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1969년 달 착륙 성공으로 달 표면에 발을 디딘 후, 72년 아폴로 17호까지 몇 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현재까지 72년 후 달 표면에 발을 디딘 우주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우주와 달에 대한 관심이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인공지능과 과학이 고속으로 발전한 지금, 우주여행까지 가능한 현재 달에 착륙하는 우주인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 그래서 달 착륙이 진짜인가 하는 음모론이 끊임없이 재기되고 있다.

영상 속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던지. 최초 달 착륙 이전 해인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우주 탐사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들었다. 정말이지 우주에서 촬영을 했다고 믿을 만큼 그 당시에 촬영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영화였다.

그래서 미정부에서 스탠리 큐브릭에게 달 착륙 영상을 만들게 했다는 의문이 아직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달 착륙 영상이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가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80년에 감독한 [샤이닝]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 대니가 오버룩 호텔의 팔각형 복도에 앉아서 미니카를 가지고 노는 장면에서부터다. 그 팔각형의 모형과 자동차들이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곳이 딱 팔각형으로 딱 그렇게 생겼다는 것이고, 가지고 놀다가 공이 굴러오니 대니가 서서히 일어난다.

천천히 일어나는 대니가 입고 있는 스웨터에 아폴로 11호가 프린트되어 있다. 그리고 대니가 복도를 걸어가는데 모든 문에 닫혀 있지만 가강 가까이 있는 방의 문이 열려있다. 방 번호가 237이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는 381,600킬로 미터다. 마일로 환산하면 237,000마일이라는 것이다.

그 방에서 나온 대니의 스웨터는 찢겨있고 목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엄마는 대니에게 무슨 일 있었는지 묻지만 대니는 손가락만 빨고 있다. 이를 두고 가짜 달 착륙 영상을 만든 스탠리 큐브릭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은 왜 끊임없이 제기될까.

과학이나 정치, 사회의 어떤 구멍이 생기면 가장 그 구멍에 잘 들어맞는 게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다금바리와 비슷하다. 다금바리는 가두리가 안 된다. 6년인가 자라야 잡아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많이 잡히면 3, 4마리 정도이며 오직 제주도 바다에서만 잡힌다.

제주도에 가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어른들은 다금바리라고 말한다. 무리를 해서 몇 십만 원이나 하는 다금바리를 먹으러 다니기도 한다. 둘 중 하나가 먹다 죽어도 모를 회 맛이라는 기류가 어른들에게 박혀 버린다. 정말 다금바리는 환상의 맛일까.

사실 다금바리를 먹어본 제주도 사람들의 인터뷰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다금바리의 맛에 의문을 가진다. 사실 우리가 아는 환상적인 맛은 인공적인 맛이 대부분이다. 자연에서 습득한 날 것의 맛으로 환상적인 맛은 나지 않는다. 다금바리를 먹어본 도민은 보통 회보다 졸깃하다 정도라고 한다.

이 졸깃하다는 말은 맛이라기보다 물리적인 표현이다. 다금바리는 정말 드문 물고기다. 하지만 제주도 다금바리 파는 곳에 가면 모두 다금바리가 있다고 한다. 다금바리가 모든 횟집에서 팔아치울 수 있는 횟감이 아님에도 다금바리를 육지 어르신들은 갈 때마가 먹고 온다. 다금바리 횟집에서는 비슷한 횟감을 올리고 다금바리라 하지만 육지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다금바리의 맛은 혀 감각의 문제에서 뇌가 감각을 조작해 버리는 문제로 옮겨간다. 사람들의 [환상]이 만들어낸 맛이 다금바리일지도 모른다. 이런 음모론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좋은 말만 해주고, 듣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 인간들에 둘러싸인 권력자는 음모론에 빠지기 십상이다.

우우우우하는 분위기가 다금바리를 공수해서 갖다 바치면 설령 그게 다금바리가 아님에도 환상의 맛으로 느끼고 먹게 된다. 음모론은 구멍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력해진다. 지금 법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나는 윤석열과 김건희의 만행에 대해서 이들은 도대체 음모론에 빠져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에 허무하다 못해 슬프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믿고 싶은 걸 믿으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들에게 국가운영을 맡겼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난다. 음모론에 빠진 권력자부부를 믿는 세력 역시 심각한 음모론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한다. 그런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과 상대하는 멀쩡한 사람들이 정신과를 다니고 진료를 받고 있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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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14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어찌보면 달 착륙은 그 나라의 우주과학 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텐데,왜 그리 오랜 기간 아무 나라도 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모락모락 나는데요.

교관 2025-11-15 11:55   좋아요 0 | URL
이참에 우리나라가 달 착륙을 한 번 해보면 ㅋㅋㅋ

호시우행 2025-11-14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의 다금바리회, 지금도 속는 사람들이 여전하겠지요. 자기도취 현상일 뿐. 가짜와 진짜를 구분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달 표면에 발을 내딛은 영상이 조작이라면 미국의 사기 이미지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짝퉁 중국은 새발의 피겠지요.

교관 2025-11-15 11:56   좋아요 0 | URL
다금바리는 양식 우럭회를 바다를 보면서 먹게 되면 자연산이라고 해도 믿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누가 들어도 이건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데 지속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그러는 사람들을 싸잡아 정치인이라고 하자. 정치인은 다 들키는 거짓말을 어째서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일까. 정치인은 단상 앞에서 누가 들어도 뻔 한 거짓말을 한다. 설령 후에 고개를 숙여(숙이지도 않고, 숙이더라도 대상이 다른 경우가 많다) 사과를 할지라도 거짓말을 한다.

마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연말이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는다는 기사를 매년 본다. 도대체 왜 세금 낭비해 가면서 도로를 파헤쳐 엎어 버리냐고 사람들은 욕을 한다. 시, 군, 구, 각 구에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으면 지방 뉴스에 나오게 되고 다른 구에 사는 사람들은 욕을 한다. 같은 지역구라고 해도 지역구가 생각보다 크다.

살면서 자신의 지역구를 다 돌아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을 만큼 살고 있는 지역구가 크다. 따라서 한 블록만 떨어져도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뉴스에서 연말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구의 도로를 뒤집어 보도블록을 다시 깐다는 기사를 접하면 구청장이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는군, 같은 생각을 한다.

구청장은 다른 지역구 시민들이 자신을 욕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욕을 많이 해서 뉴스를 타며 자신의 지역구에 살고 있는 구민들에게는 업적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이런 행적, 이런 업적이 쌓이고 쌓여 다음 재선의 발판으로, 더 나아가서는 중앙 정치 무대로 옮겨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그렇다면 국민들을 개 열받게 하는 거짓말을 정치인들이 왜 하는지 감이 온다.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은 국민들의 분노 따위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보이는 화면 속에서 그저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된다. 국민들의 분노에 일일이 답해주기보다 자신의 섬기는 절대 권력의 눈에 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대 권력이란 사람은 자기 바로 위의 권력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거짓말 같은 메시지가 딱 한 사람의 눈과 귀에 들어가서 절대 권력이 자신에게 눈길을 준다면 거짓말 따위 백번도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 국민의 화? 대중의 분노 같은 것보다 정치인은 한 사람의 눈에 들면 된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심지어 진실이라고 믿는 정치인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인이 왜 국회에 많을까. 그건 국회의원이 너무 쉽게 되어서 그렇다. 편하게 국회의원이 되다 보니 마치 출퇴근하는 회사원처럼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국민들 위에 자신이 있다고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도 있다.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게 지내다가 4년이 지나면 다시 표를 얻으려고 사람들 앞에 굽신 거리며 나선다.

그 말은 공론화되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토론 한 번 없이 지역에서 표를 받아 국회의원이 된 정치인이 너무 많다. 일반인이 생활하면서 정치인을 실제로 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국민이 화를 내는 그 속에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가장 큰 문제다. 오래전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서로 앙숙이지만 나라에 큰일이 닥쳤을 때는 국민을 위하는 마음은 비슷하여 서로 도와주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지금은 볼 수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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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정은임은 정여음에서 열혈남아를 이렇게 소개했다.

뒷골목 건달의 짧은 삶을 통해 의리, 사랑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 왕가위 감독의 솜씨가 아주 놀라웠다.

유덕화의 연기, 장만옥의 가슴 뭉클한 내면 연기도 돋보였다.

식당에서의 복수장면, 공중전화 부스에서의 키스장면, 그리고 경찰서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열혈남아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이다. 왕가위는 붉음과 푸름의 대비를 통해 소화와 아화의 아픔과 존재를 드러냈다.

유덕화와 장만옥의 가슴 저리게 하는 아픔을 연기했고, 거기에 너도 나도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 왕걸의 망료니망료아(너를 잊고 나를 잊고)가 너무 좋다.

드럼으로 시작하는 망뇨니망료아는 장만옥이 연기한 아화와 겹치면서, 이뤄질 수 없는 청춘의 허무와 불안을 그대로 드러냈다.

전화부스에서의 키스 장면은 내일이 없어져도 좋을 만큼 불타오른다.

전혀 때 묻지 않은 아화를 연기한 장만옥이 안타깝지만, 너무나 예쁘게 나왔던 열혈남아의 망료니망료아를 들어보자, 누군가는 뭉클해서 코끝이 따가울지도 모른다.


https://youtu.be/bTALwOV4jlQ?si=NZFv4Wvs0E5FV-Q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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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리즈 통틀어 가장 완벽에 가까운 명작 시즌 1은 주인공 두 형사의 연기가 이야기 전체를 압도한다. 연기가 미쳤다, 같은 말은 정말 하기 싫지만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연기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드의 장점이자 단점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여준다. 범인을 잡는 형사라고 해도 범인 못지않거나, 또는 범인보다는 나을지라도 인간 이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끔찍이 생각하지만 아내의 몸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 욕망을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나서 푼다. 그럴수록 아내에게 더 잘 대해주는 인간말종의 모습을 보이는 마티. 자신의 불륜이 아내에게 들켰지만 아내의 직장까지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고, 불륜을 저지르는 여성의 남자에게 협박을 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러스트는 딸을 잃고 아내와 헤어지고 난 후 감정의 변화도 없으며, 잠을 자지 않고 담배를 입에 달고 지내면서 범인을 찾아내는 직관이 있다. 이 두 형사는 어울리려야 어울릴 수 없는데 두 사람이 17년 전 연쇄살인사건을 묘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후 비슷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현역에서 물러난 두 사람이 다시 범인을 찾는 이야기다. 우디 헤럴슨과 매튜 맥커너히가 부딪히고 엉망으로 치닫다가 17년이 지난 후 친구가 되어 범인을 찾는 모습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즌에는 살인범이 저지른 굉장한 시체의 장면과 상상으로 어린 여자애를 어떻게 죽이는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과 성인영화 못지않게 벗어버리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많이 나오지 않지만 수위가 전부 허천나다.

두 형사는 실은 마음속에 어둠 밖에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감정기복이 없고 흐트러짐이 없던 러스트가 울면서 자신의 감정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은 죽을 고비에서 빛을 보고 살아남았다.

러스트가 자꾸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교통사고로 죽은 딸을 어둠 속에서만 느길 수 있었다. 범인과의 격투에서 칼에 찔려 의식을 잃어갈 때 딸을 보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때 러스트는 자신도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마티가 밤하늘에는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할 때 러스트는 드디어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온통 어둠밖에 없었어.

그리고 지금은 빛이 이기는 중이지.

코미디나 유머스러운 장면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묵직하고 무겁게 흘러간다. 아픈 장면은 많으나 행복하거나 기쁜 장면이 거의 없다. 그 분위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두 형사다.

정말 신기한 건 러스트는 시리즈 내내 담배를 엄청 피우는데 속으로 들어간 연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 부분을 더 두각 시키는 것 같은데 그래픽일까. 묵직한 수사물을 좋아한다면 추천하는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 시즌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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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의 놀라운 연출력은 이미 데뷔작인 ‘미행’에서부터 였을 것이다. 영화 속의 인물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고 만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된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하는 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을 옭아매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터진 핏줄처럼 여러 갈래로 생각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마지막까지 가서도 영화는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행을 먼저 봤다면 아마도 놀란은 소포모어 증후군에 그대로 걸려버려 이후 작품은 망작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그 생각을 확 깨버렸다.

추리물이군, 하다가 어? 다큐멘터리군. 하지만 또 아니다. 놀란은 이 데뷔작을 만들면서 이미 메멘토를 머릿속에서 그려놓았을 것이다. 주인공 ‘빌’이외에 ‘콥’이라는 등장인물은 맥거핀일까. 콥은 빌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페티시라든가 모성애를 건드린다.

일기가 나온다. 일기란 개인적이고 치부이며 타인에게 금기되는 것이다. 그 일기를 사람들은 사진과 함께 상자에 넣어 둔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누군가 내 사진을 보며 예쁘다고 하면 기쁘다. 그런 사진과 일기를 같이 넣어 둔 것은 타인이 몰래 내 금기를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배의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인공 빌은 사람에게 모멸을 느끼고, 자신에게서는 자멸을 느낀다. 영화는 마지막에 가면 어? 하면서 뒤통수를 맞았던 그 동안의 영화보다 더 뇌리를 멍하게 만든다. 어떠한 특수기법도 없고 오로지 이야기로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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