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명님의 서재 (가명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제는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5 Sep 2026 13:34:27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가명</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가명</description></image><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옵세션&amp;gt;(feat「한공기의 사랑,아낌의 인문학」vs「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513233</link><pubDate>Sun, 13 Sep 2026 13: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5132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831756&TPaperId=17513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80/68/coveroff/k6628317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53892&TPaperId=17513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566/51/coveroff/895475389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스포일러 많음)<br><br>이 영화의 단점은 이미 주요장면이 유튜브 쇼츠로 펴져서 막상 본편을 봤을 때 감흥이 덜하다는 점이다. 아마 사전정보 없이 봤다면 충격은 훨씬 컸을 것이다. 거의없다와 이동진 리뷰를 봤는데 무난하고 정석적인 해석이었지만, 고양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니키가 베어에게 죽은 고양이를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니키가 주문에 빠진 뒤 첫마디가 “고양이가 죽었어”이다. 그리고, 베어 집에 들어온 후 처음 한 이상한 짓이 고양이 장례를 치른 것이다. 이후에도 고양이는 계속 등장하는데 한 밤의 침대장면에서 니키가 음산한 동작으로 꽃병을 들고 온 후 “샌디(고양이)거야”라고 말한다. 유튜브 쇼츠에 의하면 한 밤의 침대장면에서 니키의 움직임이 고양이의 움직임을 흉내 낸 거라고 한다. 그리고, 니키가 베어에게 이것봐, 하면서 과장된 미소를 짓는 장면이 있다. 눈을 일자로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한껏 위로 올리며 웃는데 이 표정은 어째 웃는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보면 곧바로 니키가 바닥에 실례를 하는 장면은 키우던 반려동물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지고, 영화 초반 베어가 고양이가 죽은 바닥을 열나게 닦는 장면과 대응된다. 결정적으로 니키는 베어의 샌드위치에 죽은 고양이 다리를 끼워 놓는다. 그리고, 결말에서 베어가 고양이가 죽은 것과 같은 방법으로 죽는 것이다. 왜 자꾸 영화 초반 죽은 베어의 고양이가 등장할까? 단순히 충격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머리를 굴린 후 내린 결론은 혹시 베어가 고양이를 일부러 죽인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 베어의 고양이는 실수로 베어의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보인다. 이후 베어는 약뚜껑을 닫아서 벽장에 넣는다. 하지만, 고양이가 돌려서 닫는 약뚜껑을 스스로 열고 약을 먹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베어는 침대에 앉아 통곡하지만, 혹시 이건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처분'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영화에서 베어의 성격이 모순적, 내지는 기만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니키는 은연중에 이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베어는 니키가 프리키하게 변한 이후 니키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소원을 취소하려고 하고,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는 니키에게 “지금 행복한 거 맞지?”하고 물으며 사랑의 진정성과 상대방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같다.(베어가 니키를 진짜 사랑하는지에 대한 지표다.) 하지만,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돌아온 니키가 “죽여달라”고 애원할 때 –고객센터에서 소름끼치는 니키의 비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어의 대답은 “내가 그렇게 싫어?”이다. 이 때 베어는 평범하고 소심한 찌질남이 아니고 잔인하다.&nbsp;핑크핑크한 고백연습장면과는 달리 처음부터 베어가 니키를 진짜 사랑한게 아니었다는 게 드러나는 것이, 이동진이 지적한 것처럼 베어가 사랑을 고백하려는 상대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손짓 하나, 한숨 하나에도 귀가 쫑긋해지는 법이다.) 초반에 알콩달콩하던 니키의 사랑이 광기로 변하는 것은 베어가 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 아닐까. 오히려 베어는 글을 쓰려는 니키보다 음악을 하겠다는 새라와 쌓아온 과거와 공감대가 더 눈에 띈다. (베어는 니키와 기타를 치면서 논다.&nbsp;베어가 광분하는 것은 새라가 죽은 다음이다.) 마지막에 베어는 자살하지만 니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아수라장에서 도피하는 것에 가깝다. 니키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속인 것처럼 베어가 실은 고양이를 죽여놓고 잔인한 자신을 기만한 것 아닐까. 영화 초반 이언은 베어에게 고백연습을 시키며 타박을 놓는다. 하지만,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진짜 사랑으로 발전했거나 인생의 경험이 됐을 텐데....  사랑받는게 짜릿한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자유'를 거세한 베어의 소원은 과녁을 빗나간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이다.&nbsp;리뷰도 그렇고 대체로 여론은 베어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것 같다. 베어를 위해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 나바레티같은 여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뿌리깊은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은 그런 판타지도 동시에 만족시켜주기 때문 아닐까. 뭐 나만 그런건가. &lt;헤어질 결심&gt; 보고는 탕웨이 같은 여자한테서 저 정도로 사랑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하고 생각했으니. 마지막으로 베어에게 주는 충고.   &nbsp;    &nbsp;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살고 싶다는 의지가 어디서 오는지 보는 것이다. 달리 말해, 왜  죽지 않고 고통의 세계에 몸을 더 맡기려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아끼고 돌볼 것이, 내가 없으면 삶이 더 힘들 무언가가, 한마디로 눈에 밟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먹이를 주어야 할 금붕어와 반려견이 눈에 밟혀야 한다.혹은 햇볕의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줘야 하는 화초가 마음에 들어와야 한다.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의지에 있어 결정적이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가 화초를 키우고, 텃밭을 일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낀다는 것은 무척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을 묵직하게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옥상 난간 너머로 몸을 던지지 않게 만든다. 아껴야 할 것이 있고 사랑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이렇게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gt; 중 (강신주,EBS BOOKS)  &nbsp;    &nbsp;    &nbsp;   서둘러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사랑받는 것은 감정이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는 것은 기껏해야 칭찬이나 편리함일 뿐이고, 종종 원치 않는 의무이며, 최악의 경우 부담이자 저주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사랑받는 것이 중요하다.<br>&nbsp; &nbsp;&lt;&nbsp;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 사랑을 이해하는 철학적 가이드북&gt;(로버트 솔로몬,이명호 옮김, 로도스)&nbsp;  &nbsp;  <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566/51/cover150/89547538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566517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랑과 관계는 틀리다(feat. 레이먼드 카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502801</link><pubDate>Tue, 08 Sep 2026 14: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50280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7239&TPaperId=175028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4/49/coveroff/898281723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831756&TPaperId=175028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80/68/coveroff/k66283175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사랑과 관계를 명료하게 구분하고, 사랑은 경험이고 관계는 (마음과 함께) 사랑이 발견하는 매개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다.사랑은 감정적 과정이다. 이 과정은 불확실한 사랑의 초창기의 특징을 이루는 광란과 절망으로 가득 찬 단계일 수도 있고, 함께 보낸 지 몇 년이 흐른 뒤 찾아오는 고요한 위안일 수도 있다. 관계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관계는 삶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삶(또는 삶의 일부)의 이점을 함께 누리는 사회적 배치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을 찾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관계를 찾고 있으며, 사랑과 함께 나타나는 감정적 트라우마로 인해 매우 불행하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비하하기 위해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능력이 없거나“ 기꺼이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편안하고 유익한 관계를 원하며, 사랑을 미처 경험하지 못했으면서도 종종 꽤 만족하고 흥분을 즐기면서도 욕망에서 가정으로 곧장 옮겨간다. 이들은 사랑이 요구하는 자기 변형과 트라우마를 원하지 않으며, 간혹 연애에 필요한 자기성찰적 고민에도 관심이 없다. .......연애보다 극적인 측면은 부족하더라도 괜찮은 결혼생활이 연애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애 없는 섹스와 결혼은 생각하지도 말라고 배웠으며, 실제로 "의미 있는 관계"는 "사랑에 기초한 관계"를 가리킨다. 그러나 존중, 상호 존중, 즐거움, 동료애, 훌륭하고 멋진 섹스와 대화, 신뢰, 정직, 친밀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반드시 사랑에 기초한 관계가 아닐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도 우리는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nbsp;   &lt;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랑을 이해하는 철학적 가이드북&gt;(로버트 c. 솔로몬, 이명호 옮김, 오도스) P120~  &nbsp;<br>멜은 얘기를 중단하고 술을 마셨다."당신들은 열여덟 달을 함께했고 서로 사랑하고 있지. 얼굴에 씌어 있어요. 사랑으로 광채가 나니까. 하지만 당신들은 서로 만나기 전에 각자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 당신들은 우리처럼 전에 결혼을 한 적이 있지. 그리고 그전에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을 수 있어. 테리와 나는 함께한 지 오 년이 되었고, 결혼한 지 사 년이 되었지. 그런데 끔찍한 건, 정말 끔찍한 건, 한편으로는 좋기도 한 건데, 우리를 구원할 어떤 은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 만약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바로 내일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상대,&nbsp;그러니까 다른 한쪽은 한동안 슬퍼하다가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곧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그러면 이 모든 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든 사랑이 그냥 추억이 되겠지. 어쩌면 추억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내 말이 틀렸나? 근거가 없나? 내 말이 틀렸다면 바로잡아봐. 난 알고 싶어. 내 말은,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인정하는 바일세.""멜, 맙소사."테리가 말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았다."취해요. 여보? 취했어요?”  &nbsp;&nbsp;"나는 그의 입 구멍에 귀를 대곤 했어. 그는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눈 구멍을 통해 볼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절망했어. 그게 자기를 상심하게 한다고 했지. 상상할 수 있어? 그는 머리를 돌려 자기 마누라를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아팠던 거야."멜은 테이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말하려는 것 때문에 고개를 내저었다."내 말은, 그 늙은이가 망할 놈의 마누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는 거야."우리는 모두 멜을 바라보았다."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알겠어?"그가 말했다.   &nbsp;    &lt;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gt;(레이먼드 카버, 정영문 옮김.문학동네)<br>  <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80/68/cover150/k6628317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1806862</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랑 예찬 - [사랑 예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78692</link><pubDate>Sat, 29 Aug 2026 1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786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213&TPaperId=174786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36/69/coveroff/89644502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213&TPaperId=174786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 예찬</a><br/>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br/></td></tr></table><br/>말랑말랑한 제목과 달리 어렵다. 저자가 알랭 바디우라니 예상했어야 했나. 데이트앱 미틱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는 걸 보면 저자가 ‘구름위의 철학자’는 아닌 것 같다. 사랑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말하는 부분도 상식적이다. 하나는 사랑이 성이라는 생리적 현상과 관련한 환상이라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종교적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담 형식인 책의 내용이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번역도 약간 어색한데 그것보다 원문 자체가 너무 고상해서 그런가. 저자는 사랑을 ‘둘이 되는 경험’이라고 한다. 아마 ‘정체성의 공유’같은 느낌일까. 둘이 융화되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며 벌이는 끝없이 운동같은 느낌이다.저자는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주장의 뉘앙스가 느껴질 거 같으면서도 책의 문장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고상하게 말하는게 꼭 철학인건지. 아마 저자의 기존의 철학개념에서 이 사랑관이 도출되어 나왔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안전한 사랑’을 말하는 데이트앱을 저자가 비판하는 이유는 사랑은 모험이자 시련이고 고통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데이트앱이 사랑을 제한된 쾌락으로 격하시켰다고 비판한다. ‘사랑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에 관한 책을 몇권 읽어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사랑에서 떠올리는 행복 이미지와 달리 사랑은 고통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은 자신(약간 기름진 단어로 ‘에고’)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삶을 익숙하지 않게 바꾸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관은 흡사 종교적인 해탈의 느낌이 든다.&nbsp;그럼 왜 사랑을 해야 할까? 강신주라면 그것이 삶의 의미라고 말할테지만.&nbsp;저자는 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성이 공허하기 때문에 우리는 젊을 때 그것을 반복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끝낸다. 그것으로 마무리하기에 성이란 에너지는 훨씬 더 강력하고 조명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뭐 한 번 도전해 본다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추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36/69/cover150/89644502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36699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아직 늦지 않았다 - [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세이초, 반생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75553</link><pubDate>Thu, 27 Aug 2026 18: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755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6430&TPaperId=174755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18/6/coveroff/89769664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6430&TPaperId=174755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세이초, 반생의 기록</a><br/>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9년 10월<br/></td></tr></table><br/> ‘남자의 일생‘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숨겨진 욕망은 탈출이었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418/6/cover150/89769664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4180670</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학교에서 내가 배웠어야 했던 것(&amp;lt;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amp;gt;vs&amp;lt;차별감정의 철학&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67073</link><pubDate>Sun, 23 Aug 2026 16: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670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9715&TPaperId=174670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840/39/coveroff/895561971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039422&TPaperId=174670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08/27/coveroff/k49203942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한편으로는,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손해를 많이 보면서 이런 걸 전혀 알려주지 않은 부모님을 점점 원망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처세술은 사회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야망을 가져야 한다고 격려하는 대신 참고 견디라고만 가르치셨다. 옳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모든 사람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데다 사회는 그들을 벌주고 나를 칭찬하는게 아니라 그들을 칭찬하고 나를 벌주었다."<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gt;(후안옌, 월북)&nbsp; p234.<br>"이러한 현실적 교육을 한층 진보시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앞서 말한'왕따의 권력구조'를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을 제안한다. 현실 사회는 권력구조로 점철되어 있고, 너희는 이미 그 사실을 깨닫고 무의식적으로 예행연습을 하고 있노라고,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다느니 기본적 인권이라느니 하는 입바른 소리는 그저 이념에 불과하며(이념적으로는 훌륭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동떨어진 아수라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내 몸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가해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열 살쯤 먹었으면 이런 가혹한 권력관계는 알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교실에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양, 혹은 타파해야 하는 악인 양 동화같은 이야기만 읊어대니, 아이들이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lt;차별감정의 철학&gt;(나카지마 요시미치,바다출판사.)&nbsp; p60<br>이 글을 읽으면 왜 이 모 전 장관이 헌재 증언에서 "단전 단수를 적은 쪽지를 머어어얼리서 봤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를까.&nbsp;<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08/27/cover150/k49203942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08274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어떻게 해야 했을까&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48808</link><pubDate>Thu, 13 Aug 2026 16: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48808</guid><description><![CDATA[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처럼 허망하고 서글픈 질문이라니. 한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의 모습을 하나의 영상 안에 담아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을 관찰한 느낌이다. 저 영상 안의 인물은 한 때 숨을 쉬고 실존했다가 이제는 영원히 사라졌다.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으며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비열하게 생각하면 어이없이 끝나버린 영화속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인간의 삶이란 저렇게 허망한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겸허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nbsp;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점을 우주로 올려서 삶을 관조하게 하거나 불교의 ‘백골관’ 비슷한 효과인 것 같다. 부모가 누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 단 한 가지 이유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발병했을 때는 의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당시의 조현병 치료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80년대 누나가 발병했을 때는 아마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추측대로 자식이 조현병 환자라는 것이 창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적응’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 나는 그 가족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거기에 대해 섣부른 추측을 하는 것은 그 가족에게 실례가 될 것이지만, 감독이 영화를 공개한 이상 이런 상황도 감수하리라고 본다. 감독이 촬영을 위해 본가를 방문했을 때 부모가 누나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였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의외로 누나의 행동이 폭력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누나가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입원을 시켰을 텐데, 아마 두 노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발병만 했던 것일까. 차라리 누나의 입장에서는 폭력이라도 썼어야 했던 것일까. 사랑으로 뭉친 가족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가족 역시 서로를 도구적으로 대한다는 게 진실일 수 있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를 떠올려 보자.&nbsp;자식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해야 ‘쓸모’가 있고, 부모는 얼마 이상을 벌어서 무엇을 해줘야 ‘자격’이 된다. 서로를 도구적으로 대할 때 가족 구성원이 정말로 어떤 상태인지-진부한 말로 행복한지는- 논외의 대상이다. 가부장 가정에서 자주 있는 일인 것 같은데 가족구성원에게 문제가 있어도 가장은 우리 집에는 아무 문제 없어, 하는 식으로 문제를 덮어버린다. 가장의 그런 침묵은 그 구성원에게 "말하지 마"라는 은연중의 압박이 된다.&nbsp;가족 구성원의 속은 썩어들어가든 말든 마치 그런 일은 없다는 듯 평화로운 침묵이 가정을 덮는다.예전 마약방지 캠페인에서 나온 대사처럼 너만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편안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네가 가장 중요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가족구성원은 이중명령같은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다.(즉 시키는 대로 한다.) 그렇게 이 가족은 누나의 인생과는 상관없이 상황에 적응을 한 것은 아닐까. 어머니가 밖에 나가지 않고 누나와 장기간 집 안에서 칩거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머니가 누나를 돌본 것이 아니라 누나가 오히려 어머니의 공백을 메우는 상황은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딸을 그렇게 방치한 것은 어머니의 판단이었고 나는 따랐을 뿐이라는 아버지의 답변은 진실일 수도 있고 면피일 수도 있다. 조현병이 발병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국가고시와 의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사망했을 때 ‘딸과 함께 쓴 논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의학 연구자’라는 모델에 이 가족이 병적으로 집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러고 보니 집 안에 고가의 실험기기가 있을 정도다.) 의대를 가기 위해 4번이나 도전해야 했던 딸은 발병하자 점술이라는 정반대의 벡터에 빠져들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우리 인생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다.          ]]></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 [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42988</link><pubDate>Mon, 10 Aug 2026 16: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429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733490&TPaperId=174429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46/39/coveroff/k8227334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733490&TPaperId=174429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a><br/>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07월<br/></td></tr></table><br/>일본의 ‘로망 포르노’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엄청 수위가 높은 건 아니지만(오히려 &lt;불량공주 모모코&gt;같은 느낌이 난다.) 일본 특유(?)의 엽기적인 느낌이 난다. 오승호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 흡인력과 속도는 엄청나다. 저자가 감독 지망생이었다는데 영화 연출하듯 소설을 쓰는 것 같다. 하루키가 ‘펄프 픽션’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승호 소설에서는 성이나 배설같은 자극적이거나 근친상간같은 반사회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느낌이 난다. &lt;폭탄&gt;과 &lt;스완&gt;에서는 무차별 테러, 묻지마 살인을 자세히 묘사하고, &lt;라이언 블루&gt;는 기존의 느와르와는 다른 ‘반칙’ 느낌의 경찰관들의 범죄다. (경찰소설이라는 출판사의 광고에 속지 마라.) &lt;로스트&gt;는 초반의 고문 장면을 보고 흥미를 잃었다. 이 책도 표현의 수위를 넘어서 설정 자체가 엽기다. 소설에서 나오는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결정하느냐”식의 주인공의 대사는 오승호 본인의 질문일 것이다. 아사이 료의 &lt;정욕&gt;의 테마와 비슷한 취지의 주장이다. 단 이런 대사를 SM소설에 심취한 4차원인 주인공이 하는 것은 ‘무리데쓰요’이지 않을까. 취향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겠지만 난 아니다. 취침시간을 어겨가며 이 책을 읽은 다음 빡쳐서 ‘오승호 소설 내가 또 읽으면 개다. ’라고 생각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46/39/cover150/k8227334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5463927</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32131</link><pubDate>Tue, 04 Aug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321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53892&TPaperId=174321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566/51/coveroff/89547538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753892&TPaperId=174321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a><br/>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07월<br/></td></tr></table><br/>불교 철학 및 여러 가지 교양을 곁들여 사랑의 실천을 권유하는 책이다. 책의 전반부는 사랑의 필요성이다. 삶은 고통이고(일체개고) 모든 것은 무상하다.(제법무아). 저자는 무상을 제대로 관찰할 때 사랑과 자비가 나온다고 한다. 나의 내부를 들여다봐도 ‘참나’같은 것은 없고(무아)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져 그 고통을 줄이려는 의지가 사랑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필요한 딱 한 공기의 사랑만을 주는 ‘부의 사랑법’ 이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하는 걸까. 저자가 스피노자의 예를 들 듯 사랑을 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가 행복해서다. 저자는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이 우리 삶의 의지에 결정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느낌이다.(저자는 이것을 아낀다는 말로 표현한다.) 무작정 희생하는 것도 안 된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폐를 끼치는 폭력의 세계에서 최소한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한없이 예민해져야 한다. 상대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것은 끝없는 수행에 가깝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고통이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 강신주가 말하는 사랑의 마법이다.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 내게로 가져오는 일을 행복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랑이 가능하겠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삶의 의지와 의미를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상대를 아끼는 것-에서 찾는다는 점이 짚이는 대목이다. 책의 후반부는 사랑을 하는 방법론이다. 강신주의 평소 지론대로 주체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평소의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라는 호칭대로 사랑과 자유를 등치시킨다. 자유가 없다면 아낌도,기쁨도, 유쾌함도,당당함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유로운 두 존재가 서로를 온전히 마주보고 서로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저자가 그리는 사랑의 초상이다. 드는 의문은 책에서 강신주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말라고,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런 주장은 우리가 인문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예찬”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스피노자식대로 표현하면 그 만남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쁨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의지’로 변환되는 걸까.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상대방을 나에게 묶어두기 위해서’, 즉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인데 이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과 충돌하는 것 아닐까. 이런 사랑관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것 아닐까.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랑’은 결국 비현실적인 피안의 사랑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 완전히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랑을 이상화하는 순간 결국 불완전한 지상의 모든 관계를 폄하하게 되지 않을까. ‘아끼는 사람을 반려동물 보듯 하라’는 충고는(반려동물에게서 댓가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덧붙이자면 맨날 주인을 물고 짖어대는 우리집 포메라니안을 나는 사랑하지는 않는다. 강신주가 말하는 대로 아껴주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실전연애’의 답은 없지만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있다. 기존의 강신주 책처럼 여러 가지 소화하기 쉬운 철학, 종교 관련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착수처’라고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실천안이 각 장 마지막마다 실려 있다. 기억나는 것은 ‘무상을 느끼기 위해 어제와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라’,‘주인이 되기 위해 하루 세 가지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내자’ 등이다. 애지중지하는 대상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 삶을 기쁨으로 물들이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삶을 활기차게 한다고 한다. 어쩌면 사랑은 자신을 잃는 해탈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단어로 말하면 헌신이다. 내가 찾은 사랑의 대가들이 말하는 공통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566/51/cover150/89547538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566517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환상: 어느 마지못한 메시아의 모험 - [환상: 어느 마지못한 메시아의 모험 - 《갈매기의 꿈》 이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30179</link><pubDate>Mon, 03 Aug 2026 1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301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838027&TPaperId=174301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58/91/coveroff/k4728380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838027&TPaperId=174301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환상: 어느 마지못한 메시아의 모험 - 《갈매기의 꿈》 이후</a><br/>리처드 바크 지음, 신인수 옮김 / 온마음 / 2022년 08월<br/></td></tr></table><br/>리처드 바크가 쓴 뉴에이지풍 소설. 오래전 조지 번즈가 주연한 &lt;오 하느님&gt; 이라는 영화가 히트한 적이 있는데 그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단 &lt;오 하느님&gt;의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라 세계를 영화에 비교하는 ‘우파니샤드 세계관’에 가깝다. 얇은 분량에 쉬운 문장, 위트가 곁들여져 머리를 식히는데 딱이다. 답답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지쳤다면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는 책.]]></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58/91/cover150/k4728380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589163</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올 어바웃 러브 - [올 어바웃 러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23593</link><pubDate>Fri, 31 Jul 2026 12: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235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04221&TPaperId=174235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47/80/coveroff/89626042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04221&TPaperId=174235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올 어바웃 러브</a><br/>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br/></td></tr></table><br/>“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사랑을 구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초반에 나오는 이 문장을 독자에게 설득시키는 게 책 전체의 내용이다. 떼를 쓰듯 애정을 갈구하고 어린 시절의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를 보는 것은 유치한 짓이고, 사랑은 본능적이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단 저자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영성을 이야기하고 신이 사랑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저자의 사랑관은 스캇 펙에서 빌린 것인데,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의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다. 몇 가지 버전으로 번역해보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것”, “자신의 삶의 의지와 다른 사람의 삶의 의지를 증가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원을 투자하는 것” 정도 될까. 현실적인 면도 있다. 저자가 페미니스트인 만큼 사랑을 대하는 남녀의 성차나 이러한 성차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저자가 가장 꺼려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허무주의와 사랑이 권력관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가장 짚이는 점은 에리히 프롬을 인용하며 사랑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 선택, 의지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사랑이란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할 때 생기는 정서적인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나 폴링 인 러브하는 신비한 것이 아니라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 가는 구체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말하는 취지 같고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한가지 드는 의문은 그럼 나는 왜 굳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걸까? 감정을 과연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감정을 나 자신이라고(뭐 명상에서는 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생각하지 않나. 과연 행동이-어떤 면에서는 ‘사랑하는 척하기’다- 어디까지 본질적인 감정을 만들 어 낼 수 있을까. 저자의 사랑관을 읽다 보면 어려운 고전 클래식을 듣거나 예술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뭔가 고매하다는 느낌은 나는데 그걸 이해하고 즐기는 안목을 얻으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가 일반적인 만남과 영혼의 만남을 구분하는 대목은 특히 그렇다. 일반적인 만남은 우리가 흔히 아는 연애관계다. 반면 영혼의 만남은 상대방의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통찰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사랑이 의지라는 저자의 앞의 주장과는 모순되는 느낌이다.) 영혼의 만남도 오래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파트너가 떠나가더라도 사랑의 힘을 통해 자기 자신을 계속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육체적인 쾌락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남자들은 성적으로 끌리는 여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섹스만을 파트너와 공유하고 나머지는 일이나 우정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쾌락은 사랑하는 관계를 이어주는 접착제 구실은 하지만 쾌락만으로 사랑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사랑은 육체적인 쾌락이 없어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또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는 말이겠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묘사는 사랑을 피안의 ‘순수한’ 위치로 격상시키는 플라톤주의 같은 느낌이 든다. 피안의 완벽한 사랑은 불완전한 지상의 삶을 폄하할 것이다. 오래전 영화 &lt;파이란&gt; 영화평에서 ‘사랑은 살덩어리로 하는 것’같은(부정적인 비평이었다.) 문장을 본 게 기억난다. &lt;광수생각&gt;을 인용하자면 서플없는 DVD도 영화에 굶주린 사람에게는 구원일 것이다. 저자는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영혼의 성장을 열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째 저자에게 사랑은 자아를 벗어나는 해탈의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lt; 바가와드 기타 강의&gt;(김영,북튜브)에는 수행의 방법 중 하나인 ‘신애의 요가’가 나온다. 쉽게 말하면 신에 대한 사랑으로 해탈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이 책의 사랑관에서 오히려 이런 신애의 요가가 연상된다. 이 책을 두 번 읽은 나는 초반의 문장에 설득되었는가? 나는 과연 어디까지 자기를 헌신할 수 있을까? 나중에 감정이 돌아선 후 초반의 약속 때문에 민망해하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 나는 과연 남에게 줄 만큼의 자원과 에너지를 갖고 있을까? 뭐 &lt; Born in the U.S.A.&gt; 가사 주인공같은 삶에서 에너지는 무슨. 따뜻하고 사려깊은 문장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책이지만 성미 급한 사람은 저자의 ‘돌려말하기 화법’이 답답할 수 있다. 당장 시린 옆구리와 답답한 연애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사람보다 사람을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47/80/cover150/89626042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478005</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거리로 나온 넷우익 -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07368</link><pubDate>Thu, 23 Jul 2026 1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073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181X&TPaperId=174073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8/79/coveroff/896437181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181X&TPaperId=174073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a><br/>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05월<br/></td></tr></table><br/>이미 절판되었고 이제는 인터넷에 재특회 근황도 검색되지 않지만, 여전히 시의성을 가지는 책이 아닐까 한다. 재특회의 메커니즘과 혐오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선인 혐오는 얼마 전 한국의 중국인 혐오로 리바이벌됐다. 이 책의 미덕은 재특회를 괴물같은 타자로 그리지 않고 저자 역시 재특회와 공유점이 있다는 것을 성찰하고 있다는 점, 재특회가 일본사회의 예외가 아니라 그 바탕에는 ‘선량한’ 전체 일본 사람들의 불만과 혐오가 깔려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재특회 대표 사쿠라이 마코토의 어린시절부터 시위에 참가하는 재특회 회원들과 맨투맨 취재를 하며 이들의 초상을 그려냈다. 이들은 일본의 정통우익으로부터 ‘행동하는 SNS’. ‘인스턴트 운동’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현실과 인터넷의 경계가 없이 인터넷 정체성을 그대로 현실로 가져온다. 인터넷을 통해 조직되었으며 참가자들도 인터넷으로만 모든 정보를 얻고 시위에 참가하기 때문에 ‘사상이나 논리가 부족하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따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의견이 편협하고 그래서 ‘죽여’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한다. 저자는 재특회의 주장을 하나하나 분석하는데 이들의 논리는 전부 ‘일부 발췌’다 . 맥락과 배경을 떼어내고 일부만을 가져와 과장한다. 참가자들의 특징은 대부분 현실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위협받고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아이덴티티인 ‘애국’을 중심에 놓고 자신들을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피해자의 위치에 놓으며 도덕적 우월감을 누린다. 이 때 ‘재일코리안’은 일본 사회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일종의 ‘오브제’처럼 변해버린다. 불만의 해방구가 꼭 재일코리안이 아니라 뭐든지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수십년 전 보수언론이 눈,비가 와도 전부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사명감으로 끝까지 시위를 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게 아니라  키보드 워리어처럼 시위를 자신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을 쓴다. 저자가 시위를 보면서 ‘재밌겠다’고 느낄 정도다. 당연히 저자가 만난 한명 한명의 회원들은 ‘풀뿌리 운동가’이고 ‘선량’하다. 집회 현장에서 험악한 말을 쏟아내면서도 진심으로 자신이 ‘깨어 있다’고 느끼고 정의감에 불탄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 나오는 우익과 좌익, 혹은 보수와 진보의 역전현상이다. 예전에는 혁명과 반역이 진보의 특징이었다면 이제는 보수의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후 민주주의체제가 자리잡은 일본에서 좌익은 지키려고 하지만 보수는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불만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것은 지키는게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다. 보수가 훨씬 자극적이고 재미있고 파괴력이 있다.  하급노동자들이 하시모토 도루 같은 우익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스벅 가야지’라는 조롱은 분명 학생들에게 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메커니즘이 다른 혐오 현상에도 유효할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필력 때문인지 여전히 재미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8/79/cover150/896437181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87978</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03682</link><pubDate>Tue, 21 Jul 2026 13: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4036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181X&TPaperId=174036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8/79/coveroff/896437181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7181X&TPaperId=174036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a><br/>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05월<br/></td></tr></table><br/>13년 전 책이지만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8/79/cover150/896437181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87978</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원한 소년의 정신-하루키 읽는 법 - [영원한 소년의 정신 - 하루키 읽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98301</link><pubDate>Sat, 18 Jul 2026 1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98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732553&TPaperId=17398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11/22/coveroff/k0727325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732553&TPaperId=17398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원한 소년의 정신 - 하루키 읽는 법</a><br/>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21년 06월<br/></td></tr></table><br/>과문한 탓인지 침묵의 카르텔인지 국내에서 하루키를 비평한 책이 의외로 없지 않을까. 몇 번 평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견강부회’라는 느낌이 강했다. 반면 이 책은 하루키 독자라면 그래 나도 느꼈어, 하고 통쾌해 할 수 있는 책이다. 어려운 문학이론이나 난해한 문장 없이 쉽지만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 카프카라는 렌즈를 끌어와서 교양이라는 측면에서도 풍성하다. 오래전에 한국 문학계에 신인 작가들의 하루키 표절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 보다. 그런거 보면 작품의 질을 떠나서 하루키가 대단한 것 같다. 뭐 개인적으로는 ‘청춘 3부작’이 그냥 자기애의 표현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지만. 하루키를 제대로 읽으려면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을 눈여겨 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예시가 하루키가 쓴 재즈에세이다. 하루키 독자라면 그렇게 하루키월드가 확장되어 가는 것도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환영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하루키 소설의 핵심이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문장을 본거 같은데 이 책에 비슷한 개념은 나오지만 같은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이게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이다’라는 문장이었나. 어쨌든 이 책에서 말하는 하루키 문학의 핵심키워드는 ‘책임’과 ‘사랑’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11/22/cover150/k0727325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11228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폭탄 - [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98262</link><pubDate>Sat, 18 Jul 2026 1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982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833791&TPaperId=17398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08/27/coveroff/s8721370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833791&TPaperId=173982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a><br/>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05월<br/></td></tr></table><br/>(약간의 스포일러)동명의 영화가 있어서 원작의 존재를 알게 됐다. 23년 일본 미스터리 대상을 휩쓸었다는데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휴일 아침부터 가끔 딴 짓하면서  본 게 저녁까지 무리없이 읽었다. 그러면서도 ‘질린다’거나 ‘책만 읽으니 머리가 후끈거린다’는 느낌이 없는 걸 보니 분명 웰메이드 추리소설이다. 영화로 치면 관객이 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관객을 요리한다는 느낌이랄까, 이야기가 빈틈없이 꽉꽉 채워져 있다. 문장은 당연히 쉽고 책장은 훨훨 넘어간다. 하지만, 결말이 약간 고구마랄까. 헐리우드식 엔딩에 익숙하다면 분명 불만족이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결말의 반전도 뒷통수를 친다는 느낌보다 미야베 미유키 추리소설같은 ‘사회파 장르’가 떠오른다. 저자가 재일교포 3세라는데 아주 칙칙한 편견과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일본사회의 소수자로서 받은 차별과 배제(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다.)에 대한 보복으로 이 소설에서 일본 사회에 폭탄을 투척한 거 아닐까. 범죄자도 당신의 연대에 끼워주느냐는 범인의 대사에서 일본 특유의 철통같은 울타리에서 배제된 사람의 느낌이 난다. 영화는&nbsp; 결말을 어떻게 각색했을까? 아마 원작대로라면 흥행에서 마이너스가 될 텐데.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08/27/cover150/s8721370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08275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93166</link><pubDate>Wed, 15 Jul 2026 14: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931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7713&TPaperId=173931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126/75/coveroff/897275771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7713&TPaperId=173931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직업으로서의 소설가</a><br/>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04월<br/></td></tr></table><br/>‘데이브 힐턴의 2루타’처럼 소설가 지망생을 약 오르게 하는 게 있을까. 낭만적인 성공스토리를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걸 보면 ‘신의 점지’를 받은 ‘선택받은 사람’이 마치 ‘남들은 다 집이 다섯 채인데 저는 두 채 밖에 없어요’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 되새기게 되는 것이 지금 일본 문학의 주류같은 하루키가 실제로는 상당 기간 비주류였고 마이너였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하루키를 대하는 국내 반응도 ‘재는 소설가라기 보다 문화상품이야’  정도 였던 것 같다. 하지만, 소설 쓰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야말로 ‘어깨뽕’ 없이 문학을 향해 직구 승부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작품을 문학이 아니라 ‘팬시 상품’정도 취급을 해도 짜증이 날 정도로 마이페이스를 지키는 ‘하루키 스타일’은 어깨한번 으쓱하고 말 것이다. 음 여기에 나오는 소설가의 방식들을 곧장 소설가 지망생들이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뭐 이건 ‘선택받은 사람’이야기니까 그 뒤편에 이렇게 하다 수없이 실패한 지망생들이 있겠지. 지망생 입장에서는 하루키가 털어놓는 한숨과 고충조차 부러울 것이다. 먼 북소리, 슬픈 외국어,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모두 좋아하는 에세이이고 이 책은 기존 스타일의 결정판 같은 느낌이다. 하루키 특유의 경쾌한 유머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126/75/cover150/897275771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1267538</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빅매직 - [빅매직 - 두려움을 넘어 창조적으로 사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89663</link><pubDate>Mon, 13 Jul 2026 17: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896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4962&TPaperId=173896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848/84/coveroff/89374349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4962&TPaperId=173896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빅매직 - 두려움을 넘어 창조적으로 사는 법</a><br/>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2월<br/></td></tr></table><br/>지금 청년들 중에 ‘불안하고 가난하지만 창작혼에 불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있을까. 예전에는 이런 초상들이 그래도 약간의 존경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냥 찐따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에게 창작은 경이로운 황홀이자, 자기 초월이고 자신의 존재 이유이다. 그 초월을 위해 대체 자신의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창작의 불확실성, 우발성은 ‘내가 창작자다.’라는 정체성조차 위협한다. 다른 직업에도 성공 여부는 갈릴 수 있지만 그 성공 여부가 보통 정체성까지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창작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변호하는데조차 훈련이 필요하다.(저자의 방법은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자신이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매일 나는 **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 &lt;이끼&gt;의 김태호씨가 강의 중에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허영만 선생같은 대가도 새로운 신작을 할 때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지금껏 성공해 왔다고 다음 신작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암울함과는 별도로 이 책은 한없이 가볍고 발랄하다. 아이디어가 정령처럼 자신의 숙주를 찾아 작가들 사이를 떠돈다는 발상도 재미있다. &lt;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gt;를 읽지는 않았지만 이럴게 글질을 잘 하는지는 몰랐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를 양산하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창조적 삶을 격려한다. 마치 명견 래시가 드넓은 평원에서 활기차게 양떼를 돌보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책장이 발랄하고 쉽게 넘어간다. 저자가 말하는 창작자와 창조성과의 관계는 우아한 파티에서 만난 연인과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를 신뢰하고 헌신하여야 하며 인내하여야 한다. 예의를 갖추고 자신을 꾸밀 줄도 알아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연인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다그치는 건 금물이다. 창조성에게 경제적 성공을 기대하지 말고 본인이 창조성을 부양하라는 얘기다. 당연히 창작한답시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빚 내가며 비싼 돈을 들여 예술학교에 가는 것은 금물이다. 예술은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지만 삶을 빛내는 보석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창작을 하면서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목에 힘이 들어간 열정 대신 호기심으로 자신의 창조력을 진전시키라고 충고한다. (쉽게 말해 본인에게 재밌는 것을 찾아 그냥 그걸 하라는 얘기다.) 전제는 당신안의 보물은 발견되고 현현하기를, 당신이 “예스”라고 말하길 기다리고 있으며 당신의 본질 자체가 창조성이라는 것이다. 비단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저자가 말하는 예술관이나 창작 태도를 보면 니체가 말하는, 천진난만하게 유희의 정신으로 영원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어린 아이의 비유가 떠오른다. 용기를 가지고 그 모든 비평꾼들의 입방아와 실패에도 신경쓰지 않고 “그렇다면 한번 더”를 외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자신의 삶을 향해 풍덩 뛰어드는 것. 예술가의 삶에 관심이 없더라도 저자의 입담 덕에 그냥 재미로라도 몇 번 더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의 고뇌를 내적인 고뇌와 외적인 고뇌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내적인 고뇌는 창작과정에서 나오는 좌절감과 실망이다. 저자는 창작과정에서 좌절하는 것은 창작과정의 일부이고, 그것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사랑이 그 정도였다는 뜻이라고 한다. 외적인 고뇌라면 결국 돈이고 성공이다. 저자가 내세우는 비장의 무기는 외부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는 일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비평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고 각자 제 갈 길이 바쁘다. 당신은 그냥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하면 된다. 읽고 나면 ‘즐거움 지상주의’ 같은 느낌이 든다. 뇌과학적(?) 비유를 들자면 저자가 드는 창작의 장애물은 전부 ‘좌뇌적’인 느낌이다. 마이클 싱어가 명상 서적에서 말하는 쉴새없이 품평하고 비교하고 떠들어대는 목소리말이다. 저자가 하는 격려는 그 목소리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면 저자가 창조의 즐거움을 묘사할 때 드는 ‘초월’이라는 단어는 ‘우뇌적’이다. 창작자의 기쁨이 마치 명상가가 자신의 자의식을 잊어버리고 열반의 기쁨에 드는 것같은 느낌이다.      &nbsp;   딴지를 하나 걸자면 저자야 글쓰기에서 소명과 ‘사랑’을 찾아서 그것에 헌신하는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이한 일 아닐까? 자신만의 꿈이나 목표를 찾으라는 말이 텅 빈 말이라는게 이미 최근의 동향 아닌가.(예를 들어 &lt;행복하게 일하는 연습&gt;(코이케 류노스케,랜덤 하우스), &lt;인생 반 내려놓기&gt;(나카지마 요시미치,21세기북스)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lt;올 어바웃 러브&gt;(벨 훅스,책읽는 수요일) 인생에서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라, 라고 진행시킬 수는 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또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과정에서 얻는 만족감이 너무 커서 결과는 말 그대로 무시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머리로 상상은 돼도 체감은 되질 않는다. 오히려 그 정도로 몰입감과 만족감을 주는 일 자체를 찾기 힘든 것 아닐까. 생업을 유지하며 불륜상대를 만날 시간을 내듯 창작할 시간을 내라는데 말이 쉽지, 그건 창작의 씨앗이 짓밟히는 것 아닐까. 생업에 치여 창작자의 길을 결국 포기한 사람에게 네가 포기한 건 어차피 그 정도의 재능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가혹한 것 아닐까. 예전에 고독사한 영화감독이 떠오른다. 어쨌든 내 안의 창조성의 정령이 나를 기다린다는 저자의 ‘망상’이(우리 모두는 각자의 망상 속에 산다는 저자의 말) 진실이기를. 유일하게 맘에 안 드는 것은 &lt;씨크릿&gt;류의 책을 연상시키는 북디자인.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848/84/cover150/89374349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8488414</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불교의 탄생 - [불교의 탄생 - 불교 성립 이전부터 붓다 입멸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80787</link><pubDate>Wed, 08 Jul 2026 17: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807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794411&TPaperId=173807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366/63/coveroff/89747944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794411&TPaperId=173807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교의 탄생 - 불교 성립 이전부터 붓다 입멸까지</a><br/>미야모토 케이이치 지음, 한상희 옮김 / 불광출판사 / 2018년 08월<br/></td></tr></table><br/>불교학에 문외한이라 일본에서 저자의 학문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의 불교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일본 불교학계의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불교 그 자체만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은 ‘불교 지상주의’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이 이미 승려이거나 불교신자라고 하는데 두 번째 관점은 일종의 비교 연구의 관점으로 불교와 당시 인도의 ‘외도’사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두 번째 관점이 합리적일 듯 한데 90년대 중반에 쓰여진 이 책에는 저자가 지지하는 두 번째 관점이 래디컬하다는 암시가 있는 것 같다. 불교를 윤회나 업 같은 종교적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철학이나 사상사적인 면으로만 조망할 수 있는데 이 책은 후자 쪽이다. 저자의 태도는 시종 ‘환상과 신비주의’를 버리라는 식이다. 대승불교가 지나친 선정(禪定)주의로 사마디를 신비화 신격화 했다는 것이다. 빤야 즉 지혜는 사마디와 원리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선정에 드는 것은 재능이 있는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꼭 모든 축구선수가 메시처럼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다수는 선정을 신비화하고 열반을 신격화했다는 것이다. 육사외도와 우파니샤드를 설명하는 책의 전반부만 내용이 거칠고 붓다의 생애와 불교의 성립과정을 서술하는 나머지 부분은 아무런 부담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붓다의 생애이지만 저자만의 해석이 가미되면서 새로운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라훌라는 늦게 낳은 것이 석존이 성관계에 혐오감을 가졌기 때문이라든지, 박정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출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장에는 왠지 돌직구 같은 느낌이 있다. 이후 불교의 발전은 ‘방편의 비대화’라고 저자는 대승불교에 날을 세운다. 방편이 목표를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리는 석존의 초상은 실용적 허무주의자다. 실용적이라는 의미는 어차피 의미없는 세상, 계율에 엄격하지 않고 도움이 되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게 석존의 태도였다는 주장이고, 허무주의라는 주장은 석존이 죽음과 허무주의를 지향했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생존욕구의 범위안에 있는 질문을 석존에게 묻는 것은 연목구어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허무주의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들리는데 고엔카10일코스에서 늘상 듣는 말이 평정심과 아니짜(무상)이다. 한번은 모든 것이 아니짜고 평정심을 지켜야 한다면 희노애락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답변인 즉슨 희노애락이 사라지는 대신 자비희사가 듭니다.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허무주의의 설명에서 끝나고 내가 들었던 자비희사에 대한 언급이 없어 읽고 나면 글자 그대로 허무해진다. 삶은 살 가치가 없고 죽음을 기다리는게 최고라는 것이 석존의 원시불교의 가르침이라는데 힘이 빠지지 않겠는가. 저자 입장에서는 이것이 환상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할테지만 말이다.   &nbsp;  ps. 고엔카 코스에서는 정화라는 말을 쓴다.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갈애’ 라는 것은 마치 콜라를 마시고 싶은 욕구같은 것 아닐까. 내 눈 앞에 마개를 막 딴 차가운 콜라병이 김을 풍기면서 있는 것이다. 이 때 내 마음에 드는 욕구는 단순히 물을 마실 때의 욕구와 다른 느낌일 것이다. 이런 욕구에서 벗어날 때, 긴장에서 벗어날 때 오는 청정한 마음 같이 있지 않을까. 저자가 그린 붓다의 초상이 사람을 힘빠지게 하는 것이라 아쉬운 느낌이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366/63/cover150/89747944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366635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행복하게 일하는 연습 - [행복하게 일하는 연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79028</link><pubDate>Tue, 07 Jul 2026 1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790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3125&TPaperId=173790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5/90/coveroff/89255431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3125&TPaperId=173790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행복하게 일하는 연습</a><br/>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6월<br/></td></tr></table><br/>일을 번뇌의 대상이 아니라 수행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충고. “머리만 헛돈다”라고 라는 문장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구체적인 행동은 없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분별판단만 하면서 머릿속 스토리는 점점 자가증식을 하고 감정과 불만도 자가발전한다. 명상 서적에 종종 등장하는 ‘머릿속 감옥에 갇힌다’라는 표현은 자기만의 에고와 생각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느낌을 준다. 저자의 해법은 “마음과 몸이 완전히 일치해 맞물려 움직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점점 충실감을 맛볼 수 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일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일에 대한 불만으로 허황된 목표를 세우고 구름속에 있기 보다 당장의 눈 앞의 현실에 충실할 때 오히려 삶이 변화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다.&nbsp;약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명상일반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는데 모든 것을 ‘자기책임’으로 자기잘못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사회구조의 잘못은 없을까?  저자는 ‘가혹한 근무환경에 책임이 크다’라는 한 문장으로 끝낸다. 물론 잘못된 환경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관점이 궁극적으로 주체적인 자유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또하나 짚고 싶은 것은 근무시간에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음과 신체를 일치시키는 알아차림을 하는 게 생각외로 쉽지 않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그건 아나빠나 사티를 해보면 안다. 눈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도 한 두 호흡을 넘기지 못하는데 심지어 일하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며 매 순간 '현존'하는 것 자체가 만만찮은 수행 내공을 필요로 한다는게 내 짐작이다.&nbsp;저자의 주장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에게 솔직하고, 지금 여기 이순간에 현전하며 일에 임하라’정도가 될 것 같다. 뭐 그러면 많은 일도 거뜬히 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해법이 너무 나이브하다는 느낌도 들 수 있지만 읽고 나면 스님이 쓴 책 답게 평온함과 낙관적인 기분을 주는 미덕이 있다. “우리는 ‘마음의 작용’과 그를 통해서 나오는 ‘언어’, 나아가 ‘신체의 움직임’, 이 세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되고 이 때문에 더욱 큰 번뇌가 생겨 괴로워진다. ”...“내가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언어의 내용 중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어디선가 읽었던 것을 생각 없이 주절거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내 자신의 체험 속에서 끌어내서 확실하게 실감했던 것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고 미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이 신체와 언어와 완전히 일치해 있는 상태여야만 우리는 최고의 충실감을 약속받을 수 있다.(p149)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95/90/cover150/89255431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59020</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침묵을 짊어진 사람들 - [침묵을 짊어진 사람들 -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의 비밀을 찾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68308</link><pubDate>Wed, 01 Jul 2026 17: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3683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4601&TPaperId=173683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98/93/coveroff/89357046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4601&TPaperId=173683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침묵을 짊어진 사람들 -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의 비밀을 찾아서</a><br/>갈리트 아틀라스 지음, 신동숙 옮김 / 정신세계사 / 2022년 12월<br/></td></tr></table><br/>정신분석이나 심리상담 사례를 케이스별로 소개하는 구성이라 현장감이 있고 몰입감이 있다. 쉬운 문장과 단순한 구성에다 챕터별로 내용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독성이 좋다. 후생유전학이란 분야가 있긴 하지만 예전에 조상의 트라우마가 대대로 유전된다는 것을 신비주의 비슷하게 풀어낸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 지그문트-안나 프로이트, 도날드 위니컷 같은 이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이 있고 그것은 부모와 가족관계의 정신역동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조상이 실패한 지점에서 조상과 자신을 동일시 하며 실패를 치유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한계를 가진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애도할 수 없게 한다. 결국 저자는 과거를 애도하고 미래로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작업과정과 사례 등을 참고해서 관련 분야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여튼 모두 알고 싶어한다. 자기 인생이 왜 요모양 요꼬라지인지 말이다. 치유라는 단어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98/93/cover150/8935704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698930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