좀 더 살아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꿈틀거렸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산업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정부는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다. 농사를 지어도 항상 적자일 수밖에 없는 산업정책과 산업 구조 속에서 힘든 노동을 잠시 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은 한잔의 술이었다. 농촌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알콜 중독이 되어갔다. 간경화로 이 세상을 뜬 사람이 우리 마을에는 많다. 그 한사람이 나의 아버지이다. 지긋지긋한 술을 좋아한 나의 아버지는 술을 핑게로 가족에게 상처를 안겼다. 담석증으로 쓸개를 떼어냈는데도 아버지는 꿋꿋하게 술을 드셨다. 어머니의 성화를 피해서 몰래 소주를 사다가 숨겨 놓고 먹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저자 정지아도 아버지가 남긴 '빨갱이'라는 주홍글씨가 그녀를 옥죄었다.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소설로 작품활동을 한 그녀가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쓴 소설 같다. 정지아는 조문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떠올린다. 그 과정을 통해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화해한다. 나도 그랬다. 애증이 교차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나보내며, 못난 당신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절규하면서도 그가 그리운 것은 당신에 대한 용서를 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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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 -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수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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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라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아름다운 표지 때문이다. 동화같은 몽환적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답게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저자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듯했다. 

  저자는 치유로서 글쓰기를 한 사람이다. 대인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고통의 긴 터널을 뚫고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리고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는 자신이 어떻게 그 긴 터널을 뚫고 글을 썼는지를 고백한 고백서이자, 글쓰기 안내서이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이수아 작가의 성격이 나와 닮았다. 물론, 이수아 작가가 그 증상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 고통이 심했기에 고통에서 벗어나려 책을 붙잡고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두권의 책을 낳았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프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치열하게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수아 작가가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쓰기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이 말을 이수아 작가는 여러번 강조한다. 그녀는 매일 빠듯한 시간을 쪼개며 글쓰기에 매진하며 천여편이 넘는 에세이를 창작했다. 그녀는 한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수많은 글을 쓰면서 근력을 기르고 있었다. 많은 글쓰기 책들이 강조하는 글쓰기 비법이있다. 


일단 쓰라! 

쓰고 나서 고쳐라! 


  이수아 작가는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나답게 살기 위한 길을 걷게 되었다. 공지영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서 사형수들의 수기를 여러편 읽었다. 그러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범죄에 반성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기가 중반을 넘기자,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론부에서는 반성과 후회를 적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 감정의 분출이 끝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글쓴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병이 치유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수아 작가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대인공포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고쳤다. 글쓰기 근력을 길러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책일기와 글쓰기는 그녀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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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4-05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좋아하면 결국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ㅎㅎㅎ

강나루 2023-04-05 21: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데, 책읽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4-05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게 해준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간혹 감정이 상하는 경우에 간단한 일기 같은 것을 쓰면서 안좋았던 감정들이 어느정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3-04-07 13:02   좋아요 2 | URL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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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엘의 '1984'와 대비되는 미래사회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가족도 고통도 없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하는 사람도 없으며, 가족 때문에 상처받을 사람도 없다. 물론, 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행복감과 푸근함도 없다. 대신 '소마'라는 해롭지 않은 마약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조건 반사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일을 즐겁게해낸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책은 콘베어밸트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자본주의의 극단적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미래사회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와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 사회에 대한 민낯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도 보였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수호자 중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통치자와 전사 계급에 해당하는 수호자, 평민 계급인 생산자가 그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지도층인 '알파', 증산층 '베타', 하류층 '감마', 단순 노동을 담당하는 '델타''엡실론'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사회보다 계급이 보다 세분화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가족을 이루지 않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영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 플라톤이 우수한 남성과 우수한 여성이 성교하도록 유도하고, 열등집단이나 장애아는 유기되어 죽도록 방치했다면, '멋진 신세계'는 태아 때부터 영양 공급을 조절하여 우수한 계급과 열등한 계급을 조절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람들은 고통이 스며들 때마다 소마를 마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따른다. 플라톤이 상상한 이상 국가를 '멋진 신세계'는 첨단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보다 구체화하고 보다 안정된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대공황이 불어닥친 1929년을 지나 아직도 대공황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대공황을 겪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1932년에 출간된 '멋진 신세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 '버나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마르크스'에서 가져온 듯하며, 그와 잠시 교제했던 '레니나''레닌'의 여성화 표현으로 보인다. 주인공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며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사회에 가서 ''이라는 야만인을 데려온다. 포디즘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이라는 야만인이 멋진 신세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야만인 ''이 본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촉감 영화를 보며 쾌락의 절정에 이르며, 파트너를 건너뛰며 새로운 쾌락을 즐긴다. 무료함을 느낀다면 소마를 마신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탄신일을 기념하며 공동체 찬가를 부른다. 콘베어밸트에서 필요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듯, '런던 중앙 인공 부화 조건 반사 양육소'에서 쌍둥이들을 대량생산한다. 아기들에게는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시 교육법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그들은 늙음과 죽음도 모른다. 호르몬제와 소마 덕분에 60세까지 젊음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죽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이 없으니 애도해줄 사람도 없다. 야만인 ''은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울분을 터트린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D 사이의 C이다.'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멋진 신세계는 B (Birth, 탄생)D (Death, 죽음)를 빼앗아 갔다. 그로인해서 C (Choice, 선택)도 할 수 없게 했다. 죽음을 직면하지 못한 신세계인들은 각성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직면한 야만인 ''은 각성했다. 그리고 소마 배급을 받는 그들에게 달려가 각성하라고 울부짖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소마 배급을 받으려 늘어선 인간들을 보면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인간들이 생각났다. 교주가 예수라고 세뇌 시키고 가스라이팅을 통해서 복종을 주입시킨다. 아름다운 그녀들이 교주를 위해서 나체로 교주를 영접한다. 교주가 원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교주의 방에 밀어 넣는 신도들의 모습에서 멋진 신세계가 보였다. 수면시 교육법과 조건 반사 훈련으로 본능적으로 복종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멋진 신세계와 사이비 교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행복해하는 불쌍한 신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야만인 ''은 총통 무스타파 몬드와 만난다. 재미있는 것은 총통의 이름이 '무스타파'라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시기, 갈리폴리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을 구한 전쟁 영웅이자,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며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이 총통의 이름이라니! 총통 무스타파는 논리적으로 야만인 ''과 대화한다. 그리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하일라이트이다. 완벽한 쾌락이 주어진 사회에서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가? 성공만이 행복을 약속하며, 돈이 곧 성공을 뜻한다고 주입시키는 우리사회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바라보며,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 길이 사실은 모두 불행해지는 집단체면의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혹은 그것을 알지만, 선듯 야만인 ''처럼, 자연을 선택한 '자연인'처럼 선택지에 없는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한다. 닭장에 갖힌 닭은 닭장에 불만을 품지 않고 맛있는 사료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혹시, 우리는 집단 체면에 걸려 현대 물질 문명의 닭장에 갖혀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닭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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