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다. 지독한 공허. 트래비스는 전쟁 참전 후 공허가 몸속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와 허무를 채우고 불면을 쌓아 놓는다. 이 공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고 깊어져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한다.

영화는 트래비스가 잠을 못 자는 걸 보여주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불면으로 트래비스가 점점 변해가는 걸 보여준다.

트래비스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깊고 큰 공허는 저기 보이는 밤의 쓰레기 인간들도 있을 텐데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들까.

공허는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용기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을 불러오기도 하고, 망상을, 객기를 그리고 광기와 정의를 불러온다.

공허는 외로움을 불러온다. 상실과 결락이 동시에 비가 되어 택시 차창에 부딪힌다. 그럴 때 흐르는 재즈만이 트래비스의 씁쓸한 친구가 되어 준다.

공허가 불러온 사회에 대한 울분은 아이리스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으로 집중된다. 트래비스는 이제 공허가 전해주는 이 광기가 혈관을 타고 도는 게 느껴진다. 아이리스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가온 베시를 무시하는 트래비스를 보면서 쓸쓸하고 고독한 소외된 자들을 떠올렸다. 76년작이고 트래비스는 영화 속에서 26살이다.

열패와 낙오 그리고 외로움과 세상 그 너머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과, 생각과 현실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트래비스가 이해된다면 내 처지가 트래비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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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이 굴러가서 부딪히는 소리는 경쾌했고 짜릿했다. 초크를 문지를 때의 그 기막힌 찰나의 느낌이 좋았고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다. 한창 당구에 심취해 있을 때, 그래봐야 50에서 80으로 넘어갈 때였다. 자려고 누우면 네모난 천장은 어김없이 꿈틀거리며 당구대로 보였고 그 안으로 당구공이 굴러가는 모습이 아른아른거렸다. 당구는 그런 마력으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당구장에 여자는 거의 없었다. 가끔 커피 배달을 오는 나 양이 보였고, 당구를 잘 치는 아저씨가 큐대를 잡으면 그걸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당구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언제나 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당구에서 패하면 게임비를 계산해야 한다. 거기에 짜장면을 먹기라도 하면 돈이 왕창 걸려 있기 때문에 정신을 놓을 수만은 없다. 짜장면은 왜 당구장에서 서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지 미스터리다.


당구만큼 재미있는 게임이 있을까. 당구는 가만 서서 그저 큐대를 밀어칠, 뿐인 것 같지만 두 시간 정도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구는 그랬다. 아주 묘한 게임이었다. 자주 가는 당구장에는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주 보니 자주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주 오는 아저씨들과 친해져서 당구의 가르침을 한 수 받기도 했다. 그런 날은 우쭐해진다.


당구공에 힘을 얼마나 주는 가에 따라, 당구공의 포인트 어느 지점을 맞히는가에 따라, 공은 180도 다르게 움직였다. 당구는 그야말로 또 다른 세계였다.


친구는 우리가 자주 가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먹고 자고 했어. 작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 당구장에서 일을 했는데 친구는 사장님에게 허락을 받았다며 당구장 영업이 끝나면 놀러 와서 밤새도록 당구를 쳐도 된다고 했다.


당구장은 가장 사람들이 북적이는 다운타운의 중심가에 있었다. 그래서 당구장은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들어와서 문을 닫을 때까지 북적북적거렸다. 당구장에는 매니저가 있었다. 마치 북한 공작원 같은 표정으로 일별 하듯 우리를 보는 사람이었다. 살도 찌지 않고 웃는 모습이 없고 당구장에 일 대 일 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다 이겼다.


[저 매니저는 당구 몇 치는데?]

[400]


친구가 말해줬다. 개인 큐대가 있고 절대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골초라서 하루에 담배 한 갑은 넘어 피웠다. 당구장 사장님도 매니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니저가 사장님의 친척이나 아내의 동생이나, 뭐 그런 사이인 줄 알았지만 친구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고 그저 직원이라고 했다. 어떤 계약으로 묶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니저는 매일 당구장으로 출근을 했고 손님들이 오면 당구 상대를 해주고 저녁 8시가 되면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갔다. 창문으로 보면 그 뒷모습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었다. 키도 커서 마른 사람이 느리게 걷는다는 게 기묘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장님은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할아버지였다.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친구들이 많이 당구장에 갔다. 친구는 사장님이 없으면 대충 시간을 멋대로 계산해서 우리 게임비를 줄여서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매니저 역시 무서운 북한공작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우리를 모른 척해주었다.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여름이라 밤에 문을 닫고 당구를 칠 때에는 에어컨을 틀 수 없어서 팬티만 입고 큐대를 들었다. 그저 신났다. 뭐 50, 80 하던 때이니까 신날 수밖에 없었다. 오시, 히끼, 우라마시, 오마시 같은 용어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큐대를 들고 날리기 전 까지는 머릿속에서 이렇게 공이 굴러가서 딱 맞을 것 같은데 막상 휘두르고 나면 생각과는 다르게 공이 굴러갔다. 그 몇 번의 휘두름으로 생각과 같게 공이 굴러가서 맞는 그 타격감은 엄청났다.


그렇게 공을 치다가 새벽 2시 정도가 되면 당구장 바로 밑 포장마차에 내려가서 소주를 한 잔씩 했다. 여름인데 포장마차 안은 그렇게 덥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앉아서 오징어나 문어, 곰장어 구이에 소주를 한 잔씩 하고, 선풍기가 덜덜 돌아갔지만 시원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로 낮에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 차고 밤이 되면 포장마차가 일렬로 죽 늘어선다. 그래서 깨끗할 날이 없다. 새벽 4시가 되면 청소부 아저씨들이 열심히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곧바로 거리는 쓰레기로 쌓이고 또 새벽에 싹 깨끗해지기를 반복한다. 누구 하나 그런 반복에 신경을 쓴다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일상은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당구를 치다가 내려와서 자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재미있는 모습도 많이 본다. 가장 재미있는 건 스님 둘이 앉아서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아무 거리낌이 없었는데 스님들이 술에 취해서 곰장어를 더 주문해서 먹으니까 친구가 어? 스님들이 고기를 먹네? 했다. 그러자 스님들 중 한 명이 합장을 하고 우리를 봤고 친구도 합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친구 녀석 대학교를 여기서 먼 군산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느닷없이 배를 타더니, 그러더니 해외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배를 타고 나가버렸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나는 친구가 일하는 당구장이 문을 닫고 어두워지면 놀러 가서 밤새도록 당구를 쳤다. 청소도 같이 해 주었다. 무엇보다 당구를 치면서 꼭 담배를 피우고 담배를 당구대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다. 담배가 타 들어가면서 당구대에 표시를 남기기도 하는데 그걸 닦아서 없애야 했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당구대였다. 녹색천을 물에 적셔 박박 닦았다. 물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화장실에서 해야 하는 것 이외의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그걸 치워야 한다. 누군가는.


그날도 사장님이 집으로 들어가고 당구장 불은 꺼지고 친구는 나를 불렀고 나는 당구장으로 출동을 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아직 더운 날 때문에 웃통은 벗고 맥주를 홀짝이며 친구는 당구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멋지게 맛세이를 찍었다. 80으로 올린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놈이. 그날따라 친구 한 명이 더 왔다. 맥주캔은 쌓였고 대환장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으로 치달아 갔다.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지. 새벽이라는 시간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누리는 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속에 우리가 속했다. 매일 이렇게 멋진 날들이 이어지다니.


새벽 시간은 3시로 향해가고 있었다. 모두가 알딸딸 취했고 바닥에는 맥주캔과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고 엉망진창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들어왔다. 우리는 몸에 얼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장님은 이렇게 쓱 한 번 훑어보더니 카운터에서 뭔가를 꺼내서 이런저런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마치 나왔던 곳으로 시간을 되돌려 그대로 돌아가는 토끼처럼 말이다.


친구와 나는 큰일이 났다고 감지했다. 친구는 분명 당구장을 잘릴 것이고 우리는 그동안 벌여 놓은 것들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하필 새벽 3시에 올 것이 뭐람. 4시에 왔다면, 아니 5시에 왔다면 바로 청소라도 하고 사장님을 맞을 텐데. 우리는 일단 누가 보지도 않는데 청소부터 했다. 순진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순진한 녀석들인가. 그냥 계속 당구나 치고 놀아도 되었을 것을. 우리는 새벽 3시부터 열심히 청소를 하고 또 청소를 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청소를 했다. 근데 이놈의 청소하다 보니 잠이 왔다.


나는 밀대 자루를 들고 소파에 앉아서 잠이 들었고 친구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고 또 다른 녀석도 어딘가에서 자미 들었다. 하필 그 어딘가가 화장실이었다. 그 녀석은 술이 취하면 온갖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 그건 유전일까, 아니면 스타일일까. 스타일은 필시 아닐 것이다. 습관, 무의식의 습관. 어린 시절에 어떤 무엇에 의해 화장실에 대해서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녀석 군대에서 휴가 때 나와서 같이 술을 마시고 보니 사라졌는데 술집의 화장실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쏘우에서 학대당하다가 죽음으로 간 그런 모습처럼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아아악 군인이 죽었어요, 해서 달려가니 그 녀석이었다. 몸에서 찌든 소변냄새가 계속 났다. 젠장 부축해서 왔다. 다른 녀석들도 있었는데 집이 가깝다는 이유였다. 그 녀석과 나는 집이 버스로 40분은 가야 하는 곳인데.


끝나지 않는 교통체증은 없듯이 밤이 지나 아침은 오고 사장님도 출근을 하고 매니저도 출근을 했다. 아침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 10시를 지났고 점심으로 달려가는데도 사장님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당구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거기 서!]라고 사장님이 분명하고도 똑 부러지는(아마도 노인네 치고는 그렇게 카랑카랑하게 말을 하다니) 말로 나에게 멈춰라고 했다. 사장님은 화장실에서 잠든 녀석은 집으로 가라고 했다. 왜 하필 나야? 나는 너무나 겁이 났다. 집에 알리려고 그러나. 친구와 나는 세상의 슬픔을 전부 짊어진 것처럼 오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사장님은 우리를 불러 밥집에서 정식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 먹으라고 했다. 이게 마지막 만찬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배고프니까 열심히 야무지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사장님의 면담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60초. 사장님은 나에게도 일을 하기를 권했다. 밤새도록 몇 날며칠이나 당구장에서 논 것도 다 알고 있으니 도망칠 생각 마라. 라며 낮에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낮에도 당구장에 와서 친구의 아르바이트를 도왔다. 친구가 잠이 온다며 방으로 들어가 잠들면 내가 대신 당구장 일을 했는데 사장님이 눈여겨본 모양이다. 나의 능력 중 하나라면 나도 당구가 80인데 나보다 잘 치는 상대방을 만나면 나는 강했다. 그리고 대부분 나보다 강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당구를 쳤다. 나의 어떤 면모가 사장님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당당하게 낮부터 당구장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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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한데 아름답고, 딱해 보이는데 자유로워 보인다. 상상 속의 동물, 인터넷 세계에서나 가능한 개닭, 개돼지, 개오리를 탄생시킨 가여운 것들이여.

프랑켄슈타인의 여성 버전. 이 영화의 장르를 말하라면 엠마 스톤이라 하겠다. 엠마 스톤이 엠마 스톤한 영화. 벨라가 벨라가 되는 이야기.

만삭의 몸으로 죽어버린 벨라는 벨라의 아이의 뇌를 벨라에게 이식시킴으로 다시 태어난 벨라가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 벨라식 사랑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며 우아하지 않고 추잡하고 드러내는 사랑이지만 벨라의 사랑에는 거짓은 없다.

벨라가 가여운 것일까 벨라를 둘러싼 사람들이 가여운 것들일까.

사랑을 찾아 그렇게 벨라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빠져드는 색감과 황홀한 미장센. 초현실의 감각으로 그려 놓은 미술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모험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벨라는 벨라만의 특별한 성장을 한다. 인간을 알아간다. 벨라는 벨라 자신을 알아간다. 흑백에서 서서히 컬러를 찾아간다.

벨라의 눈을 통해서 보는 세상을 우리도 같이 느낀다. 이상주의는 무너지기 쉽지만 현실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벨라는 알아간다. 그게 세상이다. 종교의 거짓에 넘어가지 마라. 세상은 치욕과 공포, 슬픔이 있는 곳이다.

유아기처럼 의성어 의태어나 뱉어내던 벨라가 후반에는 성장하여 대사가 몹시 철학적이 된다. 몹시 야하며 아주 잔인한 장면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도발로 다가온 ‘가여운 것들’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랍스터를 볼 때보다 더 홀딱 빠져서 보게 된 영화.

근래에 인간을 이토록 잘 드러낸 영화가 있었나 할 정도로 재미있게 본 ‘가여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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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하고픈데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면 이상하지만 질투와 미움, 원망이 먼저 든다. 그러다 보면 미묘한 감정이 서로 어긋나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고 서로 자기 힘든 것을 알아달라고 다투다 격하게 된다.

왜 다른 사람하고 있을 때는 신나고 즐거우면서 어째서 나와 있을 땐 늘 힘들어 보이는지. 그런 모습조차 너무 싫어. 그게 네가 너무 좋아서 너무 싫은 거야. 조금만 좋아하면 되는데 너무 좋아하니까 다른 아이와 있을 때 더 즐거우면 나는 짜증이 난단 말이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너를 향해 있는데 너는 왜 다른 사람과 있을 때 그렇게 행복해 보이냐고.

세미에게 하연은 친구 그 이상의 관계이자 설명이 불가능한 관계다. 아니 서로에게 그랬다. 여고생들은 친구가 세상에서 나보다 더 지켜주고픈 존재니까. 그런 친구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고 돌아오지 못했다. 나의 모든 날들이 오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뿌연 봄날의 솜사탕 같은 햇살은 눈으로는 잘 보이는데 만지려고 하면 만질 수 없는 것처럼 친구는 그런 햇살이 되었다. 너무 부드러워 닿으면 부서지는.

한 발 떨어져 생각하면 너무 아무 일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그 티끌 같은 일에 안간힘을 쓰고 덤비고 달려들고 울고불고했을까. 꿈까지 같이 꿀 수 있는 나의 사랑 나의 친구. 어쩌다가 그런 친구에게 나만 알아달라고 그랬던 걸까.

누군가는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도 흉터로 남아 있는 거지.

우리가 같이 놀던 너의 방, 우리 아지트 카페, 동네 놀이터 이 모든 게 그대로인데 네가 없으니 그저 부드러운 카스텔라 같아서 건드리면 그대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질 것 같아.

하나와 엘리스가 떠오르는 영상미, 사실은 은유와 메타포로 곳곳에 숨겨 놨고, 연기도 잘 하지만 감독으로도 손색이 없는 조현철 감독의 작품으로 [다음 소희]의 김시은과 박혜수는 정말 여고생 같다. 찐따로 카메오 출연한 박정민은 정말 찐따 같았던, 보고 나면 눈앞이 영화 영상 같아 보이는 영화 ‘너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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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마녀 배달부 키키 누가 그렇게 깠어? ㅋㅋ 나는 재미있게 봤구만. 영화는 원작과는 내용이 좀 다르다. 각색을 해서 원작과 다른 재미가 있다. 원작은 이렇게 흘러가지만 영화는 저렇게 흘러간다. 감독도 원작을 그대로 따라 하면 끝이라는 걸 알기에 원작과는 다른 내용 전개다.

사람들은 빗자루 타고 하늘만 나는 마법을 할 줄 모르는 마녀인 키키를 우리와 다른, 저주를 퍼붓는 마녀로 몰이를 한다. 키키는 그렇지 않은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사람들은 전부 키키를 의심하고 멀리하고 따돌리려고 한다.

인간 사회가 그렇다는 걸 키키는 뼈저리게 느낀다. 키키가 배달한 모든 물건이 저주에 걸렸다며 빵집 앞에 다시 돌아온다. 그때 키키는 상처를 크게 받아 마법이 사라진다. 빗자루도 뽀사지고. 어렵게 배달을 했지만 배달비를 건네주는 게 아니라 땅바닥에 내팽개치듯 버리는 것에 키키는 자존감 상실.

하필 마법이 없을 때 톰보가 비행 자전거로 하늘을 나는데 바람이 역풍으로 불어서 위험하다. 키키는 날아갈 수 없어서 추락한 곳으로 달려간다. 톰보는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을 때 키키는 엄마의 마법 약을 발라주고 가버린다.

마법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키키는 어떻게 될까. 영화에는 우리가 잘 아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야자와 리에, 요시다 요, 오노 마치코 등.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 성장하는 이야기다. 애착 인형과 대화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애착 인형을 두고 친구와 사귀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을 한다.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혹독할지도 모른다.

키키 역시 지지와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되지만 대신 소중한 친구를 얻는다. 대화 상대가 지지에서 친구로 바뀐다. 그리고 사랑을 알아간다. 우리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러나 지금이 끝은 아니기에 보이지 않는 앞을 더 달려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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