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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걷고 있었다. 차들은 끊임없이 지나갔고 바람은 뿌연 미세먼지를 잔뜩 실어 날랐다. 도로공사 때문에 도로에서 떨어져 아슬아슬한 길을 걸었다. 책을 보며 걷다가 책을 덮어야 했다. 도로의 사정이 신발 바닥을 통해 바로 머리에 전달되는 그런 길이었다. 도로에 신경을 쓰며 걷고 있는데 한 로컬 카페에서 모과이의 ‘아이엠 짐 모리슨 아이엠 데드’가 흘러나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 카페로 쓱 들어갔다.


모과이는 연주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록밴드다.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버닝’으로 그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한없이 숭숭 구멍을 내버린다. 그건 어쩐지 영화 ‘버닝’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에는 하루키와 윌리엄 포크너가 있었고 테이크와 테이크 사이는 온통 메타포가 구멍을 매웠고 은유로 이어져 있었다.


카페는 천장이 낮고 작은 공간이었다. 해체주의나 플럭서스가 어울릴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틀에서 벗어난 실내장식과 암울하지만 희망이 섞인 냄새가 미미하게 났다. 무엇보다 앉아 있으니 모과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계속 나왔다. 마침 책을 들고 있어서 책이나 좀 보면서 앉아 있다가 갈 요량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도 생명을 갓 부여받은 것처럼 신선한 맛이 났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새로운 식품의 종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인류에게 생기는 바이러스에 관한 상관관계를 적어 놓은 책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지만 내가 읽기에는 꽤 어려운 책이었다. 소설만 줄창 읽는 나에게 읽어보라며 누군가 건넸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책을 빌려준 건지 모를 일이다.


사실 카페에서 질 좋은 의자에 엉덩이를 파묻고 앉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어 본지는 몇 번 되지 않았다. 늘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책을 읽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또는 계단에 잠시 앉아서 땀을 식히면서 몇 줄의 글을 읽었고 일하는 가운데 틈이 보이면 책장을 몇 페이지씩 넘길 뿐이었다. 요즘은 그 망할 놈의 아이패드 때문에 책장을 더럽히지 않고도 활자를 볼 수 있다.


지금은 책도, 글도 누워서 읽고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책상과 불빛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었던 시대라고 해봐야 고작 15년 정도 전인데 마치 백악기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제 정전이 도래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그놈의 아이패드 때문에.


대부분이 향기로운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에 반해 나는 편안 것에 익숙지 않았다. 오랜만에 비어있는 시간이 자산처럼 불어나서 카페로 들어와 책을 펼쳤지만 생각만큼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래된 습관 내지는 하나의 패턴에 길들여진 탓이다. 책을 펼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공사 현장에 시선을 두고 모과이의 음악에 빠져들어 생각은 고랑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밑으로 밑으로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조금 웃긴 얘기지만 책이 가장 잘 읽힐 때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보호자가 할 것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를 잠깐 하는 것이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에는 고도의 숙달자 들만이 그곳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어설픈 보호자의 손길은 오히려 독이 된다.


한 치수 작은 운동화를 신고 한 시간 동안 달린 것 같은 불편함 때문에 잠은 오지 않아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것, 그것뿐이다. 자정이 넘어가면 병원의 병실은 대부분 숨을 죽이고 밤의 D 세계에 녹아든다.


병원 복도 끝은 죽어버린 시간이 활동을 한다. 실체나 감각이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곧 나는 히틀러를 피해 크렘린의 미궁 속으로 기어 들어간 스탈린을 생각한다. 스탈린을 생각할수록 그는 뒷짐을 지고 수행원을 대동하여 더 깊은 궁 속으로 가버리고 만다.


나는 크렘린에서 헤매다가 사립탐정인 레미를 만난다. 레미는 나에게 말했다.


여긴 알파빌이야, 감정을 가지는 일은 용납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은 체포되어 공개 처형되는 도시지. 알파빌에서는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전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말에 레미는 또 말했다.


재미있는 건 말이야, 알파빌에서도 섹스는 존재한다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너에게서 알파빌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이 되었고 복도에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모과이의 ‘아이엠 짐 모리슨 아이엠 데드’도 끝이 났다. 나는 책을 덮고 카페를 나왔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모과이의 아이엠 짐 모리슨 아이엠 데드 https://youtu.be/5EfuLuN0V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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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위기 어떡해



https://youtu.be/lj4_AqyxGuE



시가렛의 발음을 시가레트 라고 하니 메루치 볶음이 생각난다. 내 외할머니의 메루치 볶음이 요즘의 멸치 볶음보다 훨씬 맛있었는데. 시가레트 애프터 섹스의 ‘스윗‘은 정말 스위트 한 노래다. 우리나라로 치면 밴드 Mot의 ‘날개’가 술 취해서 듣다 보면 너무 소 스위트하게 들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시가레트 애프터 섹스의 스윗의 뮤직비디오를 영화 ‘어바웃 타임’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타임 루프 영화다. 그간 타임 루프 영화는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수단은 과학적인 접근에 의해 엄청나고 고도의 기술로 그것이 마치 가능한 것처럼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타임 루프 영화에서 감독들은 과거나 미래로 가는 그 과정을 보이기 위해서 시간을 엄청 투자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백 투 더 퓨처’가 그랬다. 수소라든가 전기를 끌어올 번개 라든가. 거의 모든 타임 루프 영화들이 그랬다.


그런데, 아뿔싸 ‘어바웃 타임’에서 장롱 속에 들어가 눈 한 번 질끈 감으니 과거로 가버렸다. 과학? 기계? 설비? 이 딴 게 뭐가 필요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마법이야, 마법이 필요하지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접근은 별로야 흥! 해버린 거였다.


여주가 레이첼 맥아담스다.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가 있지만 활짝 웃는 모습이 이렇게 예쁜 배우는 잘 없다. 레이첼 맥아담스 하니까 예전 트윗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 영화방 같은 곳에서 영미(영화에 미친)들이 모여 열심히 영화 ‘노트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누군가 들어와서 같이 끼게 되었는데 그녀는 진짜 노트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영화 노트북이 아니라 자판 달린 진짜 노트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묘하게 영화 이야기에 잘도 끼어서 이야기를 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자판 달린 자신의 노트북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데도 무거운 엉덩이를 옮기기 싫어하는 고모처럼 눌러앉아 계속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도 딱히 여긴 이런이런 방이니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판 달린 자신의 노트북 얘기는 그것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아주 밝고 명랑했다. 140자 활자를 통해 그것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 그러면서 당시 유행하는 트윗 언어를 따라 하면서 재미있어했다. 요컨대 현재의 얼죽아 같은 말들. 그렇게 영화 속 레이첼 맥아담스처럼 깨 발랄하던 그녀는 영미 방에서 눈팅만 하던 한 직업군인과 인사를 하더니 그다음 날 바로 만나서 사진을 공유하고 2주일인가 지나서 결혼을 했다. 짝짝짝. 결혼사진을 공유하면서도 얼죽아 같은 유행하는 말들로 태그를 걸어 놓았다. 인생 뭐 있나, 마법이지.


‘어바웃 타임’은 일본 영화로 친다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느낌일까. 일본도 그간 수많은 시간의 어긋남, 시간의 후퇴, 타임리프, 시간의 격차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영화 역시 다른 타임루프 일본 영화들처럼 시간의 뻔한 클리셰의 이야기인데 멍하게 보다 보면, 생각 없이 보다 보면 그만 빠져들게 된다.


인간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하고 사랑을 한다. 우리는 하나의 선으로 그 선은 일직선이다. 서로 교차하고 싶어 하지만 선은 서로 일직선으로 죽 이어진다. 누군가 노력으로 선을 조금 기울인다면 우리는 언젠가 서로 만나는 날이 온다. 그 순간은 비록 짧고 찰나지만 그 순간으로 우리는 영원을 기억하기도 한다. 사랑은 시공을 초월한다. 아주 기묘하고 기이한 감정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맙소사, 이게 무슨,라고 시작하지만 보고 나면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눈물샘이 뚫려 버릴 것 같은 영화다. 환상적 환장과 감동적인 격동이 동시 존재하는 영화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주인공 고마츠 나나가 스다 마사키 녀석과 결혼을 했다. 권지용이 광팬이며 이상형이라더니 정말 결혼은 이상형과는 무관하지, 싶기도 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스타들이 결혼을 하면 그래 어디까지, 같은 시선이 있어서 여봐란듯이 잘 살기를.


메루치 볶음이 먹고픈 오늘 스윗한 시가레트 애프터 섹스로 시작해서 어바웃 타임으로, 레이텔 맥아담스와 노트북을 거쳐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나는 고마츠 나나로 마무리를 했다. 모두가 스윗하며 사랑스럽다. 분명 속을 벌리면 치열하고 울고 짜고 하겠지만 우리는 스웟한 사랑만 기억하자. 인생 뭐 있나, 마법인데.


몽상가들로 뮤비를 만든 affection https://youtu.be/IJzHSYjR0dE 

에바 그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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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1-22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참 잘 쓰십니다.
근데 2주만에 결혼이라. 한달만에 결혼은 들어 봤지만.
요즘도 잘 살겠죠?

교관 2021-11-23 11:33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ㅋㅋ 그때가 2012년 쯤인데, 지금은 아들딸 낳고 햄볶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날이 건조하고 쌀쌀하다. 조깅을 하고 오는 도중에 역전시장의 뒷골목으로 왔다. 자주 왔던 길인데 스산해지니 낯선 곳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칼국수집과 함바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가스가 새는지 가스 냄새가 났다. 칼국수집 주방에 딸린 작은 창으로 가스 냄새가 새 나왔다. 냄새는 알싸하고 쎄 한 것이 마치 액체 같았다. 그릇만 있다면 냄새나는 가스를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스의 냄새를 맡고 있으니 가스는 오래전 밤꽃 향기가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려 주었다. 사라졌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밤꽃 향기 가득한 곳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책 속의 활자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활자들을 손으로 읽었다. 나는 상처를 줬다. 아프지 않다고 했다. 단지 상처가 났다고 했다.


가스 냄새는 내게서 빼앗아 갔던 시간을 되돌려 주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 역시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상처를 받았다면 제대로 받았어야 했다. 나는 상처도 받고 아팠다. 그러지 못했기에 나의 내부에 어딘가가 손상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가스 냄새를 맡으며 30분을 서 있었다. 숨을 쉬면 입에서 가스 냄새가 났다.


조깅화를 들어서 보니 신발 바닥에 구멍이 나 있는 것도 몰랐다. 그 상태로 계속 조깅을 했던 모양이었다. 신발 밑창이 온통 붉은색이었는데 그것은 피였다. 구멍 난 곳으로 날카로운 돌이 들어와 발바닥이 찢어졌다. 피는 계속 흘렀는데 피가 죽죽 나오는 것을 보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발바닥은 어쩐 일인지 십자 모양으로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그곳을 벌리고 들어가면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수에게 해시시를 한 대 권하고 나란히 앉아 대화를 하면 아마도 예수는 자신의 힘든 것을 내게 쏟아 낼 것만 같았다.


손등을 핥았는데 달콤했다. 이런 달콤함은 난생처음 생크림을 맛본, 그런 달콤함이었다. 천삼백 원짜리 핸드크림을 잔뜩 발랐는데 그것을 나는 맛본 것이다. 먹고 죽지 않으면 식품으로 인정해준다는데 내가 이것을 식품으로 인정받는다면 이것은 식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핸드크림인데 달콤해서 핥아먹을 수 있는 크림은 정말 획기적인 크림이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머리가 아픈데 훼스탈밖에 없어서 훼스탈 다섯 알을 먹었다. 잠을 자고 싶다. 10살 때 내가 동화 부였을 때 그때 동화부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면 책상을 물리고 침낭을 준비해와 그 속에서 낮잠을 자게 해 주었다. 마치 엄마의 양수 속에 들어가 있는 그 느낌.


그리고 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그대로 퍽하며 들고 싶다. 망치로 한 번에 드는 잠. 제대로 드는 수면. 정말 깜깜한 잠을 자고 싶다. 하얀 잠이 아닌.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왕뚜껑에 두부를 올려 후루룩 먹고 싶다. 그렇게 먹으면 컵라면인데 라멘 같은 맛이 난다. 그 별거 아닌 컵라면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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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어떤 것 같아요?


일행은 내가 먼저 먹기를 바라고 맛을 자꾸 물었다. 우리는 마라탕이 처음이었다. 마라탕을 먹을 계획도 없었다. 이른 시간에 맥주를 한 잔 마시러 바닷가를 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바닷가다.


코로나 이전에는 퍼브가 여러 곳이어서 아무 곳이나 쓱 들어가서 맥주를 홀짝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스몰비어 집들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4시에서 5시로 흐르는 시간대. 맥주집을 찾다가 보이는 마라탕 집으로 우리는 그대로 들어갔다. 깔끔한 실내에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음향이었다.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안내받은 테이블에 앉았다. 자 다음. 그다음이 우리에겐 없었다.


일행이 일어나서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직원은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직원이라지만 같이 일하는 동업자 같았다. 일하는 사람은 총 4명으로 홀에 한 명, 주방(아주 깨끗하고 청결한 오픈 주방이었다)에 3명이 있었고 여성 한 명에 나머지가 남성이었다. 모두들 20대로 아주 젊고 무엇보다 몹시 친절했다. 일하는 모습이 활기차고 보기 좋았다. 바닷가에 왕왕 가는 국밥집 이모님들의 친절과는 또 달랐다. 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그릇에 들어갈 재료 이것저것을 담았다. 몇 번의 질문과 답이 오고 간 후 계산을 하고 조리가 될 동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조리가 되는 동안 명랑해 보이는 여고생들과 활발한 여고생들이 우르르 들어와 먹는 것을 보고 우리처럼 먹는 게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때요? 일행이 물었다.


결론은 맛있었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고수와 혀를 마비시키는 그 산초 같은 맛이 좋았다. 순식간에 마라탕 집이 꽉 찼다. 우리 빼고 전부 여고생들이었다. 그녀들은 이 바닷가에서 바다의 힘을 받고 씩씩하게 공부를 하며 작금의 코로나 시국을 이겨내고들 있었다.


이제 음악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밝고 맑은 여고생들의 소리가 마라탕 집을 꽉 채웠다. 우리만 둘이서 하나의 그릇을 놓고 먹고 있고 나머지는 전부 각자 한 그릇씩 놓고 먹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먹는 게 마라탕은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먹어야 취향대로 재료를 넣을 수 있다. 일행은 고수를 처음 먹어봤고 고수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행도 금세 마라탕의 맛에 빠졌다. 마라탕은 맛도 있지만 재미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귀찮은 음식을 싫어한다. 테이블에서 조리를 해야 하는 음식은 잘 먹으러 가지 않는다. 잡고 뜯거나,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그런 음식은 귀찮다. 그렇게 먹는 게 재미라는데 나는 싫다. 그런 재미 별로다. 주문을 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나오는 음식이 좋다.


그런데 마라탕은 그 두 가지를 다 갖추었다. 재미와 안 귀찮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넣고 싶은 재료를 담아서 주면 주방에서 조리를 해서 테이블에 놔준다. 귀찮지 않다.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여고생들을 보면 재미있어한다. 자신이 먹고픈 음식 재료를 고르는 재미가 있다. 여고생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좋다. 게다가 맛도 좋다.


맥주를 홀짝이며 건져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에 먹을 때는 채소를 더 많이 넣어야지, 이게 맛있네, 이거 나중에 좀 더 넣어야지, 양고기를 넣으면 어떤 맛일까, 마른 두부를 왕창 넣어서 먹어보자, 같은 말을 하게 된다. 가격도 이 정도에 만 사천 원 정도였다. 평일의 오후라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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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11-2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라탕의 ‘마‘는 마비나 마취의 마자로 입안이 마비될 정도로 얼얼하다는 의미이고 ‘라‘자는 맵다는 뜻이어서 ‘입안이 마비될 정도로 얼얼하고 매운 탕‘이라는 뜻이죠.
한국에 들어온 마라탕은 어느 정도 한국화가 되어서 ‘마‘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느낌인데 실제 사천성에서 파는 마라탕은 첫 숟갈에 입안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을수 있더군요.

교관 2021-11-22 11:47   좋아요 0 | URL
퇴색된 마라탕도 괜찮았습니다 ㅎㅎ. 여고생들이 저렇게 좋아한다면 적당한 게 좋아요. 홍어도 그렇고 ㅋㅋ
 



운동장에 앉아 있었다. 가을빛이 스며든 바람이 불어와서 얼굴을 건드렸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나무에 색을 칠하고 하늘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렇게 있으면 추울 텐데,라고 학교 수위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수위 아저씨를 보고 목례를 했다. 서쪽 숲에는 이미 눈이 내리고 있지,라고 수위 아저씨가 말했다. 다리를 모으도록 해, 그러면 덜 춥지. 라며 낙엽이 바람에 딸려 가듯 수위 아저씨가 학교 뒤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일요일의 학교는 고요했다. 종소리도 평소와 달랐다. 아이들의 움직이는 소리가 싹 소거된 학교는 학교 같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는 수위 아저씨가 없다. 누구일까.


발바닥이 가려웠다.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발바닥이 가려워서 욕실 바닥에 앉아서 발바닥을 긁었다. 좀 시원한가 싶더니 긁는 걸 멈추었더니 두 배로 가려웠다. 술만 마시면 이렇다. 특히 와인을 마시면 더 그렇다. 와인의 어떤 성분이 나의 세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대미지를 입힌다. 그 세포는 발바닥에 포진되어 있는 세포들로 방어막을 펼치느라 분주하다. 그러는 동안 나의 손은 열심히 긁어야 했다. 와인을 분명 한 병 정도 마신 것 같은데 술에 취했다. 와인은 요즘 흔히들 마시는 시고르 자브종이다.


그 정도에 이렇게 술에 취해 발바닥의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있다. 샤워를 하는 내내 발바닥이 가려웠다. 몸을 닦고 비틀거리며 소파에 앉으니 발바닥이 가려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는 시고르 자브종 와인을 마시지 않으리.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그동안 살면서 다짐을 몇 천 번이나 했을까. 가려움은 점점 증식했다. 가려워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처한 입장, 나와 관계된 일, 내 주위의 인간관계에 관한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데 가려움은 여지를 두지 않았다. 가려움은 뇌를 침투해서 두정엽, 측두엽, 전두엽 같은 것들이 해야 할 일을 몽땅 스톱시키는 것이다. 가려움이란 그런 것이다.


너무 가려워 손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책상으로 가서 자를 찾았다. 서랍을 여는 동안에도 발바닥이 가려워서 발가락을 오므렸다. 늘 첫 번째 서랍 안에 자가 있는데 거기에 없었다. 내 기억의 문제일까. 발바닥은 자로 긁어야 하는데 자가 없다. 할 수 없이 볼펜으로 발바닥을 긁었다. 그렇지만 자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좀 더 날카로운 무엇이 필요하다. 술이 올라온다. 술이 목구멍을 드래프트 한다. 곧 머리까지 올라올 것이다. 한 손은 발바닥을 긁고 있고 한 손은 다리를 잡고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없을 정도의 묘한 자세다.


인간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잘 대해줘야 맞는 것일까. 진정 그게 올바르게 생활한다고 믿게끔 보이는 행동일까. 모든 이들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은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될 수 있으면 인간관계를 축소하고 축소하여 협소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것일까. 한 이불에 같이 들어도 잠은 혼자서 잘 텐데. 인간관계란 그런 것일 텐데.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발바닥이 너무 가려웠다. 손에 차가운 무엇이 잡혔다. 잠이 드는 동안 술까지 더 취했다. 천장이 빙빙 돌 정도로 어지러운데도 발바닥은 가려웠다. 욕이 나오지만 지성인이라 욕은 삼켰다. 욕을 하고 싶은데 욕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이런 인간이 괴물이 된다.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내일이 오는 게 무서운 것이다. 크앙.


일단 손에 잡힌 차가운 무엇인가로 발바닥을 긁었다. 잠결이고 술이 취했지만 너무 시원했다. 그 시원함이 뇌를 습격했다. 머리가 마치 무더위에 지쳐있다가 은행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가려움이 순식간에 발바닥으로 줄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긁는 그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듯 시원하게 다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함이었다. 배가 고팠다.


학교 로열박스에 앉아 있었다. 다시 계절이 돌고 돌아, 기가 막힌 햇살과 그에 맞먹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여기에 왜 또 앉아 있는 것일까. 기시감이 드는 동시에 낯선 이곳은 내 학교일까. 나는 수위 아저씨를 기다렸다. 해가 조금 이동을 했다. 수위 아저씨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나는 아저씨가 낯이 익었다. 해는 등지고 있지 않았는데 수위 아저씨의 얼굴은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었다.


역시 쉬는 날 학교는 적요했다. 이런 적요는 나쁘지 않다. 세상에는 소음이 지배하고 있는데 쉬는 날 학교에는 비교적 적요가 고요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게 마음에 든다. 마치 파동 없는 호텔 풀 사이드에 나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다. 바람은 있지만 소리가 소거됐고 햇살은 따스했지만 깊이가 느슨했다.


서쪽 숲은 이미 한 겨울이네, 라며 수위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수위 아저씨를 봤다. 역시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쩐지 수위 아저씨에게 나는 신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마음 저 밑에서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수위 아저씨는 뒷짐을 지고 내가 보는 운동장의 한 곳을 바라보았다. 나도 시선을 아저씨가 두는 방향으로 옮겼다. 해가 또다시 조금 이동을 했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도 조금 길어졌다. 나는 아저씨에게 같이 먹으려고 햄버거를 사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 말에 아저씨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먹고 싶어서요, 옛날 햄버거예요, 햄버거 안에 햄과 상추만 들어있는. 라며 나는 수줍게 내밀었다. 수위 아저씨는 표정은 없었지만 내가 내민 옛날 햄버거를 받으면서 아마도 조금 기뻤을 것이다. 예전 그 오래 전의 기억이 났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햄버거를 까서 야무지게 먹었다. 맛이 썩 있지는 않았지만 꽤나 맛있었다. 수위 아저씨는 마치 나를 어린이처럼 내가 잘 먹고 있는지 뒤에 서서 흐뭇하게 지켜봤다. 해가 이동을 할 때마다 그림자도 조금씩 움직였다. 그때 나는 수위 아저씨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햇살을 받으니 잠이 쏟아졌다. 나는 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저씨는 조금씩 투명해졌다.


정신이 몽롱했다. 가물가물 한 것이 발바닥으로 나의 의식과 자아가 몽땅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겨우 눈을 떠 발바닥을 보니 날카로운 것에 난도질이 되어 침대 바닥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위 아저씨는 눈물보다 진한, 붉은 사랑을 주고 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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