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소설 쓰고 앉아있네 (교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하루키 좋아하는 동네 삼촌</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8 Sep 2026 19:13:59 +0900</lastBuildDate><image><title>교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6999160323877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교관</description></image><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도시괴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23663</link><pubDate>Fri, 18 Sep 2026 1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23663</guid><description><![CDATA[도시괴담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서운 건 귀신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매일 다니는 곳,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 갑자기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언젠가부터 장편 공포영화는 별로 무섭지 않은데 단편 공포물은 꽤 무섭다. 짧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공포가 설명되는 순간이 오는데, 짧은 이야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끝나버린다. 옴니버스라 앞의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것도 좋고.​사실 공포라는 게 멀리 있는 건 아니다.​어릴 때는 정전이 꽤 자주 됐다. 동생과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화면이 꺼지면 둘이서 꺄악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 집 안에 초를 하나씩 두고 있다가 정전이 되면 불을 켰다.​그런데 촛불이 밝지도 않았다. 촛불 바로 주변만 겨우 보이고 조금만 멀어지면 다시 깜깜했다.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불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데, 어린아이에게 어둠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어린 시절이 지나면 공포의 대상도 바뀐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도시괴담’에서 재미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괴물이나 귀신이 나오는 장면 자체는 사실 그렇게 무섭지 않다.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은 묘하게 무섭다. 사람이 정말 무서워하면 나까지 같이 긴장하게 된다.​이번 편 ‘문지방’도 그렇다.​아내가 친정에 가면서 남편에게 문지방 위에 붙여놓은 부적을 절대 떼지 말라고 한다. 옆 동에서는 남자 두 명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편 ‘엘리베이터’에서 사라진 두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들이 어딘가에서 연결되는 것도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다.​그런데 남편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부적을 떼고 잠든다. 그리고 결국 일이 벌어진다.​나타나는 괴물은 솔직히 별로 안 무섭다.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괴물을 보고 겁에 질려 있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긴장된다.​나는 ‘도시괴담’이 그런 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괴물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평범했던 집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것.​어릴 때 정전된 집에서 촛불 하나를 켜놓고 반대편 어둠을 바라보던 것처럼.​공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8/pimg_6392533395167521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2366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위스퍼 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21672</link><pubDate>Thu, 17 Sep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21672</guid><description><![CDATA[<br>출연 배우들이 워낙 쟁쟁해서 봤는데, 막상 보고 나니 재미와는 거리가 꽤 있다.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이렇게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주인공 톰 역의 애덤 스콧은 여기서도 범죄소설가로 나온다. 얼마 전 본 영화 ‘호컴’에서는 공포소설가였다. 두 작품만 놓고 보면 ‘호컴’ 쪽이 훨씬 재미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에서 같은 배우가 비슷한 직업의 작가로 등장하는 걸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에 배우가 그렇게 없나 싶기도 하고.​애덤 스콧은 역시 ‘단절’ 시리즈가 가장 좋았다.​톰은 아들 제이크와 조용한 마을로 이사 온다. 아내를 잃은 뒤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톰에게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사 온 집에서 제이크가 이상한 속삭임을 듣기 시작한다.​이후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어두운 쪽으로 흘러간다.​제이크는 집 안에서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톰은 그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크가 사라진다.​사건을 쫓던 아만다(미셸 모나한)는 제이크의 실종이 십수 년 전 여러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연쇄살인범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범인은 ‘위스퍼맨’이라고 불렸다.​그런데 이상한 건 위스퍼맨이 이미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톰은 결국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아버지 피트(로버트 드 니로)를 찾아간다. 피트는 은퇴한 경찰이고, 과거 위스퍼맨을 검거한 인물이다.​제이크를 찾기 위해 피트와 톰, 그리고 아만다는 과거의 사건 기록과 단서를 하나씩 뒤진다.​이렇게 줄거리만 놓고 보면 꽤 재미있다.​게다가 배우들도 좋다. 로버트 드 니로와 마이클 키튼, 애덤 스콧, 미셸 모나한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화면도 좋다. 영화 전체에 어둡고 축축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범죄 스릴러가 가진 눅눅한 느낌은 제대로 살아 있다.​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개연성이 자꾸 걸린다.​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과 설정도 계속 떠오른다. ‘데블스 아워’를 비롯해 여러 스릴러에서 봤던 요소들을 조금씩 가져와 한곳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가족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알겠다. 아내를 잃은 톰과 아버지 피트 사이에 쌓여 있는 오래된 감정도 중요한 축이다.​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감정들이 범죄 수사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를 옆으로 새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차라리 가족의 상처를 조금 덜어내고, 제이크의 실종과 위스퍼맨을 둘러싼 사건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서 하나가 다음 단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 범인을 의심하고 다시 뒤집히는 식으로 범죄 수사의 논리와 반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배우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그런데 좋은 배우와 좋은 분위기만으로는 결국 영화가 재미있어지지 않는다.​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그 부분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7/pimg_63925243411530107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2167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더 테러 시즌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9720</link><pubDate>Wed, 16 Sep 2026 1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9720</guid><description><![CDATA[이 시리즈는 정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편씩 보게 된다. 잔인하고, 또 잔인하다. 그렇게 보다 보면 어느새 10화까지 와 있다. 특히 마지막 10화는 정말 충격적이다.​이야기는 1800년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북극으로 들어간 탐험대의 이야기다. 시리즈 내내 눈이 내리고 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런데 추위만 견디면 되는 게 아니다. 식량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몸을 썩게 만드는 질병까지 번진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생명체까지 탐험대를 공격한다.​매일 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눈과 얼음뿐이다. 어디를 가도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런 곳에서 사람은 조금씩 미쳐간다. 옆에서 함께 있던 사람이 극한의 추위와 병으로 하나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두 척의 탐사선은 거대한 얼음에 갇히고 구조는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원들은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간다. 그 과정을 굉장히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다른 고어 공포영화를 볼 때보다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게다가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 몸을 반으로 갈라놓고 다리를 물어뜯어 버린다. 화면 자체가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그곳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저런 곳에 며칠만 있어도 팔다리가 동상에 걸리고, 결국 살이 썩어 들어가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극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너무 차갑다. 화면을 가득 채운 눈과 얼음이 아름답게 보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질식시키는 것 같다.​'옐로우스톤' 첫 시즌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줬다면, '더 테러' 시즌 1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인간을 밀어붙인다. 추위와 굶주림, 질병, 죽음이 계속 사람을 몰아세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절망과 두려움이 아주 구체적으로 보인다.​무서운 건 괴물만이 아니다. 사람이 굶주리고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무섭다. 삶과 죽음, 질병과 신체훼손, 인간의 본성과 윤리 같은 것들이 계속 뒤섞인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까지 끼어든다.​특히 마지막 10화에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죽은 선원의 살을 떼어 먹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상하게도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보다 그 장면이 더 오래 간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서 그런 것 같다.​실제 1845년 존 프랭클린 탐험대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다가 조난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이 시리즈를 더 무섭게 만든다. 완전히 허구라고 생각하고 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저 얼음 속에 갇혀 있었고,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갔다.​지금 '더 테러' 시즌 2를 보고 있는데 시즌 1과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시즌 1보다 재미가 떨어져서 그런지 조금 집중이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했던 건 시즌 1의 그 폐쇄된 공간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그리고 거기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정적인 공포를 좋아한다면 '더 테러'는 시즌 1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공포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빠르게 놀라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보고 있는 동안 조금씩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다. 괴물이 나타나지 않아도 이미 무섭고, 괴물이 나타나면 더 무섭다. 결국 가장 무서운 건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6/pimg_63925158541889367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9720</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소중한 날의 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7905</link><pubDate>Tue, 15 Sep 2026 14: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7905</guid><description><![CDATA[이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통쾌해서가 아니다. 쾌변을 하고 난 뒤처럼 개운해서도 아니다.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을 보고 난 뒤처럼, 그냥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이야기가 롤러코스터처럼 크게 굽이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 곁에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렇게 오래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주인공 이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시절의 서울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마라톤을 하고, 뜀틀을 넘고,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뛰어다닌다. 거리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방앗간과 카세트테이프 가게, 레코드 가게가 보인다. 파란 비닐우산도 등장한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옛날 소품’으로 배경에 놓여 있지 않다. 하나하나 세심하고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빵집의 TV에서는 린다 카터가 출연한 '원더우먼'이 나오고, 벽에는 그 시절 달력이 걸려 있다. 골목 벽에는 '별들의 고향'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영화 초반부터 김만수의 ‘푸른시절’이 흘러나오는데, 그 노래 하나만으로도 1970년대의 공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람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영화관 간판도 좋다. ​그 영화관에서 이랑이 '러브 스토리'를 보며 눈물 콧물을 쏟는 장면도 재미있다. 이후 장면을 보면 이랑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히 어느 한 시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풍경이 섞여 있다. 특정한 한 해를 재현했다기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넘어가던 시절의 모습을 한데 담아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풍경이 옛날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대사도 재미있다. 억지로 문학적인 표현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여학생들을 보며 남학생들이 “쟤 얼굴이 우리 엄마 닮았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철수가 학교 옥상에서 커다란 방패연을 만들어 몸에 묶고 뛰어내리려 하자, 친구들이 “야, 영희랑 놀아야지. 너 죽으면 교과서 바뀐다” 같은 대사들. 이런 대사가 참 좋다. ​멋을 부린 말이 아니라, 그 나이의 아이들이 실제로 할 법한 말이라서 웃긴다. 철수와 이랑이 가까워지는 과정도 좋다. 둘 다 이성에 대해 제대로 경험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운명적인 사랑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색하고 서툰 채로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며 가까워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소가 쓰윽. 이랑이 철수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지금의 아이들과는 참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그런 사소한 차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당시의 공기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 공기가 참 예쁘다. 수채화처럼 번지는 색감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서울의 골목과 학교, 사람들의 옷차림이 모두 조금씩 빛바랜 듯하지만,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명동의 만화거리에도 영화 속 장면들이 벽화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실제 거리의 벽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이랑에게 달리기는 전부였다. 늘 1등을 하던 이랑은 어느 날 달리기 시합에서 다른 아이에게 추월당한다. 그리고 일부러 넘어져버린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 믿고 있다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랑에게는 그날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한다고 믿었던 일에서 처음으로 배신당한 듯한 기분. 나는 이 장면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통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수민을 바라보는 이랑의 마음도 그렇다. 수민은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고 있어 예뻐 보인다. 이랑은 엄마에게 자기 교복은 왜 이렇게 크냐고 투덜거린다. ​별것 아닌 장면인데도 영화가 끝난 뒤까지 계속 생각난다. 아마 성장이라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사건 하나로 사람이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사소한 일들이 계속 마음을 건드린다. ​친구 때문에 흔들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처음으로 밀려나고, 나보다 예쁜 아이를 보며 질투하고,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안재훈 감독이 연출했고, 각본은 '은중과 상연'의 송혜진 작가가 맡았다. 현실적인 감정과 잔잔한 여운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감성이 영화 곳곳에 잘 배어 있다. 거창한 사건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랑과 철수가 겪는 성장의 순간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아가미'도 안재훈 감독의 작품이다. 구병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두 영화를 이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성장통은 그런 것 같다. 눈을 떴다가 다시 눈을 감는 하루 동안에도 계속 마음을 찌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상처받으면서 조금씩 자라난다. '소중한 날의 꿈'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내가 잠시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분이 좋다. 특별히 신나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오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만난 사람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면 좋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5/pimg_63925079566904327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790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가을의 전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5490</link><pubDate>Mon, 14 Sep 2026 12: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5490</guid><description><![CDATA[<br>가을이 오기 전 또 보는 ‘가을의 전설’은 거칠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운데 매혹의 공포가 있고, 통제에서 벗어난 선함의 종마 같은 트리스탄의 매력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이사벨을 안고 오열하는 트리스탄의 슬픔과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경외가 대자연을 배경으로,달의 뒤편처럼 아름다운 영상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보여준 ‘가을의 전설’.무엇보다 슬픈 고혹미가 흐르는 음악과 함께 다시 봐도 좋을 영화.<br>https://youtu.be/2Iio8QmZY8A?si=NKk7nknO-tIHkIwk]]></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4/pimg_6392498506048251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5490</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눈동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3124</link><pubDate>Sun, 13 Sep 2026 1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3124</guid><description><![CDATA[<br>공포 스릴러로 보면 신민아가 혼자서 영화를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쌍둥이 자매가 있다. 동생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죽는다.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언니는 동생이 자살할 리 없다며 직접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두 자매 모두 유전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을 앓고 있다. 동생이 죽은 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번에는 언니의 시력까지 급격하게 나빠지고, 결국 수술을 받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건을 쫓고,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와 맞서야 하는 이야기다.​원작은 스페인 영화 [줄리아의 눈]이다. 스페인은 역시 스릴러 하나는 잘 만든다. 소간지가 그걸 잘 캐치해서 수입하기도 한다. ​영화 자체는 흥미롭고 나쁘지 않다. 그런데 보면서 답답한 부분이 너무 많다. 많다기보다는 답담함이 강력하다.​스토커로 나오는 현민은 형사 도혁에게 정말 개 맞듯이 처맞는다. 엄청 맞는다. 이 정도면 정신을 잃어야 정상인데, 맞으면서 웃는다. 코피 좀 난 얼굴로 다시 일어나더니 칼로 사람을 찌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도망간다. 개성파 배우 김준배와 비 오는 날에 한판 붙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맞아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이쯤 되면 인간이라기보다 거의 불사신이다.​형사들도 너무 영화적인 스테레오타입이다. 정적이고 무표정하고,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별 역할이 없다. 이런 형사 캐릭터는 이제 좀 지겹다.​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미친 사이코가 되었을까’가 궁금해진다. 그런데 정작 그 이유가 너무 간단하게 나와 버린다. 범인의 행동은 그렇게까지 극단적인데 원인은 생각보다 싱겁다.​차라리 [줄리아의 눈]에서처럼 어두운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고 주변을 더듬으면서 조금씩 상황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범인에게 쫓기고, 그 상태로 뭔가를 해결해야 하는 이야기는 이미 꽤 많이 나왔다. 결국 이런 영화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나 긴장감 있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데, 그 부분에서 원작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영화의 공간도 너무 밀폐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2010년에 나온 원작이 지금 영화보다 더 현대적으로 느껴진다.​결국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건 캐릭터 하나하나가 아니라 신민아의 연기다. 스토커의 집착이라는 키워드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만큼, 심장을 조여 오는 심리적인 공포도 거의 신민아의 몫이다. 그 역할은 제대로 해냈다.​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많은데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영화는 몇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아가면서 보는 맛이 있다.​그게 뭔지는 각자 영화를 보면서 찾아보시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3/pimg_6392489846138125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3124</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 시즌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1323</link><pubDate>Sat, 12 Sep 2026 12: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1323</guid><description><![CDATA[라이어니스 시즌 3은 리처 시리즈만큼 재미있다. 마동석도 리처처럼 만들면 좋을 텐데. 한 주먹으로 모든 빌런을 때려눕히는 식이 아니라 리처처럼 얻어터지기도 하고, 기절하기도 하고, 끌려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마동석 시리즈도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라이어니스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총소리다. 진짜 총소리처럼 들린다. 영화에서 들리는 총소리는 아무래도 영화를 위한 소리라는 느낌이 있다. 실제보다 크고 묵직하게 들리거나, 액션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라이어니스의 총소리는 그런 느낌이 덜하다. 갑자기 총성이 터지면 정말 옆에서 총을 쏜 것처럼 날카롭고 건조하다. ​이런 사운드가 액션 장면의 긴장감을 더 끌어올린다. 시즌 2에서 조 샐다나가 연기하는 조는 상당히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여준다. 첩보 작전을 수행하면서 가족과 계속 충돌한다. 조는 이 일만 끝나면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을 쉽게 놓아줄 수 없다. 계속해서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고, 그럴수록 가족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시즌 2는 이런 갈등에 엄청난 액션 스케일과 빠른 전개가 더해지면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로튼토마토 점수만 놓고 보면 시즌 3의 평가가 더 낮지만, 나는 오히려 시즌 3이 가장 재미있다. 시즌 1과 2에서 조는 무시무시한 사냥꾼이었다. 적을 찾아가 사냥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시즌 3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다. 조가 쫓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에 기습을 당하고 납치까지 된다. ​발톱 밑에 숨겨둔 위치추적기까지 빼앗긴다. 사냥하던 사람이 사냥감이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가족이다. 시즌 1과 2에서 조의 활동 무대는 해외 오지나 타국의 카르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말 그대로 전쟁터에 가까운 장소였다. 그런데 시즌 3에서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 남편과 두 딸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생활공간으로 들어온다. ​조가 지금까지 어떻게든 분리해놓았던 첩보전과 가족의 일상이 결국 한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이번에 라이어니스 팀이 상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동유럽과 러시아의 정보망이 결합된 상대와 맞붙는다. 조는 비밀 작전을 수행하면서 미국 본토 깊숙한 곳, 그것도 국가 정보기관 내부에 적이 침투했다는 패턴까지 포착한다. 그런데 조가 기습을 당하고 납치된다. ​여기서부터 시즌 3의 재미가 본격적으로 살아난다. 조는 국가를 위해 싸우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 한다. 시즌 1과 2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조에게 가족은 지켜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임무와 분리해두어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둘을 더 이상 떼어놓을 수 없게 됐다. 국가를 지킬 것인가, 가족을 지킬 것인가. ​시즌 3은 결국 이 질문을 조에게 던진다. 시즌 2처럼 시즌 3도 시작부터 특수부대의 작전을 보여주는 장면이 상당히 강렬하다. 액션의 규모도 크고 전개도 빠르다. 그런데 이번 시즌은 단순히 더 큰 작전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조 자신이 사냥감이 되면서 이야기가 훨씬 개인적인 방향으로 좁혀진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시즌 3에 더 몰입하게 된다. 총 8화이고 현재 5화까지 진행됐다. 이런 첩보 액션과 특수부대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지금까지는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2/pimg_6392481324811562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1132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저주받은 도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7011</link><pubDate>Thu, 10 Sep 2026 1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7011</guid><description><![CDATA[존 카펜터 영화는 실망하지 않는다. 모두가 존 카펜터가 이 영화에서 실패했다고 했지만, 이 시대에 봐도 설정이나 아이들의 연기가 공포를 잔뜩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한 작은 마을, 미드위치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 후 마을 사람 모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 장면을 어쩌면 란티모스가 부고니아에서 오마주 하지 않았나 싶다. 저주받은 도시에서는 첫 장면이지만, 부고니아에서는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준다. 천천히, 학교, 상점, 바닷가, 길거리, 자동차 안을 보여주며 모든 사람들이 전부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부고니아에서는 파멸을 보여주었지만, 저주받은 도시는 정신을 잃은 것이다. ​이 사건 후 임신이 불가능했던 여인이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까지 10명의 여인이 한 날에 임신을 한다. 낙태를 하려던 여자도 아이를 낳기로 한다. 한꺼번에 태어난 10명의 아이들은 점점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10명의 은발머리 아이들 중 한 명은 버넬박사가 숨겨 해부를 한다. 이 아이들은 계속 어른들을 초능력으로 죽여 가며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존 카펜터가 이 영화로 비판받은 이유는 지루하다는 것이다. 다른 영화에 비해 지루한 면이 있다. 아이들이 눈에서 색다른 빛을 내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능력에 잠식되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 아이들의 위험을 알고 덤벼든 어른들은 전부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 후 잔인하게 저 세상으로 간다. 아이들이 악마적인 초능력으로 어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모습은 오멘의 데미안을 닮았다. ​그리고 박사와 여자 아이가 하는 대화를 들으면 기생수가 이 영화에서 설정을 가져왔나 할 정도다. 아이들은 우리가 먹고 살아가야 하기에 인간들을 죽여야 한다. 그것에 왜 감정이 개입을 하는지 박사에게 묻는다. 그저 생존에 필요하기에 인간을 죽이고 더 나아가 마을을 벗어나 전부 흩어져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 든다. ​이런 설정은 기생수와 비슷하다. 이 아이들은 끝내 어떤 존재인지 설명이 안 된 채 끝난다. 영화에는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와 스타워즈 제다이였던 마크 해밀이 나온다. 이 두 사람은 미국에서 슈퍼영웅 같은 상징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당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마크 해밀은 다른 마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초능력에 의해 처참하게 죽는다. ​마지막 크리스토퍼 리브는 아이들의 초능력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지 않으려고 정신분석한 적인 벽을 만들지만 점점 힘에 부친다. 아마도 존 카펜터의 묘수가 숨어있는 캐스팅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비판이 큰 대신 해석도 다분하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단순 복수나 보복을 위해 악마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기생수처럼 그냥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이라고 생각된다. 아이들이 역동적이지 않아서 지루한 감은 있지만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장면은 공포로서 충분하지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0/pimg_63924639268567909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7011</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4802</link><pubDate>Wed, 09 Sep 2026 1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4802</guid><description><![CDATA[이게 재미없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남들은 꽤 재미있다고 하는데, 나는 끝까지 보면서 계속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몰입이 잘되지 않는다. 뭔가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이야기도 쉴 새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작 나는 그 사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이야기의 중심에 여고생들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전개가 나름의 힘이 있었다. 그런데 여고생들이 본격적으로 사건의 중심에 들어오면서부터 그 속도에 계속 태클이 걸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여고생들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되고 이야기를 움직이는 구조는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의 연결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드라마라는 게 어느 정도의 과장은 필요하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벌어져도 그것을 납득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면 괜찮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물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한 번 정도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데, 그런 장면이 계속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에 빠져들기보다 작가가 다음 사건을 만들기 위해 인물들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게다가 공개 방식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한꺼번에 몰아서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뜨문뜨문 한 회씩 공개되다 보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면서 긴장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회가 끝나면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강하게 남아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긴장감이 조금씩 식어버렸다. ​배우들의 연기도 생각보다 아쉬웠다. 특히 출연진의 이름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김혜수와 조여정처럼 연기력으로는 이미 충분히 인정받은 배우들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이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연기가 조금 겉도는 느낌이다. 분명 장면 안에서는 열심히 연기하고 있고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 감정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는다. 배우가 캐릭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캐릭터와 배우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8화에 이르러서는 솔직히 쌍둥이 빌런이 저 답답한 가족들을 그냥 싹 정리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가족들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게 해버리면 이야기가 끝나버리니까 결국 쌍둥이 빌런이 당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또 답답함이 생긴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당하고 있어?’ 싶은 장면을 보고 있자니 긴장감보다는 어이가 먼저 생겼다. ​여기에 여고생들의 동성 간 사랑까지 주요하게 끌어오면서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제대로만 다뤄진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서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이야기 전체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또 하나의 자극적인 장치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여고생들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과정과 그들의 관계, 가족의 불륜과 욕망까지 한꺼번에 얽히다 보니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보다 ‘얼마나 많은 자극을 집어넣었는가’가 먼저 보일 때가 있다. 남들은 재미있다는데 나는 그렇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9/pimg_63924554225163947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480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스트 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2592</link><pubDate>Tue, 08 Sep 2026 1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2592</guid><description><![CDATA[한창 뜨거웠던 한일 월드컵때 나온 영화라서 그런지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다. 그해는 그 어떤 무엇보다 축구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다 흡수했을 때였다. 고스트 쉽은 지나고 나서도 어쩐지 계속 보게 된다. 그런 몇 편의 영화 속에 이 영화도 있다. ​첫 장면만 빼면 이 영화는 그렇게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무서운 장면이 없고 마지막에는 케이티 때문에 뭉클해진다. 꼬꼬마 케이티도 지금은 39살이 되었다. ​모두가 무서운 공포영화로 알고 있어서, 기대하고 본 사람과 무서움을 참아가며 본 사람들 전부를 좀 놀라게 했던 영화였다. 악마로 나오는 데스몬드 헤링턴은 덱스터 시리즈에 죽 나왔다. ​그러다가 근래 덱스터 부활 시리즈에 덱스터 원년 멤버들이 전부 나오는데 모두가 나이가 들었어도 예전 모습이 남아 있어서 꽤 반가웠다. 그 외에 근래 더 보이즈 시리즈의 부처 역의 칼 어빈, 유명한 배우 가브리엘 번 같은 배우가 잔뜩 등장한다. ​이 영화는 시작 10분, 오프닝이 레전드로 남아 있는 영화가 되었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 일으킨 피의 대 참사가 초반에 펼쳐진다. 몇 십 년 동안 현대기술력에도 발견되지 않던 유령선의 모습도 꽤 볼거리다. ​그래픽으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유령선의 녹슬고 철근의 싹은 모습까지 생생하다. 대부분 특수촬영으로 연출했기에 보는 재미가 확실히 좋다. ​오래전 선상 파티를 즐기던 수백 명의 승객이 금괴에 눈이 먼 선원들에 의해 와이어로 전부 죽임을 당하고 선원들까지 금괴를 더 차지하려고 전부 죽여 버린다. ​그 유령들이 그동안 유령선에 오른 사람들을 죽이는데. 배는 긴 시간 버려졌지만 누군가 있는 듯한 흔적이 있고, 죽은 승객들의 기억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케이티만이 안토니아 그라자 호에서 벌어진 피의 참극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다. ​이 유령여객선은 배에 오른 인간들의 영혼을 가두는 연옥 같은 공간이다. 과거의 참극과 인간의 배신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이 여객선이다. 그런 배에 욕망의 금괴가 있기에 인간은 금괴를 가지려 한다. 욕망이 넘쳐나면 결국 생명을 위협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진실이 드러난다. 영혼이 빠져 나가지 못해 귀신이 된 모습보다 인간의 불쾌한 욕망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반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뭉클하기에 호불호가 갈린다. 이 영화는 잘 만든 공포영화라기 보다 시작 10분이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라고 보면 된다. https://youtu.be/guIy_W-txKc?si=-LZXxjntnqPAT7sk]]></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8/pimg_63924469178145811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259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나이트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0048</link><pubDate>Mon, 07 Sep 2026 1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0048</guid><description><![CDATA[요런 영화가 딱 내가 빠져드는 영화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스럽고, &lt;경계선&gt;처럼 모호하다. 뭔가를 알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확실하게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알고 싶어진다. 배경도 그렇고 서사도 그렇고 인물들도 그렇다.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하다. ​&lt;서번트&gt; 시리즈를 볼 때 엄청 빠져들어서 봤는데 딱 그때의 기분이다. 영화 속 핀란드는 대체로 이런 분위기다. 햇빛은 거의 없고 짙은 녹색의 숲이 이어진다. 숲속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사람이 사는 곳 같지 않은 기괴한 환경이 나온다. 핀란드 코미디 영화를 봐도 웃기기는 한데 이상하게 배경은 비슷하다. 웃긴데 배경은 쓸쓸하고, 평범한데 어딘가 기분이 이상하다. 이 영화의 부부는 핀란드 깊은 숲속 별장 같은 저택에서 거의 고립된 채 살아간다. ​그러다 아기를 낳는다. 그런데 아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기가 태어난 병원에서도,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남편까지 진실을 외면하려 든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그 말로 모든 걸 덮으려 한다. 그런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이상하다. 단순히 우는 소리가 아니라 숨통을 조여 오는 것처럼 기괴하다. 엄마의 젖을 물어뜯고 모유를 먹지도 않는다. ​생고기를 먹고 피를 마신다. 아이와 붙어 지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엄마 사가는 조금씩 무너져간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상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남편 위즐리 역으로 루퍼트 그린트가 나온다. 이제 루퍼트 그린트는 흔히 생각하는 ‘몸매 관리 잘하는 배우’와는 좀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이 영화에서는 묘하게 잘 어울린다. &lt;서번트&gt;의 루퍼트 그린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사람. 그러면서 아이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핀란드 설화에서 시작됐다. 숲의 정령이 인간의 갓난아기를 훔쳐가고 빈 요람에는 자기 새끼를 놓아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 속 아기는 정령이라기보다는 거의 괴물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아기의 얼굴을 끝까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기는 주로 엎드려 있다. 그르릉거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고, 엄마의 젖을 물어뜯는다. 할머니의 귀를 잡아 뜯기도 한다. 그런데 얼굴은 안 나온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서 계속 아기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얼마나 괴물처럼 생겼을까. 생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니까 늑대인간인가, 뱀파이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온갖 상상을 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디어 아이의 얼굴이 나오는데, 맙소사. 직접 보여주는 괴물보다 보여주지 않는 괴물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사가가 아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자기 아이이기 때문에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하다. 육아에 지쳐가는 과정이 단순히 공포영화의 장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가 자신도 조금씩 아이처럼 변해간다. 영화는 괴물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겁을 주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소리와 분위기, 작은 행동들을 쌓아간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장면이 나중에 돌아보면 전부 이상한 징후였다. 초반에 사가의 손톱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잘 다듬어진 네일이다. 그런데 그 손톱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가가 어떤 상태가 되어가는지 알 수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태도다. ​사가가 아이가 이상하다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산후우울증이나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이 너무 예민한 거라고 한다. 괜찮은 아기라고 한다. 사가는 분명 뭔가를 보고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아이에게 이상한 징후가 계속 나타나고 사가의 확신이 점점 강해질수록 남편과 가족은 오히려 그녀를 착란에 빠진 사람처럼 취급한다. 그때부터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간다. ​이 부분이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행복해야 할 아이의 탄생이 오히려 부부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낳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훨씬 길고 힘들기 때문이다. 육아라는 게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한쪽으로 책임이 몰리면 결국 관계가 망가진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 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징후를 보이고 평범에서 벗어나면 부부는 일상이 조금씩 무너진다. ​이 영화가 무서운 건 괴물 아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가족이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이 더 무섭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인데도 보고 나면 괴물보다 기기괴괴한 사람 쪽이 오래 생각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7/pimg_63924379393211753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00048</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갤 가돗 주연 [더 러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7657</link><pubDate>Sun, 06 Sep 2026 1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7657</guid><description><![CDATA[영원한 원더우먼, 갤 가돗의 신작이 나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달려야 하는 영화다. 아들을 살리려면 정말 달리는 수밖에 없다. 잘나가는 변호사 마이아는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아들 노아를 학교에 보내고 평소처럼 조깅을 한다. 그런데 전화가 걸려온다. 아들의 전화인 줄 알았지만 목소리는 낯선 남자다. 노아를 납치했다는 범인은 마이아에게 계속 달리라고 한다.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면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범인이 아들을 납치한 이유는 따로 있다. 죽이려는 증인이 있고, 마이아를 그 일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이아는 런던 한복판을 끝없이 뛰기 시작한다. 갤 가돗이 달린다. 정말 계속 달린다. 시원시원한 팔다리를 휘저으며 런던 거리를 달리는 모습은 꽤 볼 만하다. 평소 강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조깅이 아니다. 아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아니 아들을 살리기 위해 뛰는 것이니 표정부터 다르다. 뛰는 장면만큼은 갤 가돗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보인다. 범인은 인공지능까지 이용한다. 마이아의 위치와 동선을 추적하고 심박수까지 확인한다. 걷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노아를 빌미로 협박한다. 하필 무대가 런던이다. 카메라가 곳곳에 깔려 있는 도시고, 거리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폰을 들고 돌아다닌다. 마이아가 어디로 가든 누군가의 카메라에 잡힐 수 있고, 반대로 범인 입장에서는 도시 전체를 감시망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설정은 꽤 흥미롭다. 그런데 영화는 그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범인은 계속 마이아에게 전화를 걸어 움직이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어쩌고저쩌고하지만 결국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전화 한 통 받고 또 달리는 마이아다. 처음에는 긴장감이 있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힘이 쭉 빠진다. 범인이 마련해둔 곳에서 권총을 손에 넣은 마이아가 증인에게 총을 쏘고, 결국 아들을 구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나온다. 사실 마이아는 가만히 범인의 지시만 따르고 있었던 게 아니다. 중간부터 첩보원처럼 상황을 뒤집을 방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이아가 어떻게 범인을 속였는지, 어떤 식으로 판을 뒤집었는지 디테일하게 보여줬다면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너무 짧다. 거의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휙 지나간다. 이런 반전이라면 앞에서 조금씩 복선을 깔아놓고 마지막에 터뜨리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급하게 처리했다. 결국 이 영화에서 제일 열심히 뛰고 고생한 사람은 갤 가돗이다. 갤 가돗은 이 역할을 위해 전담 코치에게 달리기를 배우고 실제 촬영 중 부상까지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달리는 모습은 확실히 멋있다. 런던 거리를 저렇게 계속 달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달리는 모습이 멋있다는 것과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갤 가돗 주연작 가운데 지금 가장 낮은 평점을 받고 있다. 소재는 나쁘지 않다. 런던의 감시 카메라, 인공지능, 납치된 아이, 그리고 계속 달려야 하는 엄마. 잘만 만들었다면 상당히 쫄깃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갤 가돗을 그렇게 열심히 뛰게 만들어놓고, 그만큼의 이야기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래도 갤 가돗이 달리는 장면은 좋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하게 남는 것도 결국 제목처럼 갤 가돗의 달리기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6/pimg_63924296160187981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765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제이슨 스타뎀의 ‘뮤터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3817</link><pubDate>Fri, 04 Sep 2026 13: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3817</guid><description><![CDATA[제이슨 스타뎀의 액션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또 나왔다. [쉘터], [워킹맨], [비키]의 뒤를 잇는, 나 홀로 빌런 때려잡는 액션 영화다. 설정이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결국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제이슨 스타뎀이 이런 액션 영화를 계속 만들어주는 게 좋다. ​요즘 스레드를 보면 실베스터 스탤론이 80살이 된 나이에도 액션을 하는 장면이 올라오던데, 그게 인공지능으로 만든 건지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든다. ​액션 스타는 아무래도 수명이 길지 않다. 그런데 관리를 잘한 배우들은 꽤 오래 간다. 제이슨 스타뎀도 그쪽이다. 제이슨 스타뎀이 로맨틱한 영화나 정통 드라마에 어울리는 배우는 아니다. ​오히려 코믹한 역할은 꽤 잘 어울린다. 실제로 그런 캐릭터로 나온 영화도 있고. 이번 영화에서 제이슨은 특수부대 출신의 경호원이다. 경호해야 할 억만장자이자 친구인 티부가 죽고, 제이슨은 누명을 쓴다. 그래서 진짜 범인을 찾아 나선다. ​이번에는 화물선이다. 배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액션이 벌어진다. 애나벨 윌리스가 제이슨의 파트너로 나온다. [미이라]와 [말리그넌트], [노 머시]로 이미 알려진 배우다. ​액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제이슨 스타뎀의 액션이다. 그래서 제이슨 영화는 나오면 기대하고 보게 된다. 예전 성룡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제이슨은 이번 영화에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설정은 익숙하고 구조도 이전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야기를 새롭게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제이슨의 액션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보면 된다. 러닝타임도 길지 않아서 액션만 보기에는 오히려 좋다. ​특히 좁고 제한된 화물선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볼 만하다. 주변에 놓인 물건들을 무기처럼 이용하면서 싸우는 액션이다. 넓은 공간에서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액션보다는 이런 식으로 좁은 공간을 이용하는 액션이 제이슨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마동석과 제이슨 스타뎀이 같이 나오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햄식이랑 마동석이 합작으로 영화가 나오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4/pimg_63924126392377156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381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류준열의 ‘들쥐‘, 외모 비난이라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1510</link><pubDate>Thu, 03 Sep 2026 14: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1510</guid><description><![CDATA[<br>들쥐는 톤 앤 매너도 좋아 보인다. 특히 6화의 카체이싱 장면. 경찰차들이 달려들어 처박는 장면이 꽤 시원시원하다. 자동차 액션에 공을 들였다는 게 눈에 보인다. 무엇보다 거창한 대사가 없다. 그게 오히려 좋다. ​들쥐라는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걸 대사로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거창한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든다. 이런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김홍선 감독이 추격 장면을 잘 찍는 연출가라고 하던데, 이번에도 그런 장점이 보인다. ​여기에 이재곤 작가가 평범한 일반인이 구석으로 몰렸을 때 쥐어짜듯 튀어나오는 이야기에 강점이 있으니 둘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류준열의 내레이션도 좋다. 이병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어떤 신뢰감과 뚜렷함이 묻어난다고 해야 하나. 목소리가 이야기를 잡아준다. ​두 얼굴을 오가는 류준열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요즘 스레드를 보면 류준열에 대한 외모 비하가 조금씩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나는 류준열이 연기도 잘하고 스타일도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그렇게까지 물어뜯는 걸 보면 베리 키오건이 생각난다. ​키오건도 처음에는 외모를 가지고 조롱하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붙으면서 비난이 점점 커졌다. 그러다 단순한 악플 수준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할머니 집 문을 두드리고, 아들이 사는 집 밖에 앉아 가족을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2024년에는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2026년에는 외모에 대한 비난 때문에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심지어 연기 자체를 하기 싫어지는 데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 하나를 두고 못생겼다고 놀리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그게 점점 당연한 일이 된다. 한 사람이 던진 말에 다른 사람이 붙고, 또 다른 사람이 붙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혐오와 비하는 힘을 얻는다. 그러다 보면 결국 키오건 같은 일이 생긴다. 얼굴이 아주 잘생겼는데 연기를 못하면 그게 참 못나게 보이던데.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3/pimg_6392404160350143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91510</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뒤틀린 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89093</link><pubDate>Wed, 02 Sep 2026 14: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89093</guid><description><![CDATA[좀 더 무섭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보고 나면 묘하게 안타까운 영화다. 서영희가 공포의 중심을 딱 잡고 잘 끌고 간다. 특히 생고기를 우걱우걱 먹다가 접시까지 씹어 먹는 장면은 정말 공포스럽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공포영화에는 먹는 걸로 무서움을 주는 장면이 꽤 많다.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어느 정도 결과가 보인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공포의 공식들을 거의 다 꺼내 놓았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됐다. 무섭기는 한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꾸 예상하게 된다. 원작 소설은 재미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소설은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글로 읽을 때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공포가 훨씬 클 때가 있다. 소설로 읽었다면 긴장감이 영화의 몇 배는 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소설이 나오기 전부터 영화화가 확정됐다고 한다. 한국 괴담에 나오는 ‘오귀택’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오귀택은 집의 창이나 현관 같은 곳에 생긴 비틀린 공간의 틈으로 귀신이 모인다는 흉가 중의 흉가를 뜻한다는데, 한국에 이런 괴담이 있었다니. 공포영화 마니아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나만 몰랐나. 영화는 중반까지는 꽤 재미있다. 긴장감도 있고 공포도 충분하다. 집이 비틀린 공간이라고 하지만, 사실 인간이 비틀리는 순간 집 안의 모든 공간이 공포가 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엄마가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족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씩 삐걱거리더니 결국 뒤틀린 엄마와 아빠가 섬유유연제 같은 세제를 음식에 타서 아이들을 죽이려 한다. 겉과 속, 내면과 외면, 가면과 얼굴. 영화는 이런 대비를 가지고 공포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게 힘을 잃는다. 초반에 잘 쌓아놓은 불안과 공포가 뒤로 갈수록 조금씩 설명되고 정리되면서, 오히려 무서움이 줄어든다. 조금 더 멀리서 보면 뒤틀린 집이라는 게 꼭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가정집이 그럴 수도 있다. 밖에서는 멀쩡해 보인다. 대문이 닫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정에서 무탈하게 매일 보낸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자. 그건 정말 축복이니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2/pimg_63923954829397146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8909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미스 리틀 선샤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86429</link><pubDate>Tue, 01 Sep 2026 1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86429</guid><description><![CDATA[[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독들은 부부다. 뮤직비디오를 찍던 사람들이었고, 이 영화가 첫 장편영화였다. 그런데 첫 영화부터 참 이상한 걸 만들었다. 영화의 시작도 엉뚱하다. 각본가가 텔레비전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인생에서 낙오하면, 실패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니 성공하라는 식이었다. 각본가는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아널드가 고등학생들한테 개소리를 하는군. 그리고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 속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실패하면 안 된다. 성공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팔아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기 인생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경멸한다. 가족이 먹는 건 매일 배달시킨 치킨이다. 거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살아남은 삼촌이 있고, 마약 때문에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도 있다. 정말 엉망진창이다. 그런 가족에게 막내 올리브가 있다. 일곱 살. 올리브가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가족 전체가 낡은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영화는 이상한 가족여행이 된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제작비도 작은 편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100억 원이 넘는 돈이지만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작은 영화였다. 원래는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였는데 제작비 때문에 계속 줄이고 줄였다. 그러다 고물 미니 버스가 중요해졌다. 낡고 볼품 없는 차, 이 가족을 대변한다. 내리막길에서는 차가 굴러가다가 시속 30킬로미터 정도가 되면 시동이 걸린다. 평지에서는 가족들이 차를 밀어야 한다. 30킬로미터까지. 그래서 차가 멈출 때마다 온 가족이 내려서 민다. 이 장면이 계속 나온다. 처음에는 그냥 우스운데, 보다 보면 이상하게 이 장면이 가족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혼자서는 차를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는 밀어야 한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같이 밀어야 한다. 영화 속 올리브를 연기한 애비게일 브레슬린은 몸을 더 통통하게 보이게 하려고 보형물을 착용했다. 어린이 미인대회에 나오는 다른 아이들도 재미있다. 그 아이들은 배우가 아니었다. 실제 어린이 미인대회 참가자들과 가족들을 섭외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보는 그 기괴한 미인대회 분위기는 만들어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저런 세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게 더 웃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욕을 엄청 한다. 너무 많이 해서 당시 미국에서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애비게일이 듣지 못하게 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욕을 할 때는 어린 애비게일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노래를 들려줬다고 한다. 영화 속에 잘 나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병맛이고 똘아이 같은 인간이 바로 그 할아버지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 사람이 올리브와 이야기를 한다. 대회 직전이라 올리브는 긴장한다. 아빠는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뚱뚱하다. 예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한다. 너 진짜 예쁘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 예쁘다고. 그리고 실패가 무서워서 아예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루저라고 한다. 그런데 너는 이미 시도했잖아. 그러니까 너는 루저가 아니라고. 그 장면이 너어어어무 좋다. 평생 성공해야 한다고 떠들던 아버지의 반대편에서, 평생 욕이나 해대고 마약이나 하던 할아버지가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을 해준다. 그 역할을 앨런 아킨이 했다. 그는 오랫동안 연기를 했지만 이 영화 전까지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지 못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독립영화에 출연했고, 결국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평생을 연기한 사람이 마지막에 아주 작은 영화에서 자기한테 딱 맞는 대사를 만난다. 정든 님에서 이어 이어 이어 이어진 언어의 마법사 김세윤 영화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사람을 울게 만드는 영화는 오히려 쉽다고. 눈물은 한 번 맺히면 중력 때문에 흘러내린다. 그런데 웃게 만드는 건 다르다. 입꼬리를 위로 올려야 한다.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그 어려운 걸 한다. 웃기면서 마음이 짠하다. 그런데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냥 이 가족을 계속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고,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금 이상해진다. 삶이 무료하다면 김밥을 하나 들고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자. 김밥은 한 줄이면 된다. 그리고 이 부부 감독이 처음 찍었던 뮤직비디오가 세기의 명곡 스매싱 펌킨스의 ‘1979’다. 영화에서 돈을 계산하는 장면에 19달러 79센트가 나온다. 세상에 완벽한 가족이 어딨어!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1/pimg_63923863360084769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8642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꺼드럭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8699</link><pubDate>Sat, 29 Aug 2026 1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8699</guid><description><![CDATA[<br><h3 class="wrap_item item_type_text"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15px auto 0px; padding: 0px; font-size: 14pt; font-weight: 400; width: 700px; letter-spacing: 0.8px; line-height: 21.5pt; white-space: pre-wrap; -webkit-font-smoothing: antialiased; color: rgb(51, 51, 51); font-family: ">‘꺼드럭대다’라는 말이 스레드에서 유행이라 좀 미워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 말은 표준고유어더라고. 근대 이전부터 쓰이던 순우리말 ‘거드럭대다’에서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늘 스레드에서 글로만 보다가 육성으로 처음 들은 건 최근이다. 윤상 라디오 방송을 대타로 진행했던 옥달의 김윤주가 ‘꺼드럭대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유행어 중에도 미운 유행어가 있고, 밉지 않은 유행어가 있다. 그전에는 ‘감도 안 옴’이 유행이었다. 이것도 별로 밉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말은 정말 듣기 싫다. 한때 유튜브에서 ‘니마이’라는 말이 대유행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너무 듣기 싫었다. 이런 유행어는 유튜브 하는 개그맨들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오곤 한다. 지금은 스케치 드라마로 많이 넘어갔지만, 그때만 해도 개그맨들 영상은 거의 몰카 형식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니마이’를 어찌나 많이 하던지, 속으로 욕이 나올 정도였다. ‘니마이’ 자주 쓰는 개그맨들은 오래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때 한 영상에서 ‘니마이’를 몇 번씩 하던 개그맨, 개그우먼들은 지금 뭐 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그 유행어를 굳이 따라 하지 않던 사람들은 지금 SNL 라이브나 공중파까지 진출해서 잘나가고, 자기 유튜브 채널도 떡상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니마이’를 썼다고 못 뜬 건 아닐 것이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얘기다. 아무튼 경고한다. 나이 좀 있다고, 예전에 뭘 좀 했다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고 꺼드럭대지 마라. 과거에 뭘 했는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뭘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꺼드럭쟁이야.​<br></h3><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9/pimg_63923605550981232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869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티셔츠가 마를 때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7048</link><pubDate>Fri, 28 Aug 2026 1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7048</guid><description><![CDATA[요즘 스레드를 보다 보면 30대, 40대 여성들이 남자 친구와 헤어져 몹시 슬퍼하는 글이 자주 보인다. 읽다 보면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남자 친구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헤어지고 난 뒤의 허전함이 얼마나 클까. 마치 강아지처럼 24시간 남자 친구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직장도 있고 친구도 있고 다른 일도 있으니 늘 붙어 있을 수는 없고, 대신 시간마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한다. 뭘 먹는지, 뭘 입는지 챙긴다. 처음에는 관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심은 참 이상해서 조금만 지나면 간섭이 된다. 그러다 결국 헤어진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장면도 나온다. 결혼반지를 낀 남자가 다른 여자 앞에서 그 손가락을 슬쩍 숨긴다. 반지를 빼지는 않는다. 그냥 손을 감춘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가 너무 소중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여자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어디 드라마에만 있을까. 너무 좋아하는 옷이라 더럽히기 싫어 아껴 입겠다고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정작 한 번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낡아버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 년에 몇 번 룸살롱에 간다. 아내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을 자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남편과는 할 수 없는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아주 깊게 나눌 수 있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정말 행복하다. 남편이 곁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 중 누가 진짜 바람을 피운 것일까.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부부가 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된다. 물론 모든 부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부라서 오히려 더 어려운 것들이 있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길에서 어떤 사람을 봤는지, 별것도 아닌 생각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 그런 이야기보다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이런 인간관계를 참 집요하게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처럼 킬러들의 쇼핑몰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대작은 만들지 못한다. 일본이나 프랑스는 영화와 드라마에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주 정밀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처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공간은 좁은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은 좁지 않다. 보다 보면 답답한 부분도 있다. ‘아니, 그냥 말을 하면 되잖아.’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 답답함까지가 사람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인정받는 연기자라서 그런지 연기가 좋다. 특히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다른 여자를 더 찾는 것처럼 말하는 순간 아오이 유우가 남편을 바라보는 표정이 참 좋았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서운한 것도 같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한 사람 같기도 하다. 동네 미용실에 가면 아내들이 머리를 하면서 남편 욕을 잔뜩 한다. 어쩌면 그것도 사랑받고 있다는 방식인지 모르겠다. 욕할 수 있다는 것. 아직 화가 난다는 것. 아직 기대한다는 것. 욕하기도 싫은 남편이라면 어떨까. 사랑에서도 이미 아주 멀리 가버린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알 수가 없다. 마음속에 무엇을 집어넣고 다니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어쩌면 부부이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8/pimg_63923520027536990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7048</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아버지와 사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4861</link><pubDate>Thu, 27 Aug 2026 12: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4861</guid><description><![CDATA[오전에 사과를 하나 먹었다. 사과는 오전에 먹어야 좋다지만, 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다만 과일에 대한 불만이 하나 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요즘 과일은 너무 맛이 난다. 당도가 너무 높다. 사과가 꼭 이렇게까지 달아야 하나 싶다.​사과는 아버지의 과일이었다.​아버지가 다른 과일을 드시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과만큼은 무척 좋아하셨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직접 만든 작은 과도를 하나 가지고 계셨다. 날이 추워지면 사과를 매일 드셨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다른 손에는 그 작은 과도를 들고.​나는 어릴 때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동생은 아버지를 닮았는지 사과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사과를 깎기 시작하면 어느새 옆에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깎은 사과를 받아먹고, 또 받아먹고.​두 사람은 사과 하나를 놓고 아주 야무지게도 붙어 있었다. 밥은 안 먹어도 사과는 먹을 것 같았다. 사과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사람들처럼.​기억 속 아버지는 늘 비슷한 모습이다.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직접 만든 작은 과도. 사과 껍질을 길게 벗겨내고, 잘라서 여동생에게 건네주던 모습.​오늘 사과 하나를 먹다가 그 모습이 생각났다.​사과가 아버지의 과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7/pimg_6392342978148749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4861</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쭈쭈바의 맛</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2789</link><pubDate>Wed, 26 Aug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2789</guid><description><![CDATA[오늘도 덥다. 어릴 때 이렇게 더운 날이면 쭈쭈바를 하나씩 먹었다. 그냥 이름이 쭈쭈바였던 것 같다. 딸기물을 얼려놓은 것 같은 맛. 그걸 하나 들고 꼭 따리를 입으로 잡아당겨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사람은 둘인데 쭈쭈바를 하나밖에 못 사면 중간을 빙빙 돌렸다. 그러다 반으로 똑 끊어서 하나씩 나눠 먹었다. 쭈쭈바 하나를 가지고도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약국집 딸내미 성희네 집에 놀러 가면 가끔 걔 엄마가 냉동실에서 샤베트처럼 얼려놓은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었다. 쭈쭈바하고는 맛이 달랐다. 뭐랄까. 부자의 맛이었다. “더 먹어.” 그렇게 말해도 이상하게 하나밖에 못 먹었다. 너무 맛있는데 마음껏 먹을 수는 없는 맛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쭈쭈바를 먹었던 기억은 선명한데 막상 그 맛을 말해보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딸기 맛이라고 하기엔 딸기 같지도 않고, 단맛이라고 하기엔 뭔가 빠져 있다. 살얼음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입에 털어 넣고 먹는 맛이 있었다. 혀에 차갑게 달라붙고,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던 맛. 불량식품의 맛. 그래서 더 맛있었던 쭈쭈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6/pimg_63923341656684882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278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어펙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0533</link><pubDate>Tue, 25 Aug 2026 12: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0533</guid><description><![CDATA[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총 세 명이다. 끝까지 세 명이 전부다. 그중 한 명은 아이라서 사실상 두 사람이 영화를 끌고 간다. 그런데 미스터리 영화라면 인물이 많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은 인물로 밀어붙이는 쪽이 잘만 만들면 훨씬 흥미로울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꽤 흥미롭다. 기억을 전혀 잃은 주인공이 눈을 뜬 곳은 처음 보는 집이다. 남편이라는 남자도, 딸이라는 아이도 낯설다. 자신을 부정하고 적대적으로 두 사람을 대한다. 그런데 집 안에는 자신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사진도 있고, 생활의 흔적도 있다. 특히 딸아이가 엄마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이상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자신의 정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남편이라는 남자는 기억에 전혀 없는데 분명 이 집에서 자신이 살았던 흔적은 있다. 게다가 외딴 농장 같은 곳에 있는 저택이라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세 사람만 덩그러니 남겨진 공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진다. 초반은 그래서 좋다. 재미도 있다. 적어도 계속 다음 장면을 보게 만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튄다. 복제 인간이 나오고,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로 관리하고 옮기는 미래형 SF 스릴러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부터 좀 이상해진다. 인간을 복제하고 의식을 디지털화해서 새로운 몸에 심는 정도의 기술이라면 엄청난 시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남편이 창고 같은 곳에서 노트북 한 대를 놓고 그 엄청난 일을 벌인다. 이게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잘 와닿지 않는다. 기술의 규모와 공간의 규모가 너무 따로 논다. 남편의 집착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광기로 변해가는 설정인데, 후반부에 복제된 아내를 무참하게 폭행하고 죽여버리는 장면에 이르면 ‘이건 또 뭐지?’ 싶은 생각이 든다. 오컬트가 나오다가 바디 호러가 되고, 스릴러와 미스터리가 섞이더니 미래형 SF까지 들어온다. 결국 중반을 넘어가면서 재미가 확 떨어진다. 그런데 묘하게 끝은 보고 싶다. 재미가 없는데 결말은 궁금하다. 이런 영화가 있다. 재미와 흥미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주연은 [해피 데스데이]로 익숙한 제시카 로테다. 이전 작품인 [보이 킬스 월드]에서는 [그것]의 빌 스카스가드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액션을 몸으로 받아냈다. 공포 영화에서 자주 봐서인지 이런 장르에는 확실히 잘 어울린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가 아쉽다기보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배우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이 더 크다. 초반의 미스터리가 끝까지 유지됐다면 꽤 괜찮은 영화가 됐을 것 같은데, 중간부터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면서 오히려 힘을 잃었다. 그래도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 [어펙션]이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5/pimg_6392325612286549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7053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기록의 중요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6758</link><pubDate>Sun, 23 Aug 2026 1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6758</guid><description><![CDATA[기록은 중요하다. 요즘 유튜브 [오재나]를 보면 김재환 PD가 대패삼겹살을 백종원이 개발했다는 주장에 대해 하나씩 근거를 찾아 반박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그냥 말싸움이 아니다. 기록을 찾아간다. 오래된 기사와 자료를 뒤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흔적을 확인한다. 결국 그 모든 걸 뒷받침하는 건 기록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더본코리아가 점주들과 함께 김재환 PD를 상대로 스무 건이 넘는 고소를 했고, 김재환 PD는 그때부터 자신이 문제를 제기한 주장들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말로 맞서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맞서는 셈이다. 김재환 PD는 원래 이런 일을 해온 사람이다. 여러 TV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던 것을 붙잡고 끝까지 파고든다.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트루맛쇼]다. TV 음식 프로그램들이 맛집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방송가의 음식점 소개가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는지를 까발린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웃긴 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떡볶이 맛집을 소개하면서 온갖 약재가 열 가지 넘게 들어간다는 식의 황당한 프로그램이 여전히 방송되고 있다. [쿼바디스]에서는 한국 교회를 들여다봤다. 미국에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대형 교회들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인지 파고든 영화다. 내가 더 재미있게 본 건 [미스 프레지던트]다. 개봉 당시 박사모 사람들이 극장으로 엄청나게 몰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제목의 ‘미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세스, 미스가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안다. 제목부터 묘하게 사람을 낚는다. 김재환 PD는 [미각 스캔들]도 연출했다. 음식과 식당, 식재료의 진실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시청률도 잘 나왔고 방송국에서는 회차를 늘려 더 방송하자고 했다. 그런데 김재환 PD는 처음부터 정해놓은 분량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방송국의 유혹을 뿌리치고 계획한 회차만 하고 끝냈다. 이런 사람이 지금 기록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나간 것이다. 요즘 그는 유튜브 [오재나]를 통해 기록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닌다. 거대한 자본을 가진 더본코리아와 백종원을 상대로 말이다. 누가 뭐라고 했느냐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느냐를 찾아간다. 그래서 영상이 재미있다. 기록 하나가 기존의 이야기를 뒤집어버리는 순간이 있으니까. 기록은 남의 이야기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개인에게도 그렇다. 기록해 놓지 않으면 그때는 분명 중요했던 일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진다. 사진 한 장, 메모 한 줄, 오래된 영수증 하나가 나중에는 그 시절을 다시 불러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 기록하자. 아주 좋은 순간뿐만 아니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런 기록이 나중에는 가장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호러블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3/pimg_6392308390676605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6758</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인베이션 시리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5377</link><pubDate>Sat, 22 Aug 2026 13: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5377</guid><description><![CDATA[<br>이 시리즈는 재미가 그리 썩 좋지 않은데 시즌 3까지 나왔다. 한 시즌에 10회씩. 마니아들도 있겠지만,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삼키는 이야기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재미가 없다. 보다 보면 여기저기서 익숙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외계종족과 텔레파시를 하거나 기술을 이용해 교신하는 설정은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가 생각나고, 지구 전체를 뒤덮은 위기 상황은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 같은 분위기가 있다. 뒤로 갈수록 [기묘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 밖에도 외계생명체가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이 조금씩 스쳐 지나간다. 내가 시즌 2까지 봤는데 재미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들이 전부 심각하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진지한 건 괜찮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심각하다. 진지함과 심각함은 정말 한 끗 차이인데, 이 시리즈는 철학적인 문제와 인간의 생각을 너무 많이 말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자꾸 무거워진다. 보다 보면 나까지 같이 근심걱정을 떠안은 기분이다. 미국 시리즈인데 의외로 열쇠를 쥔 인물은 일본 우주국의 시오리다. [데드풀]에서 유키오로 나왔던 일본 배우가 맡았다. 이 시리즈에는 외계종족과 직접 교신하거나 기술을 이용해 교신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시오리가 그중 한 명이고, 사실상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이다. 그런데 시오리가 제일 심각하다. 온 지구인의 근심걱정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짓고, 심각한 생각에 심각한 말만 한다. 가장 심각한 건 정작 외계종족이다. 지구를 침공해서 인간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시즌 1에서 보니 불태우면 죽는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도 촉수 같은 걸로 찔러 죽이는 정도다. 그 밖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염병 만들어서 던지면 불타 죽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군대가 멸망하고 지구 방위군이 몰살당한다. 더 웃긴 건 그렇게 무서운 외계종족이 나오는 장면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늘 그렇듯 인간과 인간이 싸운다. 인간집단과 인간단체가 서로 총구를 겨누고 죽인다. 이것도 심각하다. 차라리 외계종족이 인간의 뇌를 조종해서 서로 죽이게 만든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들이 서로 싸운다. 지구가 왜 망하는지도 정확히 이해가 안 된다. 그냥 망한다. 그 와중에 외계종족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것마저 너무 심각하게 그려낸다. 등장하는 지구의 기술력은 최첨단인데 결국 외계종족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텔레파시 같은 것이 나온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결국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게 제일 낫다는 식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고 있으면 좀 거참스럽다. 시즌 1에서 꼬마였던 아이들이 시즌 2에서는 엄청 커버린 것도 묘하다. 몇 년을 이런 상황에서 버텼다는 이야기인데, 성인들은 거의 그대로다. 아이들은 훌쩍 자랐는데 어른들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늘어뜨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시즌 3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여기까지 봤으니 결국 봐야겠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라도 봐야 할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2/pimg_63923002487867190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537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리처 시즌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3527</link><pubDate>Fri, 21 Aug 2026 1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3527</guid><description><![CDATA[리처 시즌 4는 내가 읽었던 리처 소설 ｢사라진 내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스핀오프인 니글리 시리즈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리처 시즌 4가 먼저 나왔다. 지금은 3화까지 공개됐고 매주 한 편씩 나오는 모양이다. 예고편을 보자마자 소설 내용이 확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야호!”가 나왔다. 이 이야기를 드디어 영상으로 보는구나 싶었다. 이번 시즌은 이전보다 판이 훨씬 커졌다. 시즌 3까지 리처가 상대했던 빌런들은 어느 정도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CIA부터 연방 요원들, 정치인까지 줄줄이 상대해야 한다. 리처 하나를 잡겠다고 달려드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는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리처야 다들 알다시피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머리까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리처｣는 결국 액션 드라마라 액션이 중심인데, 시즌 4 초반에는 이상하게 리처가 많이 얻어맞는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도 꽤 나온다. 그게 오히려 이번 시즌의 리처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에는 주먹보다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다. 눈앞의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보다 누가 적인지, 누가 자신을 쫓고 있는지,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계산해야 한다. 리처의 전략가적인 면모가 훨씬 두드러질 것 같다. 시즌 3에서 리처는 정부 편에 서서 악당의 본거지에 언더커버 요원으로 잠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다. 정부의 여러 기관과 정치인들에게 쫓기는 입장이 됐다. 상대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단순한 액션물보다는 정치 스릴러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물론 리처가 나오는 이상 주먹질과 총격전이 빠질 리는 없겠지만, 그보다 이번에는 리처가 어떻게 이 거대한 판을 뒤집을지가 더 궁금하다. 8부작이라고 하니 매주 한 편씩 기다리면서 보는 재미도 꽤 있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1/pimg_63922914336225790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352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초코파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1532</link><pubDate>Thu, 20 Aug 2026 12: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1532</guid><description><![CDATA[초코파이는 꼭 시 같다. 중간에 초코파이를 배신한 적도 있다. 오예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고, 몽쉘통통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있는 건 초코파이다. 어릴 때도 맛있게 먹었고, 지금도 여전히 맛있다. 참 이상하다. 이렇게 오래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 음식이 몇이나 있을까. 아마 누구에게나 초코파이에 관한 일화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오리온에서 초코파이 일화 공모전을 연다면 굉장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특히 남자들, 그중에서도 군필자라면 더 그렇다. 훈련소에서 종교행사를 갔다. 기독교를 선택하면 초코파이를 줬다. 그 초코파이 하나를 먹겠다고 일요일 오전에 에이급 전투복을 차려입고 먼 길을 행군해서 교회에 갔다. 잠을 참아가며 설교를 듣고 나면 드디어 초코파이를 받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좋았다. 전투복 주머니에 초코파이 하나를 넣고 돌아오는 길은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자주 두 개를 먹었다. 조교 한 명이 나와 같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헤어질 때 자기 초코파이를 내게 줬다. 왜 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오는 동안 대화를 꽤 많이 했던 기억은 난다. ​그래서 퇴소할 때 그 조교를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그 조교도 조교 중에서 막내라 얼굴에 고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막내 조교는 매일 늦은 시간까지 선임 조교에게 혼나면서 훈련받았다. 부모님이 싸 오신 닭고기는 아마 그 조교가 거의 다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대배치를 받고 신병이 되자 초코파이가 갑자기 다른 얼굴로 변했다. 밥을 먹고 들어왔는데 고참이 나를 불렀다. “먹어.” 초코파이였다. 한 개. 두 개. 세 개. 우욱. 다 먹지 않고 틈이 보이면 군화로 머리를 한 대씩 처맞았다. 머리통은 맞아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병 생활이 끝나고 막내로 지내던 어느 날,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관물함을 열었는데 초코파이가 들어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괴롭히던 고참이 새벽에도 잠을 안 자고 있다가 나를 불러내 초코파이를 먹였다. 우욱. 첫 외박을 나가기 전날에는 더 심했다. 밥을 먹고 들어온 나에게 초코파이 한 박스를 먹게 했다. 우욱. 웩. 결국 다 토했다. 그리고 신나게 맞고 첫 외박을 나갔다. <br>그 뒤로 초코파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예스도 있고 몽쉘통통도 있었다. 그런데 참 기묘하다. 시간이 지나자 그때의 괴로운 기억이 조금씩 밀려났다. 초코파이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무심코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맛이 그대로였다.&nbsp;​군대에서는 생일이 되면 케이크 대신 초코파이를 쌓았다. 그 위에 요플레를 잔뜩 뿌리고 초를 꽂았다. 이상하게 그게 케이크보다 좋았다. 요플레가 묻은 초코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나는 원래 간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도 가끔 초코파이를 먹는다. 한 입 먹으면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 훈련소도 떠오르고, 그 조교도 생각나고, 초코파이를 억지로 먹던 그 고참도 생각난다. 맞았던 기억까지 따라온다. 그런데도 먹는다. ​초코파이는 꼭 시 같다. 한때 배신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문득 돌아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곁을 지키고 있는 것. 초코파이는 그런 시다. ​초코파이에 관한 시를 지어 보자. ​어릴 때 평상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먹던 초코파이, 이제 할머니는 없고 초코파이만 옆에 남아 있네. 초코파이를 먹으면 아픈 배를 약손이라며 슬슬 문질러 주었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나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0/pimg_6392282501343098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6153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애비게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9467</link><pubDate>Wed, 19 Aug 2026 1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9467</guid><description><![CDATA[2024년에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로였다. 이게 무슨 재미야?’ 싶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재미있게 봤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정도 꽤 재미있고, 곳곳에 코믹한 장면을 심어놓았다. 무엇보다 애비게일이 연기를 잘했다. 자기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뱀파이어의 표정. 그게 꽤 능글맞다. 특히 혼자서는 안 되니까 손을 내밀며 같이 힘을 합쳐서 처죽이자고, 파이팅까지 하는 장면은 웃겼다.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뱀파이어인데 하는 짓은 묘하게 귀엽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코믹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누가 특별히 웃기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서 웃음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뉴튼이 재미있었다. 까불까불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잘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애비게일에게 속내를 모조리 간파당한다. 그리고 뱀파이어에게 물려버린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된 모습이 참 웃긴다. 무섭다기보다 ‘큭큭’ 웃게 만든다. 캐서린 뉴튼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 까불거리는 느낌이 뱀파이어가 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 그렇다. 그리고 딘 역의 앵거스 클라우드. 영화에서 약과 술에 찌들어 있다가 제일 먼저 목이 잘려 죽는 인물이다. 그런데 앵거스 클라우드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해인 2023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포리아] 에서도 마약상을 연기했던 배우다. 그 사실을 알고 보니 영화 속 모습이 묘하게 다르게 보였다. 배우의 실제 삶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가끔 이런 기분을 준다. 영화 자체는 1936년에 나온 [뱀파이어의 딸]을 바탕으로 했다. 뱀파이어인 애비게일이 먹잇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꼬드기고, 가지고 놀다가 하나씩 죽여버리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반전도 하나 던진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그런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설정이 꽤 재미있었다. 요즘 공포영화가 워낙 가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영화가 오히려 지금 다시 보니 꽤 재미있는 공포영화가 되어 있었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사람을 계속 놀라게 하고 피가 철철 흐른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고어가 심한 영화들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무섭다기보다 피곤해진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면 징그럽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애비게일]은 적당하다. 잔인한 장면이 없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역겹지는 않다. 피가 나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 중간중간 웃기는 장면이 끼어들고 배우들이 그걸 잘 받아낸다. 그래서였을까. 2024년의 나는 ‘이게 무슨 재미야?’ 하면서 봤는데, 2026년에 다시 본 나는 꽤 재미있게 봤다. 영화도 가끔은 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영화인데 내가 달라진 건지, 영화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9/pimg_6392273828284443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946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사랑이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7547</link><pubDate>Tue, 18 Aug 2026 13: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7547</guid><description><![CDATA[이 드라마는 리얼리티인 줄 알았는데 거의 초현실에 가깝다. 모든 게 전부 우연이다. 마침 그 자리에 있고, 마침 그 사람이었고, 마침 그 애가 거기에 있고, 마침 가는 곳이 거기고, 마침 인터넷에서 만나 개싸움 한 상대가 그 사람이고. 모든 게 초현실처럼 마침 거기에 그 사람이 있고 하필 그 사람이 나타난다. 또 대사 대부분이 복선이다ㅋㅋㅋ 초반에 볼 때 휴대폰 때문에 몇 년 전 배경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8년 후가 되었고, 8살 아이가 나타나서 이 아이가 내 아이가? 그렇게 흘러간다. 게다가 등장인물 전부 좀 과하다. 오버가 흘러넘친다. 일단 규림이 동생 규영이가 사기 결혼을 하려는데 여기에 오버가 작렬한다. 규영이가 빌런 역이라 그런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버가 심하다. 그리고 한결이는 너무 애어른 같아서 뭐야? 하게 된다. 이토록 과하고 우연에 우연이 겹치다 못해 초현실에 가까운 드라만데, 문제는 재미있다. 내가 이런 걸 재미있게 본다고? 욕하면서 보고 있다. 이제 펼쳐질 이야기를 예상하면 한결이를 두고 내 손자를 데려갈게, 쪽으로 흘러가서 더 막장이 될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장 신데렐라 이야기는 재미있다. 하니, 안희연은 이 드라마를 통해 모든 걸 극복하고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드라마, 영화에서 종횡무진하길 바라며.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8/pimg_63922656486483432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754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프리티 우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5452</link><pubDate>Mon, 17 Aug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5452</guid><description><![CDATA[나는 영화 [프리티 우먼]을 몹시 좋아한다. 못해도 열 번은 넘게 봤다.​간단하게 말하면 신분 상승을 다룬 신데렐라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에드워드가 비비안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되는 과정에 있다.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를 만들려고 시작한 영화도 아니었다. 로이 오비슨의 [프리티 우먼]이라는 노래를 듣고 각본이 나오면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지금 보면 아주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19금 영화였다. 붕가붕가 장면이 나와서가 아니다. 대사가 꽤 매웠다.​처음 제목은 [3000]이었다. 에드워드가 비비안과 일주일을 보내는 대가로 3,000달러를 주기 때문이다. 원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쁘게 끝나지도 않았다. 매춘과 마약 중독의 현실을 다룬 상당히 어두운 영화였다. 마지막에 에드워드는 비비안에게 돈 봉투를 던지고 떠난다. 비비안은 그 돈을 들고 디즈니랜드로 간다. 거기서 끝이었다.​그런데 디즈니가 제작권을 가지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게리 마샬 감독에게 로맨틱 코미디로 고쳐달라는 주문이 들어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리티 우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비비안과 에드워드 역도 처음부터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였던 게 아니다. 당시 줄리아 로버츠는 신인이었고 미셸 파이퍼, 킴 베이싱어 같은 톱 여배우들이 후보에 올랐다. 에드워드 역 역시 알 파치노, 워렌 비티, 케빈 코스트너에게 먼저 갔다. 모두 거절했다.​리처드 기어도 처음에는 에드워드가 너무 평범한 역할이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줄리아 로버츠가 메모지에 ‘Please say yes’라고 써서 그에게 건넸고, 결국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영화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오페라 보거 전 보석함 상자를 열어주다 비비안이 손 대려 할 때 갑자기 뚜껑을 닫아 비비안이 큰 입으로 빵 터지는 장면은 리차드 기어의 애드리브이었는데 영화에 그대로 삽입되었다​그 목걸이도 그냥 그럴듯하게 만든 소품이 아니었다.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당시 가격이 250만 달러. 덕분에 촬영 내내 보석상 측에서 파견한 무장 경호원이 항시 대기였다. ​그리고 록시트.​영화의 주제가를 부탁받았을 때 록시트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투어 중이었고 이런 코미디 영화에 넣을 노래를 새로 만들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표했던 [It Must Have Been Love]에 크리스마스[제목에도 러브 대신 크리스마스가 있었던 걸로 안다] 가사만 살짝 바꾸어서 영화를 위해 만들었고, 주제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록시트의 가장 큰 히트곡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다.​나는 학창 시절 록시트의 [Joyride]를 듣고 좋아해서 용돈이 생길 때마다 앨범을 한 장씩 샀다. 집에 록시트 앨범도 여러 장 있다.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그때 정말 멋진 스타였다. 노래도 잘했고,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보컬 중 한 명이었다. https://youtu.be/kR6-FHgBVeY?si=bMk6AK5q-nNOpHvx<br>그런 그녀가 2002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투병에 들어간다. ​노래를 얼마나 부르고 싶었으면 몸이 조금만 나아져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시력이 악화되고 기억 장애까지 생겼다. 매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공연했다.​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보면 전성기의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없다. 얼굴도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전성기의 그녀보다 투병 중이던 2012년 산티아고 공연을 더 좋아한다.​유튜브에 그 공연 풀 영상이 있다.​그곳의 마리에 프레드릭슨은 예전과 다르다. 몸도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아니,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사람의 얼굴.​공연 중간에 [It Must Have Been Love]를 부른다. 객석의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른다. 무대에 선 마리에와 객석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장면은 볼 때마다 뭉클하다.​이후 지팡이를 짚는 모습이 점점 많아졌고, 결국 마리 프레드릭슨은 2019년에 세상을 떠났다.​그래서 나는 [프리티 우먼]을 볼 때마다 영화만 보는 게 아니다.​로이 오비슨의 노래가 떠오르고, 처음 제목이 [3000]이었던 시절의 어두운 이야기가 떠오르고,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이 역할을 맡게 된 과정도 생각난다. 보석함 뚜껑이 닫히던 순간도 생각난다. 무엇보다 영화 속 비비안 그 내면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록시트와 마리에 프레드릭슨.​전성기의 마리에가 노래하던 모습, 병을 얻고도 무대에 올라 노래하던 모습, 산티아고 공연에서 객석과 함께 [It Must Have Been Love]를 부르던 모습까지.​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데 그 뒤에 있던 시간들이 필름처럼 촤르르 흘러간다.​그래서 [프리티 우먼]은 질리지 않고 잘 도 계속 본다.  https://youtu.be/TKS5tUmTzdY?si=fxMjEvT3O5qCIaNw]]></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7/pimg_63922563975232871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545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대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3589</link><pubDate>Sun, 16 Aug 2026 1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3589</guid><description><![CDATA[<br>이 영화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다. 망친 영화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그래픽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호랑이 대호를 응원하게 되는 영화였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본 총독부는 조선의 기세를 꺾고 일본의 우월함을 보여주겠다며 거대한 애꾸눈 호랑이 대호를 잡으려 한다. 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만들 생각이다. 포상금까지 걸리자 조선인 사냥꾼들도 달려든다. 무리의 리더 구경은 대호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총을 들지 않고 살아가는 명포수 천만덕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대호를 끌어내려고 새끼와 암컷까지 죽인다. 하지만 대호는 만만한 짐승이 아니다. 신군처럼 여겨질 정도로 거대한 이 호랑이는 사냥꾼들을 몰아붙이고, 결국 그들은 전멸 위기에 처한다. 대호가 산속에서 사냥꾼들과 일본 군인들을 덮치는 장면은 정말 좋았다. 물어뜯고 내던지고 달려드는 호랑이의 모습에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생긴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대호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다. 사냥꾼들에게 암컷과 새끼들을 잃은 놈이다. 엄청난 분노로 복수할 이유가 충분하다. 영화가 그 감정을 꽤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사라져버린 대호의 이야기가 역사와 겹쳐지면서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최민식의 연기와 대호가 만나는 순간도 뭉클했다. 그래서 더 아쉽다. 조금만 더 잘 만들었으면 꽤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대호의 움직임이 좀 더 현실적이었다면 훨씬 몰입했을 것이다. 그래픽이 영화의 발목을 잡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좋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보고 나면 재미보다 아쉬움이 조금 더 오래 남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6/pimg_63922480126373783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358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리그레팅 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2002</link><pubDate>Sat, 15 Aug 2026 11: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2002</guid><description><![CDATA[요즘 이런 설정의 이야기가 유행인가? 나의 아내와 너의 남편이 우리 몰래 만나고 있다가, 동반 여행 중 자동차 사고로 동시에 죽는다. 그 뒤에야 두 사람의 관계가 밝혀진다. 최근의 [티셔츠가 마를 때까지]도 그렇고, 허진호 감독의 [외출]도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리그레팅 유] 역시 그렇다. 반쪽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가 나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다른 지역에서 같은 버스에 나란히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죽음과 배신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셈이다. [리그레팅 유]에서는 자매의 성격이 정반대다. 남자들도 서로 다른 성격의 여자들을 만난다. 그러니까 언니의 남편이 동생과 잘 맞고, 동생의 남편이 언니와 잘 맞는 성격이다. 하지만 결혼은 만나는 사람과 한다. 그리고 사고로 두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주인공은 언니의 딸로 나오는 맥케나 그레이스다. 엄마보다 이모를 더 따르는 아이. 아빠와 이모를 한꺼번에 잃고 슬픔에 허덕이던 아이가 그 시간을 지나가는 이야기다. 엄마 역의 앨리슨 윌리엄스는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젊어 보인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대부분 다른 작품에서 워낙 강한 캐릭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앨리슨 윌리엄스는 그 유명한 [겟 아웃]에서 정말 개지리는 빌런 연기를 했다. 특히 시리얼을 하나씩 먹으면서 우유를 따로 마시는 장면.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 역의 데이브 프랑코는 모두가 아는 제임스 프랑코의 동생이다. [나우 유 씨 미 3]이나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도 강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모 역의 윌라 피츠제럴드는 [리처] 시즌 1에서 리처와 함께 강력범들을 때려잡던 경찰로 나왔고, 아빠 역의 스콧 이스트우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로, [캐시트럭]에서는 강력한 빌런이었다. 그런 배우들이 여기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보여준다. 소리 지르고 때려잡는 캐릭터가 아니라 상실과 후회, 가족 사이의 감정을 섬세하게 끌고 간다. 배우 보는 재미도 꽤 있다. 물론 설정이 비슷한 영화들이 계속 나오니 조금 식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왜?’ 싶은 구석이 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볼 만하다. [안녕, 헤이즐]의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 그런지 로맨틱 드라마의 결도 확실하다. 이야기가 아주 새롭지는 않은데, 오히려 요즘처럼 도파민 터지는 영상이 넘쳐나는 때에는 이런 영화가 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별일 없이 사람들이 앉아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영화. 그런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보다보면 알겠지만 좀 갑갑하고 답답한 장면이 많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5/pimg_63922390396172599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45200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