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7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7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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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하가 급류를 이루며 굽이치듯이, 험준한 태항산 자락이 대지를 휘감듯이 중국이라는 대륙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 이야기를 몇권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김명호 교수가 해냈다. 김명호 교수는 어려운 중국의 근현대사를 인물중심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1권부터 읽기 시작한 '중국인 이야기'를 이제는 7권까지 읽었다. 7권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며 애절한 사연을 남기고간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쑨원이 사랑한 쑹칭링, 그러나 사랑하는 쑨원은 저세상으로 갔고 그녀는 남았다. 장제스는 쑨원과 그녀를 떼어 놓으려했다. 쑨원의 아이를 갖았지만, 유산한 이후 쓸쓸한 삶을 살아가며 쑨원의 '연소, 용공, 노농부조'라는 1차 국공합작 원칙을 지켜야한다면 장제스를 견제하며 살았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 남아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여생을 보냈다. 자신의 아이를 갖지 못한 한을 타인의 아이를 돌보며 보상받았다. 조국을 사랑한 쑹칭링! 국민당 정부가 그녀를 쑨원과 분리 시키기 위해서 천유런과 그렇고 그런사이라며 괴소문을 퍼뜨렸을 때, 얼마나 가슴아팟을까?

 제2의 장쉐량 쑨리런, 그는 미국도 인정할 정도로 전투에 일각연이 있는 사람이다. 유능한 장군이지만, 황포군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용되지 못하다가 뒤늦게 중용되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의 자유로운 스타일이 몸에 벤사람이다. 정치군인이 아니기에 그는 탁월한 장군이지만, 장제스의 견제를 받아 33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나자, 기자들은 장제스에 대한 비판을 바랬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총통의 명령이었다. 개의치 않는다."

  저자 김명호는 "역시 '민족 영웅'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라고 평을 했다. 자신을 핍박한 상관을 비판하지 못하는 쑨리런의 모습을 보며 애처러움이 밀려왔다. 자신을 장제스의 주구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권력을 지키려 유능한 장군을 33년 동안 가택연금을 한 장제스의 우둔함과 자신을 핍박한 상관을 비판못하는 못한 쑨리런의 모습을 보면서 모순이 얼키고 설킨 중국의 현대사가 애절해 보였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쏴서 죽였기에 가슴한구석에 한을 담고 살아야했던 쑤원의 이야기는 너무도 애절했다. 일제에 잡혀 모진 고통을 당한 그녀가 남편을 찾아왔다. 그런데, 남편 샹잉은 부인 장량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쑤원은 가까스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와 함께한 12일이 그녀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용기와 희생의 시대였다. 주위에 부모 잃은 애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라는 쑤원의 말은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 속에 얼마나 많은 애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가를 추측케한다. 

, 중국 물리학의 비조 이지만 중국으로 부터 매장당했던 예치쑨의 이야기도 애절함이 서려있다. 중국이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원자폭탁과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계발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예치쑨이다. 예치쑨이 키운 제자들이 중국의 과학을 탄탄한 기반위에 우뚝 세웠다. 그러나 그는 문화 대혁명을 거치면서 몰락했다. "말라비틀어진 사과를 우물거리며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걸인과 다를바"없었다는 증언은 사회주의 중국의 비정함을 보여주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해야만 했던 중국 과학계 거목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한 CEO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지금의 중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국의 애절함은 끝나지 않았다.


  보통 우리를 한많은 민족이라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 이야기 7 권에 담겨 있는 인물들의 삶을 살펴보면 중국인에게도 한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격동의 시대에 혁명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수많은 영웅들이 있다. 그러나, 그 영웅들은 수 많은 비극을 낳기도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되어 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호랑이가 사라진 숲에, 늑대가 설치듯이, 일제를 몰아내고 나서는 국공내전이 일어났다.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자, 이제는 권력투쟁에 들어갔다. 특히 문화 대혁명 10년은 수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서 느꼈던 애절함을 중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면서 느꼈다.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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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6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6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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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를 1권부터 6권까지 읽었다. 끊임 없이 샘솟는 중국의 이야기기에 놀라고, 이러한 이야기를 끊임 없이하는 김명호의 내공에 다시한번 놀란다. 중국인 이야기 6에서는 중국 근현대 불교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40여년을 중국사 연구에 매진한 김명호의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김명호가 아니라면 누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근현대 중국 불교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는가!

  2.28 사건과 대만이 조직한 해상 돌격대가 중국의 해안을 습격하는 내용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익히 2.28사건에 대해서 들어 보았으나,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놓은 책을 접하지 못해서 항상 궁금해하던 차에,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6권에서 2.28 사건을 자세히 다뤄주었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극명한 대립의 시작을 보았고, 지금의 타이완의 현실을 알기 위해서는 2.28 사건을 알아야한다. 

  두번째로 흥미로웠던, 대만의 해상돌격대 이야기를 읽으며, 남북한의 대결과 유사한 모습이 관찰되어 씁쓸함을 감출수 없었다. 명나라를 괴롭힌 왜구들 처럼, 중국을 괴롭히기 위해서 대만이 해상 돌격대를 중국에 침투시켰다. 이 과정에서 인명의 희생도 있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라, 국지전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시대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의 속살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중국의 모습에서 비슷한 고난을 겪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과부촌으로 알려진 퉁보촌의 비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문도 모르고 마을 사내들이 대만군에 끌려가서 졸지에 마을 전체 여성이 과부가 되어야했던 비극!! 그 고통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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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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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땅도 넓지만 사람도 많다. 영웅도 많고 간신도 많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의 영웅호걸과 간신들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권에서 4권까지가 수많은 조각들의 나열이라는 인상을 주었다면, 5권은 5개의 카테고리 안에 심도있는 인물탐구를 해서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케했다.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애절함을 선사하는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5‘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애절함과 증오
가장애절함을 나에게 선사한 여인은 쑨웨이스이다. 혁명가의 딸로서 장칭의 손길을 뿌리치고 당당하게 살았던 그녀가 문화 대혁명시기 비극을 맞이한다. 장칭은 그녀를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도록 만든다. 수양아버지 저우언라이도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쑨웨이스는 저우언라이를 살리기 위해서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장칭이라는 여성은 서태후 여태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로 꼽고 싶다. 물론 나 개인의 생각이다. 연예계에서 문란한 삶을 살다가 옌안으로 가더니, 마오쩌둥의 마음을 빼앗았다. 마오의 부인으로 주용한 삶을 살더니 문화대혁명 시기 권력을 잡더니 그녀는 발톱을 드러냈다. 도광양회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이다. 못된 그녀는 쑨웨이스를 비참하게 죽이기 화장을했다.
마오쩌둥이 죽자 그녀는 최고 인민 법원 특별법정에 서게 된다. 절대 권력에 기대어 수많은 사람을 죽인 그녀는 정의의 법정에 섯지만 죽은 쑨웨이스는 살아 돌아올 수없었다. 감옥에서 불렀던 쑨웨이스의 노래가 더욱 애절하게들린다.
자오퉁이라는 항일영웅이 있다. 어린나이에 항일의 길을 떠났다. 감옥을 털어 의용군을 모집한 자오퉁의 명성은 높아져갔다. 팔로군 간부양청우가그를 회유하자 사심이 없었던 자오퉁은 국민항일군을 팔로 군에 편입시켰다. 결국 자오퉁은 팔로군에서 팽당했다. 팔로군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자오퉁은 팔로군의 공격을 받아 죽게된다. 권력은 냉혹하다. 그러나 약자의 권력투쟁은 추악해보인다. 항일의 기치아래 모인 그들이 한줌도 안되는 권력을 쟁취하려 혁명가를 죽이고 스스로 자멸의 길을갔다. 권력의 마약에 취한 그들이 너무도 지저분해 보인다.


2. 전쟁과 애증
6.25전쟁은 민족의 비극이다. 그런데 중국과 북한은 서로의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빚을 지우는 전쟁이었다. 국공내전시기 북한의 도움이 없었다면 만주는 국민당이 점령했을 것이다. 그 빚을 받기 위해서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1개병단을 요구한다. 1개병단이면 10만명이다. 소위 ‘주체‘를 강조하고 외세를 끌여들여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과 김춘추를 민족의 반역자로 평가하는 그들이 외세를 끌여들여 민족의 피극 6.25전쟁을 일으켰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 비주체적이며 몰역사적인 행위를 주저하지않는 그들의 모습에 넌더리가난다.
삼국지의 조자룡과 제갈공명을 합친 린뱌오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에게 정확한 정세분석을하고 전쟁의 흐름을 예상했다. 린뱌오의 훌륭한 예측을 듣고서도 그들은 북한에 진 빚 때문에 전쟁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민족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6.25전쟁 중에 김일성비서를 중국의 진산이 건드렸다. 게다가 서울이남으로 중국군이 진격하지 않자 김일성과 펑더이화는 주먹다짐 직전까지갔다. 전쟁이후에도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냉온탕을 오갔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불신과 화해를 오갔지만 그속에서도 이들은 인간적 유대관계가 돈독했다. 그린고 지금은 전후 세대가 중국과 북한에 최고 권력자가 되았다. 이제그들도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보통 중국인을 극도의 관계주의 사회로 말한다. 관시를 중시하고 나와 관계를 맺은 인물을 중시하는 중국인이기에 부폐하고 실리를 중요시 여기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관은 수많은 중국의 영웅들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한다. 특정 정파를 떠나서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 살았던 외교관 구웨이쥔과 화교를 보호하고 화교에게 거둬들인 의연금을 지키려 자신의 목숨을 버린 양광성!! 이들 영웅들이 있었기에 중국이 다시 세계를 호령할 수있었다.
도광양회하던 중국이 중국몽을 실현하려 대국굴기하고 있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없다는 중국 고전속 진리를 그들이 깨닫길 바란다. 이 책은 대국굴기하는 중국인을 이해하기에 딱좋은 책이다.



ps. 이책의 좋은 사료들을 적어둔다.


바오밍은 '''' 제1차 세계 대전의 산물인 파리 강화회의에 중국 대표로 참석해 기염을 토했다. 패전국 독일이 누리던 산둥반도의 권익을 승전국 일본이 차지하려하자 명연설로 중국인들을 감동시켰다.

  "산둥은 공자가 태어난 곳이다. 중국이 이곳을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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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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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왜? 사랑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지? 어린시절,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랑이야기가 고리타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랑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기에 사랑을 해야한다. 그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일수도 있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이 어떠한 형태이든, 그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한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4'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쉐량-쑹메이링-장제스의 삼각관계부터 시작해서 황푸군관학교 교장인 장제스와 그의 제자 린뱌오의 사랑,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이야기, 중국과 북한의 지도부간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야기가 대하드라마 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 신중국 탄생 이야기를 김명호는 배치했다. 어찌보면 수많은 사랑 덕분에 신중국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도 있다. 이들 사랑 이야기 중에서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삼각관계와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자. 


  중국 대륙을 뒤흔든 사랑이야기를 꼽으라면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장쉐량과 장제스의 삼각관계일 것이다. 쑹메이링은 송자수의 3자매 중에서 막내이다. 첫째는 중국 최고의 부자와 결혼했고, 둘째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에서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과 결혼했다. 셋째 쑹메이링은 한때 중국 대륙을 손아귀에 넣었던 장제스와 결혼했다. 송씨 세자매가 한명은 부를 선택했고, 한명은 명예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쑹메이링은 권력을 선택했다. 신은 한사람에게 모든 행복을 다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쑹메이링은 권력을 선택하기 보다는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아니, 운명이 그녀에게 권력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쑹메이링은 1925년 상하이에서 운명적 만남을 했다. 콧대가 높았던 쑹메이링은 중국 4공자 중에 한명인 장쉐량이 주는 술잔을 거부하지 않았다. 8일간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둘을 헤어졌다. 장쉐량에게는 아버지가 맺어준 부인이 있었기에 쑹메이링과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는 없었다. 장셰량이 떠난 사이 황포군관학교 교장 장제스가 그녀에게 접근한다. 쑨원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요구하며 4차례에 걸쳐서 결혼요구를 한다. 심지어는 일본가지 쫓아가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한다. 장제스도 2명의 부인과 1명의 첩이 있었다. 장제스는 이들 여성과 이혼했고,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 승락을 얻어낸다. 

  장제스가 쑹메이링에게 집요하게 접근한 것은 사랑이기 보다는 쑨원부인의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장제스에게는 황포군관학교를 통해서 배출된 군대는 있어도 정치적 자산은 없었다. 그 빈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쑨원의 후광이다. 반면, 쑹메이링도 장제스의 앞날을 예상하며 권력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장쉐량과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었다면 장셰량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것은 101세의 장쉐량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104세의 쑹메이링이 통곡했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장쭤린이 일본군에 의해서 폭살당하고 나서, 장쉐량은 항일의 기치를 올리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에 합류한다. 장제스도 장쉐량의 풍모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장제스와 장쉐량은 항일이 먼저냐, 공산당 토벌이 먼저냐를 두고 갈라선다. 1936년 그 유명한 시안사건이 발발한다.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려온 장제스를 장쉐량은 감금하며 국공합작을 종용한다. 장쉐량의 부하들은 장제스를 죽이자고 했다. 그런데 왜? 장쉐량은 장제스를 죽이지 않았을까?


  "나는 쑹메이링을 과부로 만들수는 없었다. 쑹메이링만 아니었다면 장제스는 그때 죽을 목숨이었다."-45쪽


  장쉐량이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단한사람, 바로 쑹메이링이었다. 장제스는 쑹메이링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장제스는 장쉐량을 죽이려 했으나, 쑹메이링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장쉐량을 죽이지 않았다. 쑹메이링이 장쉐량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장제스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쑹메이링이 시안에 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다. 시안에서 자신의 남편을 감금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시안 공항에 내려 장쉐량을 만난 쑹메이링의 얼굴은 공포보다는 옛 애인을 만난듯이 활짝 웃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안에서 풀려난 장제스는 장쉐량을 가택연금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으로 갈 때도 그를 끌고갔다. 쑹메이링은 자신의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합친 것보다 많은 편지를 가택연금 되어 있는 장쉐량과 주고 받았다. 운명이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결합을 이루지 못하게 했지만, 둘 사이의 사랑마져 갈라 놓지는 못했다. 

  남녀간의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제간의 사랑도 있다. 황포군관학교 4기생 중에서 가장 탁월한 학생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린뱌오이다. 장제스는 린뱌오를 가까이에 두고 싶었다. 린뱌오가 편지를 두고 떠나고 나서도 장제스는 린뱌오를 잊지 못했다. 린뱌오가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장제스는 상당한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의 애제자 린뱌오는 장제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제스의 사랑의 경쟁자 장쉐량의 평가에 정답이 있다. 


  "지도자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한다. 장제스는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항상 노예를 구하느라 혈안이 돼있다."-43쪽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린뱌오는 장제스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했다. 그러나, 린뱌오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목숨바칠 가치가 있는 존재를 선택했다. 내가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말하기 이전에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쑹메이링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가 혁명기 중국을 뒤흔든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면, 아이쉰져러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 이야기는 진정한 부부관계는 어떠해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괴뢰 만주국의 황제 푸이는 일본의 강요로 새로운 여자를 선택하게 된다. 일본여자를 싫어했던 그는 여학교 교장이 보내온 사진 속에서 리위친이라는 여학생을 자신의 신부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신분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다. 신분이 낮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여성이어서 리위친을 선택했다. 리위친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푸이의 부인이 되어야했다. 푸이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담은 문서에 서명을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푸이의 몽둥이질을 당해야했다. 푸이와 리위친의 관계는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가 아니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다. 

  일본이 패망하자, 푸이는 부인을 내팽개 치고 도망치다가 소련군에 넘겨진다. 신중국이 세워지고 나서 전범관리소에서 리위친은 푸이를 다시 만난다. 푸이는 리위친이 가져온 사탕과 과자를 허겁지겁먹는다. 자신의 부인 리위친에게 먹어보라는 말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청나라와 만주국이 멸망했음에도 푸이는 아직까지 리위친을 노예로 보고 있었다. 리위친은 신중국에서 각성한다. 당당히 황제였던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낸다. 그리고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어 방송국 녹음 기술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제 그녀는 노예의 삶을 청산하고 자유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 CF광고에 "저렇게 많은 아파트 중에서 왜? 내 아파트는 없을까?"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총각이었던 나는 '저렇게 많은 여성들 중에서 왜? 내 여자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총각들과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한탄을 하던 중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외모기) 김태희 정도는 되어야하는데, 눈을 낮춰야하겠다. 조건을 낮춰 결혼하면 (상대는) 열쇠를 많이 가져와야해" 

  글쎄, 그 친구가 듣기 싫어할까봐, 아무말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평등한 부부의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황제이니 가난한 국수집 딸 리위친의 관계처럼 말이다. 똑똑하고 미남인 그 친구도 결혼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연예인 수준의 미모를 가진 여성인지는 모르지만, 부디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닌,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인연을 맺길 바란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다보면, "혁명"이니, "민족주의", "항일",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거창한 용어를 자주 듣는다. 나도 모르게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그러한 거창한 명분하에 이뤄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거창한 이념과 명분 이면에는 인간의 사랑이 있었다. 송씨 3자매의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서 혁명시기 중국에서 청춘남녀가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했다. 어떤이는 사랑 이야기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야사"로 비하하기도한다. 특히 근대에는 인간의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의 무한한 진보를 확신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였다. 특정 이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보다는 사랑으로 역사를 재해석 하는 것이 역사가 움직인 근본적 이유를 밝혀내는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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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8-11 19: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요책은 읽어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사랑 이야기라.ㅋ

강나루 2021-08-11 21:04   좋아요 4 | URL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사랑이 압권이지요.
2010년 선양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도 가장 주목을 끈 것도 이들의 삼각 관계였다고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중국사 관련 컨텐츠를
검색하면 신문 기사로 나오더라구요.

1권인가는 읽었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해서 나오는 줄 몰랐네요.

강나루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지금 8권까지 나왔어요^^
 
중국인 이야기 3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3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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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름은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와 함께 보내고 있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김명호의 흥미진진한 중국인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땅도 드넓고 사람도 많다. 다양한 중국인들이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한권에 담을 수 없는 드라마이다. 너무도 많은 인물들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 책을 덮고도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중국인 이야기3'의 시작은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과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타이완은 중국과 통일을 추구하는 외성인과 타인완 독립을 추구하는 본성인으로 나뉜다. 김명호는 타이완 독립을 추구하는 본성인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한채, 통일을 추구하는 외성인의 이야기만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보는 시각을 저자가 가지고 있어서인지, 단순한 서술상에서 발생한 우연인지는 모르겠다. 

  암튼, 김명호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자'라는 주제로 덩샤오핑과 위유런을 소개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1인자로 등극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낸 지도자이다. 그는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을 바라며, 타이완의 모든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미국의 타이완 투자는 계속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나라에 두개의 체제를 의미하는 '일국양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이 시기부터 나오기 시작한 셈이다. 덩샤오핑이 말한 '일국양제'는 현실에서 무너지고 있다. 홍콩이 바로 그 증거이다. 홍콩 시민의 민주화요구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이 타이완에게 했었던 일국양제의 약속은 타이완을 속이기 위한 사탕발림 발언에 불과했을까?

  덩샤오핑이 정치적으로 타이완과 통일을 위한 한걸음을 나아갔다면, 정신적인 통일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위유런이다. 중국과 타이완 사람들이 쑨원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위유런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중국과 타이완의 통일을 위해서 노력했다. "조국을 두 동강 낸, 못난 조상 소리 들을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고 말하며 중국 대륙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산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관음산에 그가 묻혀 있다. 타이완 인은 이것도 모자라서 해발 3,997미터 옥산 정상에 대륙을 향해 위유런의 동상을 건립했다. 그가 죽자 "심지어 건달들까지도 위유런의 '망대륙'을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김명호는 서술하고 있다. 

  김명호는 철저히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본성인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있다. '중국인 이야기3'을 읽으면, 타이완의 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는 것 처럼 오해를 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중국이 중화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전랑'외교를 구사하면 할 수록 중국의 반감이 높아진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질수록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본성인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진다. 일국양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타이완인들은 중국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위유런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의 중국이 올은 것일까? 타인완 독립도 타당한 주장일까? 중국은 우리의 이웃이기에 타이완과 중국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의 의견을 준비해야한다. 중국이 이 질문에 대답을 요구할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높아져가는 이유는 중국의 '전랑'외교 때문이기도하지만, 또하나의 이유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믿음이 전세계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부정할지라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는 코로나19 위기로부터 우한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 수많은 의료진의 활약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안위보다는 생명을 살려야한다는 의료인의 사명감을 가진 영웅이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10년대 중국 동북 3성에서 활약한 페스트 사냥꾼 우롄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롄더는 페스트를 잡기 위해서는 쥐를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서구 의학계의 통념을 깨고, 세계 최초로 폐페스트를 발견했다. 호흡기에 의해서 페스트가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롄더가 발견했음에도 동양인 의사에 대한 편견으로 백인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헌신적 노력으로 동북 3성에 급속도로 퍼진 페스트를 잡아낼수 있었다.1937년 일본군의 중국침략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우롄더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말레이시아 벽촌에 돌아와서 화교들의 열대병을 치료하닥 생을 마감한다. 조국을 위해서 중국으로 달려와 수많은 생명을 살려고, 명예를 소중히 여겼지만, 명예를 쫓지 않은 영웅 우롄더를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우롄더는 중국만의 영웅이 아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이 땅의 수많은 우롄더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우롄더가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영웅을 기억해야한다. 

  '중국인 이야기2'에서는 홍색 연예를 살펴보면서 너무다도 얽히고 설킨 그들의 연예 이야기에 혀를 내둘렀다. '중국인 이야기3'에서도 중국인들의 자유로운 연예이야기가 등장한한다. 그중에서 후스의 이야기는 짜증날 정도로 복잡했다. 우리는 후스는 신문화운동을 주도한 지식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장동슈라는 본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이런쓰라는 백인여성과 친척인 차오페이셩을 비롯한 쉬팡등의 다양한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 때로는 한꺼번에 두명 이상의 여성과 연예를 하기도했다. 본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장동슈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장동슈는 칼을 들고 잠자고 있는 아들들을 죽이려하자 후스가 싹싹빌었기에 이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스는 몸은 결혼상태였지만, 마음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이런 천하의 바람둥이를 보면서 그를 비난하는 나자신을 발견했다. 이것은 후스의 비도덕적인 모습에 분노해서일까? 아니면 나도하지 못한 일들을 그가 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일까? 암튼, 후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주체할 수 없는 바람끼 때문에 후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인물이라면, 루신은 형제간의 의가 상한 이유가 궁금해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루신 3형제는 사합원에서 각각 가정을 이뤄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루신과 동생 저우쭤런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갈라섰다. 그 원인에 대한 다양한 설들이 있다. 루신이 동생 부부의 모습을 밤에 훔쳐보았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저우쭤런의 헤픈 씀씀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팟캐스트에서는 루신과 저우쭤런의 부인 사이에 어떠한 문제가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추측을 할 필요는 없다. 

  난 이 이야기에서 고슴도치 가족의 지혜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에 고슴도치는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 너무 가까우면 고슴도치는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받는다. 너무 멀면 겨울 추위에 고통을 받아야한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야하는데 루신의 삼형제는 사합원이라는 너무도 좁은 공간에 모여살면서 서로의 가시에 찔렸다. 노자는 이를 '허(虛)'라고 표현했다. 그릇은 빈공간이 있어서 쓰임새가 있다. 방도 빈공간이 있어 방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우리에게도 적당한 빈공간이 필요하다.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우리가 우리로 기능하기 위한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다.



  김명호는 40년 가까이 중국을 연구했다. 그에게 중국은 놀이터였다.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즐기면서 중국을 연구한 그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중에는 중국과 북한의 끈끈한 인연을 소개한 부분도 있다. 김일성을 '조선족 김일성'이라 부르는 중국인 역사학자의 주장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 그러면서도 다민족 국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김일성을 '조선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음이 이해갔다. 어느 시각에서 역사를 발보느냐에 따라서 동일한 사건, 동일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명호는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서 중국인의 색다른 관점과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중국인 이야기' 4권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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