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소설 쓰고 앉아있네 (교관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하루키 좋아하는 동네 삼촌</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9 Oct 2026 19:11:06 +0900</lastBuildDate><image><title>교관</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6999160323877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교관</description></image><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크롤러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600075</link><pubDate>Thu, 29 Oct 2026 1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600075</guid><description><![CDATA[크롤러스는 거미에 관한 영화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의 능력을 가진 영웅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거미가 사람을 죽이는 영화다. 거미가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들 몸에 알을 낳고 사람 몸을 뚫고 나오고 징그러운 장면이 꽤 있는 B급 호러영화다. 거미가 떼로 몰려나와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본 건 오래전 [아라크네의 비밀]이었다. 90년대 초에 나온 영화인데, 어릴 때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프랭크 마샬이었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기획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때는 감독보다는 영화 속 거미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겼다. ​크롤러스 이 영화에는 작은 새끼거미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의 몸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모습도 있다. [아라크네의 비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거미 한 마리만 방바닥을 기어가도 신경이 쓰이는데, 그 조그만 것들이 수십 마리씩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미 거미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런 장면이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무서워서 눈을 찌푸리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그 뒤로 나온 거미 공포영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나 건물처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곳이 어느 순간 거미의 영역으로 바뀐다. 밖으로 도망치면 될 것 같지만, 막상 나가려고 하면 이미 길이 막혀 있다. 이번에 본 영화도 그런 이야기였다. 거미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정 자체는 새로울 게 없는데, 이상하게 이런 영화는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거미가 무서운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벌레들은 징그럽다는 생각부터 드는데 거미는 좀 다르다. 징그럽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사람의 생활공간 안으로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생김새라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나도 어릴 때 거미에게 물린 적이 있다.​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랫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랐다. 입술이 조금 부은 정도가 아니었다. 입술 안에 뭔가를 집어넣은 것처럼 두툼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감각도 이상했다. 돌덩이 같은 게 입술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만져도 내 입술 같지가 않았다. 얼마나 부었는지 마스크를 써도 앞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지금이야 마스크를 쓰는 일이 낯설지 않지만, 그때는 그런 걸 쓴다고 감춰질 만한 모양도 아니었다. 거울을 봤을 때의 모습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입술이 그렇게까지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던 것 같다.​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갔다. 자는 동안 거미에 물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거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 안에 거미가 있었던 건지, 잠든 사이 어디선가 기어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자 부풀었던 입술은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입술이 부어 있던 감각은 오래 남았다. 아프다기보다는 이상했다. 입술에 돌멩이 하나를 붙여 놓은 것처럼 둔하고 낯선 느낌. 내 몸인데도 내 몸 같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로 사진이라도 찍어 뒀을 텐데 그 시절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사진 한 장 없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으니 지금 와서는 얼마나 심하게 부었는지 나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마스크를 써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튀어나왔다는 건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게 그렇다. 정작 중요한 순간의 앞뒤는 흐릿한데, 몸으로 겪은 이상한 감각 하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그래서인지 집 안에서 거미를 발견하면 지금도 반갑지는 않다. 바깥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건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집 안에 나타나는 거미는 다르다. 분명 내가 사는 공간인데, 어느 구석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미가 사람을 일부러 노리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것뿐일 텐데도 그렇다. 그렇다고 지금 집에 거미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지하주차장 천장 구석에도 거미줄이 가득하다. 청소하는 사람이 걷어내는지, 누군가 긴 막대기로 쓸어내는지 한동안 깨끗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다시 보면 어느새 거미줄이 촘촘하게 쳐져 있다. 거미는 그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저 작은 몸으로 언제 저렇게 넓은 집을 지었을까 싶다가도,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거미줄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줄을 치는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 늘 그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아라크네의 비밀]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대왕 거미도 생각난다. 거대한 거미가 갑자기 날아오듯 달려들고, 불붙은 화살촉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날아가 거미를 맞힌다. 거미는 벽에 탁 박힌 채 불에 탄다. 그 장면이 어릴 때는 꽤 통쾌했다. 그렇게 끔찍한 거미가 마침내 죽었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보면 특수효과가 어땠는지부터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그래도 작은 거미들이 사람의 몸속을 드나들던 장면과 마지막 대왕 거미가 날아오던 순간만큼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잠든 사이 거미에게 물려 입술이 부풀어 올랐던 일도 그 영화와 어딘가 붙어 있는 기억이다. 실제로 겪은 일과 영화에서 본 장면은 전혀 다른데, 머릿속에서는 이상하게 한데 엉켜 있다. 거미가 무서운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한 번은 내 입술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그 뒤로도 거미는 내가 사는 곳의 구석구석에 조용히 나타난다. 지하주차장 천장에 매달린 거미를 볼 때면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저 녀석이 내 입술을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겠지만, 거미라는 건 아무래도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사실 스파이더맨도 거미에게 물린 후 이상하지만 짠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떻냐고 한다면 그냥저냥 볼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9/pimg_63928871357394284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60007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마이 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7813</link><pubDate>Wed, 28 Oct 2026 11: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7813</guid><description><![CDATA[전혀 울 일이 없을 것 같은 오래된 영화에서 문득 눈물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 영화가 그랬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봤다. 베이다가 토마스를 잃고도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오래전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인지 아니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슬픔을 이제야 알아보게 된 것인지.​이 영화는 맥컬리 컬킨이 [나 홀로 집에] 1편을 끝내고 2편이 나오기 전에 출연한 작품이다. 당시에는 맥컬리 컬킨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케빈의 기발한 장난과 유쾌한 소동을 기대했다면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맥컬리 컬킨은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다. ​베이다는 태어날 때 엄마를 잃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베이다가 그리는 엄마는 온통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직 남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아빠는 장의사다.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하는 아빠가 정작 살아 있는 딸의 마음은 알아주지 못한다. 그런 아빠가 장례식장 분장사로 들어온 쉘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반지까지 선물하자 베이다는 아빠가 밉다. 아빠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생겼지만 베이다에게 엄마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생각하고, 시를 쓰고 싶어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마음을 시로 옮기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베이다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의 것이다. 어른들은 자기들끼리 사랑하고, 결혼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아이의 슬픔은 그 와중에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 베이다가 왜 아픈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누구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은유로 보여준다.​그런 베이다 곁에는 토마스가 있다.​토마스는 베이다와 잘 맞는 구석이 별로 없는 아이다. 요즘 말로 하면 완전한 T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밤이 되면 집에 가야 한다. 베이다가 상상력을 한껏 펼칠 때마다 토마스는 현실적인 말로 찬물을 끼얹는다. 온갖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녀석이라 베이다의 모험에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결국 따라나선다. 둘 중 누가 더 용감한지 따질 것도 없이, 베이다가 가는 곳에 토마스가 있다.​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베이다에게 토마스는 친구 이상의 존재다. 말하지 않아도 자기 옆에 있어 주는 아이. 베이다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마음을 혼자 내버려 두지는 않는 아이. 치매를 앓는 할머니 역시 그런 존재다. 할머니는 베이다의 사정을 말로 풀어 주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다. 베이다에게는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을 고치려 들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 사람들.​두 아이가 벌집을 건드리는 장면이 있다. 벌떼를 피해 도망치다가 강물에 뛰어들고, 그 소동 속에서 베이다는 자신이 아끼던 요술 반지를 잃어버린다. 아이에게 반지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무언가 특별한 힘이 생길 것 같은 물건이다. 베이다가 믿는 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베이다는 자신이 느끼는 상실을 시를 통해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토마스에게 고백하며 결혼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토마스의 대답이 재미있다. 선생님과 결혼하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시험 점수를 백 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이답고, 엉뚱하고, 어딘가 토마스답다. 베이다가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토마스는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대답한다. 두 아이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토마스는 힘으로도 덩치로도 베이다를 이기지 못한다. 겁도 많고, 현실적이고,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아이지만 베이다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베이다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혼자 벌집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달려드는 벌떼에 쏘여 목숨을 잃는다.​여기서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토마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베이다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엄마를 잃고 태어난 아이에게 또 하나의 상실이 찾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베이다가 태어나기 전에 떠났고, 토마스는 베이다가 함께 웃고 떠들며 지냈던 시간 속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상상으로라도 그려 볼 수 있었지만 토마스는 다르다. 어제까지 곁에 있던 아이가 이제는 어디에도 없다. 같이 모험을 떠날 수도,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 수도 없다.​베이다는 슬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쩌면 슬픔이 너무 커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실이다. 밝고 엉뚱했던 베이다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토마스를 잃은 베이다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 아이에게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보일지. 한참을 생각하게 됐다.​영화의 후반, 베이다는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한다.​‘눈물을 흘리는 버드나무여, 왜 울고 있나요?’​버드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울고 있다. 어쩌면 토마스도 그런 아이였는지 모른다. 자기 마음을 멋지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베이다가 겪는 일을 모두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던 아이. 크지도 않고 특별히 강하지도 않았지만 베이다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누구보다 컸다.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베이다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조금씩 알아간다.​나는 이 시 낭독 장면이 좋다. 베이다가 슬픔을 완전히 극복해서가 아니다. 토마스가 돌아온 것도 아니고, 없어진 자리가 다른 무언가로 채워진 것도 아니다. 그저 베이다는 자기가 느끼는 것을 시로 썼다. 마음속에서 도무지 정리되지 않던 감정이 문장으로 나왔다. 어쩌면 그게 베이다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아프다.​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놀란 건 맥컬리 컬킨의 연기였다. 같은 해 겨울에 개봉한 [나 홀로 집에 2]의 케빈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케빈은 영리하고 장난기 넘치는 아이였지만, 여기서 토마스는 유약하고 단순하며 어딘가 답답할 만큼 직선적이다. 베이다의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그 애를 위해서는 혼자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는 아이. 맥컬리 컬킨은 그 모습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스가 더 사랑스럽고, 그 아이가 사라진 뒤의 빈자리도 더 크게 느껴진다. 케빈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다.​오래된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가끔 이상한 일이다. 줄거리는 기억나고 결말도 알고 있는데,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에서 갑자기 마음이 무너진다. 영화가 달라진 건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가 달라졌거나, 그동안 살아오면서 조금씩 알게 된 감정들이 화면 속 아이의 얼굴과 겹쳤을 것이다.​베이다는 토마스를 잃고 마음의 공백이 커졌다. 그 공백을 메꾸게 해 줄 무언가도, 그 슬픔을 없애 줄 사람은 없다. 다만 베이다는 시를 썼고, 우리는 그 시를 듣는다. 베이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그 비슷한 성장통을 겪었기 때문이다.​영화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 내내 흐르는 기저는 '죽음'이다. 베이다가 느끼는 죽음,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는 죽음에 관해서 이토록 깊이 있게 다루었다. 마지막 베이다는 토마스의 엄마를 안아 준 다음 말한다. 토마스는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에서 우리 엄마가 지켜 줄 거예요. 이 계절에 눈물을 흘리고 싶다면 추천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8/pimg_63928785267285046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781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구니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5757</link><pubDate>Tue, 27 Oct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5757</guid><description><![CDATA[구니스는 굉장히 많은 함축적 의미와 은유가 가득한 영화다. 겉으로는 어린이들의 모험을 다루고 있지만 그 속을 잘 벌리면 낙오자, 차별, 불평등에 대해서 말한다. 구니스라는 이름은 주인공 아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 이름 [구운 독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영화 속 배경인 오리건주 아스토리아의 [구운 독스]라는 지역에 모여 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구니스]라 부르며 모험을 시작한다. 영어 속어로 [구니]는 얼간이, 바보, 멍청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류 사회나 부유층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아이들이 스스로를 유쾌하게 자조하며 부르는 의미도 있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어릴 때 봤던 구니스는 재미있고 무서웠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순수 모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근래에 다시 보면 구니스가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손치콕비디 유튜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강제철거라는 자본주의 앞에 내몰린 아이들의 생존기였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영화는 당시 이민자들, 키 호이 콴이 연기하는 아시아인 데이터는 기괴한 발명품이나 만드는 광대로 묘사되었고, 집에서 일하는 멕시코 가정부 아줌마는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을 한다. 리처드 도너가 감독인데 슈퍼맨으로 히어로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그리고 바로 이티와 인디애나존스로 상상력의 끝판왕이었던 스필버그와 손을 잡았다. 이야기 줄기는 스필버그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당시 바쁜 부모세대의 보호와 관리가 소홀했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들만의 아지트와 소통을 통해 어른들이 모르는 모험을 떠난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돈만 좇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모험을 통해 스스로 히어로가 되는 건 스필버그가 아니라면 당시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거기에 리처드 도너는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들의 생 날 것의 거친 모습을 담아냈다. 그리하여 나온 장면이 아이들이 보물선을 처음 봤을 때 놀라는 장면이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이 장면을 위해 감독은 아이들에게 그 엄청난 보물선에 관해서 비밀로 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처음 보는 거대한 해적선을 보고 놀라는 그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이 거대한 해적선을 그래픽이나 미니어처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6개월 동안 800만 달러를 들여 동굴 안에 전장 70미터, 무게 300톤에 달하는 실물 크기의 해적선을 통째로 지어버린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세트가 지어진 첫날부터 리처드 도너 감독은 아이들에게 비밀로 하여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해적선을 실제로 만났을 때, 그 한순간의 장면을 위해 이 미친 짓을 해버린 것이다. 리허설 한 번 없이 워터 슬라이스를 타고 내려온 아이들이 해적선을 봤을 때 놀람과 리액션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아이들은 정말 놀라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고 후에 가장 큰 형으로 나온 타노스 역의 조슈 브롤린이 말했다. 이 아이들이 모험을 하게 되는 동기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그저 모험을 떠나 금화를 찾으려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 정부에 의해 마을은 철거 될 운명에 놓이고 내일이라도 당장 걸 거리에 나가게 될 판이었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부모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은 절박했다. 그 절박함이 모험으로 이끌었기에 영화는 내내 긴장감이 흘러 한낱 아이들의 순수한 모험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아이들과 대비를 이루는 사람이 마마 플라텔리다. 플라텔리는 자기 아들들을 채찍과 폭력으로 군림한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막내 슬로스는 외형적인 외모라는 이유로 지하에 가둔다. 영화는 가족을 대하는 모습을 대조적인 구조로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의 생각할 기회를 준다. 지난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추억인 동시에 불편한 골짜기이기도 하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구니스 이야기는 당시 할리우드가 소외된 자들, 이민자들, 아시아 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각본을 쓴 크리스 콜럼버스는 당시에도 아시아인들이나 백인 이외의 인종을 웃음거리로 소비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br style="border: 0px solid; 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흉측한 외모로 괴물로 여겨졌던 슬로스가 웃통을 찢고 그 안의 슈퍼맨 로고가 등장하면서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겉모습으로 세상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의미를 슬로스와 아이들을 통해 말하고 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https://youtu.be/lYLAGAwcpSQ?si=ZThfVCQFbCsfzD5Z]]></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7/pimg_63928702341680244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575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닥터 X 다이몬 미치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3632</link><pubDate>Mon, 26 Oct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3632</guid><description><![CDATA[<br>계수정이 고공행진이다. 원작인 다이몬 미치코와 비교가 많이 되는데, 다이몬은 판타지 요소가 짙다. 그래서 더 웃기도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계수정 1, 2화는 다이몬 시즌 1의 에피소드를 각색했다. ​다이몬은 시즌 2까지 가면서 이히히힝 말도 수술하고, 햄스터도 수술하는데 계수정도 그렇게 할까? 그랬으면 흥미롭겠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다이몬은 큰 키에 먹보임에도 늘씬한 데다 파격에 가까운 섹시한 옷을 입고 병원을 엑스걸음으로 천하무적 돌아다닌다. 다이몬 버전에는 병원장이 재미있다. ​특히 시즌 2의 병원장 역으로 나오는 니시다 토시유키는 코믹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해냈다. 20년 넘게 [낚시 바보 일지]에 출연하면서 국민 배우로 거듭난 니시다 토시유키의 귀엽고 얄미운 병원장 캐릭터가 다이몬을 더 돋보이게 했다. ​니시다 토시유키는 24년에 안타깝게 고인이 되었다. 다이몬 버전은 계수정 버전에 비해 병원의 정치질이 거대하다. 계파를 몹시 따지고, 한 번 줄을 탔으면 거의 목숨까지 걸 정도로 교의를 외친다. ​병원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환자는 받지 않거나 수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있어도 계파 수장에게는 인사를 구십 도로 하고, 대답도 크게 외친다. ​접대 문화나 비서와의 밀회 같은 분위기도 계수정 버전에 비해 과감하다. 다이몬의 목욕장면도 자주 나온다. 목욕탕에서 긴 다리를 휙 들어 올린다거나. ​계수정도 다이몬만큼 먹보지만 다이몬이 좀 더 많이 먹는 장면이 나온다. 둘 다 먹는 게 수술 다음으로 좋다. 맛있는 거 앞에서는 뭐 물불 가리지 않는다. ​계수정이 나오자마자 글로벌 인기를 얻는데 반해 우영우 일본 버전인 미나미는 시작 전부터 일본에서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서 좀 아쉽다. ​다이몬 버전에서 병원장이 코믹 캐릭터였다면 계수정 버전에서는 김영민이 그 역을 하고 있다. 첫 화의 카리스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사리지고 귀엽다 못해 햄스터가 된 것만 같다. ​나는 아직 4화까지밖에 못 봤는데, 6화가 공개되고 스레드는 난리가 난 모양이다. 계수정과 다이몬이 수술 후에 마시는 캡슐 역시 화재다. 단맛을 더하는 액상 슈가시럽으로 알려져였다. ​운동을 심하게 하면 몸에 있는 지방과 단백질을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데, 너무 많이 운동을 하거나 심하게 운동을 하면 몸속에 있는 당을 끌어당겨 에너지로 사용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에 살이 많이 찌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다이몬과 계수정 역시 수술할 때에는 집중과 에너지를 전부 소진하듯 수술하니 슈가시럽으로 당을 충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6/pimg_63928612792039960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363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맥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1486</link><pubDate>Sun, 25 Oct 2026 11: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1486</guid><description><![CDATA[맥신은 펄 맥신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엑스]와 [펄]도 고어가 만만치 않았지만 영화 내내 그런 장면이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후반부나 몇몇 결정적인 순간에 잔인함을 몰아치는 식이었다. 그런데 [맥신]은 다르다. 시작부터 붕가붕가 장면과 나체가 화면을 채우더니 고어와 섹시함이 영화 전체를 장악한다. 20분쯤 지나면 남자의 중요 부위를 하이힐로 짓밟아 으깨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작정하고 밀어붙인 영화다.​펄에서 오즈의 마법사에서나 볼 법한 화사한 색채, 늘 웃는 얼굴의 펄. 그런 여자가 도끼를 들고 사람을 내리찍는다.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묘하게 무서웠다. 예쁜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맥신]에는 앞의 두 편에서 보기 어려웠던 낯익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엘리자베스 데비키, 케빈 베이컨, 릴리 콜린스, 할시까지 나온다. 미아 고스 혼자 영화를 끌고 가던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이야기는 앞의 두 편에서 이어지지만 굳이 전부 챙겨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피바다가 된 농장에서 살아남은 맥신은 로스앤젤레스로 온다. 성인영화 배우였던 과거를 지우고 진짜 할리우드 스타가 되고 싶다. 오디션에도 합격한다. 이제 꿈에 한 발짝 다가섰나 싶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미친놈도 모자라, 맥신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탐정까지 나타나 숨통을 조여 온다. 맥신은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잔혹한 선택을 한다. 펄을 떠올리게 하는 살인자의 얼굴이 슬그머니 겹쳐 보인다.​영화 속 1985년 로스앤젤레스는 화려하면서도 위험하다. 화면은 번쩍이고 거리는 매혹적이지만 그 안쪽에는 퇴폐와 폭력이 들끓는다. 맥신의 몸속에 광적인 살인마 펄과 순수한 맥신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이 공존하듯 도시도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가 있는 곳에 포르노 영화가 있고, 스타가 빛나는 무대 뒤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않는 성인 배우들이 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 같지만 실은 한 도시 안에 붙어 있다. 영화는 그 간격을 꽤 그럴듯한 미장센으로 보여준다.​잔인한 장면은 아프게 다가오고, 공포 장면은 불쑥 튀어나온다. 특히 갑자기 분위기를 뒤집는 연출이 좋았다. 스릴러로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도 있지만, 중간중간 공포영화의 감각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는 대목이 더 기가 막힌다. ​그래도 결국 눈길이 가는 건 미아 고스다.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다가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순진한 얼굴을 한다. 그 둘이 한 사람 안에서 번갈아 나타나는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펄과 맥신을 모두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 자체가 이 3부작의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인지도 모르겠다.​영화를 보다가 엉뚱한 곳에서도 눈이 멈췄다. 맥신이 형사 두 명을 만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장면이다. 문을 여는 순간 문짝이 무척 낯익었다. 우리나라 옛날 집에서 보던 나무 여닫이문과 비슷해 보였다. 할리우드의 퇴폐적인 세계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오래전 한국의 집 문짝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5/pimg_63928524229537977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91486</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메리 베리 러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9979</link><pubDate>Sat, 24 Oct 2026 1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9979</guid><description><![CDATA[<br>이제는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가 함께 드라마에 나온다고 해서 화제가 되지는 않는다. 서로 오가며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흔해졌고, 한일 합작이라는 말도 예전만큼 특별하게 들리지 않는다.​한때 그런 조합만으로 화제가 됐던 드라마가 있었다. 원빈과 후카다 쿄코가 출연한 작품이다. 나는 아직도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방영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만 해도 한일 합작이라는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이야기였는지 궁금하다.​이 드라마는 지창욱과 이마다 미오가 나오는 판타지 로맨스다. 두 배우의 팬이라면 두 사람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입꼬리가 한껏 올라갈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심심할 수도 있다. 주인공 둘을 빼고 나면 나머지 인물들은 죄다 오징어가 되는 식이다. 이런 드라마는 대놓고 그렇게 밀어붙인다.​비슷한 느낌으로 떠오르는 작품이 [이 사랑도 통역되나요]다. 다만 두 드라마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사통은 코미디도 재미있지만,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꼬이는 방식이나 이중인격적인 모습,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제법 깊게 들어간다.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후쿠시 소타가 등장해 고윤정과 러브라인이 펼쳐질 듯한 대목도 있는데, 이런 구성을 참 잘 살렸다. 후쿠시 소타는 여러 이유로 일본 우익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배우다.​이번 드라마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마다 미오는 딸기 농사를 성공시키려는 야심 찬 젊은 농부다. 지창욱은 그 땅이 자기 것이라고 여기며 일본까지 건너가 땅을 차지하려 한다. 그러다 둘이 부딪치고,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이런 설정에 현실성을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영상은 오히려 옛날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2000년대 초반 로맨스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분위기랄까. 두 사람이 함께 있기만 하면 화면에 몽글몽글하고 샤랄라한 빛이 번진다. 인물 주변으로 반짝이는 공기까지 만들어 놓은 느낌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이런 연출을 만나니 조금 낯설면서도 재미있다.​그나마 현실적인 건 지창욱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잘생겼다고 하는 장면이다. 그건 현실 고증이 제대로 됐다. 한국판 [닥터 엑스]의 김지원을 보면서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니까.​강남도 나온다. 총 10부작이다. 복잡한 이야기나 묵직한 주제보다 지창욱과 이마다 미오가 알콩달콩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롸잇 나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4/pimg_63928438662739841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997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캐리 시즌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8149</link><pubDate>Fri, 23 Oct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8149</guid><description><![CDATA[<br>캐리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따돌림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친구 하나를 매장시키는 틴에이저의 모습은 어느 나라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방식도 비슷하다. 얼마나 지독 하냐의 차이일 뿐, 어느 쪽이 더 악랄한 지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다. 한 번 표적이 되면 온갖 조롱과 험담이 따라붙고, 그걸 구경하는 애들은 또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캐리가 염력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는 장면에서는 마녀 2가 떠올랐다. 지난번에도 썼지만 한국 초능력 영화는 마녀의 촬영 스타일을 답습하는 것 같다.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장면의 분위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8부작 중 6화까지 봤는데, 캐리가 친구들에게 당하는 장면이 워낙 많이 나와서 슬슬 답답해진다. 언제까지 저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캐리 말고도 초능력이나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넓혀가는 모양인데, 시즌 2를 염두에 둔 설정인지도 모르겠다.​사실 캐리 같은 이야기는 이미 여러 영화에서 반복해서 다뤄졌고, 캐리 자체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미있다. 크리스틴은 정말 지독한 빌런이다. 남을 괴롭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하나를 망가뜨려 놓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는 듯 굴기 때문이다. 남의 약점을 잡아 인터넷에 퍼뜨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조롱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죄책감은커녕 거리낌조차 없다. 자기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모습이 더 얄밉다. 정말 이런 애가 현실에 있으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캐리 역을 비롯해 크리스틴과 주변 친구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하나같이 찰떡같다.​이 시리즈에서 크리스틴에게 당하는 건 캐리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신상이 털리고, 별것 아닌 단점까지 부풀려져 조롱거리가 되는 애들이 여럿 나온다. 한 번 나쁜 소문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암처럼 번진다. 순식간에 퍼지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고, 당사자는 자기 생활이 통째로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 선생님조차 신상털이의 표적이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선생님이었던 세스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재미 삼아 올린 글이고 남의 이야기를 씹는 일이었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서 도망칠 곳조차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비밀계정의 폭로가 양비론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모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정작 누가 먼저 남을 괴롭히고 짓밟았는지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더 기가 막힌 건 크리스틴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괴롭혀 놓고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 미안해하기는커녕 자기가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데는 거리낌이 없으면서, 그 일로 자신이 곤란해지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이런 애들은 일이 커져도 반성하기보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부터 한다. 피해자가 받은 상처보다 자기 평판이 나빠지는 게 더 억울한 것이다. 크리스틴이 끝까지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캐리의 초능력이 무섭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건 어쩌면 크리스틴 같은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남을 망가뜨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글을 적고 마지막 화까지 다 봤다. 캐리 시즌 1은 시즌 2를 위한 초석 같은 느낌이었다. 시즌 2는 샤이닝의 닥터 슬립 같은 분위기로 이어자는 것이 아닐까. 캐리를 쫓는 또 다른 초능력자들과 캐리의 대결구도로 가지 싶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이 아마존 프라임에서 제의를 받았을 때 뜬금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완벽한 원작 영화가 77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 영화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이런 이야기로 각색을 해서 이렇게 진행되는 걸로 해보자고. 그래서 원작과는 다르지만 캐리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3/pimg_63928352478141652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814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빌로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6252</link><pubDate>Thu, 22 Oct 2026 1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6252</guid><description><![CDATA[<br>거대 괴물 오징어가 나오는 괴생물체 시리즈라고 해서 봤는데, 막상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6부작이라 짧기도 하고, 나는 솔직히 거대한 오징어가 배를 찌그러뜨리고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오징어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다. 거대한 다리 몇 개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게 전부다.​우리가 원하는 해양 괴생물체 공포영화라면 1980년에 나온 [심해의 공포]가 딱이다. 크리처 해양 공포물로, 초반 전개는 [빌로우]와 비슷하다. 연어잡이로 먹고사는 어촌에서 어부들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그물로 건져 올리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괴물의 생김새가 어색하고 특수효과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폭발 장면이 꽤 많고, 바다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맛이 있다. 이런 걸 기대하고 보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영화다.​[빌로우]도 중반까지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여기는 대왕오징어, 머더는 사실 새끼를 낳고 부화시키기 위해 빙산이 필요한 존재다. 그 빙산을 지키려다 보니 인간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괴물이지만, 머더에게는 그저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이 설정이 꽤 흥미롭다. 빙하를 깬 얼음에 술을 타 마신 사람들이 얼음에 섞인 점액까지 삼키면서 갈증에 시달리고, 결국 참지 못해 바다로 뛰어들어 머더의 먹이가 된다. 중반까지는 스릴러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그런데 알고 보니 크로커 가문이 진짜 문제였다. 이 마을에 묻혀 있는 코발트와 구리를 차지하려고 주민들을 쫓아내려는 속셈이었다. 머더를 이용해 공포를 조성하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 헐값에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조쉬 하트넷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머더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이야기는 괴물의 위협에서 인간의 탐욕 쪽으로 옮겨간다.​여기서부터 조금씩 힘이 빠진다. 가족 이야기며 가문의 탐욕이며 기후 변화까지 이것저것 끌어들이면서 처음의 해양 괴생물체 공포물이라는 색깔이 흐려진다. 머더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가족이 어느 순간 마더를 구하겠다며 뭉치는 전개도 묘하다.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썩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마지막에는 군대까지 동원되는데, 이것도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싶을 만큼 쉽게 철수한다. 그리고 진짜 거대한 빙하를 보여주면서 시즌 2를 예고한다.​거대 오징어가 끝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의외로 꽤 잘 만든 시리즈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그랬다. 처음부터 괴물보다 인간의 욕심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배가 박살 나고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었던 건데. 시즌 2를 봐야 하나. 이번에는 오징어 다리 말고 몸통이라도 좀 화끈하게 보여주려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2/pimg_63928267877368070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6252</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엑스파일 시즌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4213</link><pubDate>Wed, 21 Oct 2026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4213</guid><description><![CDATA[엑스파일 시즌 2를 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할 만한 소재는 죄다 나온다. 초현실과 초자연 현상, 우리가 사는 세계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들. 과학과 수사로 사건을 파헤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남겨둔다. 눈앞의 증거를 믿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엑스파일은 그 사이를 파고든다.​기괴한 사건이 벌어지는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잘못과 마주치는 경우도 많다. 1940년대에는 사람들에게 좋은 거라며 정부가 마을 곳곳에 뿌려댔던 방역 약품이 수십 년 뒤 엉뚱한 결과를 불러온다. 그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의 뇌에서 서번트 물질이 분비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인류를 위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른 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던 셈이다.​멀더 개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여동생 사만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됐다는 기억. 사람들은 그 기억을 망상이라고 여기지만 멀더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 기억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계속 사건을 쫓는다.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슈퍼스타들, 엘비스가 사실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소문까지 등장한다. 사람들이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의심과 도시전설을 죄다 끌어와 사건으로 만들어버린다.​시즌 2부터는 멀더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정장 안주머니에서 초기형 휴대전화를 꺼내 스컬리와 통화하는 모습이 어쩐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야 휴대전화 없이는 수사도, 일상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물건이 아니었다. 시즌 2는 미국 폭스 채널에서 1994년 9월부터 1995년 5월까지 방영됐다. 휴대전화가 전 세계에 보급되기 전의 풍경이 드라마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스컬리도 달라졌다. 시즌 1에서는 멀더의 주장을 의심하고 맞서는 장면이 많았는데, 시즌 2에 들어서면서는 어느새 멀더와 한편이 되어 사건을 파헤친다. 물론 스컬리 특유의 과학적이고 냉정한 시선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선이 멀더와 부딪히고 맞물릴 때 엑스파일만의 재미가 살아난다.​그런데 한국에서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에게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다. 멀더와 스컬리의 목소리가 낯설다. 우리는 이들을 더빙 목소리로 먼저 익혔기 때문이다. 원래 배우들의 목소리도 좋지만, 오래전부터 귀에 익은 한국어 목소리가 더 편하고 좋게 들린다. 맥가이버도 그랬고, 삐삐도 그랬다.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빙 목소리까지 합쳐져야 비로소 그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br>https://youtu.be/mb0_xKVl-N0?si=zJDLyRNOv4F9l8l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1/pimg_63928178768400944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421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더 드라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2310</link><pubDate>Tue, 20 Oct 2026 11: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2310</guid><description><![CDATA[요즘 연달아 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관통하는 한 단어가 있다. 지질함. 지질하고 지질해서 더는 지질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들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현실에서 남자들은 회피형이 많다. 싸우면 일단 자리를 피하고, 제대로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나중으로 미룬다. 그러다 일이 커질 대로 커지고 나서야 다투게 되고, 끝에 가서는 이럴 바엔 그냥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영화 속에는 엠마가 회피형처럼 보인다. 과거를 찰리에게 숨겼고, 찰리와 마주안아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렇게 된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찰리는 엠마가 과거의 일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계속 질문하지만 대화가 되는 건 아니다. 찰리 자기가 궁금한 것만 묻고, 답을 듣고도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혼자 엠마라는 인간의 형체를 만들어낸다. 점점 부풀려진 그 형체는 어느새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있다. 친구 앞에서 엠마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주절주절 늘어놓고, 이런 여자와 결혼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한다. 칼을 휘두를 수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다. 영화는 그 상상에 맞춰 엠마의 얼굴마저 섬뜩하게 잡아낸다.​레이첼과 찰리 같은 인간들의 특징은 자신이 남에게 준 피해보다 남이 자신에게 준 피해를 훨씬 크게 여긴다는 것이다. 엠마가 저지를 뻔한 일이 자신들이 실제로 저지른 일보다 더 나쁘다고 믿는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은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키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의심하고 부풀리고 겁을 먹다가, 결국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더 무서워하게 된다.​찰리는 엠마를 향한 사랑이 식었다. 그런데도 예정된 결혼식은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직장 동료인 여자에게 엠마 이야기를 구질구질하게 털어놓다가 바람까지 피운다. 참 지질하다. 사랑은 끝났는데 결혼은 해야 하고, 결혼은 해야 하는데 엠마는 무섭고, 무서운 엠마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기대려 한다.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남이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지는 열심히 따져본다.​현실에도 비슷한 부부가 있다. 결혼한 지 3년. 매일 싸우고, 방도 따로 쓰고, 밥도 각자 먹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 싶지만 남편은 별 타격이 없다. 아내가 대화를 시도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도 남편은 마주 앉는 것부터 싫어한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한쪽뿐이다.​헤어지는 게 맞아 보이지만 아내는 이혼한 여자로 남는 게 싫다. 결혼에 실패했다는 낙인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주변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엄마조차 딸의 행복보다 동네 사람들 눈과 친척들 앞에서의 체면을 걱정한다. 이혼하면 동네 창피에 친척들 볼 면목이 없다는 식이다. 당사자 둘이 어떻게 사는지는 뒷전이고,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먼저다.​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신랑이나 신부의 부모가 거대한 빚을 지고 있을 수 있고, 형제자매 중 누군가가 사기꾼이거나 살인죄로 수감되어 있을 수도 있다. 부모가 결혼한 자식들 사이에서 누구는 더 챙기고 누구는 외면하는 일도 생긴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괜찮아도 주변에서 터지는 일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혼이라는 게 두 사람의 결합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인간관계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참 복잡하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시작해도 그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자꾸 끼어든다. 자존심과 체면, 의심과 두려움,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어쩌면 관계를 망가뜨리는 건 처음부터 큰 사건이 아니라,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을 피하다가 점점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영화의 마지막을 보고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둘은 다시 잘해보려는 걸까. 한바탕 폭력이 오가고 피까지 튄 뒤에, 망가진 관계를 주워 담아 다시 붙여놓으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사랑이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끝내는 일이 두려워서 붙들고 있는 건지. 영화가 끝나도 그 둘의 다음 날이 궁금하다기보다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부터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0/pimg_6392809278879837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2310</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룩백 애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0334</link><pubDate>Mon, 19 Oct 2026 11: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0334</guid><description><![CDATA[<br>후지노의 이 장면은 최고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차오르다가 어느 순간 도파민이 머릿속을 온통 점령해 버린다. 저 춤은 몸속 구석구석에 퍼져 있던 세포들이 기쁨에 겨워 길길이 날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춤이다. 발끝에 실리는 무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요즘 인공지능으로 만든 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먹으로 건물을 때려 부수는데도 아무런 무게감이 없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은 이상하게 눈에 걸린다. 때리는 동작은 있는데 힘이 없다. 후지노는 다르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발끝과 손끝에 힘이 어떻게 실리는지 전부 살아 있다. 몸짓이며 박자와 리듬까지. 보고 있으면 후지노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 ​특히 표정, 후지노의 성격 상 시크한 표정을 유지하고 싶은데 기쁨이 얼굴로 뿜어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있는 저 표정. 이미 몸은 기뻐 날뛰지만 표정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한다. ​교모토에게 후지노는 끝까지 영웅이었다. 현실에서는 교모토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고, 가상에서는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후지노를 영웅으로 만든 사람도 교모토였는지 모른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고, 정작 자신조차 자기를 믿지 못할 때 교모토만큼은 후지노를 믿어 주었으니까.​실사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어진 만큼 가족 이야기가 더해졌다. 후지노의 등 뒤에는 늘 교모토가 있었다. 헤어진 뒤에도 마찬가지다. 교모토는 언제나 후지노를 영웅으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초등학교 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만났을 것이다. 서로의 삶에 그런 식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br>https://youtu.be/xRzTJglzibc?si=yZxjMuR2-__gzJHe]]></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9/pimg_63928006803680016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80334</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백색인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8311</link><pubDate>Sun, 18 Oct 2026 11: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8311</guid><description><![CDATA[<br>유튜브에 베스트셀러극장 1화가 올라왔기에 봤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83년 11월에 시작한 베스트셀러극장은 옆 방송국의 TV문학관과는 결이 달랐다. 문학적인 분위기보다는 대중적인 재미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그런데 첫 회부터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김성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지금 봐도 이야기가 꽤 탄탄하다. 당시에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조차 없었을 텐데, 그 심리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수사극으로서의 재미도 제법 있다.​정애리가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도회적인 얼굴이어서 그런지 시골에서 올라온 인물인데도 어딘가 남다르게 보인다. 네 자매 중 맏이로 집안일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여자다. 그런데 꿈과 미래에 대한 욕심이랄까, 허영이랄까, 그런 면이 있다. 사귀는 남자친구는 갈수록 시시하게 느껴진다.​그러다 버스에서 이정길을 우연히 만난다. 담배 연기 때문에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뀐다. 모던하고 남자다운 이정길에게 끌린 정애리는 결국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이정길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집에는 소설책이 가득하다. 전 남자친구와는 달리 이정길은 쿨하다.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가도 좋다는 식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문제는 정애리가 아는 언니 김애경의 소개로 대기업 회장 김무생의 비서로 들어가면서부터다. 당시 정애리는 이정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런데 김무생이 고백하자 아이를 낙태한다. 그 일을 계기로 이정길 안에 잠들어 있던 사이코패스의 본성이 드러난다. 낙태를 집도한 의사를 시작으로 하나씩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 근처에는 정애리의 전 남자친구를 범인으로 몰 만한 증거를 남긴다.​지금은 CCTV도 휴대전화도 흔한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려면 결국 현장에 남은 흔적과 사람들의 진술에 의존해야 한다. 이정길은 그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수사를 맡은 전운이 차근차근 뒤를 쫓으면서 극은 점점 긴장감을 높여 간다. 마지막에는 회장과 정애리의 결혼식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83년이라는 시대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들도 보이고, 한창 젊었던 시절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배우들도 있다. 익숙한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무엇보다 오래된 드라마라고 해서 느긋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 회부터 이런 미스터리를 보여줄 줄은 몰랐다. TV문학관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8/pimg_63927919416002354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8311</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6843</link><pubDate>Sat, 17 Oct 2026 1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6843</guid><description><![CDATA[<br>1화를 보는데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학생 때나 군대에서 당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것 같다. 학교야 졸업하면 되고 군대도 언젠가는 제대하지만, 직장은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어렵게 들어온 회사다. 먹고살아야 하니 웬만해서는 버텨야 한다. 소원수리를 쓸 수도 없고, 어디 가서 하소연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하루 중 지옥이 아닌 시간이 있기는 할까.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사람들 눈치를 보고, 나를 빼고 모여서 수군거리는 모습을 봐야 한다. 일을 잘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몸은 출근하고, 시키는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다시 일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은 하는데 정작 살아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저 몸뚱이 하나가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건 일밖에 없다.​학생 때나 군대에 있을 때는 그래도 몸이라도 건강했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방간이 생기고 안구건조증까지 얻었다. 특히 안구건조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눈이 마르고 아파서 자꾸 깜빡이게 되는데, 상대방은 그걸 보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몸이 아픈 것조차 사람 사이에서는 오해의 빌미가 된다.​직장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일지도 모른다. 일은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밤을 새우든, 머리를 싸매든,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사람이 틀어지면 방법이 없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고,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다.​인간관계라는 건 도대체 뭘까. 머릿속으로 사람들을 떠올리면 다들 좋은 사람인데, 상상 속에서는 누구와도 잘 지내고 행복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자꾸 상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잠깐이라도 다른 세상에 가 있어야 다시 돌아와 하루를 버틸 수 있으니까. 2회에서 그런다. 상상하면서 현실을 버티는 거니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7/pimg_63927835712837505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684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고교 명랑교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5033</link><pubDate>Fri, 16 Oct 2026 1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5033</guid><description><![CDATA[진짜 저렇게 빵집에 앉아 빵을 먹으면[영상 43분 10초] 얼마나 맛있을까. 요즘 저러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안 된다며 말리는 사람이 나올 테지만. 저 시절에는 빵을 우유에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혀가 온갖 맛있는 음식에 길들어서 빵과 우유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빵에 콜라까지 마시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건, 어쩌면 먹는 것보다 움직이는 일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이 영화는 [얄개]가 성공한 뒤 우후죽순처럼 나온 비슷한 청춘영화 중 한 편이다. 70년대 학생들의 우정과 연애를 다룬다. 영화에 나오는 빵집은 목포에서 꽤 유명했던 곳인데, 얼마 전까지 영업했던 모양이다. 촬영도 목포에서 했다. 이덕화와 임예진이 나온 [진짜 진짜 잊지 마] 역시 목포에서 찍었는데, 두 영화에 나오는 학교도 같은 곳처럼 보인다. 그때는 목포가 청춘영화의 배경으로 제법 잘 어울렸나 보다.​임예진은 이 영화에도 우정출연한다. 영화 자막에 실제로 ‘우정출연’이라고 나온다. 신부가 된 모습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목포에 공부하러 간, 아직 학생인 삼육을 기다리는, 일찍 시집을 가버린 신부로 잠깐 나온다. 출연 시간이 짧아도 당시 임예진이 청춘영화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영화는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학생은 본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영화 내내 강조한다 그래서 연애도 조심스럽고, 공부가 우선이 되어야 하며 싸움 같은 걸 하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어울리는 장면이 70년대 청춘 영화에는 많다. ​얄개 승현이는 서울에서 목포로 전학을 오고, 학교 짱인 삼육과 대결을 펼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면서 좋아하는 여학생 진희의 마음을 훔치는데 모두가 작전을 펼치게 된다. ​오히려 80년대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제법 달라진다. 청춘의 설렘보다는 고독과 외로움, 복잡해진 인간관계와 사회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많아진다. 시대가 바뀌면서 영화 속 젊은이들의 얼굴도 달라진 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6/pimg_63927747452029571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5033</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매치박스 더 무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1315</link><pubDate>Wed, 14 Oct 2026 1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1315</guid><description><![CDATA[존 시나의 액션영화가 나왔다. 요즘 액션 영화는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꽤 재미있게 봤다.​사람들이 요즘 액션 영화에 흥미를 잃은 건 근접 맨손 액션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제이슨 스타뎀이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지만, 그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 몸으로 보여주는 액션에는 한계가 있다. ​제이크 질렌할이 제법 멋진 액션영화를 한 편 뽑아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정통 액션 배우라고 하기는 어렵다. 드웨인 존슨도 예전 같지 않고, 햄식이는 액션영화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존 시나 역시 액션 배우지만 몸이 다소 둔해 보인다는 약점이 있다.​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 샘 하그레이브는 존 시나의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굳이 근접 맨손 액션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대신 자동차와 헬기, 오토바이를 동원해 거의 두 시간 내내 쫓고 쫓기는 장면으로 밀어붙인다. ​거대한 트럭들이 추격전을 벌이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 이르면 도파민이 터진다. 자동차가 시장과 도심 한복판을 휘젓고 다니는 추격전도 좋다. 예전 성룡 영화에서 보던 그런 장면들인데, 구경하는 사람까지 다칠 것 같아 괜히 조마조마해진다. 이런 액션은 확실히 보는 맛이 있다.​영화가 무겁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존 시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전문 요원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다. 오랜만에 만난 어릴 시절의 친구들. 그들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일반 사람들인데 요원을 돕겠다고 나서니 일이 제대로 풀릴 리가 없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설픈 행동과 엉뚱한 상황이 웃음을 만든다. 이 영화는 진지한 첩보 액션이라기보다 코믹 액션에 가깝다. 그러나 카메라가 자동차 안팎을 오가며 정신없이 액션을 보여주는데,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존 시나와 제시카 비엘이 오랜만에 함께 등장하고, 샘 리처드슨과 아르투로 카스트로가 코미디를 맡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일반인들이 요원과 함께 사건에 휘말린다는 설정이 액션과 코미디를 적당히 섞어준다.​매치박스 완구 브랜드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그런지, 보다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액션 장면들이 하나둘 겹쳐 보인다. 새롭고 독창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자동차가 부서지고 트럭이 날아가고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는 장면은 꽤 재미있다. 오랜만에 액션영화다운 액션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4/pimg_63927574157019631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7131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컴플리트 언노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9375</link><pubDate>Tue, 13 Oct 2026 1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9375</guid><description><![CDATA[모니카 바바로가 조안 바에즈를 연기한다고??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그냥 조안 바에즈였다. 그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 깊고 맑은 목소리까지.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해낼 수 있을까.​특히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가 속옷 바람으로 방에 앉아 조용히 Blowin’ in the Wind를 함께 부르는 장면. 그때는 좀 찌릿했다. 이미 슈퍼스타였던 바에즈는 무명에 가까웠던 딜런의 노래를 듣고 뭔가를 알아차린다. 아직 세상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재능을 먼저 발견한 사람의 눈빛 같은 것.​영화는 밥 딜런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훑어가는 전기 영화가 아니다. 젊은 시절의 몇 년을 붙잡는다. 무명 가수가 점점 유명해지고, 마침내 엄청난 인기를 얻지만 그 인기가 오히려 정신을 갉아먹는 시절. 포크 음악이 뉴포트를 지배하던 때다. 노래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랬고, 총과 칼 없이도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무기였다.​사람들은 딜런의 등장에 열광했다. 하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딜런은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고, 편집증에 가까운 불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모두를 뒤집어놓는 무대를 선보인다. 전기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 딜런에게 돌아온 건 환호만이 아니었다.​“너는 유다 새끼야!”​그 한마디에 당시 사람들이 딜런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또 그가 무엇을 배신했다고 여겼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딜런이 변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딜런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그는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전설이 된다.​영화를 보다가 학창 시절에 드나들었던 단골 카페가 생각났다. 그곳 여주인은 조안 바에즈의 음악을 자주 틀었다.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는데, 어쩐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과는 달랐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계간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오래전 일인데 영화 속에서 바에즈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그 시절의 카페까지 함께 떠올랐다.​영화 속 바에즈와 딜런은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있자니 1960년대라는 시대 자체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미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예술이 뜨겁게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전쟁과 기근,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고, 누군가는 시를 썼다.​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예술은 아름다워서 오히려 무섭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노래 한 곡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또 얼마나 치열했는지.​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그 시절의 노래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3/pimg_63927490768310997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937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실낙원 20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7520</link><pubDate>Mon, 12 Oct 2026 1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7520</guid><description><![CDATA[<br>아니,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씨부레, 그냥 이렇게 끝난다고? 하는 생각만 든다.​포스터 전면에 뤽 베송 제작이라고 크게 내세웠지만, 이제는 뤽 베송 아즈씨도 감각이 무뎌진 건가 싶다. 감독이 영화를 이렇게 끝내려고 했다면 뤽 베송이 멱살이라도 잡고 방향을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영화라면 적어도 마지막에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쁜 놈들 다리 하나쯤은 분질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다큐멘터리처럼 그냥 탈출해 버린다.​이렇게 끝나냐고.​노나 아르네제더가 주인공 니나로 나온다. 이전 작품들을 보면 어떤 역할이든 꽤 잘 소화하는 배우인데, 일단 얼굴이 예쁘다. 프랑스 배우인데 묘하게 독일 사람 같은 느낌도 있다. 젊은 시절의 다이앤 크루거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목소리나 분위기에서는 젊은 조디 포스터도 살짝 보인다.​니나는 자유분방하다. 약간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할 거야’ 하는 사람이다. 고집도 세다.​마르세유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던 니나는 인도양의 어느 호화 리조트에 직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투숙객 부부의 아이 셋을 맡게 된다. 니나는 어린아이들을 돌본 전문적인 지식도 훈련도 없으니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배인은 사람이 부족하다며 그냥 니나를 투입한다.​그리고 사고가 난다.​아이 하나가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결국 죽는다.​그때부터 니나는 사방에서 얻어맞기 시작한다. 지배인도, 룸메이트도, 경찰도, 법조계 사람들도 니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겨우 한 가닥 희망처럼 보였던 증언을 해주겠다는 직원마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떠나버린다.​이 과정이 정말 답답하다.​나라 전체가 니나 한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다. 아이를 돌본 것뿐인데, 아이 하나가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죽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모든 잘못이 니나의 것이 되어 있다. 종신형까지 거론될 정도로 몰린다.​불행이 하나 터지고, 그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끌고 오고 불행의 연속이 피로감이 든다. 니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오바이트까지 할 정도로 정신이 무너진다. 여기까지는 꽤나 숨 막히게 잘 끌고 간다.​그런데 마지막이 문제다.​갑자기 니나가 액션영화 첩보원처럼 변한다. 가발을 쓰고 가짜 여권을 챙기고 보트를 부웅 몰아서 인도양을 빠져나간다.​끝.​그냥 그렇게 끝난다.​씨부레.​리조트 사장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니나를 강간하려고 했던 판사도 그렇고, 특히 이 모든 일을 가장 악랄하게 몰고 간 지배인은 어떻게든 한 번은 제대로 당해야 했다. 다리를 하나 분질러놓든가, 니나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강력하게 법적 조치를 하든가.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걸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게다가 판사가 니나를 강간하려는 장면에서는 왜 또 가슴까지 노출시키는지 모르겠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가 부모자식이 같이 볼 수 없는 영화가 된다. 전혀 그런 장면이 없다가 왜 가슴 노출을 시키는지. ​두 시간을 그렇게 끌어놓고 마지막에 뭐야?​이렇게 끝난다고?​그렇게 끝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2/pimg_63927403479447132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7520</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폴 디 어비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5635</link><pubDate>Sun, 11 Oct 2026 1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5635</guid><description><![CDATA[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생존 스릴러 재난 영화다.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려다가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하고,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서로 엉키면서 협곡 위에 매달린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영화도 길지 않아서 딱 필요한 만큼만 간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건 재난이 아니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속 여자였다.​다니자키의 탐미적인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위험할 만큼 아름답다. 남자들이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고, 그 시선 자체를 즐긴다. 남편이 있어도 다른 남자들에게 은근히 색기를 흘리고, 그렇다고 먼저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오는 남자를 굳이 밀어내지도 않는다. 남편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하다. 남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내 아내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만 보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정작 아내는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특히 다니자키의 소설에서 자주 느껴지는 건 발에 대한 집착이다. 평소에는 신발 속에 가려져 있는 신체 부위라서 더 묘하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예쁜 발에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이 나온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탐미라고 해야 할까.​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도 묘하게 그렇다.​여자는 협곡에 매달려 있고, 남편은 자기 발밑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여자를 붙잡고 있는 남자는 하필이면 예전 남자친구다. 몸은 서로 붙어 있고, 숨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리고, 눈앞에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있다. 여자가 그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묘하다. 그냥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게 들어 있다.​남편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밑에 매달린 채 아내에게 말을 걸고 속마음을 드러내지만, 지금은 질투한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줄 하나에 의지해서 협곡에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여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다고 옛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떠오르고, 지금 눈앞에서 몸을 맞대고 있으니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질 리도 없다. 재난 상황인데도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이상할 만큼 끈적한 감정이 흐른다.​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상사는 일을 제대로 하기보다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데만 신경 쓴다고 말한다. 영화가 굳이 그런 대사를 넣은 것도 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것인지 꽤 노골적이다.​영화의 대부분은 세 사람이 협곡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움직일 공간도 별로 없다. 그 와중에 회상 장면이 끼어들고, 여자가 옛 남자친구를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생존 스릴러를 보고 있는데 자꾸 다른 영화가 겹쳐 보인다. 재난보다 삼각관계가 더 신경 쓰인다.​남편 역의 마크 아이델슈테인은 [아노라]에서 철없는 이반을 연기했던 배우다. 마지막에는 남편이 줄을 끊고 협곡 아래로 떨어진다. 비상 낙하산을 펴지만 기절하고, 그래도 살아남는다. 반대로 예전 남자친구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떨어져 죽는다.​여자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남자를 눈앞에서 잃었다. 남편은 살아남았지만, 이제 둘이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아내가 잊지 못했던 남자가 자기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다.​영화만 보면 생존 재난물이다. 그런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남는 건 협곡도, 낙하산도, 새 떼도 아니다. 서로 몸을 붙이고 매달린 채 여자가 예전 남자친구에게 보내던 그 눈빛이다.​[폴] 시리즈의 세 번째 편처럼 보이는 설정인데, 막상 까보면 재난영화라기보다 삼각관계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삼각관계가 꽤나 짜증 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는지, 직접 보면 알게 된다. 굉장히 짜증나는 영화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1/pimg_63927318163201852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563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아임 유어 우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4166</link><pubDate>Sat, 10 Oct 2026 14: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4166</guid><description><![CDATA[영화는 지리멸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느리게 흘러간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액션이라고 하기에도 한참 모자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재미있게 봤다.​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딱히 설명하기도 어렵다. 진을 계속 보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처럼 보인다. 요리도 못해서 늘 타버린 토스트를 먹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진에게 어느 날 남편이 아기를 데려온다. 그리고 남편은 사건에 휘말려 사라진다.​진은 남편이 보낸 친구 칼과 함께 아기를 안고 도망친다. 남편을 쫓던 나이트클럽 보스는 진까지 쫓아온다. 그때부터 계속 도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별로 흥미진진하지 않다. 쫓고 쫓기는 영화인데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 답답할 만큼 느리다.​그런데도 진을 응원하게 된다.​자기 아이도 아닌 아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남편이 킬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보호받는 화초 같던 여자가 조금씩 달라진다. 총을 쏘는 법을 배우고, 자신과 아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그렇다고 진이 갑자기 멋진 킬러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변한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재미가 없는데 계속 보게 된다.​결국 이 긴 영화는 마지막 한 장면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 같다.​진이 궁지에 몰리고 보스가 그녀를 위협한다. 거창한 대사도 없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음악도 없다. 진은 그냥 총을 꺼낸다. 그리고 보스의 이마에 총알 한 발을 박아버린다.​끝.​두 시간 가까이 느릿느릿 따라왔던 이야기가 그 한 발로 끝난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영화가 마지막에 갑자기 대단한 액션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진 역의 레이첼 브로스나한은 최근 [슈퍼맨]에서 로이스 레인을 맡았던 배우다. 여기서는 훨씬 평범하고 무력한 여자로 나온다. 그런데 그 여자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이 영화의 거의 전부다.​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계속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어디로 가든 불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수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진은 그저 아내로, 엄마로 살아보고 싶었던 사람이다.​그랬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총을 들고 서 있다.​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상하게 진과 아기,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지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진을 마냥 응원하고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0/pimg_63927239063868372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4166</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옵세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2565</link><pubDate>Fri, 09 Oct 2026 1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2565</guid><description><![CDATA[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니키의 모습보다 찐따 베어의 모습이 더 공포스럽다. 이런 찐따가 주변에 하나 있다면 결국 주위 사람들까지 병들어간다. 영화에서는 그 끝이 끔찍하다. 찐따 베어 때문에 친구들이 하나둘 죽고, 심지어 고양이까지 죽어서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간다.​거시적으로 보면 영화는 무섭게 변해버린 니키를 앞세워 공포를 만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랑에 빠진 찐따가 사랑을 원하는 방식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 니키가 친구들 앞에서 자기 머리를 깨버려도, 세라의 얼굴을 아작 내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만들어도 찐따 베어 선생은 무서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결국 찐따 베어는 니키의 삶도, 친구들의 삶도, 자신의 삶도 전부 끝내버린다.​찐따가 이렇게 무섭다. 정작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 내가 찐따라서 잘 안다.​남녀의 사랑이 언제나 같은 크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런 상식은 별 소용이 없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공식이나 법칙도 사랑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냥 들어간다.​그러다 한 사람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사랑이 식은 사람에게는 끝난 관계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 그게 집착이 된다.​내가 아는 동생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남자가 집 앞에 차를 대놓고 3일씩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섭다고 했다.​두 사람이 사랑할 때 한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잘생겼고 서글서글했다. 사람도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이 트리거가 된 모양이다. 집착이 심해졌고 결국 경찰까지 오갔다. 그 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이런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일어난다.​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관심이 간섭을 넘어 집착이 되는 순간, 당하는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 가족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같이 끌려 들어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옥죄는 일이 되어버린다.​[옵세션]을 보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생각도 조금 들었다.​요즘은 정통적인 영화 연출을 고집하는 영화보다 사람들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콘텐츠가 훨씬 빠르게 반응을 얻는다. 영화는 돈이 많이 든다. 아주 짤막한 독립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도 몇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쓴 영화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옵세션]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그런 변화를 꽤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쇼츠처럼 도파민을 건드린다. 특히 베어가 말을 한마디 던졌을 때 니키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행동이 그렇다. 보는 사람의 숨을 조여온다.​니키는 감정을 시시때때로 바꾼다. 두려워했다가 관능적으로 변하고, 천진난만해졌다가 사랑스러워진다. 그러다 광적으로 돌변하고 무서워지고, 다시 행복해졌다가 슬퍼진다.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낯선 얼굴을 거의 다 꺼내놓는다.​그래서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본인은 얼마나 늦게 알아차리는지다.​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미지의 공포를 영화는 꽤 집요하게 건드린다. 진짜 무서운 건 어제까지 사랑했던 사람이 돌변한 오늘의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옵세션]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9/pimg_6392714983325260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256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분노의 인형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0618</link><pubDate>Thu, 08 Oct 2026 1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0618</guid><description><![CDATA[1987년에 나온 이 영화는 권선징악이 아주 정확하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들이 인형들에게 무참히 공격당한다. 요즘 영화처럼 인형이 매끈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어색함이 오히려 묘하게 무섭다. 인형들이 움직이고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도 꽤 잔인하다. ​특히 마지막에 가장 악독했던 어른이 서서히 인형으로 변하는 장면은 놀랍다. 어떤 의미냐면 요즘에 새로 나온 폴더폰보다 카세트 테이프나 카세트 플레이어를 보며 신기해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무튼 나쁜 놈은 이렇게 벌을 받아야지.​요즘 영화처럼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하지도 않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빌런이 마지막에 살아남거나 법망을 빠져나가면서 찝찝하게 끝나는 일도 없다. 80년대 공포영화는 이런 점이 분명했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코믹한 공포영화라면 이불 뒤집어쓰고 보기에도 딱 좋다.​그리고 이 영화에는 아주 섹시하고 악독한 빌런으로 번티 베일리가 나온다. 어디에 나왔냐면 아하의 ‘Take On Me’에 나왔던 그 여자다. 카페에서 만화책을 보던 여자가 만화 속으로 들어가 모턴 하켓을 구해오는 그 유명한 뮤직비디오. 지금 다시 봐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영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용필의 맥콜 광고에도 비슷한 기법이 사용됐다.​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노부부가 사는 저택에 들어간다. 그 집에는 노부부가 만든 인형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인형들이 살아 있다. 사람들은 인형들을 무서워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린 주디만은 조금 무섭게 생긴 인형들을 순수하게 반긴다. 인형들도 주디를 좋아한다. 그래서 주디를 괴롭히는 새엄마와 아빠에게 아주 제대로 복수한다.​지금 보면 인형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만들어진 데 2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하면 그 움직임도 달리 보인다. 당시에는 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하는 특수효과 자체가 상당한 작업이었을 테니까. 특히 인형들의 얼굴이 움직이는 장면은 80년대 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꽤 놀랍다.​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건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이다. 한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도 마음에 든다. 짧고, 잔인하고, 웃기고, 마지막에는 나쁜 놈이 확실하게 벌을 받는다. 이런 공포영화도 가끔은 좋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8/pimg_63927058799202620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60618</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딥 워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8860</link><pubDate>Wed, 07 Oct 2026 12: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8860</guid><description><![CDATA[<br>이 영화는 7년 전에 나온 [크롤]처럼 재난에 재난이 겹치는 엄청난 불행 속에서 탈출하는 생존기다. [크롤]이 태풍과 악어였다면 이 영화는 비행기 사고와 상어다.​재난 영화이긴 한데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냥 신나게 즐기는 가벼운 공포물에 가깝다. 비행기에 불이 나고 기내가 폭발하면서 구멍 난 곳으로 사람들이 빨려 나간다. 물건이 날아와 사람을 덮치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사람이 죽는다. 이 부분에서 도파민이 한 번 터진다.​중반을 넘어서면 이번에는 태평양 한가운데다. 물에 빠진 사람들 주변으로 상어가 나타난다. 비행기 안에서는 사고가 사람을 죽이고, 바다에서는 상어가 사람을 물어뜯는다. 여기서 두 번째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좁은 비행기 안과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공간은 정반대인데 둘 다 지옥이다.​비행기는 통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고 하지만 불이 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낭만적인데 상어가 나타나는 순간 지옥으로 변해 그냥 살아남아야 하는 장소가 된다. 인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얼마나 쉽게 뒤집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영화에는 중국인 배우들이 꽤 많이 나오고 비행기 목적지도 상하이다. 중국 시장을 의식한 흔적도 보인다.​감독은 [다이하드 2], [클리프행어], [딥 블루 씨]를 만든 레니 할린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재미는 확실하다. 사람들을 폐쇄된 공간에 몰아넣고 계속해서 위기를 만들어낸다. 레니 할린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던 방식이다.​[데스티네이션] 시리즈처럼 생각하면 편하다. 사고가 끝나면 또 다른 사고가 나오고, 한숨 돌릴 만하면 다시 일이 터진다. 긴장감의 깊이를 파고드는 영화라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듯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쪽이다.​그것만으로는 조금 아쉬웠는지 애런 에크하트와 벤 킹슬리까지 데려왔다. 묵직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배우들의 무게감을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이 난장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는 게 맞다. 감독의 전작에서 느껴지던 묵직함까지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대신 설정은 꽤 재미있다. 사고로 바다에 떨어진 비행기에서 겨우 빠져나왔더니 상어가 달려든다. 그렇다고 밖으로만 나갈 수도 없다. 가라앉고 있는 비행기 안에도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다. 밖으로 나가도 죽고, 안에 있어도 죽는다.​그리고 이런 영화에는 빌런이 꼭 한 놈씩 있다. [부산행]의 용석 같은 인간이다. 결국 비행기에 불이 난 것도 이 사람 때문인데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런데 영화가 영리하게도 마지막에 권선징악을 하나 집어넣는다.​담배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끝까지 담배를 피우겠다고 불을 붙이다가 상어의 먹이가 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7/pimg_63926973670829208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8860</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경주기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7076</link><pubDate>Tue, 06 Oct 2026 1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7076</guid><description><![CDATA[.경주기행은 이름도 경주고 지명도 경주다. 미국 영화에서는 지명을 사람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드물다. 경주라는 이름이 사람 이름으로도 꽤 잘 어울린다. 영화 제목부터 묘하게 재미있다. 얼핏 보면 경주여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블랙코미디를 표방한 가족 복수극이다. 8년 전 수학여행을 갔던 막내딸 경주가 사이코패스에게 살해당한다. 시간이 흐른 뒤 엄마와 세 딸은 범인을 납치한다. 약물을 먹여 기절시킨 뒤 경주로 데려가 가족여행으로 가장하고, 그곳에서 죽인 뒤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일이 계획대로 될 리가 없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백상현이 세 모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면서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재미있다. 그런데 굉장히 재미있지는 않다. 이게 좀 아쉽다.​소재만 놓고 보면 더 재미있을 수 있는 영화다. 세 모녀는 전문적인 납치범도 살인범도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딸과 동생을 죽인 놈을 직접 죽이려고 나선 것이다. 그러니 계획에 구멍이 생기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 될 수 있었다.​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알리바이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경찰의 수사는 어떻게 피할 것인지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한다. 법대를 졸업한 둘째가 이 일에 관여하는 것도 그래서 흥미롭다. 그런데 가족 사이의 갈등과 복수 계획이 맞물리면서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조금 부족하다. 잘만 끌고 갔다면 세 모녀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긴장감이 되었을 텐데.​반대로 복수극의 힘이 조금 빠진 뒤에는 백상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릴러처럼 밀어붙여도 괜찮았을 것 같다. 문제는 그가 정말 무서운 살인자라는 느낌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추격자'의 하정우나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처럼 등장만 해도 불안해지는 종류의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후반부에 셋째와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본색을 드러내기는 한다. 하지만 영화 속 뉴스에 도배될 만큼 무시무시한 범죄자라는 설정에 비하면 폭력성이 충분히 느껴지지는 않는다.​그래서 영화가 밋밋하게 느껴진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볼 만하다. 다만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는 데까지는 가지 않는다.​더 아쉬운 것은 이 시나리오가 2021년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에서 3등을 했다는 점이다. 막내딸을 죽인 범인을 납치한 엄마와 세 딸이 가족여행을 가장해 경주로 복수여행을 떠난다는 한 줄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롭다. 영화가 되려면 그 여행길에 사건이 하나씩 터지고, 그것들이 서로 얽히면서 처음의 복수 계획이 엉망이 되어야 한다. 영화에는 이미 8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8년이면 복수를 준비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그 긴 시간 동안 네 모녀가 무엇을 준비했고, 무엇을 숨겼고, 무엇 때문에 서로 갈라지는지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복수를 하러 가는 길에서 가족이 오히려 무너지는 과정도 더 극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배고픔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와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계속 끼어들었다면 영화의 블랙코미디도 훨씬 살아났을 것 같다.​그럼에도 영화가 좋았던 건 무거운 소재를 주인공들이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딸을 죽인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뒤에 해결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는다.​가족이라는 것도 그렇다. 내 몸에서 떼어낸 것처럼 지켜주고 싶은 존재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돌아서서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가까워서 더 잔인하고, 가까워서 쉽게 놓을 수도 없다.​경주기행은 경주로 가는 여행이면서 경주에게 마지막 여행을 보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옥실은 8년 동안 붙잡고 있던 경주를 마지막에 그렇게 놓아준다. 그 장면은 뭉클했다. 옥실의 삶은 세 딸과 달리 8년 전에 멈춰있었으니까. ​재미가 없어서 아쉬운 영화가 아니다. 재미가 있어서 더 아쉬운 영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6/pimg_63926885083101621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7076</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사카모토 데이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5311</link><pubDate>Mon, 05 Oct 2026 1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5311</guid><description><![CDATA[<br>이게 영화로 나오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은혼도 있고 시티헌터도 있고 진격의 거인까지 실사화된 마당에 이제 와서 이상할 것도 없다. 일본은 정말 만화라면 일단 실사영화로 만들어 보는 것 같다.​우리나라 액션 그래픽이 마녀 같은 느낌이라면 일본은 시티헌터 같은 느낌이 강하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액션과 과장된 움직임을 그대로 가져오는 쪽이다. 사카모토 데이즈도 그렇다. 말도 안 되는 만화를 영화로 옮기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그래픽이 화면을 계속 뒤덮는다.​사카모토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으로 꽤 재미있게 봤다. 전설적인 킬러 사카모토가 어느 날 편의점에 들렀다가 한눈에 반한 여자에게 고백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킬러 생활을 그만둔다. 이후 행복하게 딸과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왕년의 날렵한 킬러는 어디 가고 엄청나게 푸짐해진 아저씨가 되어 있다.​그런데 킬러들이 사카모토를 죽이러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실력은 그대로다. 초능력자가 나오고 총알을 이리저리 피하고 방탄 안경에 무술에 총질까지 나온다.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다.​사카모토 역은 메구로 렌이 맡았고 일본에서 잘나가는 젊은 배우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은혼이나 진격의 거인도 그랬다. 일본에서 이름 있는 배우들을 잔뜩 데려다가 만화 속 인물을 연기하게 한다. 배우들을 보는 재미는 있는데, 그것과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사카모토가 지키려는 건 가족이다. 아내와 한 약속도 있다. 이제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들이 달려들어도 예전처럼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액션이 벌어지는 방식도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이 영화는 액션영화라기보다 코미디에 가깝다. 피식 웃게 만드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사카모토를 죽이러 온 킬러와 사카모토, 그리고 능력자 신을 나란히 앉혀 놓고 아내가 훈계하는 식의 장면이 많다. ​이러나 저러나 만화에서는 재미있었을 법한 장면인데 사람이 실제로 연기하고 CG를 입히니 묘하게 어색하다.그래서 어떠냐고 묻는다면 재미가 없다. 영화로서는 실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일본은 만화를 실사화하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작을 얼마나 똑같이 옮기느냐가 아니라 영화로 옮겼을 때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웹툰 실사화 작품들을 보면 원작의 설정이나 캐릭터를 가져오면서도 실사영화에 맞게 이야기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원작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과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사카모토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만화적인 과장이 재미가 된다. 그런데 그 과장을 실제 배우와 실제 공간에 그대로 갖다 놓으면 재미가 아니라 어색함이 될 때가 있다. 이 영화가 딱 그렇다.​그럼에도 일본은 계속 실사화를 할 것이다. 사카모토 데이즈도 이 한 편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원작이 있으니 다음 이야기도 만들 수 있고, 등장인물도 많다. 다만 다음에는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영화가 되는 방법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지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5/pimg_63926801158096212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5311</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완벽한 초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3644</link><pubDate>Sun, 04 Oct 2026 1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3644</guid><description><![CDATA[스레드에 14년 동안 붕가리스로 살아온 아내가 자신의 사연을 올렸다. 결혼 생활의 행복을 상식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아내나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나 정도의 불행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관계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조금씩 영역을 넓힌다. 그러다 어느 날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사연을 올린 아내는 남편과 잠자리를 가지려고 할 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 아이들 핑계, 씻지 않았다는 핑계, 오늘은 운이 안 좋다는 핑계까지 들으며 14년을 살았다고 한다.​이 영화도 아찔한 관계를 다룬 블랙코미디다. 리메이크작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하정우와 이하늬 주연의 [윗집 사람들]로 다시 만들어졌다.​등장인물은 달랑 네 명이다. 그런데 이 네 명이 아주 탄탄하다. 코미디 연기의 천재 세스 로건, 이번에는 감독까지 맡은 올리비아 와일드, 페넬로페 크루즈, 에드워드 노튼.​이사 온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별히 와일드한 액션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사건이 터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마조마하다. 다른 부부의 아내와 남편의 품에 안기기까지 두 사람이 살아온 결혼생활이 무너져가는 과정이 보이기 때문이다.​겉으로 보면 조와 엔젤라는 너무 다정하고 행복한 부부다. 하지만 이미 1년이 넘도록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 성관계만 없고 다른 모든 것이 행복하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을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은 단순히 육체적인 문제만은 아니다.​조는 피아노 연주가다. 자신의 실패가 점점 자신과 가족의 삶을 조여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실패가 쌓일수록 그는 움츠러들고, 그 좌절감은 결국 부부관계에도 금이 가게 만든다. 엔젤라 역시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일이 힘겹다.​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데이트 상대가 엔젤라를 집까지 바래다줬지만 엔젤라는 곧바로 조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던 퍼브까지 뛰어간다. 조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 조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 여자는 처음 봤다고 말한다.​과거로 돌아가면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했다. 매일 서로를 안고 뒹굴던 사이였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현실에는 갈등만 남았다.​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이야기의 큰 줄기는 원작이나 우리나라 리메이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서 동경하던 야한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오히려 낯설고 힘겨워질 때가 있다.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어느 순간 권태가 되기도 한다.​대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도발과 자극이 꽤 세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묘하게 긴장하게 된다. 블랙코미디답게 웃기면서도 그 웃음 뒤에 씁쓸한 맛이 남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4/pimg_6392671241675895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3644</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바닷가에서</category><title>그 시절, 가을운동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2075</link><pubDate>Sat, 03 Oct 2026 11: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2075</guid><description><![CDATA[라디오에서 가을 운동회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국민학교 시절 시월은 가을 운동회의 달이었다. 운동회 날이면 학교 앞에 병아리 아저씨, 잉어 아저씨, 솜사탕 아저씨가 진을 치고 아이들을 유혹했고, 운동장 하늘에는 만국기가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왜 만국기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나라를 기념하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특별히 국제적인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형형색색의 만국기를 보면 알았다. 아, 오늘 운동회구나.​아침에 집을 나서면 가을 햇살이 체육복 위에 내려앉았다. 하얀 체육복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가을 운동회 날에는 늘 날씨가 좋았다. 요즘처럼 덥지도 않고, 비가 올 것처럼 흐리지도 않았다. 딱 운동회 하기 좋은 날이었다.​줄다리기, 박 터뜨리기, 장애물 달리기, 기마전.​운동회의 꽃은 역시 계주였다.​점심시간이 되면 엄마가 김밥이나 찬합에 도시락을 싸서 운동장으로 왔다. 돗자리를 깔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가족이 많은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부 나왔다. 운동회는 학교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학교가 있는 동네 전체가 하루 동안 들썩이는 축제였다.​점심시간이 끝나면 매스게임이 시작됐다. 매스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새까맸다. 여름 내내 남아서 연습했기 때문이다. 한여름 운동장에서 매일 연습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가을이 와도 여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나는 이상하게도 육 년 전부 청군이었다.​한 번쯤은 백군이 되고 싶었다. 체육복도 하얗고 운동화도 하얀데 모자까지 하얀색이면 얼마나 예쁠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육 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청군이었다. 내게 백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운동회에는 별일도 많았다.​손바닥만 한 모래주머니를 힘껏 던졌다가 엉뚱하게 날아가 얼굴에 맞고 우는 아이도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달리는 순서에서는 자식 체면을 살려주겠다고 마음만 앞선 엄마 아빠들이 넘어졌다. 나이를 잊은 사람들처럼 달리다가 운동장에 그대로 나뒹굴었다. 아이들은 웃었고, 부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어났다.​좋아하던 아이가 청군과 백군으로 갈리면 그것도 일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사이인데 그날만큼은 묘하게 경쟁심이 생겼다. 청군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백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운동회가 끝나면 먼지가 잔뜩 묻은 체육복을 벗고, 씻은 다음 방바닥에 엎드렸다. 엄마가 싸준 김밥이 남아 있으면 그걸 마저 먹으면서 만화를 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그때는 운동회가 그렇게 시끄러운 행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운동장은 원래 시끄러운 곳이었고, 아이들은 원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존재였다.​요즘은 시끄러워서 민원이 들어와 축소되거나 운동회를 하지 않는 초등학교가 많다고 하니 예전 가을 운동회가 그립기만 하네.​가까운 미래에 가을 운동회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떨까.​그때는 바쁜 부모들 대신 휴머노이드가 운동장에 나와 아이를 응원할지도 모른다. 다른 집 휴머노이드가 우리 집 것보다 더 다정하고, 더 재미있고, 더 좋은 말을 해줄 수도 있다.​그러다 주인공 아이가 자기 부모보다 다른 집 휴먼로이드를 더 좋아하게 되고, 그걸 본 다른 아이가 화가 난다.​그리고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을 누른다.​인간말살 프로젝트가 실행되는데.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3/pimg_63926623203502028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2075</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사냥의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0511</link><pubDate>Fri, 02 Oct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0511</guid><description><![CDATA[<br>이 영화는 러시아에서 만든 공포 액션 영화다. 등장인물이라고 해봐야 네 명이 전부다.​아내가 있는 젊은 부자 막스가 애인 리나를 별장으로 데려간다. 둘이 한창 즐기고 있는데 사냥을 하러 온 막스의 동생과 또 다른 남자가 합류한다. 그러면서 리나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여자를 건드리기 시작하고, 일이 꼬이면서 리나를 죽이려고 한다.​그런데 리나는 죽지 않는다.​산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리나는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들을 하나씩 상대한다. 결국 남자 셋은 차례로 저세상으로 간다. 이야기는 이게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단순하다.​문제는 이 간단한 이야기를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시작부터 리나와 막스의 정사 장면을 꽤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이 두 배우가 영화 [서큐버스]에도 함께 나온다는 점이다. 그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거의 벗다시피 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포보다 다른 쪽에 신경을 쓰게 만들더니, 여기서도 시작부터 그러하다.​두 남자가 별장에 들어오고 리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야릇해진다. 그리고 결국 강제로 겁탈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산속에서 살아남은 리나가 남자 셋을 하나씩 상대하고, 영화는 그 과정에서 고어한 장면들을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저예산 영화에다 내용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것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게 리나를 응원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또 이런 영화인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남자들이 빨리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보게 된다.​스릴러나 공포 액션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무래도 재미의 한계가 생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오래 붙잡고 가거나, 수중 촬영처럼 배우들이 몸을 아끼지 않은 장면을 집어넣었다. 제한된 공간과 네 명의 배우만으로 영화를 끌고 가려는 감독의 고생도 어느 정도 느껴진다.​감독의 첫 장편영화라고 한다. 별장과 산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사냥’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 영화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렇고, 그냥 보고 있으면 한 여자가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들을 차례로 잡아 죽이는 이야기다.​아무튼 여자는 자나 깨나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남자도 남자를 조심하고.​요즘은 정말 좋은 사람 하나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악독한 인간들도 처음부터 얼굴에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라고 쓰고 다니지는 않는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부부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결국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아주 뻔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렵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2/pimg_63926542980094877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50511</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다운타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8717</link><pubDate>Thu, 01 Oct 2026 1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8717</guid><description><![CDATA[<br>이런 얼굴로 살아가는 나의 고통을 의사인 네가 알 수 없다. 그러니 위험하게 보이든 말든 성형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런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설 바엔 죽어버리는 게 더 나아요.​이 시리즈는 지금의 사회를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성형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또 손을 대게 되고, 그러다 위험한 수술을 감수하는 사람도 생긴다.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실제로 환자가 죽는 경우도 있다.​이 시리즈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가 어떤 일에 휘말려 유명 성형외과로 옮기면서 시작된다.​얼굴이나 가슴을 수술하는 장면이 꽤 여과 없이 나온다. 수술 전과 수술 후의 얼굴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수술 자체보다 그 수술을 받기 전과 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실제 주인공인 마츠오카 마유나 나카 리아사보다 매회 등장하는 성형 환자 역할의 배우들에게 자꾸 눈이 간다. 이 시리즈는 수술 후 수술 전보다 훨씬 예뻐진 얼굴이 나오지만 교묘하게 수술한 얼굴이 대체로 전부 엇비슷하게 보인다. 할리우드 성형한 배우들이 비슷한 얼굴처럼. ​주인공은 한때 천재 응급 외과 의사였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겪고 유명 성형외과로 옮긴 뒤에는 그 천재적인 외과 의사라는 설정이 별로 쓸모가 없다. 환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태인데 계속 성형을 해달라고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수술해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단순히 허영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무리한 수술로 고통받는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살아가는 고통이 더 큰 환자를 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1화에서 인기 인플루언서가 몸이 아파 쓰러져 응급환자로 실려 온다. 가슴의 실리콘 보형물을 빼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앞두고 절대로 가슴 보형물을 빼지 말아 달라고 한다.​결국 보형물을 빼고 수술해서 목숨은 건진다. 그런데 몸이 회복된 뒤 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납작해진 가슴으로 팬들 앞에 설 수 없다는 이유였다.​이런 이야기를 보다 보면 성형이라는 게 단순히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본인이 보는 자기 얼굴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얼굴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을 수도 있고, 그 간격 때문에 실제로 삶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총 8화인데 나는 5화까지 봤다.​‘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성형외과 원장으로 나카 리이사가 나온다.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수술을 요구하는 환자들이 계속 찾아온다. 그런데 이 원장은 환자에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병원에 있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그러다 회장인 아버지와 조금씩 균열이 생기면서 원장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마츠오카 마유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4화까지는 정말 휘몰아친다. 환자가 계속 나오고, 수술이 이어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다음 화를 바로 누르게 된다. 그런데 5화부터는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수술 장면에서 오는 시각적인 재미는 조금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성형외과라는 공간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이었는데, 이제는 인물들 사이의 이야기가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그리고 이 시리즈에서도 주인공은 일본에 있는 한국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파전이나 잡채 같은 걸 파는 곳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국 술집이 나오는 걸 보면 괜히 눈이 간다.​또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꽤 자주 나온다. 일본은 아직 이런 식으로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있나 보다. 술 마시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기무타쿠의 딸도 갑질하는 환자로 등장한다.​일본 드라마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적어도 이 시리즈는 성형이라는 소재 하나만 가지고도 꽤 세게 밀어붙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1/pimg_63926454630466634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8717</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괴물: 리지 보든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5579</link><pubDate>Wed, 30 Sep 2026 1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5579</guid><description><![CDATA[리지 보든 이야기는 처음부터 사람을 꽤 당황하게 만든다. 앞서 봤던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처럼 잔인한데, 이번에는 그 잔인함이 조금 더 노골적이고 시원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자르고, 도끼로 찍는다. 1화 시작부터 허걱 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니 심장 단단히 붙잡고 보는 게 좋다.​리지 보든을 다룬 이야기는 이 괴물 시리즈에서 [다머 이야기], [메넨데스 이야기]를 지나 에드 게인으로 이어지는 계보 안에 놓여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한 [리지]가 있다. 여기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리지 보든이 아니라 브리짓이라는 인물로 나온다. 리지의 곁에서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결국 리지가 도끼를 들 수 있게 만드는 인물이다.​이번 시리즈 속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중심에는 당연히 리지 보든이 있고, 브리짓이 들려주는 마녀 이야기가 하나 끼어든다. 그리고 100년 뒤 리지 보든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여성 살인마 에일린의 이야기가 또 하나 들어간다. 에일린을 연기한 사라 폴슨은 정말 신들린 것처럼 연기한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인물 자체가 좀 불안하다. 눈빛이며 표정이며,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느낌을 제대로 만들어낸다.​리지의 집안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새엄마는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있고 삼촌 역시 마찬가지다. 새엄마는 리지를 두 살 때부터 키웠지만, 끊임없이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아버지라고 다르지도 않다. 리지에게는 집 안에 자기 편이 없다.​그나마 리지가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은 마당 한쪽의 비둘기 사육장이다. 꽃과 자연을 좋아하는 리지에게 비둘기는 거의 유일한 친구다. ​아버지는 하녀들의 몸을 탐하기 바쁘고, 새엄마는 남편에게서 돈을 받아내 이혼하고 떠날 생각만 한다. 하녀가 만든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얼굴에 뜨거운 음식을 끼얹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이 집안 사람들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단번에 드러난다. 그런 집에 새로운 가정부 브리짓이 들어온다.​그리고 리지와 브리짓이 만난다.​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비둘기다. 시끄럽게 구구거린다는 이유로 새엄마가 비둘기의 목을 따버리는 장면을 리지가 보게 된다. 리지에게 비둘기는 그냥 새가 아니다.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붙일 수 있었던 존재다. 그걸 눈앞에서 잃는 순간, 안에 눌러놓았던 무언가가 터져버린다.​그래서 이 작품의 살인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계속 참고, 무시당하고, 짓밟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리는 과정이 꽤 노골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리지가 왜 그렇게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상당히 직접적이다.​리지 보든을 연기한 엘라 비티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어딘가 어수룩하고 못나 보이는 얼굴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이 달라진다. 순진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섬뜩한 표정이 나오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돌아온다. 배우가 얼굴 하나로 리지의 변화를 꽤 잘 보여준다. 부모의 외모를 보면 도대체 외모 유전자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인데, 리지 보든이라는 역할에는 그 얼굴이 오히려 딱 맞았다.​[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에서 에드 게인을 연기했던 찰리 해냄은 여기서는 리지의 아버지로 나온다. 이 인간도 만만치 않다. 딸에게는 아버지답지 않고, 하녀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나들며 행동한다. 그러다 결국 딸에게 도끼를 맞는다.​보고 있으면 이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무엇보다 이 시리즈는 살인을 질질 끌지 않는다. 도끼가 나오면 찍고, 잘라야 하면 자른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직선적이다. 마지막에 법정에서 리지가 무죄를 받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실제 사건을 알고 보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역사적으로 유명한 리지 보든 사건을 가져와 세 편의 이야기를 엮어놓은 방식도 괜찮고,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좋다. 특히 리지의 변화와 에일린의 광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편하다.​앞서 본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가 기괴함 쪽에 가까웠다면, 이번 리지 보든 이야기는 억눌린 사람이 끝내 도끼를 드는 순간까지 끌고 가는 재미가 있다.​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1화 시작하자마자 한 방 나오니 심장 딱 부여잡고 보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30/pimg_63926369549099925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5579</link></image></item><item><author>교관</author><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title>가능한 사랑에서 말하는 불평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3127</link><pubDate>Tue, 29 Sep 2026 12: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3127</guid><description><![CDATA[‘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이 해고 노동자, 해직 부부를 인터뷰하려든다. 금수저가 가난한 부부를 인터뷰하려고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공감하며, 그들의 곁에 바짝 붙어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건 그저 메소드 일 뿐이야. ​격차가 나는 사람은 이미 날 때부터 각자 그렇게 태어난다. 그 격차는 생각보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최광희 평론가가 이 영화를 이창동 감독의 전작 ‘버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버닝’을 정말 좋아해서 서른 번쯤 봤다. 머리가 나빠서 지금은 대사 하나하나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화의 구석진 화면 하나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버닝’은 불평등에 관한 영화다. 유전자라는 건 대를 타고 내려온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고, 종수는 그걸 온몸으로 보여준다.​‘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 부부는 부자다. 조여정은 방송 일을 하지만 남편인 조인성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부자의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 늘 어디선가 전화가 오고 뭔가를 확인한다.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돈은 많다.​‘파묘’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버닝’의 벤도 그렇다. 딱히 뭘 하는지는 모르는데 세계 여행을 다니고, 헬스장에 가고, 포르셰를 몰고 다닌다. 벤에게는 그런 유전자가 있다.​부자는 격차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면서도 때로는 그들 곁에 간다. 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얼마나 가진 사람인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지. ​버닝의 원작자 하루키의 소설도 그렇다. 하루키의 대부분 소설에도 유전자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것은 어떤 노력을 한들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결과가 그렇다는 건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다. ​불평등에 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부자인 연예인이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면 그게 정말 와닿을까.​연기자니까 배역의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연구하지 않은 연기는 금방 표가 난다. 가난이라는 건 옷 한 벌 갈아입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돈이 많은 연예인들도 일반인들과 섞이는 게 싫을지 모른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연예인들과 어울리고 싶을 것이다. 예능이나 뉴스, 기사에 보면 유난히 서로 친한 톱클래스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불평등이라는 걸 제대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개는 결국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감독들은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몇 년씩 준비한다. 칠순이 다 되어가는 이창동 감독도 이번 ‘가능한 사랑’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고 한다.​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예인보다 더 불편한 부류가 있다.​정치인이다.​몇십억, 몇백억씩 가진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안다는 듯 정치를 한다. 그걸 보면 가끔 어이가 없다.​일반인과 가장 섞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일반인들 틈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자기 권력과 자산을 이야기한다. 자기 자랑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식 자랑까지 한다.​몹시 이상한 일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일반인들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정말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남이 하면 잘못, 자신이 하면 올바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정말 불평등하다. ​불평등이라는 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인지, 그런 모순을 제대로 들춰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라도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29/pimg_63926280156150470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6999160/1754312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