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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눈사람
이정인 지음 / 브로콜리숲 / 2019년 11월
평점 :
상상속의 토끼와 곰과 호랑이와 그런 동물을 잘 다룰 것 같은 아이, 봄이를 동시집 『아이스크림 눈사람』에서 만났다. 아이스크림처럼 한 편 한 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부드럽게 읽히고 달콤하게 넘어갔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이 여러 갈래로 여기저기 나 있었다. 동시집이 안내하는 길은 꿈속 같고 가보지 않은 길이라 신기했다. 이정인 시인이 다지고자 하는 새로운 길인가 보다. 직접 그린 편안한 색감의 삽화와 여러 편의 판타지가 가미된 동시가 읽는 재미를 더하는 동시집이다.
아이스크림 가게 가서/ 아이스크림콘 주세요, 했더니/ 눈사람을 안겨준다// 아직 눈도 코도 없는/ 쬐그만 눈사람/ 봄눈 왔을 때/ 내가 만든 눈사람과/ 꼭 닮은 눈사람// 눈사람이 또 말없이 가버릴 것 같아/ 얼른 품었다// 눈사람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p10 「아이스크림 눈사람」 전문
표제작인 아이스크림 눈사람이 제일 첫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콘 위에 볼록하게 2단으로 올려주는 아이스크림이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쬐그맣고 부드럽고 포근한 눈사람이 언제 가버릴지 몰라 얼른 품었다는 눈사람은 지금쯤 눈과 귀와 코와 입이 생겼을까?
하얀 눈 위에 산토끼 발자국/ 어느 키 큰 소나무 아래 이르러 갑자기/ 산토끼 발자국이 없어졌다//푹 패인 자리//옳아, 여기가 바로 토끼가 달에서 풀쩍/뛰어내린 자리로군!//
-p14 「산토끼 발자국」 전문
동시집에는 여러 편에서 토끼가 등장하는데 기존 동시에 나온 토끼는 달나라를 벗어나지 못한 토끼였다면 이 동시집에서는 토끼가 달나라를 벗어나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다 보니 달나라 이야기와 현실이 결합된 새로운 동시를 읽는 기쁨이 있다.
흰돌이가 목련꽃으로 핀 것과 죽은 참새를 땅에 심은 마음에도 눈이 간다. 봄이네 슈퍼에서 쏟아져 나온 슈퍼 문, 작고 작은 봄이 손거울, 달 알에서 나온 노오란 병아리에서는 환하고 따뜻한 마음이 묻어난다.
모내기하는 날/ 새참으로 가져간 막걸리를 마시고/ 취한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거어 경운기 대리운전이쥬?/ 바깥양반이 과음했슈 얼렁 와줘유!// 큰길에 도착한 경찰 아저씨/ 손나팔을 하고/ 경운기 대리운전 시키신 분!// 손나팔 더 크게 하고/ 경운기 대리운전 시키신 부운!// 왜가리 한 마리가 번쩍 날아오른다//
-p74 「경운기 대리운전」 전문
시인은 경북 사람인데 충청도 말투가 시 속에서 나와 어떤 상황일까 궁금증이 생긴다. 시골이라면 생각지 않은 일도 느닷없이 일어나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다. 대리운전하는 경찰아저씨도 멋있지만 한 편의 시로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준 시인은 더 멋있다. 맛이 잘 어울리는 아이스크림 한 통이 바로 이 동시집이다. 맛이 궁금하다면 동시집을 지금 당장 펼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