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명님의 서재 (가명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제는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4 Jul 2026 14:39:22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가명</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가명</description></image><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침묵을 짊어진 사람들 - [침묵을 짊어진 사람들 -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의 비밀을 찾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68308</link><pubDate>Wed, 01 Jul 2026 17: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683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4601&TPaperId=173683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98/93/coveroff/89357046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4601&TPaperId=173683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침묵을 짊어진 사람들 -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의 비밀을 찾아서</a><br/>갈리트 아틀라스 지음, 신동숙 옮김 / 정신세계사 / 2022년 12월<br/></td></tr></table><br/>정신분석이나 심리상담 사례를 케이스별로 소개하는 구성이라 현장감이 있고 몰입감이 있다. 쉬운 문장과 단순한 구성에다 챕터별로 내용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다. 후생유전학이란 분야가 있긴 하지만 예전에 조상의 트라우마가 대대로 유전된다는 것을 신비주의 비슷하게 풀어낸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 지그문트-안나 프로이트, 도날드 위니컷 같은 이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이 있고 그것은 부모와 가족관계의 정신역동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조상이 실패한 지점에서 조상과 자신을 동일시 하며 실패를 치유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한계를 가진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애도할 수 없게 한다. 결국 저자는 과거를 애도하고 미래로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작업과정과 사례 등을 참고해서 관련 분야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여튼 모두 알고 싶어한다. 자기 인생이 왜 요모양 요꼬라지인지 말이다. 치유라는 단어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98/93/cover150/8935704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6989302</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는 왜 일하는가 - [우리는 왜 일하는가 - 오너와 직원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8970</link><pubDate>Thu, 11 Jun 2026 16: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89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0430&TPaperId=173289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21/93/coveroff/89546504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0430&TPaperId=173289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왜 일하는가 - 오너와 직원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a><br/>배리 슈워츠 지음, 박수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03월<br/></td></tr></table><br/>오래 전 봤던 후루야 미노루 만화 &lt;두더지&gt;의 한 장면이다. “1억원 줄 테니까 똥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어요?” “5천만원에도 할 수 있어” “오오 반액으로~”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은 일터에서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센티브는 오히려 타인에 대한 헌신 같은 다른 미덕을 몰아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열거하는 좋은 일의 특징은 의미와 목적의식, 재량권, 도전가능성, 다양성, 계발 기회 등이다. 인간이 일터에서 만족으로 얻을 때는 소명의식과 신념, 의미가 있을 때다. “저 사람은 돈만 보고 일해”라는 말에는 분명히 평가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일하기 싫어하고 돈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이데올로기는 일에 대한 노동자의 재량권을 줄이고 관리자의 통제를 강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한 일터는 노동자가 돈만을 추구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처럼 작동하며 일이란 것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만든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자기충족적인 실현이다. 인간의 본성은 고정된 것으로 ‘발견’되기 보다 주변환경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발명’된다. 어떤 사회의 일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일은 원래 하기 싫은 것이고 인간은 돈만으로 움직이며 통제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라면 일터의 환경은 거기에 맞게 설계될 것이고 인간의 본성은 그러한 ‘믿음’대로 실현될 것이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결국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자못 비장한 70년대 느낌의 주장을 들으면 인간의 뇌(변연계, 신피질, 구피질 등) 가 수직통합되어 있다는 뇌과학 서적의 비유가 떠오른다. 욕망도 이렇게 수직통합되어 있는 거 아닐까. 마치 게임 스테이지 클리어하면 더 높은 빌런이 나오는 단계적 구성(의미같은 건 둘째치고 먹는 게 먼저야!) 이 아니고 의미추구와 단순한 생존욕구가 수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먹고사는 게 먼저지 무슨 의미 같은 배부를 소릴 하고 있어, 같은 주장은 그래서 넌센스다. 먹고사는 문제는 바로 의미추구의 문제로 연결될 것이다.  TED북스 시리즈라는데 테드 강연 듣고 났을 때처럼 왠지 긍정적인 기분이 든다.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알찬 내용으로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전달하며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모든 일은 다양성, 복잡성,기술 계발, 발전이라는 요소를 포함하도록 구성될 수 있다”라고 낙관적으로 말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렇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21/93/cover150/89546504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8219308</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우리는 왜 일하는가 - [우리는 왜 일하는가 - 오너와 직원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8780</link><pubDate>Thu, 11 Jun 2026 14: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87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0430&TPaperId=173287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21/93/coveroff/89546504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0430&TPaperId=173287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왜 일하는가 - 오너와 직원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a><br/>배리 슈워츠 지음, 박수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03월<br/></td></tr></table><br/>예전에  있었던  ‘시럽급여‘ 논쟁이 떠오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21/93/cover150/89546504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8219308</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삶으로서의 일 - [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7064</link><pubDate>Wed, 10 Jun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70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9343&TPaperId=173270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40/69/coveroff/89349893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9343&TPaperId=173270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a><br/>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06월<br/></td></tr></table><br/>직장 관련하여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들은 게 ‘투 트랙의 삶’이었다. 워라밸.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라고 말하던 경영학과 교수님이 생각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이 주장이 환상이고 기만이라는 것이다. 삶은 하나고 죽음은 확실하다. 복지천국이라는 북유럽에서 왜 일에 대한 불만족이 증가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환상이라는 것이다. 애플티비의 &lt;세브란스:단절&gt; 시리즈는 이 점을 비꼬는 것 아닐까?  비슷한 느낌으로 임금노동도 일종의 사기고 야바위 아닐까 싶다. 맑스이론에서 등장하는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같은 것도 일종의 가상의 게임같은 것 아닐까? 나는 내 노동력을 상품처럼 나의 몸에서 떼어내서 팔 수 없다. 나는 그냥 한 명의 인간이다. 내가 근무시간 동안 일터에 귀속될 때 나는 나의 노동력을 상품처럼 임금과 교환하는 게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갖다 바치는 것이다.&nbsp;&nbsp;결국 시간이다. 직장에서 일할 때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 하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정제사 마크처럼 뇌수술이라도 받지 않는 한 나는 한 명이고 결국 사라지는 건 돌아오지 않는 나의 시간이다. 저자의 결론은 자신의  ‘삶의 실존’과 일을 통합해야 하고 조직이 운영되는 기준도 이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생존 모드’에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미리 전제한다. 그렇게 따지면 ‘생존모드’에 있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긴 하다만, 죽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라는 게 저자의 충고다. 아리스토텔레스 느낌인데 행복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느낌의 분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감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지켜야 할 윤리나 미덕에 가까웠다. 저자는 ‘비일상’인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런데 의미란 제각기 다를 수 밖에 없으니 필요한 것은 자기성찰이고 자기만의 가치의 사다리를 정립하는 것이다.(이건 어째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를 떠올리게 한다.) 직장에서 할 일은 이러한 자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자기 존중’이라고 표현한다. 직장은 상하급자의 위계가 아니라 ‘상호윤리’에  입각한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치밀한 이론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일과 관련한 새로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중반부 ‘의미지수’가 등장하면서 경영학 이론서 비스끄레 나가는 게 걸리긴 하는데 (저자는 컨설팅 회사의 대표다.) 그래도 ‘꿈꿀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하는 책이다.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민간기업, 공공기관, 공무원 다 해봤다.)&nbsp; 내가 겪은 대한민국 직장은 유치한 군대고 '비열한 거리'다. 저자는 후반부에 이상적인 조직상을 제시하는데 ‘공상적 사회주의’ ?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믿거나 말거나 저자의 말은 ‘상호윤리’와 사랑에 입각한 조직이 결국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비판은 ‘워라밸’ 못지 않게 저자가 말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도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자기성찰’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처음에는 삶의 의미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스스로를 배신하는 경우는 없을까?&nbsp;어쨌거나 책에 등장하는 &lt;하버드 비즈니스 리뷰&gt; 연구에 따르면 커리어와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두 가지는 돈만을 좇아 직장을 택한 것과 때가 되었음을 알면서도 직장을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삼전 하이닉스 성과급 때문에 배아픈 사람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책이다.  <br>    &nbsp;  ps. 게오르그 짐멜이 &lt;대도시의 정신적 삶&gt;에서 도시화가 인간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한 것처럼 임금노동이 인간이 자신의 시간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40/69/cover150/89349893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2406930</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삶으로서의 일 - [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6701</link><pubDate>Wed, 10 Jun 2026 10: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267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9343&TPaperId=173267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40/69/coveroff/89349893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9343&TPaperId=173267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a><br/>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06월<br/></td></tr></table><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40/69/cover150/89349893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2406930</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삶으로서의 일 - [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18182</link><pubDate>Fri, 05 Jun 2026 1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181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9343&TPaperId=173181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40/69/coveroff/89349893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9343&TPaperId=173181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a><br/>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06월<br/></td></tr></table><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40/69/cover150/89349893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2406930</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전뇌적 삶 살기˝ -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 뇌가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00133</link><pubDate>Wed, 27 May 2026 17: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001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836711&TPaperId=173001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08/78/coveroff/k91283671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836711&TPaperId=173001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 뇌가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되었다</a><br/>질 볼트 테일러 지음, 진영인 옮김 / 윌북 / 2022년 03월<br/></td></tr></table><br/>‘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보다 더 강력한 언술이 있을까. 더군다나 하버드 대학에서 커리어 절정을 구가하던 신경해부학자의 증언이다. 뇌졸증에서 회복한 뇌과학자라니, 스티븐 나이바우어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신이 내린 우연 같은 느낌마저 든다. &lt;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gt; 에서도 뇌과학자가 신비주의자의 언어를 써서 경악했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우뇌를 설명하는 단어를 보면 역시 경악이 들어간 탄성을 지르게 된다. 조건없는 사랑, 우주적 의식의 일부 등등,, 이거 아니타 무르자니가 임사체험 후에 한 말이다. 임사체험이라는게 우뇌 의식으로 가는 거였나? 더 나아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브라흐만의 묘사이기도 하다. 자꾸 들으면 허황된 말도 혹시,하고 흔들리는데 이렇게 연이어 두들겨 맞으면 진짠가?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니타 무르자니야 인도인이었으니 평소의 문화적 배경이 환각으로 나타났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저자의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스켑틱’하게 해석할까? 하버드대에서 경력을 망친 과학자의 일탈? 저자는 뇌를 우반구, 좌반구, 각 반구를 두 개의 영역, 총 네 개의 캐릭터로 소개한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좌뇌(캐릭터 1,2) 는 개인적 정체성과 타인과 분리된 자의식을 나타내고 우뇌(캐릭터 3,4) 는 바탕에 깔린 무의식, 우주적 흐름과의 연결을 나타낸다. 일단 저자의 관점이 지극히 유물론적인 것은 맞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고통이 결국 뇌세포의 기능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건 신경회로망의 작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선택하고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일종의 스토아 철학 느낌의 마인드셋이 나온다.)  하지만, 우뇌(캐릭터 4)를 우주의식과 연결되는 생물학적 플랫폼 정도로 묘사하고,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우파니샤드 세계관에서는 구십도로 튄다. 오감으로 지각할 수 없는 우뇌의 대안적 현실은 좌뇌 성향의 선형적 (저자에 따르면 시간을 선형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좌뇌, 오로지 현재만 지각하는 것은 우뇌의 몫이다.) 실험으로는 증명할 수 없고, 좌뇌는 이를 거부할 것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학적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저자가 공들여 서술하는 것은 캐릭터 1,2,3,4의 특징이다. 독자는 자신의 4 캐릭터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권유받는데 나중에 등장하는 ‘두뇌회담’을 위해서다. (저자의 경우 각 캐릭터 이름은 헬렌, 애비, 피그펜, 여왕 두꺼비다.) ‘두뇌회담’은 현재 자신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차리고 각각의 캐릭터를 ‘팀’처럼 운용하며 삶의 순간에 대처하는 일종의 기법이다. 내용이 여기서 자기계발서 비스끄레 흘러가는데 명상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의 뇌과학 버전같은 느낌이다. 유용할 것 같긴 한데 불충분하게 기술된 것인지 저자의 두뇌회담 기법이 아주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아예 다이어트 프로그램처럼 패키지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자동화된 반응을 멈추고, 자신에게 감정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기법 같다. 그렇게 보면 정말 알아차림 명상의 뇌과학 버전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뇌과학 서적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융심리학과 캠밸의 영웅신화가 등장한다. 각 캐릭터를 융의 원형과 대비시키고(그러니까 융 심리학의 생물학적 기반이다.) 우뇌로 가는 것을 영웅신화의 영웅의 여정에 비유한다. 영웅신화에서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영웅의 귀환이다. 깨달음을 얻은 영웅은 다시 속세로 귀환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영웅은 속세와 단절한 채로 살 수도 있고, 속세와 자신의 깨달음을 조화시키며 주변과 연결을 유지할 수도 있다. 저자는 모든 캐릭터가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전뇌적’ 삶을 살고 균형을 유지하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두뇌회담은 속세로 돌아온 영웅이 살아가는 방법같기도 하다. 저자는 캐릭터 4의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캐릭터 1을 방문하는 식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자아가 먼지 한 톨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어째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느낌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08/78/cover150/k91283671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08780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거기에 덧붙임 ˝사랑은 하는 거지, 읽는게 아니에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96241</link><pubDate>Mon, 25 May 2026 16: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962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732442&TPaperId=17296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73/70/coveroff/k55273244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937138&TPaperId=17296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49/10/coveroff/k58293713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거기에 덧붙임 ˝사랑은 하는 거지, 읽는게 아니에요˝<br>              (AMORE 이탈리아식사랑 이야기  중)<br><br> <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149/10/cover150/k5829371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1491008</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 뇌가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87594</link><pubDate>Wed, 20 May 2026 1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875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836711&TPaperId=172875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08/78/coveroff/k91283671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836711&TPaperId=172875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 뇌가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되었다</a><br/>질 볼트 테일러 지음, 진영인 옮김 / 윌북 / 2022년 03월<br/></td></tr></table><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08/78/cover150/k91283671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08780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경계 - [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85708</link><pubDate>Tue, 19 May 2026 15: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857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3621&TPaperId=172857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5/10/coveroff/893570362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3621&TPaperId=172857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a><br/>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09월<br/></td></tr></table><br/>한바다 교수님도 잘 아시겠지만, 미국에서는 궁극의 차원까지 심리학 안에 다 담아보려고 나섰던 이가 켄 윌버ken Wile잖아요 일단 심리 치료나 상담 등 일반 심리학으로 건강한 에고를 만들고, 이후에 그보다 높은 차원의 요가 명상, 힌두 아드바이타Advaita, 선불교, 티베트 족첸Dzogchen 수련 등에서 다루는 초월적 추구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통합 이론을 전개했지요  &nbsp;  성해영 윌버 이전에 인간 무의식의 종교적 차원이 인간 삶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던 칼 융C.G.Jung 역시 학계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현대 학문은 합리성이나 과학의 개념에 입각해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강조하는 추세라, 영적이거나 종교적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제도나 학문 영역 밖으로 밀어냅니다. 가치중립적 객관성이라는 학문적 모토가 제일 먼저 거부하는 것이 종교성과 영성 같은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 심리의 초월적 차원을 강조하는 켄 윌버는 당연히 대학에서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nbsp;                  &lt; 다시 이어지다: 궁극의 욕망을 찾아서&gt;(한바다, 성해영, 김영사) 중  &nbsp;    나한테는 켄 윌버가 약간 근본 없다거나 비주류 느낌인데 아마 위의 글을 먼저 읽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마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나 했는데 영성이나 명상, 심리치료 쪽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얇은 분량으로도 각종 정신치료 기법과 논리를 담아내는 입문서이자 종합선물세트같은 책이다. ‘경계’가 인간문명의 본질이고 그것이 갈등과 투쟁, 소외와 불안을 가져온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이 있다. 내담자의 상태에 따라 융심리학부터 각종 정신치료 기법을 일별하는 모델을 제시하는데 간단하고 꽤 그럴듯하다. 예전에 바가와드 기타 강의 중에 ‘제자의 자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위빠사나 명상같은 해탈을 추구하는 것도 어느정도 자아가 구축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자아가 구축되지 않은 사람은 해탈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해탈할 자아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식이다. 저자의 모델로 이런 맥락인데 각 자아의 수준에 따라 거기에 걸맞는 정신치료 기법, 논리, 등을 제시한다. 아마 저자는 각종 정신치료 관련한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것들을 일별한 후 각종 기법들의 원리들을 추출하고, 비교하고 고찰해서 하나의 ‘정신치료 요법 지도’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간결한 전개와 쉬운 문장으로 각종 정신치료 기법의 맥을 짚어 주는 미덕이 있다. 영성 쪽 관심있는 사람은 시사점과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5/10/cover150/89357036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51097</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불교는 왜 진실인가 - [불교는 왜 진실인가 - 진화심리학으로 보는 불교의 명상과 깨달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64970</link><pubDate>Fri, 08 May 2026 17: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649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45656&TPaperId=172649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890/28/coveroff/899664565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45656&TPaperId=172649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교는 왜 진실인가 - 진화심리학으로 보는 불교의 명상과 깨달음</a><br/>로버트 라이트 지음, 이재석.김철호 옮김 / 마음친구 / 2019년 01월<br/></td></tr></table><br/>마이클 셔머가 &lt;천국의 발명&gt;(아르테)에서 에크하르트 톨레를 농담거리로 삼는 걸 보면 그는 평생 명상 수련회 같은 곳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불쌍하다. 같은 ‘스켑틱’이면서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명상 수련회에 참석해서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심리학의 전제는 이렇다. 자연선택은 유전자 전파를 위하여 인간이 ‘미망’을 가지도록 설계했다. 그 미망은 불교식 표현으로 ‘갈애’다. 인간은 쾌락을 과대평가하고 쳇바퀴 돌 듯 더 많은 쾌락을 요구한다. 고약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고려 사항이 유전자 전파 성공 여부이지 개체인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진화심리학 서적에서 흔히 예시되는 정크푸드 사례나 긍정 오류처럼 맹목적 설계인 자연설계는 현대와 같이 변화된 환경에서 오작동하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일쑤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이런 통찰을 얻었지만 삶의 고통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저자가 명상 수련회에 참가한 이유다. 아마 위빠사나 계열의 명상수련회에 참석한 것 같은데 저자가 어떤 체험을 했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비슷한 스켑틱이 쓴 명상체험기 &lt;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gt;(팀 파크스, 백년 후)를 떠올리게 되는데 ‘신비 체험’ 이후 저자가 ‘개종’하지 않고 여전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켑틱 특유의 지적이면서 삐딱한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도 닮았다. 덕분에 이 책도 &lt;가만히..&gt;처럼 매트릭스의 네오를 언급하는 첫 페이지부터 일사천리로 책장이 넘어가는 ‘쾌락독서’가 가능하다. 작가인 팀 파크스와는 달리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불교의 무아나 공 같은 교리와 자신의 명상체험을 진화심리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언어로 맛깔나게 설명한다. 불교의 권위자가 아니라서 저자의 불교 해석이 100%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저자의 불교 내공도 만만찮고, 명상가나 불교학자와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가설의 객관성을 담보한다. 재미있는 것은 무아를 설명하는 과정이 니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고정된 ‘나’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힘들의 투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에 묘사된 ‘모듈 이론’은 특정한 반응 회로가 뇌 속에 서로 경합하고 있으며 투쟁에서 승리한 모듈이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것인가, 초콜렛을 먹을 것인가를 의지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모듈 중 힘이 센 것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우리는 사후에 의지를 발휘한 척하는 것이다. (“오전에 고생했잖아, 오후에 일 많이 하려면 지금 먹어야지.”) ‘의식적 동기’가 아니라 ‘동기를 의식하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라는 비유를 드는데 우파니샤드 세계관이라 약간 소름이다. 그리고 이런 모델은 니체의 주장과 싱크로 100%다. 니체 공부할 때 이해가 안 됐는데 이 모델을 적용하면 이해가 간다. 마이클 싱어(상처받지 않은 영혼,라이팅 하우스)나 고엔카(고엔카의 위빠사나 명상,김영사) 라면 ‘모듈 이론’을 삼스카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뇌과학 책에 흔히 등장하는 가자니가의 분리뇌 실험은 무아를 설명하는 또 다른 근거다. 저자는 의식적 자아를 일종의 홍보대행사로 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가상의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 묘사하는 인간의 뇌는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 ‘느낌’으로 부호화된 자동화된 반응 회로 묶음이다. 마음챙김 명상은 이러한 자동화된 반응 회로를 약화시켜 왜곡된 편향을 줄이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발휘할 가능성을 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무아 체험을 내면적 무아체험과 외면적 무아 체험으로 나누는데 내면적 무아체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이 외면적 무아체험(모든 것은 하나다. 혹은 아트만이다.)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갈애는 대상과 나와의 거리라는 점에서 외부의 대상과 나와의 거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범아일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가 알기론 이게 힌두교와 불교의 오랜 대립(아트만이 있다 vs 없다)으로 알고 있는데 이걸 해석해 내는 저자가 왠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불교를 ‘세속적 불교’와 ‘형이상학적 불교’로 나눈다. 세속적 불교는 불교철학이나 불교 심리학같은 분야이고 형이상학적 불교는 카르마나 윤회, 환생을 다룬다. 저자는 당연히 세속적 불교 쪽인데 공 역시 매트릭스 세계 같은 극단적 관점보다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인 평가자이다. 인간은 어떤 사물을 ‘느낌’으로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한 다음에야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특정한 의미는 다른 의미 데이터베이스의 집합에서 나온다.( 이건 어째 라캉의 ‘상징계’ 느낌이다. 불교의 공이란 ‘실재계’의 다른 표현인가?) 문제는 실상과는 다른 이러한 ‘본질주의’가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유대인은 원래 그래” 같은거.. 요즘엔 반대인가?) 저자가 마음의 평화만 찾자고 명상을 하는게 아니다. 진화심리학으로 볼 때 자연선택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이기심과 미망은 인간을 결국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미망과 이기심은 역설적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불교는 현대 심리학이 나오기 이천년 전에 이미 인간이 처한 곤경을 놀랍도록 직접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며, 문제를 명료하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놓는다. 저자는 단세포생물에서 진화한 인류가 위기극복을 위해서 이제는 ‘상위인지혁명’로 공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밀한 학술서는 아니고 진화심리학과 불교를 깔끔하게 링크한 스케치에 가깝지만 저자의 명상체험이 곁들여지며 설득력을 가진다. 우리나라 같은 상황이라면 제목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에서 “형이상학적 불교”는 언급되지 않는다. (되려 불교 신자가 불쾌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자신을 ‘불교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열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혹은 열반이 진짜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한걸음씩 더 나은 삶을 향해 명상과 수행을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을 보면 ‘재가신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마이클 싱어나 고엔카의 저서, 고엔카 센터 같은 위빠사나 코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과학적 주석이다.  &nbsp;  ps. 마이클 싱어 저서에 줄창 등장하는 ‘내 머릿속 목소리’의 과학적 근거가 나온다..   &nbsp;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890/28/cover150/899664565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8902869</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홀로 - [홀로 -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57182</link><pubDate>Mon, 04 May 2026 17: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571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834898&TPaperId=172571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60/42/coveroff/k2328348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834898&TPaperId=172571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홀로 -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a><br/>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강명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3년 07월<br/></td></tr></table><br/>차라리 “우울증에 걸려서 고통스럽다.”라고 주변에 말하면 이해를 받을 것 같다. 그런데 “외로워서 고통스럽다.”라고 말하면 수치스러움과 민망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젊을 때는 그래도 연애시장에서 원나잇이든, 연애든 짝을 구할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어떻게든 삶의 빈틈을 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이런 기대를 깨트린 건 일단 코로나. 자신이 알던 친구들은 전부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고 저자는 혼자 남았다. 게다가 저자의 나이도 이젠 더 이상 자유롭게 연애시장에서 짝을 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며 삶을 완성하기에는 남아있는 시간 자체가 많질 않다. 두 가지 주요한 환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노력을 기울이면 어느 정도의 부유함은 누릴 수 있을 거라는 환상. 또 하나는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받을 거라는 환상이다. 이 두 가지 판타지가 보편적으로 실현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도 저자는 (아마도 나도) 이 판타지를 내면화하고 고통받는다. 더욱 고약한 것은 언젠가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잔인한 낙관’이 희망고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더 이상 가정을 이룬다는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의 ‘인생의 전환기’에 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것 같다. ‘홀로’ 사는 삶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선택하게 된 사람의 여러 감정선과 단상이다. 어쩌면 결국 이루지 못한 삶의 길을 애도하며 작별하고, 눈 앞의 현실을 수용하고 거기서 또 다른 배움을 얻는게 저자의 대안인 것 같다. 그래도 저자는 마지막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존버’다. &lt;어바웃 보이&gt;에서 혼자 사는 주인공이 남는 시간을 유닛으로 구분해서 이발소 가기에 2유닛, 당구치기에 1유닛하면서 공백을 버티는 장면이 있는데 이 책에도 주인공이 ‘혼자 사는 삶의 균형’을 위해서 여러 가지 기예를 발휘한다. (그 중에는 뜨개질도 있다.) 혼자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 참고할 만한 경험담들을 볼 수 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60/42/cover150/k2328348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0604292</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L.A. 컨피덴셜&amp;gt; (feat &amp;lt;트레이닝 데이&amp;gt;, &amp;lt;엔드 오브 왓치&amp;gt;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8310</link><pubDate>Sat, 25 Apr 2026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8310</guid><description><![CDATA[아마&nbsp;‘부패한&nbsp;LA&nbsp;경찰&nbsp;영화&nbsp;장르’가&nbsp;따로&nbsp;있지&nbsp;않을까.&nbsp;유명세만&nbsp;듣고&nbsp;수십년&nbsp;간&nbsp;보지않고&nbsp;묵혀둔&nbsp;영화&nbsp;중&nbsp;하나인&nbsp;&lt;L.A.&nbsp;컨피덴셜&gt;을&nbsp;보고&nbsp;든&nbsp;생각이다.&nbsp;어떤&nbsp;영화는&nbsp;수십년이&nbsp;지나도&nbsp;여전히&nbsp;세련된&nbsp;느낌을&nbsp;주는&nbsp;영화가&nbsp;있는데 - 예를&nbsp;들어&nbsp;왕가위의&nbsp;영화들 -&nbsp;아카데미상을&nbsp;받고&nbsp;당시&nbsp;꽤&nbsp;이름값이&nbsp;있었던&nbsp;이&nbsp;영화는&nbsp;이제&nbsp;낡은&nbsp;느낌이다.&nbsp;물론&nbsp;나쁘진&nbsp;않다.&nbsp;명배우들이&nbsp;전성기&nbsp;모습으로&nbsp;떼거지로&nbsp;나온다.&nbsp;성추문으로&nbsp;맛가기&nbsp;전의&nbsp;케빈&nbsp;스페이시,&nbsp;전형적인&nbsp;백인&nbsp;히어로&nbsp;필의&nbsp;가이&nbsp;피어스,&nbsp;&lt;글래디에이터&gt;의&nbsp;투박한&nbsp;느낌과는&nbsp;달리&nbsp;러셀&nbsp;크로우도&nbsp;쌩쌩하다.&nbsp;이들의&nbsp;연기도&nbsp;전부&nbsp;훌륭하지만&nbsp;뭐랄까,&nbsp;이들은&nbsp;롤플레잉&nbsp;게임의&nbsp;캐릭터들로&nbsp;보인다.&nbsp;마치&nbsp;감정과&nbsp;행동라인이&nbsp;정해진&nbsp;규칙대로&nbsp;자동진행되는&nbsp;것&nbsp;같은&nbsp;느낌인&nbsp;것이다.&nbsp;그&nbsp;게임의&nbsp;규칙은&nbsp;부풀린&nbsp;코트&nbsp;자락,&nbsp;힘이&nbsp;들어간&nbsp;어깨,&nbsp;담배를&nbsp;꼬나물고&nbsp;한판&nbsp;붙어볼까&nbsp;하는&nbsp;스테로이드&nbsp;뿜뿜하는&nbsp;남자들의&nbsp;세계다.&nbsp;여기서&nbsp;여자들은&nbsp;헐리우드&nbsp;배우를&nbsp;닮기&nbsp;위해&nbsp;성형&nbsp;수술하고&nbsp;‘아방궁’에서&nbsp;남자들을&nbsp;기다린다.&nbsp;당시&nbsp;영화평처럼&nbsp;‘LA는&nbsp;더&nbsp;이상&nbsp;천사들의&nbsp;도시가&nbsp;아니다.’&nbsp;‘밝고&nbsp;건전한&nbsp;도시&nbsp;이면에&nbsp;숨겨진&nbsp;범죄&nbsp;세계’&nbsp;같은&nbsp;&nbsp;컨셉으로&nbsp;충격을&nbsp;주고&nbsp;싶었겠지만,&nbsp;요즘&nbsp;기준으로&nbsp;보면&nbsp;흑막이&nbsp;대단한&nbsp;것도&nbsp;아니고&nbsp;나에게는&nbsp;오히려&nbsp;이들의&nbsp;행동들과&nbsp;번쩍이는&nbsp;조명,&nbsp;화려한&nbsp;크리스마스&nbsp;트리와&nbsp;파티,&nbsp;술집과&nbsp;자동차들,,,&nbsp;이런&nbsp;것들이&nbsp;‘좋았던&nbsp;옛날&nbsp;시절’&nbsp;같은&nbsp;느낌으로&nbsp;다가왔다.&nbsp;남자들은&nbsp;어깨를&nbsp;부풀리고,&nbsp;서로&nbsp;총질에다&nbsp;치고받고&nbsp;주먹질하고,&nbsp;잔뜩&nbsp;거들먹거리며&nbsp;매춘부에게&nbsp;순정을&nbsp;바친다.&nbsp;선과&nbsp;악도&nbsp;분명하고&nbsp;적도&nbsp;분명하다.&nbsp;왠지 흥분되고&nbsp;두근거리는&nbsp;사건&nbsp;사고가&nbsp;있을&nbsp;것&nbsp;같은&nbsp;LA라는&nbsp;닫힌&nbsp;세계에서&nbsp;마음껏&nbsp;스테로이드를&nbsp;발산하며&nbsp;‘어디,&nbsp;무슨일이&nbsp;있나,&nbsp;한번&nbsp;붙어볼까(살아볼까)’하는&nbsp;정서가&nbsp;느껴지는&nbsp;것이다.&nbsp;(어째&nbsp;우울할&nbsp;때&nbsp;보면&nbsp;도움이&nbsp;될&nbsp;것&nbsp;같다.)&nbsp;이&nbsp;영화에서&nbsp;FM&nbsp;경찰은&nbsp;한&nbsp;명도&nbsp;없다.&nbsp;어차피&nbsp;닳은&nbsp;요즘&nbsp;관객들은&nbsp;그런&nbsp;거&nbsp;기대하지&nbsp;않을&nbsp;거&nbsp;같은데&nbsp;전부&nbsp;조금씩&nbsp;편법을&nbsp;쓰던&nbsp;경찰들이&nbsp;마지막에&nbsp;정의감에&nbsp;불타&nbsp;힘을&nbsp;합쳐&nbsp;거악을&nbsp;처단한다는&nbsp;–&nbsp;이것도&nbsp;어째&nbsp;‘좋았던&nbsp;옛날&nbsp;시절’을&nbsp;떠올리게&nbsp;한다-&nbsp;스토리다.&nbsp;기억에&nbsp;남는게&nbsp;러셀&nbsp;크로우가&nbsp;현장에서&nbsp;무방비&nbsp;사태&nbsp;범인을&nbsp;체포하지&nbsp;않고&nbsp;죽인&nbsp;다음&nbsp;범인이&nbsp;먼저&nbsp;총을&nbsp;쏜&nbsp;것처럼&nbsp;조작하는&nbsp;장면이다.&nbsp;이거&nbsp;보니까&nbsp;&nbsp;알폰소&nbsp;쿠아론의&nbsp;&lt;트레이닝&nbsp;데이&gt;에서&nbsp;비슷한&nbsp;장면의&nbsp;덴젤&nbsp;워싱턴이&nbsp;떠올랐다.&nbsp;이것도&nbsp;LA&nbsp;경찰영환데&nbsp;헐리우드가&nbsp;있어서&nbsp;LAPD가&nbsp;이렇게&nbsp;인기가&nbsp;있는&nbsp;건가?&nbsp;&nbsp;&lt;스피드&gt;의&nbsp;잭&nbsp;트레븐도&nbsp;LAPD다.&nbsp;이&nbsp;영화나&nbsp;&lt;트레이닝&nbsp;데이&gt;가&nbsp;뭐&nbsp;LAPD의&nbsp;부패를&nbsp;고발하는&nbsp;영화는&nbsp;아닐&nbsp;테고,&nbsp;그래도&nbsp;&lt;LA&nbsp;컨피덴셜&gt;의&nbsp;업데이트판이&nbsp;&lt;트레이닝&nbsp;데이&gt;처럼&nbsp;느껴져서&nbsp;재밌다.&nbsp;아니&nbsp;요즘&nbsp;한참&nbsp;시끄러운&nbsp;박모&nbsp;검사&nbsp;사례를&nbsp;보면&nbsp;이들&nbsp;영화에&nbsp;지혜가&nbsp;담겨있는&nbsp;지도&nbsp;모른다.&nbsp;진실을&nbsp;보여주는데&nbsp;영화&nbsp;속&nbsp;얘기로&nbsp;치부하는&nbsp;관객이&nbsp;어리석은&nbsp;지도.&nbsp;<br>
&nbsp;혹시&nbsp;부패&nbsp;경찰들을&nbsp;보며&nbsp;마음이&nbsp;상했다면&nbsp;&lt;엔드&nbsp;오브&nbsp;왓치&gt;의&nbsp;두&nbsp;순찰&nbsp;경관으로&nbsp;마음을&nbsp;달래보자.&nbsp;뭐&nbsp;엄청&nbsp;재밌진&nbsp;않다.&nbsp;그래도&nbsp;머리를&nbsp;삭발하고&nbsp;경찰&nbsp;제복을&nbsp;입고&nbsp;총질하는&nbsp;제이크&nbsp;질렌할은&nbsp;폼이&nbsp;난다.&nbsp;형사하고&nbsp;순찰&nbsp;경관하고&nbsp;위계가&nbsp;있나?&nbsp;그러고&nbsp;보니&nbsp;&lt;트레이닝&nbsp;데이&gt;의&nbsp;에단&nbsp;호크도&nbsp;고속도로&nbsp;순찰하다&nbsp;마약반에&nbsp;들어가고&nbsp;싶어서&nbsp;하루동안&nbsp;트레이닝&nbsp;데이를&nbsp;받는다.&nbsp;13X13&nbsp;순찰차의&nbsp;‘짭새’느낌의&nbsp;2인조&nbsp;경찰과&nbsp;LA&nbsp;밤거리를&nbsp;순찰해&nbsp;보자.&nbsp;그들의&nbsp;뒤를&nbsp;받치는&nbsp;수천명의&nbsp;‘형제’들의&nbsp;동료애와&nbsp;함께.&nbsp;거리의&nbsp;‘쓰레기’들과&nbsp;한바탕&nbsp;총격전을&nbsp;벌인&nbsp;후에&nbsp;사격&nbsp;자세를&nbsp;취하며&nbsp;서로에게&nbsp;묻는다.&nbsp;“YOU&nbsp;GOOD?”,&nbsp;&nbsp;“GOOD&nbsp;GOO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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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기후위기의 시대  가짜엘리트의  시대다  초등학생 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3758</link><pubDate>Thu, 23 Apr 2026 10: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3758</guid><description><![CDATA[기후위기의 시대  가짜엘리트의  시대다  초등학생 자기 딸 검사 시킨다고-마치 지금 검사가 된 것 마냥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아조씨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의미의 역설’과 ‘보여주지 않기’의 역설 - &amp;lt;퍼스트 카우&amp;gt;(켈리 라이카트, 2019)</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52</link><pubDate>Tue, 14 Apr 2026 16: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3492430274&TPaperId=17216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58/coveroff/349243027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535612&TPaperId=17216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2/39/coveroff/s2426365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802939174&TPaperId=17216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23/35/coveroff/d80293917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스포일러 있음)<br>&lt;퍼스트 카우&gt;는 느린 미니멀리즘 연출로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켈리 라이카트가 우정을 주제로 연출한 서부극이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시작한 영화는 강변에서 산책하던 한 여성이 파묻혀 있는 두 구의 유골을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후 영화는 갑자기 서부 개척 시대로 소급하여 그 유골에 얽힌 사연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떠돌이 노동자 ‘쿠키’와 ‘킹 루’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유골이 놓인 자세로 눕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의 초입 부분과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며 끝난다. 블레이크의 격언과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이 영화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우정을 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인공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긴다. 감독은 우정이라는 주제를 위해 왜 ‘때깔이 좋지 않은’ 서부 개척 시대 떠돌이 노동자들을 선택했을까? 그들의 죽음을 생략한 갑작스러운 마무리는 어떻게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것일까?무의미에 의미는 있는가? 감동과 의미는 일관된 거대 서사나(외계인과 의기투합해서 우주를 구한다) 합리적 결론(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 사랑을 확인한다)에서만 도출되는 것일까? 무엇인가가 한 때 단지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미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존재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주는 의미라는 게 있을까? 예를 들어 &lt;미술관 옆 동물원&gt;(이정향, 1998)에서 결혼식장 촬영기사인 춘희(심은하 분)가 손홍민의 ‘찰칵’ 자세를 하면서 “이렇게 해서 바라보면 전부 의미가 있어 보여”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겨운 일상의 공간도 프레임 안에 넣고 시선을 보내면 영화적 공간처럼 의미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의 서사를 시간순으로 배치하지 않고 두 구의 유골이 산책하는 여성에 의해 우연히 발굴되는 설정으로 감독은 보이지 않던 것에 ‘찰칵’ 자세를 취한다. 침묵하던 이들은 목소리를 얻고 들어주는 이가 없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감독이 선택한 인물은 ‘지옥의 격언’에 어울리게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일거리를 찾아 대륙을 방황하고(킹 루는 ‘피라미드를 본 적도 있다’고 한다.) 부모는 출생 이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 게다가 쿠키는 우유를 훔치면서 소를 다독이는 장면에서 보여주듯 생존이 먼저인 서부 개척 시대에 걸맞지 않게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이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남쪽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호텔을 운영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요새’를 관리하는 장군이 소유한 소의 우유를 훔쳐 쿠키를 만들어 팔다 뜻밖의 대박을 터트리며 소의 주인인 장군에게까지 쿠키를 팔게 된다. 요새에는 소가 단 한 마리(퍼스트 카우)였기 때문에 우유를 훔쳤다는 사실이 들통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계속 절도 행각을 하다 장군에게 발각되고 추격을 피해 도망치게 된다. 감독은 4:3의 화면비로 두 주인공에게 시선을 모은다. 그들이 남루한 삶을 사는 만큼 화면을 채우는 것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카메라는 끈기 있고 진지하게 이들의 행동을 바라본다. 그 진지함이 등장인물의 죽음이라는 결말과 함께 이들이 ‘실존했다’라는 느낌과 ‘그리고 영원히 상실되었다’라는 느낌을 준다. 카메라가 이들에게만 진지한 게 아니다. 이들이 쿠키를 팔고 요새 안을 지날 때 카메라는 서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과 행동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때 단 몇 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행동은 이야기와는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카메라는 단순히 영화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 목적 외에도 이들을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대하며 그들만의 시간과 서사를 상상하게 한다. 만약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단순히 이들의 우정 때문만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이들 우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우정을 강조하기 위해선 우정 앞에 먼저 시련이 닥쳐야 하고 그 시련을 우정이 극적으로 극복하는 서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두 명이 재회하며 반가워하는, 과장 없이 연출된 장면이다. 만약 그들이 도주에 성공했다면, 호텔 운영에 성공했다면 둘의 우정이 언제까지 유지됐을까? 영화 초반 쿠키는 식량 부족 때문에 동료들에게서 구박받는 상황에서도 킹 루를 몰래 도와준다. 하지만 그 장면을 동료에게 들켰더라면 무리에서 서열이 낮아 보이는 쿠키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쿠키가 추격을 피해 도주하다 킹 루를 찾은 것이 우정 때문이었을까? 숨겨놓은 돈 때문이었을까? 관객들이 답을 찾기 전에 이들의 삶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끝나버린다.    &nbsp;  단편적인 것에 시선을   &nbsp;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서사는 아름답다.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 (기시 마사히코 ,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중)  &nbsp;  우리가 추억을 담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회한에 젖는 것은 그 순간의 유일무이성과 상실감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일회성과 유일무이성이 남루하고 단편적인 삶의 순간조차 감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이 서사는 하나의 완결된 우주가 되고 ‘한 때 존재했지만 영원히 더는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도리어 이들의 삶이 초라했기 때문에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들의 우정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도망치다 재회한 이들이 서로 반가워하는 장면은 더없이 안온하고 부드럽다. “자네가 떠난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서로를 얼싸안는 장면은 평생 떠돌이로 살았던 그들의 삶과 겹치며,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서로에게서 안식처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한때 그 순간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이 삶이 가치 있어 보이고, 다른 가치판단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처럼 어이없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킹 루는 “곧 떠날 거야”라고 말하며 쿠키의 옆에 눕지만, 관객은 그 말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들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는 등장인물을 보며 관객은 그들을 더 깊이 연민하며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nbsp;  무의미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보여주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곧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영원한 사라짐으로 향할 때 오는 감동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런 종류의 감동은 그것이 무의미하고 사소할수록 더 드러난다는 것이다. 피라미드나 ‘외계인과 합심하여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에는 자체 발광하는 의미와 영원의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착시다. 진실은 피라미드나 우주도 결국엔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다) 반면 두 명의 떠돌이 노동자의 삶은 사소하고 무의미했기 때문에 그 사라짐은 관객을 ‘직격’한다. 감독은 구체적인 ‘사라짐’의 장면을 생략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그 충격을 전달한다. 관객이 등장인물의 죽음을 상상하며 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완성’하는 순간 그들의 ‘실존’에 더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lt;퍼스트 카우&gt;는 ‘보여주기’의 예술인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기’라는 역설로 ‘무의미의 역설’을 전달하는 영화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23/35/cover150/d8029391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233587</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어프렌티스-트럼프의 탄생&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47</link><pubDate>Tue, 14 Apr 2026 1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4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472938342&TPaperId=17216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dvd_75cover.jpg" width="75" border="0"></a>&nbsp;<br/><br/>트럼프가 드디어 피같은 내 돈 3천원까지 쓰게 만들며 기어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이게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영화속 빌런 현실판 이란 말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 것이다.뭐 극영화니 신빙성이 있는지는 추가로 확인을 해야 하지만, 트럼프가 갑툭튀 괴물이 아니라 어떤 흐름 안에서 탄생한 인물이라는 설명은 상황을 납득하게 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트럼프를 만든게 로이 콘이라는 변호사라는 게 영화의 설명인데, 의외로 실존인물이고 이 사람 다큐도 볼 수 있다.&nbsp;  &nbsp;  첫째 공격,공격,공격해라.  &nbsp;  둘째 진실을 부인해라   &nbsp;  셋째 져도 이긴척 해라&nbsp;  &nbsp;  트럼프가 로이콘에게서 배운 원칙이다.&nbsp;  &nbsp;  트럼프타워나 코모도 호텔이 빈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결국 부자들이 트럼프를 더 부자로 만든 것이다. 어찌보면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이용해서 고객의 범위를 평민으로 늘려서 장사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판 대가가 돈이었다면 지금은 표로 바뀐 것이다.  영화가 만듦새가 떨어지지는 않지만, 엄청 재밌지는 않다. 그냥 트럼프 인생 서사를 차례로 늘어논 거라..   &nbsp;  마지막 인터뷰 장면은 지금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오버랩이 되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트럼프 빨리 엿먹어라..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19dvd_150cover.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81035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