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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반양장) - 리더십의 영원한 고전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에는 삼국지를 읽고, 30대에는 정관정요를 읽어라.'라는 일본의 어느 정치가의 말이 있다. 한국에서 삼국지는 사내아이라면 몇번이고 읽는 책이지만, 정관정요는 읽었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또한 정관정요에 대한 강의를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찾아보았지만, 관련 강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정도로 정관정요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정관정요'를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별칭 외에도, 고려 광종이 옆에 두고 읽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호족들을 제거하고 고려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광종! 그가 그토록 애독했던 '정관정요'에는 어떠한 내용이 적혀있을까?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무서운 사람 당태종!!

  정관정요가 잘 읽히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는,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쳐들어왔다는 사실도 한가지 이유이다. 우리에게는 원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정관의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룬 존경받는 황제이다. 전쟁광으로 여겨질만한 그가 어떻게 중국인들에게 그토록 존경을 받을까? 정관정요를 읽으며, 그 비밀을 몇가지 알아냈다.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자신의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가 자신이 능력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정관정요의 행간에 당태종의 자제력과 인내력이 속속들이 들어있다.

  당태종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낀 것은 자신이 죽인 형의 신하를 자신의 신하로 품어 앉은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신하를 항상 가까이에 두고 자신에게 간언을 하도록 했다. 그가 죽자 당태종은 몹시도 슬퍼했다. 그 신하의 이름은 '위징'이다. 위징은 태자에게 태종을 죽여 우환을 없애자고 건의를 하기까지 했다. 그런 위징을 당태종은 죽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가 반역을 꾀한다는 고변이 들어오자, 오히려 고발한 자를 서둘러 참수했다. 적의 신하!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적의 신하!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고발을 받은 자! 그를 끌어 안았다. 그러했기에 당태종은 '정관의 치'를 이룰 수 있었다.

  제 40편 신종편은 위징의 장문의 상소문으로 채워져 있다. 날카롭게 당태종을 비판하는 그 상소문을 당태종은 쾌히 받아들이고, 위징에게 황금 10근과 궁궐 구유의 명마 2필을 하사했다. 당태종의 이러한 모습은 당태종을 더욱 두렵게 느껴지게 한다. '정관정요' 곳곳에 자신에게 간언을 한 신하들에게 비단을 비롯한 명주를 20필~40필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재정이 튼실한 중국이기에 황제가 신하에게 막대한 하사품을 내릴 수 있다. 그 재정의 튼실함을 간언을 쾌히 받아들임으로서 이룰 수 있었고, 그렇게 이룬 재정을 신하들에게 쾌히 상으로 내렸다.

  여기서 잠깐, 위징과 고려의 서필은 왕이 내린 상을 받는 태도가 다르다. 당태종은 잘못된 정책을 반대한 위징에게 금항아리, 왕규에게는 명주 50필을 하사했다. 그런데 비슷한 사례가 고려 광종에게도 있다. 서희의 아버지 서필에게 금그릇을 하사했더니, 서필은 신하가 금그릇을 사용하면 왕은 무엇을 사용하릿까? 라며 거절했다. 반면에 위징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한편으로는 위징보다 고려의 서필이 더 충직한 신하라는 느낌이 든다.

  당태종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태자 승건이 간언을 하는 장현소를 말채찍으로 때리고 그가 칟던 북을 찢어버렸다. 그래도 간을 하자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했다. 결국 태자는 폐위된다. 자질이 없는 태자를 폐위시킨 것은 당 태종의 탁월함이다. 주어진 지위를 이용해 갑질하는 사람은 단죄함이 마땅하다. 그런데도, 자신의 혈육이기에 단죄하지 못하고 제위를 넘겨주었다가 나라가 망하거나 신하에 의해서 폐위되는 경우를 우리는 성종과 연산군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당신은 부모의 피골음을 입으로 빨아낼 수 있는가? 당태종은 황제의 신분으로 고구려를 정벌하면서 백암성 전투에서 화살을 맞은 이사마의 상처를 입으로 빨았다. 이를 보고 장졸들이 감격해서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전쟁터에 나간 자신의 아들의 피골음을 '오기'라는 장군이 친히 입으로 빨았다는 소식을 듣자, 그 아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죽을 것이라 한탄했다고 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남성들의 감성을 이용해서 당 태종은 그들이 당 태종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숨을 버릴 수 있도록 했다. 고구려 정벌을 위해서라면 부하들의 피골음도 빨 정도로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당태종의 무서움을  느낀 마직막 사례는, 화난척하여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라는 상소문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일이다. 당태종은 큰 신의를 행하려는 것이지 속임수로 세속 사람을 가르치려는 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님을 강조하며 그 상소문을 물리친다. '한비자'에는 간사한 신하를 알아내기 위해서 거짓으로 신하를 속여서 신하의 본심을 알아보라는 글이 있다. 자신의 손톱을 숨기고 신하들에게 자신의 손톱을 찾도록하면, 한신하가 손톱을 찾았다고 손톱을 들고 온다. 그러면 그 신하는 간신으로 판명나는 것이다. 제왕학의 교본인 '한비자'와는 상반된 당태종의 사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덕치가 법치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당태종의 통치 철학 때문으로 해석해야할까? 아니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된 자시의 아킬레스건을 숨기기 위한 술책으로 보아야할까? 나의 생각으로는 신하를 속이라는 신하의 건의를 대놓고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득이나 쿠데타로 황위에 오른 자신이 신하들을 속이며 제위를 지키려한다면 그는 신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처지가된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다. 그리고 덕치를 표방하며 신하들의 마음을 얻는 용인술의 달이이 되어갔다.

  정관정요를 읽는 내내, 고구려를 쳐들어온 당태종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지를 뼈속 깊이 느꼈다. 수많은 적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 당태종은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자신의 적까지 품어 자신의 충직한 신하로 만드는 무서운 통치자였다.

 

2. 고구려에 대한 당태종의 집착

  정관정요 제 35편 '정벌'편은 당태종에게 고구려 정벌을 하지 말라는 간언으로 채워져 있다. 정관정요의 곳곳에 고구려 정벌의 위험성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스며들어 있다. 위징은 위나라 이극의 말을 인용하여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멸망한다.'라고 간언했다. 그런데 당태종은 위징의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태종은 너무도 전쟁을 좋아했으며, 북방민족을 정벌하여 '천가한'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또한 고구려 정벌에 과도할 정도로 몰두했다.

  그렇다고 그가  백성의 생활을 돌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당태종은 '밥을 아느냐? 농사 짓기가 힘들다. 농사 짓는 때를 빼앗지 않아야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다.', '너는 배를 아느냐? 배를 임금에 비유하고 물을 백성에 비유할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워 줄 수 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모든 일은 근본에 힘써야하고, 나라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사람은 의식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렇게 당태종은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생업을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그 스스로 말하고 있다. 더욱이 궁중이 습하니 높은 누각을 지어 거주하라는 공경대부의 말을 '많은 경비를 쓰는 것은 부모된 도리가 아니다.'라며 거절한 것이 당태종이다. 그런데 당태종은 고구려원정에 집착한다. 신하들이 고구려를 정벌해서는 안된다는 간언을 올려도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관정요'에도 나와 있듯이, 야광주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사람의 목숨이다. 재물을 사랑한다하여 재물보다 더 귀한 목숨을 잃는다면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당 태종은 당나라 백성의 목숨보다도, 고구려 땅을 더 얻고 싶어했다. 그는 고구려 원정에 당의 백성과 말을 동원해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당의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전쟁의 아비규환에서 목숨을 잃도록 했다.

  그의 모순된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가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고구려원정에 집착하지 말았어야했다. 당나라는 충분히 넓다. 그럼에도 그는 고구려 원정에 집착했다. 그가 고구려 원정에 집착한 것과 백성을 사랑한 것, 어느 것이 그의 본심일까? 당태종은 정쟁을 하기 위해서 백성을 사랑했다. 백성이 잘살아야 그들에게 군량미를 착취하고, 그들을 병사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 술을 마시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50대 분들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된다. 체력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다. 경제가 뒷받침 되어야 전쟁을 할 수 있다.

 

3. 위징을 평가하다.

  당태종 제일의 책사는 단연 '위징'이다. 어떤이는 '방현령'을 당 태종 제일의 책사로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현령은 당태종이 화를 내며 꾸짓으면 바로 잘못했다고 꼬리를 내린다. 반면에 위징은 당 태종이 꾸짖어도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해서 당 태종을 설득시킨다. 방현령에게는 없는 당당함과 탄탄한 논리력이 위징에게는 있다. 이것이 바로 충신의 조건이다. 

  위징은 '충언도 의견을 잘 절충해서 조용하고 은근하게 풍자해야한다.'라고 말한다. '한비자' 세난편이나 '카네기 인간 관계론'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올바른 말이라도 함부로 말했다가는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이 진정으로 흥미있어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를 설득해야 설득이 가능하다. 이 어려운 일을 위징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나의 거울을 잃었다.'라고 통곡했다. 당태종이 고구려원정에 실패하자, 위징이 살았다면 말렸을 것이다.라며 한탄한 사실을 보더라도 위징의 충언과 당태종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했다. 각도에 척출사를 파견하려할 때, 신하들은 '위징'을 추천했다. 당태종은 자신을 바로 잡는 사람은 위징이라며 그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위징 대신 이정을 척출사로 파견한다. 만약 그가 오래 살았다면,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국사는 변했을까? 

  그럼, 위징은 어떠한 신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가 올린 상소문을 근거로 그를 평가해보자. 위징은 '설원'을 근거로 신하를 육정과 육사로 나눈다. 바른 신하 여섯과 사악한 신하 여섯! 위징은 육정중에서 어떠한 신하일까? 공문을 준수하고 법령을 받들어 관리를 임명하고 업무를 맡길 때 뇌물을 받지 않고 녹봉은 사양하고 포상은 양보하면서 음식가지 절약하는 신하를 정신이라한다. 신하가 녹봉도 사양한다면 그 신하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신하이다. 아니면, 대기업 회장 처럼 돈이 차고 넘쳐서 녹봉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면 가능한 신하가 정신이다. 위징은 녹봉을 사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당태종이 내린 백금과 비단을 사양하지도 않았다. 그는 '정신'은 아니다.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아첨하지 않고 감히 임금의 존안을 범하면서 면전에서 임금의 과실을 말하는 신하를 '직신'이라한다. 위징은 '정신'이 아니라, '직신'이다. 직신은 왕의 미움을 받아 죽을 수 있음에도, 그는 죽지 않고 당 태종의 '거울'이 되어 당태종의 무한한 신뢰를 받았다.

 

4.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다.

  00000의 갑질 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뒤덮고 있다. 그들의 동영상과 녹취파일을 읽다보면, 과연 그들의 가정교육이 이루어지는 집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관정요'에는 소위 제벌 2세에게 귀감이 되는 격언들이 있다. 당태종은 민가에서 자라 나라를 창업한 왕은 민생의 진위를 알고 패방하지 않지만, 보위를 이은 왕은 태어나면서  부귀를 누리고 백성의 고통을 알지 못해 멸망으로 치닫는다.'고 말한다.  이는 창업주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구었기에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고난을 극복하여 기업이 잘 경영되지만, 재벌 2세, 3세는 주어진 부귀에 취하여 갑질을 하고 회사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는 현실과 너무도 유사하다.

   비단 황제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공신에게도 그들의 자녀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다. '요순에게도 불초자식이 있다.' 즉, 소위 공신을 사랑하는 행동이 바로 그들의 자녀를 해치는 원인이된다. 공신자손에게 봉읍을 하사할 때도 그들의 재능과 행적을 보고 주어야한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는데도 분에 넘치는 봉읍을 준다면, 후손은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는 멸문지화를 겪게 된다. 그래서 여러 제후국의 군주로 그들을 대를 이어 책봉한다면 그들은 선조가 이룩한 고난을 망각하고 저절로 고귀함을 얻어 이를 가볍게 취급하여 대대손손 교만함과 사치함을 자행할 것이라 경계해야함을 강조한다. 자수성가한 창업주가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녀에게 세습하면서 벌어지는 폐단을 '정관정요'는 1000년 전에 예견하고 있었다.

  정관정요에는 '존엄한 신분을 굽히고 아랫사람과 교유하는 대의를 밝'힐 것을 강조한다. '깊은 궁궐에서 태어난 여인의 손에서 자란다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알지 못학 또 풍아를 깨치지도 못할것'이라고 경계의 말을 한다. 재벌이 자신의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굴수 있는 황무지를 물려주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지탄을 받지 않았을 것다. 거져 주어진 옥토는 그들에게는 더이상 옥토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일 뿐이며, 자신이 고용한 사원은 자신의 노예로 여겨질 뿐이다. 정관정요는 1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의 금수저, 00항공사의 재벌2세, 3세들에게 경종의 말을 하고 있다. '봉작을 세습케하지 않으면 현인을 등용하는 길이 넓어질 것이다.'라는 정관정요의 말은 오늘날 재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혈통에 의한 세습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부의 되물림을 없애라! 정관정요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재벌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5. '정관정요'가 던져 주는 교훈

  예절은 엄격해야할까? 간소화해야할까? 당 태종은 제왕이라도 살아서는 피휘하지 않도록 했다.과거시험을 볼 때도, 문서를 작성할 때도 역대 황제의 이름을 알아서 그 글자를 피해서 문서를 작성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 태종 이세민은 자시의 이름 '세'와 '민' 두 글자가 연이어 나오지 않으면 피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해줄 수 있는 것이 예절이다. 그 예절이 사람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면 그 예절은 간소화되고 생략해야한다. 이세민은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당신은 맹목적 사랑을 받으면 행복할 것 같은가? 당 태종이 위 의공이 북방 이 민족에게 죽어 간밖에 남지 않자, 신하 홍연이 자신의 간을 꺼낸 뒤에 의홍의 간을 자기 배속에 집어 넣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자, 위징은 예양이 지백을 위해서 조양자를 칼로 찔러 죽이려한 고사를 예로 들어, '임금이 사람을 예로 대우하는 것에 달려 있다. 어찌 사람이 없다하십니까?'라며 당태종에게 일침을 가한다. 여자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위해서 미모를 가꾸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 사실 부모 자식간에도 일방적인 사랑은 없다. 자녀가 재롱을 부리리고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려 노력하기에 자녀가 더욱 예뻐보이기 시작하여 사랑을 주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며 정신병이다. 일방적인 충성을 신하에게 요구하는 당태종에게, 위징은 그러한 일방적 사랑은 없다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지를 생각하게하는 일화이다. 

  '정관정요'하면 가장 유명한 구절이 '창업과 수성 중에 어느 것이 어려운가?'라는 당 태종의 질문에 위징이 창업은 때를 만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수성은 천하를 얻은 뒤로 본래의 뜻이 교만해져서 백성은 피로해지고 나라는 쇠퇴하기에 수성이 어렵다고 대답한 고사이다. 위징의 지적은 참으로 탁월한 지적이다. 고려가 동북 9성을 개척하고도 쉽게 포기한점이나, 공민왕 시기 이성계가 요동성을 점령하고도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보더라도 '창업'보다 '수성'이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혼을 하는 것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스승의 날을 당신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존치 시켜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스승의 날 의미가 잊혀져가는 요즘, 당 태종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 태종은 황태자에게 조칙을 내려 스승을 이끌어 궁전 위로 모시게하고 직접 배례를 올리며 존중의 마음을 크게 보이라했다. 스승에 대한 존중과 감사가 있어야 참다운교육이 가능하다.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학부모와 학생이 늘어나는 요즘! 스승의 날을 교사가 더 부담스러워하는 현실! 속에서 당 태종의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적폐교사는 마땅히 속아내야 한다. 그들까지 옹호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이름없는 참교사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여섯가지 사악한 신하, 즉 '육사' 중에서 구신은 농봉만 탐하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부침하며 눈치를 보는 신하들이다.이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변화를 싫어한다. 이들보다 더 나쁜 신하들이 '적신'과 '망국지신'이다. 파당을 짓고 현명한 사람을 모함하고 임금의 악행이 나라안에 두루 알려지게하고 사방의 이웃나라까지 그 소문이 들리게하는 자들이다. 나라를 좀먹고 급기야는 망하게하는 신하들! 요즘도 많이 보이지 않는가? 한국의 정치인인지, 일본의 자민당 2중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자들이 '적신'이요, '망국지신'이다. 

  


  제왕학의 교과서를 말하라면, 단연 '한비자'와 '정관정요'를 꼽을 수 있다. 두 책 모두 제왕이 읽어야할 필독서이지만, 성격을 상당히 다르다. 한비자가 제왕의 관점에서 신하를 부리는 방법을 서술했다면, 정관정요는 신하의 관점에서 정치의 요체를 논한다. 신하의 말을 잘 들었던 당 태종처럼 제왕이 어진 신하의 말을 잘들어 '정관의 치세'를 다시 만들자는 관점에서 씌여진 책이 '정관정요'이다. 상당히 직설적이라서 후대의 황제들이 '정관정요'를 싫어했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은 법! 제왕이라면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관정요'를 읽어야한다. 

  물론, 한국의 독자는 중국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한다. 가령, 당 태종이 '고구려를 격파'했다고 표현한 부분은 지나친 자국중심 주의의 극치이다.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쫒기듯이 도망쳐야했으며, 황제가 친히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말채직으로 갈대를 묶는 일을 도와야했다. 음란한 음악을 경계하라는 지적도, 생산력이 낮은 전통시대의 '농본주이ㅡ'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한 지적으로 자본주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러한 점을 유의해서 읽는다면 '정관정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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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미래 - 총.달러 그 이후... 제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지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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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매래' 얼마나 웅장한 제목인가? 에이미 추아는 이민 2세대로 성공한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녀가 미국에게 묻고 있다.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은 지속될 수 있닌가? 그녀는 고대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서부터 로마, 당나라와 몽골, 근대 유럽의 여러 강대국을 거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앙한 제국들이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전략적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 국방비와 군사력, 경제력을 중심으로 강대국의 흥망을 설명했다면, 그녀는 '관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강대국의 요건을 살펴보고 있다.

 

1. 받으려면 먼저 주어라,

  도덕경에 나와 있는 말이다. 그릇은 비움으로써 그 가치가 있다. 받으려면 먼저 주어라! 어쩌면 너무도 감상적인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사의 다양한 초강대국의 역사를 통해서 '전략적인 관용'을 택했던 나라들은 번영했고, 그 번영을 구가하던 나라들이 관용을 포기할 때, 그 강대국은 삽시간에 사라졌다고 갈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적 관용'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지속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만일 미국이 건국 이후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재발견하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면,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세계의 (중략)

기회, 역동성, 도덕성을 갖춘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트럼프가 집권한 지금 미국은 과연 과거 미국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재발견하고 있는가?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나치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네오나치들을 보면서 미국의 어두운 미래가 깃들지는 않을까?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2. 강한 접착제가 필요하다.

에이미 추아는 관용만으로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관용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을 아니다. 또한 관용만으로는 제국의 해체를 막을 수 없다. 알렉산드로서의 침공으로 삽시간에 망했던 아케메내스조 페르시아를 예로들면서 제국을 묶을 수 있는 강한 접착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통, 작은 민족국가는 민족주의가 접착제가 되어주지만,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있는 미국은 무엇이 강한 접착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기독교와 앵글로 색슨은 접착제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 가치가 그것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것은 미국이 풀어야할 숙제이다.

  중국은 어떠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문명의 붕괴'에서 중국의 환경파괴를 위협요소로 지적하며, 중국이 과연 계속 발전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에이미 추아는 중국의 한족이라는 개념이 중국 내의 다양한 종족을 통합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칼이다. 동남아시아의 비한족들이 중국인이 된다거나, 백인이 중국인이 되는 것에는 중국인들은 긍정적 대답을 하지 않는다. 중화제국주의를 추구하며 팽창하는 중국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가지지 않았으며, 대외적으로 전략적 관용을 실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것이 중국의 한계이다.

 

  오랜만에 너무도 좋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띄인것 같다. 지금까지 읽었던 거시사의 책들이 디딤돌이 되고,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가 대들보가 되어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거시적 안목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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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사 - 색안경을 벗고 보는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이야기 반전이 있는 역사 시리즈
권재원 지음 / 다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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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에 대한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이책을 서가에서 빼들었다. 청소년용 책들 중에서 상당수는 책의 내용이 너무 쉽거나 오류가 있는 책들이 꾀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고 있었던 것들을 확인히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과연 이 책의 제목처럼 이 책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반전시켜 줄 수 있는 책이었을까?

 

1. 작지만 알찬 책!

  이책은 약 200페이지 정도였다. 얇은 책에 많은 거을 담지는 못할 것이다. 이책은 이부분을 잘 활용했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니, 무엇을 담아야하는지 깊게 고민했던 것이다. 일본은 고대사와 중세사를 중심으로 서술했으며, 중국은 청나라 이후의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우리 역사교육의 맹점을 정확히 집은 것이다. 막연히 일본은 우리가 문화를 전파해준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일본의 역사가 꽤 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중국근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한 우리를 위해서 중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타이완과 홍통은 가까이 있지만, 교과서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기에 가깝지만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들과 관련된 역사서적을 얻고 싶지만, 여행서적인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간파하고, 기초내용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k1을 보면 상대와 열심히 싸워고도 KO를 시키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싸우는 선수는 상대방의 급소를 한방에 공격해서 KO를 시키다. 이 책은 우리의 약점을 정밀공격했다. 이 점이 이책을 작지만 알찬 책으로 만들었다.

 

2. 반전은 있었다.

  이책의 곳곳에 반전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너무도 가깝기에 선입견에 싸여있던 동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의 역사를 하나씩 해부하며 선입견을 벗겨냈다.

  보통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한 것을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돌린다. 흥선대원군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근대화에 성공했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서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일본이 개항하기 이전에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은 청나라에 버금가는 발전을 이루었으며, 에도의 인구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조선의 한양인구는 20만이있다. 이미 섬나라 왜놈이라고 비하하던 일본은 조선을 추월하고 있었다. 너무도 단편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우리에게 뼈아픈 일침을 가하고 있다.

  중국편에서는 일제를 패망시킨 것은 중국의 노력이 상당했음을 강조하고, 중국의 국가 조직 서열을 설명했다. 이들 설명보다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이 세계를 이끄는 선두국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재레미 다이아몬드 박사는 중국이 내부적으로 부닥치는 환경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저자는 저임금에 기반한 중국경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심각해지는 불평등의 문제를 걸림돌로 지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민주화 달성여부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곌르 이끌어가는 나라는 경제력과 군사력 뿐만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모범적이어야한다는 것이다. 자연환경을 중요한 문명의 운명을 가르는 요소로 본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민주화'를 세계를 주도할 국가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어느 것이 중국에게 더 중요한 과제일까?

  타이완은 작지만 큰 섬이라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그리워하는 타이완인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할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 비추어 타이완을 이해했다가는 낭패라는 말이다.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라는 책에, '대만에서는 말로해도 되는 것이 조선에서는 강압적으로 해야됐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조선인의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에 대비되는 타인완인의 순응적인 모습을 표현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타이완인들이 일제에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강렬하게 저항했던 타이완의 역사를 서술하고, 가장 강압적인 독재가 이뤄졌던 나라중에 하나였던 타이완이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가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 과정속에서 '중화민국'인가 '타인완인'인가를 두고 갈등하는 타이완의 현재모습을 설명해주고 있다. 너무나도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있고, 그 속에서 심각하게 굴절된 타이완은 많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상처입은 조개가 그 상처를 치유하려 몸부림 치며 진주를 만들듯이, 타이완의 민주주의는 그 고통의 산물이었다. 과연 타이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통해서 홍콩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홍콩의 민주주의는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것을 대비해서 이뤄진 조치라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홍콩의 민주주의는 홍콩인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라 지적하고 있다. 아시아의 진주는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홍콩의 자유가 중국과 영국의 이해관계의 산물이기도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47년까지 일국양재라는 원칙을 지키기로 약속한 중국! 그 중국이 이를 지킬 것인가?가 우리의 초미의 관심이다. 과연 중국은 그 약속을 지킬 것인가? 불안한 예측이 밀려온다.

 

  이 책은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역사를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들나라들을 여행할 때 주의할 점을 짧막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대만은 '깔끔한 중국', '물가가 싼 일본'이라던지, 일본에서 우리말고 욕설하지 말라던지, 중국에서는 골동품을 함부로 구입했다가는 사형에 처해질수 있고, 하얀봉투를 불길하다고 여기다던지, 홍콩에서는 지하철에서 물도 마시면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깨알같이 재미있는 반전들이 책속에 듬뿍 담겨있다. 동아시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과 동아시아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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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양장) - 제왕학의 영원한 성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2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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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마키아벨리 한비자! 한비자를 읽을 것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먼저 읽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었다. 결론은 가장 유명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먼저 읽기로 결정했다. '군주론'을 통해서 지배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창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양의 마키아벨리, '한비자'를 읽으려 결심했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라나 '한비자'를 읽는 순간! 한비자를 마키에벨리에 비교하는 것은 한비자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마키아벨리에 비해서 한비자는 제왕이 가져야할 통치술을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일화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한비자의 창을 통해서 지금의 정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한비자의 매력속으로 빠져들어가 보자!

 

1. 제12편 나라가 망할징조

  이 책에는 마흔일곱 가지 멸망의 조짐을 들고 있다. 그 중에 일부를 살펴보자.

'법에 의한 금력을 소홀히 하면서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나라안의 저치는 어지럽게 하면서 나라 밖의 원조에만 의지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

  한비자가 나라가 망할 조짐중에서 제일 첫번째로 든 것은 놀랍게도 멀지않은 시기 대한민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승만이 미국의 원조경제에 의존하여 나라안을 어지럽힐 때와 503호가 무당에 현혹되어 수많은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도 모른체 안일에 빠졌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또한, '군주가 길한 날을 점치고 귀신을 섬기며, 점술을 믿고 제사지내기를 좋아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라는 글을 읽었을 때에는 진령군에 기대어 정치를 어지럽힌 명성황후와 무당의 말을 들으며 연설문 교정을 받은 503호가 떠오른다.

  한비자의 나라가 망할 조짐의 위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귀족의 자제들은 논쟁만 즐기며, 상인들은 재물을 나라 밖에 쌓아두고, 백성들은 개인적인 싸움만을 존중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글에서 '상인들은 재물을 나라밖에 쌓아두고'라는 부분을 읽는 순간,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서 나라의 부를 밖으로 유출시키는 일부 사회부유층들이 생각났다. 어찌 한비자가 말한 이 지적인 2천년 전의 일만의 것이랴? 아울러 한비는 '재물을 탐내는 데에 눈이 어두워 만족할 줄을 모르고, 이익을 가까이해 얻는 것을 좋아함녀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라고 했다. 승자독식의 시대! 골목상권까지 침해당하고, 개미투자자들은 깡통을 차는 세상을 이미 2천년 전에 한비는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보고 걱정했다.

  '군주가 궁실과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며, 수레나 옷이나 그릇과 노리개에만 관심을 기울여서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고 재물을 전부 써버리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부분을 읽는 순간, 명박산성이 떠올랐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약 22조를 써버렸다. 자원외교를 통해서 많은 국부가 유출되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다. 나라의 빚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러면서도 대한민국호는 침몰하지 않았다.

  '군주의 성격이 고집이 세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며, 사직은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라는 말은, 독재자와 그 독재자의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비의 독설일 것이다.  

 

2. 우리안에 한비를 찾아서

  우리안에는 유교가 녹아있을까? 법가가 녹아있을까? 아마도 모두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보자. 우리안에 공자의 말이 많이 남아있을까? 한비의 말이 많이 남아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자의 말이 많이 내몸안에 녹아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한비자'를 읽기 전까지는 공자의 말들이 나의 생활속에 많이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비자를 읽으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한비자'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우리 생활에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수주대토'이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예전에 있었던 사실이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믿는 불쌍한 인간들을 가리키는 말!! '수주대토'!! 이것은 한비자에 있는 말이었다. 그밖에도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중국에 관한 서적들에서 소개된 다양한 이야기의 원전은 한비자였다.

  우리도 모르게 한비자는 우리의 말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비자가 주장하는 말들은 지금 우리의 현실속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법에 대해서, 강자와 약자에게 공평하고,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올바른 법치주의'라는 것도, 이미 한비자에서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다. 법치를 가장해서 약자를 짓밟는 세상에서는 '한비자'가 말하고 있는 법치의 세상이 차라리 유토피아일 것이다.

 

3. 공자와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한비의 눈!!

  한비는 순자에게서 배웠고, 순자는 공자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이다. 그런데, 한비는 공자보다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 현실적이었다. 공자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이상군주로 생각하고 그 시대가 도래할 것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비는 그렇지 않았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시대가 다스려질 수 있었던 것은 그시대의 시대적 배경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생산력이 발전한 한비의 시대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공자가 요임금과 순임금의 '선양'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데 반해서, 한비는 요임금과 순임금이 통치했을 때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이 크지 않았기에 허유와 같은 은자에게 나라를 바치려했어도 그는 받으려 하지 않았으며, 굳지 아들에게 선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전국시대가 되면 군주의 권우와 힘을 매우 크다. 나라의 벼슬도 서로 가지려하는 시대에 군주의 자리는 신하들도 넘보며, 변변치 않은 군주는 신하에게 시해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시대에 따라서 대응양식도 달라져야한다는 지극히 상식과도 같은 지적을 한비는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스러운 상식적인 생각을 왜? 나는 하지 못했을까?

 

  한비자는 나에게 많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었을 때! 마키아벨리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합리화시키는 괴물로 보았던 나의 시각이 교정되었듯이, '한비자'를 읽고서는 '한비자'는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비자가 말한 마흔 일곱자기의 나라가 망할 징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은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이라는 평형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독재자를 감시하고 독재자들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제공하는 책이 바로 '한비자'이다. 비열한 정치가들에게 속지않고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고자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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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1211 2017-07-06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현실적이고 강한 메세지가 있네요.^*

강나루 2017-07-06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강한 인상을 준 책이죠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 역사학자 이덕일, 공자와 논어를 논하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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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이 '논어'에 대한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 전분야에 손을 데고 이제는 동양고전에 까지 손을 데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태묘(太廟)'를 종묘가 아닌 '태조의 능'이라고 해석했다며 이덕일을 싫어하는 학자에게 난타를 당했던 이덕일! 그가 '논어'라는 책을 썼다. 과연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라는 책은 이덕일이 '논어'를 어떻게 소화하고 썼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1. 논어를 통해서 공자의 생애를 살펴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철학자들의 '논어'관련 책들과는 달리, 공자의 사상보다는 그의 삶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곳곳에 녹아있는 '논어'의 구절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자의 입에서 나온 구절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공자의 입체적 삶을 통해서 논어의 명문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보다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김시천의 '논어, 학자들의 수다'라는 책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제자들의 삶을 논어를 통해서 분석해 보았다면, 이 책은 '논어'를 통해서 공자의 삶을 분석했다. 두책을 비교하며 읽어 내려가니, 공자와 그 제자들이 입체적으로 머릿 속에 그려졌다. '내인생의 논어, 그사람 공자'에서 빠진 제자들의 모습을 '논어, 학자들의 수다'에서 보충하며 읽다보면, 역동적이었던 공자학단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지금 읽고 있는 '도올 논어' 속에서 자구들을 읽으며,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의 해설을 함께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으나, 파편화된 조각들을 배우는 듯한 인상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공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의 삶을 통해서 '논어'의 구절들을 이해하니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공자의 궤적이 보다 명확해졌다.

 

  2. 논어를 통해서 한국사 읽기

  이덕일은 한국사와 관련된 수많은 서적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하기에 한국사 전공자로서의 장점을 놓치지 않고 '논어'의 구절과 관련된 한국사와 관계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들 인물들은 이덕일이 평소 많이 언급했던 인물들이었다. 나름, 논어를 통해서 한국사,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보통은 유교 망국론에 휩싸여 조선 왕조가 망한 것은 공자의 유교 혹은 성리학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공자를 싫어하고, 공자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덕일은 '공자는 실제 모습과는 달리 사대부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시대가 그에게 정치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았으나, 역사는 그의 뜻을 기억한다. 또한, 그의 제자들은 공자가 죽자, 3년 상복을 입었다. 공자를 부모의 예로 대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은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여막을 짓고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다. 그는 참스승이었고, 동아시아의 스승이었다.

 

  3. 공자는 노나라 사람인가? 은나라사람인가? 동이족인가?

  이덕일은 대중강연에서 '공자가 동이족인 것은 알지요? 논어에 그렇게 씌여 있어요'라는 말을 한다. 이 책에서도 '은나라 순임금은 동이족'이다, 공자는 '동이를 뜻하는 구이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라고 하면서, 은나라는 동이족이고, 공자는 은나라 사람임을 강조했기에 공자는 우리 민족이다라는 늬앙스의 말을 하고 있다. 과연 진실을 무엇일까?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덕일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남만, 북적, 서융, 동이는 중국 하나라를 중심으로 주변의 이민족을 오랑캐로 낮추어 부르는 용어이다. 중국이 점점 확장하면서 이전에 오랑캐였던 지역이 중국의 역사속으로 편입되게 된다. 그러하기에 과거 오랑캐라고 불렸던 지역도 중화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동이라고 불렸기에 우리와 관련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아닌가? 중국의 역사서에 '동이열전'에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쪽에 있는 다양한 민족이 적혀있다. 그중에서 '일본'도 있다. 이점을 이덕일은 명심해야할 것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놀라운 점은 몇천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감탄과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논어를 원문과 함께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것이 2년여 되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논어 관련 책들도 더불어 읽고 있다.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는 '논어'의 씨줄과 날줄 처럼 논어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논어를 통해서 인간 공자를 탐구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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