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은 끝났다 - 어느 명문 로스쿨 교수의 양심선언
브라이언 타마나하 지음, 김상우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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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국 로스쿨 애기가 아니다. 현재 한국 대학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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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김연자 지음 / 삼인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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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남자들 참 찌질했구나.. 아니 지금도 찌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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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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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루야마 겐지의 기백은 여전하군요 이제는 식상할만도 하지만 장정일씨의 말은 “계몽은 반복되어야 한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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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환상여행
셀던 B.콥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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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산게 내가 고등학생이였을 때였는데... 십여년이 흐른 다음에야 읽게 되었다.. 이제야 친구가 된 책... 강신주 선생님께 꼭 권해드리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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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지었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얼마전에 강호동이 가슴을 내밀면서 아빠니까라고 말하던 광고도 생각이 나구요(누군가에게는 아주 짜증나는 광고였을거라고 예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비열한 광고였다는 느낌도 드네요)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영화의 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영문제목인 LIKE A FATHER.LIKE A SON 이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버지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항상 비상했던 료타는 이번에도 빠르게 머리를 굴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가출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있었을 테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내의 상태를 고려할 때 자칫 두명의 아이를 전부 잃을 수 있는 가능성도 고려했을 겁니다. 때문에 확률적으로 자신의 품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케이타를 선택한건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끝에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아니면 류세이를 돌려보낸 게 진짜 부성인지도 모르지요. 류세이가 겪을 혼란을 피를 나눈 아버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런 가정의 모습은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나오는 군요 그 영화의 료타 역시 남의 아들을 키우고 료타의 아버지는 이 영화의 료타처럼 사람을 차별하는 캐릭입니다.(“역시 그랬었군이라는 대사를 떠올려 보세요) 그 영화에서 똑같이 할머니로 출연하는 배우는 네가 진짜 자식을 가지면 달라질거다라고 료타에게 말합니다.

저에게 느껴진 료타의 변화라면 영화속 료타 친구의 대사처럼 료타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하게 됐다일 겁니다. 어쩌면 료타는 자신의 아내조차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혼해야 한다는 필요성, 그에 걸맞는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해서 거기에 적합한 사람을 고른 건지도 모르지요 . 더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얻어왔던 료타는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서 거부받은 경험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그런 료타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상대는 자신과 가장 가까워야 할 아들입니다. 여기서 료타는 진짜 타자를 만나게 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왜 아들을 사랑할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영화 초반 료타는 케이타에게 더할나위 없이 자상한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케이타가 닮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 순간 케이타를 류세이와 바꿔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료타가 케이타에게 보여 준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 자기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료타는 케이타를 사랑한게 아니라 자신의 피를 받은 또다른 자기를 사랑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케이타가 타자로 드러난 순간 그를 버립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분신인 류세이가 자신을 거부하는 순간 타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아닐까요. 좀 묘한 상황인데, 료타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일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료타는 누군가에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을 겁니다. 그래서, 케이타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운 것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아버지라는 카테고리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자신밖에 모르던 사람이 타자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 관한 영화인지도 모릅니다.(“타자라는 표현 싫어하는데 자꾸 쓰게 되네요 단어에 너무 기름기가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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