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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혁명과 애국의 길에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1
다니엘 에므리 지음, 성기완 옮김 / 시공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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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치민에 대한 다이제스트

시공사에서 나온 호치민이라는 책은 호치민에 대한 다이제스트판이다. 호치민의 생애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려한다면 권할만하다. 그러나 보다 심도있는 이해를 원한다면, 900페이지 짜리 평전을 추천하고 싶다.

베트남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호치민에 대해서 보다 잘 알고 싶었다. 그러던차에 '호치민 혁명과 애국의 길에서'라는 책을 만났다. 호치민에 대해서 보다 깊숙히 알 수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이 아쉬었다. 그러나, 이책은 응우옌 아이 꾸옥, 즉 애국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는 호치민으로 개명을 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평생을 바친 호치민의 삶에 대해서 잘 요약해 냈다. 더욱이 수많은 사진은 호치민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2. 아쉬움

그러나, 뒤에 첨부된 자료를 본문에서 녹여서 썻다면 더욱 좋았다는 생각이들었다. 글을 읽으며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말그대로 다이제스트였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베트남 멸망기의 모습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아쉽다. 프랑스인이기에 베트남병합의 정당성을 그 자신도 모르게 표명하고 있다. 가망성이 없는 베트남을 프랑스가 식민화했다는 듯한 분위기와, 강력한 투쟁을 벌였던 근왕운동가를 비롯한 베트남 애국자들에 대한 서술은 빈약하기 짝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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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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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세계사를 위한 또하나의 고민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고-

 

세계사 수업을 준비할 때면 언제나 ‘우리의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유럽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역시 유럽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에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들었을 때, 약 6백 쪽에 달하는 양장본에 압도되어 과연 제대로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기우였다. 학술 서적 같기 보다는 한편의 박진감 넘치는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고 첫장을 펼쳐든지 5일만에 책을 손에서 내려 놓았다. 그리고 한동안 나의 머릿속은 이슬람으로 가득 찼다. 진정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내러티브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음을 깨닫고 혼동과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트였다는 희열을 느꼈다. 세계사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확신에 차있는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1. 중간세계 - 자신을 타자화한 ‘용어’에서 탈피하다.

타밈 안사리는 책의 첫장에 ‘중간 세계’라고 제목을 붙였다. 상당히 낮선 지역명에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사람을 사귈때에는 그 사람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야 하듯이, 역사를 서술할 때는 그에 걸맞는 정확한 용어를 선택해야한다. 우리는 너무도 ‘중동’, ‘극동’ 등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용어에 익숙해져있었다. 그리고 이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타밈 안사리는 이러한 유럽중심의 용어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확한 용어의 사용에서 출발하여 타밈 안사리는 역사의 또 다른 페이지였지만, ‘기타사’ 혹은 ‘주변사’로 취급해오던 이슬람의 역사를 당당히 세계사의 중심에 놓고 서술하고 있었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곳, 그러나 사막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무지했다. 중간세계를 무시했다기 보다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나도 무지했던 이슬람의 역사를 타밈 안사리는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역동적인 이슬람의 역사에 푹 빠져 들어갔다.

2. 오리엔탈리즘으로 부터의 해방

서구의 편견에 의해서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에 우리는 우리를 규정짓고 이웃국가들을 오리엔탈리즘의 창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이 있었다. ‘왜? 동양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답변하려 했고, 그리고 답변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서양인들은 ‘동양은 서양의 도움이 없이는 근대로 진입하지 못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여 그들의 제국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양인은 ‘우리는 너희의 도움이 없었어도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을 거야!’라고 반박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어니스트 볼크먼은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에서 이슬람의 학문은 칼리프나 술탄을 위해서만 존재했고 그들에게 독점되었기에 지식확산이 일어나지 못했으며, 서구와 같은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어니스트 볼크먼의 이러한 주장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나는 타밈 안사리에게 보기 좋게 한방을 얻어 맞았다. 이슬람의 학문이 한사람에 의해서 독점되고 그를 위해서 존재했다는 것은 서구인들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그렇다면 왜? 동양에서는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타밈 안사리는 이렇게 말한다. 증기기관은 영국에서 보다 일찍 이슬람에서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이를 양을 통째로 구울 때 사용했을 뿐, 이를 산업혁명으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산업혁명 직전 영국보다 좋은 직조기계를 갖고 있었던 중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값싼 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의 맥락 속에 발명품이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그 발명이 사회의 혁신을 촉진한다. 무슬림들은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이룬 반면, 유럽인들은 종교개혁 후, 오랜 세월 무너져 있던 사회 질서가 회복되기 시작할 때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이루었다. 이것이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이 발생했고, 동양은 그러하지 못한 이유였다.

3. 또 다른 아프리카 - 중간세계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면, 국경선이 일직선으로 그어져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란다. 바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도에다 선을 그어 아프리카를 나누어 가졌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국경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사의 불행을 중간세계에서도 보았다. 프랑스는 자신의 신탁 통치령을 시리아와 레바논으로 나눴으며, 영국은 메카 셰이크의 둘째 아들에게는 이라크를, 첫째 아들에게는 요르단을 주었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의 장난질의 극치는 오늘날도 진행되는 팔레스타인 문제일 것이다. 현대 중간세계의 모순은 이미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그 씨앗이 뿌려졌다. 서구 국가들이 중간세계의 테러리스트들을 비난하기 이전에,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서구 국가가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아야할 것이다.

인류 문명의 시작이며, 세계 4대 종교 중의 하나인 ‘이슬람’과 ‘기독교’가 발생한 이곳이 이제는 세계인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복잡한 지역이 된 것은 너무도 안타깝다. 아프리카의 부족간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저개발 상태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듯이, 이슬람의 문제도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너무도 씁쓸했다.

4. ‘자스민 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서구의 내러티브에 익숙한 우리는 역사는 한명이 다스리는 전제군정에서 현대 민주정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증거 중에 하나가 지금 중간세계에 불고 있는 ‘자스민 혁명’이다. 나 또한 이러한 서구의 내러티브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슬람도 민주주의의 빛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이슬람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하지 못했다.

이슬람은 종교이며 다른 종교들처럼 윤리와 도덕, 신, 우주, 필멸의 운명에 대한 독특한 믿음과 수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동시에 사회적인 프로젝트여서, 정치와 경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상이자 민법과 형법의 완전한 체계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이슬람인들은 독재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부활을 꿈꿀지도 모른다. 크리스트교가 개인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면, 이슬람은 이슬람 공동체의 구현을 목표로 하기에 그들이 꿈꾸는 것은 우리가 그리는 현대사회와는 다를 수 있다. ‘문명의 충돌’, ‘역사의 종말’이라는 말을 너무도 경솔하게 사용하는 서구인들에게 너희의 관점이 틀리수도 있음을 이 책을 말하고 있다.

5.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가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소련의 몰락이 역사의 끝을 의미한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승리했으니 이제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덤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에서 타밈 안사리는 고개를 가로 젖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무슬림은 소련을 물리쳤다. 두 초강대국과의 대결에서 하나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이제 나머지 하나만 남았다. 이 급진파 무슬림들의 눈에는 역사는 이제 겨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국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있지 않은가? 타밈 안사리는 2001년 9월 11일, 두 개의 세계사가 충돌했다면서 끝을 맺고 있다.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세계사가 충돌한 것이다. 서로 대화가 되고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마주보아야한다. 그리고 같은 주제를 놓고 의견을 말해야한다. 그러나 저자 후기에서 말하듯이 서구의 세계사와 이슬람의 세계사는 너무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으며 자신들의 말만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개의 세계사가 충돌한 현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저자는 해답을 내놓지 않고 끝을 맺고 있다. 그 해답을 찾는 것을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 놓았다.

대학시절 ‘무하마드 깐수’라는 교수님의 ‘아시아사’ 수강신청을 했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방학때 신문을 보고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한국말에 서툴렀던 그가 간첩 ‘정수일’이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A 폭격기’라는 별명 때문에 그의 강의를 수강 신청했던 나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나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임용고사 준비에 힘들게 지내던 나는 그가 전향서를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컴퓨터 속에 담겨진 자료만이라도 출판하게 해달라며, 이것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순간! 그는 왜? 동서 문화 교류의 역사를 시대의 소명이라고 하며, 남과 북의 이념보다도 ‘동서 문화 교류사’라는 학문에 강한 애착을 느꼈을까? 나는 정수일 교수의 말에서 이 책에서 던져 놓은 해답을 찾고자한다. 정수일 교수는 세계사는 ‘문명의 충돌’의 역사가 아니며, 교류의 역사라 주장한다. 고대 스키타이인들의 교류에서부터 현대의 교류에 이르기까지 문명은 서로 교류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교류가 있을 때, 문명은 사멸하지 않고 발전한다. 정수일 교수는 이것이 자신의 시대적 소명이라 말했다.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내러티브를 강요하는 관점에서 탈피해서, 서로 교류하며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세계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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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
이우상 지음, 성학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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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앙코르와트를 백인의 문화에 대비되는 황색인의 문화로 보고 있다. 어찌보면 지난 19~20세기에 백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짓밟힌 황색인의 보상 심리로보이기도한다. 그러나 이말의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사관이 깔려있음을 직감했다. 러·일전쟁을 황색인종이 백인종에게 거둔 승리로 포장하고 백인종의 식민지배로부터 황색인종을 해방시킨 전쟁이라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듯 했다.

2. 이우상은 우리역사에 대해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의 근저에는 식민사관이 깔려있다.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 999번의 외침을 당하고서도 한번도 남의 나라를 먼저 침략하지 않은 나라라는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즉, 그는 한번도 대외원정을 간적이 없었고 대외원정이라고는 몽골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나선 일본원정과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나선 베트남 파병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발해의 장문휴 장군이 등주를 공격하여 자사를 죽인 사건은 물론, 고려와 조선에서 대마도 원정을 간 것, 또한 속일본기에 나와 있는 고려선단이 교역을 허락할 것을 종영하며 해상시위를 일본에 한 것...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외면하고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한이서린 역사! 힘이 없는 역사! 그래서 남의 침약만 받아야하는 숙명을 지닌 역사! 로 왜곡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가 제대로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했으면 한다.

그러나 앙코르 와트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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