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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한큐선 기차에 몸을 싣고 바스를 타고 가파르고 굴곡진 도로를 오르고 올라 연주회장에 도착했다. 그 연주회장은 고베에 있는 여러 개의 산 중에서 하나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정상까지 올라가야 연주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만큼 연주회장은 인적이 드문 곳에 어이없지만 기세 좋게 세워져 있었다. 그런 곳에 연주회장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대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곳이라 그 지대에 맞게 지어진 적당한 규모의 연주회장이었다.


 이렇게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동네에 불편하게 자리 잡은 연주회장이 있을 거라고 나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온통 내가 모르는 것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걸 안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은 내가 알 때까지 기다려준다거나 또는 내가 알 수 있게 변한다거나 또는 나를 위해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나는 그 여자애에게 초대해준 감사의 표시로 뭐라도 들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차역 근처에 있는 꽃집에서 여러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준비했다. 다양한 꽃들이 꽃다발로 이루어져 연주회에 어울릴 것 같았다. 사실 꽃집 주인이 그렇게 말을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처지에 맞지 않게 큰돈을 썼다. 꽃다발을 구입하고 나오니 때마침 버스가 도착해서 올라탔다. 일요일 오후였던 그날은 약간 추웠다. 바람이라고는 전혀 불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차가운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은 잿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회색빛이 도는 헤링본 재킷 안에 파란색이 조금 가미된 얇은 무늬가 없는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재킷은 너무 새것이었고 그에 비해 가방은 오래되고 낡았다. 그런 차림과 손에 들린 화려한 꽃다발은 어떻게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렇게 한 껏 꾸민 채로 버스에 올라탔을 때 다른 승객들이 나를 계속 쳐다봤다. 그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얼굴에 와서 박혔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시선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에 붉게 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주 작은 도발에도 얼굴이 쉽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오른 홍조기는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다.


 도대체 나는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붉어진 볼을 식히며 나는 나에게 자문했다. 딱히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물가물한 그 여자애가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애의 피아노 연주를 꼭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용돈을 다 써가며 꽃다발을 사고 여기 이 산꼭대기까지 온 것일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끌림에 의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끌림에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음울한 11월 일요일 오후에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내가 우체통에 답장을 넣는 순간부터 잘못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가 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승객들이 줄어들더니 내가 버스에서 하차할 때는 버스기사와 나밖에 없었다. 연주회장이 있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초대장에 있는 연주회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며 코너를 돌 때마다 항구가 시야에 잠시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감쪽같았다. 우중충한 하늘은 흐리멍덩한 컬러로 마치 회색 칠을 해 놓은 냄비 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았다. 항구에는 대기 중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크레인이 있었는데 꼭 어떤 꼴사납고 흉한 생명체가 바다에서 기어 나온 것처럼 보이는 안테나 같았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집들은 우아했고 고풍스러운 저택이었다. 차고에는 3,000cc 이상의 차 두 대가 주차를 할 수 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마호가니 무늬의 정문과 안과 밖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 큰 돌담이 있는 집들이었다. 진달래 울타리는 매일 정원사가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큰 개가 짖는 것처럼 소리가 들렸다. 세 번 정도 크게 짓고 나서 화난 주인에게 심하게 혼난 것처럼 갑자기 소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이내 주변은 적막해졌다.


 초대장에 그려진 간단한 지도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따라가는 동안 뭔가 불길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첫째로 길가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단 한 명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차 두 대가 지나가긴 했지만 올라오는 차량이 아니라 전부 내려가는 차들이었다. 산 정상이지만 그곳에서 연주회가 있다면 이것보다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동네 전체가 저 위의 빽빽한 구름이 소리를 다 집어삼킨 것처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고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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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라고 해야 할까) 단편 소설- 2018년에 나온 단편소설 ‘크림’이 2019년에 뉴요커 지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도통 한국에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의역을 해 본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한국에 단편 소설집이 나오고도 남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너무 성급한 생각인가.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영문판을 한글로 직역을 도와준 가은 님 덕분에 수월하게 아직 한국에 나오지 않은 단편 소설 ‘크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가은 님께서 애초에 직역을 잘해주셔서 딱히 어려움 없이(라고 하지만 네 번 정도 다시 적어 봤습니다) 그대로 번역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의역이라 제멋대로입니다. 그 점을 감안해주세요.


워드 14쪽 정도로 200자 원고지 106장 정도 되는 분량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문단의 줄 바꿈을 전부 해버려서 원래는 훨씬 분량이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그저 재미로 의역을 해 본 것이라 하루키의 제대로 된 소설을 접하려면 뉴요커 지를 찾아서 읽거나 한국판으로 나오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표지(라고 해야 할까)는 하루키의 영문 표지를 보고 만들어봤습니다. 들어간 그림은 마우스로 그려 본 그림이구요. 이전에 빛의 흐름이라는 주제로 여러 개 그려놓은 그림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럼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미있게 읽어 주십시오.  






1.


 18살에 나는 기묘한 사건을 경험했다. 그건 몹시 이상하고 말로 하려고 하면 입 밖으로 나와 뭉개져서 도저히 표현이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이후로 나는 그 사건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발설하거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는,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시선을 지니게 되었다. 일단 앞에 있는 것 그 너머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보려고 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초월적인 영역에 대해서 꿰뚫어 보려는 습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실제 생활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아직은 잘 모른다. 단지 인간관계에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 부딪히는 면이 생기면 다각적인 면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나는 그 기묘한 경험을 하고 그 사건에 대해서 결론을 내린다거나, 결론에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지금 여기까지 지내왔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나를 잘 따르는 후배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 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에 다가가면 기억이라는 것이 역시 희미하게 된다. 수영은 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호텔의 잔잔한 풀 사이드에 발을 담그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까지 담그게 되는 것처럼 후배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기묘한 사건은 내가 18살 때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 당시에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대학에는 들어가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종의 스파르타식 재수학원 같은 곳인데 ‘아카데미 로닌’이라는 학원을 다니고 있었지. 미래라는 것에 대해서 불투명하고 불안하게 생각되는 시기였어.”


 나는 이어서 계속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어.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확고한 믿음이 있었어. 나는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사립대학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지. 부모님은 완강하게 국립대에 도전을 해보라고 권유했어. 부모님은 나를 보며 나보다 더 불안했던 것 같아. 그때 완강했거든. 그래서 나는 국립대에 시험을 쳤어. 물론 내가 망칠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면서 말이야. 결과는 뻔했지. 보기 좋게 떨어졌어. 그 당시 국립대학 시험에 필수과목으로 수학 영역이 있었는데 나는 미적분에는 병아리 눈물만큼 관심도 없었어. 다음 해에는 재수학원에 다니는 대신 지역 도서관에 틀어박혀 두꺼운 양장본의 소설책을 보면서 보냈어. 나는 부모님에게 변명을 해야 할 알리바이가 필요했거든. 부모님은 내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짐작을 했겠지. 부모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때 알리바이를 만들어가면서 도서관에서 소설책이나 읽는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실패한 인생이 되지는 않는단 말이야. 인간의 삶이라는 게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다고 해서 규정지을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어. 미적분을 파고는 것보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는 게 나에게는 훨씬 즐거운 일이었어.”


 그 시점에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초대장을 하나 받게 되었다. 그해 10월에 피아노 초대장이 난데없이 나에게 날아온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나에게 피아노 초대장을 보낼 사람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초대장을 보니 누가 보냈는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피아노를 같이 배웠던 한 학년 후배인 여자애였다. 나의 기억으로 그 여자애와 함께 둘이서 모차르트의 연주곡 ‘네 손을 위한 소나타’를 한 번 쳐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16살이 되었을 때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었다. 그 후로 그 여자애를 본 적은 없었다.


어째서 그 여자애가 나에게 초대장을 보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여자애는 그때의 연습으로 나에게 관심이 생긴 것일까? 그렇다면 2년이나 지난 후 지금에 와서야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설마, 그럴 리가 없다. 그 여자애는 매력적이었다. 비록 외모가 내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녀는 늘 옷의 패션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 여자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처럼 길거리에서 늘 볼 수 있고 흔해빠진 남자애를 좋아하는 그런 타입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 여자애가 나보다 피아노를 훨씬 잘 쳤다. 우리가 그 연주곡을 같이 칠 때 가끔씩 표정이 일그러질 때가 있었다. 그 곡은 연습을 많이 해야 잘 연주할 수 있는 곡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애와 딱 한 번 연주를 했을 뿐이다. 그 여자애가 나보다 훨씬 피아노를 잘 쳤기 때문에 내가 건반을 잘못 칠 때마다 여자애의 표정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긴장을 했다. 평소에도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손에 땀이 차고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경직된다. 그 여자애와 나란히 앉는 순간 긴장이 되어서 연주를 하다가 내가 틀리게 되면 나는 더 긴장을 했다. 팔꿈치가 여자애를 몇 번이나 치기도 했다. 그 곡이 그렇게 어려운 곡도 아니었고 게다가 내 파트가 쉬운 파트였는데 내가 곡을 망칠 때마다 그 여자애는 ‘작작 좀 하자’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여자애는 그럴 때마다 혀로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소리가 컸던 건 아니었는데 내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였다. 심지어 그 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소리가 아마도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려고 결정하는데 어떤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서 보더라도 나와 그 여자애와의 관계는 단순히 피아노 학원을 같이 다닌 정도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마주치면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애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 적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여자애에게 다가간 적도 없었다. 어째서 그 여자애가 2년이 지난 후에 자신이 속한 트리오 피아노 그룹 연주회 초대장을 보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사실 나는 몹시 놀랐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 해에 넘치는 시간은 나에게 자산이었다. 나는 기세 좋게 그 여자애에게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내가 답장을 보낸 이유는 딱 하나였다. 왜 초대장을 보냈는가 였다. 그 이유를 단지 알고 싶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그 여자애 내부의 무엇인가가 움직여 나에게 어떠한 소식을 전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까지 흘러넘치는 나의 호기심을 이용해서 그 여자애가 나에게 왜 초대장을 보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건 18살 인생에 있어서 당연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호기심의 발로를 찾아 그 당시에는 흘러넘치는 시간을 그저 허비하면서 보냈다.


[계속]


직역: 김가은

인스타그램  @kankim.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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