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파도의 소리가 들리지만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워서 트루먼 카포트의 ‘차가운 벽’을 좀 읽다가 살이 맞닿으면 서로 살을 비비고 잠이 오면 잠이 들었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 잔뜩 사 넣은 맥주를 꺼내서 마셨고 다시 누워서 같이 책을 좀 읽었다. 음악 같은 것도 듣지 않은 채 창밖으로 들리는 바다의 소리를 배경 삼아 차가운 벽을 읽었다.

 

17세에 쓴 단편 소설 맞아요? 문체가 묘하군요.


카포트는 자신의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영화로 확정되었을 때 주인공으로 메릴린 먼로를 그렇게 추천했데.


메릴린 먼로가 했어도 꽤 멋진 영화가 되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또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맥주를 마시고 서로 꼭 끌어안았다. 좋은 냄새보다 살갗의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좋았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냄새였다. 빨간 점들에 의해 발가락 행진곡이 침대 위에서 연주가 되었고 나른한 오후를 왈츠를 추는 먼지로 수놓았다.

 

우리 이제 나가요. 스무 시간을 호텔 침대 위에만 있었어요.

 

고요한 하루가 지나간다. 아직은 봄날이라 여기저기에 봄의 정령이 눈치를 보고 있다. 이상하게 아직 긴 팔을 입어야 하지만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끝 봄의 계절을 파고들었다. 아직은 봄이야, 라는 말 한마디에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놓으면서 동시에 조급함이 든다.

 

우리는 눈치 보는 봄의 정령이 가득한 바닷가에서 사진을 몇 컷 찍고 조금 걸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하나씩 마시고 사진을 몇 컷 더 찍고 벤치에 앉았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하루다. 고요한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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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 떠오른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의 이 시는 늘 내 주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문득 튀어나온다. 자유롭고 싶다고 하늘을 보고 외치나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면 또 불안해할 뿐이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계획 하에 짜인 여행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자유 자유 외치지만 순수한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하고 두려워 몸을 벌벌 떨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사람은 자유롭고 싶다며 저 달이 떠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 사람은 늘 머리에 뾰족하고 긴 칼이 들어와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찌른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삶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면, 저 하늘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면 두통도 고통도 사라질 것이라고 그 사람은 버릇처럼 말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들여 달은 차오른다. 어제는 밀사의 눈초리 같았는데 오늘 보면 조금 차 올라 있고, 내일이면 오늘보다 조금 더 차오를 것이다. 달은 저 위에서 그렇게 고독하게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 달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달을 닮았다.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손을 뻗어도 절대 닿을 수 없다.


달은 말했다. 루를 사랑했던 릴케처럼, 베아트리체를 사랑했던 단테와 같이, 잔 뒤발에게 목숨처럼 빠져들었던 보들레르처럼, 자야를 너무나 사랑했던 백석처럼 여기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거짓말처럼 달은 매일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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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꿈이었다. 누군가 내 몸을 벌리고 그 안에 톱밥을 마구 집어넣은 다음 그대로 덮는 꿈이었다. 무서웠다. 일어났을 때 그가 옆에 없었다. 손이 떨렸고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잘 나오지도 않는 소리로 그를 애타게 찾았다.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멈춰버릴 것 같았다. 줄로 팔목을 썰어대는 것처럼 아픈 것 같아서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를 찾았다. 그를 불렀다. 약이나 그가 필요했다. 약과 그의 가치가 같지는 않았다. 약은 한계적이지만 그의 심장소리는 무한정의 가치를 내게 가지게 했다. 그는 나에게 약이 될 수 있지만 약은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었다.


숨이 넘어가 깜깜해지려는데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았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란 건 밖에서 잃어버리고 온 것 같았다. 그의 가슴에서 깨끗한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사는 것도 힘들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아 그러니 너의 아름다움을 더 보고 싶어. 그가 말했다. 나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불판에 녹아내리는 치즈처럼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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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오늘이 생각난다. 일찍 피었다가 금방 다 떨어져 버린 벚꽃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오히려 활짝 핀 벚꽃은 불안하다. 행복하면 이 행복이 언젠가는 깨지기에 불안해진다. 그래서 불행하기보다 덜 불행하기를 매일 진심을 다해 바라고 있다. 봄은, 특히 사월은 불안이 모든 곳에 도사리고 있다. 온통 화려하고 찬란하고 새와 벌 대신 꽃들이 하늘을 떠돌아다닌다.


예전에 애써 벚꽃놀이를 가서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일행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얼마나 힘들었던가. 한 곳에 머물러 구경을 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힘들어하는 것일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자파의 술수에 속아서 모두가 벚꽃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일 년 만에 기시감을 느낀다. 일 년 전에는 쓰레기의 찌꺼기가 몸속 어딘가에 계속 쌓이는 기분이었는데 요즘의 나는 찌꺼기가 몸속에서 썩어가는 것만 같다. 일 년 동안 쌓인 찌꺼기가 분해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다 썩고 나면 가수분해가 되던지 그대로 터지던지.


4월이 되면 이것이라고 확실한 것에도 태도를 제대로 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 달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태도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것’이라는 글자를 꽤 많이 사용했다. 역시 그것은 나의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태도라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태도에 따라서 그 뒤의 일들이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태도는 무엇보다 확실하게 취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까지 수준 낮은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다.


몸속의 그것이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가 일 년 전에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 냄새를 계속 맡고 있다 보니 그 냄새가, 그 악취가 나의 것, ‘나’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에 취해 버리는. 어쩌면 나는 좋은 냄새라는 걸 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후각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 이렇게 한 계절이 죽음에 이르려고 한다. 인간실격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이튿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관습을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커다란 환락을 피하기만 하면, 자연히 커다란 슬픔도 오지 않는 법이다. 앞길을 가로막는 돌멩이를 두꺼비는 우회하여 지나간다’라는 문장이었다. 한창 우울할 때 읽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때는 오히려 우울함을 드러내서 더없이 우울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돌멩이 하니까 나는 한때 돌멩이 같은 인간이 되고자 애썼다. 돌멩이는 볼품없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그런 인간이라면 불안에서 좀 더 떨어져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돌멩이를 닮은 인간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신발, 좋은 차, 좋은 옷도 좋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글만큼 좋은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불확실하지만 무사히 지났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꿈을 꿨는데 꿈이 아니었어, 라는 토토로의 대사를 지난번에도 썼는데 지금도 역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꿈이고 꿈같은 시간이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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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이 되면 호러블 한 봄에 대해서, 나의 결락에 대해서, 봄의 슬픔에 대해서 글을 적고 나는 봄날의 곰이 아니라 동백이 되어 목을 꺾어 밑으로 떨어진다. 아래로, 아래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결락을 맛보는 계절이 봄이다. 모든 세상이 화려하게 컬러풀하게 변하고 세상 곳곳의 벚꽃나무는 팝콘 같은 벚꽃을 피운다. 하지만 벚꽃의 생명은 마치 불꽃의 미학과 같아서 피융하며 하늘로 힘겹게 끓어오르는 소리를 내며 한 지점에 도달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무화하여 소멸한다. 피자마자 떨어지는 봄은 슬픈 계절이다. 그 속에는 우울이 웅크리고 앉아 마음 저 안쪽에서부터 아프게 긁으며 일어난다. 동백은 벚꽃처럼 꽃잎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작정하고 목을 꺾어 그대로 죽음으로 절개한다. 가장 잔인하고 슬픈 계절, 봄. 화려하게 수놓는 이유는 빛의 고통이 십수만 가지의 색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통이 점철되고 극화되는 계절 봄. 이런 봄에 우울을 느끼지 않으면 언제 느낄 수 있을까. 날이 따뜻하여 두꺼운 옷을 벗었지만 봄의 바다는 몹시 차갑거나 아주 차갑다. 그래서 봄의 바다도 슬프다. 세상의 슬픈 것들은 봄으로 집약되고 우리는 그 슬픔을 조금씩 떼먹으며 등에 살찌운다.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잠시 스쳐가는 봄은 나이와 닮았고 시간을 닮았다. 봄은 가장 슬픈 계절이다.



해가 뜨기 전의 흐리고 슬프디 슬픈 봄의 이른 아침은, 바다의 모든 곳에 낯선 그리움이 짙게 깔려있다. 나는 그 바닷가를 처음 먹어보는 음식 맛을 느끼듯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가슴의 저 안쪽 어느 부분에서는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알아들을 수 없고 The War On Drugs의 Thinking Of A Place가 바다의 한 지점에서 나온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서서 노래를 듣는다. 노래는 길게 이어져 11분이나 되었지만 음악은 나를 그 자리에 꽁꽁 묶어 두었다. 어딘가 음악감상실 같은 곳에서 건방진 자세로 비스듬히 기대 음악만 듣고 싶다. 전자나 전파가 나오는 물품을 모두 제거한 채 그저 음악만 듣는다. 눈을 감고 노래가 하는 이야기 속으로 온몸을 담근다. 때로는 발끝부터 서서히 잠기기도 하고 그대로 한꺼번에 풍덩 빠져들기도 한다. 감았던 눈을 떠 보니 날짜변경선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하얀 연기가 먹어버린 어두운 밤을 보면서 나는 날짜변경선 위에서 봄날의 생을 생각한다. 여기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나는 나의 고통과 마주한다. 고통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친밀감을 느낀다. 꼭 이른 봄 아침의 바닷가에서만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버리고 싶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바다에 빠졌던 찰리 파커의 얼굴과 같다. 죽어야 끝이 나는 나의 부조리와 환멸 그리고 고통과 아픔들. 결국 나는 그것들을 끌어올려 같이 항해를 한다. 함께여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아 버린 것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숙명과도 같은 것들. 나는 오늘도 꿈같은 일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인 세계. 그건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친밀감을 지닌 고통과 낯선 그리움과 마주하고 나면 어느새 복사 촬영을 해놓은 사람을 보게 된다. 날짜변경선 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신기한 일이며 동시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타인은 언제나 타인의 의식의 죽음을 원한다고 헤겔은 말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이 우리에게 방해되는 존재인가를 매일 체험하면서 살고 있다고 전혜린도 말했다. 날짜변경선 위에서 나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친밀함이 잔뜩 깃든 고통과 타인과 함께 여야 함의 불행에 대해서 생각한다. 짧은 봄날의 바닷가에서.


The War on Drugs - Thinking Of A Place https://youtu.be/8d5ZbojE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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