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애

시월애를 다시 보니 이 영화는 판타지 로맨스 물이지만 감독이 조금만 이야기를 비틀면 스릴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요즘에 흔하디 흔한 타임슬립, 타임리프, 타임교차 같은 영화의 시초 같다. 2년의 시간 차가 나도 과거의 남자와 2년 후의 여자가 편지를 통해서 서로의 서사를 주고받는다.

판타지 사랑 이야기라 대사가 책을 읽는 것 같은 말들이 많다.

사랑이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끝나서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사랑이 이어지니까 고통스러운 거라고 은주는 말하고, 상현은 사랑을 잃어서 고통스러운 건 아무것도 잃어 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고 말한다.

은주와 상현은 그렇게 편지를 통해 2년의 시간을 좁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어요.

은주는 일주일을 기다리고, 성현은 2년을 기다린다. 그렇게 만나기로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은주는 자신을 만나러 오다가 사고로 죽은 상현에게 약속 장소로 오지 말라고 편지를 넣지만.

영화를 지금 보면 아련하다. 아련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영화다. 덕분에 촌스럽고,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 전지현의 연기가 지금과는 다르다. 그래서 아련하다.

전지현과 이정재가 시월애 스릴러 호러 버전으로 다시 만났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시간이라는 게 반복되니까 이정재가 죽어야 하는 타이밍에 다른 사람을 밀어 넣고, 그래서 뒤틀어지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서로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죽이며 끝으로 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 죽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2년 차이가 나는 시간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거지.

시월애의 마지막 장면은 시월애 첫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그러나 남자가 바뀐다. 20여 년 전 서울의 모습을 잔뜩 볼 수 있다. 특히 은주가 알바하는 만화방은 이제 볼 수 없어서 추억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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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지 못하고 춤을 추는 것들이 있어

연약한 것들이 바람에 아파하며

칼날처럼 떨어지는 빛의 날을

맞아가며 춤을 추는 것들


부드럽게 나를 드러내며 춤을 출 때마다

고통으로 물든 색채는 여러 번 바뀌지


춤을 추며 아픔을 잊기도 해

그렇게 결락을 흡수하기도 해


그래야 세상에 녹아들지

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뿌리가 가장 통증이 심할 때야


연약한 것들은

춤을 춰라

아파해라

그렇게 소리를 죽이고

끝없이 춤을 추자


우리는 계절을 먹으며 모락모락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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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니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큰 이모는 가족이 없어서 큰 이모 돌아가셨을 때 내가 상주를 봤는데 그때가 코로나 터지고 몇 달 지나서여서 장례식 장에 사람들이 올 수 없었던 때였지.


그때 장례를 치르는 맞은편 한 곳도 조용하게 장례를 치루더라고. 적막과 고요가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고 들리는 소리는 냉장고가 우웅 돌아가는 소리뿐이었지.


큰 이모에게 용돈 하라고 한 달에 오만 원씩 보냈는데 그럴 때마다 촌에서 큰 이모는 김치, 깻잎, 문어 같은 것들을 보내셨지. 용돈 이런데 쓰지 말고 큰 이모에게 쓰라고 했는데도 뭔가를 택배로 막 보내주셨어.


통장에 카운터가 되어 있는 걸 보니 돈을 보낼 때마다 우체국에 가서 통장을 밀어 넣어서 확인을 했나 봐. 매달 5일에 보냈는데 깜빡하고 하루가 지나가면 전화가 왔었지. 무슨 일 있냐고. 그러면 깜빡해서 그렇다고 6일에 돈을 보내 드렸지. 아마 큰 이모는 통장에 카운터 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으셨던 거 같아.


그렇게 오만 원을 보내면 어김없이 김치나 깻잎무침이 집으로 날아왔지. 명절이 끼면 십만 원을 보냈는데 그러면 더 많은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주곤 하셨어. 제발 좀 용돈으로 써라고 했지만 말도 듣지 않으셨어.


장례를 다 치르고 며칠 지나서 큰 이모 집도 정리를 하는데 내가 큰 이모에게 보낸 용돈이 든 우체국 통장이 나오더라고. 열어서 보니 그동안 내가 보낸 용돈을 한 번도 꺼내 쓴 적이 없었어. 그래서 천만 원이 넘는 돈이 그대로 있더라고. 한 동안 가만 서 있기만 했지.


아파서 방구석에서 몸을 말고 끙끙거리면서도 통장을 들고 계셨다는데.


나는 무릎에 덴 자국이 있는데 이 자국이 어릴 때 사정이 있어서 큰 이모와 외할머니 손에서 몇 해 지냈거든. 그때 큰 이모가 계셨던 영주에서 있었는데 매일 밤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친구도 없어서 큰 이모 일할 때 밖에서 놀다가 오토바이에 데었는데 큰 이모는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나 봐.


어젯밤에 큰 이모가 보내준 깻잎의 마지막을 먹었어. 냠냠 맛있게 먹었다. 감사합니다. 큰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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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이 바다라 바닷가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소설 읽는 재미가 있어.

세상과 분리되고 싶을 때 소설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거야.

그러다 고개를 들면 바다가 있어. 칼스버그는 맛있고.

바다는 뱀을 닮았어.

멀리서 보는 바다는 꼭 뱀과 같아.

팔다리가 없어도 불평 한번 안 하잖아.

늘 어딘가 숨어 지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현재에도 증오와 미움을 잔뜩 받고 있지.

천경자는 그런 뱀을 그렸어.

천경자의 [생태]를 봐. 생생하고 감동적이야.

뱀이니까.

수평선 너머 이어지는 바다는 뱀의 몸통과 비슷해.

쥘 르나르가 뱀에 대해서 그랬다지. 너무나 길구나.


영화 요정 김혜리 기자도 자신의 책에서 말했지.

뱀은 자신의 독 때문에 인간처럼 말이 많지 않아.

바다를 조금 멀리서 보면 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고독하며 품고 다니는 독이자 치유제인 그 액체를 마음만 먹으면 내 몸에 수혈할 수 있도록 말이야.


매혹적이며 은근하지.

몸을 이루고 있는 색감은 인간의 인공적인 붓질로는 표현해내지 못할 거야.

천경자 빼고 말이야.

보고 있으면 그 컬러의 매혹에 빠져들 거야.

우울할 때 키리코의 그림을 보며 깊은 우울을 느끼고 나면 괜찮아지듯 팔다리 없이도 고개를 들고 어디든 스르륵 가는 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차인표가 소설가인 거 알아?

소설도 두 권이나 썼어.

전부 재미있어.

차인표의 오늘예보에도 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뱀한테 물린 적도 없는데 우리는 뱀이 그냥 싫지.

남들이 싫다고 하니까 무조건 싫은 거야.


여기에 서서 바다를 보면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사랑의 달콤함을 알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길어.

뱀처럼 말이야.

하지만 사랑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인생이 터무니없이 짧지.

뱀처럼 말이지.


천경자 화가가 생태를 그렸을 때 세상은 그랬어.

뱀을 그리는 여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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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동생 양희경이 어릴 때 집에 백구를 키웠대. 양희경과 친구가 되어준 백구가 임신을 했는데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어. 근데 백구가 병원이 너무 무서웠던 거지. 가죽 줄로 입을 묶기도 해서 너무 무서운 나머지 병원을 탈출한 거야. 그러다가 그만 자동차에 치여 죽어 버렸어.


꼬꼬마 양희경이 백구를 들고 엉엉 울면서 묻어주는 이야기를 일기로 적었는데 그 일기를 본 시인 김민기가 9분짜리 대작을 만들었어.


김민기는 시인이었어. 시인이 시를 적을 때는 정직하고 진실되게 자신을 모든 것을 토해내서 적는 것 같아. 그래서 시 문학이 여러 문학 중에 제일 꼭대기에 있다고 하기도 해.


김민기가 만든 백구를 들어보면 생명의 소중함이 잘 나타나지. 양희경은 어릴 때 사랑을 주고 키우던 백구가 사고가 나서 죽는 장면을 봤지. 그렇게 해어지게 되었어. 슬프고 아픈 마음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거야.


단순히 티브이에서 사고가 나거나 아픈 사연은 아이들에게 와닿지 않거든. 촉감이 없고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이들은 알지. 내가 만져주고 이야기하고 먹이를 줬던, 내가 사랑을 줬던 존재와 헤어짐을 겪는 것의 소중함을 말이야.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나중에 나보다 일찍 죽을 엄마와 아빠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거 같아. 헤어짐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말이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엄빠의 몫일지도 몰라.


우리가 백구를 듣고 슬프다는 것을 느꼈다면 김민기는 그 이면의 어떤 무엇을 보지 않았을까. 김민기는 어느 날부터 아이들을 위해 동요, 동화, 어린이 연극 등 어린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거 같아.


https://youtu.be/Z--qzGwSbeU?si=WxgaEijndC35j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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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하면 나는 봉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라. 그리고 많이 들었지. 학창 시절 바쏘리, 오비츄어리, 메탈리카, 머클리 크루 등 박살 나는 음악을 듣다가도 외로움이 폐 깊숙이 파고 들어올 때면 어김없이 봉우리를 들었어.


김민기의 그 울림이 가득한 저음이 폐를 가득 매운 외로움으로 밀고 들어와. 주로 암실에서 들었어. 나는 사진부여서 선배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럴 때 암실에서 청소를 하며 김민기의 봉우리를 들었지.


봉우리는 아주 묘했어. 친구들과 소리 지르고 달리고 놀다가도 봉우리를 들으면 나는 이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썩 나쁘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는 하찮은 인간일지라도 봉우리처럼 빛나는 거야, 뭐 그러는 거 같았지.


우리는 늘 봉우리를 찾아다니는 그런 존재인 거 같아.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그러나 언젠가 알게 돼, 지금 내가 오르는 이곳이 바로 봉우리라는걸.


김민기 고인의 명복을 빌며.


https://youtu.be/3DMQc76GfzQ?si=u3Qq3K0jddHswT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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