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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언제나 만남을 이야기했지
가와이 도시오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을 시작으로 『1Q84』까지 읽고 있지만 그동안 하루키 문학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독서하는 시간만 즐기는 데 바빴기에 소설에서 찾을 메타포는커녕 내용마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여운이 오래 남지 못했다.
일본의 문예평론가, 사이토 미나코에 의하면 하루키의 작품을 분석하기 위한 논문이나 단행본은 300편 이상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스토리를 쫓아가는 것으로만 즐거운 그저 손님 같은 사람이었지만, 하루키 작품의 내밀한 세계를 분석해서 이해하고 싶은 일면도 있었는데 때마침 바다출판사에서 출간한 가와이 도시오의 『하루키는 언제나 만남을 이야기했지』의 표지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대표적인 심리 연구가이다. 저자는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을 배경으로 한 『태엽 감는 새 연대기』와 『언더그라운드』를 경계로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
저자는 융 학파 심리치료가답게 하루키 문학 전반에서 나타나는 만남의 본질과 하루키의 작품 속 만남이 내포하는 과제, 나아가 현대 사회 속 만남의 문제까지를 다루기 위해 작품을 고찰한다.
하루키의 초기작에 나타나는 대부부의 주인공 또는 화자는 타인과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으며 사회에도 관여하지 않는 거리 두기형, ‘디테치먼트(detachment)’ 인간들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그 무엇에도 관여하지 않는, 근대적 의식의 부정 이후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이다. 따라서 예기치 않게 폭력과 섹스에 연류되어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1985년에 발간된 단편 「빵가게 재습격」을 중심으로 디테치먼트를 분석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남이라는 주제가 디테치트먼트에서 ‘커미트먼트(commitment)’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도쿄 기담집』에 수록된 2005년 작, 「우연 여행자」를 첫째 장, ‘마침 그때 네가 전화를 줬어’에서 살펴본다.
커미트먼트(책임감, 헌신, 적극적 관여)는 하루키 작품 세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인데 두 번째 장부터는 2020년에 나온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중심으로 ‘만남’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하루키의 작품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이 책을 통해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일부 알게 되었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하루키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