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명님의 서재 (가명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제는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9 Apr 2026 06:12:51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가명</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가명</description></image><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 숲속 현자의 내맡김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90558</link><pubDate>Wed, 01 Apr 2026 15: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905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936078&TPaperId=1719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33/82/coveroff/k2229360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936078&TPaperId=171905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 - 숲속 현자의 내맡김 수업</a><br/>마이클 A. 싱어 지음, 이균형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3년 11월<br/></td></tr></table><br/>단점은 추상적인 단어 때문에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고, 차크라, 샥티 같은 용어가 등장해서&nbsp;‘스켑틱’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던져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 장점은 수행과 명상의 논리를 요즘 유행하는 ‘ABC’론처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차크라와 샥티가 맘에 안 들면 그 부분만 제껴놔도 좋다. 나머지 논리만 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이다. 다른 불교 명상가인 고엔카의 저서들에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마 삼스카라, 상카라인데 외부의 감각의 좋고 나쁨에 집착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내면의 패턴이다. 이런 행동패턴 때문에 우리는 고통에 빠진다.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은 닥치는 게 세상만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논리에 인도 요가의 용어인 샥티같은 개념을 추가한다.(저자의 멘토는 암릿 데자이나 요가난다 같은 인도의 요기들이다.) 우리 같은 중생들의 피부에 와 닿게 현대물리학과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인용하며 ‘내려놓음’을 하라고 가르친다. 외부의 현실은 수십억년의 더께를 가진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호오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만하게 삶과 세상에 자신의 호오를 투사하며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서 기뻐하거나 슬퍼한다. 우리는 대개 외부의 조건을 성취하면 행복하리라고 믿지만 저자는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고(외부의 조건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조건없는 내면의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저자가 그리는 ‘영혼의 지도’ 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적 인격, 자아라는 것은 삼스카라가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의 총체라는 것이다.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서구적인 느낌이라면 이런 호불호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터인데 저자에게 이런 인격은 ‘참나’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심지어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연애'조차 삼스카라 덩어리들의 충돌일 뿐이다.(삼스카라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으면 '트라우마'라고 바꿔보자.) 하지만, 괸계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nbsp;삼스카라는 내면의 에너지인 삭티를 막는 장애물인데 우리가 ‘내려놓음’을 할수록 샥티의 에너지는 우리를 참나로 이끌어 우리는 조건없는 사랑과 평화,열정을 느낄 것이라는 게 저자의 구도다, 명상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한 두 번 들어봤을 ‘그저 지켜보기’, ‘내려놓음’같은 키워드는 여전하다. 흔히 명상에 따라붙는 비판 중 하나가 명상한다고 세상이 바뀌냐? 일 텐데 저자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호오를 포기하면 인생을 사는 목적이 뭔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는데 저자에게 인생의 목적자체가 삼스카라를 제거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적인 삼스카라를 포기하면 조건없는 사랑과 열정, 창조성이 우리를 움직일 것이다. 사랑과 창조성의 특징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과 창조성으로 지금 눈 앞의 순간을 받들어 봉사하는 것이 저자가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삶의 표정이다. ‘깨달음 이후의 빨랫감’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고엔카의 위빠사나처럼 구체적인 매뉴얼이 안 나오는 것은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저자는 독자가 체감할 수 있게-스타워즈까지 패러디하면서-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내려놓음’과 ‘지켜보기’를 설명한다. 명상과 수행의 기본논리를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아 물론 이 책 읽는다고 해탈할 리는 없다. 나 같은 중생은 진짜 포기해야 돼? 다른 방법 없어요?&nbsp;하는 아쉬움부터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733/82/cover150/k2229360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33825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영알못이 본 &amp;lt;퍼스트 카우&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57891</link><pubDate>Wed, 18 Mar 2026 16: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578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762738597&TPaperId=17157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9/32/coveroff/25124366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922938663&TPaperId=17157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78/50/coveroff/d92293866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535612&TPaperId=17157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2/39/coveroff/s24263652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스포일러 있음)<br>느린 호흡과 미니멀리즘적 연출이 특징인 ‘슬로 시네마’로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켈리 라이카트는 &nbsp;서부 개척 시대 유랑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새로운 서부극을 연출한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으로 시작한 영화는 강변에서 산책하던 사람이 파묻혀 있는 두 구의 유골을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란히 누운 자세로 발굴된 유골을 바라보는 사람의 의아한 표정에서 갑자기 영화는 1820년대의 서부 개척 시대로 소급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연 이 두 구의 유골은 왜 강변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일까? 지옥의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따라지 인생’인 ‘쿠키’는 ‘틸리컴 요새’로 일거리를 찾으러 가는 도중 ‘킹 루’라는 중국인을 도와주게 된다. ‘지옥의 격언’처럼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부족한 식량 때문에 쿠키는 시종 동료들에게 시달리고 킹 루는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인을 죽이고 그 패거리들에게 쫓기고 있다. 쿠키는 동료들 몰래 킹 루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블레이크의 경구와 더불어 이 시점부터 영화의 ‘콘셉트’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틸리컴 요새에서 재회한 둘은 의기투합하여 요새를 지휘하는 장군이 소유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쿠키를 만들어 팔아 재미를 보다 주인인 장군에게까지 쿠키를 팔게 된다. 요새에는 젖소가 단 한 마리(퍼스트 카우)였기 때문에 우유를 훔쳤다는 사실이 들통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계속 절도 행각을 하다 장군에게 발각되고 추격을 피해 도망치게 된다. 영화는 이들이 도망 중 영화 초반 유골이 놓인 자세대로 쉬는 장면에서 갑자기 끝나며 이들의 꿈이 끝내 좌절됐음을 암시한다.  인간에게는 우정을,&nbsp; 단편적인 것에게 시선을  이들 우정의 특징은 그렇게 극적이지도, 증명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우정은 흔히 우리가 칭송하는 우정일까? 엄밀히 말하면 쿠키는 우유를 훔쳤고 킹 루는 살인자 아닌가? 보통 엡스타인과 트럼프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연 쿠키가 영화 초반 킹 루를 도와주는 장면을 들켰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영화 후반 둘이 같이 도망친 게 우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무에 숨겨둔 돈 때문이었을까? 아니, 이 영화 전체에서 우리가 영화관에서 기대하는 특별한 것이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고 영화 속 킹 루의 남루한 오두막처럼 사소한 행동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시선을 받는 순간 이들의 동작과 대화는 ‘의미 있어 보인다.’ &lt;미술관 옆 동물원&gt;(이정향, 1998)에서 결혼식장 촬영기사인 춘희(심은하 분)가 손홍민의 ‘찰칵’포즈를 하면서 “이렇게 해서 바라보면 전부 의미가 있어 보여”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겨운 일상의 공간도 프레임 안에 넣고 보면 영화적 공간처럼 의미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단편적인 것’, 글자 그대로 이름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마도 평생 고된 삶을 보내다 오리건주 강변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 두 명에게 목소리를 입혀 주었다는 것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킹 루는 “곧 떠날 거야”라고 말하며 쿠키의 옆에 눕지만, 그가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없이 사소하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영화는 보여준다,   &nbsp;  “유치원에 다닐 때 기묘한 버릇이 있었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돌멩이 가운데 아무것이나 적당히 주워 몇십 분 안 지그시 바라보는 버릇이었다.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나에게 주어 올려진 ‘이’ 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과 무의미함에 난 전율할 만큼 감동했다.  &nbsp;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돌멩이는 그 하나하나가 둘도 없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온 천지 길바닥에 무수히 굴러다니고 있다.”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중)<br><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52/39/cover150/s2426365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523976</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프로이트도 놓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13413</link><pubDate>Wed, 25 Feb 2026 16: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1134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13095&TPaperId=171134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90/84/coveroff/89012130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13095&TPaperId=171134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프로이트도 놓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a><br/>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07월<br/></td></tr></table><br/>10여년 전의 꿈의 과학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융심리학이나 정신분석과는 달리 꿈을 상징으로 보지 않고 해석하지 않으려는 관점이 특이하다. 저자가 귀에 익숙한 저널리스트이다. 재밌고 책장도 잘 넘어 가지만 역시 많이 지나간 시간이 문제다. 자각몽 등 꿈과 관련한 연구의 분위기를 접하고 싶다면 추천.&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90/84/cover150/89012130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908443</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주 옛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8683</link><pubDate>Wed, 18 Feb 2026 12: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8683</guid><description><![CDATA[아주 옛날..]]></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주아주 오랜 옛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3340</link><pubDate>Sun, 15 Feb 2026 0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3340</guid><description><![CDATA[아주아주 오랜 옛날]]></description></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0129</link><pubDate>Fri, 13 Feb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90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633902&TPaperId=17090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1/98/coveroff/k3526339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633902&TPaperId=17090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a><br/>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br/></td></tr></table><br/>신화, 영성, 민담, 상징, 융심리학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푸짐한 밥상 같은 책이다. 캠벨이 한 대중강연록이기 때문에 내용이 알차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캠벨도 이제 약간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웅신화만 해도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서양을 ‘책임과 자유를 짊어진 개인’으로, 동양을 ‘자아가 삭제된 사회질서’로 시종 설명하는데 너무 전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서양에서는 개인을 고유의 현상으로 존중하며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세상에 대한 특별한 선물로 보므로 개성을 억압하지 않고 길러주려 한다.” 는 문장은 전형적인 ‘하루키 스타일’(&lt;고양이를 버리다&gt;,비채)이다. 키르티무카의 전설을 통해 삶의 잔인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투쟁과 살상을 긍정하는 캠벨 특유의 흥미로운 세계관도 다시 나온다. 캠벨은 이를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lt;신화와 인생&gt;,갈라파고스) 캠벨이 신화를 무의식과 상징이라는 도구로 설명하면서 융심리학과 연결된다. 재미있는 건 융의 ‘개성화’를 캠벨이 자아의 실현으로 설명하면서 ‘서구 사이드’에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김영은 &lt;우파니샤드, 비밀의 서&gt;에서 칼 융의 개성화를 자아를 극복한 참나의 실현과 연관지으며 ‘동양 사이드’에 놓는다. 같은 도구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재밌다. 심지어 자아와 참나의 차이다.   과학의 시대에 이미 허구라고 드러난 신화(종교를 포함하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캠벨은 신화를 ‘정신의 사실’로 정의한다. 신화는 개인에게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신호의 집합체이다. 인간은 여타의 동물과 달리 하나의 주체로 활동하기 위해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이 때 ‘제2의 자궁’ 역할을 하는 것이 신화이다. 또한 신화는 일종의 게임규칙이다. 이런 게임규칙 때문에 인간은 “정의되지 않은 공허”라는 잠재력을 벗어나 자신의 제한된 삶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신화와 리츄얼이 사라진 현대는 일종의 아노미상태다. 인간의 삶에는 환상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상을 잃으면 믿고 의지할 확실한 대상과 도덕률도 같이 사라질 것이다.(21p) 지평이 사라진 시대에서-예를 들어 이제 우리는 중국을 더 이상 세계의 중심, 중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의 내면을 알게 해주는 신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문장에 많은 배경지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한 번 읽고 넘길 책은 아니다. 재미있는 히스토리 채널 프로그램 보는 느낌이다. 통찰력이 담긴 계시적인 문장은 읽을수록 위안이 된다. '마스터'의 강의를 직관하는 아우라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31/98/cover150/k3526339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319815</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정녕 나는 게임에 접속한 신의 아바타인가?(feat 우파니샤드, 아니타 무르자니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64439</link><pubDate>Sun, 01 Feb 2026 17: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6443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704016&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11/58/coveroff/893570401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834411&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057/49/coveroff/k72283441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837173&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46/49/coveroff/k1328371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531073&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016/87/coveroff/k0925310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75789&TPaperId=1706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8/90/coveroff/k86283747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64439'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이 세상은 놀이공원과도 같다. 놀이기구처럼 삶을 이리저리 갈아타며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등을 두루 맛보는 장소다. 에고라는 아이가 성숙하여 유희가 시들해질 때까지 우리는 이 놀이터에 머문다. 힌두교에 따르면 언젠가는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다.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윤회 속에서 저마다 놀이기구처럼 삶을 체험한다. 롤러코스터처럼 고정된 궤도(운명)를 도는 삶도, 운전대를 잡는 범퍼카처럼 나름의 자율성(의지)을 발휘하는 삶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지나 음악이 멈출 때까지 모두가 기구(몸) 안에 갇힌다. 주어진 조건을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이 기구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는 것(해탈)뿐이다. 기구에서 눈을 떼고 창(내면)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창밖에는 진짜 세상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빙글빙글 돌아가는 탈것(삶) 위에서 눈을 떼기란 쉽지 않다. 큰일이라도 난 듯이 울려대는 경보와 뭔가 잘못됐다는 듯 번쩍거리는 계기판…… 그래 봤자 놀이기구 아닌가.&nbs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lt; 우파니샤드-인도 비밀의 서&gt;(김영, 씨아이알) 184p&nbsp;<br>김영 선생님이 대안연에서 한 &lt;바가바드 기타&gt; 강의 중 (아트앤스터디에서 볼 수 있다.) 세상을 놀이공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놀이공원에 입장한 것과 같은 것인데, 놀이공원에서 놀아봐야 아무 쓸데 없으니 빨리 집에 가라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거다. 이 비유도 재미있었지만 마지막에 덧붙인 선생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표 사서 들어온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죠."   &nbsp;    임사체험 후 영적 교사로 변신한 아니타 무르자니가 말하는 '자기사랑'을 처음 접했을 때 민망함과 낯간지러움이 느껴졌다.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혐오라는 감정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조건부 사랑과 (마이클 싱어의 항복실험처럼) '내려놓음'을 말하는 기존의 영적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에고까지 포함한 조건없는 자기 사랑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아니타 무르자니의 언설은 신선한 반전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 사랑‘이 갑자기 저자의 임사체험 결과로 튀어 나왔다고나 할까, 여전히 저자의 주장은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안연에서 진행한 &lt;우파니샤드&gt;강의에 비춰보자 비로소 아니타의 주장이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앞서 인용한 김영 선생님의 '게임 세계관을 아니타 무르자니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니타는 임사체험에서 자신의 본질이 만유,일자,순수의식,oneness 같은 것이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완벽하고 조건없는 사랑이며 모든 것이 개체이면서도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하나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바깥이 없는 전체이다. (내 뇌피셜로는 애플티비의 &lt;플루리부스&gt;가 이 세계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선악과 같은 이원성을 초월한 것이며 하나의 완벽하고 거대한 태피스트리이다. 아니타는 임사체험에서 살아 돌아온 이유가 자신의 소명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유,일자,무한한 자아가 스스로의 창조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순수 의식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인간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표현으로는 개개인마다 천성이나 적성, 개성 같은 게 있다는 개념일 텐데, 아니타는 영혼의 의도, 목적이라는 말을 쓴다. 즉 우리 모두는 무한한 자아의 현현이며(우파니샤드 세계관에서는 ’아트만‘이라고 한다.) 무한한 자아가 자신을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기존의 수행전통에서는 낯선 "자기사랑은" 이 세계관에서는 적절하다. 무한한 자아가 현실세계에 태어나서 자신의 소명을 찾고,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살피고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자신의 본질이 신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여정에서 필요한 일종의 행동대장이다. 행동대장을 격려하고 응원해야 행동대장이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는가? 아니타도 '자기포기'를 마이클 싱어와는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긴 한다. 마이클 싱어가 글자 그대로 외부의 상황에 항복하는 "항복 실험"을 했다면, 아니타가 경구처럼 반복하는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이 되세요"라는 말에서 '두려움 없이'라는 부분이 아니타 버전에서의 자기포기다. 어쩌면 마이클 싱어가 남자라는 것과 아니타 무르자니가 여자라는 차이점인지도 모르겠다. 여성이라는 포지션에서 강요되는 수동성, 억압, 차별이 탑재된 에고는 무한한 자아가 자신의 의도를 펼치는 것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되라“는 말은 자신의 본질이 신성이라는 것을, 순수의식-힌두식으로 표현하면 브라흐만-에 연결되라는 뜻이다. 자신이 장엄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영혼의 목적을 파악해 그것을 삶에서 실현시키는 것, 그 방법론이 아니타가 말하는 자기사랑인 것이다. 참고로 출간된 아니타 무르자니의 세 권의 책 중 저자가 말하는 자기사랑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대충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nbsp;  &nbsp; &nbsp; ① 인정욕구 버리기, 자신의 진실(이런게 있다면) 따르기② 내 영혼을 보살피는 것, 내 욕구를 돌봐주는 것,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③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것④ ‘행동하기’보다는(‘머리로 산다’는 뉘앙스)  ‘존재’(‘가슴으로 산다’는 뉘앙스)할 것. 두려움이 아닌 열정으로 살 것⑤ 매순간 고양된 상태로 있는 것⑥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는 것. ‘생존모드’(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미지)를 피하는 것 ⑦ 내 느낌을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⑧ 스스로를 보살피고,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며, 자신의 장엄함을 확인하는 것⑨ 내면의 신비가를 믿는 것 (직관, 느낌을 믿을 것)   &nbsp;  아니타가 얼마나 자기사랑을 강조하냐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정도다. 아니타가 말하는 우리의 본질은 조건없는 사랑이고, 나는 존재하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자신에 대한 일체의 무판단에서는 일말의 죄책감조차 들어설 여지가 없다. 내가 어떤 일을 했던, 그건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고, 설사 잘못된 일이었어도 그것은 당시의 무지 때문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완벽하다는 뉘앙스다. 여기에는 힌두교의 인드라망과 비슷한 아니타의 ‘태피스트리’ 세계관이 있다. 인드라의 궁궐을 덮고 있는 광대한 그물에는 코마다 보주가 달려 있는데, 각각의 구슬이 다른 구슬 전부를 비춘다고 한다. (인도 비밀의 서 우파니샤드, 152P) 각각의 구슬(개인)이 우주의 중심이고 구슬 하나에 생기는 일이 그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반면 아니타는 임사체험 시 만유, oneness를 거대한 태피스트리로, 태피스트리를 이루는 각각의 실을 개개인으로 느꼈다고 한다. 각각의 실이, 즉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 실을 건드려 태피스트리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바뀐 태피스트리는 여전히 완벽하고 장엄하다. 마치 자동온도조절시스템 같은데 태피스트리의 실 하나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고 모든 실이 움직여서 최종적으론 똑같이 장엄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전체 태피스트리가 바뀐다는 것이다. 이원성의 세계인 현실은 고통과 슬픔이 넘쳐나지만 피안의 세계는 완벽하다는 비유다. 그리고 차안의 세계는 이러한 신성의 현현인 것이다. 때문에 아니타는 더 높은 관점에서 보면 현실은 완벽하다고 한다.(아니타의 두 번째 책 &lt;나로 살아가는 기쁨&gt;의 원제는 &lt;WHAT IF THIS IS HEAVEN?&gt; 이다.)<br>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자기사랑은 외려 역효과를 낳지 않을까? 현실적인 관점에서  아니타의 주장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은 소심한 I형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죄책감을 삭제하기 시작해 다시 우경화로 흐르는 전후 일본 사회같이 뻔뻔한 경우라면? 보통 수치심은 개인의 인격에 대한 비난인데 반해 죄책감은 특정행동에 대한 비난이라고 한다. 자기교정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필요하다는 것이 내가 아는 심리학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아니타는 자신의 본질이 완벽해서 ‘이미 내가 되려고 하는 그것’이고 ‘이미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자기계발을 부정하는 기이한 자기계발서가 탄생하게 된다. 자신이 완벽하다 보니 병에 걸렸을 때 치료방법 조차 “내면의 신비가”가 말하는 “느낌”대로 선택하라고 한다,(이 말 듣고 기겁을 하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연상된다.) 아니타 무르자니가 신뢰하는 “느낌”과 “직관”이 실은 누적된 편견에서 나오는 반응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흑백커플을 본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가 반사적으로 경악하는 것처럼? “‘허용하기’를 해도 원하는 것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속한게 아니며 진실로 좋은 게 아니다”, 라는 ‘빠져나가기’는 점집에서도 써 먹는 방법이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무한대의 자기 사랑은 자칫 자신의 잘못과 나태함을 합리화하는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조건없는 자기사랑은 우리를 그냥 유아기로 퇴행시키는 것 아닐까? 아니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종교를 믿을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실은 완벽하고, 세상에 태어난 신의 일부이고 내 뒤에 신이 있다는데! 이건 또다른 ‘인민의 아편’ 노릇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김영 선생님의&lt;인도 비밀의 서 우파니샤드&gt;에 따르면 경전은 항상 인격이 없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한다. 아무한테나 진리를 스포하지 말라는 얘기다.   &nbsp;   아니타 무르자니의 주장에 깔린 가장 근본적인 관건은 “과연 나는 나를 신의 현현이라고 자각할 수 있겠는가? ” 이다. 크리스 나이바우어였던 것 같은데 카지노 주인의 딜레마에 관해서다. 카지노 주인은 카지노에서 절대 재밌게 놀 수가 없다, 당연히 돈을 따든 잃든, 자기 돈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때 카지노 주인이 자기 카지노에서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자기가 카지노 주인이 아닌 척하면 된다. 정 뭣하면 빨간약 대신 파란약을 먹고 기억상실에 걸리면 된다. 과연 우리는 재밌게 놀고 싶어서 게임에 접속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신의 아바타인가? &lt;우파니샤드&gt; 대안연 수업에서 김영 선생님의 첫 시간 첫마디는 이런 물음이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nbsp;  ps.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lt;마음의 요가&gt;는 19세기 후반에 서구에서 우파니샤드 철학을 강의한 강연록이다. 저자는 이 쪽 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 들어봤을 유명인이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임사체험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이게 브라흐만과 아트만 비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힌두 철학과의 유사성에 놀라게 된다.( 결국 ‘스켑틱’들에게는 좋은 트집거리가 될 것이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lt;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gt;에서 자신이 성장하면서 베단타 철학을 공부했다고 서술했다) &lt;마음의 요가&gt;에서 줄창 강조하는 것도 세상은 무한한 일자의 현현이고 고통조차 신성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두에게서 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투사라는 개념을 적용해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주장을 분석하는 것도 재밌겠다.) 영혼 안에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내재해 있으며  겉으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를 막는 것이 악이고 이를 돕는 것이 선이라고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말한다. 아니타 무르자니와 판박이 같은데 “두려움없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서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말하는 방법은 ‘자기사랑’이 아니라 “자의식을 여의는 것”이다. “두려움은 오직 이기적인 자에게만 찾아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은 “조그만 자아”가 아니라 “탄생도 죽음도 없는” “전능”한 자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본인의 신성을 자각하라는 힌두 세계관을 ‘진로 찾기’나 ‘자아찾기’ 같은 속세 버전으로 바꾼 것일까?<br> <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808/17/cover150/k8420365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8081711</link></image></item><item><author>가명</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두려움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 민감한 영혼 ‘엠패스’를 위한 풍요와 건강, 사랑에 관한 안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44376</link><pubDate>Sun, 25 Jan 2026 1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7066143/170443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837173&TPaperId=170443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46/49/coveroff/k1328371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837173&TPaperId=170443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 민감한 영혼 ‘엠패스’를 위한 풍요와 건강, 사랑에 관한 안내서</a><br/>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22년 03월<br/></td></tr></table><br/>“FOLLOW YOUR BLISS”라는 경구를 조셉 캠벨이 자신의 인생사와 신화학으로 풀어냈다면 저자는 같은 경구를 힌두교의 세계관과 유사한 자신의 임사체험(&lt;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gt;,샨티)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우주의 근원은 일자,만유, 순수한 사랑, 순수의식이고( 힌두교의 “브라흐만”과 유사하다.) 우리는 그런 브라흐만이 물질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태어난 신의 현현이라는 것이 저자가 임사체험 중에 얻은 깨달음이다. 저자 세계관에서 우리는 모두 내면에 신의 본질을 가지고 있고( 이건 “아트만” 느낌이다.) 무작위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영혼의 의도, 목적, 소명같은 ‘영혼의 설계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해도 알레르기가 돋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의 전개 중에 근거로 드는 대부분은 ‘~그랬다더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사례연구’이고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같은 검증이 불가능한 자신의 임사체험이다. 에모토 마사루의 ‘육각수 실험’을 근거로 들기도 하는데 이거 이미 ‘스켑틱’한 사람들에게서 호되게 까인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홍콩에서 태어난 인도인이고 성장과정에서 베단타 철학을 공부했다는 저자의 이력은 본인의 임사체험이 자신의 문화적 토양에서 나온 환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책은 소심한 사람들을 위한 힐링서적으로 괜찮고 결론도 꽤 래디컬하다. 결국 제일 중요한건 너니까 너부터 챙기고 눈치보지 말고 ‘보헤미안’으로 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타겟팅하는 독자는 ‘엠패스’이다. 지나치게 민감하면서도 자기 주장은 약한, 회사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짜장 대신 짬뽕을 외치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진실보다 주변의 가치관이나 관습을 택하는 모습은 굳이 엠패스가 아니더라도 흔할 텐데 MBTI 마냥 ‘엠패스’라는 단어를 쓰는게 아마 마케팅에는 적절할 것이다.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진부한 표현을 쓰자면 ‘자아실현’이겠지만 저자의 버전으로는 ‘영혼의 목적,의도’를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온 후 우리는 환경의 여러 영향으로 이러한 의도를 망각하거나 의지를 꺾는다. 직관과 영감이 풍부한 엠패스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소명과 더 높은 자아’에 연결되어 있으나 지나친 공감능력 때문에 자신보다 남을 더 챙기고 주변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므로 그런 엠패스들이 자신을 지키면서 소명을 찾는 방법론을 제시하는게 이 책의 골자다. 저자가 전작에서 말한 “자기를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자신으로 살아라” 등의 (&lt;나로 살아가는 기쁨&gt;,샨티) 내용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변주된다. 쉽게 흔들리는 엠패스의 특성상 자신을 방어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소개하는데 결국 자기암시나 시각화 같은 기법들이다. (비법을 원하는 독자들은 맥이 빠질 수 있다.)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내면의 신비가”와 “육감”이다. 오감 이외에도 육감, 직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못을 박는다. “내면의 신비가”는 흡사 고대 그리스 철학의 다이몬 같은 느낌인데 우주의 본질과 우리를 이어주는 존재로서 역시 실존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육감을 믿고 내면의 신비가에게 답을 구하라고 말한다. “느낌”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는데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따르라’는 진부하고 추상적인 표현이 저자에게는 진리이다. 저자의 모든 논리에 깔린 대전제는 자기사랑이다. 이 대목이 저자 콘텐츠의 강점이다. 왠만해서 자기혐오가 없는 사람은 없고 일반적인 인도의 영적 전통은 자기 포기를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기사랑을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강조하는데 그 근거는 임사체험 중에 겪은 일자가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었고 자신의 본질이 바로 그 일자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다면 굳이 엠패스가 아니더라도 홀가분한 기분에 마치 종교에 빠진 듯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죄책감 없이 매 순간 자신을 고양 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마치 다이어트 때문에 금식하던 사람이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초콜렛을 즐기는 느낌?  영적 전통에서 부정적인 의미인 ‘에고’라는 단어도 자기사랑 앞에서는 물리적인 세계를 살아가게 하는, 무한한 자아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이미지로 바뀐다. 오히려 ‘두려움없이’라는 표현이 저자에게는 에고 포기에 가깝다. 스스로를 표현하고 창조하려는 아트만을 방해하는 것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에고라는 게 저자의 조감도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포기하고, 자신이 조건없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마이클 싱어가 &lt;될일은 된다&gt;에서 항복실험을 했던 것처럼) 허용하기를 할 때 우주가 자기에게 진정으로 속한 것을 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약간 비약하면 저자의 자기사랑 방법론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연상시킨다. 비록 부드러운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내가 죽어보니 나는 완벽한 존재더라,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건 전부 *까라 마이신이고 내가 매순간 최고의 기분을 맛보는 일을-그게 초콜렛을 먹는 일이라도- 할테야 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영성적인 포장을 벗기고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학 전공 선택할 때 부화뇌동하지 말고 네 적성대로 해라, 정도의 얘기일 것이다. 부모님이 아무리 국문과 가는 거 반대해도 듣지 마라, 너는 사랑받는 존재다, 정도일 텐데 저자는 ‘나’라는 영혼의 지도를 집어넣는다, 개성과 적성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이 고3은 어느정도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며 타협할 것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영혼의 지도를 상정하는 순간 타협의 여지는 없어진다. 아마 이 고3은 많은 풍파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죄책감조차 무화시키는 ‘자기사랑’은 분명히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본질이 ‘조건없는 사랑’과 ‘무판단’이라는 전제는 에고의 폭주를 가지고 오지 않을까. 외려 나태함의 변명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같은 뉘앙스로 무한한 자아를 언급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 무한한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브레이크를 건다. 영성서적 특유의 추상적이고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애매모호함과 단순한 논리전개, 샥티나 푸르나같은 단어를 감당할 수 있다면 분명히 재미있고 힐링 효과가 있는 책이다. 다시 캠벨을 언급하자면 캠벨의 영웅신화에서 영웅이 삶으로 귀환하는 부분이 있다. 모험을 떠난 영웅은 보석을 가지고 세속으로 귀환하는데 그가 받는 반응은 오히려 멸시와 천대다. 이 때 영웅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는데 은둔생활을 하거나 어떻게든 세속과 보석을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도 임사체험 후 귀환한 영웅 같은 대접을 받은 모양이다. (악플 얘기를 하는거 보니 상황이 충분히 연상된다.) 저자는 다시 임사체험 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고, 자신의 삶속에 어떻게든 자신의 깨달음을 통합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굳이 엠패스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걷다 풍파에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뭐 밑지는 셈치고 저자의 자기사랑 암시를 반복해도 손해보는 것은 없을 것이다. (뽕맞은 것 같은 효과는 미리 경고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건진 가장 시의적절한 충고는 디지털 단식하라는 충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46/49/cover150/k1328371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46491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