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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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서 였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친구가 두권의 책을 빌려주었다. 하나같이 재미있고 많은 진실을 알려준 책이었다. 그 중한권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역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유시민은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그 책을 유시민이 지명수배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쓴 책이란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의 책을 '국가란 무엇인가'를 거쳐, '역사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도 성장했지만, 유시민의 글쓰기도 많이 변화했다. 그의 역사 글쓰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1. 유시민님, 맞는 표현인가요?

  전문역사가가 아닌, 유시민의 책을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쉽게 읽을 수 만은 없다. 하나하나 과연 유시민의 말이 옳은지를 눈독들이며 읽었다. 직업병이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만리장성 바로 너머 요동지역'이라는 표현이 과연 옳을까? 문제의 문장을 살펴보자.

 

  "신채호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고대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 압록강이나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만리장성 바로 너머 요동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유시민은 주어를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로 본다면, '만리장성 바로 너머'는 요동 지역이 아니라, 북경이어야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만이, '만리장성 바로 너머'는 '요동지역', 혹은 요서지역이 될 수 있다. 유시민의 실수었을까? 아니면, 공간개념이 확실하지 않아서 생긴 오류일까?

  둘째, 백남운은 '민족주의 사학자'일까? 사회경제사학자일까? 유시민은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백남운은 사회경제사학자이다.  이들 사회경제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실증성이 약하다며 비판한 자들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이들을 한데 묶었다.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백남운이 사회경제사학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회경제사학자 백남운을 민족주의 사학자로 묶은 이유를 서술했어야했다. 그것이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특히, 이 책을 읽을 중고등학생은 유시민의 책을 그대로 믿고 시험에 오답을 고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셋째, '선사시대'를 '선사시대'로 부르는 것은 합당한 표현일까? 유시민의 주장을 살펴보자.

 

  "인지혁명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경우 선사시대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농업혁명 전에도 역사가 있었다. 유적과 문헌 사료가 없고 그 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몰라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 유시민은 '선사시대'를 역사가 없는 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선사시대'란 역사 이전의 시대란 뜻이다. 즉, 역사시대는 문헌기록이 남아있는 시대를 뜻한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문헌기록을 토대로 과거를 연구한다. 고고학적 자료는 부차적인 자료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선사시대는 역사 이전의 시대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분야는 고고학이다. 따라서 '선사시대'라는 표현은 '역사 없는 시대'라는 뜻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라는 뜻이다. 유시민이 선사시대를 '역사 아닌 시대'로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자의 실수일까?

 

2. 유시민님,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시민의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시사분석에 감탄하며 동의했던 시절이 있다. 그를 지지했고, 그가 정계를 떠난다고 발표했을 때, 그를 알아주지 않는 국민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그가 쓴 역사책들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정치와 시사를 바라보는 그의 해안에는 감탄하지만, 역사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한숨이 나온다.

  첫째, '무함마드가 문맹이어서 신의 말씀을 적지 못하고 암송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유시민의 글을 다시 살펴보자.

 

  "요즘 말로 하면 오랫동안 '무역회사'에 근무한 '젊고 똑똑한 사장님의 남편'이 글을 몰랐을 리 있겠는가."

 

  위인 중에서는 문맹인 자들이 꾀 있다. 칭기즈칸도 문맹이었다. 그러나 글을 몰랐음에도 현명한자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지혜를 얻었다. 이를 통해서 제국을 경영했다. 잉카문명의 경우 귀푸라는 채색 매듭을 사용하여 정보를 기록했지만, 문자는 없었다. 문자가 없이도 제국이 경영된 사례는 역사에서 흔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인도의 경우, 문자 기록이 많지 않다. 인도인들은 암송을 통해서 지혜와 지식을 전수했다. 불교 경전이 정리된 것도 중국과 인도를 오고간 승려들에 의해서 중국땅에서 한자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무하마드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오히려 글을 알아야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유시민의 생각이 '암송의 위력'을 이해못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 할머니들은 글을 알지 못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기억하고 처리했다.

  둘째, '(14세기 까지)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 맞는 말일까? 일찍이 한나라 무제 시기에 장건에 의해서 비단길이 열렸다. 이 때부터 로마와 중국은 교류를했다. 이러한 교류에 사막의 대상들이 활약했다. 동서가 교류하는데 서아시아 지역의 상인들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622년 이슬람 공동체가 탄생한 이후, 이슬람 세력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력을 팽창해나갔다. 618년 건국된 당나라에도 이슬람 상인들이 들어와 활약했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롬에도 이슬람인들이 드나들었다. 14세기 까지 이슬람 문명과 중국문명이 만나지 않았다는 헌팅턴의 주장을 유시민은 어이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말려들었다. 역사적 사실을 과역 그러한지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이론에 사실을 왜곡해서 끼워 맞추는 비역사 전공자들의 한계를 유시민은 답습했다.

  셋째, 문명은 충돌하는 것인가? 교류하는 것인가? 유시민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높이 평가한다. 그의 책을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인용하면서 그를 세계적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역사학자도 아닌자를 세계적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 놓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인물일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토인비는) 자신이 만든 가설 또는 이론을 어떤 국제정치학자가 냉전 붕괴 이후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을 해석하고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쓰게 되리라고 예상했을가?"

 

  문명은 충돌할 것이라는 헌팅턴의 주장을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판했다. 정수일 교수는 '실크로드학', '동서문화교류사'를 연구하면서, 문명은 교류하는 것이며,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것이 자신이 역사를 연구하는 소명이라 말했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 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이질 문화를 배척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문화를 포용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문명은 교류해야하며, 교류의 역사이다. 충돌은 갈헐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일 뿐이다. 그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문명이 교류한 역사를 밝히고, 그 문명의 교류를 확대해야한다. 유시민이 이점을 통찰하길 바란다.

 

 

  오랜만에 유시민의 책을 읽었다. 유시민의 책은 쉽게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을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바쳤던 그가, 우리에게 많은 책들을 선물하고 있다. 그 선물이 계속되길 바란다. 물론, 역사분야의 책들이 나온다면, 나는 유시민의 책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이점을 유시민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ps. 유시민이 10번 읽었다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쉽게 풀어 쓰는 것도 좋으이라 본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을 위해서 풀어쓰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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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5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8-12-15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다닐 때, 역사를 가장 못했고 여전히 난해한 분야입니다. 전공하신 분께는 디테일한 오류들이 눈에 띄는가 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daram 2018-12-15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유시민은 원래 제목처럼 삐딱한 인간이죠. 세치혀로 세상을 외곡하고 어찌해 보려 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시민은 선동가의 냄새가 짙습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가벼워 졌고 사회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어져 버린 어찌보면 문맹사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강나루 2018-12-15 10:56   좋아요 3 | URL
제 글을 오독하셨습니다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으로 지식을 쉽게 일반인에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외곡하고 선동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평가입니다
그의 삶을 토대로 볼때 그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했던 가슴 띄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경제로 읽는 교양 세계사 -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문학, 시사, 인물을 아우른 통합 교양서
오형규 지음 / 글담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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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문학, 시사, 인물을 아우른 통합 교양서"라는 표지 글이 인상적이 책이다. 그러나 여러가지를 음식을 한상에 차리려니 음식은 많으나 막상 먹을 것은 별로 없었다. 이 책에 걸었던 나의 기대감은 너무도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내가 실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책에서는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었던 것일까?

 

1. 비역사 전공자의 한계

  경제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오형규 작가의 전공인 국문학에 대한 소양을 담기 위해서 세계적 문호들의 소설들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가장 강한 것이 그의 전공인 문학분야와 경제학 분야이다. 그런데, 역사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적이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자의 역사인식은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이슬람 인들은 '한손에 칼, 한손에 쿠란'을 들고 지하드에 참여했기에 단기간에 넓은 영토를 넓힐 수 있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슬람인들은 '쿠란'에 나와 있듯이 관용을 베풀었다. 만약 서구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대로 무자비한 폭력과 살육을 저질렀다면, 강한 반발심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단기간에 제국을 건설했던 아시리아가 그리도 빨리 멸망했던 이유는 무자비한 폭력적 지배 때문이다. 이슬람이 무자비하게 피지배민족을 압박했다면, 이슬람 제국은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이슬람인들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지즈야'라는 세금을 내도록 했으며, 지즈야의 액수도 낮은 수준이었다.

  둘째, 이슬람제국이 기독교도의 성지 순례를 금지했기에 십자군 전쟁이 발생했을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이슬람인들은 이교도들을 박해하지 않았다. 교화 우르반느 2세가 십자군전쟁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면서 만들어낸 가짜뉴스이다. 살라딘이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와 협의한 내용도 기독교 성지 순례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슬람은 그 이전부터 성지순례자를 박해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살라딘에게 유리한 합의내용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얼마나 유럽 우월주의에 입각한 가짜뉴스를 남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의 관리들은 '네가 네죄를 알렸다.'식의 원님재판으로 백성을 착취했을까? 원나라의 '무원록'과 명나라의 '대명률'을 떠올린다면, 같은 시기 유럽에 비해서 얼마나 사법체계가 체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은 중앙집권적 나라를 2천년이 넘도록 유지했다. 중앙의 힘이 지방에 까지 미치기 위해서는 전국을 통일적으로 다시릴 사법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부터 법가 사상이 발전했으며, 한나라 시기에는 율령이 정비된다. 이렇게 발전하는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저자의 태도는 분노를 끓어오리게한다.

  넷째, 페스트가 몽골교역망을 따라 퍼져 유럽은 물론, 중국과 중앙아시아, 이슬람권에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을까? 타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장이라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럽보다는 그 영향력이 낮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세 유럽인들은 비누를 알지 못했다. 자신의 더러운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향수가 발달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하수도도 발달하지 못했고, 거리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서 남성도 하이힐을 신었다. 이러한 비위생적인 사회였기에 유럽이 가공할 페스트의 참극을 겪어야했다. 그러나, 여타지역은 유럽보다는 위생적이었기에 피해의 강도가 낮았을 것이다.

  다섯째, 정화의 업적이 계승되었다면 근대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까? 이 질문의 저변에는 역사는 서양사와 같이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로, 다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한다는 단선적 발전론이 자리잡고 있다. 서양과 동양의 관점이 달랐으며, 세계의 역사는 유럽처럼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발전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유럽의 사례가 특수한 세례이다. 유럽의 발전 단계를 근거로 타 지역의 역사를 단순히 꿰어 맞추는 역사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정화의 항해도 마찬가지이다. 콜럼버스가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 신항로 개척을 했다면, 정화는 조공체제를 확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목적부터 달랐기에 결과가 같기는 힘들다. 또한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가치를 창출하고 이익을 창출해야만한다. 정화가 조공체계에 천하를 포함시키기 위해서 항해를 하는한, 정화의 항해는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지못하며, 경제적인 부담속에서 정화가 죽은 이후, 그 항해는 다시 이뤄지지 않았다.

  비전공자가 역사책을 쓰려면, 역사에 대한 해박한 공부가 선행되어야한다. 이미 낡은 이론이 되어버린 사실들을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2. 경제적 관점으로 본 새로운 사실들

  그렇다면, 이 책은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모래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이 이책에서도 나의 눈을 틔워준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첫째, 대륙봉쇄령은 아무런 성과 없이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속화시켰을까? 놀랍게도 나의 상식은 무너졌다. '산업혁명이 뒤쳐졌던 유럽대륙에 기대치 않은 이득을 주었다.' 한예로 자국 면직물 산업을 육성해서 영국 면직물에 대항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단순히 실패한 정책으로 치부했던 정책이 의외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신선했다. 일반 역사학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경제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대륙봉쇄령'이 새롭게 보였다.

  둘째, 중상주의 정책은 절대왕정권을 강화시키는 성공한 정책이었다? 중상주의 정책을 교과서에서는 절대왕정을 뒷받침하는 경제정책으로서 성공한 정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책에는 구성의 오류를 들어 중상주의 정책의 실패를 말하고 있다. 각국이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그러면 보호무역으로 인해서 교역을 위축시키고 이것은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경우 농산물 수출길이 막히면서 농민의 피해는 높아졌다. 중농주의가 이러한 중상주의에 대한 발발로 출발했다니, 정말 신선한 충격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았기에 볼 수 있었던 사실들이다. 노란색의 안경으로는 황금을 구분해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3. 인공지능의 시대! 새로운 해안을 얻다.

  이책의 명문장은 서문에 있다.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게 아니고, 마차를 이어 붙인다고 기차가 되는 게 아니며, 기계를 부순다고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은 지루했던 이 책을 끝까지 읽도록 힘을 불어 넣어준 문장이다. 새로운 혁신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이 문장의 의미는 , 4차 산업혁명의 시대! AI를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이다. 시대의 변혁을 거부한다고 그 변화를 막을 수 없다. 새로운 혁신을 거부하기 보다는 그 혁신을 기회삼아 새로운 창조를 해야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거부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적기조례이다. 영국이 증기 자동차를 먼저 만들었으나, 증기 자동차는 도심에서 시속 2마일(3.2km), 교외 4마일(6.4km)이라는 속도 규제를 받았다. 운행시에는 60야드(55m) 앞에서 조수가 깃발을 들고 마부에게 자동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야했다. '적기조례'는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막았다. 그사이 미국과 독일 프랑스는 영국의 자동차 기술을 발전 시켰다. 1896년 우리나라에서 아관파천이 있었던 해에, 적기조례는 폐지되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영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미아가 되어버렸다.

  요즘, 카카오 택시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영국의 '적기조례'를 예로들며, 카카오 택시도입을 방해하는 세력을 '시대 착오자'라고 비난해야할까? 카카오 택시가 들어오면 택시기사의 생존권이 위협당하니 이를 규제해야할까? 시대 변혁을 막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을 최소화시켜야한다. 그렇지 않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면, 영국의 '적기조례'와 '러다이트운동'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것이다.

 

  일반이들에게 쉬운 수준의 책이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라기 보다는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읽는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서구 중심의 역사관은 반드시 수정되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세대에게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서구 우월주의를 세뇌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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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권력 인간 - 인류의 고전과 문제작, 전 세계를 뒤흔든 극적인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정승민 지음 / 눌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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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팟캐스트 '일당백'의 애청자이다. 청소를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특히 저자 정승민이 출연한 팟캐스트는 거의 빼놓치 않고 듣고 있다. 특유의 깊이있는 설명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에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매불쑈' 등도 같이 들었다. 그가 '역사, 권력, 인간'이라는 책을 썼다기에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교수님이 조근조근 강의해주시는 듯한 내용이 맘에 드는 책이다. 책 속의 내용도 대부분 그가 참여했던 팟캐스트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정승민은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1. 영웅에 대한 정승민의 생각?

  "영웅은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누군가에게 넘기려는 집단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아닐까요"-정승민-

  위기의 시대는 영웅을 필요로한다. 일제에 의해서 국권을 강탈당하던 시기, 신채호와 박은식 선생은 영운전기를 썼다. 영웅 전기를 읽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영웅이 되어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원해달라는 염워에서 영웅전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개인이 있어야한다. 그 영웅을 뒷받침 해줄수 있는 수많은 민중이 있어야, 한명의 영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있기 위해서는 그를 믿고 따랐던 다수의 백성들이 있어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장 건전한 사회는 한명의 영웅에 의지하는 사회가 아닌, 다수의 현명한 개개인이 집단의 일을 현명하게 연대하며 해결할때 만들어 진다. 이명박근혜시기에 영웅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한명의 영웅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다수의 깨어있는 시민들의 합작품이다. 영웅의 출현을 기원하기 보다는 우리 개개인 모두가 사회에 주인의식을 갖는 깨어있는 주인이 되어야할 때이다.

 

2. 정승민님! 동의하지 않습니다!!

  작가 정승민은 권력이라는 프리즘으로 11개의 주제를 살펴보고 있다. 작가가 북콘써트에서 밝혔듯이, 원래 쓰던 책이 잘 쓰여지지 않아, 주제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사, 권력, 인간'이라는 책의 전채를 관통하는 주제와 작가가 하려는 말이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책들 곳곳에서 열설가의 웅변조의 말들이 많아 정승민의 주장을 한번은 의심하면서 읽게된다.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정승민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설명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업은 정책은 잘못하더라도 바로 수정" 가능하다며, 여론의 지지를 얻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영삼 정권시기의 대북정책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며, 정승민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김영삼은 여론의 눈치를 많이 살핀 대통령이다. 특히 대북정책을 펼때는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 조,중,동이라는 보수신문의 논조에 귀를 기울였다. 대북정책은 여론의 동향에 따라서 갈지자 행보를 했고,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은 좌초했다. 여론을 중시한다는 말은 일면 옳은 면도 있으나, 여론을 절대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더 옳다. 여론은 때에 따라서 변한다. 북한에 대한 동포의식과 6.25시기 적으로 싸웠다는 의식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여론이 갈지자 행보를 하는 것은 어쪄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중심을 잡고, 원대한 마스터플랜을 머릿속에 그리며, 대북정책을 했어야했다. 더욱이, 그 여론이 몇몇 보수 언론이 주장하는 여론이라면 조심했어야했다.

  둘째, 정승민은 러시아가 중국의 부상으로 영토 양쪽 끝에서 압박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의 상식과 상반된다. 트럼프 정권의 성립 이후만 보더라도 미국의 패권에 대해서 러시아와 중국이 가까워지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중국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미국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구도로 보는 것이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정승민은 닉슨을 인간성부터 나쁜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전에 원자탄을 쓸려했다."라는 서술은 믿을 수없었다. 닉슨은 "닉슨 독트린"을 통해서 데탕트시대를 열어 졌힌 사람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도 발을 빼려 노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며, 정승민의 주장은 믿을 수없다. 물론, 닉슨의 부하들의 전횡은 잘못된 것이며, 그것까지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세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어쩌면 절대악과 차악의 싸움일 수도 있다. 닉슨을 낙마시킨 세력에 FBI 2인자인 마크펠트 부국장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FBI를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FBI에 되치기를 당했으며, 그 뒤에는 군산복합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노암 촘스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절대악과 차악의 싸움에서 차악이 실패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넷째, 트럼프와 레이건은 닮은꼴이다.?? 정승민은 트럼프와 레이건이 공통점이 너무도 많다며 다양한 사례를 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다르다. 트럼프는 레이건보다는 닉슨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본다. 트럼프와 닉슨은 군산복합체 세력에 대항해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쟁에서 발을 빼고 있다. 닉슨이 닉슨 독트린을 통해서 데탕트 시대를 열과 핑퐁외교를 통해서 중국과 수교하는 엄청난 일을 했다. 그에 반해서 트럼프는 서아시아에서 미군을 빼고 서아시아 자체가 스스로 방위를 하라고 한다. 또한 북한의 핵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노리고 있다. 닉슨과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핵심 브레인은 키신져이다. 트럼프의 외교고문으로 닉슨 대통령 시기 핑퐁외교를 주도했던 그가 다시한번 트럼프의 브레인이 되어 군산복합체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닉슨이 군산복합체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트럼프는 과연 군산복합체 세력의 반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3. 정승민씨, 옥의 티가 보여요.

  팟캐스트에서 정승민의 모습은 만물 박사이다. 특월한 식견과 다방면에 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책에는 옥의 티가 많이 보인다. 그중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번째, "백마를 타고 눈덮인 (알프스)산을 넘는 나폴레옹"은 거짓이다. 정승민은 나폴레옹을 설명하면서 백마를 타고 알프스산을 넘는 다비드의 그림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가장 앞장서서 알프스산을 넘지 않았다. 병사들이 먼저하고 자신은 나귀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혁명화가 다비드는 영웅을 만들어 냈다. 백마를 타고 가장 먼저 알프스산을 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프랑스인이 원하는 영웅을 만들었다. 정승민이 다비드 그림의 허와 실을 지적했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알자스 로렌 지역 사람들은 독일인에 가깝다. 정승민은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수업'을 예로 들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설명한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의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서 씌여진책이며, 알자스-로렌 지역은 사용하는 말은 독일어에 가깝고, 인종도 독일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정승민은 지적하지 않았다. 이 부분까지 지적했다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보다 심도있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셋째, "순자는 유가에 뿌리를 두지만 성악설을 주장한 일종의 마이너"가 아닙니다. 정승민은 순자를 유가에서 마이너라고 말한다. 그러나 순자는 제나라의 직하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하버드대학 총장이다. 유학의 정통성은 맹자가 아니라, 순자에게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리학이 절대화되면서 순자를 마이너 취급하지만, 중국의 경우 양명학을 많이 연구하고 있다. 조선의 교조적 성리학 사상에 근거해서 순자를 '유가의 마이너'라고 말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가 낮아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탁월한 강의 실력과 박식함을 알기 때문에....

 

4. 풀리지 않는 의문! JFK를 암살한 세력은 누구인가?

  존 F 케네디! 그의 죽음을 파헤친 영화 <<JFK>>를 고등학생 시기에 보았다. 그때 영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도 원인이겠지만, 미국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이며,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국가라는 고정관념이 영화의 이해를 어렵게 한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계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미국을 움직이는 군산복합체 세력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영화 <<JFK>>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가 보여준 침착함. 전쟁을 하자는 강경파를 억누르며, 소련과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지키려했던 케네디! 베트남 전쟁에서도 발을 빼려는 모습이 보이자, 군산복합체 세력은 마피아 세력과 손을 잡고 케네디를 암살한다. 와스퍼라는 주류에 들지 못하는 비주류 대통령으로 겪어야하는 고통을 생각하니, 불현듯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둘다  비주류 대통령으로 남다른 업적을 남겼지만, 비운에 목숨을 잃어야했다.

  권선징악! 선은 반드시 이기고 악은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는 진리는 만화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악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이 반드시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노자는 天地不仁(천지불인)이라하지 않았던가! 하늘과 땅은 어질지 못하다. 태풍이 인간의 사정을 봐가면서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선과 악 중에서 어느 것이라도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선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라는 값진 결실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촛불을 들었듯이, 선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존 F 케네디의 죽음은 우리에게 선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함을 말하고 있다.

 

 

  많은 팟캐스트에서 작가 정승민의 열혈팬으로 자처했다.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 선생이 말한 글쓰기 방법이 떠올랏다. 역사나 전기류를 쓸때는 적당한 예화와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곁들여 써야만이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는 다산의 글쓰기 방법을 정승민은 채득하지 못한 것 같다. 열설조, 강의조의 글들과 작가의 원론적인 설명은 이책의 흡입력을 떨어뜨렸다. 첫술에 배부르랴! 정승민이 대중에게 단독으로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라 부족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앞으로 정승민의 더 숙성된 책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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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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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 그가 우리에게 21가지 제언을 했다. 그의 제언들은 대부분 정확한 정답을 던져주기 보다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마치 현명한 교사와 부모가 학생과 자녀의 질문에 정답을 가르쳐주기 보다 스스로 더 많은 탐구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문으로 되받아치는 듯했다. 그의 책은 쉬우면서도 한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직업이 사라진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전에서 이세돌이 무참히 패배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왔음을 충격적으로 느꼈다. 터미네이터를 떠올리며,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지구를 멸망시킬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혼란이 우리들 머릿속에 불어닥쳤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종시킨다는 설정이 다소 과장된 상상이라면, 인공지능 시대가 나의 직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추정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유발하라는 기본소득을 하나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육아와 같은 새로운 일자리를 발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의 이 주장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를 중심에둔, 인간중심의 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노동에 인간이 종속된 사회가 아니라, 어쩌면 인류가 그토록 원했던 '노동으로 부터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노동 없는 시대'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동으로 부터의 버림받음'으로 느끼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우리가 두려움만 먼저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노동 없음은 축복일 수도 있다. 하라리가 예로 들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는 일을 하지 않으며, 성경공부와 종교의식 수행을 하면서 살고 있다.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백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말했던가? 노동이 사라지고, 노동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하는 시대가 사라지고, 진정한 '백수의 시대'가 도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백수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백수로서의 창조성'을 우리는 지니고 있는가? 고미숙이 말하듯이, 연암과 그의 친구들이 펼쳤던 백수의 향연! 그 백수의 향연은 새로운 창조성의 발현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이 우리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100년후, 어떠한 삶이 펼쳐질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면서 두려워하기 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며 새로운 창조성으로 전지구적 관점으로 새시대를 준비해보자.

 

2. 지구적관점에서 생각하라!

  우리 세계는 '문명의 충돌'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문명의 교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유행하면서 이슬람 문명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단일 문명 내 형제들끼리의 투쟁"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지구문명은 서로 다른 것 보다는 같은 것이 많다. 형제가 서로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많듯이, 우리 지구문명안에 이슬람문명을 비롯한 기독교 문명, 불교 문명 등의 다양한 문명이 있고, 이들은 형제라 주장한다. 갈등이냐 교류냐는 패러다임을 뛰어 넘어 '지구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하라리의 주장은 탁월한 생각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민족', '국가'의 패러다임으로는 환경문제, 핵문제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민족'이라는 상상의 관념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종교'는 어떠한가? 유발 하라리는 '종교는 민족주의의 시녀'라고 단언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사랑과 자비, 평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종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자국의 영광을 위해서 타국을 무참히도 도륙하는데 봉사한다. 유발 하라리는 극우 기독교인의 가짜뉴스 또한 과감히 비판한다.

  지구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은 아직도 '민족'과 '종교'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너무도 멀어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민족'과 '종교'의 좁은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당신의 종교, 이데올로기, 세계관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잘못했지요?" 라고 물으라고 한다. 이 물음에 심각한 잘못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하라리는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말한다. 극우 기독교인들이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하나라고 주장하는 현실은 '종교가 민족주의의 시녀'라는 하라리의 주장이 가슴이 와닿게 한다. 극우 종교인들이 나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면, 나는 유발 하라리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의 종교는 인류에게 저지른 해악을 말할 수 있는지를....

 

3. 모든 것에는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호주를 여행하던 일본인이 GPS를 믿고 가다가 바다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본인은 GPS가 시키는데로 운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알고리즘에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이다. 알고리즘의 주인이 되지 못한 인간의 비참함을 미리본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패하지 않는 결정을 위해서 알고리즘을 이용할 것이고, 실패를 두려워할 수록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갈 것이다.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패는 학습의 한과정이다. 불필요해보이는 실패가 사실은 학습을 위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 없음의 쓰임을 인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래교육이 알고리즘의 노예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실패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실패의 경험이 자산이 될 수 있으려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로 우리사회가 변모해야한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디지털 독재', '커지는 불평등' 속에서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된다. 반면 인간은 다운그래드되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컴퓨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어령 교수는 말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라 강조한다. AI와 경쟁하려하지 말고 AI에 올라타라한다. 알고리즘과 컴퓨터에 올라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면, 미래사회는 축복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재앙일 것이다.

  미래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갖추어야할 또다른 조건에는 무엇이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한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가짜 정보도 범람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한다.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중요한 이슈라면 그것에 관한 과학적 문헌들을 찾아 읽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짜 무가지에 현혹되어 수구신문을 구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수구 신문은 아직도 살아남아 한국사회를 뒷걸음질치게했다. 진실한 언론에 돈을 지불하고 구독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덧 이 사회의 꼰데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공짜 이메일 서비스와 동영상의 댓가로 '개인정보'를 내주는 것을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 비유하고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화려한 구슬과 싸구려 담요를 댓가로 주고 온나라를 넘겨 받은 일화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아프리카 원주민들 처럼 화려한 구슬에 현혹되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정보를 팔아 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메일 써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각종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서 나의 개인정보를 제공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않는 자연인으로 살라는 말인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4. 종교의 허구성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일침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다. 사피엔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창조론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유대교를 믿고 있는가? 자신의 지식과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종교가 불일치할때, 유발 하라리는 어떠한 사고를 할까? 이 책에 비친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사실로 믿지 않는다. 하나의 믿음일 뿐이다. 심지어 시온주의자들이 "땅없는 사람의 사람 없는 땅으로의 귀환"을 비판하기 까지 한다. 유대인인 그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그가, 이스라엘 탄생의 원천인 시온주의를 비판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부정하는 말을 한다면, 대중으로 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고 그가 유대교의 효용성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부인권 사상'이 진실이 아니지만, 천부인권에 대한 믿임이 인류를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경전 내용이 진실이라 믿지는 않지만, 경전을 믿음으로써 유대인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에는 유발 하라리는 동의할 것이다.

  유대교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태도는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데까지 나아간다. 단지 합리화하는 도구라 말한다. '종교는 개인의 온순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뻔뻔한 집단적 오만함을 뒤섞는다.' 아울러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서 신도들 위에 군림한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 종교에서 결혼 사실이 문제가 되고, 교회를 세습하고, 잦은 성추문으로 몸살을 알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유발하라리의 지적은 참으로 날카롭다.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자. 종교의 탈을 쓰고 신도 위에 군림하며 신도의 고혈을 빨아 먹으며 종교에 기생한는 자들을 조심하자.아울러,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신'이라면 섬길 수 있으나, '분노를 유발하는 신'이라면 우리는 그 신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들에게 유발 하라리는 깊이 있는 경고를 하고 있다.

 

5. 유발 하라리! 그의 창조성의 원천은?

  유발 하라리! 그의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내가 생각하는 혹은 하라리가 밝히 창조성의 근원을 탐구해보자.

  유발 하라리와 미셸 푸코의 공통점을 아는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둘은 동성애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두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의 엄청난 저작들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의 저작들은 철학을 넘어 역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창조의 영감을 주었다. 유발 하라리도 20대에 방황을 했다고 한다. 타인과 다른 자신을 보면서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이다. 결국 타인과 다른 자신을 긍정하면서 남들이 긍정하는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되었다. 그의 명저 '사피엔스'는 이러한 고통의 산물이었다. 전병근 번역자는 유발 하라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 않은 점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기에 겪었던 방황을 끝마친 것으로 보인다. 끝나버린 방황 때문에 하나의 장을 할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방황을 마치고 유발 하라리에게는 나와 다른 남을 긍정하고, 남과 다른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윤활류였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 자신이 말하는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을 창조성의 원천으로 제시한다. 진리를 알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때,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은 집중력의 비결이라 말한다. 아울러, 명상을 통한 자기 관찰의 필요성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미래 기술 사회의 도래를 논하면서 전통적인 불교 명상의 효용성을 강조한점이 무척 흥미롭다. 문화재지킴이 혜문 스님이 책을 읽으면 모두 기억하는 비결을 참선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고용히 자신의 내명을 들여다보는 명상이 인간의 뇌를 집중시킨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발 하라리는 하루에 2시간씩 비파사나를 하며, 일년에 한두달 정도는 비파사나를 하기 위해서 수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부터 명상을 통한 정신탐구, 자기애해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6. 사피엔스를 위한 제언

  사피엔스가 침팬치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도덕성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침팬치 사회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침팬치를 우두머리 침팬치가 거두는 모습이 관찰된다. 승자독식의 시대, 노블레스 오빌리쥐가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비추어 본다면, 침팬치는 보다 도덕적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사피엔스가 특별한 이유는 첫째,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종교, 민족, 이데올로기가 그러한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공유하는가가 우리사회를 바꿀수 있다는 말이된다. 과연 21세기를 준비하는 한국사회는 어떠한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승자독식의 신회를 믿으며, 약자를 짓밟는 자들을 위한 믿음을 공유할 것인가? 분단을 고착화시켜, 전쟁의 위험속에 살도록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고수할 것인가? 평화와 사랑을 위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21세기를 위한 한국사회의 준비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이다. 뉴턴이 자신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올려다 보았을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피엔스의 문명은 어느 특출한 사피엔스 개인의 결과물이 아니다.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공유해야할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함께 우리사회를 깨어있게하는 담론을 만들어가야한다. 특정 보수 언론이, 특정 보수 세력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한다.

  이러한 사피엔스의 능력은 그들을 지구별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허구를 진실로 믿고, 집단으로 사고하는 무시무시한 사피엔스의 질주를 막을 수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민족', '국가', '정의'가 인간을 고통스럽게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고통'을 직면하는 것이다. 좌와 우라는 도그마에 갖힌, '일베'들이 세월호 피해자들이 단식투쟁하는 현장에서 '폭식 투쟁'을 한적이 있다. 그들은 자식잃은 고통으로 시름하고 있는 이웃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이웃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것이 허구적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폭주하는 우리에게 냉정한 진실을 보게할 수 있다.

 

 

이제 유발 하라리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의 책이 나오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얇지 않은 두께의 책을 미친듯이 읽으면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길 기대한다. 이번 책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혁명적인 지식은 권력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라는 말은 고 신영복 교수의 '변방에서'를 떠오르게했고,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 있지 않은 한국이 새로운 창조성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했다. 또한 새로운 종이 출현할 수도 있는 현실에서 하라리는 나노기술 등의 조작으로 자신을 업그래이드하는 일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겠다고 한다. 새로운 종이 실패할 수도 있다. 지름길이 황천길일수도 있는 법이다. 새로운 21세기!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새로운 사회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기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능력을 길러 놓아야한다. 그러나 섣불리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가 불행한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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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0-14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교수의 변방에서, 하라리의 탈중심주의 공감합니다.
정희진의 탈식민주의도 떠오르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강나루 2018-10-14 19: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석학들의 공통된 의견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붕붕툐툐 2018-10-14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너무 읽고 싶은 책이라 스포 당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읽지 못했어요~ ㅋㅋ
책 읽고 와서 이 글 읽을게요:)

강나루 2018-10-14 21:34   좋아요 0 | URL
^&^
하라리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천천히 읽으세요~~
 
번역전쟁 - 말을 상대로 한 보이지 않는 전쟁, 말과 앎 사이의 무한한 가짜 회로를 파헤친다
이희재 지음 / 궁리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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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더이상 책의 읽기 전의 내가 아니다. 단순히 번역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책으로 생각하고 책을 펼쳐든 순간! 이 책은 나의 상식을 가차없이 박살내버렸다.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남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평겨쳐졌다. 그리고 세계사를 다시 공부하고, 역사관을 재정립하라는 강력한 망치가 나의 머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초강력 태풍이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꿈틀 거리듯이, '번역전쟁'이 할키고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한번 넓어진 시야와 가치관은 나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과연 '번역전쟁'은 나에게 어떠한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을까?

 

1. 언어가 사유를 지배한다.

  언어는 사유를 지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결정한다. '포플리즘'을 '인끼 영합주의'로 번역할 것인가? '서민주의'로 번역할 것인가? '포플리즘'에는 두 의미가 다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에서는 '포플리즘'을 인끼 영합주의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남아메리카의 페론정권을 비롯해서 진보적인 정권에서 실시하는 정책들을 '포플리즘'으로 매도하고 그들의 정책 때문에 남아메리카의 여러나라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하여, 페론 정권에서 실시한 정책들은 '서민주의' 정책이었고 경제를 망친 것은 그들이 들어서기 전에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들과 그들이 정권에서 물러난 이후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자자들 이었다.

  이희재는 '민영화'라는 말과 '사유화'라는 말 중에서 어느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가? 라는 물을 제기한다. 사실 남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아프리카의 여러 진보적 정권에서 추진한 '서민주의 정책'들을 '인끼 영합주의'라고 매도하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이 추진했던 경제정책은 '사유화'였다. 그리고 그들은 '민영화'라고 외쳤다. 현명한 시민이라면, '민영화'라 쓰고, '사유화'라고 읽어야한다. '인기 영합주의'와 '서민주의'와의 대결, '민영화'와 '사유화'의 대결은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었다. 이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공자의 정명사상이 떠오른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군주가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을 먼저하실지를 물었다. 공자가 가장 먼저하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자는 놀랍게도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라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공자는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고,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으며, 일을 이룰 수 없으며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공정할 수 없으며, 형벌이 공정하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조차 둘 곳이 없게된다. 그래서 군자는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게 되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실천하게 된다.(君子於其所不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라고 했다. 어떠한 사람과 일에 정확한 말을 사용해야함을 이미 2천여년전에 공자가 말하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당한 용어를 사용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세력들과의 기나긴 싸움을 하는 시기이다.

  이희재는 강력히 이러한 현실을 비판한다. '극우'라는 개념은 자민족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타국민, 타민족을 증오하는 일본의 재특회와 같은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한국의 '극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친일 반민족 세력으로 자국민을 죽이고 타국에 아부하는 세력이라며, 그들을 '극우'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일갈한다. 또한, 한국의 언론들은 대자본의 자유와 안전을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금융 족벌 세력들의 편에서서 원/달러 환율 약세라는 부정적 표현을 사용해서 철저히 대기업 위주의 생각을 하도록 한다고 지적한다. 공자가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이름을 바로 잡는 일을 가장 먼저하겠다고 말했듯이, 이희재는 금융재벌들의 편에선 잘못된 말들을 바로 잡으려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2. 현대사를 바로 보는 키워드 '금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역사관'이라한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대학시절 많이들었다. 저자 이희재는 '금융재벌' 즉, '금벌'이라는 키워드로 현대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영국은 신사국이 아니라 금벌국이라고 주장하며, '1, 2차 세계 대전의 전범은 영국'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이주장을 읽었을 때, 기존 학계의 통설과 너무도 달랐기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미국이 군산 복합체 국가이며, 전쟁을 필요로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군산 복합체, 아니 '금벌'의 뿌리가 근대 영국으로 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이희재는 한발자국 더 나가서, '금벌'은 미국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금벌'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은 주기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에 저항하는 지도자들은 철저히 제거된다고 주장한다. 소련과의 군축협상을 추진하며 화해와 평화를 추구했던 스웨덴의 팔메 대통령이 1986년 8월 28일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암살당했으며, 소련과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델레스에서 암살되었다. 심지어는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가 우뚝서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알고 있는 워터게이트 사건도 '닉슨 독트린'과 '베트남 철수'를 추진하여 평화 정착을 위해서 노력하던 닉슨 대통령을 낙마시키기 위한 금권세력의 검은 그림자였다. 가공할 금권세력의 힘앞에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금벌세력들은 언론도 장악했다. 서구의 진보지라 자청하는 신문조차도 금벌의 이익에 봉사한다. 서구 금벌들이 장악하던 자원들을 푸틴이 국유화하고, 서구의 금벌세력에 대항하려하자, 푸틴을 악마로 그리고 있다. 오히려 진실을 말하고 있는 'RT'라는 언론사를 푸틴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무시한다. 이희재가 들려주는 '금벌'이라는 키워드로 본 현대 세계는 충격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희재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될 것인지를 고민했다. 내가 알고 있는 '군산복합체'라는 개념과 '세계의 큰손 유대인 자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희재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금벌' 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희재는 말한다. "언론을 맹신하면 악의 세력에게 박수를 배내기 십상'이라고.... 한국의 조,중,동만을 보고서, 한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금벌' 중심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럼, '금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예는 없을까?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개인의 씨앗 교환을 금지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는 '위험 작물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씨앗 교환을 금하고, 자립 공동체인 '에덴 동산'에 경찰 특공대를 난입시켰다.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 자본가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금벌'의 나라! 그곳에서는 소비를 하지 않고 자립하여 스스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려는 개인들을 위험한 존재로 보고 있다.

  이희재가 주장하는 '금벌'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두번째 예로 '인턴'과 '팁'이라는 용어를 들 수 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사회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인턴'이라는 제도가 '무급 노동'을 강요당하고, 자본가들의 인건비 절약을 위한 제도로 이용되고 있다.  유럽의 '레스토랑'에서는 써빙을 보는 사람에게 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손님의 팁으로 먹고 산다. '팁'이라는 제도는 사업주의 노동비를 절감하기 위한 제가 된지 오래다. '금벌'의 이익을 무한대로 증대하려는 무서운 신자유주의 사회 곳곳에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기 보다는 '열정 패이'라는 명목으로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다. '매너'가 남을 끌어 안으려는 예법이라면, '에티켓'은 신흥 부르주아지를 차별하려는 구 귀족들의 배제 예법에서 나온 것이다. '매너'가 사라지고, '에티켓'이 자리잡은 무서운 신자유주의 사회! 금벌 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3. 사막을 건너는 방법

  소련이 붕괴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주장했다. 모두가 공산주의가 사라지면 장미빛 천국이 우리를 향해 문을 열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경쟁자가 사라진 자본주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규제는 악으로 규정되었다. '민영화'가 '사유화'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많은 산업들을 '민영화'시키려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비정규직',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공부방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정규직'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리석은 친구보다 현명한 적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현명한 적'이 없고, '어리석은 친구'만 있다. 아직도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얼마나 우리 사회를 황폐하게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친구들'!!  그렇다면 '어리석은 친구들'과 함께, 신자유주의라는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우선, '생각하자! 깨어있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프리카 북부 말리에는 투아레그 민족해방운동 조직이 있다. 알제리 정보부는 급조된 극렬 이슬람 무장 조직을 침투시켜 투아레그 민족해방운동 조직을 과격화 시켰다. 이들은 결국 민중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결국 하층부의 말단 행동대원들은 자신의 행동을 순교라 생각하며 목숨을 바치지만, 진실은 상층부의 극렬 테러리스트와 그들의 사주한 자들에 이용당한 희생양일 뿐이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조직에 '금벌'이 침투시킨 공작원들이 활약하며, 그 조직들을 와해시키고, 혹은 혼란을 가중시켜 서구의 '금벌'이 아프리카의 자원을 안전하게 수탈할 수 있도록 만든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려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 의해서 '순교'를 강요당할 수 있다. 스스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금벌'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한다. 깨어있자! '금벌'의 실체를 바로보고,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자!

  둘째, "문명국은 시련에 처한 제 나라를 안 떠나려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이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만약 임용고사에 떨어지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이다. 임용고사에 떨어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달하며 힘겹게 살아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지고 있었다. 힘들때는 이민 정보를 찾았다. 결론은 '죽어도 대한민국에서 죽고 살아도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한다.'였다.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생존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고, 내가 공부했던 '한국사'를 그곳에서는 더 이상 활용할 수도 없었다. 남들이 일궈 놓은 옥토를 탐내기 보다는, 나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타국으로 떠나는 독립운동가가 아닌바에는 대한민국을 떠나서 살 수 없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시절에 'Hell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민가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내주변에도 많았다. 그때 '당신들 처럼 이땅을 떠나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둠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두려워서 도망친곳에 천국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또다른 천국을 찾으려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떠나지 않으려는 비율이 타국보다 높다는 점을 떠올리며, 나의 이웃에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자!'라고....

  셋째,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이다.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통과"라는 플랫카드가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 내걸렸다.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가 안전하다는 뜻이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파트가 안전하지 않기에 재건축허가가 났다는 뜻이었다. 집의 안전조차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불안전이' 축하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이다. 약탈적 다국적 기업과 화석연료의 한계, 신자유주의의 폭주 속에서 더 많은 부와 풍요를 얻기 위해서 소비를 장려하고 있고, 황금만능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집값이 올라 돈을 버는 지인들을 보며서 배아파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사피엔스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명박 정권시기에 야만적 황금만능주의는 용산 재개발을 막는 서민들에게 전투경찰을 투입시켰다. 전투경찰과 시민들이 죽어나갔지만, 전투경찰을 무모하게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비정한 사회를 살아온 우리는 다시한번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를 수호하려는 몸부림을 쳐야한다.

  넷째, "오늘이 내일을 바꾸고 내일이 어제를 바꿉니다."(이희재)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반면에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과거를 호출하는 이유는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이희재와 조지 오웰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말의 공통점을 아는가? 바로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내일을 바꾸고 결국에는 우리의 과거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오늘을 개혁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과거 사실을 호출한다. 우리가 오늘! 지금 당장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바뀌게 된다. 우리의 미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늘에 있다.

  무시무시한 '금벌'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폭주시대를 살아가지만, 현실을 회피하기 보다는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풍요를 늘리려는 소비자로 살기보다는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인으로 살아가자! 금벌세력의 외곡된 정보에 속아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 주인으로 살아가자! 이것이 '어리석은 친구들과' 신자유주의의 사막을 건너는 방법일 것이다.

 

4. 동의할 수 없는 이희재의 주장

  저자 이희재는 나의 상식들을 많이 깨뜨렸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인도했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용인하라는 주장이다. 이희재는 '한국은 일본 정부 각료들이 야스쿠니 참배가 불편하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나가서 '한국인 피해자이기에 오히려 대답하게 일본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전범은 천황의 총알받이가 된 가엾은 사람들이라는 여유를 억지로라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냐는 주장을 한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이희재가 한일관계 만큼은 그러한 식견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강자의 여유는 인자함으로 보이지만, 약자의 여유는 만용일 뿐이다. 일본은 세계 경제 2,3위를 다투는 강국이다. 언제라도 재무장을 한다면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침략전쟁을 펼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의 정치인이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한다면, 이는 일본의 침략야욕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자는 억지에 불과하다. 현재는 '우리가 과거를 호출하는 이유는 오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면서 재무장화 팽창주의를 노골화하는 일본을 합리화하고 있다. 우리가 약자이기에 강자인 일본의 팽창주의를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제2의 선조가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이희재는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은 없었으며, 유대인 600만명이 희생되었다는 숫자는 과장된 것이라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지역에서 무고한 파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패로 '가스실'과 '유대인 600만명 희생'이라는 신화를 지키려한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얻은 상식과 대치되는 주장이기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600만명'이라는 숫자는 통계사의 실수로 오차가 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스실'이 없었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많은 자료를 읽고 판단해야겠다.

  셋째, '김일성을 소련땅으로 불러들인 것이 일본의 반발을 고려해서'일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당시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만주에서 활동했다. 중국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이 장기적 항전의 역량을 보전하기 위해서 중국공산당이 소련땅으로 이주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일본은 노몬한 전투 패배 이후, 공격진로를 남방으로 결정한 이후이다.

  넷째, 선량한 독재자는 선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해본다. 저자 이희재는 카다피를 비롯한 많은 독재자들을 소개하며, 이들을 권좌에서 몰아낸 금벌세력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카다피의 경우, 최고 소득세율을 90%로 올리며 금벌로부터 독립을 추구했던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민주주의대 독재의 구도로 볼 것인가? 금벌대 반군벌의 대결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카다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금벌로부터 독립하려는 선량한 독재자는 설혹 그가 장기간 집권을 했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 질문에 이희재는 무어라 답변할까?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완벽함을 바래서도 안된다. 또한 생각의 자유가 있기에 저자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저자 이희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5. 동북아 현실을 직시하다.

  "일본은 독립국이 아니다." 저자 이희재의 말이다. 물론, 이희재는 한국도 독립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을 미국이 부리는 장기알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노리는 것은 일본이 한국, 중국, 러시아 같은 주변 나라들과 반목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샌프란 시스코 조약에 독도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하여 분쟁의 씨앗을 남겼으며, 1955년 일본이 소련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려하자,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여 협상을 결렬 시켰다. 미국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출범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하토야마 전 총리가 낙마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주변 이민족을 상대할 때,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사용했다. 미국은 중국이 사용하는 전술을 동아시아에 사용하고 있다. 달리보자면, 로마가 속주를 통치할 때 사용했던, '분할하여 통치하라(Divide and rule)'라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할까? 소설가 복거일은 '핀란드화하는 한국'이라며 걱정어린 눈빛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을 바라보고 있다. 이희재는 핀란드화란 '러시아, 중국 같은 인접국에게 적대적 외교 국방 정책을 추구하도록 미국이 설득하거나 위협했을 때 순순히 따르지 않는 핀란드, 한국 같은 소국이 미국한테 찍혀서 듣게 되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복거일은 한국의 핀란드화를 자주성이 훼손되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보았으나, 이희재는 약소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추구하는 자주적 외교로 평가하고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한국의 외교를 바라볼 것인가? 진보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핀란드화'를 나쁘게도 볼 수 있고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그렇다면, 핀란드의 역사가 어떠했기에 '핀란드화'라는 말이 생겼을까? 핀란드는 러시아 혁명후 벌어진 적군과 백군의 내전에 개입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이 자신을 지켜줄 것을 믿고 소련군과 대결했다가 모스크바조약을 맺고 영토의 10%를 소련에 내어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핀란드의 외교정책에 많은 교훈을 준다. 사람이 범을 두려워하나, 범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두려운 법이다. 핀란드 입장에서는 소련이 두렵지만, 소련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요충지를 가지고 있는 핀란드가 두려운 법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소련을 되도록 자극하려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일변도의 종속적 외교가 아닌, 핀란드를 중심에 놓고 실리적 외교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핀란드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한국의 핀란드화'는 걱정해야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남북이 대화하고 하나될 때,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목도했다. 강대국의 '이이제이'에 대항 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전술은 '한국의 핀란드화' 즉, 남북의 자주적 실리외교일 것이다.

  한편에서 중립국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이희재는 '제 나라를 제 손으로 지킬 힘이 있는 나라만이 진정한 중립, 지속 가능한 중립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선 고종시기에 '조선 중립화론'이 유길준과 부들러에 의해서 제기됐다. 그러나 자주 국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립화 논의'나, 중립외교를 통한 조선을 지키려는 노력은 허망하게 끝났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그 어떤 외교 전략도 성공하기 힘들다.

 

  이 책에는 로힝야족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지금은 미얀마 인들에게 쫓겨나 보트피플이 되어버린 로힝야족! 이들에 대한 박해를 저지르는데 이를 막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아웅산 수지 여사를 세계 언론들이 비판한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속에서 5등 국민으로 살아야했던 미얀마인은 로힝야족에게 집단 학살까지 당했다. 과거부터 뿌리 깊은 로힝야족과 미얀마 인들의 반목이 오늘의 로힝야족 사태를 만들었다. 미얀마 나쁜 나라, 로힝야족 불쌍한 종족 이라는 등식이 일방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이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선과 악,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식견을 이 책은 제공하고 있다. '금벌'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세계를 바라보고,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좋은 책은 새로운 독서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책이라고 한다. '금벌'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서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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