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명님의 서재 (가명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제는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9 Apr 2026 15:22:07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가명</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가명</description></image><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L.A. 컨피덴셜&amp;gt; (feat &amp;lt;트레이닝 데이&amp;gt;, &amp;lt;엔드 오브 왓치&amp;gt;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8310</link><pubDate>Sat, 25 Apr 2026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831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34766296&TPaperId=17238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dvd_75cover.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402939006&TPaperId=17238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dvd_75cover.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54135958&TPaperId=17238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dvd_75cover.jpg" width="75" border="0"></a>&nbsp;<br/><br/>아마 ‘부패한 LA 경찰 영화 장르’가 따로 있지 않을까. 유명세만 듣고 수십년 간 보지않고 묵혀둔 영화 중 하나인 &lt;L.A. 컨피덴셜&gt;을 보고 든 생각이다. 어떤 영화는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세련된 느낌을 주는 영화가 있는데&nbsp;-&nbsp;예를 들어 왕가위의 영화들&nbsp;- 아카데미상을 받고 당시 꽤 이름값이 있었던 이 영화는 이제 낡은 느낌이다. 물론 나쁘진 않다. 명배우들이 전성기 모습으로 떼거지로 나온다. 성추문으로 맛가기 전의 케빈 스페이시, 전형적인 백인 히어로 필의 가이 피어스, &lt;글래디에이터&gt;의 투박한 느낌과는 달리 러셀 크로우도 쌩쌩하다. 이들의 연기도 전부 훌륭하지만 뭐랄까, 이들은 롤플레잉 게임의 캐릭터들로 보인다. 마치 감정과 행동라인이 정해진 규칙대로 자동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 게임의 규칙은 부풀린 코트 자락, 힘이 들어간 어깨, 담배를 꼬나물고 한판 붙어볼까 하는 스테로이드 뿜뿜하는 남자들의 세계다. 여기서 여자들은 헐리우드 배우를 닮기 위해 성형 수술하고 ‘아방궁’에서 남자들을 기다린다. 당시 영화평처럼 ‘LA는 더 이상 천사들의 도시가 아니다.’ ‘밝고 건전한 도시 이면에 숨겨진 범죄 세계’ 같은  컨셉으로 충격을 주고 싶었겠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흑막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오히려 이들의 행동들과 번쩍이는 조명,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파티, 술집과 자동차들,,, 이런 것들이 ‘좋았던 옛날 시절’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남자들은 어깨를 부풀리고, 서로 총질에다 치고받고 주먹질하고, 잔뜩 거들먹거리며 매춘부에게 순정을 바친다. 선과 악도 분명하고 적도 분명하다. 왠지&nbsp;흥분되고 두근거리는 사건 사고가 있을 것 같은 LA라는 닫힌 세계에서 마음껏 스테로이드를 발산하며 ‘어디, 무슨일이 있나, 한번 붙어볼까(살아볼까)’하는 정서가 느껴지는 것이다. (어째 우울할 때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영화에서 FM 경찰은 한 명도 없다. 어차피 닳은 요즘 관객들은 그런 거 기대하지 않을 거 같은데 전부 조금씩 편법을 쓰던 경찰들이 마지막에 정의감에 불타 힘을 합쳐 거악을 처단한다는 – 이것도 어째 ‘좋았던 옛날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스토리다. 기억에 남는게 러셀 크로우가 현장에서 무방비 사태 범인을 체포하지 않고 죽인 다음 범인이 먼저 총을 쏜 것처럼 조작하는 장면이다. 이거 보니까  알폰소 쿠아론의 &lt;트레이닝 데이&gt;에서 비슷한 장면의 덴젤 워싱턴이 떠올랐다. 이것도 LA 경찰영환데 헐리우드가 있어서 LAPD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건가? &lt;다이하드&gt;의 존 맥클레인도 &lt;스피드&gt;의 잭 트레븐도 LAPD다. 이 영화나 &lt;트레이닝 데이&gt;가 뭐 LAPD의 부패를 고발하는 영화는 아닐 테고, 그래도 &lt;LA 컨피덴셜&gt;의 업데이트판이 &lt;트레이닝 데이&gt;처럼 느껴져서 재밌다. 아니 요즘 한참 시끄러운 박모 검사 사례를 보면 이들 영화에 지혜가 담겨있는 지도 모른다. 진실을 보여주는데 영화 속 얘기로 치부하는 관객이 어리석은 지도.  혹시 부패 경찰들을 보며 마음이 상했다면 &lt;엔드 오브 왓치&gt;의 두 순찰 경관으로 마음을 달래보자. 뭐 엄청 재밌진 않다. 그래도 머리를 삭발하고 경찰 제복을 입고 총질하는 제이크 질렌할은 폼이 난다. 형사하고 순찰 경관하고 위계가 있나? 그러고 보니 &lt;트레이닝 데이&gt;의 에단 호크도 고속도로 순찰하다 마약반에 들어가고 싶어서 하루동안 트레이닝 데이를 받는다. 13X13 순찰차의 ‘짭새’느낌의 2인조 경찰과 LA 밤거리를 순찰해 보자. 그들의 뒤를 받치는 수천명의 ‘형제’들의 동료애와 함께. 거리의 ‘쓰레기’들과 한바탕 총격전을 벌인 후에 사격 자세를 취하며 서로에게 묻는다. “YOU GOOD?”,  “GOOD,GOOD”<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19dvd_150cover.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37512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기후위기의 시대  가짜엘리트의  시대다  초등학생 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3758</link><pubDate>Thu, 23 Apr 2026 10: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33758</guid><description><![CDATA[기후위기의 시대  가짜엘리트의  시대다  초등학생 자기 딸 검사 시킨다고-마치 지금 검사가 된 것 마냥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아조씨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의미의 역설’과 ‘보여주지 않기’의 역설 - &amp;lt;퍼스트 카우&amp;gt;(켈리 라이카트, 2019)</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52</link><pubDate>Tue, 14 Apr 2026 16: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3492430274&TPaperId=17216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58/coveroff/349243027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535612&TPaperId=17216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2/39/coveroff/s2426365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802939174&TPaperId=17216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23/35/coveroff/d80293917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스포일러 있음)<br>&lt;퍼스트 카우&gt;는 느린 미니멀리즘 연출로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켈리 라이카트가 우정을 주제로 연출한 서부극이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시작한 영화는 강변에서 산책하던 한 여성이 파묻혀 있는 두 구의 유골을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후 영화는 갑자기 서부 개척 시대로 소급하여 그 유골에 얽힌 사연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떠돌이 노동자 ‘쿠키’와 ‘킹 루’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유골이 놓인 자세로 눕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의 초입 부분과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며 끝난다. 블레이크의 격언과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이 영화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우정을 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인공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긴다. 감독은 우정이라는 주제를 위해 왜 ‘때깔이 좋지 않은’ 서부 개척 시대 떠돌이 노동자들을 선택했을까? 그들의 죽음을 생략한 갑작스러운 마무리는 어떻게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것일까?무의미에 의미는 있는가? 감동과 의미는 일관된 거대 서사나(외계인과 의기투합해서 우주를 구한다) 합리적 결론(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 사랑을 확인한다)에서만 도출되는 것일까? 무엇인가가 한 때 단지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미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존재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주는 의미라는 게 있을까? 예를 들어 &lt;미술관 옆 동물원&gt;(이정향, 1998)에서 결혼식장 촬영기사인 춘희(심은하 분)가 손홍민의 ‘찰칵’ 자세를 하면서 “이렇게 해서 바라보면 전부 의미가 있어 보여”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겨운 일상의 공간도 프레임 안에 넣고 시선을 보내면 영화적 공간처럼 의미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의 서사를 시간순으로 배치하지 않고 두 구의 유골이 산책하는 여성에 의해 우연히 발굴되는 설정으로 감독은 보이지 않던 것에 ‘찰칵’ 자세를 취한다. 침묵하던 이들은 목소리를 얻고 들어주는 이가 없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감독이 선택한 인물은 ‘지옥의 격언’에 어울리게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일거리를 찾아 대륙을 방황하고(킹 루는 ‘피라미드를 본 적도 있다’고 한다.) 부모는 출생 이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 게다가 쿠키는 우유를 훔치면서 소를 다독이는 장면에서 보여주듯 생존이 먼저인 서부 개척 시대에 걸맞지 않게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이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남쪽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호텔을 운영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요새’를 관리하는 장군이 소유한 소의 우유를 훔쳐 쿠키를 만들어 팔다 뜻밖의 대박을 터트리며 소의 주인인 장군에게까지 쿠키를 팔게 된다. 요새에는 소가 단 한 마리(퍼스트 카우)였기 때문에 우유를 훔쳤다는 사실이 들통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계속 절도 행각을 하다 장군에게 발각되고 추격을 피해 도망치게 된다. 감독은 4:3의 화면비로 두 주인공에게 시선을 모은다. 그들이 남루한 삶을 사는 만큼 화면을 채우는 것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카메라는 끈기 있고 진지하게 이들의 행동을 바라본다. 그 진지함이 등장인물의 죽음이라는 결말과 함께 이들이 ‘실존했다’라는 느낌과 ‘그리고 영원히 상실되었다’라는 느낌을 준다. 카메라가 이들에게만 진지한 게 아니다. 이들이 쿠키를 팔고 요새 안을 지날 때 카메라는 서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과 행동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때 단 몇 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행동은 이야기와는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카메라는 단순히 영화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 목적 외에도 이들을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대하며 그들만의 시간과 서사를 상상하게 한다. 만약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단순히 이들의 우정 때문만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이들 우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우정을 강조하기 위해선 우정 앞에 먼저 시련이 닥쳐야 하고 그 시련을 우정이 극적으로 극복하는 서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두 명이 재회하며 반가워하는, 과장 없이 연출된 장면이다. 만약 그들이 도주에 성공했다면, 호텔 운영에 성공했다면 둘의 우정이 언제까지 유지됐을까? 영화 초반 쿠키는 식량 부족 때문에 동료들에게서 구박받는 상황에서도 킹 루를 몰래 도와준다. 하지만 그 장면을 동료에게 들켰더라면 무리에서 서열이 낮아 보이는 쿠키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쿠키가 추격을 피해 도주하다 킹 루를 찾은 것이 우정 때문이었을까? 숨겨놓은 돈 때문이었을까? 관객들이 답을 찾기 전에 이들의 삶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끝나버린다.    &nbsp;  단편적인 것에 시선을   &nbsp;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서사는 아름답다.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 (기시 마사히코 ,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중)  &nbsp;  우리가 추억을 담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회한에 젖는 것은 그 순간의 유일무이성과 상실감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일회성과 유일무이성이 남루하고 단편적인 삶의 순간조차 감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이 서사는 하나의 완결된 우주가 되고 ‘한 때 존재했지만 영원히 더는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도리어 이들의 삶이 초라했기 때문에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들의 우정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도망치다 재회한 이들이 서로 반가워하는 장면은 더없이 안온하고 부드럽다. “자네가 떠난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서로를 얼싸안는 장면은 평생 떠돌이로 살았던 그들의 삶과 겹치며,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서로에게서 안식처를 찾았음을 보여준다. 한때 그 순간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이 삶이 가치 있어 보이고, 다른 가치판단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처럼 어이없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킹 루는 “곧 떠날 거야”라고 말하며 쿠키의 옆에 눕지만, 관객은 그 말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들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는 등장인물을 보며 관객은 그들을 더 깊이 연민하며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nbsp;  무의미하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보여주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곧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영원한 사라짐으로 향할 때 오는 감동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런 종류의 감동은 그것이 무의미하고 사소할수록 더 드러난다는 것이다. 피라미드나 ‘외계인과 합심하여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에는 자체 발광하는 의미와 영원의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착시다. 진실은 피라미드나 우주도 결국엔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다) 반면 두 명의 떠돌이 노동자의 삶은 사소하고 무의미했기 때문에 그 사라짐은 관객을 ‘직격’한다. 감독은 구체적인 ‘사라짐’의 장면을 생략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그 충격을 전달한다. 관객이 등장인물의 죽음을 상상하며 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완성’하는 순간 그들의 ‘실존’에 더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lt;퍼스트 카우&gt;는 ‘보여주기’의 예술인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기’라는 역설로 ‘무의미의 역설’을 전달하는 영화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23/35/cover150/d8029391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233587</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어프렌티스-트럼프의 탄생&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47</link><pubDate>Tue, 14 Apr 2026 1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21644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472938342&TPaperId=17216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19dvd_75cover.jpg" width="75" border="0"></a>&nbsp;<br/><br/>트럼프가 드디어 피같은 내 돈 3천원까지 쓰게 만들며 기어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이게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영화속 빌런 현실판 이란 말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 것이다.뭐 극영화니 신빙성이 있는지는 추가로 확인을 해야 하지만, 트럼프가 갑툭튀 괴물이 아니라 어떤 흐름 안에서 탄생한 인물이라는 설명은 상황을 납득하게 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트럼프를 만든게 로이 콘이라는 변호사라는 게 영화의 설명인데, 의외로 실존인물이고 이 사람 다큐도 볼 수 있다.&nbsp;  &nbsp;  첫째 공격,공격,공격해라.  &nbsp;  둘째 진실을 부인해라   &nbsp;  셋째 져도 이긴척 해라&nbsp;  &nbsp;  트럼프가 로이콘에게서 배운 원칙이다.&nbsp;  &nbsp;  트럼프타워나 코모도 호텔이 빈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결국 부자들이 트럼프를 더 부자로 만든 것이다. 어찌보면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이용해서 고객의 범위를 평민으로 늘려서 장사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판 대가가 돈이었다면 지금은 표로 바뀐 것이다.  영화가 만듦새가 떨어지지는 않지만, 엄청 재밌지는 않다. 그냥 트럼프 인생 서사를 차례로 늘어논 거라..   &nbsp;  마지막 인터뷰 장면은 지금 상황이 너무 절묘하게 오버랩이 되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트럼프 빨리 엿먹어라..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img/19dvd_150cover.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810354</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 숲속 현자의 내맡김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90558</link><pubDate>Wed, 01 Apr 2026 15: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905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936078&TPaperId=1719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33/82/coveroff/k2229360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936078&TPaperId=171905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 숲속 현자의 내맡김 수업</a><br/>마이클 A. 싱어 지음, 이균형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3년 11월<br/></td></tr></table><br/>단점은 추상적인 단어 때문에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고, 차크라, 샥티 같은 용어가 등장해서&nbsp;‘스켑틱’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던져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 장점은 수행과 명상의 논리를 요즘 유행하는 ‘ABC’론처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차크라와 샥티가 맘에 안 들면 그 부분만 제껴놔도 좋다. 나머지 논리만 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이다. 다른 불교 명상가인 고엔카의 저서들에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마 삼스카라, 상카라인데 외부의 감각의 좋고 나쁨에 집착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내면의 패턴이다. 이런 행동패턴 때문에 우리는 고통에 빠진다.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은 닥치는 게 세상만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논리에 인도 요가의 용어인 샥티같은 개념을 추가한다.(저자의 멘토는 암릿 데자이나 요가난다 같은 인도의 요기들이다.) 우리 같은 중생들의 피부에 와 닿게 현대물리학과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인용하며 ‘내려놓음’을 하라고 가르친다. 외부의 현실은 수십억년의 더께를 가진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호오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만하게 삶과 세상에 자신의 호오를 투사하며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서 기뻐하거나 슬퍼한다. 우리는 대개 외부의 조건을 성취하면 행복하리라고 믿지만 저자는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고(외부의 조건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조건없는 내면의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저자가 그리는 ‘영혼의 지도’ 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적 인격, 자아라는 것은 삼스카라가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의 총체라는 것이다.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서구적인 느낌이라면 이런 호불호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터인데 저자에게 이런 인격은 ‘참나’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심지어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연애'조차 삼스카라 덩어리들의 충돌일 뿐이다.(삼스카라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으면 '트라우마'라고 바꿔보자.) 하지만, 괸계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nbsp;삼스카라는 내면의 에너지인 삭티를 막는 장애물인데 우리가 ‘내려놓음’을 할수록 샥티의 에너지는 우리를 참나로 이끌어 우리는 조건없는 사랑과 평화,열정을 느낄 것이라는 게 저자의 구도다, 명상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한 두 번 들어봤을 ‘그저 지켜보기’, ‘내려놓음’같은 키워드는 여전하다. 흔히 명상에 따라붙는 비판 중 하나가 명상한다고 세상이 바뀌냐? 일 텐데 저자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호오를 포기하면 인생을 사는 목적이 뭔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는데 저자에게 인생의 목적자체가 삼스카라를 제거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적인 삼스카라를 포기하면 조건없는 사랑과 열정, 창조성이 우리를 움직일 것이다. 사랑과 창조성의 특징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과 창조성으로 지금 눈 앞의 순간을 받들어 봉사하는 것이 저자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삶의 표정이다. ‘깨달음 이후의 빨랫감’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고엔카의 위빠사나처럼 구체적인 매뉴얼이 안 나오는 것은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저자는 독자가 체감할 수 있게-스타워즈까지 패러디하면서-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내려놓음’과 ‘지켜보기’를 설명한다. 명상과 수행의 기본논리를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아 물론 이 책 읽는다고 해탈할 리는 없다. 나 같은 중생은 진짜 포기해야 돼? 다른 방법 없어요?&nbsp;하는 아쉬움부터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33/82/cover150/k2229360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33825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퍼스트 카우&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57891</link><pubDate>Wed, 18 Mar 2026 16: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578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762738597&TPaperId=17157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32/coveroff/25124366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922938663&TPaperId=17157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78/50/coveroff/d92293866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535612&TPaperId=17157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2/39/coveroff/s24263652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스포일러 있음)<br>느린 호흡과 미니멀리즘적 연출이 특징인 ‘슬로 시네마’로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켈리 라이카트는 &nbsp;서부 개척 시대 유랑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서부극을 연출한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시작한 영화는 강변에서 산책하던 사람이 파묻혀 있는 두 구의 유골을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란히 누운 자세로 발굴된 유골을 바라보는 사람의 의아한 표정에서 갑자기 영화는 1820년대의 서부 개척 시대로 소급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연 이 두 구의 유골은 왜 강변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일까? 지옥의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따라지 인생’인 ‘쿠키’는 ‘틸리컴 요새’로 일거리를 찾으러 가는 도중 ‘킹 루’라는 중국인을 도와주게 된다. ‘지옥의 격언’처럼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부족한 식량 때문에 쿠키는 시종 동료들에게 시달리고 킹 루는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인을 죽이고 그 패거리들에게 쫓기고 있다. 쿠키는 동료들 몰래 킹 루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블레이크의 경구와 더불어 이 시점부터 영화의 ‘콘셉트’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틸리컴 요새에서 재회한 둘은 의기투합하여 요새를 지휘하는 장군이 소유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쿠키를 만들어 팔아 재미를 보다 주인인 장군에게까지 쿠키를 팔게 된다. 요새에는 젖소가 단 한 마리(퍼스트 카우)였기 때문에 우유를 훔쳤다는 사실이 들통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계속 절도 행각을 하다 장군에게 발각되고 추격을 피해 도망치게 된다. 영화는 이들이 도망 중 영화 초반 유골이 놓인 자세대로 쉬는 장면에서 갑자기 끝나며 이들의 꿈이 끝내 좌절됐음을 암시한다.  인간에게는 우정을,&nbsp; 단편적인 것에게 시선을  이들 우정의 특징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증명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우정은 흔히 우리가 칭송하는 우정일까? 엄밀히 말하면 쿠키는 우유를 훔쳤고 킹 루는 살인자 아닌가? 보통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연 쿠키가 영화 초반 킹 루를 도와주는 장면을 들켰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영화 후반 둘이 같이 도망친 게 우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무에 숨겨둔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 이 영화 전체에서 우리가 영화관에서 기대하는 특별한 것이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고 영화 속 킹 루의 남루한 오두막처럼 사소한 행동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시선을 받는 순간 이들의 동작과 대화는 ‘의미 있어 보인다.’ &lt;미술관 옆 동물원&gt;(이정향, 1998)에서 결혼식장 촬영기사인 춘희(심은하 분)가 손홍민의 ‘찰칵’포즈를 하면서 “이렇게 해서 바라보면 전부 의미가 있어 보여”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겨운 일상의 공간도 프레임 안에 넣고 보면 영화적 공간처럼 의미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단편적인 것’, 글자 그대로 이름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마도 평생 고된 삶을 보내다 오리건주 강변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 두 명에게 목소리를 입혀 주었다는 것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킹 루는 “곧 떠날 거야”라고 말하며 쿠키의 옆에 눕지만, 그가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없이 사소하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영화는 보여준다,   &nbsp;  “유치원에 다닐 때 기묘한 버릇이 있었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돌멩이 가운데 아무것이나 적당히 주워 몇십 분 안 지그시 바라보는 버릇이었다.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나에게 주어 올려진 ‘이’ 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과 무의미함에 난 전율할 만큼 감동했다.  &nbsp;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돌멩이는 그 하나하나가 둘도 없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온 천지 길바닥에 무수히 굴러다니고 있다.”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중)<br><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2/39/cover150/s2426365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52397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프로이트도 놓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13413</link><pubDate>Wed, 25 Feb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134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13095&TPaperId=171134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90/84/coveroff/89012130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13095&TPaperId=171134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프로이트도 놓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a><br/>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07월<br/></td></tr></table><br/>10여년 전의 꿈의 과학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융심리학이나 정신분석과는 달리 꿈을 상징으로 보지 않고 해석하지 않으려는 관점이 특이하다. 저자가 귀에 익숙한 저널리스트이다. 재밌고 책장도 잘 넘어 가지만 역시 많이 지나간 시간이 문제다. 자각몽 등 꿈과 관련한 연구의 분위기를 접하고 싶다면 추천.&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90/84/cover150/89012130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908443</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주 옛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8683</link><pubDate>Wed, 18 Feb 2026 12: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8683</guid><description><![CDATA[아주 옛날..]]></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주아주 오랜 옛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3340</link><pubDate>Sun, 15 Feb 2026 0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3340</guid><description><![CDATA[아주아주 오랜 옛날]]></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0129</link><pubDate>Fri, 13 Feb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0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633902&TPaperId=17090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1/98/coveroff/k3526339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633902&TPaperId=17090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a><br/>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br/></td></tr></table><br/>신화, 영성, 민담, 상징, 융심리학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푸짐한 밥상 같은 책이다. 캠벨이 한 대중강연록이기 때문에 내용이 알차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캠벨도 이제 약간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웅신화만 해도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서양을 ‘책임과 자유를 짊어진 개인’으로, 동양을 ‘자아가 삭제된 사회질서’로 시종 설명하는데 너무 전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서양에서는 개인을 고유의 현상으로 존중하며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세상에 대한 특별한 선물로 보므로 개성을 억압하지 않고 길러주려 한다.” 는 문장은 전형적인 ‘하루키 스타일’(&lt;고양이를 버리다&gt;,비채)이다. 키르티무카의 전설을 통해 삶의 잔인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투쟁과 살상을 긍정하는 캠벨 특유의 흥미로운 세계관도 다시 나온다. 캠벨은 이를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lt;신화와 인생&gt;,갈라파고스) 캠벨이 신화를 무의식과 상징이라는 도구로 설명하면서 융심리학과 연결된다. 재미있는 건 융의 ‘개성화’를 캠벨이 자아의 실현으로 설명하면서 ‘서구 사이드’에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김영은 &lt;우파니샤드, 비밀의 서&gt;에서 칼 융의 개성화를 자아를 극복한 참나의 실현과 연관지으며 ‘동양 사이드’에 놓는다. 같은 도구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재밌다. 심지어 자아와 참나의 차이다.   과학의 시대에 이미 허구라고 드러난 신화(종교를 포함하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캠벨은 신화를 ‘정신의 사실’로 정의한다. 신화는 개인에게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신호의 집합체이다. 인간은 여타의 동물과 달리 하나의 주체로 활동하기 위해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이 때 ‘제2의 자궁’ 역할을 하는 것이 신화이다. 또한 신화는 일종의 게임규칙이다. 이런 게임규칙 때문에 인간은 “정의되지 않은 공허”라는 잠재력을 벗어나 자신의 제한된 삶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신화와 리츄얼이 사라진 현대는 일종의 아노미상태다. 인간의 삶에는 환상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상을 잃으면 믿고 의지할 확실한 대상과 도덕률도 같이 사라질 것이다.(21p) 지평이 사라진 시대에서-예를 들어 이제 우리는 중국을 더 이상 세계의 중심, 중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의 내면을 알게 해주는 신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문장에 많은 배경지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한 번 읽고 넘길 책은 아니다. 재미있는 히스토리 채널 프로그램 보는 느낌이다. 통찰력이 담긴 계시적인 문장은 읽을수록 위안이 된다. '마스터'의 강의를 직관하는 아우라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1/98/cover150/k3526339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319815</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정녕 나는 게임에 접속한 신의 아바타인가?(feat 우파니샤드, 아니타 무르자니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64439</link><pubDate>Sun, 01 Feb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6443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4016&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11/58/coveroff/893570401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834411&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57/49/coveroff/k72283441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837173&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46/49/coveroff/k1328371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531073&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016/87/coveroff/k0925310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75789&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90/coveroff/k86283747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64439'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이 세상은 놀이공원과도 같다. 놀이기구처럼 삶을 이리저리 갈아타며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등을 두루 맛보는 장소다. 에고라는 아이가 성숙하여 유희가 시들해질 때까지 우리는 이 놀이터에 머문다. 힌두교에 따르면 언젠가는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다.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윤회 속에서 저마다 놀이기구처럼 삶을 체험한다. 롤러코스터처럼 고정된 궤도(운명)를 도는 삶도, 운전대를 잡는 범퍼카처럼 나름의 자율성(의지)을 발휘하는 삶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지나 음악이 멈출 때까지 모두가 기구(몸) 안에 갇힌다. 주어진 조건을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이 기구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는 것(해탈)뿐이다. 기구에서 눈을 떼고 창(내면)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창밖에는 진짜 세상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빙글빙글 돌아가는 탈것(삶) 위에서 눈을 떼기란 쉽지 않다. 큰일이라도 난 듯이 울려대는 경보와 뭔가 잘못됐다는 듯 번쩍거리는 계기판…… 그래 봤자 놀이기구 아닌가.&nbs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 우파니샤드-인도 비밀의 서&gt;(김영, 씨아이알) 184p&nbsp;<br>김영 선생님이 대안연에서 한 &lt;바가바드 기타&gt; 강의 중 (아트앤스터디에서 볼 수 있다.) 세상을 놀이공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놀이공원에 입장한 것과 같은 것인데, 놀이공원에서 놀아봐야 아무 쓸데 없으니 빨리 집에 가라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거다. 이 비유도 재미있었지만 마지막에 덧붙인 선생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표 사서 들어온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죠."   &nbsp;    임사체험 후 영적 교사로 변신한 아니타 무르자니가 말하는 '자기사랑'을 처음 접했을 때 민망함과 낯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혐오라는 감정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조건부 사랑과 (마이클 싱어의 항복실험처럼) '내려놓음'을 말하는 기존의 영적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에고까지 포함한 조건없는 자기 사랑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아니타 무르자니의 언설은 신선한 반전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 사랑‘이 갑자기 저자의 임사체험 결과로 튀어 나왔다고나 할까, 여전히 저자의 주장은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안연에서 진행한 &lt;우파니샤드&gt;강의에 비춰보자 비로소 아니타의 주장이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앞서 인용한 김영 선생님의 '게임 세계관을 아니타 무르자니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니타는 임사체험에서 자신의 본질이 만유,일자,순수의식,oneness 같은 것이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완벽하고 조건없는 사랑이며 모든 것이 개체이면서도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하나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바깥이 없는 전체이다. (내 뇌피셜로는 애플티비의 &lt;플루리부스&gt;가 이 세계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선악과 같은 이원성을 초월한 것이며 하나의 완벽하고 거대한 태피스트리이다. 아니타는 임사체험에서 살아 돌아온 이유가 자신의 소명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유,일자,무한한 자아가 스스로의 창조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순수 의식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인간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표현으로는 개개인마다 천성이나 적성, 개성 같은 게 있다는 개념일 텐데, 아니타는 영혼의 의도, 목적이라는 말을 쓴다. 즉 우리 모두는 무한한 자아의 현현이며(우파니샤드 세계관에서는 ’아트만‘이라고 한다.) 무한한 자아가 자신을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기존의 수행전통에서는 낯선 "자기사랑은" 이 세계관에서는 적절하다. 무한한 자아가 현실세계에 태어나서 자신의 소명을 찾고,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살피고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자신의 본질이 신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여정에서 필요한 일종의 행동대장이다. 행동대장을 격려하고 응원해야 행동대장이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는가? 아니타도 '자기포기'를 마이클 싱어와는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긴 한다. 마이클 싱어가 글자 그대로 외부의 상황에 항복하는 "항복 실험"을 했다면, 아니타가 경구처럼 반복하는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이 되세요"라는 말에서 '두려움 없이'라는 부분이 아니타 버전에서의 자기포기다. 어쩌면 마이클 싱어가 남자라는 것과 아니타 무르자니가 여자라는 차이점인지도 모르겠다. 여성이라는 포지션에서 강요되는 수동성, 억압, 차별이 탑재된 에고는 무한한 자아가 자신의 의도를 펼치는 것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되라“는 말은 자신의 본질이 신성이라는 것을, 순수의식-힌두식으로 표현하면 브라흐만-에 연결되라는 뜻이다. 자신이 장엄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영혼의 목적을 파악해 그것을 삶에서 실현시키는 것, 그 방법론이 아니타가 말하는 자기사랑인 것이다. 참고로 출간된 아니타 무르자니의 세 권의 책 중 저자가 말하는 자기사랑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대충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nbsp;  &nbsp; &nbsp; ① 인정욕구 버리기, 자신의 진실(이런게 있다면) 따르기② 내 영혼을 보살피는 것, 내 욕구를 돌봐주는 것,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③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것④ ‘행동하기’보다는(‘머리로 산다’는 뉘앙스)  ‘존재’(‘가슴으로 산다’는 뉘앙스)할 것. 두려움이 아닌 열정으로 살 것⑤ 매순간 고양된 상태로 있는 것⑥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는 것. ‘생존모드’(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미지)를 피하는 것 ⑦ 내 느낌을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⑧ 스스로를 보살피고,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며, 자신의 장엄함을 확인하는 것⑨ 내면의 신비가를 믿는 것 (직관, 느낌을 믿을 것)   &nbsp;  아니타가 얼마나 자기사랑을 강조하냐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정도다. 아니타가 말하는 우리의 본질은 조건없는 사랑이고, 나는 존재하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자신에 대한 일체의 무판단에서는 일말의 죄책감조차 들어설 여지가 없다. 내가 어떤 일을 했던, 그건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고, 설사 잘못된 일이었어도 그것은 당시의 무지 때문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완벽하다는 뉘앙스다. 여기에는 힌두교의 인드라망과 비슷한 아니타의 ‘태피스트리’ 세계관이 있다. 인드라의 궁궐을 덮고 있는 광대한 그물에는 코마다 보주가 달려 있는데, 각각의 구슬이 다른 구슬 전부를 비춘다고 한다. (인도 비밀의 서 우파니샤드, 152P) 각각의 구슬(개인)이 우주의 중심이고 구슬 하나에 생기는 일이 그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반면 아니타는 임사체험 시 만유, oneness를 거대한 태피스트리로, 태피스트리를 이루는 각각의 실을 개개인으로 느꼈다고 한다. 각각의 실이, 즉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 실을 건드려 태피스트리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바뀐 태피스트리는 여전히 완벽하고 장엄하다. 마치 자동온도조절시스템 같은데 태피스트리의 실 하나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고 모든 실이 움직여서 최종적으론 똑같이 장엄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전체 태피스트리가 바뀐다는 것이다. 이원성의 세계인 현실은 고통과 슬픔이 넘쳐나지만 피안의 세계는 완벽하다는 비유다. 그리고 차안의 세계는 이러한 신성의 현현인 것이다. 때문에 아니타는 더 높은 관점에서 보면 현실은 완벽하다고 한다.(아니타의 두 번째 책 &lt;나로 살아가는 기쁨&gt;의 원제는 &lt;WHAT IF THIS IS HEAVEN?&gt; 이다.)<br>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자기사랑은 외려 역효과를 낳지 않을까? 현실적인 관점에서  아니타의 주장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은 소심한 I형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죄책감을 삭제하기 시작해 다시 우경화로 흐르는 전후 일본 사회같이 뻔뻔한 경우라면? 보통 수치심은 개인의 인격에 대한 비난인데 반해 죄책감은 특정행동에 대한 비난이라고 한다. 자기교정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필요하다는 것이 내가 아는 심리학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아니타는 자신의 본질이 완벽해서 ‘이미 내가 되려고 하는 그것’이고 ‘이미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자기계발을 부정하는 기이한 자기계발서가 탄생하게 된다. 자신이 완벽하다 보니 병에 걸렸을 때 치료방법 조차 “내면의 신비가”가 말하는 “느낌”대로 선택하라고 한다,(이 말 듣고 기겁을 하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연상된다.) 아니타 무르자니가 신뢰하는 “느낌”과 “직관”이 실은 누적된 편견에서 나오는 반응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흑백커플을 본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가 반사적으로 경악하는 것처럼? “‘허용하기’를 해도 원하는 것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속한게 아니며 진실로 좋은 게 아니다”, 라는 ‘빠져나가기’는 점집에서도 써 먹는 방법이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무한대의 자기 사랑은 자칫 자신의 잘못과 나태함을 합리화하는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조건없는 자기사랑은 우리를 그냥 유아기로 퇴행시키는 것 아닐까? 아니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종교를 믿을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실은 완벽하고, 세상에 태어난 신의 일부이고 내 뒤에 신이 있다는데! 이건 또다른 ‘인민의 아편’ 노릇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김영 선생님의&lt;인도 비밀의 서 우파니샤드&gt;에 따르면 경전은 항상 인격이 없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한다. 아무한테나 진리를 스포하지 말라는 얘기다.   &nbsp;   아니타 무르자니의 주장에 깔린 가장 근본적인 관건은 “과연 나는 나를 신의 현현이라고 자각할 수 있겠는가? ” 이다. 크리스 나이바우어였던 것 같은데 카지노 주인의 딜레마에 관해서다. 카지노 주인은 카지노에서 절대 재밌게 놀 수가 없다, 당연히 돈을 따든 잃든, 자기 돈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때 카지노 주인이 자기 카지노에서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자기가 카지노 주인이 아닌 척하면 된다. 정 뭣하면 빨간약 대신 파란약을 먹고 기억상실에 걸리면 된다. 과연 우리는 재밌게 놀고 싶어서 게임에 접속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신의 아바타인가? &lt;우파니샤드&gt; 대안연 수업에서 김영 선생님의 첫 시간 첫마디는 이런 물음이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nbsp;  ps.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lt;마음의 요가&gt;는 19세기 후반에 서구에서 우파니샤드 철학을 강의한 강연록이다. 저자는 이 쪽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 들어봤을 유명인이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임사체험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이게 브라흐만과 아트만 비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힌두 철학과의 유사성에 놀라게 된다.( 결국 ‘스켑틱’들에게는 좋은 트집거리가 될 것이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lt;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gt;에서 자신이 성장하면서 베단타 철학을 공부했다고 서술했다) &lt;마음의 요가&gt;에서 줄창 강조하는 것도 세상은 무한한 일자의 현현이고 고통조차 신성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두에게서 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투사라는 개념을 적용해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주장을 분석하는 것도 재밌겠다.) 영혼 안에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내재해 있으며  겉으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를 막는 것이 악이고 이를 돕는 것이 선이라고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말한다. 아니타 무르자니와 판박이 같은데 “두려움없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서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말하는 방법은 ‘자기사랑’이 아니라 “자의식을 여의는 것”이다. “두려움은 오직 이기적인 자에게만 찾아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은 “조그만 자아”가 아니라 “탄생도 죽음도 없는” “전능”한 자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본인의 신성을 자각하라는 힌두 세계관을 ‘진로 찾기’나 ‘자아찾기’ 같은 속세 버전으로 바꾼 것일까?<br> <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08/17/cover150/k8420365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08171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