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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사냥 나가신다 ㅣ 상상 동시집 7
유희윤 지음, 양민애 그림 / 상상 / 2021년 6월
평점 :
『도마뱀 사냥 나가신다』/ 유희윤 시, 양민애 그림/상상/2021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유희윤 선생님은 할머니 시인이 되어서도 상상력이 퐁퐁 쏫아나는 샘을 품고 계신 건 아닐까? 동시집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 '이러니 손자 손녀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일테지.'다.
대부분 나이 들면서 덤덤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동시 쓰시는 유희윤 선생님은 오히려 더 순수한 소녀로 변해가는 것 같다. "동시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남다르게 잘 쓰는 편은 아니"라고 겸손해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일곱 번째 시집 역시도 독자를 실망 시키지 않는 동시를 만나니 반갑다.
유희윤 선생님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사다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28회 방정환문학상을 받았으며 대산창작지원금, 한국문화예술진흥원창작지원금, 서울문화재단창작지원금,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내가 먼저 웃을게』, 『하늘 그리기』, 『참 엄마도 참』, 『맛있는 말』, 『난 방귀벌레, 난 좀벌레』,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등이 있다.
어째쓰거스까?/ 오늘은 앙 가꾸 나왔는디.// 저것들이 나를 안다니께./ 으메으메 자꾸 모이네.// 어쩌쓰거스까?/ 쌀 봉자 앙 가꾸 나왔는디.//
- 「참새와 할머니」 전문 28쪽
공원이나 광장에서 비둘기가 사람 보고 날아가지 않게 된 지는 오래되었다. 가끔 배를 타고 섬으로 갈 때 갈매기가 배를 따라오면서 과자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예전에는 각기 독립된 삶을 살았다면 요즘 공존공생하는 삶을 택한 경우가 많아 보인다. 반려견 반려묘의 경우도 예전에는 바깥에서 길렀다면 지금은 집안에 들여 스스로 집사임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참새 역시도 자신에게 모이를 주는 할머니를 몰라볼 수가 없을 것이다. 충청도 사투리가 재밌는 시다.
외갓집 헛간에/ 손잡이가 빠져 뽕 뚫린/ 고물 책상 서랍 안에/ 박새가 알을 낳았때.// “보여 줄까?”// 외삼촌이 면장갑 끼고/ 뽕 뚫린 구멍에 검지를 넣어/ 서랍을 살그머니 잡아당겼어.// 세상에나/ 동글동글 얼굴무늬 알 다섯 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어.// 삼촌은 가만가만 서랍을 밀어 넣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어.// “얼른 나가자, 박새 돌아올 시간이다.”//
- 「박새는 외출 중」 전문 34~35쪽
따스한 마음씨를 지낸 가족의 모습이다. 마지막 행 “얼른 나가자, 박새 돌아올 시간이다.”라고 작은 소리로 말한 외삼촌의 모습은 궁금해하는 조카나 외출에서 돌아올 박새 모두에게 듬직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저런 외삼촌이라면 박새를 잘 지켜주겠지, 저런 주인이라면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더라도 잠깐 먹이 구하러는 다녀올 수 있겠지. 하는 믿음이 순간적으로 생기겠다.
촐싹촐싹 초르르/ 도마뱀이 사냥을 떠났어./ 무기는 날랜 혀 하나!// 옳거니,/ 저기 사자가 누워 있구나!/ 살금살금 다가갔어.// -사자야 꼼짝 마./ -꼼짝 말라고?/ -그래, 꼼짝 마.// 사자는 꼼짝 안 했지./ 눈도 꼼짝 안 했지.// 바로 요때다!/ 도마뱀이 팔짝 뛰어올라/ 사자 콧등에 무기를 날렸어.// 잡았냐고?/ 잡았지.// 사자 콧등에 앉은 파리를/ 날름 낚아채 꿀꺽 삼켰지.// - 「도마뱀 사냥 나가신다」 전문 84~85쪽
요즘 말로 간이 배 밖에 나온 도마뱀으로 비칠 수 있는데 이 또한 공존공생의 한 모습이다. 사자는 꼼짝도 안 하고 자신을 귀찮게 하는 파리를 처리할 수 있어서 좋고 도마뱀은 먹을 잡을 수 있어서 좋고. 이렇게 서로에게 득이 되어야 공존공생이 가능한데 요즘 모든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코로나19는 사람에게 득이 되는 것도 없는데 공존하자고 자꾸만 비비적대고 있어 큰일이다.
올겨울엔 장가갈 거야./ 예쁜 색시랑 맛있게 먹으려면/ 도토리를 많이 모아야 해.// 뒷산에 사는 다람쥐 총각/ 가을 내내 콧노래 부르며/ 도토리를 세 자루나 모았어.// 색시 한 자루, 나 한 자루/ 두 자루면 충분해!// 한 자루는 이웃 할머니 드리고/ 두 자루는 잘 두었는데/ 어느 날 보니 한 자루뿐이었어.// 한 자루 어디 갔지?/ 따로 두었나?/ 건넌방에 두었나? 사랑방에 두었나?/ 골방에 두었나?// 어디 두었지? 헛간에도 없네./ 에이 장가가긴 다 틀렸군// 중얼중얼 한숨까지 쉬는데/ 예쁜 색시가 나타나 말했어.// 밥을 조금씩 먹으면 되죠.//
- 「깜빡쟁이 다람쥐 총각」 전문 101~102쪽
한 편의 동화를 읽은 듯하다. 깜빡깜빡하는 다람쥐 덕분에 고향 뒷산에는 상수리나무가 우거져있고 그렇게 또 떨어진 도토리는 이제 주워갈 사람이 없어 전부 다람쥐 차지가 되었다. 동시 속 다람쥐는 부지런하고 마음씨가 좋아서 착한 색시를 만났다. 조금 먹어도 된다니 그렇게 둘이 열심히 모으면 예쁜 가족이 탄생해 알콩달콩 살겠다. 그런데 깜빡깜빡하는 게 다람쥐뿐이랴. 다람쥐보다 더 깜빡깜빡 잘하는 사람도 많아 어쩌면 다람쥐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다.
이렇게 유희윤 선생의 동시에는 가족이나 이웃뿐만이 아니라 동식물에게 빼놓지 않고 애정을 드러낸다. 어쩔 수 없는 동시인이다. 그래서 독자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