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참 잘 지었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얼마전에 강호동이 가슴을 내밀면서 “아빠니까” 라고 말하던 광고도 생각이 나구요(누군가에게는 아주 짜증나는 광고였을거라고 예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비열한 광고였다는 느낌도 드네요)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영화의 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영문제목인 LIKE A FATHER.LIKE A SON 이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버지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항상 비상했던 료타는 이번에도 빠르게 머리를 굴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가출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있었을 테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내의 상태를 고려할 때 자칫 두명의 아이를 전부 잃을 수 있는 가능성도 고려했을 겁니다. 때문에 확률적으로 자신의 품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케이타를 선택한건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끝에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아니면 류세이를 돌려보낸 게 진짜 부성인지도 모르지요. 류세이가 겪을 혼란을 피를 나눈 아버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런 가정의 모습은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나오는 군요 그 영화의 료타 역시 남의 아들을 키우고 료타의 아버지는 이 영화의 료타처럼 사람을 차별하는 캐릭입니다.(“역시 그랬었군”이라는 대사를 떠올려 보세요) 그 영화에서 똑같이 할머니로 출연하는 배우는 “네가 진짜 자식을 가지면 달라질거다” 라고 료타에게 말합니다.
저에게 느껴진 료타의 변화라면 영화속 료타 친구의 대사처럼 료타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게 됐다” 일 겁니다. 어쩌면 료타는 자신의 아내조차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혼해야 한다는 필요성, 그에 걸맞는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해서 거기에 적합한 사람을 고른 건지도 모르지요 . 더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얻어왔던 료타는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서 거부받은 경험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그런 료타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상대는 자신과 가장 가까워야 할 아들입니다. 여기서 료타는 진짜 “타자”를 만나게 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왜 아들을 사랑할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영화 초반 료타는 케이타에게 더할나위 없이 자상한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케이타가 닮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 순간 케이타를 류세이와 바꿔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료타가 케이타에게 보여 준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 “자기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료타는 케이타를 사랑한게 아니라 자신의 피를 받은 또다른 자기를 사랑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케이타가 “타자”로 드러난 순간 그를 버립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분신인 류세이가 자신을 거부하는 순간 타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아닐까요. 좀 묘한 상황인데, 료타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일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료타는 누군가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을 겁니다. 그래서, 케이타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운 것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아버지라는 카테고리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자신밖에 모르던 사람이 “타자”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 관한 영화인지도 모릅니다.(“타자”라는 표현 싫어하는데 자꾸 쓰게 되네요 단어에 너무 기름기가 느껴져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