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카이지> 완결됐나요? 예전에 씨네 21의 오은하 기자가(요새 다시 글을 쓰시던 것 같던데) “아카데미 외국어 만화상이 있으면 주고 싶다라고 말한 만화이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는 그림은 조악하지만 농담이 아니고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예리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조잡한 그림으로 그려진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려니 좀 묘하네요.

<은과 금>, <도박묵시록 카이지>, <무뢰전 카이>를 보면 조직이나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립하면서 독자적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캐릭이 주인공들입니다. 그 주인공들이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자본주의와 세상에 대해 개똥철학이라고 하기엔 무거운 통찰들을 쏟아냅니다. <카이지>는 영화로도 제작됐죠. 주연이 후지와라 다쓰야 였을 겁니다. <은과 금>에서는 삼류건달이 이런 대사를 내뱉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의란 편의야... 그런 건 당연하잖아....”

 

이 장면이 떠오른 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봤을 때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카메라가 의외로 조던 벨포트에게 친근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자기절제를 못하면 이렇게 X된다>라고 훈시하는 느낌이 없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벨포트는 감옥에서 테니스를 치고, 출소 후에는 자기계발강사로 살아가지요. 여기에 비참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관객이 벨포트의 삶이 비참하다고 느껴도 그는 그리 개의치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뼛속까지 상스럽고 천박하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캐릭들의 공통점은 천박함입니다. 스위스의 은행가부터 심지어는 엠마 이모까지 속으로는 fu..을 내뱉지요) 그는 정말로 자기 인생을 자기 식으로 산 겁니다. 마약과 섹스라는 쾌락을 좋아, 그 쾌락을 유지시켜주는 이라는 쾌락을 좋아서요

오히려 이런 점에서 그는 위선이나 기만이 없습니다. 심지어 아주 에너지틱하고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농구코트를 떠나지 못하는 마이클 조던처럼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도 대단합니다. 요즘 직장에서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지요. 상류층하면 번들로 나오는 우아함 혹은 위선이라는 이미지가 그에게는 없어요. 왜냐하면 그는 상류층이 아니라 늑대거든요. 영화에서 벨포트가 컨트리 클럽을 잘난 척 하는 부자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말할 때 그가 그 곳에서 국외자임이 드러납니다. 씨네21에서 지적한대로 그와 <좋은 친구들>은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라 늑대입니다. 왕이 될 만한 힘과 기득권은 없고, 근성하나만 가지고서 틈새시장에서 남은 고기를 사냥하는 늑대들이죠. 때문에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막판에 배신을 때리긴 하지만) 무리를 짓는 연대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필패의 정공법은 피하고 편법으로 승부를 걸지요.

 

제가 <은과 금>을 떠올린 건 이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매튜 맥너커히가 연기한 벨포트의 상사가 벨포트에게 장광설을 늘어 놓는데 요점은 협잡입니다. 좋게 말하면 영업이지만 까놓고 말하면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지요. 로스차일드에서 쫗겨난 후 벨포트는 이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오크몬트 어쩌구 하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근데 로스차일드에서 하는 협잡과 오크몬트 섬딩에서 하는 협잡이 차이가 있나요?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벌포트 같은 늑대들의 협잡을 정의의 이름으로 잡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미국이란 사회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협잡이란 이름으로 돌아가고 있고 정의는 힘있는 자들의 편의 같은 것 아닐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덴햄요원이 신문에서 벨포트의 체포기사를 보고 난 후 타고 있던 지하철의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혹자는 이 장면에서 권선징악의 안도감을 느끼겠지만 저는 오히려 쇼가 끝난 후의 공허감이 느껴졌습니다. 조던 벨포트는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라 늑대와

이리들의, 늑대나 이리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 마음 한구석에서 꿈꾸는 것들을 실현시켰으니까요. 근데 영화에서처럼 허구한 날 마약하고 섹스하면 지겹지 않을까요? ? 그렇게 해보지도 못한게 꼴값하지 말라구요?

 

P.S. 영화를 보는 내내 트레인스포팅을 보는 것 같았다. 스콜세지 감독님, 회춘하시나 봐요? 근데 디카프리오 이 새낀 왜 이리 연기를 잘 하는 거야 얼굴도 잘 생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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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루키적으로 밀어붙이면 유즈는 매춘을 한게 아니었을까?  오월의 메이처럼 혹은 태업감는 새의 아내처럼.. 돈이 목적은 아니고 무슨 정신분석학적이고 고상한 느낌도 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매춘이라는 소재는 하루키 소설에 꽤 등장하는 것 같다. 태업감는 새의 주인공의 유사 매춘 체험. 제목은 잊어버렸는데 태업감는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에 나오는 단편에는  주인공이 직접 여자를 사는 장면도 나온다. 물론 쿨하고 다정하다. 따지고 보면 노르웨이의 숲도 결국 그런 이야기 아닌가. 나가사와 말 마따나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못하니까 따른 여자와 해결하는 것,, 이건 일큐팔사에서 후쿠스케 머리가 여자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근데 일큐팔사는 그냥 끝난 거임? 예전에 지하철에서 일큐팔사4 광고를 봤는데 동일본 대지진 이후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음모론을 가동하자면 아마 출판계획이 잡혀있었던 일큐팔사4권이 대지진 이후로 하루키가 폐기해 버린거다. 상황이 바뀌어 버렸으니까..하긴 3권이 좀 유치하긴 했다. 내가 읽어본 하루키 작품 중에선 제일 유치했다. 따지고 보면 1,2권도 말이 너무 많았지. 암튼 에반게리온 마냥 신비전략은 여전하다. 태엽감는 새,해변의 카프카 부터 이런 스타일이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쫌 식상한 느낌도 들고 건성건성 읽게 된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과의 공감이 부족한 자족적인 사람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마지막 장면은 노르웨이의 숲의 전화장면과 겹친다)  그리고, 이 자기페이스대로만 사는 이 주인공의 모델은 분명 하루키 자신. (이 사람은 소설가 안됐으면 뭐 하면서 살았을까. 모르지 다방도 한 적 있긴 하지) 

 아무래도 하루키라는 작가는 현대라는 시대의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그러니까 공감지수가 높아지는 거겠지 이거 내 애기 아냐 하면서.

근데 거기서 더 나가지는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읽고 나면 알 수 없는 허망함 같은 게 느껴진다. 마치 멋진 구름위를 걷고 난 기분이랄까. 혹은 솜씨좋은 마술사의 공연을 보고 난 느낌이랄까. 마술 볼때는 좋았지만 끝나고 나면 현실은 그대로니. 

여튼 아저씨 그래도 저는 아저씨가 좋아요  옛날엔 정말 내 청춘의 책이었다니까요 지금은 좀 시큰둥해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그 정도 의미를 가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더군다나 아저씨는 바다 건너편에 사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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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1 - 사랑, 몸, 고독 편 강신주의 다상담 1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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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는 4번인가 갔었습니다. 처음 두 번은 사람에 치여서 문간에서 구경만 하다 돌아 갔구요. 나머지 두 번은 아예 10시쯤 가서 새벽 2시 쯤 돌아왔었습니다. 처음 끝까지 버틴 날, 상담 끝나고 사람들이 싸인을 받더라구요. 저는 멀끔 보다가 돌아와습니다. 강신주가 대단하더라도 뭐 저리 싸인까지 받아 하는 일종의 삐닥함같은게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담(종교와 죽음이었죠)에는 새벽4시까지 헬게이트에서 밤을 샜죠. 그 분이 너무 열심히 하기에 졸려도 중간에 나오기가 미안할 정도 였습니다. 정말 마지막이니 뿌리를 뽑겠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분, 그 순간에는 정말 진심이더라구요. 사실 진심을 대하는 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저는 졸음을 참아가며 끝까지 남아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진심을 보내면 받아 주고 싶어지니까요. 마지막엔 싸인하나 받아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바로 들어가시더군요.

 

다상담 서문에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더군요. 상담이 끝나면 외롭고 공허하다고. 사람들 마음을 채워 주려고 노력하시던 분이 오히려 외로웠다니... 좀 알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분이 외롭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었을텐데..외로움을 상담하시는 분의 외로움은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싸인 하나 받아둘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고하셨어요 강신주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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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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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너무 짧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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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이혜원 옮김 / 까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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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포조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 물론 저 따위가 르네상스시대의 인문학자와 같은 급이란게 아닙니다. 하지만, 포조가 처한 상황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를 언감생심 포조와 동일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굳이 제가 포조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를 들자면 포조가 무산계급출신이었다는 것, “호구지책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경멸하면서도 이 일 아니면 뭘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포조의 좌절감은 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포조가 교황청 바깥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 그 두려움은 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충분한 유산으로 평생 여유롭게 공부한 니콜리는 어떤가요. 사람의 삶이란 이처럼 다양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포조는 좀 얍삽한면이 있지 않았을까요.그래서, 교황청 안에서 정치를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겁도 많았을 것 같네요. 그래서, 돈을 1억만 모으면, 몇 년만 이 일을 더하면 하면서,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이것도 저랑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자는 이런 문장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실패한 인생의 전형이다라고요 하하.)

하지만, 제게 인상적인 것은 그 와중에서 포조가 책사냥에 열정을 불태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를 찾은 것이지요. “책사냥은 포조가 내면으로 도피할 수 있는 작은 화롯불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아마 바깥의 추위가 견딜 수 없어졌을 때 포조는 자신의 내면으로 도피해 그 화롯불을 쬐면서 몸을 녹였을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포조를 응원해주고 싶어지네요 비록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삶은 살지 못했지만, 자신이 속한 한계 속에서 끝까지 그와 비슷한 의미를 찾았다는 것. 계산적이었지만 때로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무대뽀로 나갈 때도 있었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버텼다라는 느낌으로 삶을 마감했다는 것 말입니다. (덤으로 늘그막에 젊은 아내까지 얻고 말이죠. 이것도 그럭저럭 결혼생활을 유지한 것 같네요. )

 

아마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포조는 좀 간교하다는 느낌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말한 이유 때문에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포조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참 진부한 표현이고 생각이지만, 저도 포조처럼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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