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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SAMURAI KODEF 안보총서 35
스티븐 턴불 지음, 남정우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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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삼국시대를 살펴보면, 수많은 전쟁이 난무했다. 삼국간의 치열한 전쟁과 국가 내부에서 전개된 귀족들 간의 무력대결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는 문보다는 무가 앞선 사회로 보인다.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수많은 외침에 대항하며 무신들이 성장했고, 1170년 무신정권의 시대가 열린다. 우리 역사에서 무의 위치는 문에 뒤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고 나서 문중심의 사회가 활짝 열린다. 반면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외부의 침략에 대해서는 비교적 안전했으나, 내부의 권력 투쟁은 그 어느 나라 보다도 치열했다. 다이카 개신을 통해서 천황중심의 지배체제가 성립하였으나, 헤이안 시대의 혼란을 거쳐서 쇼군이 통치하는 막부 시대가 도래한다. 문과 무가 조화를 이룬 사회라기 보다는 무 위주의 사회가 오랫 동안 존속했다. 여기에서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문 중심의 사회로 발전한 한국과 무 위주의 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차이는 거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너무도 먼 두나라가 되었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사무라이'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사무라이에 대해 서술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스티븐 턴불의 '사무라이'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1. 비슷한 이웃의 모습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고대에는 중국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우리가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해주지 않았던가! 그래서 일본의 모습에서 친근한 우리의 모습을 만나기도한다. 

  사무라이는 권력을 쟁취하려 칼을 휘둘렀지만, 일본 천황을 없애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려하지 않았다. 임금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특히 우리에게 단군신화 속의 천부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삼종신기가 있다. 일본 천황이 하늘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증표가 바로 삼종신기이다. 우리의 천부인은 신화속에 존재할 뿐, 현재 우리에게 실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반면 일본의 삼종신기는 원본이 있지만 수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복제품이 원본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했다. 삼종시기를 쟁취하기 위해서 일본의 남북조시대에 전투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사무라이에게서 우리와 유사한 모습을 조상 숭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지배층들에게는 조상은 현재의 권력을 갖게해준 은인이자,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족보를 그리도 열심히 편찬하고, 위조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본 사무라이에게도 조상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있게해준 존재이자, 현재 지위의 정당성을 부여해준 신적인 존재이다. 

  이렇게 다른듯 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막부가 개창되면서 본격적인 다른 면모를 보인다. 쌍둥이라도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성장하지 않던가!


2. 사무라이 중심의 군사문화

  문을 중시한 문화 속에서는 붓의 문화가 발달하고, 무의 문화를 중시한 문화 속에서는 칼의 문화가 번성한다. 일본의 문화속에서는 칼의 문화가 서려있다. 

  스티븐 턴불은 다양한 도판을 곁들이며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일봉의 깃발인 사시모노를 등에 꼽고 붉은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의 모습을 보면, 마치 일본 사무라이가 그림 속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다. 일본도로 대표되는 사무라이의 무기는 정교하게 발달되었다. 전쟁이 많다보니 정교한 칼이 만들어졌다. 적에게서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견고하고 방어력이 탁월한 일본식 축성술이 발달했다. 저자 스티븐 턴불이 설명하는 것 처럼 중국과 조선의 성에 비해서 일본의 성 방어력은 탁월했다. 일본의 축성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만큼 탁월한 방어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신의 부와 권력,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어력이 우수한 일본의 성을 바라보며 전쟁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칼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사무라이의 전쟁방식도 화약무기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칼을 잘 쓰는 사무라이라도 총 앞에서는 청명한 가을날의 낙옆에 불과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사무라이의 시기도 사라졌다. 물론, 칼을 사용하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자의 회안 일지도 모른다. 

  사무라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머릿속에 육군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배를 타기도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왜구'가 되어 동아시아의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부녀자를 능욕하고 죄없는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때로는 용병이 되기도했다. 중국과 한국의 해안가만 약탈한줄 알았던 나는 그들이 용병이 되어 타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바다에 출몰했다는 사실이 꾀나 놀라웠다. 

  그렇게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고 타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한 군사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 무대는 육지에 국한되지 않고 바다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문화는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3. 죽음의 미학

  칼의 문화는 죽음과 대면해야하는 문화이다. 항상 언제라도 죽음을 목도할 수 있는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떨치는 것은 커다란 과제였을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낸 것이 일본의 독특한 죽음의 미학이다. 

  스티븐 턴불의 '사무리이'에는 셋풋쿠라고 불리우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사무라이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중, 한가지를 살펴보자.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던 날, 승병이 할복을 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베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부하들이 그 칼에 '꼬치가 가지런히 꿴 생선 처럼 일렬로 머리를 포개고' 죽었다. 

  조선시대 매천 황현 선생께서 병합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스스로 자결을 하셨다. 나라에게서 받은 것은 없지만, 나라가 방했는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모습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죽음보다 삶이 값지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는 주군을 위해서 따라죽는 것이 아름다운 일로 미화된다. 이러한 죽음의 미학은 너무도 여린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한다. 

  백호부대를 아는가? 아이즈와카마쓰 지역에 백호부대가 있었다. 아이즈 전쟁시기 16세에서 17세의 소년병들로 구성된 부대가 바로 백호부대이다. 이들은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백호부대원들은 할복을 준비한다. 그들 중에서 11명은 17살이었고, 9명은 16살에 불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이 함락되자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들도 자살을 감행한다. 살복이라는 문화가 여성과 서민들에게 까지 확대된듯하다. 중국의 전족과 일본의 할복문화, 조선의 교조적 성리학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낡은 봉건적 폐습이다. 봉건적 폐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 넣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최고의 파일럿들은 소모품처럼 전쟁에서 사라졌다. 조종사를 길러낼 시간이 부족했던 일제는 단순 조종 교육만 시키고서는 수많은 꽃다운 젊은이들을 자살특공대로 전재터로 보냈다. 저자 스티븐 턴불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소개하면서 '사무라이'의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소모품처럼 전쟁터에서 소모되기를 강요받은 그들은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와 함께 생을 마감해야했다. 그리고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도 함께 사라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칼을 중심으로한 문화는 아직도 일본사회에 남아 있다. 무사도를 적어 놓은 '하가쿠레'에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할복으로 죽는 것을 희망하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은 살기 위해서 싸웠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치기 위해서 죽음을 미화시키는 그들의 문화를 그들이 벗어던지지 않는다면 군국주의의 망령은 언제나도 되살아날 것이다. 일본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칼을 던지고 붓을 드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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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의
김태형 지음 / 원더박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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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네 이웃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한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들의 심리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모습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모습에 비친 어린 나는 울고 있었다. 어린 자아를 보듬으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서 이제는 부모가 되어버린 현실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 자신과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나의 내면아이는 계속 울며 고통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 대통령 후보들의 내면 심리를 통해서 어린 나의 자아와 대면해보자. 


1. 심리적 고아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 후보의 심리분석을 읽으며 인간 문재인의 아픔을 보았다. 어린 문재인은 "병원에 가서 여러바늘 꿰매야할 상처였는데도 야단안 맞으려고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상처를 싸매고 버텼"단다. 대학생이 되어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서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저자 김태형은 이를 통해서 어린 문재인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음을 알아낸다.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때문에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하더라도 부모가 자신을 지지해주리라 믿지 않는 것이다. 어린 문재인은 심리적 고아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픈 손을 감싸고 쓸쓸히 고통을 삼켜키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린 문재인을 만나면서 나는 내면의 어린 나를 만났다. 어린 문재인이 아픈 손을 잡고 외로워했듯이, 어린 나의 내면아이도 쓸쓸하게 울고 있었다. 어릴적 나도 다치거나 몸이 아파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서 감내하려했다. 나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김태형이 지적하였듯이, "부모는 다소 엄격한 분"이거나, "최소한 지지적인 부모가 아니었던 것"이 아파도 부모에게 말을 못하는 아이를 만들었다. 

  어린 문재인은 부모에게 중, 고등학교 6년 내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문이과를 선택해야할 때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뭘 아니, 네가 알아서 선택해"라는 말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을 했다. 하숙집은 절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숙집을 바꿔달라고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그때도 아버지는 "그럼, 네가 알아봐"라는 말을 했다. 집안에서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밖에서는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용감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도 '심리적 고아'였다. 아들이라며 금지옥엽 아끼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부모의 행동은 그러하지 않았다. 바쁜 농촌일을 하시느라 해가 지고 나서야 부모는 집에 왔다.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어야했던 나에게는 부모는 너무도 먼 곳에 있었던 존재였다. 

  부모의 사랑은 부담없이 그냥 받아도 된다는 사실을 어린 문재인은 알지 못했다. 부모의 사랑도 보답하지 않으면 사랑을 잃을 수 있다고 불안해했고,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습성화되었다. 일명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어린 문재인의 가슴에 내면화되었다. 

  어린 문재인과 대면하면서 나의 어린 내면아이와 너무도 흡사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문재인이 '착한 아이 콤플랙스'에 휩싸여 살았듯이, 나 또한 착한아이 콤플랙스에 휩싸여 살았다. 문재인이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법대에 진학했듯이, 역사 학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나이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포기했다. 어머니가 나를 키웠으니, 당연히 부모에게 그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가 힘들기에 이제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전근 갈 방법을 모색하는 나를 보며 슬픈 모습의 어린 내면아이를 다시한번 발견한다. 

  부모에게 참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문재인은 "항상 선을 그어 놓고 운동에 참여"했다. 정치에 참여한 것도 본인의 뜻이라기 보다는 국민의 사랑에 의해서 강제로 내몰린 것이다. 인권변호사라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었고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삶을 살고 싶어하는 지금의 문재인을 보며, 현재의 나와 대면한다. 교사가 된 나는 타교사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관리자의 길을 외면한다. 교장 교감이 되려고 노력하는 주변 교사의 눈에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눈치이다. 그러나 교장 교감은 커녕 부장 교사가 되는 것도 나는 부담스러워한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수업시간에 열정을 불사르며 살고 싶다. 열정적 수업을 할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면 조용히 명예퇴직을 하여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에 집을 마련하여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싶다. 

  문재인과 내가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이 고 노무현 대통령 연결식에서 헌화하려하자, 백원우 의원이 "보복정치 사죄하라!"라고 외쳤다. 문재인은 상주를 맡은 국민장의 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이명박에게 사과했다. 나로서는 문재인의 행동에 공감할 수 없다. 문재인이 아직도 착한아이 콤플랙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착한 아이이기보다는 때로는 나쁜 아이가 되려 노력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강한 교장 교감들을 보면서, 절대 저들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자께서도 "마을 사람중에 선한 사람이 그를 좋은 사람이라 하고, 마을 사람중에 나쁜 사람이 나쁘다고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라고 하셨지 않는가! 이제는 더 이상 '착한 아이'이고 싶지 않다. 


2, 참된 부모되기

  심리학자 김태형은 문재인 이외에도 이재명과 안철수, 유승민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김태형의 입장에서 가장 안정되고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갖춘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재명이다. 어떻게 해서 이재명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도 안정된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 이재명은 안철수와 유승민에 비교한다면 무수저 출신에다가 학벌도 그들보다 좋지 않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해야했다. 맞기 싫어서 공부를 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으며 법대에 진학했다. 장학금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재명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수저 이재명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 안정된 심리를 갖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혹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일까?

  이재명과 안철수, 유승민의 아버지는 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이중에서 이재명의 아버지가 특히 심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도박에 중독되어 그나마 있었던 가산을 탕진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와 유사했다. 나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너무도 좋아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면, 온 가족은 조용히해야했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그때부터는 잠을 못잔다. 했던 말을 반복하며 가족을 고문했고, 빚을 갚겠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나에게 아버지를 붙잡으라고 했다.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잔치날이었다. 이웃주민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소리를 지르며 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가 한심해보였다. 쓸개가 없는데도 어머니 몰래 술을 숨기고 다니며 술을 마시다가 간경화로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야했다. 나는 지금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 나의 어린 내면아이는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둘째딸이 "아빠 술마시는 거 싫어"라고 말을하자, 그때부터 나는 술을 끊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명감 혹은 책임감 때문에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도 김태형의 분석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도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있다. 성인이 되고나서 그가 의사의 길 보다는 백신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되었다. '권력 실세 밑의 저격수' 유승민 또한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과 반항은 아버지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에 의해서 표출된 행동이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버지의 인정과 상관 없이 반항아로서의 자기 인생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인생을 살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안철수와 유승민이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에서 탈피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한다면 그들은 탁월한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니, 정치를 떠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도 더 바람직하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이재명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바로 어머니의 깊은 사랑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해야했던 이재명을 그의 어머니는 혼자 보내지 않았다. 이재명의 손을 잡고 공장에 갔다. 가난했지만, 이재명의 어머니는 어린 이재명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었다. 팔을 다쳐 장애를 얻은 아들을 눈물로 맞이하며 남다른 애정을 주었다. 그것이 지금의 이재명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장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권력이 필요한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한 사람이다."

  "자리나 지위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사람이다."-116쪽

 

  자리와 권력을 탐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해서 뛰어드는 사람과 비교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그에게 자리와 권력은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으로가는 도구일 뿐이다. 타 후보가 질 가능성이 높은 일, 정의로운 일이라도 수구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일은 하지 않는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그의 모습이다. 이재명은 욕을 먹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싸움닭이라는 별명도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싸워도 지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닮고 싶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가장 비난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보수세력이 얼마나 이재명을 두려워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이재명이 만들고자 하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심리학 책을 읽거나, 심리학 연수를 수강하는 목적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책을 덮고 연수를 마치고 나서는 나 자신을 알고 치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리학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을 읽기 전에는 대통령 후보의 마음을 알고 싶었지만, 읽고 나서는 나의 내면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김태형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은 나에게 천금같은 값어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진리는 부모의 중요성이다. 경제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참된 사랑이다. '나는 나의 자녀에게 이재명의 어머니가 해주었던 사랑을 해주고 있는가?' 나는 여러차례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다. 낳기는 쉬워도 키우기는 힘든 법이다. 더욱이 나 자신 또한 참된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은 아니기에, 나 자신을 치유하며 참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다. 멀고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기에 오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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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8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8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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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8의 주제는 중국인이 바라본 6.25 전쟁이다. 책의 절반 이상이 6.25 전쟁과 과련된 내용이다. 우리가 바라본 6.25는 비극과 애환이 서린 전쟁이다. 김일성에 의해서 시작된 전쟁은 민족을 파멸로 몰아 넣었다. 이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여파는 동아시아로 퍼져 나간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자, 마오쩌둥은 한반도 전쟁에 중국군을 파병한다. 국가의 기틀을 잡기에도 버거울텐데도 그들은 북한을 돕기 위해서 파병했다. 그렇다면 중국에게 6.25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책 속으로 들어가 그 의문을 풀어보자.

 

  6.25는 한국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전쟁에 관여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는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그런데 6.25 전쟁은 보다 많은 국가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의 기뢰 제거반이 투입된 사실도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베트남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천컹은 6.25전쟁에서 갱도 건설 전략을 제안했다. 지하 만리장성을 건설해서 항일 전쟁에서 유용하게 사용한 저력을 한반도에서 다시 사용했다. 또한 천컹은 베트남에 땅굴을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지하갱도는 동아시아의 전쟁에서 널리 사용된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괴롭힌 것이 바로 베트공이 건설한 땅굴이지 않은가! 어쩌면 북한이 남침용으로 건설한 땅굴도 6.25 전쟁에서 중국군이 건설한 갱도건설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신혼부부가 항미원조라는 구호에 현혹되어 전쟁에 자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에 파병된 중국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전쟁 자체가 비극의 결정체이지만, 항미원조라는 명분을 믿고 전쟁터에 갔다가 포로가된 중국군 포로들의 운명은 너무도 비극적이다. 중국 포로들은 중국에 가서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다. 귀래자 6000여명 가운데 중공당원 2900명중, 91.8%가 당에서 제명되었다. '특수 혐의자' 모자를 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도 냉대와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다. 항미원조라며 젊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었던 공산당은 "무슨 재주를 부렸기에 살아돌아 왔는지 궁금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로 귀래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어 닥친 문화 대혁명은 그들에게 더 큰 폭력과 냉대를 감수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타이완을 선택한 중국인민지원군 포로 1만 4천명의 삶은 좋았을까? 타이완에서 반공의사 대접을 받았지만, 저학력이라서 토역 후에 변변한 일자리를 갖지 못했다. 결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타이완의 거리를 떠돌며 생을 마감해야했다.

  중국이든 타이완이든 항미원조의 명분을 믿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었던 그들은 죄인 추급을 받거나 사회의 하류 계층을 이루며 살아야했다. 그들은 분명,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사회에서 주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느라 제대로된 치유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 이후, 타이완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한반도에서 국가 보안법이 활개를 치며 자유로운 창작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했듯이, 1957년 5월 24일 벌어진 반미운동 이후 타이완에서의 사상탄압은 광풍처럼 타이완을 휩쓸었다. 반정부=반미주의자=공산당이라는 인식이 널리 펒ㄴ 가운데, '톰소여의 모험'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연행되기도 했다. 마크트웨인과 마르크스가 친척관계라는 것이 이유였다. 같은 마씨라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기발했다. 이는 박정희 정부 시절에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의 '태양은 대지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가 '태양'은 김일성을 뜻하고, '붉게 타오르고'는 남한을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해석한 정부당국자의 발상과 너무도 비슷했다. 프랑스 작가 애밀존라 혹은 량치차오를 좋아한다하여 수배되거나 체포되는 촌극이 벌어진걸 보면, 한국에만 메카시 광풍이 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념 대립은 중국의 범죄자를 반공투사로 만들었다. 1983년 벌어진 민항기 납치사건은 사실 방탕한 삶을 살아가던 중국 부유층의 자녀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민항기를 납치한 사건이다. 그러나 민항기를 납치한 납치범을 이념 대립은 반공투사로 만들었다. 대만으로 추방된 줘창런은 도박과 투기로 보상금을 탕진한다. 그는 병원 부원장의 아들을 유괴 살해하는 만행을 전지른다. 결국 1997년 사형선고를 받고, 이후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993년까지 항공기 납치범이 타이완에 10여 차례 왔다. 결국, 타이완 정부도 방침을 바꿔서 납치범들을 반공투사로 대우하던 관행을 깨고 엄하게 처벌하고, 중국으로 추방했다. 이념이 범죄자를 영웅으로 만든 댓가를 타이완은 톡톡히 치뤘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1권부터 8권까지 읽는 대장정을 마쳤다. 애초에 10권을 기획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9권은 출판되지 않고 있다. 9권에는 시진핑을 비롯해서 현재 중국의 실권자들의 삶을 조명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10권에서는 중국의 미래에 대한 김명호 나름의 소견도 담아주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내공이 탄탄함에 놀랐다. 40여년을 중국 근현대사 연구에 매진한 대가의 기품이 풍겨나온다. 건강이 허락되는 내에서 김명호 교수가 대중을 위한 중국사 책들을 저술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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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7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7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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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하가 급류를 이루며 굽이치듯이, 험준한 태항산 자락이 대지를 휘감듯이 중국이라는 대륙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 이야기를 몇권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김명호 교수가 해냈다. 김명호 교수는 어려운 중국의 근현대사를 인물중심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1권부터 읽기 시작한 '중국인 이야기'를 이제는 7권까지 읽었다. 7권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며 애절한 사연을 남기고간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쑨원이 사랑한 쑹칭링, 그러나 사랑하는 쑨원은 저세상으로 갔고 그녀는 남았다. 장제스는 쑨원과 그녀를 떼어 놓으려했다. 쑨원의 아이를 갖았지만, 유산한 이후 쓸쓸한 삶을 살아가며 쑨원의 '연소, 용공, 노농부조'라는 1차 국공합작 원칙을 지켜야한다면 장제스를 견제하며 살았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 남아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여생을 보냈다. 자신의 아이를 갖지 못한 한을 타인의 아이를 돌보며 보상받았다. 조국을 사랑한 쑹칭링! 국민당 정부가 그녀를 쑨원과 분리 시키기 위해서 천유런과 그렇고 그런사이라며 괴소문을 퍼뜨렸을 때, 얼마나 가슴아팟을까?

 제2의 장쉐량 쑨리런, 그는 미국도 인정할 정도로 전투에 일각연이 있는 사람이다. 유능한 장군이지만, 황포군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용되지 못하다가 뒤늦게 중용되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의 자유로운 스타일이 몸에 벤사람이다. 정치군인이 아니기에 그는 탁월한 장군이지만, 장제스의 견제를 받아 33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나자, 기자들은 장제스에 대한 비판을 바랬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총통의 명령이었다. 개의치 않는다."

  저자 김명호는 "역시 '민족 영웅'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라고 평을 했다. 자신을 핍박한 상관을 비판하지 못하는 쑨리런의 모습을 보며 애처러움이 밀려왔다. 자신을 장제스의 주구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권력을 지키려 유능한 장군을 33년 동안 가택연금을 한 장제스의 우둔함과 자신을 핍박한 상관을 비판못하는 못한 쑨리런의 모습을 보면서 모순이 얼키고 설킨 중국의 현대사가 애절해 보였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쏴서 죽였기에 가슴한구석에 한을 담고 살아야했던 쑤원의 이야기는 너무도 애절했다. 일제에 잡혀 모진 고통을 당한 그녀가 남편을 찾아왔다. 그런데, 남편 샹잉은 부인 장량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쑤원은 가까스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와 함께한 12일이 그녀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용기와 희생의 시대였다. 주위에 부모 잃은 애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라는 쑤원의 말은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 속에 얼마나 많은 애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가를 추측케한다. 

, 중국 물리학의 비조 이지만 중국으로 부터 매장당했던 예치쑨의 이야기도 애절함이 서려있다. 중국이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원자폭탁과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계발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예치쑨이다. 예치쑨이 키운 제자들이 중국의 과학을 탄탄한 기반위에 우뚝 세웠다. 그러나 그는 문화 대혁명을 거치면서 몰락했다. "말라비틀어진 사과를 우물거리며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걸인과 다를바"없었다는 증언은 사회주의 중국의 비정함을 보여주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해야만 했던 중국 과학계 거목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한 CEO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지금의 중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국의 애절함은 끝나지 않았다.


  보통 우리를 한많은 민족이라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 이야기 7 권에 담겨 있는 인물들의 삶을 살펴보면 중국인에게도 한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격동의 시대에 혁명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던 수많은 영웅들이 있다. 그러나, 그 영웅들은 수 많은 비극을 낳기도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되어 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호랑이가 사라진 숲에, 늑대가 설치듯이, 일제를 몰아내고 나서는 국공내전이 일어났다.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자, 이제는 권력투쟁에 들어갔다. 특히 문화 대혁명 10년은 수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서 느꼈던 애절함을 중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면서 느꼈다.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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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6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6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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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를 1권부터 6권까지 읽었다. 끊임 없이 샘솟는 중국의 이야기기에 놀라고, 이러한 이야기를 끊임 없이하는 김명호의 내공에 다시한번 놀란다. 중국인 이야기 6에서는 중국 근현대 불교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40여년을 중국사 연구에 매진한 김명호의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김명호가 아니라면 누가 잘 알려지지도 않은 근현대 중국 불교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는가!

  2.28 사건과 대만이 조직한 해상 돌격대가 중국의 해안을 습격하는 내용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익히 2.28사건에 대해서 들어 보았으나,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놓은 책을 접하지 못해서 항상 궁금해하던 차에,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6권에서 2.28 사건을 자세히 다뤄주었다. 본성인과 외성인의 극명한 대립의 시작을 보았고, 지금의 타이완의 현실을 알기 위해서는 2.28 사건을 알아야한다. 

  두번째로 흥미로웠던, 대만의 해상돌격대 이야기를 읽으며, 남북한의 대결과 유사한 모습이 관찰되어 씁쓸함을 감출수 없었다. 명나라를 괴롭힌 왜구들 처럼, 중국을 괴롭히기 위해서 대만이 해상 돌격대를 중국에 침투시켰다. 이 과정에서 인명의 희생도 있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라, 국지전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시대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의 속살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중국의 모습에서 비슷한 고난을 겪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과부촌으로 알려진 퉁보촌의 비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문도 모르고 마을 사내들이 대만군에 끌려가서 졸지에 마을 전체 여성이 과부가 되어야했던 비극!! 그 고통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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