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활동 ㅋㅋ


유채가 강변을 따라 활짝



조깅을 하고 오다가 어제는 시내 전화국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전화국 그 맞은편 중앙극장 1층에서 친구들을 기다릴 때를 생각했다. 전화국 앞에는 공중전화박스가 일렬로 죽 있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공중전화박스는 인기였다. 사람들은 전부 시내의 전화국 앞에서 만날 약속을 정했고 삐삐를 보며 그 앞에서 친구나 연인을 기다렸다. 사람들의 약속장소였지. 대구의 대백 같은 그런 장소였다. 토요일 오후에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사람이 많아서 더 약속 장소로 재미있었다.


그때에도 요즘처럼 카페가 많았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에 카페 하나씩은 있을 정도였다. 중앙극장 건물에도 커피숍이 있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공간이 커서 중 2층이 있고 중 2층에 앉아서 커피숍 실내를 내려다봐도 이상하지만 재미있었다. 전화국 앞에 가득 모인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커피숍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었다. 또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로비에 가득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사람구경하는 게 여러 재미있는 구경 중에는 제일인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 놓고 사람을 보지 못하고 영화로 사람을 본다. 사람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대체로 인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사람을 구경하고, 커피숍에서 음료를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을 구경하고.


요즘도 창을 사이에 두고 여기에 앉아서 창밖으로 내리는 빗속을 다니는 사람들을 멍하게 보면 재미있다. 벚꽃이 만개하는 날에 비가 내려 사람들은 마치 손해 봤다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걸어 다닌다. 멍하게 있어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뭔가를 해도 시간을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지나간다. 모두가 다 다른 우산을 들고 있다. 우산이 촌스러우면 나는 싫다. 그런데 내가 드는 우산은 늘 촌스럽다. 촌스러운 우산이 있으니까 다른 우산이 빛을 발하겠지.


예전에는 비가 오면 극장 앞에서 비닐우산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근데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만 봤다. 요즘도 비가 느닷없이 내리면 극장 앞에서 우산을 팔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고 붕 가버리니 우산이 딱히 필요가 없다.


우산도 개성의 시대(라는 말도 나온 지 오래되었다)인데 도대체 언제, 누가 우산을 제일 먼저 썼을까. 하루키 에세이 중에 [브리그의 우산]이 있다. [에스콰이어]에서 하루키가 퍼 온 이야기다. 이 에세이도 하루키가 80년대에 쓴 에세이인 것 같다.


처음 우산을 쓰고 런던 거리를 걸었던 조나스 한웨이라는 남자는 당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 괴상한 꼴로 다니지 말고 비를 맞고 다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그때가 1750년의 일이고, 우산이라는 게 일반인에게 퍼진 건 그 후 30년이 지난 후라고 한다.


18세기 당시 남자들은 칼을 들고 다녔는데 우산이 등장했을 때 꼴 사나워 보였다고 한다. 이상하다는 것이다. 비에 젖지 않으려는 노력이 비열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19세기에 칼을 버리고 지팡이를 들고 다녔지만 우산은 아직 저 세계의 이야기였다고 하니 뭐든 처음이란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처음이라는 건 타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니 이상하게만 보일 것이다. 좀 비켜간 얘기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와서 [난 알아요]를 불렀을 때 전문 음악인들의 눈에도 기괴하게만 보였던 것이다.


19세기 이후 우산은 뼈대가 생기고 마치 신이 인간을 빚듯이 우산은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발전을 했다. 요즘 우산은 개인맞춤으로 제작을 해 주기도 한다. 나만의 우산인 것이다. 근데 맞춤 우산이 아니라도 어떤 우산을 들던지 대체로 내가 사용하는 우산은 나만 사용하고 있다. 나와 똑같은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비싼 돈을 주고 개인 우산을 맞춤 제작해서 들고 다녀야 하나? 우산은 다른 물품에 비해 잘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잃어버리면 낭패다.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제멋대로니까.


우산에 대해서 한 번 검색하면 우산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이 주르륵 나온다. 우산의 세계 역시 넓고 풍부한 것이다. 개인 맞춤 제작을 하는 우산이 있어야 또 공급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함부로 별거 아니네 마네 할 수는 없다.


어제까지 그렇게 더운 사월이더니 오늘은 10도 정도 낮아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사월이다. 비가 오는 날은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라디오를 늘 켜 두고 있는데 비가 오면 비에 걸맞은 노래를 선곡하려고 디제이들도 나름대로 분주한 것 같다. 그렇다고 대 놓고 비! 하는 노래보다는 비가 내려 감성을 건드리는 노래를 선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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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익은 김치를 얻었다. 이런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정말 씹으면 아삭 하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고기를 삶았다. 씹을 때마다 아삭아삭하는 식감이 삶은 고기와 몹시 잘 어울린다. 김치가 이렇게 내 입에 맞으면, 김치가 맛있으면 식탁 위에 반찬이 없어도 풍성한 기분이 든다.


나는 밥을 먹을 때 김치가 반드시 있어야 해.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김치가 있으나 없으나 신경 쓰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식당에는 밑반찬으로 김치는 다 나온다. 그런데 어떤 식당은 김치가 말라서 이걸 먹으라고 주는 건지 아니면 그냥 김치라는 걸 알리려고 주는 건지 알 수 없는 김치를 준다.


손님들도 그런 식당에 나오는 김치는 먹지 않는다. 그냥 구색 맞추기의 김치를 왜 올리는 것일까.


나는 김치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다. 있으면 먹고 없어도 김치를 찾지 않는다. 라면을 먹을 때 대부분 김치를 곁들이는데 개인적으로는 단무지하고 같이 먹는 라면이 더 맛있다.


최민식 주연의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을 보면 라면을 먹다가 김치가 없어서 라면 먹기를 포기한다. [선생 김봉두]에서도 라면을 먹다가 차승원이 김치가 없어서 뚜껑을 닫아버린다. 하지원과 임창정의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도 하지원이 임창정에게 라면 있냐고 물어보고, 임창정은 하지원에게 김치 있냐고 해서 같이 왕뚜껑을 김치와 먹는다.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나저나 임창정은 어떻게 되어가나.


아무튼 영화 속에서 김치와 라면 먹방은 아주 맛있게 보인다. 한국 영화 속에는 그런 먹방의 클리셰가 있다. 라면은 김치와 함께 먹고,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꼭 국밥을 먹는다. 그런 기류를 꼭 타는 한국영화들이 있다. 한국영화 속에서 라면에 단무지를 먹지는 않는다.


예전에 박찬일 요리사가 몽로 주점을 열었을 때 거기는 김치가 하나의 요리로 주문을 하면 비용이 따로 들었다. 몽로에서 김치를 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맛있다며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이런 김치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식당에서 김치는 돈 주고 사 먹는다.


우리나라 식당에서도 김치를 공짜로 내서 메인 음식의 가격을 올리지 말고, 김치를 주문하면 비용을 따로 받고 메인 음식의 가격은 김치값만큼 빠지면 좋겠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은 천 원 정도 저렴하게 메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나는 김치를 안 먹으니까. 먹지 않는 김치를 식탁 위에 올렸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도 막을 수 있고. 이래저래 좋은 것 같은데 인식 때문인지 그렇게 하는 식당이 별로 없다.


김치를 그렇게 잘 먹지 않지만 나도 이렇게 잘 익은 김치는 맛있게 먹는다. 갓 지은, 아주 뜨거운 밥에 올려 먹으면 아삭아삭 식감과 함께 톡 쏘는 신 맛이 터진다. 삶은 고기도 그렇게 맛있는 부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김치가 맛있기 때문에 밥이나 고기는 그냥저냥이라도 괜찮다. 고기와 김치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김치가 주인공이 된다. 그런 자세로 김치를 대한다. 어딘가에 곁들여서 주 요리의 맛을 끌어올리는 반찬이 아니라 당당하게 주연으로 대하는 자세로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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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벌써 세월호 10주기야, 대부분 10년 전 416이 생각날 거야. 나는 일하면서 컴퓨터 우측 상단에 띄워놓은 유튜브 실시간으로 배가 침몰하는 걸 계속 보고 있었거든. 충격이었지.


그때 막 엄마들이 팽목항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모습들 하며, 나오지 마라 같은 말들과 오전 10시에 배가 점점 기울더니 반 정도 가라앉다가 배의 모습이 사라지는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배가 완전히 침몰하고 나서 좀 지나서 아이들의 배 안에서의 영상이 공개됐잖아. 그때 아마 사람들이 멘붕이 왔나 봐. 숨이 콱 막힌다는 공포가 막 느껴지는 거지. 물이 눈으로, 머리로 들어차서 빠져나가지 않는 생각이 잠들면 꿈으로 나타나더라고. 그래서 이태원 참사 때에도 너무 힘들더라고.


여기 지방에서도 매주 탄핵집회가 열렸거든. 나는 거기까지 조깅할 겸 해서 갔지. 빠지지 않고 참석한 거 같아. 그때 집회에 가면 이런 표어를 줬거든. 거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면 4, 50분 정도 걸리거든. 모르는 이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외치면 좀 괜찮더라고.

두 달인가? 집회할 동안 매주 가서 받은 표어를 일하는 문에 다 붙여 놨거든. 사진 잘 보면 테이프 보이지? 근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어.


붙여 놓은 후에 어느 날 박사모 할머니들이 와서 욕을 막 하는 거야. 여기 울산은 보수의 텃밭이거든ㅋㅋ 근데 그 욕이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욕이었어.


할머니들 욕이 정말 찰졌지. 사람들이 와서 막 뭐라고 해도 무시하고 나에게 욕을 막 하는데 김대중 대통령 욕부터 해서 나의 욕, 모르는 나의 어머니 욕까지 신랄하더라고.


다음 날에는 다른 박사모 할머니들이 오고, 그다음 날에는 또 다른 할머니들. 조직적으로 움직였지. 이럴 때 아마 당황스럽지? 하지만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이럴 때는 휴대폰을 탁 들어서 영상녹화를 하는 거야, 나 지금 할머니들 영상녹화를 하니 나중에 경찰에 제출할게요,라고 하면 씩씩거리며 그냥 가더라고.


그 할머니들 지금쯤 85세나 90세 정도 되었을 텐데 여전히 씩씩하게 건강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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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까 개늑시가 아름다워



'긍까'가 뭐냐면 ‘그러니까’다. '그러니까'의 줄임말이라고 할까. 이 '긍까'가 어디에서 많이 나오냐면 정치평론하는 평론가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오전 7시가 되면 유튜브부터 공중파 라디오에서 평론을 하기 시작해서 하루 12시간 정도 평론을 하는 거 같다.


근데 대부분 시간은 촉박하고 할 말은 많으니 말과 말 사이의 ‘그러니까’를 대체로 ‘긍까’로 말을 한다. 거기에 집중해서 듣다 보면 심각한 평론 중이라도 큭 하며 웃음이 나온다. 신사에 반듯하고 조근조근한 말투의 김성완 평론가도 '긍까'로 말을 한다. 현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낼 때 '긍까'는 여지없이 발휘되고 만다.


성격이 급한 평론가 있잖아? 한 변호사 출신의 평론가는 '긍까'도 아니야, 그냥 ‘까’라고 한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말을 하다 보면 더 화가 나서 막 말이 빨라지고 소리도 높아지고. 그런 것처럼 평론가들도, 성격이 급한 평론가도 윤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화가 나서 인지 말이 빨라지고 톤이 높아지다가 '그러니까'를 '긍까'로 해야 하는데 그냥 '까'가 되더라고.


정치 평론가만 그런 게 아니다. 처음 들었던 게 영화 평론가였다. 걔는 '긍까'가 전매특허였다. 한 번은 한 번 나와서 영화 평론을 하는데 '긍까'를 몇 번이나 하는지 카운터를 해 본 적도 있었다. '긍까'를 빼면 거의 말을 못 할 정도로 많이 했다.  


사실 내 주위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서 ‘긍까’는 잘 들어보지는 못했다. '긍까'보다는 동의를 한다는 의미로 '그니까'는 많이 듣는다. 주위에서 물론 말을 평론가들처럼 많이 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긍까’를 내 주위에서는 듣지 못했다. 요즘은 이런 부분에 꽂혀 있어서 그런지 주위에서 하는 말들을 자세하게 듣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너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구나] 같은 말을 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좀 그렇고 해서 그, 그래,라고 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평론가들이 하는 말 중에 많이 하는 말이 ‘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좀 이야기를 오래 했다 싶을 때, 이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가고 싶을 때나 패널들의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자’라고 운을 띄운 다음 말을 한다. 이 역시 평론가, 즉 사람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따라 ‘자’라는 말도 사람마다 다르다. 크고 굵게 끊어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아주 짧게, 작은 소리로 ‘자’라고 빨리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자’라는 말은 평소에도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주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자‘라고 하는 것 같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20대에서는 들을 수 없고, 30대도 잘 들을 수 없고 40대가 넘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주위는 그렇다.


‘긍까’와 ‘자’는 개인적으로 평소에는 잘 들을 수 없다. 주로 정치평론가들이 이번 총선을 두고 나와서 각자 열을 내서 말하는 도중에 많이 들었다.


근데 말을 아주 많이 하지만 ‘긍까’와 ‘자’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평론가가 있는데 신인규 평론가다. 다른 평론가들과는 다르게 말을 아주 많이 하는데 비슷한 톤을 유지하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을 한다. 열받는 기사에 평론을 한다고 해서 목소리 톤이 확 오른다거나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긍까’와 ‘자’가 없이도 평론을 잘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인규 평론가는 다른 평론가에 비해서 크게 인기는 또 없다. 


그나저나 사람이 성공에 도취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변하는 것일까. 지금 대통령은 2년 동안 그야말로 권력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 도취에서 깨어날까.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 인간의 뇌에는 [보상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뇌에서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이 부분이 작동한다.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을 분출시키고, 그것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한다. 권력은 항우울제다. 또 도파민은 좌뇌 전두엽을 촉진해 권력을 쥔 사람을 좀 더 스마트하고, 집중력 있고, 전략적으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나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중독이 된다는 얘기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너무 많은 도파민이 분출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인간을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권력은 코카인, 섹스, 돈과 마찬가지로 도파민이라는 공동 통화를 사용한다 = 2014년 7월 5일 자 조선일보 로버트슨 교수 인터뷰



도파민에 중독되면 정말 헤어 나올 수 없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대통령을 보면 그게 너무나 잘 나타난다. 그렇게 지나친 권력에 중독되고, 너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 59분 동안 말을 하고, 늘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렇게 많이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실패에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잡아넣은 사람을 풀어 주고 또 그 사람을 한 자리에 꽂아 놓고. 부산 엑스포, 잼버리 같은 대형 국가적 이벤트가 실패하더라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남일 보듯이 할 뿐이다.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는다. 총선 후 각종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기사를 보면 그 시야가 경주마처럼 아주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의 부인은 또 어떻고. 현재 페루 대통령은 롤렉스 시계를 차서 대통령 관저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대통령 부인은.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되는 건 좀비와 같다. 좀비는 신념 하나만 있다. 다른 아무것도 없다. 인간을 먹어야 한다는 그 하나의 신념으로만 덤빈다. 그래서 삼일 밤낮 잠도 자지 않는다. 지치지도 않는다. 그저 신념으로만 움직일 뿐이다.


이제부터 또 평론가들의 입에서 ‘긍까’와 ‘자’를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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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뭐가 놀랐냐면 작정하고 사진을 담을 일이 없는 한 룰룰루 다니다가 피사체가 등장했을 때 바로 찰칵 찍을 수 있는 기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기기를 켜서 사진 셔터를 누르는 터울이 카메라보다 아이폰이 짧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고작 10여 년 전에는 거의 혁명에 가까웠다. 나는 아이폰3지에스를 사용하기 전에 아이팟터치 1세대인가 그걸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팟터치 1세대는 아이폰과 모든 것이 같았지만 카메라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투지폰, 익서스캐논 카메라 일명 똑딱이, 아이팟터치를 들고 다녔다.


아이팟터치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아주 신기해할 때였다. 땅 따먹는 게임 시초 뭐지? 아무튼 그걸 하고 있으면 옆에서 구경하기도 했고 트위터가 막 시작 될 때였다. 트위터 어플이 몇 개나 되었다. 한창 셀럽들이 트위터를 했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휴대폰의 판도가 달라졌다.


나도 아이팟터치에서 아이폰으로 갈아탔는데 너무 좋았다. 3대의 기기를 늘 들고 다녔는데 그 3대의 기기가 하는 일을 아이폰 한 대가 전부 다 했다. 게다가 빠릿빠릿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새것 같아서 나도 놀라고 있다.

인터넷이 좀 느릴 뿐 다른 건 빠릿하다 신기함


사진을 찍어서 바로 트위터에 올릴 수 있었다. 트위터는 용량 한계 같은 것이 없었다. 샾을 붙여서 무슨 사진이라는 것을 올리면 되었다. 그런데 아주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셀럽들이 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두산 박용만 회장이 트위터에서 가장 큰 인기였는데 회장님이 나를 팔로우한 것이다. 그리고 옆 나라 성인배우 마리아 오자와도 나를 팔로우했다. 또 휴 헤프너가 살았을 적 그의 아내였던 크리스털 해리스도 나를 팔로우했다. 엄청난 일이었다.


트위터가 너무 재미있었다. 또 피디수첩의 오행운 피디도 나를 팔로우를 하는 것이다. 새벽에는 영화요정 김혜리 기자와 트위터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김종서와도 그렜다. 그때는 이외수 소설가가 살아 있어서 핫한 인물이었는데 이외수의 트윗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적이었다.


또 봇이라는 것이 유행을 해서 하루키봇이 적절한 시간에 올리는 한 문장의 트윗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팔로워 수가 칠천 명이 되었다. 그때는 그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옴니아가 처음으로 나왔을 때라 옴니아로 올리는 트윗사진과 아이폰으로 올리는 트윗사진이 열심히 경쟁을 할 때였다. 그 때문인지 아이폰 3으로 사진을 찍어서 곧바로 올리는 내 사진에 많은 반응이 있었다.


근데 나의 트위터가 몇 해 전에 폭파당했다고 해야 하나. 안 되는 것이다. 이미 그때는 사람들이 전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돌아선 상태고, 트위터는 이상하지만 진영논리의 공론장이 되었다. 트위터의 흥미를 완전히 잃었던 때라서 나는 폭파된 트위터 계정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요즘은 트위터가 일론 머스크가 받아서 엑스로 바뀌었더라고. 성인 인증만 받으면 엑스에서는 포르노에 가까운 영상이 너무 많이 볼 수 있다는 장단점이 있다.


아무튼 그 당시 아이폰3지에스로 담은 사진들 몇 장을 투척(이라는 말도 예전에 트위터에서 사용하던 유행어였다) 해 본다. 조금 뿌옇고 흔들리고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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