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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겨울비다. 겨울비는 어쩐지 슬프다. 김종서도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는,라고 노래를 불렀다. 오랜만에 티브이도 끄고, 라디오도 듣지 않고 모든 소리를 소거한 채 겨울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리듬이 있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기이했다. 무릎담요까지 덮고 있어서 몸이 춥지는 않았지만 그 압도적인 차가운 속력 때문인지 마음이 몹시 추웠다. 냉기가 확 밀려들었다. 감정이 시리고 추웠다. 이렇게 감정이 얼어붙을 것 같을 때에는 뼛속까지 뜨겁게 데워줄 수 있는 뜨거운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냉장고를 열고 콩나물과 김치를 꺼내서 물과 함께 밥을 넣고 팔팔 끓였다. 김치콩나물국밥이 되었다. 그 위에 계란 프라이도 하나 올렸다. 그럴싸하다. 너무 뜨겁지만, 뜨거운 음식은 안 좋다고 하지만 김치콩나물국밥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뜨거운 걸 먹는데 이상하게도 시린 마음이 데워지지 않는다. 숟가락으로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면서 후후 먹었다. 몸은 뜨거운데 감정은 전혀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불안 때문이겠지.


고등학교 때 방학이라 친구와 함께 친구의 동생이 있는,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뭔가를 전해주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의 동생은 방학인데도 집으로 오지 않고 기숙학교에 머물렀다. 공부 때문이었다. 친구의 동생은 공부 때문에 몹시 불안한 상태였다. 그에 비해 나와 친구는 공부나 성적 때문에 불안해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때 공부 때문에 불안해했었다면 지금은 좀 괜찮았을까.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는지 모른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기숙학교가 있는 지역까지 두 시간이나 가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기숙학교로 들어가야 했다. 학교는 고등학교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컸지만 온 사방이 첩첩산중이었다.


남자 고등학교로 방학인데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얼굴에  여드름을 달고 머리를 아주 짧게 밀어 버리고 삼삼오오 돌아다니고 있었다. 친구는 동생에게 옷이라든가 물품을 전해주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30분 만에 나와 친구는 왔던 방법으로 다시 버스를 돌려 타고 돌아왔다. 우리는 갈 때에는 요점도 없는 대화를 하며 희희낙락 거렸지만 올 때에는 둘 다 별로 말이 없었다. 날은 곧 눈이나 비가 올 것처럼 스산했다. 흐렸고 잿빛이 가득한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시비를 걸 것만 같은 날이었다.


우리는 돌아와서 자주 가는 단골집에서 냉동 삼겹살을 먹으며 소주를 마실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둘 다 그대로 친구의 집으로 들어와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친구는 동생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방에 누워서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천장을 보며 멍하게 있었다. 바늘로 하늘을 건드리면 곧 눈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대기에 냉랭하고 시린 기운이 밀도 높게 들어차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가 배고픈데,라고 해서 냉장고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반찬으로 국밥을 만들어 먹었다. 김치를 넣고 먹다 남은 콩나물 무침도 넣고 물을 붓고 라면스프 하나를 넣고 밥을 가득 넣어서 팔팔 끓였다. 그리고 계란프라이를 하나씩 밥 위에 올려서 퍼 먹었다.


먹다 보면 조금은 잊힐지 모른다. 먹는 순간에는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아! 하며 소리를 질러도 금방 과거가 된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시간이 걸렸다. 음식 맛의 반은 추억이다. 우리는 가끔 추억을 맛보고 싶어 예전에 찾던 동네의 그 중국집을 가기도 한다. 그렇게 김치콩나물국밥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시린 감정은 따뜻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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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보이는 밤하늘


조깅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도 적었다. 인간이 달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모자랄 것 같다.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니, 거의 매일 조깅을 하면 “너도 하루키를 좋아하니 그를 따라서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는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주 드물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그저 예, 하고 넘어가지만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루키가 매일 달린다고 해서 매일 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달리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 하루키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말을 뱉어내고 싶지만 그저 혼자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시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조깅을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물론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불안 때문이다. 크고 작은 불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피가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내 불안한 것이다.


한 선배가 있는데 그는 예전에 내게 남자가 말이야, 같은 말을 꽤 했다. 불안을 짊어지고 소심한 성격의 나를 타박하는 말을 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냥 콱 죽으면 그만 아이가. 같은 당차고 마초성이 짙은 사내의 선배였다. 선배의 눈에 나는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 것도 말처럼 그리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쉬운 죽음은 없다.


나는 그 선배와 달리 소심함은 나를 지탱해 주는 열원 같은 것이다.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원이자 불씨 같은 것이다. 대심한 사람처럼 여러 사람에게 이롭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옆의 한 사람에게 해 끼치지 않으려 전전긍긍할 뿐이다. 불안은 잠들었던 눈을 뜨고 나면 내내 나에게 붙어 있다. 불안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조깅을 하는 시간이다.


조깅을 할 때에는 불안뿐 아니라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바닷가에 사는 나는 거의 매일 바다에 나오지만 바다를 멍하게 보고 있어도 여러 생각이 칼과 방패를 들고 나타나지만 달리고 있을 때에는 정말 멍하게 조깅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달리기를 좋아하기보다 달리면서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아서 매일 달리는 것뿐이다.


조깅이 끝나면 다시 불안이 엄습한다.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불안하지 않아서 불안할 때보다 낫다. 달리는 동안에는 불안도 잊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올해 이전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달리지 못한다.


혹독한 한파에서 벗어나 봄으로의 길목에서 조깅을 하면 등에서 땀이 흠뻑 난다. 강변의 조깅 코스에도 달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러너들은 앞만 보며 고독하고 힘들게 달려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꾸준하게 달리는 아주머니들은 러닝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삼삼오오 빠르게 달리면서도 하하 호호 가정사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재잘재잘 수다를 떨면서도 빠르게 달리는 능력을 아주머니들은 지녔다. 부러운 점이다.


작년까지는 거의 10킬로미터를 매일 달렸는데 올해 들어 같은 시간을 달려도 7, 8킬로미터 정도다. 이제 그만큼 느려졌고 힘이 든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몇 달째 마요에 눈이 멀어 매일 먹다 보니, 매일 달려도 살이 붙는 곳에는 어김없다.


인간은 언젠가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온다.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한다. 그런 날이 왔을 때 좀 더 충격을 덜 먹고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조금씩 달리는 거리가 줄어들어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달리기가 좋은 운동이야, 조깅을 해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젠가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오기 때문에 처음부터 달리지 않고 있으면 달리지 못하는 날이 왔다고 해서 큰 실망 같은 건 없을 수 있다. 누군가는 조깅을 매일 하면 살이 빠지겠지요?라고 하는데 조깅은 좀 마른 체형의 사람들에게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살이 많이 쪄서 살을 빼기 위해 조깅을 하려면 하루에 한 6시간? 8시간은 달려야 한다.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 뭐 이런 식으로. 그리고 몸이 무거우면 무릎에 거의 백 프로 충격이 가기 때문에 조깅으로 살을 뺀다는 건 별로다. 살을 뺀 다음에 그런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달린다면 모를까. 조깅 코스에 나와 보면 거의 매일 마주치는 러너들은 대부분 날씬한 체형의 사람들이다.


나 같은 경우도 좀 많이 먹어서 몸이 무겁다 싶으면 어김없이 달리는데 평소와 같지 않아서 쉬는 구간이 많아진다. 어김없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조깅을 하면 무엇보다 사계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루가 화살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요즘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서서히 들어온다. 인간은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이 조금은 관계하고 있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밤에도 구름이 보이는 날이 있다. 같은 구름은 없다. 구름이 보인다면 구름은 늘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인간의 생각과 비슷하다. 인간의 속 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구름의 형태를 가지고 이퀴벌런트 시리즈를 만들었다. 구름의 제각각의 형태는 인간의 심리와 비슷하게 표현했다.


그런 제각각의 구름은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하늘은 그대로인 하늘이다. 하늘이라는 건 눈으로 보여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이라는 것은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니다. 조깅을 하다 잠시 서서 하늘을 느끼고 이 아득하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매일 조깅을 하면 불안에 대해서 하늘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조깅 후 엘베샷


위의 사진과 복장이 많이 다르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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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내린 눈이 눈물이 되어 내려가고 있다


인간은 왜


어째서 배설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배설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되고 배설은 인간 생존에 밀접하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배설을 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우리는 생활하지만 만약 배설을 하지 못하게 되는 처지, 또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인간은 두려움을 가진다.


하루 이틀 정도는 배설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몇 날 며칠을 그럴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배설을 하고 있는데 이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내가 구치소에서 정화조 치리 담당 보조를 맡은 적이 있었다. 구치소의 지하에 내려가면 정말 굉장하고 무시무시한 정화처리 기계가 있다. 지하에는 크고 작은 배관들이 인간의 혈관처럼 마구 꼬이고 늘어져 지하의 천장을 타고, 벽면을 타고, 공간을 차지하고 뻗어서 구치소 내부까지 간다. 구치소의 지하는 보통 아파트 단지 지하의 몇 배? 몇 십배? 정도 크다.


그 배관들이 모이는 곳이 엄청나게 큰 정화조다. 정화조의 크기가 입이 쩍 벌어진다. 매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소리가 지하라서 더 기기괴괴하게 들린다. 인간의 심장처럼 태어나는 순간 숨이 멎을 때까지 쉬지 않고 팔딱팔딱 뛰는 것이다. 만약 이 정화조가 일하기를 포기하고 멈추거나 고장이라도 난다면 구치소는 아마 재소자들과 법무부 직원들의 배설물로 펑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그때 들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동안 배설한 양 역시 실로 엄청날 것이다. 누군가가 그 양을 연구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 전날 먹은 음식에 따라 배설물의 양도 달라지지만 평생 모아본다면 한 개인의 몸에서 나온 양이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일 것이다.


향수와 지하도가 발달한 프랑스의 오랜 배경을 둔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 레미제라블이나 향수 같은 영화 속 프랑스 땅은 늘 축축하고 아주 더럽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길거리를 걷다가 배설이 하고 싶으면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길거리 아무 곳에서 배설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강간 같은 일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났고 여성들은 10대에 이미 출산을 여러 번 하게 되었고 40대가 되면 지금의 6, 70대 같은 모습이었고 대부분 빨리 죽었다.


귀족이나 왕족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건 베르사유를 산책하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드레스를 입은 채 걸어가면서 그대로 소변을 봤다. 베르사유 정원에 화장실은 없었다. 코르셋을 비롯한 드레스를 입고 벗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대로 소변을 보고 말리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소변이 발에 묻지 말라고 굽이 높은 힐이 발전을 했고 소변의 지린내를 지우기 위해 향수가 발전을 했다. 그러다 보니 땅 위에 배설을 너무나 해서 지하도를 뚫어 그때부터 발달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참 이상하고 모순적이다. 이 배설의 공간으로 쾌락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 같은 쾌락에 대해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나라를 구별하지 않고 인종이나 나이를 초월하여 그 쾌락에 접근을 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에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관계를 맺는 건 인간밖에 없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질서를 유지하다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배설을 건물의 복도나 계단 같은 곳에서 아무렇게나 하면서다.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코를 찌르는 배설의 냄새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 극도의 불안은 공포를 불러들이고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다. 결국 배설을 하고 뒤처리를 하지 못해 옷에 묻고 옆 사람에게 다가가는 그 간격의 좁힘 속에서 갈등과 싸움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마저 권력을 가진 자는 무너진 세계에서 쾌락을 추구한다.


자신의 집에서 변기가 막히기만 해도 앞이 깜깜해진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텐트촌에서 가장 필요한 건 식량이기도 하지만 배설을 위한 화장실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건 공중화장실의 위생과 집처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서다. 내가 있는 바닷가에 코로나 이전에 매년 놀러 왔던 나의 여사친과 결혼을 한 영국 사위 존은 바닷가의 공중화장실을 보며 늘 놀라는 말을 했었다. 영국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렇게 해변에 있는 공중화장실이 모래 알갱이 없이 깨끗한 데다 무료로 사용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단체로 생활하는 곳에 배설을 근처 아무 곳에나 한다고 생각을 하면 여지없이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배설은 운명을 넘어 숙명이다. 앞에서 오는 운명은 어떻게든 내가 만들어서 비켜가거나 바꿀 수 있지만 뒤에서 서서히 오는 숙명은 보이지 않아서 피할 길이 없다. 배설은 숙명과도 같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인간은 그렇게 똥을 싸질러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텐트촌이 갇히게 된 것에는 정치가 개입이 되었다. 정치인은 왜 수치심을 모르는 것일까. 도대체 정치인은 어째서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는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고 난 뒤에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좀 잘 나가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유명인들이 얼굴이 드러나는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공격을 받는다. 나와는 생각이 다르군, 나와 다른 정당을 응원하는 군, 하고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유명인이 정치적인 색을 드러내고 발언을 하면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공격을 받는다.


사실 정치는 시민이라면, 국민이라면 모두가 다 정치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명절에 떨어져 있던 형제들, 친척들이 모이면 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싸움을 하게 되고 멱살을 잡기도 한다. 유명인들 또한 자신이 응원하는 정당이 있을 것이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이 드러나는 어딘가에서는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나면 힘겨운 매일을 보내게 된다.


정치에 중독이 되면 마약보다 끊기가 힘들다. 정치가들이 어째서 기를 쓰고 쓰레기 난장판 같은 정치계를 떠나지 못하고 임기가 끝날 때 다시 출마를 하고 선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를 욕망 그 위의 야망이라고 한다. 한 번 잡은 권력의 맛을 절대 끊을 수가 없다. 주위의 측근들이 왕처럼, 신처럼 떠 받들어준다. 공개된 공간의 무대에 오르기 위해 레드카펫을 밟는 순간 수많은 관중이 자신을 향해 환호를 하고 응원의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이 나를 위해 열광하는 모습에 그만 정신을 빼앗기고 나면 이 세계를 더 이상 떠나지 못한다.


정치인이 된다는 건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력, 이력 과거까지 그리고 가족도 비밀을 가지지 못하게 모두 까발려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하지만 정치에 중독이 되면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치계에 몸을 던진다. 정치는 영화만큼 극적이며 스포츠만큼 예측에서 빗나가는 감동이 있다. 이렇게 정치인이 되어 정치인의 옷을 입는다면 수치심이 없어진다. 인간이 외진 곳을 운전하며 가다가 느닷없이 배설이 하고 싶어 산속에서 배설을 하는데 그 앞에 개나 고양이가 있다고 해서 창피하다며 옷을 입지는 않는다. 개와 돼지 같은 동물 앞에서는 우리는 수치심이 없다. 정치인이 수치심이 없는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엄청난 지진이 터졌을 때 그 나라 대통령은 모든 시장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밀어준, 자신의 속해 있는 당 출신 시장에게만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좀 더 구출하고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갔다.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는 에세이에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국가는 당신을 모른다'라는 챕터가 있다. 국가는 개개인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 움직이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오래전에, 이미 국민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가가 있기 때문이고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만 다 던져버리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글만 쓰고 있다. 재난 자본주의는 국가와 권력자의 이익에 부합되며 일반 시민들은 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기만 한다.


인간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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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춥고 꽁치 통조림이 있다면 꽁치찌개를 끓여 먹자. 김치가 없어서 처음에는 초조했으나 2분 정도 고민하다가 꽁치만으로 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끓이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게 예전에도 추운 날 이렇게 꽁치만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2017년쯤이었다. 몹시 추웠다.


2017년 12월 17일 기록을 보면 그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모스크바보다, 삿포르보다 훨씬 추운 날이라고 보도를 했다. 조깅을 하는데 단 한 명도 없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번 혹독한 한파에도 조깅 코스에 몇몇은 나와서 조깅을 했으니 액면으로 2017년의 한파가 이번 한파보다 더 추웠다. 나는 그때 레깅스를 두 장이나 입었고 모자도 두 개나 쓰고 달렸었다.


그날 미친놈처럼 홀로 조깅 코스를 달리고 있는데 저기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오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이런 날씨에,라고 생각을 했다. 자전거가 스쳐갈 때 헬멧과 마스크로 꽁꽁 가린 얼굴이 힐긋 나를 향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얼굴을 다 드러내놓고 바람을 맞으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아팠다. 아니 살갗이 아프다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밑바닥 같은 공기가 얼굴을 아프게 할퀴었다. 정말 얼굴이 10세 아이에게 여러 번 뺨을 후려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이 시리고 아팠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네온의 불빛도 다르고 사람들은 등을 한껏 구부리고 바닥을 보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었고 술집이나 치킨 집에도 사람들이 없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부터 마신 술 탓에 전부 횡설수설이었다. 한 명은 거리에 그대로 토하고 두 명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겨울은 변함없이 반복을 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것들은 늘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엄청나게 추운 날 조깅을 하고 집에 와서 꽁치통조림만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다. 대충 물 넣고 통조림 따서 꽁치도 넣고 고춧가루 넣고 간 마늘 넣고 폴폴 끓이고 마지막에 파를 좀 썰어서 올리면 꽁치 통조림 끝이다. 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3초 정도 했다. 나의 장점이라면 가진 것에서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꽁치만 넣고 끓인 꽁치찌개는 말 그대로 꽁치의 맛만 나는 진정 꽁치찌개다. 뜨거울 때 후후 불어서 국밥처럼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 남기면 안 된다. 식으면 꽁치 본연의 비린 맛이 확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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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랜드 시즌 1

이 드라마는 미국만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라크 전쟁에 나간 미군 브로디가 8년 만에 포로로 있다가 풀려나고, 돌아온 브로디를 미국은 영웅으로 떠받는다. 하지만 국가 정보국 소속 캐리는 브로디가 대통령을 노리는 암살범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하며 브로디를 감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존나 재미있다. 주인공 캐리로 나오는 클레어 데인저는 돌아이 미친년 연기를 너무 잘해서 보다 보면 몰입이 되어서 세상 울화통은 다 나오려 한다. 확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리는 브로디의 정보를 캐기 위해 브로디에게 접근하여 밤을 같이 보낼 만큼 돌아이다.

할리우드에서 세상 미친년 연기를 잘 하는 건 마고 로비다. 청순과 미친 그 간격을 아주 잘 왔다 갔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마고 로비만큼 미친년 연기를 잘 하는 건 전종서다. 전종서의 미친년 연기는 마고 로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홈랜드에서 캐리의 미친 돌아이 연기는 위의 마고 로비와 전종서와는 결이 다른 미친년 연기다. 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듯한 마고 로비와 전종서와는 달리 캐리는 조울증 때문에 확 미침이 나타나는데 엄청 몰입된다. 얼굴이 마치 남자의 얼굴 같아 보일 정도로 이상하게 변한다.

8년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브로디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 아내는 8년 만에 만난 남편이 반갑고 좋아서 야시시 속옷을 입고 다가가지만 아내를 앞에 두고 아내의 얼굴을 보며 혼자서 해결하는 브로디를 보며 아내는 기분이 이상하다. 집 안에 사슴이 들어왔다고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와중에 총으로 사슴을 죽여 버리기도 한다. 브로디는 조금씩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데 10대 딸이 그걸 감지한다.

브로디가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건 8년 동안 이라크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자신의 손으로 같이 붙잡힌 동료를 때려죽여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 캐리는 브로디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계속 여기고 있지만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8년 만에 멀쩡하게 풀어줄 리가 없다고 캐리는 생각한다.

그러는 와중에 브로디가 포로로 잡혔을 때 때려죽인 동료가 살아서 돌아와서 미국의 부통령을 노리고, 캐리는 조울증 약을 먹지 않아 더 미친년이 되어가고.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데. 어떻게 될까. 질퍽한 장면도 꽤나 나오고 시즌 8까지 있는, 아주 재미있는 미드 ‘홈랜드 시즌 1’이었다.









홈랜드 시즌 2

브로디는 알카에다 사령관의 아이를 봐주었다. 8년 중 몇 년을 그의 10살짜리 아들 아이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같이 축구도 하며 그림도 그렸다. 아이샤는 점점 브로드에게 마음을 열고 아버지보다 다 친하게 된다. 그러면서 브로디는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고 알라신을 믿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의 부통령이 허락한 드론 미사일 공격에 아이샤와 함께 12명의 아이들까지 모두 죽고 만다.

브로디는 조국인 미국에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알카에다의 계획하에 테러를 일으키려 하고, 누구도 모르게 부통령을 자살특공대처럼 해치울 수 있었는데 폭탄 조끼가 터지지 않았다. 이후 브로디는 이런저런 풍파를 겪고 정계에 진출을 하여 하원 의원이 된다.

캐리는 자신도 자신이 미쳤다고 믿을 만큼 국가 정보부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 중에 베이루트 작전에 느닷없이 투입이 되어 생사를 오가는 작전의 건수를 올린다. 그때 캐리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짜릿함과 일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캐리를 비롯한 미국 측이 브로디의 영상을 입수하게 된다. 자살 테러를 한 후 미국인들이 보라고 촬영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조끼의 폭탄이 터지지 않고 브로디 역시 죽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 브로디는 부통령과 미국은 거짓과 위선인 자들이라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이다.라고 촬영해 놓은 영상을 캐리와 정보부는 보게 된다. 캐리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기뻐한다.

브로디는 점점 조여오는 생활 속에서 아내에게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 거짓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을 계속 퍼트려야 한다. 온통 거짓말에 의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붙잡혀서 모든 걸 잃게 되는 순간, 캐리는 브로디에게 알카에다 사령관을 잡는 걸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면 자살테러 사실도 숨기고, 가족들도 살릴 수 있고 의원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브로디는 결국 수락을 한다. 브로디는 이쪽의 감시도 받고 저쪽의 감시도 받는다. 이쪽 편으로 알고 있는 저쪽을 속이며 저쪽 편인 거처럼 이쪽에게 보여야 한다. 엄청난 괴리와 고민과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시리즈는 첩보 시리즈인데 영화처럼 막 갈기고 육탄전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 배는 재미있다. 시리즈 1보다 2가 훨씬 조마조마하며 몰입감이 최고다. 브로디는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뒹구는 걸 알지만 모른 척한다. 아내는 브로디가 모른척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역시 모른척한다. 아내 역시 브로디가 캐리와 뒹군다는 걸 알지만 모른척하고 브로디도 아내가 모른 척 한다는 걸 모른 척한다.

그러는 사이에 이 드라마에도 다른 미드처럼 10대 아이들이 사고를 친다. 브로디의 딸과 부통령의 아들이 차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면서 이야기는 더 급박하게 돌아간다. 브로디는 사방에서 자신을 포로로 또는 미끼 내지는 중간 계책으로 여기는 집단과 사람들 때문에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연기를 한다.

이 시리즈는 아무 잘못 없는 민간인과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는 미국, 알카에다 같은 경계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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