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위해 죽다 - 애플, 폭스콘, 그리고 중국 노동자의 삶
제니 챈.마크 셀던.푼 응아이 지음, 정규식 외 옮김 / 나름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폰 15 pro 티타늄' 은 개뿔,, 엿먹어라 애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폭스콘의 노동자들은 아이폰 15 출시에 맞춰 또다시 이 책에 묘사된 일을 겪었으리라. 참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싶다. 중국이 공산당 맞나? 국가와 거대기업이 합작해서 대중을 쥐어짜는 과정은 7,80년대 한국과 다르지 않다. 근로자신분도, 학생신분도 아닌 인턴 학생을 이용해서 노동력을 벌충하는 패턴도 익숙하다. 애플은 자신들과 폭스콘을 분리시키려고 하지만, 신제품 주기에 맞춘 납품요구 등 결국 발주자의 요구에 하청업체는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풍문으로 듣던 한국에서 대기업과 하청업체와의 관계가 여기에서도 재연되는 것이다. 문장은 진짜 쉬운데 학술적인 느낌의 서술이 많아서 살짝 지루한게 흠이다. 차라리 폭스콘 노동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좀 더 많이 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일 때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빠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계획적으로 할 수 없다. ‘사랑하고 싶다라는 의지를 품을 수는 있지만, 의지가 강할수록 오히려 사랑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랑의 의지가 강한 두 사람이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데이트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Markus Gabriel VS>(마르쿠스 가브리엘,사유와공감)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겠는가. 그러니 다시 감정을 살려내야 한다. 이것은 삶의 본능이자 삶의 의무이기 때문이다...감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신적이다,, 한 개인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수업>(강신주,민음사)

 

사랑은 하는 것인가? 빠지는 것인가? 강신주는 변덕스럽다는 이미지와 달리 감정이 오히려 일관적이라고 한다. 바흐를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끝까지 좋아하게 된다는 거다. 이 때 감정은 고유한 자신같은 의미를 띈다. 이런 가정하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고유한 감정을 직시하고,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된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도 있다.

 

“..감정을 형성하는 것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의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의 행위를 하는데 따르는 결과인 것이다.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면 사랑에 대한 진부한 관념들-즉 부모는 자기 자식을 무조건 사랑한다 든가,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저절로 사랑에 빠진다든가, 이성을 너무 사랑하게 되면 열정의 포로가 된 나머지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는 사실을...”-<올 어바웃 러브>(벨훅스, 책읽는수요일)

 

여기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나 결단이다. 이런 태도는-비약하면- 니체의 아모르 파티를 떠올리게도 한다. 마치 학교에서 전공선택할 때 적성이냐 장래가능성이냐 따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은 여기서 필요조건이 아니다. 재밌게도 커리어 개발관련 서적에도 비슷한 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칼 뉴포트의 <열정의 배신>에서 저자는 중요한 것은 열정(감정)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장인마인드셋’(태도)이라고 말한다. 일에서 자유를 얻는 방법은 변덕스런 열정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장인이 돼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논지다.

둘 중의 어떤 것이 진실일까? 감정의 위치가 인간 안에서 어디인가를 정확히 하는 것이 답을 줄 것 같다. 감정은 하늘의 구름처럼 실체가 없고 일시적인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가능케 하는 방향타인가? 흔히 말하는 로맨스와 인류애 같은 다른 사랑을 구분하는 것이 두 입장을 중재하는 타협점이 될까? 사랑은 투명한 빈 용기 같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빛깔은 계속 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공산당이라는 명목으로 1965년 수백만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 때 직접 사람을 죽인 학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지금 그 사실을 어떻게 회고 할까?  감독은 대략 수백명 또는 천명(?을 죽였다는 안와르 콩고라는 노인에게 당시 자신이 했던 그 살인을 연기(액트)로 재연해보자고 제안한다. 가끔씩 트라우마를 호소하지만, 손자들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던 안와르 콩고는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면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국내관객수가 만명이 채 되지 않는, 70개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는 이 다큐멘터리는 명불허전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는 통에 이 백인감독이 인도네시아에서 제대로 살아남을까 하는 걱정이 들고, 실제로 엔딩 크레딧의 공동감독 중 한명은 익명이다. 초반 학살자들이 웃으면서 살인장면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동시에,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학살자들 중 한명은 그렇게 따지면 아메리카원주민 학살을 미국인은 사과했냐고 따진다. 보고 나면 우리나라 5.18도 떠오르고 어쩌면 지금 이스라엘 하마스 간의 전쟁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란 원래 저런 존재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도 웃음을 지으면서도 오리들을 괴롭히는 손주들을 야단치기도 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관객을 깊은 침묵에 빠뜨리게 하는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가명 > [100자평] 니모나

니모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에서 박사하기 - 젊은 연구자 8인이 말하는 대학원의 현실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84
강수영 외 지음 / 스리체어스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일단 이제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미생' 이미지에 교수의 전횡에 휘둘리는 불쌍한 이미지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  저자들이 묘사하는 대학원생은 그림자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이면서, 공부의 방향성과 효율적인 연구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자이다. 현재 전체 대학원생이 30만정도 된다고 하는데, 이들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학내와 학계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될 것인가? 혹은 특히 인문계의 경우는, 대학원 졸업 후의  진로 문제로 압축될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이제 신진 연구자들은 이제 본인이 교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별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원은 시스템이라기보다 교수 중심의 도제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자원과 권력이 사기업 못지 않게 경쟁과 위계로 배분되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소통, 학계 밖으로의 외연 확대 등이다.  대학원 교육도 이제는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읽다보면 인문학 지원자들은 한숨이 나올 수도 있겠다. 불안정한 미래와 감이 잡히지 않은 공부 등을 감수하면서도 인문학을 택하는 이들, 마치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셈 아닌가. 정말, 요즘은 공부를 하려면 거의 수도승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거의 반쯤 미친 상태로 자폭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시민사회에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bts니 케이팝이니 하는데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이들은 홀대받는다. 7,80년대의 존경받던 지식인의 아우라는 사라졌다. 먹고살기 좋아졌다는 말이 이런 거 보면 허구 아닐까.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구리하라 야스시, 서유재)...  추상적인 단어가 많아 가독성은 약간 떨어지는 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