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의 사형 집행인 - 16세기의 격동하는 삶과 죽음, 명예와 수치
조엘 해링톤 지음, 이지안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급의 차별을 극복하려 했던 한 사형집행인의 삶을 통해 본 역사 여행.재밌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묘사한 근세초기는 헨젤과 그레텔과 빨간 모자가 등장하는 듯한, 자력구제가 원칙인 서부개척시대같은 세계다. <사건파일>처럼 프란츠 슈미트가 처리했던 중세의 범죄리스트도 길티 플레져 같은 흥미를 돋군다. 요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은 편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신분과 계급 차별이라는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이 사형집행인은 어떤 포지션을 취했을까? 뭐 지금도 결국 계급사회니까 묘하게 공감이 된다는 자조적 자기비하 . 근데 3만원은 좀 비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루클린의 어느 술집. 친구인 두 남자가 내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내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제이, 오른쪽은 콜린이다. 나와 동일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윤리철학 교수가 된 콜린은 내 몸과 같은 몸이 존재하지 않을 더 나은 사회를 옹호한다.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이 견해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이건 흔한 일이다. 주장의 내용도,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 내가 잊히는 것도 그렇다.

... 나는 여전히 내가 친구들과 함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드디어 콜린이 입을 열었다. “맞아. 근데 그건 뻥이잖아" 맥주잔을 내려다보던 제이가 고개를 들었다.

만약 그 부모가 일부러 귀먹은 아이를 출산했다면 감옥에 보내야 해. 법을 만들어서 임신한 여자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장애 검사를 받게 하고, 만약 장애가 발견되면 강제로 낙태를 시켜야 해.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보내거나 벌금을 물리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제이가 말했다. 그는 콜린이 제시한 방안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차분하게 지적하고, 콜린에게 그 맥락에서 '장애'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네가 주장하는 건 우생학으로 회귀하는 거잖아. 그게 네가 원하는 거니?“

"!” 콜린이 손뼉을 쳤다. "우생학은 좋은 발상이었어. 윤리적으로 진짜 괜찮은 학문인데, 다만 그걸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거지.”

 

"내가 장애인인 건 알지?"

", 알아" 콜린이 대답했다.

"너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이미 태어났잖아."

"하지만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내가 미리 발견되고 낙태되었을 거란 얘기지?"

". 네 몸은 네 삶을 더 힘들고 불편하게 만들잖아!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거야."

"내 삶의 전부가, 내 삶의 모든 측면이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니?"

"그걸 부정할 수 있어? 여기서 그게 논쟁거리는 아닌 거 같은데."

“ ...저항이 힘이라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건 다 지어낸 이야기고 순전한 합리화잖아. 너는 네가 손에 쥐고 있는 형편 없는 패를 합리화하고 있는 거잖아."...

...콜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장애인은 아니잖아그랬다. 콜린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그래도 최악은 면했구나.‘

 

                                                  -이지뷰티(클로이 쿠퍼 존스,한겨레출판사) -

 

 

우생 사상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차별' 문제, 그리고 그보다 앞서 장애인의 출생을 줄이려 하는 우생 사상적인 사고방식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 해야 한다고 봐. 그래서 우생 사상적인 사고방식에 관해 생각해보면... 딱히 내가 연구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우생 사상이 있지 않을까?"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답에 마음이 몹시 술렁거렸다. 그다음 말이 궁금해서 나는 시라토리 씨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가령 평소에 장애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태어날 때 조금쯤 장애가 있어도 어떻게든 된다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자신의 아이가 무 뇌증이어도 괜찮다고 할까? 거기까지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우생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야.”

"... 결국 장애에도 서열이 있고, 1단계는 괜찮지만 2단계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네."

"누가 무엇에 대해 얼마나 우생 사상을 갖고 있는지는 연구자가 아니니까 나도 모르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우생 사상이 있을 거야."

", 그런 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럼 시라토리 씨에게도 우생 사상이 있어?"

", 있는 것 같아, 아니, 있었어. 나도 맹학교에 다닐 때는 맹인답지 않은 것을 동경했거든. 예를 들어 전맹인 사람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거침없이 다니거나 생선 가시를 깨끗하게 발라 먹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부러워했어. 그리고 그런 걸 못 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고, 그걸 뒤집어 생각해보면, 맹인답지 않은 행동의 뿌리에 있었던 건 '장애가 없는 사람 과 비슷해지는 건 좋은 일'이라는 일종의 차별 의식과 우생사상이었을지도 몰라."

... ", 그러니까 우생 사상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차별은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차별 의식과 우생 사상이 내게도 있다고 일단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20대 후반이었던 것 같은데, 전맹인 지인 중에 아무리 연습 해도 마사지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리고 빨래를 잘 널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도 전맹이니까 안 보이면 이렇게 연습해보라고, 그러면 잘할 수도 있다고 조언해주었는데, 그래도 그 사람은 못 했어. 그런데 애초에 '할 수 있다''할 수 없다'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아니잖아. 사실 마사지든 빨래 널기든 잘 못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게 20대 때였으니까 꽤 늦게 깨달은 거야.“

아아, 이 말이다. 이 말이었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일본 사회에는 '성장은 대단하다.' '편리해지는 것이 진보다.' '일하고 벌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같은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이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이데올로기가 흐르고 있으며,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의 최소 단위는 개인의 '성장'이고, 이른바 '자립'은 일종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어린 딸이 혼자 옷을 갈아입었을 때 박수를 쳤고, 혼자 책을 읽 었을 때 칭찬했다. 해냈구나. 대단해.

물론 성장은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일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 혹은 인간의 '능력'만 높이 평가하고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지 않는 사회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 며 행복하게도 하지 못한다. 이 사회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도 많다. 나 또한 어떤 사정으로든 일하지 못할 날이 언젠가는 거의 확실히 찾아올 것이다.

 

                -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가와구치 아리오, 다다서재) -

 

실제로 좋은 삶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며 불완전하다. 그 속에 좋은 것들이 있지만 많은 게 빠져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라파엘 전파의 미술을 잘 알지 못하거나 울타리 치는 법을 모른다고 해도 내 삶에는 아무런 타 격이 없다. 나의 삶은 이미 풍성하기 때문이다. 실없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신체장애가 일반적으로 잘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이유다. 장애는 우리가 소중한 일을 행할 수 없게 만들므로 어떤 면에서는 유해하다. 그러나 어차피 소중한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러 가지 좋은 것들에서 소외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대부분의 장애에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보다 결코 나쁘지 않은, 때로는 더 나은 삶의 가치가 충분히 남아 있다....

  잘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다양성과 너무 많은 우연성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회복력이 좋은가를 보여주 연구들의 철학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런 연구들은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체로 결코 더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입증한다. 이 이야기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 두 가지를 시작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왜 우리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 둘째, 장애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임을 인정해야 한다. ...신체장애가 고용,교육,사회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집단권력에 달려 있다. 문제는 신체와 인공환경 사이의 부조화다. 그러나, 환경은 바뀔 수 있다.

 

                                               -라이프 이즈 하드(키어런 세티야,민음사) -

 

ps. 1. 한 가지 의문은 영화 <씨인사이드>의 주인공처럼 전신불수로 수십년을 살다 조력자살을 택하는 사람의 케이스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기에도 키어런 세티야의 이야기가 적용될까?


2. <이지뷰티>의 저자는 자신이 장애에 관한 편견에 부딪힐 때마다 도망치던 중립의 방이 자기를 위축시키고 외부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다는 것을 비욘세콘서트를 관람 후 알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의 전맹 시라토리 겐지가 택한 것은 미술관 관람이었다. <이지뷰티>를 읽고 나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게 정말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게, 호의 역시 차별과 편견이 되는 저자의 경험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에서 역시 전맹인 시라토리의 친구는 우리는 절대 남과 같이 될 수 없다며 장애인체험 같은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원하는 건 그냥 다가가서 같이 있는 것 뿐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 정희진이 강의 중에 한 말 같은데 우리의 정체성은 여러가지라고 한다. 인종적 차원에서 차별받는 흑인정체성이 경제적 차원에서는 남을 부리는 CEO정체성일수도 있고, 젠더차원에서 억압받는 여성정체성이 인종적 차원에서는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정체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진 여러 정체성에서 모두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에는 장애라는 소수자가 겪게 되는 여러가지 경험들과 통찰들이 들어있다. 사랑과 연애라는 영역에서 컴플렉스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브루스 웨인이나 일론 머스크 정도 아닐까? 라디오헤드의 'creep'  가사처럼 '나는 이상한 놈이야, 이곳은 나를 위한 곳이 아니야' 라는 가사에 공감한 적이 있다면 저자의 경험을 어느정도 어림짐작할 수 있으리라.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자의 경험이 사랑과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의 경험담을 읽다보면 비단 장애라는 상황을 떠나서라도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게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교수답게 섬세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게 이 책의 미덕인데,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다. 저자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내밀한 감정이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여야 할 동기가 먼저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읽을 만하다. 하지만, 어떤 독자는 '내가 왜 시시콜콜한 당신 인생사까지 알아야 하는데? '라고 반문할 것이다. 아마 한국사람들끼리 (국적말고 인종. 허경 박사의 말로는 한국처럼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가 없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이라면 학력차별과 빈부차별,외모차별 정도가 아닐까 한다. 저자의 처방은 아래와 같다. 


"....사람들이 항상 나를 온전한 존재로 봐주지도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카일같은 사람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무심한 남자들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골목길에 또 다른 낯선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콜린같은 사람들은 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일을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건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린 선택을 해서 내가 잃을 건 없다. 반대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느끼곤 했던 그 모든 분노와 불안, 공포와 혐오는 나에게서 거의 모든 걸 앗아갔다. 카일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그가 잘 되기를 빌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나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카일의 말들은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내가 카일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


ps 저자가 비욘세콘서트에서 느낀 감정은 잘 이해되질 않는다.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현전'하는 느낌 같은데 그게 어떻게 저자에게 영향을 미친걸까? 철학을 할 정도의 단단한 에고에 균열을 냈다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1년간 치매 비슷한 증세를 보인 어머니를 사망 전까지 돌본 저자의 경험담이다. 미국 백인 중산층이 겪는 노인 간호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다고 저자의 경험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여기에는 계급적인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불법 이민자를 간병인으로 고용해야 했고, 저자는 백인중산층인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저자는 옳음과 그름이 섞여 있었고, 중요도를 결정해야 했다는 식으로 딜레마를 표현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런 미국에 사는 백인중산층인데도 의료사고 비슷한 것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콕 집어 표현하지는 않지만, 의학이 완치만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완치가 불가능한(죽음에서 완치되는 법은 없다) 노인들은 무시되는 것이다. 저자에게 호스피스 관련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거만한 태도로 환자를 무시하고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는 의사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저자는 클레임을 걸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 포기한다.) 저자와 간병인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결국 간병이라는 짐을 계급적 위치를 이용해 떠넘긴 것인데, 익숙한 시나리오로 간병인의 생활은 피해를 받는다.(간병으로 인한 장기간 부재로 인한 남편의 바람 등등)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간병인은 가족이 아니면서도 가족같은 애매한 위치에서 저자와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간병인이  저자를 불법이민자 고용으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저자의 충고도 들어있다. 저자는 환자는 자신을 돌볼수 없다고, 의료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보호자가 부딪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실제 경험에서 얻은 충고이리라.  가독성도 좋고 사려깊고 솔직한 저자의 문장이 부모를 돌보고, 임종을 경험하는 세밀한 스케치를 그려낸다. 저자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양심이나 죄책감이 어머니를 돌본 힘이라고 암시한다. 그리고, 임종 후에 '본전생각'이 났었음도 가감없이 표현한다. 


ps 예전에 읽은 비슷한 책으로는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야마무라 모토키, 코난북스, 절판) 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메세니아 연설

15B.1.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1.13,

[b18] .... 알키다마스는 이들을 대변해서 열변을 토해 가며(meletai) 말한다. "신은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도록(eleutheroi) 놓아주었다(aphēke). 자연은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 누구든 논거를 '자연'으로 삼는다.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자는 양을 잡아먹는 사자를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고, 자유를 옹호하는 알키다마스  역시 자연을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는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자연은 이미 인간에 의해 해석된 자연 아닐까? 과연 총체적인 100%의 자연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을까?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자연의 일부를 가져가다 자신의 주장의 논거로 삼고 그 일부로 전체 자연을 왜곡하는 것 아닐까?


15B.2.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1,13,

공통된 법이란 자연에 따른 (ho kata physin) 법이다. 설사 서로 간에 아무 공유 관계(koinonia)도 없고 계약(syntheke)도 없다 해도, 자연에 의해(physei) 공통되게 정의롭다거나 부정의하다고 모두가 촉으로 직감하는(manteuontai) 뭔가가 있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도 영혼이 들어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에 관해서 말할 때 바로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정의로운데 다른 사람들에겐 정의롭지 않은게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적법한 것(to ... panton nomimon)"은 널리 다스리는 에테르를 통해서도 한정 없는 햇빛을 통해서도 끝없이 펼쳐져 있다."

 

   ※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정말로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모든 상황에서 관철될 수 있는 정의는 없는가? 만약 없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알키다마스는 우리가 직감하는 '촉'이 있다고 한다. 마치 생래적으로 우리가 '답'을 알고 있으며  마치 신의 사랑이 모든 세상에 임재해 있는 것처럼, '적법한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왠지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이다. 알키다마스 선생님,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헛웃음이 나오는 문장...


5B.9. 스토바이오스 선집4.52.2228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땅 위에 사는 자들에겐 최선이지만, 일단 태어났다면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빨리 하데스의 문들을 통과할 (perēsai) .

  

16B.6.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학자들에 대한 반박8,4-5" 141

크세니아데스는 모든 인상(phantasia)과 의견(doxa)은 거짓을 말한다고, 그리고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생성된다고, 그리고 소멸하는 모든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 소멸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 모든 감각들은 거짓이라는 크세니아데스의 주장. 플라톤의 절대주의적 뉘앙스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형태로 드러났다면, 칼리클레스의 상대주의적 뉘앙스는 반란을 이야기한다. 크세니아데스의 '진리허무주의'는 삶에 어떤 형태로 드러날까?  씨앗이 되는 생각들이 있다. 그 씨앗으로부터 자란 나무들이 우리들의 삶을 조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