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 며칠 남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캐럴을 듣고 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다. 어제부터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많이 틀고 있다. 지난주 미국 빌보드 10위권에는 캐럴이 대부분 차지했다. 거의 예전의 곡들이 역주행을 한 것이고 최신곡으로는 아리아나 그란데 정도다. 영국 차트도 캐럴이 대부분 차지했는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던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가 1등을 차지했다. 감염병의 위협에서도 사람들은 힘겹지만 악착같이 견디며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사람들은 어쩐지 이렇게 어려울수록 크리스마스에는 캐럴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질릴 때까지,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세상의 숨어있는 수많은 캐럴을 듣자. 이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데 캐럴이나 듣고 앉아있다고 한다. 모두가 힘들기 때문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에게 코로나로 인해 어떤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낫다. 올해 초 1차 대유행이 왔을 때 약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그 이전에 미세먼지(조깅할 때) 때문에 마스크를 한 박스 구매해 놓은 게 있었다. 약국에 줄을 이만큼이나 서있어야 하는 시기라 그 마스크를 동네 어르신들에게 다 나눠주었다. 그리고 나는 약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 줄 서는 게 귀찮아서 그냥 집구석에서 한 10일인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여름 이후로는 자주 가는 동네의 작은 카페에도 가지 않고 있다. 누구와도 약속도 하지 않고 약속을 잡지도 않았다. 식당에도 가지 않았고 헬스클럽이나 여타 술집에도 아직 가지 않았다. 고작 들리는 곳은 자주 가는 동네 빵집 정도다. 누군들 어딘가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지 않을까. 자동차가 밉다고 술 마시고 차가 싱싱 달리는 도로 중앙을 소리 지르며 거닐다가 차에 치이면 그냥 본인만 손해다.

요즘 코로나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 가지 말라는 곳에 갔다가 동선이 겹쳐 이 추운 날 검사를 받으면서 왜 빨리 안 되느냐고 소리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왜 아이까지 대동해서 가지 말라는 호텔 수영장을 가고 스키장을 가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갔다가 되레 빨리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칠까. 그건 어떤 면으로 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감염병에 걸린 사람 대부분이 나는 걸리지 않는다고 확신하며 지낸 사람들이다. 조심하면서 지내도 어딘가의 틈으로 들어와서 감염시키는 게 바이러스인데 가지 말라는 곳에는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지금은 바람직하다. 캐럴이나 들으며 동선을 줄이고 만남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그런지 라디오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캐럴이 지치지 않고 나오고 있다.


오래전 ‘뉴키즈 온 더 블록'도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매했다. 근래에는 뉴키즈라는 말보다는 유키즈로 사람들은 더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 헤비메탈에 빠진 중학생인 나도 이상하게 뉴키즈의 노래를 많이 듣고 좋아했다. 아무래도 음악감상실에서 뉴키즈의 음악을 많이 틀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형 스크린으로 뉴키즈 멤버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시끄러운 록음악이나 록시트 같은 밴드, 프린스나 시네이드 오코너에  빠져있었는데 뉴키즈 온 더 블록은 신선한 타격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혼술 하고 싶은 밤'을 들으면 이게 노래가 뭔가 좀 그래!라고 하면서 지나면 그 후렴 부분이 계속 잔상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뉴키즈의 음악이 머리 주위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뉴키즈 같은 음악이 어떻든 한국에는 없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뉴키즈의 음악, 그들의 패션, 스타일에 홀딱 반해버렸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빠지는 건 지구의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어릴 때는 조나단 나이트, 대니 우드, 조이 맥킨타이어 같은 멤버의 이름은 다 외우고 다녔으면서도 할머니, 아버지 이름을 한문으로 모른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종이에 한문으로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이름을 적어서 외웠던 것도 생각난다. 뉴키즈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좋은 것 같다. 투나잇, 커버걸 같은 노래들은 지나간 것들의 기운이 묻어 있지만 그래서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


한창 활동 당시에 가장 막내였던 조이 맥킨타이어의 목소리는 정말 아이 같다. 아직 제대로 된 성장기를 겪기 전의 그런 목소리다. 이들은 다시 뭉쳐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된 데는 팬들의 힘이 클 것이다. 팬들이 없었다면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다. 뉴키즈 온 더 블록 하면 한국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이 한국 상륙을 했을 때 한국은 그야말로 난리 났었다.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마이클 잭슨이 왔을 때 보다 더 들썩였던 것 같다. 공항이 마비가 되었고 공연 관람 도중 사망사고가 있었다. 불행한 일이었다. 팝이라는 게 마치 선진문물의 최상위에 있다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로 BTS가 뜨면 그 나라의 공항이 마비가 되고 그 나라의 아미들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방탄의 노래는 듣는 이들에게 꼭 힘내라고 하지 않는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위로해준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문화의 개념이 바뀌었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뉴키즈 만의 스타일로 부른다. 캐럴이라는 느낌보다 팝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아무래도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해 만든 노래 ‘디스 원스 포 더 칠드런’이 아닐까 싶다. 역시 조단 나이트의 섹시한 목소리가 큰 몫을 차지한다. 당시의 조난 나이트는 얼굴, 몸매, 목소리 모두 겸비했다. 요즘도 예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보이그룹의 캐럴 송을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그중에서 캐럴 같지 않지만 좋은 노래 ‘디스 원스 포 더 칠드런’을 들으면서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자. 매년 이렇게 끄트머리에 오면 후회보다는 올해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나 자신을 높게 평가하려 한다. 매일 행복하게 잘 보낼 수는 없으니 불행하지 않게 올해도 잘 견뎠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도 잘 나와 있지만,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 


https://youtu.be/xtSbedMeF6s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행복한책읽기 2020-12-2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마지막 문장 굿이요^^. 님의 음악 세계는 광범위하고 깊군요^^

교관 2020-12-24 12:51   좋아요 0 | URL
과분한 칭찬입니다.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처음 컵라면을 먹었던 게 언제일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이전은 기억이 없다. 컵라면 하면 초등학생 때 겨울이 많이 떠오른다. 오늘 지금처럼 몹시도 추운 겨울날. 창을 사이에 두고 창밖은 냉혈한 차가움이 기세를 펼치고 있고 창 안쪽은 그 기세가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 따뜻한 교실에서 컵라면을 먹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게 뒤죽박죽이라 막 섞여있다. 또 초등학생일 때 컵라면의 기억을 떠올리면 겨울의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먹던 게 생각난다. 교실에서 후후 불며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교실 곳곳에는 미숙한 손길을 탄 크리스마스 장식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빛을 받아서 반짝반짝거렸다. 그런 컵라면의 시간을 겨울에 왕왕가진 기억은 있다.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담임의 이름은 송선숙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3학년의 담임이었는지 4학년의 담임이었는지 역시 기억은 없다. 겨울의 교실에 패치카가 있었는지 난로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애매하다. 편의상 패치카도 있고 난로도 있었다고 하자.

선생님과 나는 난로 앞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라디오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업이 다 끝나고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갔는 모양이다. 아니면 몇몇은 나와 함께 난로 앞에서 같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디오에서는 맨하탄스의 '키스 엔 세이 굿바이'가 흐르고 있었다. 이 역시 확실지 않다. 어떻든 겨울의 교실에 라디오(선생님의)가 음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맨하탄스의 목소리, 맨하탄스의 노래는 겨울에 제격이다. 쨍하고 맑고 차가운 겨울날보다 흐리고 잿빛 구름이 온통 하늘을 차지하는 날에 어울린다. 키스만 하고 떠나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 어렸던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알지 못했다. 


교실의 창밖으로 해가 떠 있지만 겨울의 날이라 몹시도 추웠다. 운동장을 다니는 아이들은 전부 볼이 발갛게 변해서 몸을 움츠리고 다녔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 한 두 명쯤 있을 법도 한데 아무도 이 추위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로런스 라우리의 그림 속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산업혁명 당시 사람들처럼 보였다. 


추위는 창을 뚫지 못했고 따뜻한 햇빛만이 창을 투과하여 교실 안으로 녹아들었다. 창가의 패치카 옆에 앉아 있었다면 노곤하여 힘 빠진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털옷을 입고 있었다. 목을 덮는 그런 털스웨터였다. 얼굴은 메릴 스트립의 젊은 모습과 닮았다. 말투에 농담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음의 진폭이 크지 않아서 말을 하고 있으면 무서운 사감의 모습처럼 보였다. 자주 만나는 이모보다 가끔 만나는 잘 사는 집의 고모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크게 웃는 법도 없었지만 무표정한 얼굴도 아니었다. 늘 아주 조금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훈련을 받은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잠이 들어도 그 표정으로 잠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나를 자주 나머지 공부를 시켰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성적이 좋지 못하면 선생님은 늘 나를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성적이 좋지 못한 나 같은 아이가 있기에 1등도 있을 수 있는데 선생님은 모두가 1등에 가깝게 성적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이였을 때는 말을 안 들었던 모양이다. 이쪽으로 가라고 하면 저쪽으로 가고 앉으라고 하면 어김없이 일어나버리고 조용하라고 하면 시끄럽게 굴었다. 무슨 말썽을 피웠는지 기억은 없지만 교장실에 불려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말썽을 피웠다기보다 같이 있던 아이들이 피우는 말썽에 내가 그만 접합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인지 교장실에 까지 불려 갔었다. 

그런 말썽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지다 남들 다 하는 사춘기의 방황이 시작될 무렵 조용하게 사라져서 사춘기의 방황 따위 없이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담임은 나를 교장실에서 빼와서 주로 교실에 남겨두고 훈계를 하거나 종아리를 때리거나 했다. 그리고 난로 옆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담임의 보조를 시켰다. 깁스를 한 채로 뜨개실을 잡아 주거나 했다. 어느 날은 겉옷을 벗겨 내복만 입은 채 교실에서 두 손을 들고 있게 했다. 도무지 무슨 말썽을 피웠기에 나는 겉옷이 벗겨진 채 내복만 입고 교실에서 벌을 쓰고 있었을까. 그때의 선생님은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빌런처럼 보였다. 

그런 나머지 교실은, 그리고 방과 후 교실의 분위기는 호러블 하게 다가와야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송선숙 선생님은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컵라면 두 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하나는 나에게 주었다. 선생님은 긴 손가락으로 계란을 하나 깨서 내 컵라면에 넣어 주었다.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서 컵라면이 익어가기를 바라며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톤이 일정한 농담이 없는 이야기가 기억이 날리 없다. 하지만 선생님이 컵라면에 계란을 올려주며 저어 먹으면 맛있으니까 많이 먹으라고 한 말은 떠오른다. 그러면서 컵라면의 뚜껑을 걷어주었다.

냄새가 확 올라오면서 허기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선생님은 계란을 잘 저으라고 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계란을 저어서 컵라면의 국물이 약간 탁하게 되었을 때 국물을 조금 마셨다. 계란이 풀어진 라면 국물의 맛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올 때 따뜻한 겨울의 맛을 느꼈다. 컵라면 안에 익은 후레이크가 맛있었다. 초등학생 때 먹은 컵라면의 기억에는 후레이크의 맛도 분명하게 있었다. 후레이크가 맛있다고 하니 선생님은 숟가락으로 자신의 컵라면 속의 후레이크를 떠서 나에게 주었다. 후루룩 쩝쩝 먹던 나에 비해 선생님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라면을 먹었다. 그때 선생님은 한 번 크게 활짝 웃었다. 아니 웃어주었다. 아마도 후레이크가 맛있다고 하는 내가 재미있었던 걸까.

열기가 올라오는 난로 옆에서 컵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으면 겉옷은 벗게 된다. 선생님은 싸온 보온 도시락을 열어 밥을 말아 주었다. 계란의 맛이 남아있는 컵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게 맛있어서 그 뒤로 몇 번은 선생님과 난로 앞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달걀을 하나 깨트려 넣은, 국물이 뽀얗게 탁해지는 뜨거운 컵라면은 겨울에 딱 이었다. 어쩐 일인지 선생님은 달걀을 넣지 않았다. 날달걀을 그대로 컵라면에 넣어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다른 반의 담임이 지나가다가 들어와서 내 컵라면을 한 젓가락 뺏어 먹었다. 계란도 풀어졌고 너무 맛있게 보인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나를 공부 못한다고 나무랐다. 그때 송선숙 선생님이 그 선생님에게 조근조근, 차분하게 농담이 섞이지 않는 톤으로 조용히 나가게 했다. 평소에 밉게만 보였던 송선숙 선생님이 초등학생이었지만 큰 보호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선생님과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는 겨울의 날이면 어김없이 컵라면에 계란을 하나 풀어서 먹었다. 선생님은 바지를 입지 않았다. 나의 사춘기가 이른 시기에 찾아왔다면 나는 아마도 선생님의 치마 속을 보려고 애를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모른 채 성적이 나빠 혼나면서 따뜻한 컵라면을 먹을 때는 또 행복해서 야금야금 먹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몇 명 있었을 테지만 기억에서는 소거를 하겠다. 사실 기억도 없다. 


교실 안은 따뜻했고, 난로 옆은 아늑했고, 선생님이 넣어준 계란이 풀어진 컵라면은 맛있었다. 학년이 바뀌고 나는 성적이 오른 덕분에 학급 위원이 되었다. 완장을 차게 된 것이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후 선생님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다른 학교로 간 모양이었다. 지금의 컵라면은 그때보다 훨씬 크고 맛있어졌겠지만 그때의 맛은 나지 않는다. 맛은 정말 추억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일까.


https://youtu.be/wtjro7_R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마 2020에서 제이홉이 완벽하게 마이클 잭슨을 살려냈다. 춤사위의 선과 손짓은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마이클 잭슨 하면 빌리진을 세상에 첫 선을 보였던 무대가 있었다. 전 세계의 음악계는 이 날을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고 회자되고 있다.


때는 1983년 3월 25일 미국의 모 타운 25주년 기념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모 타운은 퀸시 존스의 레이블 같은 회사로 흑인 음악은 전부 여기에서 생산된다고 보면 된다. 마빈 게이도 원래 모 타운 소속이었지만 백인을 위한 흑인음악을 생산한다며 모 타운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었다.


25주년이 된 이 날 모 타운 메들리를 여러 가수들이 불렀다. 마이클 잭슨은 잭슨 파이브의 형제들과 그들의 히트곡들을 불렀다. 물론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잭슨 파이브에서도 메인 보컬은 마이클 잭슨이었다. 잭슨 파이브는 무대를 사로잡는다. 형제들이 리드미컬하게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좋아 죽는다. 마이클 잭슨은 그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무대를 이끄는 탁월한 마이클 잭슨 만의 매너를 볼 수 있었다.


잭슨 파이브는 마지막 노래 ‘아일 비 데어’를 부르고 형제들은 서로 끌어안고 수고했다며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전부 들어간다. 그런데 모두가 무대 뒤로 들어가는데 마이클 잭슨만 무대에 남아서 마이크를 만지작거린다. 형인 티토 잭슨은 그때, 아니 저 녀석 왜 안 들어오고 저기서 얼쩡대는 거야? 라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클 잭슨이 무대에 혼자 남아 있는 계획은 아무도 몰랐다. 엠제이(마이클 잭슨)의 형제들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오직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모 타운의 사장이었던 베리 고디뿐이었다. 그는 떠돌이 가수였던 엠제이에게 큰 기회를 줬고 이제 다시 한번 엠제이에게 엄청난 기회를 주려고 했다. 모 타운 메들리 이후 엠제이의 단독 무대가 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베리 고디와 엠제이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엠제이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노래를 하려고 한다.라고 말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그 ‘빌리 진‘의 첫 음이 나오며 어딘가 있던 모자를 집어 든다. 바로 이 모자, 그리고 이다음 동작을 마마 2020에서 제이홉이 완벽하게 재현했다. 바로 엠제이가 다시 살아 나온 것 같았다.


‘빌리 진'은 모 타운의 곡이 아니었다. 그래서 원래는 이 자리에서 불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리 고디는 모 타운의 곡은 아니지만 엠제이에게 딱인, 엠제이를 위한 곡이라 생각한 ‘빌리 진’을 발표할 수 있게 배려했다. 엠제이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무대가 바로 모 타운 25주년이었다.


엠제이는 수줍게 특별한 무대, 뉴 송이 있다며 신호를 보낸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는가 싶더니 이내 스포트라이트가 엠제이에게 비치고 빌리 진의 강렬한 음악에 맞춰 엠제이는 신들린 것처럼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그 손짓과 강렬한 눈빛, 하체만 기계처럼 따로 움직이는 듯한 그 춤사위는 지금 봐도 흥분된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환호를 했고 박수를 보냈다. 그의 팬이 아니었다면 이 장면 하나로 엠제이의 팬이 될 것이라고 음반 제작자는 말을 했고 86년 3월 25일 이후 고요하던 팝계는 엠제이의 파도 속에 미국 전체가 술렁거렸다.


단지 한 사람의 노래와 춤일 뿐인데 그것은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오바마는 엠제이의 죽음 앞에서 나는 채무자라고 말했고 그가 아니었다면 흑인들은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엠제이의 그 충격과 감동을 방탄과 아미들이 해내고 있다.  


감염병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그 누구도, 세계의 그 어떤 슈퍼스타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방탄소년단이 해내고 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가운데 방탄이들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소통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바로 예전에 엠제이가 하던 것처럼. 이번 마마 2020에서 엠제이에게 경외를 표현했던 다이너마이트의 댄스 브레이크를 보면 아! 하는 감탄이 나오고 뒤를 따라 감동이 온다.


https://youtu.be/BUcUS2cIieA

8분 20초 정도에서 서로 인사를 하며 모두가 퇴장하고 엠제이가 혼자 남아서 빌리 진을 세상에 처음 소개한다. 그 전에는 잭슨 파이브의 메들리가 나온다. 


https://youtu.be/WSaOyDWjpD0

제이홉의 엠제이의 소환, 그리고 경외. 

이건 정말 미쳤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검색하려고 창에 검색어를 치면 온통 음식점 마이 퍼니 발렌타인이 나온다. 그래도 보이는 페이지에 쳇 베이커의 음악 하나 정도는 나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검색이라는 게 뭐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녀석이 해버리는 것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순으로 나와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나 뭐라나.


티파니의 노래를 들으려고 해도 소녀시대 티파니밖에 나오지 않는다. 겨우 노래를 검색어로 입력해야만 티파니가 나온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티파니의 소싯적, 잘 나갈 때의 모습이나 느낌은 안희연, 하니를 닮았다. 외모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 무대 위에서 해내겠다는 그런 느낌이 닮아 보인다. 티파니는 비틀스의 노래(I Saw Him Standing There)를 리메이크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곡을 받았을 때 아직 어려서 그런지 거부를 했다. 비틀스의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라고. 하지만 노래를 내놓는 순간 엄청났다. 티파니는 당시 다른 가수들이 홍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로 치면 집 더하기 같은 대형마트에 가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그대로 뮤직비디오에 실리기도 했고 먹혀들었다.  https://youtu.be/w6Q3mHyzn78


그런데 학창 시절에 음악감상실에 다니면서 들었던 음악에 대해서 기억만으로 이제 말하려니 요즘은 본격적으로 방송하는 유튜브가 있어서  내가 하는 말은 뭔가 어설퍼졌다. 유튜버들은 정말 전문적이며 그들의 구독자들 역시 전문가 수준으로 희귀한 방송 분을 소장하고 있다가 유튜버 주인장에게 보내서 방송을 하기도 한다. 팝가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유튜버들은 전문가 그 이상이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 내가 좋아했던 팝 가수들의 소식을 20대의 젊은 유튜브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떻든 티파니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아주 좋다. 작년에 미드 ‘엄브렐라 아카데미’를 보는데 티파니의 노래가 사정없이 나왔다. 슈퍼 초 사이아인 같은 몸을 가진 톰 하퍼가 노래에 맞춰 앙증맞게 춤을 춘다. 시즌 2가 나왔는데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티파니는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7080 무대 같은 곳에서 열심히 활약 중이다. 그리고 조금은 살이 찐 모습이지만 본인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멋집니다.라고 크게 말하고 싶다. 살이 찌고 얼굴이 늙었다고 해서, 또 혹시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하고 싶은데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죄악이다. 왜냐하면 팬들이 그런 것쯤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티파니는 우리나라에서 공연-토토즐에서 티파니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가수 이지연도 티파니의 노래를 공연에서 많이 불렀는데 두 사람이 만나기도 했고, 티파니는 써니텐 광고도 찍었다. 티파니 했으니 데비 깁슨도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패스.


https://youtu.be/JmeJ2VsCs-0


마이 퍼니 발렌타인이 음식점으로 검색이 되니 인기 좋은 음식점은 사람들이 줄 서서 먹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실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다 먹게 되면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음식의 맛을 좌지우지하는데 요리한 음식의 맛 이외에도 ‘공기’라는 것이 한몫을 단단히 한다. 그 공기 속에는 분위기와 환경 같은 것들이 차지한다. 맛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라 객관화될 수 없다.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가 그 맛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줄을 서서 먹는 음식은 맛이 없을 수 없다. 보통 줄을 서게 되면 한 시간 이상, 두 시간도 기다리게 된다. 그러면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가만히 서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몸을 움직이면서 소모되는 에너지보다 더 클 수 있다. 가만히 서 있는데 무슨 에너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경우를 보면 그렇다. 물론 과학적으로 드러난 정황 증거는 없다.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를 할 때 두 시간씩 교대근무를 했다. 재소자들이 다니는 길목에 서서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서서 철문을 열었다가 닫는다. 접견(면회)이 없는 주말에는 정말 앞을 보며 가만히 두 시간 서 있기만 할 뿐이다. 졸따구 때는 벽에 기대지도 못한다.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두 시간 근무가 끝나고 교대를 하고 나면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모른다. 다른 근무지에서 몸을 움직이며 근무를 하는 것보다 훨씬 배가 고프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근육을 사용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라고 고참이 처음 근무를 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해보니 그렇다. 두 시간을 그렇게 견뎌야 한다는 게 에너지가 쪽 뽑혀 나가는 기분이다.


식당에서 줄 서 있다가 가서 먹는 음식은 일단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그것과는 무관할 정도로 에너지 소모 때문에 맛있다. 나는 음식점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걸 휴지 없이 변기에 앉는 것보다 싫어하는데 예전에 서울에 갔을 때 거기 사는 사촌동생과 인사동에 갔다. 그때 줄 서서 먹는 단팥죽을 먹고 가자는 것이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사촌동생은 억지로 나를 끌고 결국 줄을 섰다. 운 좋게 사십 분 정도 만에 먹었지만 다리가 아팠다. 가만히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사십 분을 있어야 한다니. 묵묵하게 줄을 서서 대기를 하는 사람 대부분이 일본인들이었다. 스고이.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어서 단팥죽을 먹었는데 머리 위에 헤일로가 보일 정도로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그릇을 더 먹고 십전대보탕도 먹었다. 십전대보탕은 맛에서 멀어져야 할 씁쓸한 맛과 약간 달큼한 맛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우리 동네 시장에서 파는 단팥죽과 비슷한 맛인데 참 맛있는 것이다. 단팥죽을 감싸고도는 공기 때문이다. 단팥죽이 맛이 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겠냐마는 공기 때문에 단팥죽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 공기 속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닳은 에너지가 크게 한 몫한 것이다.


보통 줄 서서 기다리는 집 옆의 별로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집도 음식이 맛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서 원조를 뛰어넘으려고 노력을 엄청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줄 서서 먹는 인기 있는 식당은 흘러넘치는 손님을 받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벅차다. 그래서 간혹 원조 집이 쉬는 날 사람들이 찾아갔다가 어? 날을 잘못 잡았군, 하면서 할 수 없이 그 옆집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웬걸 이 집이 더 맛있는 거 같아?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원조집과 옆집이 주고받고를 잘하는 곳은 옆 집을 위해, 또 본인들의 휴식을 위해 쉬는 날을 정해 놓고 쉬고 그 날은 옆집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어차피 줄을 서서 기다려봐야 그날 하루 음식은 정해져 있으니 두 집 모두 손님이 흘러넘치고 줄 서는 시간이 줄어든다면 손님들, 원조집, 그 옆집 모두가 윈윈 하는 하는 것이다.  




어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과 '서울의 지붕 밑'을 봤다.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돌은 오래전 수학의 정석을 보는 기분이다. 나는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못해서 수학의 정석 앞부분만 항상 더러웠다. 해리포터의 시리즈가 죽 있지만 마법사의 돌만 집중해서 본 것 같다. 비밀의 방을 봤을 때 애들이 생각보다 커 버렸다. 그 후로 이상하게 봐지지 않는다. 어른들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던 것이다. 마법사의 돌을 계속 보는 건 주인공들 중에서 론 위즐리가 너무나, 정말, 울고 싶을 만큼 귀엽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처음 해리포터를 만났을 때부터 특히 마법학교 식사시간에 둘러앉아서 음식 먹을 때 양 손에 닭다리 하나씩 들고 먹는 모습은 꼭 봐야 했다. https://youtu.be/1-JKP2gp80k


61년에 나온 '서울의 지붕 밑'은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한의사 김학규의 한약방 맞은편에 최두열이라는 젊은 양의가 들어와 버린다. 그런데 그놈이 또 자신의 딸, 인두질을 하는 최신식 미용실을 하는 현옥과 눈이 맞아서 열불 터진다. 이 동네에서 가장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는데 이 놈의 딸이 자꾸 맞은편의 양의와 눈을 맞춘다. 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김학규는 친구들의 권유로 시의원에 나가게 되지만 낙선하게 되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딸을 위해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허준호의 아버지인 허장강, 코믹의 대부 김희갑, 그 당시 영화를 보면 거의 다 나오는 김승호부터 도금봉, 황정순까지 싹 다 나온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주인공들은 전부 비슷한 또래지만 누구는 어머니를, 누구는 딸을 연기했다. 구봉서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신성일의 아주 젊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최은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알려져서 그렇지 당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이광수의 '무정'을 영화화한 것에도 출연을 했고 '해녀'나 다른 영화를 봐도 최은희 만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 지붕 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민이지만 그래도 꽤 중산층이고 그중에서도 '상'이다. 레이먼드 카버가 쓴 소설들의 주인공들처럼 중산층으로 그 자식들은 죽으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내내 유쾌하지만 아직 61년이라 전쟁의 여파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전시에 남편을 잃어버린 최은희도 그렇고, 한국의 생활 전반에 서러운 단어 가난이 파고 들어와 있다.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가난을 모르며 뛰어다니고 또 연애를 불태웠다.

첫 장면은 동네 주모(황정순)의 딸인 점례(도금봉)가 몸이 이상해서 한약방을 찾고 진맥을 짚어보는 김학규가 혼전 임신라고 하며 술집 주인은 주모라서 자신을 무시한다며 펄떡 뛰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맥 보는 과정에서 딸의 윗도리를 벗게 하고 문방 너머에서는 김희갑과 허장강이 구멍을 뚫어 그 모습을 훔쳐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딸은 울면서 뛰쳐나가고,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60년도에는 일어나고 있었다. 점례를 임신시킨 사람은 김학규의 백수 아들 현구(신영균)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 김학규는 현구를 쫓아낸다. 현구는 점례와 아이를 낳고 힘들어 하지만 나중에는 다 같이 잘 살게 된다.

그 당시에 젊은 양의 최두열(김진규)과 남편을 잃은 현옥(최은희)의 사랑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두 사람은 봉건 제도를 무시했던 소설 '무정'의 영채와 선형처럼 부모 세대라는 엄청난 벽을 깨고 시랑을 쟁취한다. 현구와 점례도 혼전임신을 했지만 결국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이런 모습들이 7, 80년대 티브이 속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시초가 되었지 싶다. 그 물꼬를 튼 영화가 '서울의 지붕 밑'이다.  

김진규는 김승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후 모든 영화의 주연을 차지했다. 내가 본 김진규의 마지막 영화가 '삼포 가는 길'이었다. 황석영의 소설이 영화가 되었는데 젊은 백일섭의 "지랄로"라는 대사가 착착 달라붙고 백화로 나온 문숙이 너무나 예뻤던 영화였다. 마지막 헤어질 때 정류장에서 먹던 삶은 계란이 세상의 영화를 통틀어 가장 슬픈 계란이 아닌가 싶다. 김진규하면 최근래에는 정애연까지 내려온다. 정애연의 남편이 배우 김진근이며, 그의 누나가 영화배우 김진아다. 김진아는 라디오스타에까지 나왔는데 어느 날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김진규다.

서울의 지붕 밑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주 선명한 꿈. 하지만 선명한 꿈도 결국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언젠가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 신영균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이 꿈처럼 사라졌으니까.

https://youtu.be/XxMG1IhCLZY


얼마 전에 끝난 마마 2020에서 방탄의 무대를 보고 세계 아미들이 난리 났다. 재미있는 것은 방탄의 소식은 일본의 예능에서는 매주 다루는데 이상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한국의 그 어느 방송에서도 방탄에 대해서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런데 또 일본은 자주 다룬다. 일본은 방탄을 언급하면서 아라시를 대대적으로 띄운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일본에서 자존심이라 불리는 아라시가 FNS 가요제에서 올해 마지막 무대를 가진 것을 보고 많은 일본인들이 실망과 충격에 빠졌다. 춤은 학예회 수준에 노래마저 립싱크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자막으로는 라이브라고 했지만 입모양이 맞지 않았다. 급하게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그 영상을 보던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자들과 패널들의 당황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 전날 일본에서 방탄의 무대를 본 일본인들은 아라시가 방탄만큼은 아니라도 그 반은 해 줄거라 악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방탄의 이번 마마 2020의 무대를 보면 블랙스완에서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방탄이들이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는데 정말 무대바닥에는 물이 있었고 그 위에서 백조들이 날아다니듯 춤을 선보였다. 봐야 한다. 보면 알 수 있다. 보면 왜 대단한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무용수들이 물이 갈라지는 퍼포먼스는 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가 싶더니, 거기에 카메라가 슬로우로 촬영을 한 것이 아니라 춤을 한 부분 슬로우로 추는데 정말 환호가 절로 나왔다. 그저 영화 한 편이 아닌가.


그리고 미국 실시간으로 반응이 엄청났던 제이홉의 그 춤. 다이너마이터의 중간 부분에 방탄이들이 마이클 잭슨을 오마주 한다. 호비가 들고나온 저 모자는 뭐지? 하다가 그만 호비의 춤사위에 정말 마이클 잭슨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았다.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넘어질 듯하면서 올곧은 동작은 가히 최고 중의 최고였다. 제이홉이 마이클 잭슨의 모자를 쓰고 있다가 넘어질 듯 비켜가면서 모자를 던질 때는 짜릿하다.


영상을 본 마이클 잭슨의 가족인 조카 타지 잭슨이 트위터에 방탄에게 삼촌을 오마주 해줘서 고맙고 놀랍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그 영상을 지켜보던 많은 팬들의 리액션이 재미있고 놀랍다. 블랙스완을 시작으로 온, 라이프 고즈 온, 다이너마이트까지 대략 20여분 정도 죽 이어지는 영상을 보면 가슴을 터지게 하는 중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외국 아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https://youtu.be/eB-yibko0dk


마지막으로 노민우와 아야세 하루카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식이 일본의 한 매체를 통해 전해졌고 도쿄올림픽 이후에 결혼할 것이라는 기사도 났다. 말 그대로 노민우는 한국의 배우이고 아야세 하루카는 일본의 배우다. 그런데 일본에서 난리 났다는 것이다. 아야세 하루카는 일본의 국민적인 배우라서 누구나 다 아는 배우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사람도 '호타루의 빛'을 통해서 아야세 하루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노민우는 어쩐지 좀 뒤처진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노민우는 트랙스에서 드럼을 칠 때 비주얼과 실력을 보고 이건 마치 만화에서 그대로 뛰쳐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뭐랄까 얼굴이 원빈보다 더 조각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반인과는 어울리지 못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잔뜩 달고 있다. 노민우는 자신의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예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비욘세, 마이클 잭슨처럼 노민우의 어머니가 작정하고 노민우를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을 시킨 것이다. 그의 어머니 역시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을 했었다. 그리고 노민우 회사의 수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지만 실력이나 외모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너무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왜 그런지 배우의 길은 순탄지 않은 것 같다) 입대를 했고, 제대를 해서 일본 활동을 하다가 아야세 하루카를 만나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일본의 한 매체에서 아야세 하루카를 쫓아서 기사를 터트렸는데 한국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시큰둥한 반면에 일본에서는 꽤 회자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열애설을 부인하고 있다. 근래에 '호타루의 빛'이 재방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다시 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행복한책읽기 2020-12-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TS 영상 고마워요. 넘 재밌었어요.^^

교관 2020-12-20 12:40   좋아요 0 | URL
방탄보유국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분 좋네요 ㅎㅎ
 


내 주위 모두가 두부와 목살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좋아하지만 나는 된장국을 더 좋아한다. 된장국에 두부 정도는 괜찮지만 고기는 별로다. 된장국에 고기가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형이상학적인 된장국에서 멀어지게 된다. 시래기와 된장만으로 된 뜨거운 된장국을 마시고 나면 시원한 바다의 맛도 나고 실루엣이 펼쳐진 들판의 탁 트이는 기분도 든다. 그렇다고 하지만 고기가 있으면 넣어서 된장국을 먹기도 한다. 


된장국은 된장과 한없이 데쳐지고 데쳐진 배추가 입 안에서 허물어지는 된장국이 가히 최고다. 뜨겁게 해서 호로록 마시는 된장국, 그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된장국이다. 


꼭 겨울에 어울릴 필요는 없지만 겨울에는 역시 된장국이다. 된장찌개는 더운 날에 먹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지만 된장국은 겨울에, 길거리 리어카의 어묵 국물처럼 후루룩 하며 속을 한 번에 데워주는 게 겨울에 딱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된장찌개와는 멀어지고 된장국과 친밀하게 지낸다. 된장찌개와 된장국은 무슨 차이가 나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가 크다. 찌개와 국은 글자부터 완전히 다르니까. 


짜장면과 간짜장 정도의 차이일까. 된장찌개가 간짜장이고 된장국은 짜장면이라면 그냥 짜장면이 간짜장보다 더 맛있을 때가 있다. 된장국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푹 데쳐진 시래기다. 시래기를 입 안에 넣는 순간 그래, 이 추운 날에도 괜찮아, 그러니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위로가 된다.  


겨울에 이렇게 된장국을 찾는 이유는 지금(도 그렇지만) 보다 더 내세울 것 없고 무척 힘들었던 시기에 추운 밤에도 지새워야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 오들오들 떨면서 작업을 할 때 보온병에 담아온 된장국을 호로록 거리며 냉철한 추위를 이겨냈다. 분명 오늘 밤 안으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데, 그래서 거래하는 곳이 사라질 것 같은데 보온병의 된장국이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어느새 작업이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 겨울에 커피를 그렇게 마시면서 작업을 했다면 몸에 무리가 왔을지도 모르고 술이라면 작업을 하다가 내팽개치고 그대로 달아나버렸을지도 모른다. 


된장국은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심리적인 안정은 일상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약해질 때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 불안정한 기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나처럼 불안을 잔뜩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이라는 것은 몹시도 중요한 문제다. 된장국 정도에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은 덜 불행하게 죽 이어질 수 있다. 뜨거운 된장국을 한 그릇 그대로 몸에 넣어서 속이 뜨거워졌다면 이제는 밥을 말아서 위로를 받을 차례다. 된장국은 그런 존재니까. 우리 삶에서 위로를 주는 것들은 된장국처럼 늘 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12-18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0-12-19 13:06   좋아요 0 | URL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들은 가까이 있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