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명절 기간에 일행과 함께 바닷가를 어슬렁거렸다. 코로나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와서 바닷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바닷가에 스며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며드는 건 좋다. 영화 ‘안경’을 보면 스며드는 것에 대해서 잘 나온다. 영화가 이래도 돼? 할 정도지만 영화에 스며들어 버리고 만다. 사람이 풍경에 스며들어 하나의 배경이 된다. 내 모습도 누군가의 배경이 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집 근처의 바닷가는 모래사장이 있는 해안과 방파제뿐이라 여기서 조금 떨어진 포구 쪽으로 간다. 거기는 아직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기 좋다. 누군가 저기서 추운지 이소룡의 스텝을 밟으며 허공에 대고 펀치를 날리고 있다. 바닷가에는 냄새가 있다. 바닷가 냄새는 계절에 따라 다르며, 비가 오는 날이나 습기가 많은 날, 흐린 날 다 다르다.


몇 해 전에는 이곳에서 일행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건방지게 누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를 읽었었다. 살인자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무척이나 불쾌하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이야기. 무엇보다 미국식 이야기. 불쾌함을 벌릴수록 문학이란 꼭 따뜻하고 온후함을 주는 것이 문학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좀비 영화 중에서 재미있게 봤던 윌 스미스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네빌은 홀로 살아있다. 여기의 세계관 속 좀비는 낮에는 뱀파이어처럼 나다니지 못한다. 밤이 되면 출몰하는 좀비들 때문에 네빌은 욕조에서 샘을 끌어안고 가만히 밤을 지새운다. 낮이 되면 네빌은 자유해서 모든 물품을 가질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완전히 자유하지만 마네킨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네빌은 외롭다. 오로지 곁을 지켜주는 샘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후에 샘은 좀비 개들에게 물려 좀비가 되려 할 때 네빌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그 세계관 속 네빌은 어쩌면 좀비 떼들과 상대하는 것보다 이 망망한 세계에서 홀로 지독하게 고독한 외로움을 더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문을 열고 나가면 밖에는 사람들이 왕창 다니고 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없고, 내 편도 없고, 가족이 있어도 내가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 느끼면 고립되어 외롭다고 느낀다.


이렇게 걷다 보면 똥강아지들을 본다. 어미는 묶여 있지만 새끼들은 풀어놨는데 사람만 보면 신기하고 좋아서 우르르 달려든다. 그 짧은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댄다. 내가 어릴 때에도 집 마당에 개를 키웠다. 강아지 이름은 깜순이. 깜순이 집에는 잠에서 갓 깨어난 다섯 마리의 새끼들이 막 일어났다. 깜순이 새끼들이 집을 나와 마당을 뛰어다니고 화단을 망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잘못 건드린, 처음 본 사마귀의 당랑권을 받은 한 마리의 새끼 강아지는 앞발로 사마귀에게 덤비다가 혼비백산을 한다. 아버지가 마당을 나가면 나머지 네 마리가 뒷다리로 땅을 딛고 대문에 매달렸다. 얼굴만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사라지면 동시에 몸을 들려 마당을 경기장 삼아 지치지 않고 레슬링을 한다. 새끼 강아지 입에서는 기분 좋은 비린내가 머물러 있다. 그러다 우유를 데워 놓으면 자석처럼 머리를 맞대어 얼굴을 박고 까만 코가 하얗게 되면서 그릇을 핥는다. 깨끗하고 기분 좋은 비린내가 새끼 강아지들 입 안에 가득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끼 강아지들은 또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어린것들은 뭐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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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 절찬리 상영 중이다. 나는 7회 정도까지 봤다. 학교가 아주 엉망진창인데 이 엉망진창이 학교 밖으로 퍼져 나가고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몰고 온다. 그 와중에 이유미가 연기한 이나연은 최고의 빌런이다. 악역을 마치 그렇게 태어난 사람처럼 해버린다면 그건 연기를 잘하는 거겠지. 오징어 게임에서도 히트를 날렸지만 어쩐지 이 영화는 박화영 1, 2에서 세진이의 모습이 좀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곽부성과 기무라 타쿠야와 강남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잘생긴 청년은 누구인가. 이런 시원시원한 마스크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장동건 이후에는 영화판에서는 이렇게 조각 같은 외모는 피하려는 것 같은데, 이 시리즈가 전 세계 동시 방영이라 음, 그렇군, 하며 납득이 된다. 유치원 어린이 좀비들에게 좇기는 유튜버의 모습은 단비 같은 웃음을 준다. 수능에 대한 경멸적인 모습을 보이는 욕 잘하는 거친 미진도 극의 재미를 준다. 이렇게 욕을 듣기 좋게 기가 막히게 연기하면 최애 캐릭터가 된다. 특히 조삼모사(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안다). 대수 역시 지옥 같은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의 대화와 행동으로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노래도 잘 부른다. 가수가 꿈인 대수가 직접 만들어 옥상에서 다 같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7화까지 보면서 관통하는 대사들이 몇 개 있었다.

“희망은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고문이다.”

“그 절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

“너, 너 먹고 싶어.”

“과학은 상상에서 시작해 미스터리로 끝난다. 퇴근길에 무당을 찾아갔다. 이거 하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우리를 구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몇 화 남지 않은 나머지가 긍금하다. 생각해보면 어쩌다가 좀비가 전 세계의 영화를 점령해버렸다. 왜,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좀비 이전에는 뱀파이어가 있었는데, 섹시하고 하늘도 날아다니고 이빨도 뾰족해서 좀비보다는 덜 아프게 목덜미를 물어 피만 쪽쪽 뽑아 먹었는데, 그랬는데 어느 날 좀비가 한 두 마리 늘더니 순식간에 뱀파이어를 영화 속에서 몰아내 버렸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내일이 오는 게 싫어졌다. 휴대폰의 전화번호는 늘어나는데 막상 전화를 할 사람은 줄어들고, 학교 다닐 때 들었던 불안은 졸업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큰 불안이 뒤 따른다. 그래서 매일 이어지는 오늘이 잔인해졌다. 어제의 나는 어떻든 살아있고 하루를 정리할 필요도 없고 불안과도 이별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눈뜨면 잔인한 오늘이 시작되고 불안은 눈두덩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사람들은 잔인하고 불안한 오늘보다 행복한 과거에서 살고 싶었다. 인간의 삶에 싫증난 사람들이 뱀파이어가 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는 인간처럼 사고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며 무엇보다 영생한다. 공포의 최고에 있는 뱀파이어가 오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 지쳐 뱀파이어가 되길 바랐다.


그 괴리 사이를 뚫고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비가 되면 모두가 똑같다. 뱀파이어처럼 사고하며 이리저리 재지 않는다. 부모고 자식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뭐고 간에 전부 그저 하나의 먹이일 뿐이다. 뱀파이어는 하급, 상급 계급으로 나뉘지만 좀비는 그야말로 평등, 평등하다. 뱀파이어처럼 옷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씻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지치지도 않는다. 오로지 하나의 신념으로만 움직인다. 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를 읽어 보면 전 세계에 좀비가 일어나고 20년이 지난 후의 각 국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대처한 방법에 대해서 서술해 놓았는데 거기에 좀비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으로 접근해있다. 하나의 군인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비용이 들지만 군인을 좀비로 대처하면 군복, 잠을 자야 하는 막사, 식사 같은 것이 전혀 필요가 없다. 비용이 절감된다. 좀비는 구덩이에 쥐가 들어가면 거기에 머리를 박고 3일 동안이나 쥐를 찾으려고 으르렁 거린다. 좀비는 그런 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신념! 그 하나로 움직일 뿐이다. 이 세계 대전 Z 속 전 세계에 좀비가 일어난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이 ‘월드 워 Z’였다. 영화 속에서도 각국이 좀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나온다. 좀비라는 매개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좀비라는 카테고리를 빼고 그 안에 재해를 넣으면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오늘 이 시기에 코로나 대신 좀비를 넣어도 각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공포영화의 아이템으로 좀비는 최고인 것이다. 지금 우리 학교를 5편 정도까지 봤을 때는 정유정의 ‘28’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유정의 소설을 통틀어 나는 ‘28’이 가장 좋았다. 개와 사람이 같이 걸려 버린 인수 공통 감염병으로 28일 동안 폐쇄된 도시 화양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같은 일. 정말 재미있었다. 개들과 인간의 사랑이 개들과 인간의 같은 감염병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절묘한 문체로 끌어당겼다. 지. 우. 학처럼 도시를 폐쇄하고 군이 투입되고. 하지만 6화가 지나고 7화가 지날수록 모든 효산시의 모든 사람들을 무증상 감염자로 지정을 해버린다.


재난 영화에서 영화의 태도는 늘 시스템과 절차를 문제 삼는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책상에 앉아서 방법을 제시하고 시스템을 만드니 현실을 살아가는 일반국민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코로나 시기에 방역 대책을 매번 내놓는 정부와도 비슷하다. 전혀 다르지 않다. 지. 우. 학은 기가 막히게 정부를 꼬집고 있다. 대재앙이 불어닥치면 언제나 노인과 서민들이 맨 앞에서 그 감당을 해야 한다. 죽어나가도, 폐업을 해도, 부작용이 심해도, 후유증을 앓아도 그저 하나의 숫자로 기록될 뿐이다. 국가는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시스템은 늘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 현재 시대의 숙제가 되었다. 지. 우. 학을 잘 벌려서 보면 그런 모습을 볼 있다. 그러고 보면 정유정의 28을 읽은 지가 아주 오래되었는데 아직 영화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전 세계의 좀비 영화가 가지는 실수, 오점은 현대 시대의 좀비는 탱크나 총기나 화기에 이길 수가 없다. 그 이빨로 들이대도 철판을 물어뜯을 수가 없다. 실제로 현실에 좀비가 나타난다 해도 총이나 대포에 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좀비물을 만드는 감독은 그 부분에 있어서 늘 고민을 하고 있다.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좋은 좀비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좀비 영화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게 ‘킹덤’ 시리즈다. 옛날에는 칼과 창으로 좀비를 막아내야 하니 설득이 된다. 그리고 이 시리즈다. 지. 우. 학의 시작은 학교다. 학교 역시 총과 칼보다는 책상과 대걸레 같은 것뿐이라 좀비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거기서 주인공들은 고립된다. 그리고 그 고립에서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구할 사람은 오직 자신들밖에 없다는 걸 안다.


잘 만든 좀비물은 좀비 그 자체에 중점을 두지 않고 좀비, 그 밖의 배경에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과 아주 밀접하다. 오직 하나의 신념으로만 움직이는 것들- 자연재해, 바이러스, 세균 같은 것들은 인간사회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지. 우. 학은 구멍이 보이고 단점도 보이지만 일단 좀비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재미있다. 악질스러운 빌런과 나오고, 물렸으되 좀비가 되지 않은 빌런도 나오고, 학교까지 노트북을 찾아가려는 옹고집 형사도 나오고, 고구마 캐릭터도 있고, 어디서 봤던 장면도 있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


과학교사로 나온 김병철이 좀비가 되었을 때, 그 모습은 영화 28주 후의 돈 역으로 나온 로버트 칼라일이 좀비가 되었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로버트 칼라일은 아무리 봐도 톰 요크와 닮았고. 영국인들은 꼭 그렇게 생긴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좀비 물이라 진짜 주인공들은 좀비들이다. 좀비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낸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까지가 1월 31일에 쓴 글인데, 지금은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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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무라 히라쿠와 메이


댄스 댄스 댄스를 읽으면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재미있는 부분이라 큭큭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유키의 엄마인 세계적인 사진작가 메이는 하루키의 아내인 요코 씨이며, 소설 속 메이의 남편이자 소설가로 나오는 마키무라 히라쿠는 자신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마키무라의 소설은 젊은 시절에는 문장도 시점도 신선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당시 신진 사진작가였던 메이와 결혼을 했지만 이후에는 형편없는 작품이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일본의 문단에서 배척받는 분위기를 감지하던 하루키는 자신을 한 번 돌려 까면서 일본의 고착화된 문단도 아울러 돌려 까버리는 것 같다.


소설 속 마키무라가 제대 후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예리한 청춘소설에서 전위 작가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까고 있는데 아무래도 일본 문단 전체에 깔려있는 관습적인 문학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설 속 사진작가인 아메는 일상생활은 비록 엉망이지만 냉철한 시선의 사진으로 세상을 사로잡았다고 추켜 세우고 있다. 하루키는 일큐팔사 3권이 나왔을 시기 2010년쯤 인터뷰를 보면 아내인 요코 씨에 대해 ‘태어나서 한 번도 화장이나 파마를 해본 적이 없는 심플한 화이트 셔츠 같은 여자’라고 했다.


요코 씨는 하루키에게 가장 든든한 파트너이자 능력 있는 편집자 노릇을 했다. 원고를 완성하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보여주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었고, 아내의 심사를 무사히 통과해야만 담당 편집자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였다. 요코 씨는 소설 속 메이처럼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초기 에세이 속 사진은 아내의 작품이 많다.


첫 사진은 내가 담은 바닷가 사진인데 아마 하루키와 요코 씨가 바닷가를 거닐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댄스 댄스 댄스 속 유키는 정말 하루키가 바라는, 하루키가 원하는 딸의 모습처럼 보인다. 많은 팝을 나눠 들으며 음악에 대해서 딸과 이야기하는 모습. 사진들은 하루키의 모습들입니다.

하루키의 아내, 요코 씨의 얼굴이 드러난 사진은 구글에서도 잘 찾을 수 없다. 젊은 날의 하루키와 같이 있는 요코 씨의 모습은 위에서 하루키가 말한 대로 파마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하루키보다 좀 더 냉철한 모습처럼 보인다. 하루키의 어떤 에세이에서, 편집자가 집으로 와서 차를 내 오는 동안 편집자가 거실에서 요코 씨의 손금을 봐주고 있다면서 구시렁거리는 이야기도 있다. 질투는 우리 인간을 좀 더 생활에 매달리게 한다.


하루키 집, 하니까 유튜버 ‘안협소’에서 하루키의 집을 소개했다. 이 유튜버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건축가인데 일본의 이런저런 재미있는 소식을 전한다. 하루키는 구글에서 자신의 집을 검색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집을 구글링 할 수 있게 해 놨다.


하루키는 외국을 떠돌며 소설을 쓰다가 50대에 현재 가나가와현 오이소에 정착을 했다. 코로나 이후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곳에서 꾸준하고 글을 적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 시기에 어디에도 가지 못했는데 소설 한 편 탁 내주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하면 하루키의 집을 꽤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보통 유명인들은 구글맵에서 자신의 집은 나타나지 않게 하는데 하루키는 ‘마이까’같은 마음이다. 하루키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 또는 하루키가 사는 동네는 신작 소설 일인칭 단수의 ‘크림’에 나오는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는 동네의 풍경과 아주 흡사하다. 이 ‘크림’이라는 소설이 일본에 출간되고, 또 그 소설이 미국의 뉴요커지에도 실렸는데 한국에는 이쯤에 나와야 하는데 너무 안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기다리다 ‘그래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만들어서 개인적으로 소장하자’라고 해서 영차영차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번역해서 책으로 만들어 버렸다.https://brunch.co.kr/@drillmasteer/1160

이렇게 개인적으로 만든 책은 판매가 목적이면 안 된다. 그저 소장해야 한다. 그리고 후에 일인칭 단수가 한국 출판이 되었을 때 ‘크림’을 펼쳐서 우리가 번역한 ‘크림’과 비교를 해보았다.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아서 흡족했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하루키의 집으로 올라가는 풍경이 소설 ‘크림’ 속에 나오는 풍경과 흡사하다. 고급 주택들이 양옆으로 꽃처럼 피어있고 그 사이를 기분 좋은, 역시 고급 돌길이 죽 나있다. 고즈넉하고 평온한 느낌의 동네다. 정말이지 어떤 무엇인가에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기에 충분하다는 기분이 든다.


댄스 댄스 댄스 한국판이 출간되었을 때 한국 독자들에게, 소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영어나 일어로 써서 문학사상으로 보내달라고 했을 만큼 하루키는 한국 독자, 특히 자신의 소설을 읽는 젊은 한국 독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하루키의 장편 소설 선 인세가 지금은 30억 정도라고 한다. 계약을 하고 수입해서 번역하기 전에 하루키에게 지급하는 계약금이 30억 정도인데, 예전에, 2013년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당겨 올 때 선인세 16억 정도로 계약을 하려 했는데 판권을 못 가져왔다고 한다. 나는 계약금이 백만 원인데(웃음) 30억이라는 건, 아니 16억이라는 건 그저 저 머나먼 행성의 이름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세계의 온 나라에 하루키의 소설이 번역이 되어 출간되어 있으니 어마어마한 수입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 비해 사는 저택은 작지는 않지만 아주 크지도 않다. 하루키의 저택에는 수입만큼 어마어마한 레코드판이 있다. 몇 면장이라고 한다. 아주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하루키만큼 엘피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문화 평론가 김갑수 선생인데,, 쓸데없는 말이었다.

하루키의 저택에 있는 작업실 겸 음악실의 모습은 한 번 앉으면 나오기 싫을 만큼 하루키 음악에 대한 집요가 엿 보인다. 하루키는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사랑은 소중합니다”라고 했다. 일큐팔사에서 덴고와 아오마메도 사랑의 소중함을 말한다. 사랑이 없는, 또는 그 관계가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종교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매킨토시를 좋아하는 하루키는 오래전 에세이에서 맥을 쓰는 것에 대해서 글을 적었다.

하루키 집의 문패 [시나몬 잉크 자료실]


하루키의 저택은 외벽에 나무로 이루어져 있는 3층짜리 건물이다. 저택 문패에는 이렇게 ‘시나몬 잉크 자료실 <무라카미>’라고 쓰여있다. 하루키라고 하지 않고 무라카미라고 쓴 이유를 생각해보면 마지막으로 나온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안에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성과 이름에 관한 부분이 있다. 어떻든 이런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며 일을 하니까 코로나에서도 안심하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구글맵으로 저택의 사진만 보고 무작정 오이소로 찾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올바른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데 방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직 한국에 나오지 않은 에세이


그리고 이 책, 아직 우리나라에는 나오지 않은 이 에세이에 지금 살고 있는 오이소에 대해서 적은 글이 있다. 그리고 사는 동네에서 자주 들리는 과자가게나 재즈 바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하루키가 들린 그곳을 따라서 하루키의 팬들이 맵에 표시를 잘해두었다고 한다.


하루키가 사는 동네는 고급스러운 주택가지만 저 앞에는 바다다. 그래서 하루키가 들리는 가게들은 바다에서 아주 가깝다. 몹시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카페나 재즈 바의 경우는 또 상당히 프로스럽다. 하루키 덕분에 오이소의 이런 가게들도 꽤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사람들이 많이 찾았으면 좋겠네.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하루키는 매일 달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데, 동네 주민들은 하루키가 달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키를 만나려면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일주일 정도 머문다고 생각하고 하루키가 달리는 시간에 맞춰 동네를 달리다 보면 마주칠지도 모른다.



밑으로는 하루키 작업실 내부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올해 초 와세다 대학에서 만든 하루키 도서관에 그대로 재현을 해놨다.https://brunch.co.kr/@drillmasteer/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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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2-02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16억, 30억! 정말 딴나라 사람 얘기군요.
전 하루키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말은 이렇게 해도 묘하게 빠져드는 것도 사실이죠.ㅋ)
그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건 하루키의 이런 생활인 것 같습니다.
검소하고, 소박하고 자신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건 정말 본 받을만
한 것 같습니다. 1Q84 2, 3권을 읽어야 하는데...ㅠ

교관님은 정말 하루키를 좋아하시는군요!^^

교관 2022-02-03 10:52   좋아요 1 | URL
아휴 하루키 진짜 좋아하는 팬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걸요 ㅋㅋㅋ
 

근래에 눈과 귀와 몸으로 스치는 것들에 대해서 적어본다. 적기 전에 미리 호러블 하거나 낙관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일과 생활에 비관하지는 않지만 낙관하지도 않는다. 반드시 행복을 좇지도 않는다. 행복 노동자보다는 덜 불행하면 그만이다. 라는 게 언제나 나의 입장이다.


요즘은 속보라는 말에 무뎌졌다. 속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속보다. 속보가 매일 같이 뜨는, 요즘 같은 시기가 또 있었을까. 매일 기가 막히는 사건사고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오는 것에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아졌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런 거잖아요!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근간의 매일같이 쏟아지는 속보는 5, 6년 전 그때에도 인터넷이나 와이파이가 발전해 있었지만 매일 속보가 터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속보가 현관문 앞에 버려진 피자집 전단지처럼 보이는 건 요즘이라서 가능하지 싶다.


도대체 개를 왜 트럭에 매달아서 달리는 것이며 어째서 얼어붙은 호수에 묶어 두는지. 소시지에 낚싯바늘을 넣어서 공원에 뿌려 놓는지, 얼마나 비정상적인 인간이기에 이렇게 하는 걸까. 이런 인간들에게 법이라는 건 어째서 관대하기만 한 것일까.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법이 제대로 심판을 못하니까 슈퍼 빌런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악질 범죄자들에게 법의 효력이라는 건 제대로 닿지 않는다. 나는 구치소에서 2년 동안 근무를 해서 잘 안다. 출소를 할 때 다음 주에 또 올게, 하며 나간 재소자는 어김없이 그때에 다시 들어온다. 마블의 미드 시리즈 중 루크 케이지를 보면 “언제 법이 우리 편에 선 적이 있어요?”라고 루크 케이지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이제 속보를 밥 먹다가 봐도 그저 광고처럼 보게 된다. 수잔 손탁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엘리베이터 안에 보통 층수 버튼이 문쪽에 있고, 또 벽면 쪽에도 층수 버튼이 있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3기가 가동하는데 한 엘리베이터는 야외가 다 보이는 통유리라 한쪽에만 층수 버튼이 있다. 그런데 층수 버튼을 누르고 계속 그 앞에 바짝 붙어 있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문제는 다른 층수를 누르려고 좀 비켜달래도 마치 이스터 석상처럼 그 앞에 꼭 붙어 있다. 참 알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11층 버튼이 있는 자리에 늘 침이 말라 붙어 있었다. 매일 저녁에 거기에 침을 뱉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주의, 경고를 해도 변함없이 가래를 뱉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그 아주머니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 아주머니의 자식들이 사죄를 하고 어느 날부터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게 한 6개월 정도 지속됐다.


이건 코로나 전의 이야긴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에는 안에 있는 사람이 먼저 내린 다음에 올라타는 게 보통 엘리베이터의 예절 같은 것이다. 하지만 문이 열리면 내리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후다닥 타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한 두 명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일하는 건물 꼭대기층에 한 번은 다단계 회사가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문이 열리니까 우르르 타기에 저, 저 좀 내리고;; 까지 말했지만 그냥 삐, 소리가 날 때까지 타버린다. 할 수 없이 꼭대기까지 그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일하는 건물 같은 층에 가끔 이야기를 하는 사장님이 있는데 몹시 착하다. 사람들에게 싹싹하고, 삭삭하다가 맞는 말인가. 아무튼 좋은 사람인데 나에게 이런저런 공구가 많아서 자주 빌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빌려주면 함흥차사다. 보통 일주일 정도 그냥 가지고 있다. 내가 사용할 일이 없어서 굳이 달라고 하지는 않는데 한 번 빌려 가면 바로 돌려주지 않는다. 특히 줄자 같은 경우는 꽤나 좋은 물건이라 이건 누구에게도 빌려주기 싫은데 빌려가서 쓰고 나면 자신의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버린다. 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달라고 하면 어떤 재스처나 소리도 없이 꺼내서 준다. 그게 아마도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스타일인 것 같다. 스타일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천성이나 성격은 후천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스타일은 누군가 앞에서 나타나는 관념이라 쉽게 바뀔 수가 없다. 하지만 빌려간 물품을 쓰고는 바로 돌려주었으면.


조깅을 하다 보면 군데군데 산스장 같은 곳에서 몸을 푸는데, 공중화장실이 1분 정도만 걸어가면 닿는 저곳에 있는데 그냥 산스장 근처에서 소변을 보는 아버님'들'이 있다. 웃긴 건 이렇게 오줌을 갈겨 놓으면 여름이 되면 거기서 오줌 지린내가 심하게 난다. 폭염인 날에는 더없이 지독하다. 아이씨 욕이 정말.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러 가는 길목에는 아주 좁은 골목을 하나 통과한다. 둘러가도 되지만 그 골목이 좋아서 내내 거기로 다니고 있다. 골목은 사람 3명이 지나가면 꽉 차는 그 정도. 그런데 오전 시간에 느닷없이 근처 휴대폰 대리점에서 직원들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있다. 3명이서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나면 그 밑에 가래와 침이 홍수를 이룬다. 전자담배를 피우는데도 그렇게 가래와 침을 단전에서 끌어올려 뱉어야 한다니.


그래도 늘 복잡한 주차장에 비상식적으로 주차하는 인간은 아직 못 만났고, 층간소음 문제도 없고, 쓰레기를 내 앞에 버리는 인간도 없고, 빌려간 물건을 일단 다 받았고, 대기가 오염되고 있지만 방독면을 쓸 정도까지는 아니고, 오존층이 완전히 파괴되지도 않았고, 소음 때문에 모두가 보청기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서 총을 구입하여 쏴대지도 않고, 지하자원의 고갈은 좀 시간이 남아있다.

조깅을 하면서 매일 보는 풍경인데 작년 이맘때와 똑같고, 3년 전 이맘때와. 5년 전 이맘때와 똑같다. 변화가 없다. 늘 이 구도에 이런 모습이다. 하지만 매일 다르다. 매일 바람이 다르고 구름이 다르고 반영이 다르다. 색감이 다르고 듣는 노래가 다르다. 달리다가 중간에 스쾃을 하는데 할 때마다 다리가 끊어질 것 같다. 이 정도면 이제 괜찮지 않아?라고 할 법도 한데 할 때마다 다리가 끊어질 것 같고, 플랭크는 할 때마다 중력의 힘을 너무나 느낀다.

가로등과 가로등 밑을 지나치는 사람과 벤츠와 강건네 아파트 단지와 인공광원과 작은 자연광의 별빛이 만들어낸 이런 사진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기묘하게도 다양한 컬러로 채색되어있지만 쓸쓸하고 고독하다.

한파였던 날이었는데 고양이가 야외에 나와서 웅크리고 있다. 길고양이는 늘 시선을 두게 만든다. 저들은 이렇게 추운 날 어디서 몸을 말고 잠이 드는 걸까. 고양이의 일생은 70%가 느슨한 잠으로 보내는데 이렇게 추워서야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일단 생존을 헤야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인간보다 나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작은 심장이 팔딱팔딱 빨리 뛰고 있다. 우리도 힘낼 테니 닝겐도 힘을 내봐,라고 한다. 고양이나 인간이나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디고 있다. 어디서 얼마나 잘 견디는지가 요즘의 관권이다.

이 도시는 95년도에 광역시가 되고 난 이후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과 집은 전부 철거를 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도시 전체가 30년에 걸쳐 리모델링되어서 낡고 보기 싫은 옛것들은 다 사라져 간다. 그래도 아직 구석으로 가면 지는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곳이 있다. 이런 대비를 보는 건 언제나 좋다. 왜냐하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런 곳을 많이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이제는 그곳에 전부 새로운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진으로만 남아있어서 아 이곳에 이런 집이 있었지, 하게 된다. 이 집도 허물 이지기 일보직전이다. 공포 유튜버들은 어서 출동해서 귀신 영상을 촬영하라고.

그렇게 돌아서 오다 보면 여기 동네도 예쁜 곳이 많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3월부터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도로를 막고 매주 주말에 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다양하며 오래되어서 꽤나 즐길거리가 많다. 아직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설치해 놓은 인공조명이 밤이면 반짝이지만 거리는 쓸쓸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매일 저녁 복적 거리는 도로인데 언젠가 그런 모습을 또 보겠지.

이곳도 아직 골목이 남아있다. 80년대 지어진 집들이 데면데면 붙어있다. 80년대 2층 집에 산다고 하면 와 잘 사는 집 아들내미네, 같은 말을 들었다. 이층의 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열심히 연애편지를 쓰고 방황했던 아이들은 지금은 다들 어른 중의 어른이 되어 있겠지. 그리고 명절에나 집을 한 번 찾을지도 모른다. 집의 대문을 통과하는 순간 중고등학생이 되어서 그 옛날을 추억하고. 골목에서 친구를 큰 소리로 부르면 누군가가 야 이놈아 시끄럽다! 며 더 크게 소리치고. 골목에 기대어 친구를 기다리던 시간은 아직 골목에 그대로 있는 것만 같겠지.

그렇게 영차영차 달려서 들어오면 하루의 달리기가 끝이 난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지만 매일 느끼는 감촉은 다르기 때문에 조금은 특별하다. 오늘은 플랭크를 하면 몇 분부터 몸이 떨릴까, 이런 생각을 달리기 전에 한다. 좀 웃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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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비가 줄어들어 작년 한 해 1인당 쌀 소비가 57킬로그램이라는 기사가 났다. 누군가의 댓글에서 ‘물론 힘을 내는데 탄수화물이 꼭 필요하지만 농경시대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 시대에선 그렇게 힘을 써야 할 일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임. 중략. 결론은 옛 말에 하루 세끼 먹어야 건강하다는 말은 농경시대에서나 통용되는 말임’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 일반 대중의 의식이나 눈높이도 전문가만큼 수준이 높아졌다. 지난번에도 쌀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403


농사만 짓던 농경시대에서 곡기로만 배를 채우던 생활을 했는데, 곡기에서 맛이라는 것이 빠져 있으니까 장을 담갔다. 그래서 장에 찍어 먹고 곡기에 올려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국이 등장했고. 그런 구조가 거의 1970년, 80년대까지 내려온다. 사람들이 대체로 몸을 많이 움직였다. 노동의 보상을 밥으로 했고, 평일의 위로를 주말의 회식으로 받았다. 석탄을 캐고 지금의 초고도화 기업들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쌀을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


회식의 기본은 다 같이 둘러앉아서 같이 먹는다. 그리고 회사들은 대부분 ‘가족 같은 회사’라는 분위기를 앞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도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서로 보기 싫고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회사에서까지 가족 같은 분위기를 내세워 끊임없이 부려 먹었다. 그 관습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끊거나 잃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뉴스에서도 한 기업에서 발가벗기고 따돌리고 괴롭혀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밝혀졌다. 가담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느끼고 회사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그게 해결책일까. 아직까지 가족처럼 연결되기를 바라는 회사가 얼마나 많을까.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오랜 전통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70년대부터는 전통 한정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가격은 비싸지만 ‘전통'이 들어가기에 행사 때에는 꼭 가서 한 번 먹어야 하는 음식 또는 음식점처럼 여겨졌다. 똑같은 쌀밥 한 그릇인데 전통이라는 말을 내세워 음식을 파는 식당은 그 한 그릇의 가격 또한 비싸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이라는 말에 매몰되어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우리는 전통 한정식 집으로 어른들을 당연하게도 모시고 갔다. 전통 한정식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음식을 파는 식당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이 많이 나온다. 입이 벌어지고 눈이 호강을 한다. 어떤 음식부터 젓가락을 대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물론 일류 요리사가 요리를 내놓은 레스토랑만큼 비싸다.


그렇다면 정말 전통 한정식이 이랬을까. 도대체 전통이라는 건 무엇이며 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을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 옛 그림 중에 직자 미상의 ‘선묘조제재경수연도’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3, 4년 정도 지난 후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의 내용은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그들의 부모를 연회에 초청하여 왕이 대접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잘 뜯어보면 음식을 하는 장면도 보이고, 음식을 먹는 장면 또 음식을 나르는, 서빙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은 궁에서 음식을 만드는 대령숙수들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조리사를 대령숙수라 하는데 그들이 궁에서 대부분 요리를 했다. 당시 유교문화였던 궁에서는 일 년에 제사가 170회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많은 제사를 지내야 할 식재료를 이고 지고 나르고 다듬어야 하는데 이는 여자의 힘으로 불가능했다. 식재료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양도 양이지만 170회마다 그래야 하니 힘이 좋은 대령숙수들이 조리와 요리를 했다. 요즘에도 고기를 나르고 납품하고 배달하는 건 대체로 남자들이 한다. 그러다 보니 수라간에 들어가는 남녀 비율이 16대 1 정도로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대장금에서는 여자들이 궁의 요리를 전담했지만 드라마를 위해서 허구의 요소가 짙었지 싶다.


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겸상이 없다. 모두가 독상이다. 각각 밥상을 따로 받는다. 그림을  보면 그렇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밥상 위에 밥그릇이 세 개나 네 그릇 정도 놓여 있다. 궁에서 내오는 음식이라고 해서 사치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 뜨거운 음식은 뜨거울 때 먹을 수 있고 시원한 음식은 시원할 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릇이 비면 서빙을 보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비어있는 그릇을 가져가고 다시 음식을 내어 준다. 프랑스의 상차림이 보통 그러하고, 유명한 셰프가 하는 식당에서도 요리는 하나씩 천천히 나온다. 프랑스의 저녁은 대체로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음식을 느끼고 음미하며 길게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이 긴 시간 매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으니까 책을 많이 읽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봐요, 그건 너무 옛날이잖소.라고 할지도 모른다. 전통이란 그런 것이지만, 그렇다면 가장 최근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보자.

대한제국의 고종의 상차림이나 연회 그림을 보면 서양 음식과 한국 음식이 상 위에 같이 놓여 있는 경우도 있고 서양의 음식으로만 채워진 경우도 있다. 아관파천 후 고종은 러시아에서 맛있게 마셨던 와인을 식탁에 자주 올렸다고 한다. 다 같이 모여 있되 상은 1인 독상 체재다. 똑같은 음식이 개인에게 각자 주어졌다. 전통 한정식 식당처럼 상 위에 여러 음식을 올려놓고 한 그릇에 여러 젓가락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코로나 이전 티브이 예능 방송을 보면 전국으로 다니면서 한정식이라며 어마어마한 상차림을 많이 보여줬다. 그건 어떻게 봐도 이상하지만 방송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했다.

이 그림에 가까운 사진은 많이 봤을 텐데, 당시 서민의 밥상이라며 이렇게 먹었다고 알리고 있다. 입이 벌어질 정도의 양이 담긴 밥그릇이지만 아마도 사진 촬영을 위해 큰 그릇을 놓고 연출했지 않았나 싶다. 이는 무엇을 알리려는 것인가 하면 아마도 쌀 문화권의 식탁에서 주인공은 반찬보다는 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최초의 얘기로 돌아가서 예전에는 쌀을 많이 먹어도 몸을 많이 움직여서 일을 했기에 살이 찌지 않았다. 쌀 소비가 활발했고 7, 80년대는 또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그런데 현재는 쌀 소비가 엄청 줄었지만 쌀은 또 비싸고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돈을 벌지 못해 울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링크를 걸어 놓은 아티카 코마치에 대한 이야기에서 도정을 바로 한 쌀을 먹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정을 바로 한 후의 쌀을 먹을 수 있는 구조에 놓여있지 않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전통이라는 말이 음식에만 붙지 않는다. 전통민속춤이라고 알고 있는 승무는 스님들의 전통 춤이 아니다. 스님이나 비구니에게는 춤이 없다고 한다. 이 춤이 생긴 지가 70년대다. 문화재로 인정을 받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전통적인 춤은 아니다. 그래서 승무를 소개할 때 전통민속춤이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김덕수 사물놀이도 전통놀이로 알고 있지만 이는 김덕수가 만든 사물놀이다. 김덕수가 만든 사물놀이는 국가에서 인정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도 1980년에 김덕수 외 몇 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놀이다.


더 쓸데없는 말이지만 예전에 미국의 비건 대표의 닭 한 마리 요리가 한창 뉴스를 장식했다. 아내가 닭 한 마리 요리를 좋아해서 한국에 왔을 때 레시피를 전수받기도 했다면서 한국을 사랑하는 비건 대표, 라는 식으로 비쳤다. 요컨대 파스타를 너무 좋아하는 한국인이 있다고 치자. 파스타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매일 파스타를 해 먹었다. 밖에서도 파스타를 사 먹고 집에서마저 파스타를 해 먹었다. 파스타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요리하는 방식에 따라 맛이 천 가지가 넘는다. 면의 모양이나 굵기, 삶는 정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 정도로 파스타를 한식보다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한국인이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것이지, 파스타를 좋아해서 먹는다 해서 그 나라까지 꼭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폰이 너무 좋아 아이폰 3부터 지금까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을 사랑하냐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미국인 남편과 살아가고 있지만 미국을 사랑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네버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에게 쌀이라는 건 생활에 밀접한 것 중에 하나다. 이런 밀접한 것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역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누가 잘못을 한 것인지, 어디에서 잘못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안다고 해서 뭔가가 바뀔 수 있을까. 이제 곧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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