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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중일 삼국지 - 갈팡질팡 한국, 허겁지겁 중국, 아등바등 일본
우수근 지음 / 두리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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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나라! 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라가 있다. 중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너무도 가깝지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오만함에 치를 떤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이다. 대국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은 힘의 외교를 구사하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한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교류하며 살아야한다. 신숙주가 죽으며 왕에게 남긴 유언이있다.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아니되옵니다." 일본과 외교 관계를 끊는다면,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숙주의 예견은 놀랍게도 적중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조선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조선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안된다는 신숙주의 유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니다. 신숙주의 마지막말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예의 주시해야합니다."로 고쳐야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며,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를 수출 못하게하여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붕괴시키려했던 만행도 기억해야한다. 적의 한손을 잡고 있어야, 다른 한손으로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적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을 친구로 만든다면, 동아시아의 번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해야한다. 그래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를 펼쳐들었다.

 

1. 내뱉는 문화를 가진 중국과 삼키는 문화를 가진 일본, 그 중간의 한국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회와 문화를 살펴보면, 중국과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한국은 두 나라의 가운데에 있는듯한 모습들을 많이 본다. 집안에서 여성의 권위가 강한 중국과 순종적인 이미지의 일본 여성, 두 나라의 중간 지대에 있는 한국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서는 중국의 문화를 '내뱉는 문화'라고 지칭하고, 일본의 문화를 '삼키는 문화'라고 이름 붙인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리부터 높이는 중국인들에 비해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동아시아 3국의 사회 문화가 비슷한듯하면서도 이리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동아시아 3국이 걸어온 역사의 차이에서 찾고 싶다.

  중국의 경우, 거대한 중국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인 들은 "꽌시"를 중시하게 되었다. 어떠한 "꽌시"를 맺느냐에 따라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성공의 길이 순탄할 수도 있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나와 꽌시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반역을 저지르면 3족을 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9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다. 명나라 연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락제로 등극할때의 일이다. 영락제는 유명한 학자인 방효유에게 즉위조서를 쓰도록 했다. 방효유는 이를 거절하며 붓을 집어던졌다. 반역을 하면 보통은 9족을 멸하는데, 영락제는 10족을 멸했다. 친족뿐만아니라, 870명에 달하는 방효유의 친구와 문생까지도 도륙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 잘못하면 자신과 꽌시를 맺고 있는 친구들까지도 죽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유튜브'우수근의 한중일 TV'에서 우수근은 중국인은 체면을 중요시여기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잘못을 인정시키려 몰아붙이지 말것을 당부한다.

  일본은 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할까? 이것도 역시 일본의 역사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일본은 천년 이상 칼이 지배했던 사회이다. 도망갈 곳이 없는 섬나라 일본에서는 패배자는 할복을 하거나 승자에게 무릎꿇고 목숨을 구걸해야했다. 사무라이만이 칼을 휴대할 수 있는 에도막부 시기에는 사무라이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죽일수도 있었다. 어느 사무라이의 아들이 자신의 떡을 훔쳐 먹었다며 떡값을 요구하자, 사무라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의 창자를 꺼내 떡이 없음을 보여주고, 그 상인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할복을 한다. 일본인들은 이 이야기 들으며, 사무라이 정신이 녹아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붓이 지배해온 우리의 감성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이러한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평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이 없으면서도 무조건 사무라이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해야했다. 일본인의 과잉 친절도 그들만의 아픈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먼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를 보면 우리의 상식은 무너진다. 우리에게 했었던 수 많은 역사적 죄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한국이 발전했다고 말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전체속에서 일본인이라는 개인은 목소리를 낮춘다. 강대국인 미국앞에서는 너무도 작아지는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만은 근거없는 자신감과 오만으로 다가온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일본인이 많이 읽는 고전은 "손자병법"이라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은 미국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절대강자이며, 한국은 손만까딱하면 제압할 수있는 약자로 보이나보다.

 

2. 한국과는 다르지만, 일본과 중국은 너무도 닮은 것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국인은 놀랍도록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중국 TV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공원에서 아이를 납치하는데,공원에 있었던 그 어떤 사람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이러한 충격적인 모습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는 저자가 겪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추운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아무도 도우려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 사람을 건물안으로 옮기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같이있었던 일본인 친구들은 자리를 피했다. 일본에서 고 이수연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린 이야기에 일본인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괜히 잘못 남의 일에 엮이게 된다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다칠 수 있기에 중국인들은 타인의 일에 나서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에도 칼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어하고, 신세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극단적인 문화가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도 못본척하는 삭막한 일본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어떠한가? 기저질환이 있어 마스크가 필요한데,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며, 보리쌀과 마스크를 물물교환하자는 인터넷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은 한 시민이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마스크를 선물하고 왔다는 훈훈한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4월이 올때까지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한국인의 문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시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은 잘살게 되어 나서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과 관계 없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물론, 나의 생각은 사무라이가 지배했던 일본의 역사에서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중국은 강력한 중앙정부가 무서워서 시위를 하지 못한다. 단, 자신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상방'이라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할까?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세계인들이 놀라는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촛불 문화재를 열며 박근혜 최순실을 권좌에서 끌어냈다. 조선왕조를 당파싸움만하다가 멸망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붓이 지배하는 나라이기에, 자신의 주장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꿋꿋하게 했다. 사약을 받아 마시면서도 자신의 말을 하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선비정신은 21세기 한국에서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이를 '역사적 무의식'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역사적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우리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에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의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위를 이야기 했으니, 한중일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투표 제도 자체가 후진적이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접적어야한다. 한지역구에서 대를 이어서 국회의원을 하는 집안이 있을 정도이다. 마치 에도막부시기 지방의 다이묘들을 보는듯하다.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공산당 독재를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코로나 19를 강력한 통제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코로나 19에 대해서 친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대책을 논의하던 리원량이라는 의사는 중국 당국에 잡혀가 다시는 이와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 그리고 리원량은 환자를 치료하다가 코로나 19에 걸려 저세상으로 떠났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점이 많지만, 정치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지만, 너무도 둘은 정치적으로 닮아 있다.

  반면, 한국은 이명박근혜 시기의 어둠을 뚫고, 촛불혁명의 민주주의를 완성해가고 있다. 중국식 통제 방식으로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자율성을 살려가며 코로나 19와 싸워가고 있다. 한국의 극복사례와 중국의 극복사례는 단순히 두가지의 코로나 19 극복사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자율성과 공산주의의 통제정책의 대결이다. 우리 한국은 그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3. 한중일의 공통점

한중일이 서로 다른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수근은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까지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수근이 소개하는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은 잦은 동거와 쉬운 이혼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성문화 역시 예전부터 개방적이었다. 한 마을에 사는 주부가 13세 혹은 15세 정도의 '동정' 청소년에게 성 관계를 위해 접근할 때 사용하던 의식을 소개한 부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본을 '성진국'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이밖에도 신주쿠의 성문화 소개는 우리의 상상 그이상의 것들이었다.

  중국 또한 자본주의 물결이 넘실되면서, 이혼이 쉽게 되었다. 부부사이의 문제가 없는데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문화도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 호텔 주변에서 쉽게 하룻밤을 자자는 여성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 놀라운 것은 중국인들은 축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를 부러워한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공산주의 중국도 성문화 만큼은 빠른 속도로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쉬운 이혼과 결혼, 빠르게 퍼져나가는 동거문화, 성에 대한 개방화는 한중일 3국이 각자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발점은 다르지만, 개방화라는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는 듯하다. 다시 전통시대 유교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개방화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개인 자유의 확대와 행복추구라는 점에서 긍정해야할까? 아니면 성의 문란과 안정적인 가정의 해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아야할까?

 한중일의 공통점 중에서는 씁쓸한 것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교육 분야의 문제점과 영어를 숭배하는 문화이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에서 어설푼 일본어를 하기 보다는 영어를 하는 것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란고 우수근은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를 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해질때가 많다. 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마쳐도 영어에 주눅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언제쯤, 한중일 삼국이 영어 숭배에서 벗어날지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중국이 G1으로 우뚝 솟는다면 가능할까?

  교육 분야도 한중일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학교붕괴, 엄벌주의의 문제를 보면서, 미국식 경쟁교육을 따라하며, 많은 교육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한중일 삼국이 머리를 맞대고 참다운 교육을 위해서 고민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빠른 속도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이용한 국가주의 교육에 저항하는 젊은 교사들의 용기있는 행동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1인자를 추종하는 '대세주의적 영합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 침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잘못을 직시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가야할 길이 멀지만, 좌절만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웃한 나라와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가까이 있기에 서로 살을 부대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편견을 갖기도 했다. 이제 21세기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서로를 알아가야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발자국 더 다가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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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한일관계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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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에 대한 기초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이 책을 펼쳤다. 한일관계사의 쟁쟁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분야를 한꼭지씩 집필했다. 총 18꼭지의 글들은 상당히 깊이가 있었다. 깊이가 있는 만큼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18번꼭지의 '일본의 외교 안정보장 전략의 변천과 한국'이라는 글을 이해가 힘들어서 저자를 살펴보았더니, 국제정치 전공자였다. 암튼, 18번꼭지의 산을 넘어 책을 다읽었으니, 다행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가지 생각할 꺼리가 던져졌다.

첫째, 허동현이라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허동현 교수는 과거 새누리당 국회의원 대상 강의에서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 강의를 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과 친하다는데 허동현은 뉴라이트 학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글 '12. 오늘의 시점에서 본 한일관계'를 읽으며 그의 명확한 관점을 알고 싶었다. 글의 내용은 열린 민족주의에 대해서 논한 큰 무리 없는 글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싶었던 뉴라이트에 대한 그의 명확한 견해는 없이, 혼란만 계속되는 글이었다.

 

  "최근 우리 지식사회는 정치지향과 세계인식을 기준으로 불때 크게 세 그룹의 지식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략) 민중적 민족주의 담론을 지향하는 지식인 집단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중략)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사학자 또는 정치사학자들이다. 마지막 하나는 (중략) 세계 시민 또는 민중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는 서양사학자와 역사사회학자들이다. (중략) 호랑이에 쫓겨 나무 위에 오른 누이와 같은 오늘의 우리 눈앞에 드리워진 동아줄 세 가닥 중 어떤 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를 살릴 생명줄일지 못내 궁금하다."-202쪽

 

허동현도 궁금하니, 나는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허동현!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둘째, 일본 지식인은 살아있는가? 일본의 지식인들은 천황제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천황을 비판했다가 총격을 받은 나가사키 시장의 예처럼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기도하다.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참으로 신기하다.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주자을 하기도 한다. "가토는 천황의 이름으로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희생된 2천만 '아시아의 희생자'에 대한 가해책임은 '일본 국민'에게 있으며 천황의 전쟁 책임은 천황의 이름 아래 죽은 300만의 '자국의 전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다. 이 무슨 괴변인가? 천황이 아시아인에게 저지른 만행은 죄가 아니란 말인가? 천황앞에서는 작아지는 일본 지식인의 나약함에 경의를 표한다. 더 나아가서, 미국과한 태평양전쟁 즉, 1941년 '선전조칙의 서명자'로서 책임만 천황의 책임으로 인정한 것도 그들의 빈약한 의식을 드러낸다.

셋째,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한 메이리인가?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다. 전쟁 최고 책임자인 천황이 처단되지 않았고, 강대국 민국의 입맞에 맞는 재판이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A급 전범에 대한 사형집행되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그들 상당수가 일본 정계와 사회분야에서 다시 등장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 강조되는 이유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도쿄 전범재판은 이를 반증한다.

 

이 책을 통해서, 한일관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학계의 전문적인 글들을 대중을 위해서 쉽게 풀었느다고 했는데, 이를 쉽게 읽을 대중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전문적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는 저자들이 쉬운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것이고, 여러 저자의 글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저자들의 쉬운 글쓰기 역량이 균질하지도 않았다. 쉬운 글쓰기를 하는 전문 저자를 섭외해서 이 책을 쉽게 풀어쓰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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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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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천년고도 시안, 용문석굴로 유명한 뤄양, 찬란한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 남송의 낭만이 깃든 항저우, 육조 문화가 꽃을 피운 난징, 농경민족이 세운 명나라와 유목민족이 세운 원나라,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를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여 서술했다. 특히 각 도읍지의 문화 유적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중국 도읍지를 답사 혹은 관광하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중국의 도읍지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이번책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중국의 여섯 도읍지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을 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가지가 나의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번째는 용문석굴의 많은 불상들이 불법적으로 뜯겨져 외국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딱딱한 돌들을 쪼아서 외국에 팔어버린 중국인과 이를 사들여 자국에 전시하는 뻔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는 분노를 자아낸다. 용문석굴의 불상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나라는 1위가 일본이고 2위가 미국이다. 대부분 반환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문화재도 외국을 떠돌고 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도덕보다는 힘이 앞서는 국제사회의 냉엄함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이러한 양심없는 국가에 비해서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간경사 마하가섭상이 불법 반출되어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 흘러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진해서 중국에 문화재를 돌려주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이 칭찬을 받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비정상적인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다보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할 장물을 돌려주었을 뿐인데 칭찬을 받는다. 언제쯤이면 장물을 취득한 사람들이 이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례가 미담으로 신문에 나오지 않는 날이 올까? 아마도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번째는 판관 포청천의 일화이다. 카이펑을 대포하는 포증, 즉 포청천은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비춰진 것과 같은 박진감 넘치는 일화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황제가 총애하는 장귀비가 장요좌를 포증이 탄학할 때는 그 당당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포증은 황제에게 침을 튀어가며 "외람되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채 부끄러움을 모르니 진실로 깨끗한 조정의 오물이고 대낮의 도깨비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제는 마음이 좋을 리 없다. 황제는 침을 닦으며 자리를 떴다. 결국 장요좌는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직간을 하는 신하의 말을 달게 듣는 인종의 어진 마음과 목숨을 걸고 옳은 말을 하는 포증의 당당함이 카이펑의 풍요를 가져왔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과연 그러한가 물어본다.

  한국사회는 독재정권시기에 너무도 부정부패가 넘쳐났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는 깨끗해지고 있다. 하지만, 깨끗해야한다는 윤리가 진보세력에게 너무도 가혹하게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노회찬을 잃었다. 그리고 조국을 법무장관에서 떠나보내야했다. 당시에는 사회적 관행이었을 수도 있고, 한국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당연시 누리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예전의 관행과 특권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보수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진보세력의 티끌들을 맹렬히 공격한다. 성인 군자와 청렴한 성직자가 아닌 이상, 한국의 인사 청문회를 온전히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리 사회는 윤리적 요구를 강하게 하고 있다. 윤리가 상대파를 밀어내기 위한 작두가 아니라, 사회를 아름답게 요리하기 위한 요리칼일 수는 없을까?

 

중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방법은 중국의 역사를 태고적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살펴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방법은 역사를 시간순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잇점은 있지만, 역사책이 딱딱하고 재미없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주제별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주제별로 역사를 살필 경우, 역사의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을 수는 있으나,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을 빛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는 통사의장점인 시간 흐름 파악과 주제별 서술의 장점인 재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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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1-07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이펑이 어딜까 하며 읽다보니 개봉부군요 ㅋㅋ 포청천하면 개봉부^^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중용의 성공학 - 나를 알자, 세상을 읽자 | 하나를 버리고 셋을 얻는다
이상각 지음 / 들녘미디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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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병렬독서를 한다. 장기적으로 읽는 책과 단기적으로 읽는 책을 나누어 병렬적으로 읽는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읽을 책으로 '도올 한글 중용역주'를 읽고 있다. 중용의 한구절 한구절을 읽으며 음미하는대신, "중용"을 에세이 형식으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단기적으로 읽는 책으로 선정해서 읽기로 했다. 여러 권의 책중에서 '중용의 성공학'이 눈에 띄었다. 중용을 재미있게 이야기식으로 풀어 놓은 책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책은 중국사 이야기들의 모음집이었다.

 

  책 제목에 '중용'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중용의 한구절을 인용해서 중국의 역사, 혹은 작가의 삶과 연관시켜 책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에는 '중용'에 대한  깊은 설명이 없다. 단지 '중용'이라는 단어만을 가져와서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놓은 책이었다. 상당수의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었다. 심지어는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납득가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특히, 왕안석의 신법을 악법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왕안석의 신법은, 가난한 농민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들이다. 왕안석의 신법으로 대상인과 대지주가 이익을 빼앗겨 큰 반발이 있었음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왕안석의 신법으로 일반 농민과 소상인들이 고통을 받은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왕안석은 백성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간신으로 묘사했다. 마치 토착왜구와 일베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글들을 읽으며 분노를 느껴야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구법당의 시각에서 씌여진 역사적 기록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서술한 것은, 조중동의 신문만을 보고 우리 현대사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역사서술의 중요성! 그중에서도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대로 갖춘자가 책을 쓰지 않으면 벌어지는 비극을 목도할 수 있었다.

  11편 '사랑의 최고 경지, 중용' 편은 19금의 내용들이 많았다. 더욱이 요즘에 이책에서 코치하는데로 했다가는 '스토커'나 '성추행범'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어보였다.

 

  "경험 많은 남자는 사랑의 속삭임과 키스를 언제나 같이한다. 애인이 거절하더라도 상관없이 자신이 의도한 바를 끝까지 관철하라, 그녀는 거절하면서 '나쁜 자식'이라는 말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심이 아니다. 그대는 그저 그녀의 입술이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295쪽

 

  남성중심의 마초적 애정관을 담고있는 이 표현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1980년대라면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2019년 거절하는 여성에게 계속 애정표현을 했다가는 성폭행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책내용이다.

 

  책을 읽을 때는 책선택이 중요하다. 한권의 책이 엄청난 깨달음을 주고, 인생의 좌표를 바꾸기도한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정확히 구하지 않고 읽는 책은 후회를 동반한다. 이번책은 나의 기대가 높아서인지 실망감이 높다. 그렇다고, 읽을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머리를 식힐겸, 읽기에는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모음집이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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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천하 삼십육계 시그마북스 동양고전 시리즈
도설천하·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 엮음, 유소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전쟁터와 같은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병법서를 읽어야한다.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자나 맹자를 많이들 말하지만, 출판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손자병법'이라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병법서'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손자병법'은 대학을 다니면서 읽었으니, '삼십육계'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사실 우리는 '삼십육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삼십육계'에 담긴 다양한 계책들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한문 공부를 겸해서 고전을 스스로 한문장씩 공부하던 나는 3번째 도전 서적으로 '삼십육계'를 선택했다. 그러나 생각외로 '삼십육계'에 대한 마땅한 책들이 별로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서 '도설천하 삼십육계'가 가장 괜찬은 책으로 보였다. 타 출판사의 책과는 달리 산듯한 디자인과 풍부한 사례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도설천하 삼십육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병법으로 세상을 읽다.

  '삼십육계'는 중국 5천년 지혜가 담긴 책이다.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삼십육계'의 계책을 오늘날 사람들은 사용하고 있다. 그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  차시환혼(借屍還魂)이다. 영혼이 다른 시체를 빌려 부활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례를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유명 브렌드를 사들이고 있다. 값싼 상품의 이미지가 강한 'made in china'를 벗어던지기 위해서 유명 브렌드를 사들여 고급 제품 이미지를 덧씌워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전형적인 '차시환혼'의 방법이다. 죽어가는 명품 브렌드를 이용해서 세계무대에 'made in china'를 팔고 있는 중국의 모습에 두려움과 경탄을 그할 수 없다.

  '차시환혼'의 방법은 중국만이 사용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아픈 역사속에 그들도 일본에게 '차시환혼'을 당했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괴뢰 '만주국'을 세웠다. 이미 사라져버린 청나라를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권을 이용해서 부활시켰다. 그 '만주국'은 좀비처럼 영혼없이 중국의 꼭두각시로 움직였다. 공전계 14번째 계책인 '차시환혼'이라는 계책은 어제도 오늘도 중국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영광을 만들고 있다.

  둘째, 원교근공(遠交近攻) 이다. 혼전계 제23계 원교근공은 먼 나라와 동맹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계책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원교근공의 계책이 소개되어 있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원교근공의 계책에 따라 전국시대를 통일했다. 반면에 송나라는 금과 연합하여 거란족의 요나라를 공략하였으나, 요나라 멸망이후 북송역시 망하였다. 원교근공의 계책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여우를 몰아내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조선말기 고종은 강대국을 끌어들여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려했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조선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고, 조선의 이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을 영국은 '영일동맹'을 통해서, 미국은 '가스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서 약속해주었다. '자강'의 노력을 통해서 기초체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계책도 성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금적금왕(擒賊擒王)이다. 공전계 제18계 금적금왕은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는다는 계책이다. 금적금왕이라는 계책은 한국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성공한 쿠데타에서 잘지켜졌던 계책이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방송국을 장악하고, 대통령 윤보선의 신병을 확보했다. 유신의 잔당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승화 참모총창과 최규하 대통령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놓았다. 정권을 잡으려면 신속히 '왕'을 먼저 잡아야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넷째, 가도벌괵(假道伐虢)이다. 혼전계 제24계 가도벌괵은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에게 호의를 베풀어 우리 쪽에 기울게하고 마침내 병찬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은 우리역사에서 여러차례 사용된 계책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친신라정책을 취하여 신라의 환심을 사더니, 마침내는 싸우지 않고 신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벌하라며 조선왕이 향도를 하라고 했다. 물론, 우리 사서에는 '정명가도'라고 적혀있다. '정명가도'!! 는 '가도벌괵'과 너무도 유사한 말이 아닌가? 만약, 조선 조정에서 명나라로 가는 길을 순순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내어주었다면, 조선은 도요도미에게 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삼십육계'는 단순히 예전의 병법서가 아니다. 오늘의 세계 질서를 파악하고, 지난날의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였다.

 

2. 오늘의 지혜를 얻다.

  우리가 고정을 읽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삼십육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첫째, 무중생유(無中生有)!! 가짜뉴스의 범람 이유가 무엇일까? 적전계 제7계 무중생유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하라라는 뜻의 '무중생유'는 전쟁터가 아닌, 우리 삶의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낸다. 그 가짜 뉴스의 상당 수는 촛불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팩트체크'라는 말이 지난 대선에서 유행한 것도 '가짜뉴스'의 범람 때문이다. 거짓은 오래갈 수 없고, 진실은 자연히 밝혀진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가짜뉴스'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반촛불세력에게 당하게 된다. 상대가 방심했을 때,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중생유'이다. 한명이 거짓을 말하면 헛소리가 되지만, 여러사람이 헛소리를 하면 진실이 되어버린다. 진실은 거져 주어지지 않는다. 진실은 거짓과의 고된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둘째, 부저추신(釜底抽薪)!! 협상의 지혜를 '삼십육계'에서는 얻을 수 없을까? 혼전계 제19계 부저추신은 협상의 지혜를 준다. 솥 아래에서 땔나무를 빼다라는 의미로서, 문제의 근본을 파악해서 근원을 없애라는 말이다. 협상에서는 상대방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서 그것을 이용해서 협상을 성사시키라는 하버드 협상법과 유사한 개념이다. 세계적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에서 가르치는 협상론의 핵심 개념이 동양의 병법서에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리는 보편적이다.'라는 말이 진실임을 깨닫게 해준다.

  셋째, 반객위주(反客爲主)!!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게임에서 '삼십육계'의 계책을 사용할 수 있을까? 병전계 제30계 반객위주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테란의 황제 임요한이 썼었던 전술중에 하나가 벙커 전진이다. SCV와 마린을 가지고 벙커를 지으며 전진해서 적을 압박하는 전술이다. 이 전술을 이미 '삼십육계'에서 소개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진지를 구축하며 적을 압박하여 적의 공격을 유도하는 '반객위주'의 전술은 지금의 전략 게임에서도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다.

  넷째, 지상매괴(指桑罵槐)!!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조언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병전계 제27계 지상매괴가 그 힌트를 준다.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다는 이 계책은 자신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을 깨우치는데 아주 좋은 계책이다. 한나라 무제가 자신을 길러준 유모를 벌을 주어 내칠때, 곽사인이 뒤돌아보는 유모를 혼내주어 무제의 마음을 녹인 일화는 어떻게 윗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한비자' 세난편에 한비가 지적했듯이, 윗사람에게 간언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될 정도로 힘든 것이다. 현명한 신하는 윗사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도 윗사람을 깨우칠 수 있다. 이것은 아랫사람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랫사람을 너무 호되게 혼냈다가 장비는 부하의 손에 의해서 죽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을 훈계할 때도 정도를 지나쳐서 혼낸다면 하극상의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지상매괴'의 방법을 잊지 말자!

  '삼십육계'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선사해준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삼십육계'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하는 전쟁터의 비법을 담았다. 그러하기에 우리 인상과 다른 점이 있다. 특히 상대방과 공존을 해야하는 부부사이와 같은 관계에서는 유의해서 사용해야한다. 전쟁터에서 적은 죽여도 되지만, 평화로운 사회에서 상대방은 죽여서는 안되며, 나의 편으로 끌어안아야한다. 특히, 적전계 제11계 대강(李代桃僵)을 읽으면서, 병법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오얏나무가 복숭아를 대신해 죽는다는 이도대강의 사례로, 주군의 아이를 살리려 자신의 아이와 자신을 죽이는 공손대구와 친구를 죽게하여 원수를 갚은 정영의 일화는 너무도 살벌했다. 과연 이것이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얻는 방법일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명심하자! 전쟁터의 계책과 우리 삶의 계책을 달라야한다.

 

3. 도설천하 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님 이의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삼십육계'의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좋았다. 그러나, 몇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첫째, 많은 사진자료와 토막글들이 본문내용과 관계 없는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해당 페이지 글에 관련이 깊은 사진자료와 토막글을 배치했다면, 이 책의 장점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 내용과 상관없는 사진자료와 본문 글과 관련 없는 토막글들은 오히려 읽는 것을 방해했다. 사족은 장점을 단점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둘째, '삼십육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역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삼십육계'를 단순한 병법서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삼십육계에는 주역의 말들을 빌려와서 각계책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반드시 주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한다. 일일이 인터넷을 뒤져서 각 계책의 해설이 주역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된 것인지를 알아야했다. 주역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꾀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도설천하 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분들이 이부분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달아 놓았다면 '삼십육계'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셋째, 오타와 오류가 많다. 춘추시대 청동단검이라고 설명한 230쪽의 사진은 내가 보기에는 한국사교과서에 실려있는 비파형동검이다. 중국식 동검 사진으로 교체해야한다. 351쪽에는 강희제가 '대만을 수복'했다고 서술했다. 대만은 수복한 것이 아니라, 강희제때 중국역사에 편입된 것이다. 그이전에는 대만이 중국 역사의 일부가 아니었다. 100쪽에서는 격안관화(隔岸觀火)를 설명하면서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만천과해(瞞天過海)에 대한 설명이다. 격안관화는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뜻이다. 올바로 수정해야한다.

  어디 옥의 티가 없는 명작이 있으랴! 모든 책에는 오타와 오류가 있다. 도설천하 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에서 옥의 티를 바로잡는다면 더 좋은 '삼십육계'가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루에 하나의 계책씩 읽어내려갔다. 방학기간 중에 '삼십육계'를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의역이냐? 직역이냐?라는 고민을 했다. 삼십육계에는 각계책을 설명하면서 주역의 계사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 꾀 많다. 이 부분을 주역의 문맥에서 풀이할 것인가? 병법서의 문맥에서 해설할 것인가에 따라서 설명이 달라진다. 한문공부를 하려는 나에게는 문장을 그대로 직역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구를 인터넷과 옥편에 의지해서 한달여동안 공부했다. 유튜브의 '김성민 병법삼십육계'를 보면서 공부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패전계 제31계 미인계(美人計)를 설명하면서 '왜? 미녀계가 아니고, 미인계 일까요?'라는 질문은 탁월했다. 미녀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미남을 이용하기도 한다. '오퍼레이션 로미오'에서 알 수 있듯이 미남을 이용해서 동독이 서독의 정보를 입수했다. 한가지 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서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그 지혜를 발현하고 더해야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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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9-01-29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삼십육계라는 책도 있군요^^;;

강나루 2019-01-29 19:36   좋아요 0 | URL

고사성어로 우리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계책이 많고요
다양한 일화가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카알벨루치 2019-02-0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설연휴동안 건강 유의하시고 아름다운 향기나는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19-02-02 04:24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설연휴 행복하게보내세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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