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죽인 제자들
정명섭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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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말이다. 제자가 계속 제자로 남는다면 스승에 대한 고약한 보답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임재스님의 일확 떠오른다. 임재스님이 스승을 찾아가자 뺨을 때렸고 두번째 찾아자가 몽둥이로 때렸다. 세번째 찾아갔을 때, 임재스님은 노스님을 끌어안고 등을 탁탁탁! 때린다. 그러자 그 노스님이 "이제야 제자를 찾았구나!"라고 감탄하신다.

 

참다운 재자는 스승을 뛰어 넘어야한다. 그리고 때로는 스승과 다른 길을 가야만 한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제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 텔레스가 이방인을 보면 무시하고 그리스인을 보면 존경해해라는 말에 대해서 알렉산더는 그 모두를 존중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리스토 텔레스의 시야에 갖혔더라면 알렉산더는 대제국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스승에게 등을 돌린 제자와 스승의 그림자가 되어 스승 보다 치열하게 살아간 제자, 그리고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송익필과 김장생의 이야기 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덕일)'라는 책을 읽었을 대, 송익필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예법에 따르면 그는 예학을 연구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예불하서인 형불상대부).’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한국 예학의 커다란 태생적 이이러니 일 것이다. 천민 송익필 에서게 시작된 조선예학이 사계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을 거쳐서 한국사회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조선사회를 사대부의 나라로 만들었다. 지금 한국사회를 숨막히게하는 예절 문제를 보며, 현재 과연 구시대의 유물인 형식적 예학에서 언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다.

 

ps.한가지 옥의 티를 지적하겠다. 181쪽 김정희가 1868년 71세로 죽었다고 했는데 1868년은 오페르트도굴 미수사건이있었던 해로 고종이 임금이었다 추사는 1856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부분은 빨리 수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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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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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가 위대해보이고, 역사가의 힘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아무리 위대한 군주라 할지라도 역사가의 비평의 칼날 앞에서는 도마위의 생선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사가의 힘과 위대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역사가로서 이덕일이 조선의 역대 왕들을 비슷한 부류로 나누어 비평한 책이다. 다양한 사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덕일 특유의 필치와 분석력으로 제왕들을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의 리더는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갖추어야하는가를 설득력있게 분석하고 제시한 점도 매력적이다.

 

비슷한 군주를 나름의 기준으로 비평했지만, 그 평가는 서로 달랐다. 악역을 자처한 태종과 세조! 그러나 태종은 세종시대를 열었고, 세조는 훈구파들의 득세의 길을 열었다.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 연산군과 광해군, 준비되지 않은 군주 연산군과 준비된 군왕 광해군! 이러한 군주가 왜? 신하들에 의해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탁월한 분석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란을 겪은 선조와 임금을 읽을때에는, 덤엔더머를 보는 듯했다. 누가 조선에서 가장 못난 임금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은  할애한 것은 절반만 성공한 임금인 성종과 영조였다. 성종을 낮에는 요순, 밤에는 호색한 이라고 야사에 전한다는 글을 보고 무척 흥미로웠다. 성종과 영조는 조선시대 성공한 임금으로, 성군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덕일은 절반만 성공한 임금으로 평가했다. 역시 이덕일의 날카로움이 돋보였다. 뜯어보니 그들이 온전히 성공한 임금은 아니었다.

 

조선의 역사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싶어서 선택한 이책! '조선 왕을 말하다.' 역시!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왕들의 민낯을 본듯한 느낌이다. 조선의 왕들의 민탖을 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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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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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사료를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징비록을 읽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도 이제서야 읽는 것에는 이러한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처들자 예상외로 글이 쉬웠다. 탁월한 번역 때문이리라....

  임진왜란에 대해서 타인이 쓴 글들을 주로 읽다가 직접 1차 사료에 접근하니 나름데로의 새로운 사실들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사실들이란 무엇일까?

 

1. 이덕일의 '난세의 혁신리더 유성룡'이 보이다.

  이덕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쉽고 이해하기 쉬워서 그의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난세의 혁신리더 유성룡'이라는 책을 읽고 이 책을 보았을 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 이덕일이 '징비록'을 기본 구성 틀로 삼아서 책을 썼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책의 초반부와 중간중간 이야기들이 '징비록'을  옮겨 적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플롯을 짜고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이덕일은 어떻게 사료를 배치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켰는지를 머릿속에 더올리며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2. 원균의 본모습을 보다.

  텔레비젼 다큐멘터리와 사극에서 원균을 마치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과연 그럴까? 원균의 실체를 알고 싶은 욕망이 높았다. 원균이 이순신과 같은 서열의 공신이라는 주장! 이순신과 같이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는 주장을 통해서 이순신과 비견될 수 있었던 영웅으로 묘사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많은 의문을 던졌다.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순신은 원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징비록'을 읽으면서 원균의 진면목을 알았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운주당'을 짓고 누구든지 '군사'에 관한 일이라면 와서 말할 수 있게 한 반면에 원균은 그 집에 첩을 데려다가 함께 살면서 이중울타리를 쳐 놓아 장수들조차 그를 보기 힘들었고, 술주정이 다반사였다하니, 이순신과 원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게미와 코끼리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야 시청률이 높게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원균을 영웅으로 그려 놓은 다큐멘터리 PD들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다. 다큐멘터리 피디들이여, 시청률을 위해서 시청자를 우롱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시청자들도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하기에....

 

이책은 보통의 책들과는 달리, 아주 쉬운 문장으로 서술되어있다. 그러면서도 임진왜란의 전개과정을 잘 살필 수 있으며, 유성룡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임진왜란 관련 책이나 여행지를 다닐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PD들에게 우롱당하지 않고 제대로 역사의 진면목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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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7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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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많은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갔지만, 단 한명의 학생도 살려내지 못했다. 전라도 진도섬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422여년전, 그 곳에서는 13척의 조선수군이 130여척(혹은 330여척이라고도 한다.)의 왜선과 맞서 싸워 승리했다. 비슷한 곳에서, 단한명도 구하지 못하고 온 국민을 공황상태로 빠져들게 만든 사건과 모두가 패할 거라고 생각한 전투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한 사건이 420여년의 사간차를 두고 일어났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밝혀 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책한 권을 집어들었다. 『난중일기』라는 책이었다.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라는 부재처럼, 420여년의 새벽을 직접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난중일기』의 첫장은 이순신 장군의 아우 우신과 조카 봉과 아들 회가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장군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자식이었으며, 5남 3녀의 아버지였고, 한여자의 남편이었다. 강인한 성웅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인간 이순신이었다. 『난중일기』 곳곳에는 이러한 인간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가 곳곳에 묻어있다. 항시 어머니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그림움을 표현하고 있었던 인간 이순신은 억울하게 의금부 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으로 괴로웠을 몸을 이끌고 겨우 풀려난 1597년 4월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열한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다.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게 보였다. 인간 이순신의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면이 왜적의 손에 죽은 것이다. 그는 꿈속에서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 떨어졌는데, 아들면이 엎드려 그를 안듯하더니 깨었다. 그날 저녁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난중일기』에는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감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오디로 갔느냐!

 

임진왜란 7년 전쟁 속에는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수많은 인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참아내며, 이 국토를 지켜야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이순신이 있었다. 혈육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며, 전쟁준비를 해야했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며, 그 슬픔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고 그래서 전쟁터로 향해야했던 사람! 그가 바로 이순신이었다.

 

태구련이 만든 장검에는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河)라고 씌여있다.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글귀처럼, 그는 수많은 왜적을 쓸어버리고 그들의 피로 이 국토를 씻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조선이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항상 승리해야한다는 무거운 짐이 그를 괴롭혀서였을까? 『난중일기』 곳곳에 그는 아프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그러나 그러한 몸을 이끌고서 전쟁터로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 어리석은 정치인들에게 고문을 받아 몸이 아프고, 사랑하는 아들과 어머니를 잃어 가슴이 미어졌지만, 자신이 주저앉으면 조국이 무너지기에 그는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6일, 13척의 배로 왜적과 맞선다. 130여척의 왜선을 보고서 당당히 앞장서서 적과 맞선다. 부하장수들이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있자, 그들을 다독이며 적과 맞서도록 한다. 그리고 무서워서 뒤에서 구경만하고 있는 부하장수들에게 호통을 친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 김응서함을 불러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하였다.

 

얼마나 고독했을까? 얼마나 분노했을까? 그러나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 부하장수들은 목숨을 걸고 왜적에 맞서 싸운다. 이순신은 “이번 일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라고 일기에 적고 있지만, 하늘이 그를 도운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전쟁에 나서 모범을 보이는 리더의 모습을 보면, 많은 장수들이 감동을 받았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명량대첩에서 승리를 거두는 주요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1598년 11월 19일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그는 적의 유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는 순국했지만, 그는 아직도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속에 살아 남아있다.

 

책을 덮고 다시 2015년 오늘로 돌아왔다. 아직도 저 바다속에는 세월호 희생자의 시신이 누워있다. 승객들을 무참히 버리고 자신이 먼저 살겠다고 도망친 이준석 선장과 너무도 어이 없게도 단한명도 살려내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면 그럴수록 충무공 이순신! 그가 그리워진다. 그도 아버지였고, 아들이었으며, 남편이었다. 그에게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더 소중한 조국이 있었기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13척의 배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는 앞장서서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하여 수많은 조선 백성을 살려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리더십은 아직도 살아있다. 인간적이면서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리더십이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꿈틀거릴 때, 대한민국호는 절망 늪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한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들여다보며 그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우리가 장군과 같은 리더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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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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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양대군과 단종에 대한 나의 오해

 

대학에서 조선시대사를 수강할때, 교수님께서 수양대군을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 임금으로 묘사했다. 단종과 세조의 대립은 단순히 전주이씨의 가족사가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라는 역사적 흐름으로 보아야한 다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왕권을 대표하는 세조가 승리한 사건이며, 세조는 정권을 잡아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고, 또한 정치를 잘했다는 내용이다. 어리고 무능력한 단종이 왕으로 있는 것보다는, 리더십있고 능력있는 세조가 왕이되어야한다는 논리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교수님의 의견에 동조를 했다.

 

2. 나의 관점을 수정하다.

 

그러나, 이덕일의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이라는 책은 나의 기존관점에 수정을 가하겠했다. 김종서 개인의 업적과 탁월한 능력에 집중하기 보다는, 김종서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했기에 조선의 백성들이 겪어야하는 슬픔, 태종 이방원이 그렇게 피를 흘리며 만들고자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모습! 양영대군과 효령대군 대한 기존의 생각 등등... 수많은 기존의 나의 관점을 수정했다.

 

1) 김종서가 지키고 싶었던 나라!

정약용에게 정조가 있었다면, 김종서에게는 세종이 있었다. 이 두사람이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이 ㄲ꿈꾸었던 일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을까? 세종은 김종서를 믿었고, 김종서는 이러한 세종의 믿음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수행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 상을 당하였는데, 상복을 입고 출사하는 기복출사를 하면서까지 그는 6진개척에 모든 것을 바쳤다.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북방에 쏟아부운 김종서! 다른 사람들이 몽골이 침입해온다고 피난가는 시기에, 동분서주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조선을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했던 김종서! 그는 올바른 정의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사적인 탐욕이 판을 치지 않는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그 땅에서 편히 백성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는 지킬 수 있었는가?

 

2)  세조! 자신의 야망으로 세종이 그린 조선을 망친자!

세조는 태종 이방원이 피를 흘리며, 공신을 숙청해서 작게는 왕을 넘보지 못하게하고, 크게는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없앤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태종의 기반위에서 세종은 자신이 꿈꾼 나라를 만들었다. 성리학적 윤리가 지배하는 나라! 백성이 마음편히 살수있는 나라! 그 나라를 만들어 놓았지만, 수양대군은 이를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뜨렸다. 너무도 허무하게 김종서를 죽였으며, 자신의 정적들을 16세 이상의 사람을 교형에 처하고, 그 이하는 노비로 삼았다. 성삼문은 씨를 말렸다. 그리고 세조 일파는 자신들과 친구로 지냈던 생육신을 포함한 정적들의 가족을 노비로 삼고, 그의 부녀자를 취했다. 성리학적 윤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여기에서 더나아가 수많은 공신들이 책봉되었고 그 공신들이 무자비히게 백성을 죽였다. 그러나 그들은 공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 이러한 나라가! 이러한 임금이 과연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신한 임금이란 말인가? 이러한 자를 미화시킨다면, 총칼로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정치가들도 미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지 않을까?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이러한 패륜적인 세조를 미화시킨다면, 무조건 승리하면 그가 친일파이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죽였더라도 미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할 것이다.

 

3) 양영과 효령대군의 가면을 벗기다.

이책에서 또한가지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일부러 미친척했고 폐륜적인 일을 했다는 양영대군과 동생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서 승려가 되었다는 효령대군의 민낮이다. 물론, 양영대군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기보다는 동화적인 창작에 가까우니, 그정도의 대인배는 아이더라도 최소한 세종집안의 피냄새를 잠재우려는 노력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단종을 죽이라고 부추기기까지 했으니..... 자신이 왕이되지 못한 한을 이런식으로 풀었던 것일까?

 

3.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역사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라고 말했다. 과거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세조의 이러한 모습을 합리화시키고 미화시킨다면, 오늘 우리는 결과적으로 승리한다면 그의 모든 행동을 미화시킬 수 있다는 함정에 빠진다. 모든 역사가여! 이를 명심할 지니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마치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이 써내려간 이덕일의 글재주에 감탄을 또한번한다. 이덕일의 다른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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