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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애들 밥보다 밥
이봉직 지음 / 이든북 / 2019년 3월
평점 :
밥에 관한 여러 가지 시선
요즘 애들, 밥보다 밥/이봉직/이든북/2019
학교를 다닐 때는 언제쯤 공부를 다 마치고 필자 나름의 삶을 사나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금방 왔다. 그러면서 학교라는 울타리,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는 날이기도 하다. “공부해서 남 주나, 네 공부 네가 해야지.” 같은 귀로 흘러 들은 말들이 뒤늦게 생각나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하고 고개 끄덕이곤 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만큼 밥 먹고 공부하고를 반복한 때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그때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살아남을 것도 같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시대가 나날이 변하기도 거기 맞춰 각자가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든, 일이든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바로 매 끼니 먹는 밥에서 나온다. 어른들이 말한 밥심으로 쓴 시를 밥심으로 읽어 본다.
『요즘 애들 밥보다 밥』은 쓴 이봉직 작가는 동아일보, 매일신문, 대전일보에 신춘문예가 당선된 화려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눈높이 아동문학상과 한남문인상 대상, 열린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지은 책으로 동시집 『어머니의 꽃밭』, 『내 짝꿍은 사춘기』, 『부처님 나라 개구쟁이들』, 『웃는 기와』, 『새싹 감별사 모집』 등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늘 아이들과 마주하는 작가는 짧은 시인의 말에서 이야기한다. “밥 먹는 일이 삶의 목표라 여기고 자기 밥그릇밖에 챙길 줄 모르는 어른들”이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이 시집이 어쩌면 중, 고등학생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그 아이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어른조차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기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밥과 밥그릇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 누구라도 죽고 살기로 덤비는 건가 보다.
“엄마가 세상 모든 사막 같고/아빠가 세상 모든 황무지 같아서/ 어느 날 집을 나간 적이 있다// (아침에집을뛰쳐나가밤중에잡혀왔지만가출로인정받았다)//그때 엄마 아빠가 퍼붓는/ 온갖 공격은 다 참았는데/ 딱 한마디에서/ 왈칵, 눈물 쏟았다//밥은?//” -p13 「밥」 전문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학생 신분에 용돈도 여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어줍잖게 집을 나가면 그게 한나절이 되더라도 배고프고 서럽고 세상 모든 실의는 혼자 짊어진 것 같다. 특히나 다른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게 청소년의 가출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눈물을 쏟게 하는 것 또한 부모가 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밥은?’이다.
“고양이똥 커피 한 잔이/ 한 달 학원비도 비싸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고양이똥 커피 마시며 사는 인생이거나/ 고양이 똥구멍보다 못한 인생이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p19 「고양이똥」 전문
싼 점심을 먹고 커피는 커피전문점에 가서 비싼 걸 마시는 게 요즘 직장인들의 풍경이다. 밥값보다 커피 값이 더 나간다는 말을 누군가 지나가면서 하는 걸 들었다. 더럽다하면서도 똥커피를 마신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원래 건물주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른들 말처럼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처음부터 건물주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선 공무원이 되려고요 그런 다음 열심히 벌어 건물주가 되어야지요/ 공무원이 어떻게 건물주가 되냐고요?/ 안 되면 말죠/ 어쨌든 밥은 안 굶잖아요//”
-p23 「건물주가 되는 법」 전문
언젠가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조사했더니 공무원이라고 적어낸 아이들이 많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해 3,4학년부터는 공무원 공부를 시작해 거기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왜 하필 공무원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밥은 안 굶어서라고 한다. 자랄 때 밥을 굶고 자라는 것도 아닌데 ‘밥 굶지 않는 일’로 공무원을 원하는 것이다.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찬란한 시절을 보낼 시기의 청소년기가 점점 빛을 바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곧 이어 나오는 시가 그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꿈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라 밥 먹여 주는 게 곧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제 심장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p27 「꿈」 전문
다음의 시 두 편도 많은 부모와 직장인이 공감할 시다.
“아빠가 무릎 꿇는 이유가 나 때문이래요/ 난 그런 밥 먹기 싫어요/ 나도 자식이 생기면 무릎 꿇는 밥을/ 대물림해야 되잖아요//”
-p35 「무릎 꿇는 밥」 전문
“참았답니다/ 때려치우면 당장/ 애들 급식비가 아쉬워서/ 치사하고 아니꼬운 걸/ 참고 참았답니다// 숨구멍처럼 열린 문틈으로/ 한숨처럼 새나오는 엄마 말/ 듣고 말았습니다//
-p63 「급식비」 전문
많은 부모는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얽힌 이런저런 관계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생길 때 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 딸린 식구가 몇 명인가에 따라서 대항을 할지 참고 직장생활을 계속할지를 생각한다. 주머니에 늘 사직서를 넣고 다녔다는 누군가의 이야기 뒤에도 자식이 있었기 때문에 참고 다닌 게 아니겠는가.
“곰은 사람이 되겠다고 굴에 들어가 100일 만에 성공했지만, 우리 엄마는 다이어트 한다고 100일 작전에 들어갔다 3일만에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밥이 눈에 밟혀서 못하겠다고 뛰쳐나왔다//” -p55 「다이어트」 전문
찌운 살을 빼는 게 쉬운 일인가. 마른 사람에겐 살찌우는 게 힘들고 뚱뚱한 사람에겐 살 빼는 게 힘들다. 그게 음식조절과 관계가 있는데 먹는 즐거움을 반으로 줄이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사람도 많다. 다이어트는 단지 살만 빼는 일이다. 사회관계에서도 무심해지고 초연해야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더 힘든 것이다. 그 보다 먼저는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걸 참아야 한다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언제 밥 한 번 먹자// 어른들은 꼭/ 거짓말을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밥이 걸리면/ 거짓말이 따라붙나 봅니다// -p67 「밥 한번」 전문
밥 한 번 같이 먹으면 ‘식구’라고 한다. 식구가 되기 위해 또는 식구를 챙기기 위해 밥 한번 같이 먹자고 그렇게 전화통을 붙들고 바쁘게 산다. 그런데 바쁜 순서대로, 만만한 순서대로 밥을 먹는 게 또 사회생활이다. 밥 한 번 먹자고 하고 한동안 연락 안 한 사람이 없나 떠올려 본다. 입에 밥 들어갈 때처럼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일은 드물다. 이 시집은 밥과 관련된 솔직하지만 촌철살인 같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